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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비됴2024-12-25 22:29:48

어둠 속을 전진하는 인간 안중근에 대하여

<하얼빈> 리뷰

<하얼빈>은 나라를 구한 영웅 안중근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동지들의 남은 생을 살아가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애국심 고취를 위한 영화이기보다는 고통과 회한 속에 살면서도 독립을 위해 한 발짝 걸어 나가는 한 사람의 의지,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이들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홀로 걷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현빈). 하지만 그의 얼굴엔 대한 독립을 이루기 위한 불굴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전 전투 후 만국공법에 따라 풀어준 일본 전쟁포로의 급습에 동지들이 목숨을 잃고, 이에 따른 미안함과 죄책감이 드리워져 있다. 이 일 이후 독립군 사이에는 그에 대한 의심과 질책이 이어지고, 그는 자신의 약지를 잘라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맹세한다. 그리고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과 함께 하얼빈으로 향한다. 
 
예상과는 다른 모습의 안중근을 만난다는 건 필연적일 수 있다. 이유는 위대한 그의 영웅담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그동안 뮤지컬, 영화 등에서 그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얼빈>은 태생적으로 차별화 포인트를 가져가야 했고, 우민호 감독은 이에 맞춰 애국심에 가려진 한 인간의 고뇌와 슬픔, 그럼에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이의 발자취를 아주 건조하고 객관적으로 따라간다.  

 

 

 

 

 

 

최대한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객관화시키려는 연출 의도에 의해 안중근 의사의 거룩하고도 숭고한 희생 정신은 먹먹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감정의 늪에 빠져 거사를 이루기까지의 버텨온 힘듦이 퇴색될 것을 우려한 듯 신파스러운 감정 극대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영웅적 신화를 지양하는 영화 성격상 수 없이 반복되는 안중근의 내적 고뇌, 특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먼저 간 동지들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그의 입장에서 삶은 그 자체로 고난이자, 책무이며,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동력 그 자체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하얼빈>은 안중근이란 한 인물만의 영화이기보다는 이름 없이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이름 모를 독립군들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안중근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독립군들의 내적 갈등과 그럼에도 독립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토 히로부미 척결에 동참한 우덕순과 김상현, 공부인(전여빈), 이창섭(이동욱) 등의 독립군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럼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몸을 바쳐 싸운 이들의 노고는 거사의 밑거름이 된다. 그 마무리를, 그리고 독립의 굳건한 의지를 피력한 건 안중근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르 영화에서 그려지는 영웅 서사와 반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영화는 낯설게 느껴진다. 우민호 감독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밀정’ 소재를 집어넣어 추리 요소와 긴장감을 계속해서 집어넣는다. 결은 다르지만 주인공의 인간적 고뇌와 공포를 담은 초반부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이, 스파이 장르의 느낌이 다분한 후반부는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생각날 정도다. 특히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스파이가 될 수 있는 시대에서 독립 투사들의 내적 갈등은 심화되고, 이는 하얼빈 거사의 방해 요소가 된다. 

 

 

 

 

 

 

영화 자체가 무거운 분위기 속 진행되고, 영웅 서사에 따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의도 때문에 무척이나 덤덤한 작품으로 와닿는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이나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등 후반부 극적 장면들 또한 그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이는 관객에게 장점이자 단점으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더불어 실화와 가상의 이야기를 뒤섞은 이야기 속 캐릭터들이 너무 밋밋하게 그려지는 것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관객을 사로잡는 건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이다. 홍경표 촬영 감독이 담은 광활한 자연은 또 하나의 볼거리. 100% 로케이션으로 담은 풍광 속 고립되고 외로운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들이 느꼈을 법한 감정을 오롯이 전한다. 특히 극 초반 얼어붙은 두만강을 외롭게 건너는 안중근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 의도적으로 빛과 어둠이 드리워진 독립군들의 얼굴 또한 몇 마디 대사보다 많은 것을 전한다.  

 

 

 

 

 

 

연말 시즌에 인간 안중근을 만나는 건 다소 낯설 수 있다. 이런 단점을 알고 있음에도 이 영화가 우리 곁에 찾아온 건 영웅은 혼자의 힘을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없는 독립 투사들. 그들은 왜 대한독립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쳤을까? 매번 실패하고 두렵고, 불안에 떨어도 왜 계속해서 정진했을까? 그건 아마 앞서 생을 마감한 동지들의 고귀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안중근 죽음 이후 동료들의 독립 항쟁이 이어지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한강 작가는 이렇게 질문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 어쩌면 어느해 보다 어둡고 답답한 이 시기에 개봉한 이 영화가 그 질문의 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제공: CJ ENM

 

 

 

평점: 3.5 / 5.0
한줄평: 차갑게 불타오르는 인간 안중근을 만나다!

작성자 . 또또비됴

출처 . https://brunch.co.kr/@zzack0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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