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1-04-13 23:20:58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
억지로 밝힌 밤하늘에서 몇 개의 별을 찾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The Tokyo Night Sky Is Always the Densest Shade of Blue)
개봉일 : 2019.02.14. (한국 기준)
감독 : 이시이 유야
출연 : 이케마츠 소스케, 이시바시 시즈카, 마츠다 류헤이, 이치카와 미카코, 사토 료
‘억지로 밝힌 밤하늘에서 몇 개의 별을 찾다’
“달이 원래 저렇게 푸르렀던가? 도쿄에서만 그런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없이 매일을 살아가던 청년이 아주 오랜만에 달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온색보다는 한색이 잘 어울리는 도시, 천만 명이 모여 살지만 그만큼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도시. 도시 속 삶을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다면. 가장 먼저 ‘팍팍함’, ‘차가움’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를 것이다.
도시에도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날, 따뜻한 햇볕이 빨래를 보송하게 말려주는 날, 온기에 땀이 후끈 솟아오르는 날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는 ‘차갑다’는 이미지를 갖는다. 우리가 ‘서울’을 떠올리면 화려한 빛과 그 이면에 있는 쓸쓸함을 떠올리듯, 일본 청년들에게 비치는 ‘도쿄’라는 대도시의 이미지도 비슷한가 보다.
월세를 내고, 가벼운 청구서들 속에 적혀있는 무거운 돈들을 전부 납부하고, 미래를 위해 조금 아껴놓고 나면 수중엔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내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무엇을 위해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걸까.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고민한다.
나 혼자 살아남기에도 벅찬, 누군가와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 신지와 미카. 두 사람의 내뱉지 못한 한숨은 턱밑까지 차올라있다. “진짜 사랑은 없어”라고 말하며 차가운 현실을 두 눈으로 직시하고 있는 미카와 거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시선에, 어쩌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희망적인 삶을 꿈꾸는 신지. 억지로 밝힌 도시의 차가운 하늘 아래서 두 사람은 새로운 빛을 찾는다.
가장 짙은 파란색으로 물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둡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하늘은 가장 밝은 밤하늘일 수도, 그곳엔 진짜로 반짝이는 별 몇 개쯤이 떠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줄 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시놉시스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미카’. 일용 노동직으로 일하며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지만 막연한 희망을 꿈꾸는 ‘신지’. 이들은 화려함과 고독함이 한 데 섞인 도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사랑은 없을 것 같던 도쿄의 밤하늘 아래, 방황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삶에 대한 희망을 함께 품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세상을 미워해도 돼.”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열심히 날고 있는 비행선처럼 열심히 달려보지만 특별할 것이 없는 나날이다. 줄지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낀 나라는 존재는 널따란 자전거 주차장에 세워진 자전거 한 대와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숨결을 불어주기보단 사람들의 한숨을 먹으며 더욱 차갑게 반짝이고 있는 도시. 미카는 도시에 발을 들이고, 그 차가움과 무게에 익숙해진다는 건 나 자신을 죽이는 거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검은색 밤하늘을 억지로 밝힌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파란색이고, 차가운 도시 속에서 미카의 손톱에 칠해진 핑크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곧 자라서 사라질 손톱 위 외엔 그 어디에도 부드러운 색은 없다. 홀로 살아남기에도 벅찬 생활,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거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함부로 꿈꾸지 못할 일이다. 미카에게 진짜 연애란 없는 것이다.
“청구서 보는 게 소름 끼쳐.”
신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시야 대신 선명한 오른쪽 눈의 시야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세상의 절반만을 보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입을 쉬지 않는다. 동료들은 그런 신지를 ‘이상한 애’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금세 웃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던지는 신지를 미워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 연봉은 200만 엔이 될까 말까 한 직업, 월세 6만 5천엔, 수도세, 전기세, 통신 비용. 테이블 위에 쌓인 얇은 종이들은 바람에 휙-날아갈 만큼 가볍지만, 종이에 적힌 현실의 무게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어항 같은 도시 속에서 만난 나와 같은 이상한 애
천만 명이 사는 도쿄에서 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항상 기온이 유지되는 어항처럼 항상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작은 거북이 같은 두 사람. 푸르지만 예쁜 달이 빛나는 도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된다. 미카는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걸 숨기기 위해 쉼 없이 떠들어대는 신지의 아픔을, 신지는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카의 상처를 알게 된다.
사람은 언뜻 보면 강해 보이지만, 말 한마디면 쉽게 고독을 얻을 수 있고, 작은 흉터 하나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연약한 존재다. 신지와 함께 일하는 청년들이 매일같이 신나는 노래를 틀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건 젊음의 혈기를 뽐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어두운 밤에 밀려올 슬픔을 힘껏 털어내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예고 없이 차오르는 차가운 슬픔이 가득한 도시에서 다른 이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와 비슷한 이상한 애를 만나는 것도, 이상한 애에게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랑은 많은 사람을 죽였어”
미카는 사랑도, 사랑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언젠간 버려질 것이니. 신지는 사랑했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그 감정을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의미가 없으니.
매일을 쪼들리며 살아가는 삶에 사랑이란 것이 필요할까? 아니, 어울리기나 할까 고민해 본다. 사랑을 하면 돈이 들고,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쪼개 사랑에 마음을 써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사랑이 내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멋지진 않아도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살아있으니 내 앞에 반짝이고 있는 감정 하나쯤은 손에 꽉 쥐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가장 짙은 파란색을 한 하늘 아래지만, 반짝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진 말자. 내가 세상을 반도 못 보고 있다고 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조차 못 보는 사람도 많은걸.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여 그 무슨 일이 모두 나쁜 일일 거라는 보장도 없으며, 아무 일 없는 아침을 맞이할 확률도 생각보다 높다.
우리는 행복의 의미를 몰라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지갑에 여유가 없다고 해도 진짜 위로를, 사랑을 만난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 미카와 신지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 마음껏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어깨를 맞대거나 기댈 수 있는 존재. 사랑했다거나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이 아닌 지금 너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미카와 신지를 붙잡던 과거의 푸르름이 허물어지고 분홍색의 꽃이 피는 아침이 찾아온다.
완전한 검정이 없는, 어둠을 억지로 밝혀놓은 화려한 도시에서 진짜 반짝이는 것을 품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에게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는 위로와 또 다른 색을 가진 눈물이 될 것이다. 이 감정을 천천히 아주 깊게 들이마셔보라. 어쩌면 이 어두운 하늘에 나를 위한 별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생길지도 모른다.
Relative contents
-
- 벤 위쇼의 방
-벤 위쇼(Ben Whishaw) 배우론
* 언급하는 작품들의 핵심 전개 포함
* 2022년 5월에 완성한 글입니다.
벤 위쇼의 주인공들은 좀처럼 ‘세계’와 화합하지 못했다. <향수>(2006)나 <아임 낫 데어>(2007)의 ‘반사회적 예술가’(오정연, 2008.05.29. [씨네21])에서 시작해, <할로우 크라운>(2012)에선 한 나라의 ‘주인’이 돼서도 예정된 실패를 맞이하고 눈물을 흘렸다. <크리미널 저스티스>(2008)와 <런던 스파이>(2015)에선 ‘로맨스에 휘말려’ 누명을 쓴 청년, <브라이트 스타>(2009)에선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요절한 시인 존 키츠였다. 이는 인물의 소수자성과 연결되기도 했는데-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2008)의 세바스찬은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정체성을 부정 당하다 알코올에 중독됐고,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속 로버트 역시 남성에게 끌린다는 까닭으로 협박 당했으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2018), 노만의 사랑과 존재는 불법이었다.
허면 무대 위 벤 위쇼는 늘상 보편에 속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대상이었는가? 그의 연기를 목격했다면 그렇지 않음을 알테다. 앞서 부러 표면적으로 요약했으나, 그의 주인공들은 늘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에 맞서며 중심을 지켜냈다. 몹시도 흔들리며 괴로워하더라도, 여린 눈빛과 신체가 파헤쳐진 밑바닥엔 항상 꺾이지 않는 ‘곤조’가 있었다. 그게 사랑이건 정의건 예술이건, 넘어져도 놓지 않고 ‘세계’에 저항함으로써 주제를 관통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배우가 지은 독특한 감정의 집과 만나 탄생한 캐릭터성이었는데 -벤 위쇼의 인물들에겐 ‘벤 위쇼’가 가득했다.
연기법에 메소드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는 지났고, 그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표하는 배우들도 있으나, 여전히 메소드는 ‘serious acting’의 가장 추앙받는 방법론이다. 다만 현대에는 오프라인 GV나 인터뷰는 물론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 관객이 당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크린 밖의 배우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미디어는 대중이 배우의 본래 모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을 전제로 ‘그가 자신과 아주 다른 이 인물이 되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으로 노력했는가’를 화제로 삼는다. 한편으로는 ‘배우 본인’의 모습만으로 팬덤이 형성되기도 하고, 어떤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공개하고 닮은 역할을 맡음으로써 스크린에 자리 잡았다.
벤 위쇼의 케이스는 조금 특이하다. 스크린 밖의 모습은 공개하기를 꺼리면서 연기에는 그 자신이 묻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 개인을 알지 못함에도 관객은 (이상하게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앞에 언급했듯 인물의 특징에 유사성이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게 다는 아니다. 그는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성, 포지션을 막론하고 스크린 속에서 ‘자신’이 되곤 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 인물(:타인)이 되고 관객에 닿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기능적 조연일 때조차 어느 정도- 벤 위쇼는 화면에 마련한 제 방에서 주변 인물이나 서사와 소통하며 재빠르게 제자리를 찾았고, 영화/TV시리즈/연극 등 다양한 무대에서 그 범위를 넓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신체보다는 두뇌/‘심장’에 재능이 있는 자가 되었던 벤 위쇼는, 오히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그 예리함을 입는다. 눈을 굴리는 건 남들의 눈치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내면의 고민이나 불안, 혹은 오감으로 흡수되는 다량의 정보나 빠른 머리 회전 때문이다. 고개나 손목을 꺾는 것은 특정 이미지를 내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감각이 신체에 묻어 절로 그리 된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느끼느라 외부의 시선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그렇다 하여 그들 모두가 저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임 낫 데어>(2007)
‘세계’와 불화하며 비범하게 존재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비정상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 앞 문장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향수> 속 벤 위쇼의 그루누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행동의 폭력성과는 별개로 스크린 속 그의 몸짓은 오히려 남성/여성을 초월한 기이하고 불온한 선지자의 그것에 가깝다. 단편 <더 뮤즈>(2014), 뮤즈에게 집착하다 결국 익사하는 남자의 변태적 우울에도 닮은 데가 있다. 이들이 궁금해지는 것은, 그 ‘괴상한 욕망’이 벤 위쇼의 피부에 안착함으로써 ‘어느 정도’ ‘시대와 불화한 비범한 예술’의 정서를 입는 까닭이다.
<아임 낫 데어>, 덥수룩한 머리의 젊은 ‘시인’. 담배를 물고 삐딱하게 카메라를 향하는 그의 눈빛도 불온하다. 언뜻 ‘메인 롤’은 케이트 블란쳇의 ‘록스타’나 히스 레저의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의 ‘무법자’ 등 비중과 활동성이 높은 자들의 몫인 듯하지만, 흑백 화면에서 한 공간에 머무르며 말을 이을 뿐인 ‘시인’이야말로 가장 자유롭다. 그의 뾰족한 신체는 플롯들 사이의 중심을 잡고, 대사는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유사하게, <클라우드 아틀라스> 속 로버트 프로비셔의 편지는 정교하게 뒤섞이는 서사의 기준을 잡고, 곡은 화면을 아우른다. <브라이트 스타>, 존 키츠의 운명이자 고통인 시 또한 사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작품 전체에 흐른다.
존 키츠는 화면에 잡히지 않은 채 타인의 언어를 통해 등장하고 퇴장했다. 그러나, ‘집구석에 박혀 있는’, ‘요새 슬픈 생각을 많이 하는’ 따위의 말이 불러일으킨 예상을 깨며- 세상 맑은 얼굴로 평가를 백지화했다. ‘날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듯 첫인상을 남겼다. 병이 목숨을 앗아가기 전 이미 연인과 작별의 밤을 보내며 차분히 죽음을 예견했다. 어느 정도 자신을 ‘실패작’으로 여기더라도 사랑과 예술에 대한 확신만은 뚜렷한 채였다. 로버트 역시 스스로 마지막을 만든다. 유서 격의 편지와 함께 등장하기에 관객은 자연히 그가 삶을 ‘포기’하게 된 과정을 궁금해하게 되는데, 이 자살은 사실 ‘포기하지 않음’에 가깝다. 세상이 정한 바운더리에 속하지 않기에 무시당하고 협박당하지만, 제 존재를 의심치 않는다. 죽어가는 영혼을 곡에 담는 모습에는 절망이나 파멸의 정서가 없다. 초월적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자, 자신을 짓누르는 세계에 순응하느니 존엄하게 사라지겠다는 선언이다, 그가 편지에 적은 대로. (“진실된 자살은 세심한 준비와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야.”,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믿어, 먼저 가 있을게.”)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 세바스찬은 가난한 예술가가 아닌 귀족가 도련님이었으나, 세상에 ‘fit in’ 되지 못했다. ‘남색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관람되며’ 처음 등장하는데, 그 역시 편견에 빼앗긴 첫인상을 제 언어로 재정립한다. 꽃다발과 편지, 이어 테디 베어와 행복에 대한 의심으로. 가족과 자신을 단호하게 분리하며 이방인을 자처하는 세바스찬의- 텅 빈 저택을 휘감는 위화감은, 미묘하게 구르는 벤 위쇼의 눈동자로 완성된다. 미래의 불행을 확신하고 ‘죄인’이 되어 슬픈 얼굴로 기도하면서도 절대 존재를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Just to fit in.그냥 너한테 맞추려고.”이라던 찰스에게, 그는 “Well, than don’t!그럼 하지 마!”이라고 말했다. 저들의 ‘선의’에 흔들리느니 차라리 스스로 망가지고 고립되기를 택했다. 사과하는 찰스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그는 작별의 순간 “Not a word.한 마디도 하지 마.”라고 선을 긋던 존 키츠와 겹친다. 타인의 죄책감이 되거나 ‘구원’되기를 거부하며, 연약하나 평온한 모습으로 원하는 순간 이별(퇴장)을 선언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침착하게 각도를 맞춰 입에 총구의 자리를 만드는 벤 위쇼의 동작은 분명한 정서를 섬세하게 전달했다. 시대의 룰에 억압당한 그의 인물들은 -병으로 인한 죽음이든, 권총 자살이든, 이민이든- 결국 제 식대로 ‘세계’와 헤어지기를 택하며 고유의 언어로 존재를 정의했다. 이 남다른 자들이 거의 거리감 없이 관객에게 닿았던 것은, ‘두꺼운 피부나 굳건한 심지로 대수롭지 않게 억압을 받아치거나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숨길 요령 없이 최전선에 던져져 끊임없이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존재를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캐릭터 묘사의 일등공신은 절대 벤 위쇼였다.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평범하고 무해한 마스크 속 내면의 힘
단편 <러브 헤이트>(2008) 속 ‘착하지만 수완 없는’ -증오조차 ‘제 hate에게 휘둘려’ 어설프게 표출하며, 욕이 가득한 메일을 쓰며 울먹이거나, 사람을 ‘죽이려’ 나서서도 주먹 한 방에 자빠지고 마는- 톰처럼, 벤 위쇼의 어떤 주인공들은 가장 평범하고 순수한 영혼이었다. 대개 사람이나 상황에 ‘말려’ 곤경에 처하고 위험에 노출되었는데- 그 ‘순수’는 대다수의 사람이 지닌 것은 아니어서, 관객은 이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고’ ‘구해지기를’ 바라며 안타까워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 받는 피해자로만 남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끝내 스스로를 구한다.
<크리미널 저스티스>, 벤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평정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며 말한다, “Be yourself, Ben.네 모습 그대로 있으면 돼, 벤.” 벤 위쇼의 얼굴은, 작품이 ‘크리미널 저스티스’의 모순과 부정의를 강조하는 제1의 방법이다. 메시지를 분명히 하려면 주인공의 캐릭터성에 물음표가 생겨선 안 되고,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 속 카세 료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의 ‘무해한’ 인상은 의심의 여지를 효과적으로 지웠다. (‘매력적인 보호자’와 로맨틱한 긴장감을 유지하다 ‘구원’되는 연약한 주인공의 남성형인 듯 하다 그것을 ‘배반’하기도 하는데,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제스처였음을 전하는 것도 벤 위쇼다.) 후반부 결코 전처럼 해맑지 못한 눈빛은 시스템에 의해 개인의 마음이 조각난 모양을 빚어낸다. 최종적 설득력은 대사나 행동 자체보단, 섬세하고 개인적인, ‘두려움을 내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에 있었다. 특수한 상황임에도 인물과 같은 것을 겪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몸도 마음도 최대한으로 여린 듯 보이나 숨겨진 내면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는 캐릭터들. 연인의 죽음 이후 누명을 쓰고 괴로움과 혼란에 휩싸이지만 진실을 알아내려 애쓰는 <런던 스파이>의 대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의 노만 스콧 또한 그 맥을 잇는다. 벤과 노만 모두에겐 법정에 서는 장면이 있는데, 강압적인 시선 한가운데 자리한 무방비한(무방비하나 무력하지는 않다.) 이미지가 이미 ‘결백’을 주장한다. 벤 위쇼는 ‘연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모든 자극을 견뎌내며, ‘울음을 계속 참고 있는, 그러다 참지 못하기도 하는’ 모양을 유지한다. 그 터질 듯한 상태 그대로 결국 말들을 당당하게 뱉어내는 모습은, 고통스럽고 벅찰 수밖에.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의 경우 노만 스콧의 특수한 서사, 복합적인 내면과 매력을 드러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데, 벤 위쇼는 조심스러우나 방어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이를 수행한다. 노만은 제레미 소프의 서술을 통해 일종의 ‘안타고니스트’ 포지션에서 시작하지만, 짐작은 곧 깨진다. 감정과 ‘약점’을 다 드러내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그 속수무책의 순수. 모델로서 포즈를 취할 때도 어느 정도 수줍고, 협박을 해도 어설프다. 내내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즐겁고 당당하게 세상에 외칠 때, 엉엉 울고 나서도 활짝 웃을 때, 관객은 이것이 ‘노만 스콧의 이야기’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2018)
비범하나 보편적인, 평범하여 특별한.
‘천재’라는 수식에 기자는 어울리는 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 아워>(2011-2012) 프레디의 재능은 절대로 비범하다. 그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지만, ‘안 예쁜 태도’에 대해서도 모두 입을 모은다. 열변을 토할 때 그의 표정은 ‘관리’되지 않고 생생하게 굳어진다. 프레젠테이션보다 내용이 중요하고, 제 평판보다 진실이 중요해서다. 모두 어느 정도 연기하며 사는 세계에서, 홀로 연기할 생각을 않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기꺼이 골칫거리가 되는 자. 프레디가 맘에 없는 말을 하는 대상은 벨 하나다. 감정을 덮으려 부러 장난을 걸거나 상대를 깎아내리지만, 아련한 눈빛이 진심을 다 드러낸다-기보단 숨기지 못한다. 외부 압박에 타협하지 않는, 남달리 똑똑하고 위트있는, 그러나 로맨스엔 젬병인- 주인공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프레디 라이언은 유일하고 그 까닭은 벤 위쇼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He sees extraordinary in ordinary.그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봐요.”(벨 롤리) 프레디가 그렇듯 벤 위쇼도 그렇다.
1화 첫 장면은 대뜸 클로즈업된 벤 위쇼의 얼굴, 거울을 보고 연설문을 읊는 모습이다. 따라서 관객이 보고 있는 상은 프레디 본인의 눈에 비친 것과 동일하다. 이처럼 작품은 자주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은 그 뛰어난 감각이 인식하는 바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된다. 벤 위쇼가 샅샅이 드러내는 보편적인 감정의 떨림 덕이다. 그러고 보면 프레디는 여성을 ‘구하는’ 강하고 멋진 남성이기보단, 루스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늘지거나 잔뜩 얻어맞고 벨에게 발견되는 자다. 인간적인 ‘보통’의 정서를 지님에도 물러서지 않기에 더 ‘보통이 아닌’- 이 위대한 기자의 여정을 그저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이입해 가슴을 졸이며 응원할 수밖에. 비범하면서도 보편적인, 평범하기에 특별한. ‘세계와 불화하는 그들’의 내면에 있는 힘을 벤 위쇼는 오롯이 소화해 전했다. 그 컴플렉스complex함을 절대 단순화하는 법 없이.
어떤 인물들: ‘유해한 세계’에 벤 위쇼가 편입되는 법
아르튀르 랭보, 존 키츠, 노만 스콧, 리처드 2세와 최근의 아담 케이까지. ‘실존 인물’에 그를 캐스팅하며 외모의 유사성은 애초에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을 테고, 기대한 바도 완벽한 ‘재현’과는 멀었을 것이다. 그가 ‘벤 위쇼 아닌 자’이려면, 애니메이션 곰이 되거나, 판타지적 디스토피아의 무감정이라도 입어야만 했을테니. 그러나 <패딩턴>(2015), 마음껏 정신없이 명랑했다가도 풀이 죽어 무방비하게 처량해지는 벤 위쇼의 정교한 미성이 사고뭉치 패딩턴을 ‘지구상 가장 순수한 생명체’로 만드는데 필수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듯- ‘기능적 조연’들 역시 벤 위쇼를 통함으로 인해 달라진다.
<007> 시리즈나 <제로법칙의 비밀>(2013) 속 ‘박사들’ 외에 그가 맡은 일부 조연들은 어쩐지 의외다. 빈민가 소년, 시인, 기자, 귀족 자제, 심지어는 왕의 모습으로-세계의 법칙이/을 거부하는 자였던 벤 위쇼는, 몇 년 후 여성 주연 작품들에서 ‘유해한 규범을 기꺼이 따르고 재생산하는 남자들’이 되었다.(‘절름발이 남자’는 규칙을 어기지만, 세계에 편입되기 위함이었다.) 맡는 역할의 범위를 넓히며 늘 ‘특정한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캐스팅으로 ‘효과’를 본 것은 사실 배우보다는 작품이다. ‘규범’이 현실적인 경우 개인이 아닌 불평등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면, ‘영화적일’ 때는 화면에 미묘한 불쾌감을 부여한다.
<서프러제트>(2015) 속 남성의 유형은 다양하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즐기는 자, 권력을 쥐고 놓지 않는 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법을 집행하는’ 자, 아내를 지지하는 자- 그들 모두가 ‘악해서’ 여성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며, ‘대표적’ 가부장의 마스크를 벤 위쇼가 가져가며 이는 최대한으로 어필된다.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착실한 남자’로 등장한 소니는, 모드가 여성 참정권 집회에 나가도 먼발치에서 예민하게 주시하거나 부드러운 말투로 걱정을 내비치는 정도였다. 그 ‘배려’의 정체는 인물의 불안과 함께 밝혀지고, 카메라는 그가 ‘자상한 남편’, 이어 아버지이기를 포기하는 순간을 노린다. 악의 없이 울먹이며 흔들리는 낯을 잠시 클로즈업함으로써, 이 남자가 그저 평범하고 유약하며 특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가부장임을, 그 무책임한 몰인지가 그의 잘못이며 폭력과 차별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더 랍스터>(2015)는 남다른 이입이 특기인 벤 위쇼에게 언뜻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러나 요구되는 연기 스타일이 일정함에도, 이곳의 배우들은 의외로 ‘텅 비지’ 않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연출을 거듭할수록 더) 배우의 개성을 지우기보다 ‘세계’의 룰에 맞게 돋보이도록 조율하며, 행동과 정서가 뻔하게 이어지지 않도록 활용해 장면을 ‘흥미롭게’ 만든다. ‘비정한 여자’가 안젤리키 파풀리아의 얼굴을 통해 기본적 우울을 입듯,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절름발이 남자’의 바탕에 있는 불안은 벤 위쇼의-기계적인 톤을 적절히 입고도 예민하게 구르는 눈동자를 통해 드러난다. <리틀 조>(2019), 크리스의 변화를 미묘하고 ‘극적’으로 드러내기에도 그는 가장 적합한 배우였다. 주인공 여성을 사로잡는 매력적 남성의 전형이 아닌, 잔뜩 긴장해 머뭇머뭇 데이트를 신청하는 소심한 연구원. 그 조심스러움, 어색함과 함께 무해함이 사라지고 결국 무감정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크리스가 지닐 기이함을 예시카 하우스너는 벤 위쇼의 실루엣에서 찾았다. ‘변화’ 이후의 폭력성 역시 계산된 각도로 침착하게 주먹을 뻗는 종류의 것으로, 색다른 공포와 불쾌감을 야기한다. 엄격한 디스토피아에 편입되는 남성들, 그 유해함마저 벤 위쇼만의 것이었다. 특정한 ‘악인’이 되려 애쓰지 않고 ‘세계’를 거역하지 않는 선에서 저만의 위치를 찾는다.
<리틀 조>(2019)
예민함이라는 재능: 타인의 얼굴로 가장 솔직한 자신이 되다.
단순히 마른 것이 아닌 ‘가녀린’ 실루엣, 쉽게 긴장해버리는 근육. 같은 작품에 출연했던 동세대 잉글랜드 배우들: 톰 히들스턴(<할로우 크라운>)이나 짐 스터지스(<클라우드 아틀라스>), 매튜 구드(<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와 같은 ‘남성 리드’가 되기 어려운 이미지고, 에디 레드메인(<대니쉬 걸>)의 ‘무던함’도 없다. 유사하게 ‘세상과 불화하는 천재’ 타이틀을 유독 많이 달았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처럼 ‘뭐든 가능한’ 마스크도 아니어서, 드물게 이성애 로맨스 서사의 주인공이 될 때도 제 1화자나 ‘관계의 리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많은 동료 배우와 평론가, 관객들로부터 ‘동세대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받는 까닭의 핵심은 이 ‘예민함’에 있다. “주변 사람들보다 피부를 한 겹 덜 가지고 있는 것 같은”(트레버 넌),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감각을 전제하는 천재성,은 ‘축복’이라고 하기엔 망설여짐에도- 그의 예민함은(‘예리함’으로 바꿔 적어서도 안 된다) 절대로 ‘결점’이 아니다.
“세 시간 만에 모든 인생사를 겪고 자살을 결심하는 젊은이”(벤 위쇼, 2004.04.29. [인터뷰: AP Archive]), 비니에 후드티 차림으로 약병과 주머니칼을 꺼내며, ‘사느냐 죽느냐’를 논하-기보다 온몸으로 겪-는 트레버 넌의 ‘뉴 햄릿’은, 벤 위쇼의 운명과도 같았다. 아니, 이 역할의 운명이 그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이 주연 데뷔 퍼포먼스로 그는 수없이 공연되고 인용됐던 대사가, 관념에서 떠도는 대신 관객의 가슴에 내려앉게 하고 말았다. <할로우 크라운>, 리처드 2세의 슬픔이 밴 엷은 미소에는 귀족과 군인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분투했던 열 살의 어린 왕마저 비친다. 그는 짓무른 눈가에 자기파괴적 저항과 조롱의 뉘앙스를 드리우고 스스로 ‘폐위’ 씬을 써내려가며 ‘텅 빈 왕관’의 의미를 들이밀었다.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외치며 안경을 든 손을 섬세하게 놀리던 브루투스가 그랬듯, ‘폭정’으로 수식되기도 하는 리처드 2세의 말년 역시, 벤 위쇼와 만나 풍부하고 ‘현대적’이기까지 한 정서를 입었다. 현대의 일반인과는 한참 먼 이 셰익스피어의 남자들이 벤 위쇼와 만나면, 어찌하여 ‘인간’으로 다가와 버리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이 되고 싶지 않다.”(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던 그는, ‘모순적’이게도 스크린을 통해 가장 적나라한 자신이 된다. ‘연기하지 않는’ 이들을 연기하는 벤 위쇼는 그들인 동시에 ‘벤 위쇼’이며, 보고 있는 관객 하나하나다. 그가 불어넣는 개인적 에너지는 작품 전체로 확장되어 관객을 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평범과 비범, 특수와 보편을 가리지 않는다. 중세 왕의 대사조차 개인적 감성을 완벽히 드리워 읊어버리고, ‘특별할 것 없는’ 청년일 때도 남달리 고통 받는다. 어떤 전형성조차 저다운 방식으로 수행한다. 배우로서 ‘이점’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특징을- 벤 위쇼는 애써 지우고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타인/인물이 자신의 피부에 착륙하여land on one’s skin 파고들도록 허락한다.
배우가 게이인 캐릭터를 연기하면, ‘OOO게이’라는 검색어가 자동으로 따라붙고, ‘아니라는 부정’이나 커밍아웃에 대한 기대(유명인의 커밍아웃은 퀴어의 가시성visibility을 높이고 인식을 향상시킬 가능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여기서 ‘기대’는 그러한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한 종류의 것이 아닌 단순 가십을 위한 ‘기대’를 일컫는다.)가 뒤따른다. 벤 위쇼 역시 그에 시달렸고 아웃팅outing으로 성 지향성이 대중에 알려졌으나, 이후로도 소수자적 정체성을 ‘공개’하거나 숨기려고 애쓰지 않았다(벤 위쇼, 2016.04.03. [인터뷰: The Guardian]) 이미지가 굳어지기를 걱정해 의식적으로 ‘다른 방향의’ 배역을 맡지도, 반대로 전략적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대중에 ‘어필’하지도 않았다. “배우들은 어떤 것이든 구현하거나 표현할 수 있고, 그 자신이 무엇인가,로만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벤 위쇼, 2019 골든 글로브 백스테이지 인터뷰)고 벤 위쇼는 말했다. 그의 인물 중엔 게이도 바이도 스트레이트도 있으며, 이는 표현의 깊이나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스스로 ‘양쪽 모두의 에너지에 매료된다’(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고 말하기도 했듯,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전형을 답습하지 않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깨트린’다기보다는- 다만 가장 정직한 인간이 된다.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무방비해지는 그 솔직함과 용기 역시 재능이다. <리틀 조>의 서사를 가져온다면, 그야말로 가장 ‘리틀 조 행복 바이러스’에 덜 감염된 사람 중 하나일 테다.
아르만도 이안누치식 찰스 디킨스 각색에서 ‘밉상 빌런’ 유리아 힙의 옷을 입기도 했던 그는, <파고>(시즌4, 2020)에서는 총을 겨누고 협박하다가도 “내겐 아내가 있어요.”, “난 아내가 없는데 내가 죽으면 개밥은 누가 줘요.” 따위의 말에 눈가를 떨고 마는 ‘정이 가는 범죄자’ 라비 밀리건의 복잡한 캐릭터성을 한 톤 낮춘 목소리에 드리웠다. 프로듀싱을 겸한 <디스 이즈 고잉 투 허트>(2022)에서는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unlikable’’(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 프로타고니스트 아담 케이가 되어 바쁘고 예민하게 이 병실 저 병실을 오가거나 우울하게 입꼬리를 내렸다. 벤 위쇼는 여전히 범위를 제 식대로 넓히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공연예술계에 혈연이 없음에도 젊은 나이에 무대 정가운데에 올랐던 그의 연기에는 초반부터, ‘타고난 천재성’ 따위 문구 없이는 수식하기 힘든 완전함과 특별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흔치 않은 재능’이란 흔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것 역시 안 될 말이다. 그가 지나온 예술의 여정엔 소수적 정체성을 지닌 내성적 남성으로서의 경험과 고민의 과정, 그것을 드러낼 용기와 감수성, 인물을 존중하는 섬세한 접근법, 어느 하나로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배우로서의 프라이드와 철학이 녹아 있다.
연기는, 벤 위쇼가 타인을 자신의 공간에 초대하는 방법이다. 세상이 화면 밖의 그를 궁금해할 필요나 권리는 없다. 그는 어느 정도, 데뷔 초부터 그 선언을 마쳤다. 연기예술가 벤 위쇼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예술을, 픽션의 옷을 입은 채 내보이는 자신을 들여다보면 된다. “Give him a mask, and he’ll tell you the truth.가면을 씌워 주면, 그는 진실을 말할 거야.” (1998, <벨벳 골드마인>, 오스카 와일드 재인용)
* 주 참고 인터뷰
-
- 아마추어 | 프로답지 않다는 개성 혹은 실망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CIA에서 데이터 분석관 겸 해커로 근무하는 '찰리'(라미 말레). 어느 날, 그에게 정보원 '인퀴린'(카이트리오나 발페)가 보낸 첩보 하나가 도착한다. CIA의 '무어'(홀트 맬컬러니) 본부장이 잘못된 작전의 경우 투입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인명피해도 축소하는 식으로 작전 보고서를 조작해 오고 있었다는 것. 이에 더해 일부 테러리스트들과 손잡고 있었다는 의심까지도. 찰리는 이 첩보를 상부에 보고할지 말 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다음 날 찰리는 마음을 굳힌다. 런던 출장 중이던 아내 '사라'(레이첼 브로스나한)가 4명의 테러범에 의해 살해당한 가운데, 정작 CIA는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거나 사살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 이에 찰리는 기밀 정보를 무기 삼아 무어 본부장을 협박하고, 아내의 복수를 직접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설령 컴퓨터나 두들기고 사람 한 번 죽여 본 적 없는 ‘아마추어’라고 무시당하더라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누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 돈이다. 프로는 돈을 받고 일한다. 아마추어는 업이 아니라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의 어원만 봐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어휘 'amator'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마추어는 실력을 평가하는 어휘로도 활용된다. 프로 축구 선수에게 아마추어 선수보다 능력이 없다는 혹평은 돈값을 하지 못한다는 모욕이다.
그런데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어떤 일을 하는 태도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 프로 같다는 표현은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에게 붙는 경우가 많다. 냉철하게, 능률적으로 과업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 반면에 일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자주 동요하는 사람에게는 아마추어 같다는 표현이 활용된다. 돈이라는 대가와 목적보다 사랑과 열정이라는 동기에 충실한 사람이 아마추어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르는 세 번째 기준은 흥미롭게도 첩보 영화에서 클리셰로 자주 활용된다. 처음 임무에 나서거나, 임무를 받는 요원에게는 꼭 사람이나 동물 등 생명을 죽이는 과제가 주어진다. 살인이라는 행위가 유발하는 혼란, 두려움, 망설임 같은 온갖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지, 즉 프로인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인 셈이다. 이는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도, <킹스맨> 시리즈에서도 스파이가 되는 마지막 단계였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 어떤 첩보 영화보다도 아마추어 첩보원과 프로 스파이를 가르는 심리적 경계선에 주목한다. CIA 사무직인 찰리가 아내를 죽인 테러범에게 복수할 때 직접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지, 그의 심경 변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달리 말해 그가 아마추어로 남을지, 프로가 될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아마추어>를 차별화한다. 아마추어스러운 완성도가 그 묘미를 묻어 버리는 게 문제일 뿐이다.
복수에 성공한 아마추어 첩보원
<아마추어>는 본격적인 찰리의 복수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 스파이와 아마추어 첩보원의 차이를 명확히 짚는다. 무어 본부장을 협박해서 현장 요원 훈련을 받게 된 찰리. 그의 훈련이 끝날 때쯤 '헨더슨'(로렌스 피시번) 대령은 그에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알려준다. 밤중에 찰리를 깨운 그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라고 윽박지르고, 끝내 방아쇠를 못 당긴 찰리에게 결코 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프로 첩보원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순간에 아무 고뇌 없이, 기계처럼, 그저 훈련받은 대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야 임무도 완수하고, 생존할 수 있으니까. 그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는 여전히 아마추어다. 테러범 4인 중 처음으로 찾아낸 여성 테러리스트가 무방비로 등 뒤를 내주었는데도 찰리는 그녀에게 총을 쏘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는 아마추어라는 한계를 깨지 못하면서도 목적을 착실히 달성한다. 상대방에게 직접 총알을 박아 넣지는 못하더라도 아마추어스럽게 아내의 복수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이용해서 질식시키거나, 옥상 수영장을 붕괴시켜서 사고사로 가장하는 식이다. 테러범들을 하나씩 찾아 죽이면서 찰리는 아내를 직접 죽인 네 번째 테러범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도 직접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찰리의 복수는 아마추어스럽다. 그는 마지막 테러범을 직접 죽이지 않는다. 경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불가피한 살인이었다고 프로답게 자신을 변호하는 그를 해커다운 방식으로 인터폴과 경찰에게 넘겨 버린다. 이처럼 아마추어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 찰리의 복수극은 특히 순정적으로 느껴진다. 아마추어 첩보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는 진심이 유달리 강조되기 때문이다.
찰리의 내면을 열어볼 두 열쇠
<아마추어>는 찰리의 진심과 순정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을 두 가지 열쇠로써 열어준다. 우선 찰리의 내적 서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한다. 일례로 초반부는 부부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은 찰리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런던 출장 겸 여행을 같이 가자는 사라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일하느라 바쁘다면서 마지막 통화도 그냥 끊어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찰리의 소극성은 그의 죄책감을 극대화한다. 사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말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회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강조하기 때문. 이는 아마추어 첩보원으로서 찰리의 정체성을 부각한다. 테러범 체포, 사살에 적극적이지 않은 조직에 환멸을 느낀 그의 첩보 활동은 누구보다도 아마추어적이다. 복수심도 열정의 일종이라면, 아내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열정만이 그의 원동력이 되어주니까.
또 다른 열쇠는 찰리의 주변 인물이다. 이스탄불에서 찰리에게 기밀 첩보를 제공하던 정보원 인퀴린 그가 아마추어라서 돕기로 결심한다. 그녀 역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프로 스파이였던 남편과 사별한 후에 그를 잊지 못한 나머지 그의 코드네임을 이어받아서 첩보원으로서 활동한 그녀는 찰리에게서 자신을 본다. 돈이나 업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첩보원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반대로 중요한 역할처럼 보이던 현장요원 '곰'(존 번설)은 끝내 맥거핀으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첩보물이라면 성공적인 작전 수행 후에 그가 찰리를 어떻게 비밀리에 지원했는지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찰리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찰리의 아마추어스러운 복수극에 끼어들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프로페셔널한 스파이이기 때문이다.
구시대적 배경에 의존하다
문제는 이처럼 '아마추어'의 미덕에 충실한 첩보물을 너무나도 아마추어스럽게 구성했다는 것. 주인공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남은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와는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는 프로다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세 가지 부재가 문제다. 바로 신선함, 역경, 짜임새의 부재다. 우선 <아마추어>는 구시대적인 소재를 답습한 나머지 찰리의 서사를 더 깊이 느끼거나 들여다볼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정보기관이 일반 시민 개개인을 모두 감시하고 있고, 그 정보를 독점한 뒤 국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위법적인 작전과 활동을 벌이면서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소재는 이미 여러 첩보 영화가 활용한 바 있다. 또 엇나가는 첩보 요원을 잡기 위해서 서로 다른 첩보 기관이 제각기 그를 쫓아 나서는 것.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과 암투. 이 부분 역시 뭐 새로운 것은 없다.
특히 <제이슨 본> 시리즈의 흥행과 스노든의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이후로는 위와 같은 소재를 반영하지 않은 첩보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애초에 로버트 리텔의 소설 <아마추어>가 원작인데, 원작부터가 1981년작이라는 점이 반영된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나 주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 극 중 활용되는 최첨단 감시 및 경비 장비들 덕분에 식상함이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고난이 없는 아마추어
역경의 부재도 문제다. <아마추어>는 액션이 아닌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조성하려고 애쓴다. 천재적인 기술자라는 찰리의 두뇌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상술했듯이 다양한 작전으로 테러범들에게 복수를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찰리가 어떤 작전을 활용할지 지켜보는 재미만으로는 120분을 끌어가지 못한다. 그가 작전을 너무 잘 짜고 복수를 너무 잘해버리는 나머지 긴장감이 없기 때문이다.
찰리는 두 적과 싸워야 한다. 그가 죽이려는 테러범은 물론 그를 쫓는 CIA와도 맞서야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현장에서 작전을 직접 입안하고 실행하는 찰리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테러리스트와 CIA 요원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움직인다. 자연히 영화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찰리의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영화의 허술함, 편의적인 전개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셈이다.
이는 '아마추어'라는 제목에 담긴 함의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극 중 찰리는 총을 잘 못 쏜다는 것만 빼면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할 일을 잘 해낸다. 그러다 보니 아마추어라는 어휘에 내포된 사랑과 열정이라는 의미를 먼저 떠올리지 않는 이상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아마추어'인지는 물음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라미 말렉만 돋보인다
더 나아가 전체적인 구성과 서순도 적절하지는 않은 듯하다. 영화는 부패한 CIA를 먼저 제시하면서 찰리 대 CIA, 개인 대 조직의 대립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조직을 농락하다 보니 조직에게 배신당하고 쫓기는 압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테러범과 CIA의 접점을 마지막까지 숨기면서 알 수 없는 적과 싸우는 서스펜스를 강화했다면 첩보 영화의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빌런 활용법도 아쉽다. 빌런과 찰리의 대립각이 날카로울수록 그의 복수가 남기는 쾌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빌런을 제외하면 게임 미션처럼 한 번 밟고 넘어가야 할 대상처럼 몰개성 하게 묘사되다 보니 복수의 끝은 다소 싱거운 감이 있다. 초반부에 찰리가 느낀 고통과 자책감에 비하면 빌런을 제거했을 때의 시원함이 부족한 것. 결과적으로 영화가 잘 짜여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결국 <아마추어>는 평범한 할리우드 첩보물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정 수준의 재미는 갖췄지만, 그 이상의 특별함을 뽐내지는 못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온전히 꽃을 피우지는 못한 채로 흐지부지 끝난다. 구시대적인 주제의식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볼거리와 상충한다. 그저 아내를 잃은 남편이자 살인의 무게감을 견뎌내는 요원으로 변신한 라미 말렉의 연기력이 인상적일 따름이다.
Poor 형편없음
아무리 그래도 완성도는 프로페셔널해야지
-
- 한 뼘 성장한 모아나의 지지부진한 모험
<모아나 2>는 <토이 스토리 4>와 여러모로 닮았다. 이미 전편에서 이야기의 매듭을 지었음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내기 위해 나온 시리즈라는 점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한 뼘 더 성장한 모아나와 언제나 호쾌한 마우이가 반갑지만, ‘굳이’라는 단어가 거센 파도처럼 감상을 방해한다. 파도야 넘으면 되지만, 전편에서 이미 경험했던 감동들이 기다리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모험가이자 개척자로서의 큰 경험을 한 뒤 모투누이 섬에서 가족과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는 모아나(아우이 크라발호). 이제 족장의 딸이 아닌 차세대 리더로서 인정받고, 그 의식을 치르는 날, 과거 부족의 길잡이였던 선조에게 계시를 받는다. 그 내용은 의문의 섬에 내린 저주를 풀고, 다른 부족과의 만나야 모투누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모아나는 부족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팀을 꾸려 모험을 떠난다. 한편, 신의 길을 찾아 나선 마우이(드웨인 존슨)는 정체가 모호한 마탕이(아휘마이 프레이저)의 함정에 빠진다.
모아나는 성장했다. 더 이상 소녀라 부를 수 없는 그녀는 과거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개척자로서 미지의 바다와 섬을 탐험한다. 부족을 이끌 차세대 리더로서 8년 동안 잘 자라줬다는 걸 증명하고, 새로운 모험을 떠날 수 있는 능력과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긍정적 에너지를 내뿜는다. 또 한 번 모투누이 섬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이번엔 혼자가 아닌 오합지졸 팀을 꾸려 바다로 나가는 모아나의 모험은 그 자체로는 기대하게 한다.
여느 속편이 그렇듯 <모아나 2>도 전편보다 더 큰 모험을 보여준다. 섬을 벗어나 태평양을 무대로 하며, 참여 인원도 더 많아지고, 상대하는 빌런도 더 커졌다. 여기에 자신의 성장을 넘어 부족민, 그리고 바다를 터전으로 삼는 다른 부족과의 연결을 해나가야 하는 중책을 맡는다. 이에 따라 기존보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데, 특히 편견과 고정관념에 쌓여 화해와 평화가 아닌 시기와 질투, 그리고 전쟁을 벌이는 현실을 곱씹게 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속편의 당위성과 더 큰 모험의 장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체 구성면에서 속편다운 개성이 보이기보다는 전편의 안정적인 성공 방식을 기조로, 살짝 변주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당찬 모험,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과의 성장, 좌절 이후 협동해서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아무리 모아나와 마우이가 등장해도 평범하다. 여기에 전편에서 유사 부녀처럼, 남매처럼 보인 마우이와 모아나의 관계는 이번 속편에서는 큰 케미가 이뤄지지 못한다. 물론, 이들의 티격태격 티키타카는 유지되지만, 시너지 효과는 미미하다. 이는 후반부 액션에서도 이어지며 스펙터클과 감동의 전이가 밋밋하게 전해진다. 오합지졸 팀원 등 조연 캐릭터 또한 이렇다 할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모아나>의 명성을 잇게 한 또 다른 주인공은 OST다. 1편을 대표하는 ‘How Far I’ll Go’의 임팩트가 컸는지, 2편을 대표하는 ‘Beyond’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듣는 재미라도 있었다면 모아나의 두 번째 모험을 더 즐겁게 봤을 텐데, 이마저도 작품이 가진 감동의 웨이브를 일으키지 못한다.
쿠키는 1개이고, 3편을 예상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이로 따라 <모아나 2>는 3편을 위한 브릿지 역할로서 숨 고르기를 하는 작품으로도 보인다. 더 커진 모험 속으로 인도는 했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기대감이 크진 않다. 그나마 보고 싶은 건 2편에서 새롭게 얻은 모아나의 파워 정도. 실화 버전은 또 어떻게 나올지~~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평점: 2.5 / 5.0
한줄평: 보기와 달리 잔잔하고 밋밋한 파도
-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충격적인 '반전' 결말의 외국 영화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충격적인 '반전' 결말의 외국 영화들
안녕하세요, 영소남입니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씨 속에선 충격적인 반전 영화를 보며 스릴감을 느끼는게 딱 좋은데요. 그래서 오랜만에 준비해보았습니다. 제가 살면서 본 외국 반전 영화들 중에 가장 최고였고 인상깊었던 20편의 반전 영화 모음집을요. 반전 영화를 찾으신다면 본 리스트 속 20편의 영화 어떠신가요? 아마도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며 여러분도 충격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서는 개봉 순서대로 나열 해보았습니다 !
• 본 글엔 스포일러가 자체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여러분이 생각하는 영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반전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야곱의 사다리, 1990
감독/ 애드리안 라인 출연/ 팀 로빈스 등
드디어 이 영화를 소개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거의 반전 영화의 시초라고 보시면 될 듯한 <야곱의 사다리>인데요. 정말 영화의 반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핵심 공포는 자꾸 사람처럼 생기지 않은 일그러진 얼굴의 환상, 환각 같은 걸 현실처럼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결말과 반전을 위해 정신 이상자들이 경험하는 것들을 주인공이 경험을 한다던지, 환상과 꿈, 현실을 오고가며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리게 한다던지 등의 다양한 볼거리를 쌓아가며 특별함을 선사해주는데요. 좀 오래된 영화이지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긴장감 하나는 일품인 영화이니 꼭 한번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세븐, 1995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등
여러분은 이 영화 <세븐>의 반전이 다른 영화들에 비하여 약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7대 죄악에 맞춰 범죄를 실행하는 어느 살인마의 치밀함과 그 살인마를 쫓는 두 형사의 쫄깃한 이야기가 잘 버무러지고, 후반부에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반전까지 더해져 완벽한 미스터리/스릴러 영화가 탄생했다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이 결말을 예상한 분들도 조금 있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케빈 스페이시의 대사를 듣고 굉장히 충격이었던 기억이 있는데 혹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화 <세븐>의 반전이 많이 약했던 것 같나요?
유주얼 서스펙트, 1995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스티븐 볼드윈 등
90년대에 이런 말이 있었죠. 90년대 최고의 반전 영화는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 두 영화 중에 한 편이다. 저는 이 두 편의 영화를 접하기 전 이 말을 듣고 "에이 그래도 요즘 반전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옛날 영화들을 보면서 충격을 먹겠어?"라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뒤에 저는 요즘 반전 영화들을 볼 때보다 더 충격을 먹고야 말았죠.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들이라면 주인공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보시고,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추리해보거 생각하시며 보시면 더 재밌을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인을 알고 보아도 충격을 먹었다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
더 게임, 1997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숀 펜 등
<세븐>, <파이트 클럽>을 모두 본 후,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서 두 편의 영화 감독인 데이빗 핀처의 다른 영화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찾아보게 된 영화 <더 게임>. 처음부터 끝까지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영화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영화인데요. 영화는 제목과 같이 인생이 바뀌게 되는 위험한 게임에 뛰어들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반전이라는 큰 재미도 있으나 <더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게임으로 인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 과정을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유발 시키는 연출로 심리를 자극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하지만 이 영화 <더 게임>의 결말은 약간의 호불호 갈릴 수도 있습니다.
식스 센스, 1999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브루스 윌리스 등
<식스 센스>,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도 모든 사람들이 반전의 내용을 알고 있는 작품이죠. 아마 반전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을 찾는게 더 힘들겁니다. 저 역시 반전을 알고 보았고요. 앞서 <세븐>과 <유주얼 서스펙트>, <야곱의 사다리>, <혹성탈출> 등의 영화가 나왔을 때에도 '반전'이 하나의 장르가 되진 않았는데 이 영화가 나오고 나서 하나의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반전과 결말 자체가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감동까지 주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지금까지 유명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브루스 윌리스의 감정적인 연기가 환상적이었죠.
파이트 클럽, 1999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세븐>부터 시작하여 <파이트 클럽>까지 90년대 중 후반을 사로 잡은 데이빗 핀처 감독의 작품들..! 정말 관객들을 상대로 반전 게임을 진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무엇보다 사물을 이용하지 않고 인물의 심리를 이용한 반전을 일으킨다는 점이 데이빗 핀처 감독 영화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단순한 두 남자가 만나 열정을 불태우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결말은 상당히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초반 부와 후반 부의 분위기와 이야기 흐름이 극과 극이라 굉장히 긴장감 있게 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에드워드 노튼의 데뷔작 추리 범죄 반전 영화 <프라이멀 피어>도 보시는걸 추천해드리고 싶군요.
메멘토, 2000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가이 피어스 등
<인터스텔라>, <인셉션>도 좋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중 가장 많이 보고 많이 접했던 영화 <메멘토>,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보아도 되냐고요? 됩니다. 색다른 촬영방식과 특이한 영화적 구성, 그리고 결말로 향하는 궁금증이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니까요. 아마 첫번째 보았을 때랑 두번째 보았을 때 바라보는 자세와 느낌은 다를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처음엔 이 점이 충격이었다면 다음엔 또 이 점이 충격적일 겁니다. 한번 보고는 절대 모든 걸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거든요. 이게 바로 놀란 감독의 장점이죠. 그저 관람이 아닌 내가 영화에 직접 들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또한 별로 아는 사람이 없지만 역시 충격적이었던 <프레스티지>도 꼭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디 아더스, 2001
감독/ 알레한드로 출연/ 니콜 키드먼 등
빛을 보지 못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두 아이와 그런 아이들을 홀로 지키며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는 여인에게 3명의 새로운 하인이 찾아오면서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디 아더스>. 많은 분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식스 센스> 이후에 최고의 반전 영화라고 불리울만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비록 신선한 소재에 비하여 생각보다 지루한 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 부분도 나중엔 떡밥이 되면서 마지막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왜 최우수 호러상을 받은지 알게 될거에요. 또한 이 작품이 리메이크 되어 재탄생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디 아더스>만의 어둠을 현대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되군요.
엑스텐션, 2003
감독/ 알렌산드르 아야 출연/ 마이웬 등
누가 살인자고, 누가 피해자 인가? 벗어날 수 없는 두 소녀와 한 남자, 세 사람의 이야기 속 비밀을 파헤쳐가면서 최고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영화 <엑스텐션>, 이 영화는 마냥 살인자가 나와 사람들을 찔러 죽이는 슬래셔 무비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는 숨막히는 긴장감을 선보여 주면서 관객들도 영화에 완전히 몰입시켜주는 작품입니다. 정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스릴러 영화들 속 스릴감은 별거 아니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데요. 영화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까 마지막 결말에서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본지 오래 됐어도 반전은 아직도 새록새록한..!
아이덴티티, 2003
감독/ 제임스 맨골드 출연/ 존 쿠삭 등
반전 영화들 중에 최고의 광기를 보여주는 영화인 <아이덴티티>. 영화를 보다보면 후반 부에 반전이 여럿 나오게 되는데 몇 개는 예상이 되지만, 마지막 반전 만큼은 예상하기 힘든 영화이죠. 영화 속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주는 재미와 그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부터 일어나는 살인 사건들, 그 모든 것들이 초 중반 부를 이끌어 나가고, 후반 부터는 도대체 이 살인사건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결말을 추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걸 예상해도 진정한 끝은 예상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꼭 한번 이 영화를 보면서 결말을 예측해보시길 바랍니다.
나비 효과, 2004
감독/ 에릭 브레스 출연/ 애쉬튼 커쳐 등
얼마 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콜>.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바로 이 <나비 효과>라는 작품을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바뀐 과거로 인해 미래가 바뀐다?라는 게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영화를 오늘 다시 보았습니다. 역시 명작이더군요. 여러분도 가끔 다시 그때 그 과거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영화 <나비 효과>는 그에 대한 즐거운 답변을 주지는 않지만 과거로 돌아가 내가 잘못한 부분을 바꾼다 해도 미래에선 새로운 잘못된 부분이 생겨난다는걸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제대로된 소름을 겪어보셨으면 좋겠고, 메세지 역시 느껴봤으면 합니다.
스켈레톤 키, 2005
감독/ 이안 소프틀리 출연/ 케이트 허드슨 등
"뒷통수 한방 세게 후린 것 같은 결말이다"라는 영화의 평만 보아도 궁금증에 한번 보고 싶게 만들어주는 영화 <스켈레톤 키>. 영화 내에서 주어지는 정보와 떡밥으로는 절대 이 영화의 반전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아무리 추리를 해보고 아무리 예상을 해보아도 모두들 단 한가지를 놓치고 아예 다른 길로 반전을 예상을 한다고 하더군요. 영화를 볼때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예상을 하면서 보는게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화가날 수도 있는 엔딩을 이리 안정적이게 표현했다는 것에 감탄하고 싶네요. 영화 <겟아웃>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스릴러 영화입니다
미스트, 2007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출연/ 토마스 제인 등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추리 영화랑은 거리가 먼 영화 <미스트>. 이 영화 속에 추리할만한 요소는 안개는 어디서 나온 것이며, 안개 속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정도 뿐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결말 부분에 있습니다. 아주 그냥 관객의 멘탈, 주인공의 멘탈, 모두의 멘탈을 휘어잡으면서 머리가 띵 해지는 결말이었죠. 아마 오늘 소개하는 영화들 중에 이 영화만큼이나 안좋는 충격을 준 영화는 없을 겁니다. 그정도로 찝찝한 영화이고 결말로 인해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린 영화이기 때문에 아직 못보신 분들은 각오 단단히 하고 보셔야 될겁니다. 허무하고 죽고싶은 그 짧은 순간.. 주인공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트라이앵글, 2009
감독/ 크리스토퍼 스미르 출연/ 멜리사 조지 등
이해가 안가는게 있어도 일단 끝까지 봐야되는 영화 <트라이앵글>. 그 끔찍한 결말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 진실이 밝혀지게 된 순간에 다가오는 미친 공포는 어떤 영화와도 비교하기가 힘들죠. 무엇보다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봐야하는 영화입니다. 만약 자식들이 있다면, 여러분이라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마주하기 싫은 일을 계속 맞이하게 된다면 그보다 큰 악몽이 어디있을까요? 타임루프물 안에 공포가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영화인 만큼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신선함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트라이앵글', 제목 진짜 잘 지은듯!
오펀: 천사의 비밀, 2009
감독/ 자움 콜렛 세라 출연/ 베라 파미가 등
'비밀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밝혀지면 너무 강한 스포일러가 되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정말 이 결말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결말을 보여주어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영화 <오펀: 천사의 비밀>. 누구에게나 다 비밀은 있지만, 이토록 놀라운 비밀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겠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깊었기 때문에 더 몰입하며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쩜 그 상냥하게 생긴 얼굴에서 그런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영화를 본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늘하네요. 군대에서 전역하고 나면 이 영화 꼭 한번 다시보며 그때 그 충격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2010
감독/ 마틴 스콜세이지 출연/ 마크 러팔로 등
미쳐가는, 미쳐있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셔터 아일랜드, 여러분이라면 사건 수사를 위해 이 끔찍한 곳을 들어갈 수 있으신가요? 돋보이는 반전과 돋보이는 이야기 구성, 그 두가지 장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까지 미치게 만들어주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난다면 정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처음보면서 그저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가는 듯한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결말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는데요. 최근에 개봉한 '판타지 아일랜드'..? 그 영화랑은 전혀 다른 아일랜드로 구성되어 있으니 혼자서 이 섬으로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그을린 사랑, 2010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루브나 아자발 등
반전도 훌륭하지만 절대 이 영화가 반전만으로 훌륭한건 아니죠. 영화를 다 보고난다면 탈진할 정도로 미친 몰입감을 선사해주는 연출과 충격으로 두 번 보고싶지는 않지만 절대로 잊혀질리가 없는 영화 <그을린 사랑>인데요. 전개 속도는 느리지만 그 느린 전개 속도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강력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몸소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컨택트>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 당신은 천재적인 감독이자 예술적인 감독인 것 같아요. 현재 제작 중인 <듄>은 어떤 충격을 주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줘, 2014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벤 애플렉 등
이 영화는 단순한 납치 영화가 아닙니다. 단순한 영화였으면 본 리스트에 올라오지도 않았겠죠.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보며, 제목이 '나를 찾아줘'라길래 또 무슨 자아로 인해 반전을 주려나?하기도 하고 남자 주인공에 시선을 따라 이야기 전체적인 흐름을 보았는데, 전혀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영화를 다 보고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결말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보았던 저는 큰 충격이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요. 예상할 수는 있지만 너무 뻔하기 때문에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던게 결말인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벤 에플렉의 인생작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타임 패러독스, 2014
감독/ 마이클 스피어리그 출연/ 에단 호크 등
진짜 영화내내 뒤바뀌는 이야기 구성, 그리고 휘몰아치는 반전으로 인해 충격의 충격을 주는 영화 <타임 패러독스>. 에단 호크와 사라 스누크의 두 시점을 집중해서 영화를 바라보면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데요. 무엇보다 스토리 라인을 잘 잡아놓았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반전들이 나와도 납득이 가고 충분히 이해가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반은 지루할 수 있어도 그 지루함을 견뎌낸다면 그 지루했던 과정이 나중엔 퍼즐조각으로 이어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아, 처음부터 집중해서 봐야 더 큰 충격을 느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실겁니다. 영화를 보며 입을 몇번 막았는지 모르겠네요.
인비저블 게스트, 2016
감독/ 오리올 파울로 출연/ 마리오 카사스 등
드디어 마지막 반전 영화입니다. 미친 연출력으로 인하여 마지막까지 휘몰아쳐 긴장감을 주는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인데요. 초반에 반전 한번, 중반에 반전 한번, 마지막에 큰 반전 한번까지 탄탄한 과정과 짜임새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입니다. 영화가 약 106분의 러닝타임이지만 비록 느껴지는건 체감상 1시간 정도 영화를 본 것만 같이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는 영화이죠. 아마 오늘 소개한 영화들 가운데선 가장 인지도가 낮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더 바디>에서는 아쉬웠던 연출 부분을 잡아내는 센스까지 보여주어 더 소름돋는 영화가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소개하지 못해서 아쉬운 반전 영화는 <쏘우>, <더 바디>, <베리드>,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의 굉장히 많습니다. 위 20편의 영화가 재미있었다면 저 영화들도 한번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콘텐츠는 네이버블로거 영소남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내일을 향한 영화
올해 '성평등주간'(9월 1일 ~ 9월 7일)을 맞아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주최/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벡델데이 2021>이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통과한 10개의 작품 '백델 초이스 10'을 발표했습니다.
2020년 7월 1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의 개봉작을 대상으로 선정된 총 10개의 작품들은 기존의 영화의 성평등을 가늠하는 지수인 '백델 테스트'(Bechdel Test)의 3가지 기준에 2020년 백델데이가 추가한 4가지 기준을 더한 '벡델 테스트 7'을 충족하는 작품들인데요. '벡델 테스트'는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1985년 고안한 영화의 성평등 측정 지수로, 기존의 세 가지 조항에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4개 항목을 추가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최소 두 사람이 나올 것.
- 위의 두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 이들의 대화 내용이 남성 캐릭터에 관한 것만이 아닐 것.
- 감독, 제작사,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역할 비중이 동등할 것.
-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위의 기준에 따라 영화계 각 분야를 대표하는 9인의 심사위원이 선정한 작품 10편은 아래와 같습니다.
<69세>(감독 임선애)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 <남매의 여름밤>(감독 윤단비) <내가 죽던 날> (감독 박지완) <디바>(감독 조슬예) <빛과 철>(감독 배종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 모교>(감독 이미영)
<콜>(감독 이충현) <혼자 사는 사람들>(감독 홍성은)심사위원들은 "백델데이가 제시한 새로운 기준 7가지 모두를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이 극히 드물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계가 여전히 시대가 요구하는 성평등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별 고정관념에 머물지 않으려는 인물과 이야기들이 독립영화뿐 아니라 상업영화 내에서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었다."고 말하며, "영화계 각 분야를 대표하는 심사위원들은 최종 10개의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과연 영화의 성평등적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영화의 내용과 형식, 산업적 측면까지 포함하여 치열하게 논의했다."고 심사평을 밝혔는데요. 한국영화계에 성평등을 위해 앞장선 10개의 작품 '백델초이스 10'을 선정한 <백델데이 2021>은 오는 9월 4일(토) 개최를 앞두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를 향해 나아가는 영화처럼
여러분의 하루가 앞으로도 영화롭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천둥의 신의 우당탕탕 자아 찾기 대모험
미친 거 아냐? 제주의 여름은 덥다 못해 뜨겁다. 7월 10일, 날씨가 드디어 정신을 놓아버렸다. 바람이 잘 드는 옷을 입었는데 거의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원래 여름에 취약한 나.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더위에 금세 어디론가 도망쳐야 할 것 같다. 사실 집에서 책을 읽다 왔다. 선풍기 달달달 하는 소리에, 시원한 제로콜라까지 내 방이 역시 최고다. 그런데 사실 내 방에서만 인생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난 우리 엄마 아빠에게 효도하고 싶은 사람이고 소처럼 일해서 굉장히 잘 되고 싶은 사람이다. 당연히 나라는 사람에게 1인분의 숙제가 주어진다. 일 하는 것도 짜증나 머지않는데 날씨는 미친 듯이 더우니 그냥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래서 그런지 극장에 가는 것이 영화 외적인 것에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빵빵한 에어컨에 공포영화던 뭐던 시각적 쾌감이 있는 영화를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날 것 같다. 근데 또 사계절 보편적으로 통하는 영화들도 있다. 작년 7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가 개봉했다. 극장에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이런 영화 보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무더운 여름은 액션 영화가 최고다. 그리고 그 액션 영화 중 인기가 많은 건 역시 마블이다. 나는 역시나 덕후인지라 마블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딱 두 달을 기다려 신작이 나왔다. 타노스와의 일전을 끝낸 토르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과 빌런이 찾아왔다. 아스가르드로 바이킹을 타고 날아가 보자!
감탄고토
보기만 해도 뜨거운 사막. 한 남자는 딸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 뭔가 아파 보이는 남자와 딸.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계속되는 배고픔에 힘겨워하는 부녀. 기댈 곳을 찾고 있는 것 같다. 털썩. 딸이 쓰러졌다. 딸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는 말과 함께 남자의 품속에서 세상을 떠난다. 슬퍼하며 딸을 묻은 남자. 남자에게 한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하니 도착한 곳은 숲이었다. 숲의 개울가에 얼굴을 씻고 짚이는 과일을 먹는 남자. 남자가 도착한 곳에는 그가 섬긴 신 라푸가 있었다.
남자는 라푸가 고난을 겪은 자신을 위해 잔치를 연 줄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 라푸가 이 잔치의 목적은 신을 죽일 수 있는 ‘네크로 소드’의 보유자를 처치하고 난 다음 스스로를 자축하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충격받은 남자. 라푸의 마지막 신자라고 믿었던 남자는 차가운 말을 듣는다. 라푸는 말했다. “너에게 보상이란 없다. 마지막 신자에게 영원한 보상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라며 남자를 조롱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 “네가 아니어도 나를 따르는 신자들은 많아!” 분노하는 남자. 화를 내는 남자의 목을 조르는 라푸. 그때, 어디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크로 소드는 남자에게 이 신을 죽이고 이터니티의 제단으로 가라며 남자의 용기를 북돋는다. 네크로 소드를 잡고 라푸를 사살한 남자. 네크로 소드의 계시를 들은 남자는 그렇게 신 하나, 둘 씩 사살해 이터너티에 도착해 딸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신 도살자 고르는 그렇게 탄생했다. 온갖 종류의 신을 죽이고 다니는 고르를 토르와 제인 포스터, 발키리가 힘을 합쳐 제지하려는 내용이 본작의 줄거리다.
그냥 적당히 재미있음
내가 기억하기엔 이 영화 마블의 페이즈 4에서 기대작 축에 속했다. 새로운 히어로들의 등장 <이터널스>와 <샹치 : 텐 링즈의 전설>과는 달리 어벤저스의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토르의 영화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이는 특별한 게스트가 있을 예정이었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과는 궤가 달랐다.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오리지널 토르의 이야기를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봉 전주부터 시사회 평이 심상치 않더니 적지 않게 우려를 표하는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극장에 <탑건 : 메버릭>이 날개 달린 듯 입소문을 타고 있어서 이 영화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던 감이 있다. 솔직히 나도 별로 기대를 안 하고 갔다. 마블의 최근 타율이 지지부진하다는 세간의 평가 때문은 아니다. 좀 얄미웠다. '이럴 거면 <헤어질 결심> 상영관 좀 늘려주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런 나와 많은 분들의 우려가 통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냥 무난했다.
이 둘은 존재감부터가 달라
일단 이 영화에 있어 가장 먼저 호평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나탈리 포트만과 크리스찬 베일이다. 일단 '마이티 토르'로 컴백한 나탈리 포트만은 사실상 극을 이끌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마이티 토르 캐릭터는 물리학자지만 신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물리학자'와 '신과 사랑에 빠짐'은 사실 살짝 모순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이 신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뭐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나 자연스럽게 통하는 일이지 우리 일상 속에선 아무래도 앞 뒤가 안 맞는 일이다. 이 할리우드의 위대한 배우는 이 두 가지 지점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극을 이끈다.
일단 인간 제인 포스터의 측면이다. 제인 포스터는 물리학자다. <토르 : 다크 월드>에서 결별하고 난 후 나름의 성과를 내며 성장한 제인 포스터. 제인 포스터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토르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거리감과 그 시간 동안 얻었던 명과 실을 묘사해야 한다. 이게 영화를 이끄는 주요 원동력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감정의 밀도가 떨어지면 안 된다. 긴 시간 동안 참아왔던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 토르와의 사랑이야기 둘 다 멜로 베테랑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스킬이 잘 나타났다. 극 중에서 토르와 제인의 연애사가 주마등처럼 샤삭 스쳐가는 부분이 있는데, 이때 솔직히 두 배우의 내공 차이가 너무 대놓고 드러났다. 나탈리 포트만이 웃는 신은 정말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 웃는 것 같은 느낌이라 마블 영화들이 아닌 다른 멜로를 보는 듯한 이질감이 확 느껴진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감정연기의 명확함을 보여주는 베테랑의 품격이었다.
또 제인 포스터는 마이티 토르이기도 하다. 슈퍼 히어로서의 사려 깊음이나 액션 연기도 동시에 보여줘야 했다. 이것 역시 굉장히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일단 슈퍼 히어로서의 내면 연기는 나탈리 포트만이 잘하는 감정연기를 바탕으로 적절하게 소화한다. 이 사람은 눈빛, 행동 하나하나가 선한 느낌이 든다. 배우가 얼마나 마인드셋을 잘하고 영화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었다. 또한 이 사람은 외유내강형 인물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점점 진행되며 내면이 변하게 된다. 이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만한 사람의 성격을 탄탄하게 드러내는 좋은 묘사가 돋보였다.
다음은 크리스찬 베일이다. 슈퍼히어로 권위자가 이번에는 빌런으로 돌아왔다. 유달리 뛰어난 이해도 때문인지 크리스찬 베일은 돋보일 때 돋보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적절하게 강약을 조절했다. 이 강약조절 덕에 영화에 힘을 줄 때 힘을 주는 부분이 돋보이는 효과가 있다. 우선 고르가 신 도살자가 되어 흑화하는 부분에서 목소리 톤이 변하는 방식은 왠지 익숙한 맛인 것 같지만 알면서 봐도 뛰어나다. 이후에 고르가 악당이 돼서 하는 악한 행동들을 보면 어쩔 때는 리액션의 연기를 하고 다른 때에는 주체적으로 상대방의 리액션을 끌어오는 연기를 한다. 마블 페이즈 4의 빌런들이 굉장히 뛰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드라마 <팔콘 앤 윈터 솔저>에서 살짝 아쉬웠던 것 말고는 거의 다 극을 이끌어가는 존재감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신 도살자 고르는 '만다린-아가사-드레이크 장군-킹핀-시니스터 스트레인지 등'에 버금가는 강력한 존재감이었다. 마이티 토르와 함께 극을 이끄는 주요한 동력 중 하나였던 고르. 이 인물 구경하러 극장에 가도 티켓 값 중 9천 원은 한다.
캐릭터 연출 칭찬해, 하지만
또한 이 둘의 인물 연출은 왜 마블이 좋은 감독을 섭외하는가? 의 답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마이티 토르의 액션 연출은 이 인물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였다. 열심히 벌크업 해 온 나탈리 포트만의 열연에 힘입어 묠니르를 활용한 액션 연출, 처지에 따른 조명 사용 방식 차이, 메이크업 형식, 머리색을 비롯한 코디까지 영화에서 토르와 비슷하면서도 확연하게 달랐던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타이가 와이티티의 역량이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마이티 토르의 초중반부, 극후반부 액션신은 '이 영화의 강점은 액션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는 단순히 배우의 연기력으로만 소화하는 것이 아니다. 연출 방식으로 최선을 이끌어내는 부분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썼듯 떨어져 있었던 연인의 과거가 얼마나 서로 외로웠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은 제인 포스터와 토르의 멜로 연기 디렉팅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고를 유심히 보면 신 도살자 고르의 색감 연출이 뭔가 다르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렇다. 고르가 빌런으로서 악행을 벌이던 곳은 색이 없는 곳이다. 전체적으로 컬러풀한 영화의 색감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르에게 위압감을 부여한다. 뭐 감독이 각본까지 참여한 것으로 보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는 게 어느 정도는 당연할지도 모르나, 각본 자체에서 '신 도살자 고르'는 뭔가 매가리가 없다. 대신 딱 연출자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 자체의 러닝타임 동안 고르의 색을 활용한 분위기 드러내기는 효과적이었다. 비주얼적으로 눈 쪽에 분장을 덧붙이면서, 액션 연출할 때도 후반부에 토르가 썼던 무기와 네크로 소드가 부딪히는 방식의 묘사는 빌런의 악함이 관객의 머리에 흔적을 남기는 역할이다. 이는 곧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로 이어진다. 인물의 강점을 극을 이끄는 힘으로 치환시킨 감독의 연출력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또한 크리스 햄스워스의 액션 연기 역시 좋았다. 극에 이 배우의 나체가 나온다. 진짜 남자가 봐도 섹시한 햄스워스다. 그 섹시한 몸으로 액션 연기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왜 이 사람이 토르라는 슈퍼히어로에 찰떡인지를 잘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마블 히어로들 중에 액션 연기가 가장 자연스러운 배우가 아닐까 싶다. 멜로 연기는 나탈리 포트만에게 좀 부족했다. 그러나 이 부족했던 액션 연기의 '간지와 멋'으로 제 값을 해낸다. 물론 뭔가 열정이 있는 배우인 것 같아서 더 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크리스 햄스워스가 필모 보는 눈이 처참한 수준이던데 뭐랄까 터닝 포인트가 있으면 더 인기를 얻고 대단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발키리의 각본 상의 캐릭터 설정 자체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이 캐릭터가 없어도 영화의 이야기는 술술 전개된다. 그 대신 차후에 있을 영화들 이 발키리가 출연할 것이며 이를 위해 그녀의 성격을 묘사하는 대사가 몇 번 나온다. 이 지점에선 중요하지만 이 영화에선 사실 발키리의 역할을 로키가 나와서 맡아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극에서 개성이 없다. 전적으로 테샤 톰슨의 매력으로만 극을 이끈다는 건 각본 성립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다. 그 대신 이 인물에서도 타이카 와이티티의 연출력 자체는 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이 인물 역시 액션 연기 및 연출이 좋았다. 극에서 마블의 차후 시리즈들을 위해 기능적으로 쓰였다는 페널티가 있음에도 발키리가 기억에 남는 건 연출 자체는 좋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 왓챠피디아를 보면 몇몇 사람들이 이 인물의 특정 속성에 할 말이 많은 것 같던데, 발키리는 애초에 지구인이 아니다. 외계인이다. 그래서 사실 발키리가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뭐 지구인이었어도 문제가 없기야 하겠지만 외계인의 내면을 이해 못 할 거면 마블 영화 왜 보나? 싶다.
이 외에도 CG를 잘 사용한 영화이기도 했다. 러셀 크로우가 맡았던 특정 역할이 기억난다. 이 인물이 좀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겠지만, 이 인물이 있는 신전 묘사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가졌던 강점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굉장히 구체적이면서도, 우리가 예전에 봤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한 공간 묘사가 탁월했다. 이 궁전뿐만 아니라 스톰브레이커의 활용법, 초반부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액션 연기,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전투신까지 이거 분명히 CG로 작업했을 텐데 아마 이 것에 1년은 쓰지 않았을지 생각이 든다. 제작진의 노고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도 무방한 이유가 CG 사용에도 있다고 본다.
코르그야 조용히 좀 있어라
또 이 영화에 있어 압도적으로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 일단 모든 엔딩 크레딧을 보고 여러분이 이 이야기 방식에 대해 느끼는 점이 있다. 극의 핵심을 이끄는 데 있어 '..?' 싶으면 그게 맞을 것이다. 근데 이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적으면 맥 빠질 것 같으니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쓰면 재미없을 단점을 지나 영화의 큰 단점은 코르그가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캐릭터가 적당히 유머를 보여주면 좋은데 너무 유머에 집착한 티가 난다. 아마 전작의 장점을 승계하려던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작은 꽤 호평을 받았던 영화였다. 헬라의 강력함이 토르의 각성서사와 어울리며 보는 쾌감이 있었다. 이에 곁가지로 작동하는 유머가 제 값을 톡톡히 했다. <토르 : 라그나로크>가 호평받았던 이유가 굳이 유머에만 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를 잇고 싶었는지 재미없지도 않은데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은, 타율 낮은 루머를 좀 자주 해서 물리는 감이 있다. 코르그 캐릭터의 대사 1/2로 줄여도 이 영화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 코르그가 하는 유머는 1절 못하고 2,3,4,5 절하는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정도다.
또한 토르 역시 말이 너무 많다. 이 역시 전작 3편에서의 장점을 어설프계 승계하려다가 만들어진 단점인 것 같다. 동생도 잃고 아버지도 잃고 한 눈도 잃을 뻔하고 거의 모든 걸 잃을 뻔했던 가련한 삶의 토르. 뭐 이렇다고 해서 매일 똥 씹으며 살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근데 좀 진중해야 할 때 진중해질 필요는 있다. 이 적당한 선이 없이 불필요하게 말이 너무 많다. 아이언맨도 익살스러울 땐 익살스럽다가 외로운 내면 연기를 해야 할 땐 선을 지켰다. 토르는 그게 없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만큼의 어마어마한 능력자도 아닌 탓에 이런 단점이 더더욱 도드라진다.
근데 티켓값은 해
단점을 쭉 이야기했지만 영화관에서 또 못 볼 영화는 아니다. 난 재밌었다. 몇몇 단점이 눈에 띈 것도 맞다. 그러나 은근히 웃긴 유머와 마이티 토르/신 도살자 고르/발키리/토르 네 인물의 간지, 또 건즈 앤 로지스를 위시로 한 빵빵한 BGM 선택은 '역시 마블이다'라고 생각하기 충분하다. 그러니까, 영화는 대중성 있는 소재를 골랐고 사실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돋보이는 이유는 기존에 이런 소재들을 골랐던 영화에서 더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앞에서 쓴 액션 영화로서의 장점도 분명하고 두 캐릭터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줬다는 부분에서도 나름의 이야기 전개가 확실하니 극장에서 보지 말아야 할 영화는 또 아닌 것 같다. 시사회 평도 별로고 CGV 에그 지수도 별로라 '헐'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친구, 연인들과 함께 시원한 극장에서 즐거운 데이트를 하기에는 역시 충분하다. 엄청 잘 만든 수작도 아니고 망작도 아닌 극장에서 보기 좋은 영화다. 그냥 우리가 영화관에 가서 좋은 시간 보내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개봉 전에 <탑건 : 메버릭>과 <헤어질 결심>, 이, 2주 있다가 <외계+인>이라는 안 좋은 대진표가 있다 하더라도 극장 한번 더 가시는 건 그렇게 안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다.
쿠키는 보고 가셔요
사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 끝까지 봐야 한다. 이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는 역시 마블 히어로 중 한 캐릭터의 주요 챕터라는 점이다. 이 것은 후의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서 적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쿠키가 굉장히 중요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일단 첫 번째 쿠키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이 원작 상으로는 선역으로 보인다. 그러나 윈터 솔저처럼 후에 반동 인물로 활약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 인물이 왜 등장할까? 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도 영화의 감상 포인트중 하나다. 두 번째 쿠키는 사실 생각해보면 '굳이?' 싶다. 그러나 글쓴이의 생각은 현재 페이즈 4가 이어가고 있는 주요 키워드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장면을 넣은 게 아닐까 싶다. 둘 다 앞으로의 MCU에 중요하게 작용할 이야기니 극장에 가신 분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는 것을 추천한다!
-
- 원작소설과 비교분석하는 영화 '그것2' 리뷰
스티븐 킹의 동명원작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 비교
그리고 소설에서 빠진 설정과
이에 따른 영화 "그것:두 번째 이야기"의 개연성 논란#그것2리뷰 #그것2 #영화그것두번째이야기예고편
-
-
-
- 영화 <무간귀도> 메인 예고편
간악한 음모를 파헤쳐라!
명나라 말, 염당 조직의 일원인 ‘형강봉’은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부현의 우두머리 격인 ‘조통’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살아간다.
살해 용의자 독룡방 방주를 처단하는 임무를 마지막으로 떠나려면 ‘형강봉’은
‘조통’과 그를 둘러싼 관리들이 관직과 재물을 탐하는 간악한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형강봉’은 자유를 위해, 백성을 위해 그들을 처단하기로 마음 먹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