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1-13 11:54:57
11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비교적 낮은 스코어로 1위에 올라선 <더 마블스> 최근 몇 년간 지지부진한 흥행 성적에 기를 못 피고 있는데요. 젊은 감독과 뉴페이스 배우들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아쉬운 수치입니다.
과연 마블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국내 박스오피스]
마블 스튜디오 신작 <더 마블스>가 개봉 이후 첫 주말을 맞아 3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영화는 지난 8일 개봉 이후 5일째 1위를 달리며 누적 관객 수
44만6천여명을 기록 중인데요.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긴 했으나 마블 영화로서는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수치로 현재 추세라면 100만 관객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보고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더 마블스>는 10~12일 47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마블이 지난 15년 간 내놓은 영화 33편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더 마블스> 이전엔 2008년에 나온 <인크레더블 헐크>가 가진 5540만 달러가 최저였지만 올해 나온 마블 영화 중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가
개봉 첫 주말 성적도 1억600만 달러인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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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
킹덤 : 아신전
줄거리
조선을 뒤흔든 좀비 사태, 그 시작에는 아신이 있었다!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
숨은 의미 찾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해석이니 원치 않는 분들은 영화 감상 후 읽어주세요*
조선의 북녘 끝자락, 압록강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한 번호부락.
애매한 위치만큼이나 마을 사람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도 애매하다. 그들은 100년 넘게 조선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조선인에게는 여진족이라 불리고, 여진족에게는 동족을 배신한 무리라고 손가락질당한다. 추성훈이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 불리고, 한국에서는 일본인이라 불린다던.
아신전은 킹덤에서 내내 언급되던 '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끄집어낸다.
타합은 성저야인이 모여 사는 번호부락의 대표자이자 백정이다. 도축을 하는 백정은 천민 계급 중에서도 멸시당하던 계급이었다. 고기를 사러 온 조선인은 타합이 자신들의 짐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대는 물론이고, 아이가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게 한다. 이 짧은 장면에서 번호부락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흙이 묻은 고기를 집어 드는 타합의 손에 피가 흐른다.
그것은 조선인의 것도, 여진족의 것도 아니다.그들은 영원히 조선에 섞일 수 없다. 그리고 섞이지 못함은 죄가 된다. 어떻게든 곁다리를 걸쳐보려 해도, 공물을 바치고 온갖 충성을 다해도 타합에게는 관직 하나 내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조선인과 여진족 사이에 고립되어 존재를 부정당한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타합은 결국 파저위에게 ‘피를 배신한 밀정’이라고 낙인찍혀 죽임 당하고 번호부락은 몰락한다. 어떻게든 조선 땅에 머물고 조선인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시대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홀로 남은 아신은 ‘독한 년’ 소리를 들어가며 그저 묵묵히 살아남는다.
아신은 아버지와 달리 ‘파저위에 대한 복수’를 목표로 설정한다.
조선에 속하고 인정받는 일 따위는 그녀에게 관심 밖의 일이다. 그저 복수 외에 그녀는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예를 자처해 아무 대가 없이 궂은 일을 해도, 사람들에게 험한 꼴을 당해도 저항 한 번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에게 ‘사람 대우’ 받기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타합이 첫 장면에서 돼지를 썰던 것, 아신이 돼지우리를 거처 삼아 자던 점을 생각하면 고통이 대를 이어 계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번호 부락은 끝끝내, 죽어서까지도 애도조차 받지 못하는 ‘오랑캐 마을’ 일뿐이다. 추파진에게 타합과 아신의 희생은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사실 아신은 계속 괴물이었다.
가족과 마을을 잃은 날, 아신의 마음에는 분노의 싹이 텄다. 저 대신 복수를 해달라고 민치록을 찾아갔으나, 민치록 역시 자신이 복수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신은 꾹꾹 눌러 담아 참아오던 분노를 터트린다. 복수를 시작한다.
“조선땅과 여진 땅에 살아있는 모든 걸 죽여버리면, 나도 당신들 곁으로 갈 거야.”
괴물로 변한 번호부락 사람들은 아신의 내면을 그대로 표출한다.
추파진 군사들이 아신이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모조리 묻고 왔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실은 아신이 생사초를 먹였다가 모두 괴물로 변한 상태였다. 그 사실이 마지막에야 드러나는 이유도 아신의 심경변화에 있다. 그녀는 산짐승을 잡아다 주며 그들을 보살펴왔다. 하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사람의 피와 살이었다.
마찬가지로 아신은 조선이 파저위에게 복수를 해줄 것이란 헛된 희망과 믿음으로 자기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그저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 나름대로는 분노가 튀어나오지 않게 참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녀가 원했던 것은 번호부락을 몰락에 빠트린 모두의 피와 살이었던 것.
음식을 나눠먹고 웃음이 가득하던 번호부락은 더 이상 없다. 아신 역시 안다. 행복했던 그 시절은 그저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뜨거운 분노와 차가운 복수심뿐이다.
아신은 생사초를 먹지 않았으나, 결국 피와 살을 취하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번호부락의 ‘번호’는 ‘울타리 번’, ‘오랑캐 호’ 자를 쓴다. 이를 의역하면 ‘북방 경계에 울타리를 이루고 사는 오랑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번호부락이라는 단어조차 그들을 오랑캐로 낙인찍고, 그들을 울타리에 가둬 북방에 고립시키며, 조선인과의 선을 긋는 말이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아신을 괴물로 만든 것은 과연 누구냐고.
진짜 울타리에 갇혀있던 것은 누구였느냐고.
피의 역사, 그 시작
감상평
이창과 서비를 만난 아신을 기대했는데,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킹덤 프리퀄이라니 재미없을 수가 없다. 이쯤 되니 작가 양반 진짜… 이 모든 걸 설계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빨리 킹덤 3도 내놔요.
아, 올 때 시그널 2도 같이…어쨌든 킹덤은 ‘피’라는 단어가 늘 관통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
이창과 아신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도 그렇다. 쉽게 비유하자면 해원 조 씨가 슬리데린 같이 적법한 혈통, 순수 혈통을 중요시하는 편이라면 이창은 그리핀도르 타입이랄까.
마땅히 권력을 잡아야 할 핏줄이 없다고 믿는 이창이니만큼, 마땅히 죽어야 하는 핏줄 또한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창이 아신과 대립하더라도, 분명히 아신을 괴물로 여기지만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선다.
아신전은 피의 역사, 그 시작을 향해 간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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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을 살아가는 누구나에게 위로를 전하는 영화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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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을 아예 모른 상태에서 오로지 포스터만 보고 저 영화를 봐야한다고 생각한 작품 <소울>. 디즈니와 픽사가 다시 만났다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보러간 선택은 옳았다. 귀여운 건 역시나 옳았고, 디즈니와 픽사도 역시나 옳았고, 애니메이션도 완벽히 옳았다.
영화 <소울> 시놉시스
나는 어떻게 나로 태어나게 되었을까? 지구에 오기 전 영혼들이 머무는 태어나기 전 세상이 있다면?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게 된 그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탄생 전 영혼들이 멘토와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면 지구 통행증을 발급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 조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시니컬한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멘토되길 포기한 영혼 ‘22’. 꿈의 무대에 서려면 ‘22’의 지구 통행증이 필요한 ‘조’. 그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을까?*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캐릭터가 마냥 착하지 않아서 좋았다
영화 소울에서 가장 좋게 생각했던 부분은 주인공 ‘조’가 마냥 착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착한사람이 주인공이고 나쁜사람은 악당으로 묘사되는 이분법 구도를 벗어나서 조가 자신의 인생을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열심히 꿈을 쫓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어찌보면 너무나도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영혼 22가 조의 몸에 들어가면서 보여준다.
단골 미용실 가게의 주인장과 대화를 하며 그제서야 미용실 가게의 주인의 꿈이 미용업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엄마의 진심을 알게되며, 자신의 제자의 엇나간 마음 역시 되돌려 놓는다.
이처럼 기존의 ‘조’의 인생이 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준대로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너무 자신의 삶만 쫓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는 관심이 없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조는 앞으로 같이, 공유하는 삶의 모습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맹목적인 목표와 목표 달성 후에 찾아오는 허탈감
한끗차이란 이런 것일까? 사람들이 무엇엔가 열중해서 마치 다른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와 그 느낌을 받기 위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정말 한끗차이라는 점을 영화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었다. 황홀경과 집착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하나는 아름답게 하늘에서 다른 하나는 땅만 보며 같은 단어만 외치는 괴물로 표현되고 있었다.
살다보면 어느샌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 자체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과 교훈은 잊어버린 채 오로지 맹목적인 목표의 추구는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 마련이다. 그러한 모습을 영화 속에서는 무언가에 집중하며 황홀경에 있는 사람과 대조시키면서 맹목적인 목표의 추구는 옳지 않다는 것,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그 목표가 맹목적으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이뤄냈을 때 찾아오는 허탈감 역시 엿볼 수 있었다. 목표를 이뤄낸 순간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할 수 있겠지만 달성하고나면 솔직히 허탈감이 밀려온다. 만족감도 있지만 순간적인 이 기분을 위해서 내가 이토록 고생을 했어야 했나? 하는 감정처럼 말이다. 그리고 목표를 이룬다고 해서 현실은 바로 바뀌지 않는다.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이거 하나만 하면 뭐든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이루기 전의 환상 속 자신의 모습일 뿐 현실은 과거와 별반 다른 것은 없다. 이런 기분을 토로하는 조에게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는 ‘내일도 여기로 출근하는거지’라는 대사를 날린다.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해서 바로 무언가가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그리고 현실은 묵묵히 살아가는 것임을 알려주는 대사였다.
현재의 흐름에 맞는 주제
21세기를 나나태는 대표적인 단어를 선택하라 한다면 ‘소확행’을 꼽을 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다. 이 단어 탄생의 이면에는 과거처럼 큰 성과를 내기 힘든 이 사회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람들은 포기를 강요당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반 중산층이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의 힘으로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구할 수 없듯이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포기를 강요당하면서 행복의 초점을 무언가 이뤄내는 큰 성가, 성취 중심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존재에 기쁨을 느끼고, 사람들과 교감하는 감정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흐름은 영화 소울의 주제가 너무나도 일맥상통했다. 치열한 경쟁 사회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성공을 해야 인생을 잘 산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눈에, 여유롭게 마시는 차 한 잔에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주제를 조가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치며 어떠한 대사 없이 오브제들과 감미로운 선율만으로 전해준다. 이 때 필자는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 장면에서 눈물을 엄청 많이 쏟았는데 이성적으로 완벽하게 주제가 정리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감정이 먼저 반응해서 이렇게 이유도 모른채 눈물이 왈칵 쏟아진 것 처음이었다. 이후에 조가 내레이션을 통해 한 번 정리를 해주고 나서야 이성적으로 이해가 됐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된 다음에야 감정이 발동하고 눈물이 나던 필자였는데 그 장면 속 오브제와 피아노 선율의 조합을 아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소울은 인생의 초점이 what이 아니라 how에 맞춰져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내 삶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만들고 현재의 선택에 위로를 전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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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명작] 권력의 뒷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 명작
바이스
감독 아담 맥케이
출연 크리스찬 베일
네이버 평점 : 8.50 / 10 (네티즌 평점 기준 참여인원 300명)
왓챠 평점 : 3.7 / 5 (참여인원 4175명)
개인 평점 : ★★★★★ (5 / 5)
바이스 리뷰 3줄 요약
1. 미국 정치에 관한 블랙 코미디 영화
2. 아카데미 8개 골든글로브 6개 노미네이션으로 작품성, 연기력 등 모두 검증된 영화
3. 쿠키 영상 있음
<바이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바이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마지막은 만우절 포스터
Vice
1. 악덕, 부도덕, 악(opp. virtue); 비행, 부패, 타락 행위; 악습, 악벽(惡癖)
2.(조직·제도·문체·성격상의) 결함, 약점
Vice-president
1. 부통령
네이버 영어사전Vice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제목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미국 부통령 딕 체니의 이야기라는 것
두 번째는 부도덕적이고 부패한 정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후 부시 대통령으로 축약) 집권 당시 부통령으로 활동했던 딕 체니라는 인물에 대한 영화이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미국 정치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딕 체니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봤었다.
이때까진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
표면적으로는 딕 체니의 생애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사실 딕 체니의 미국 정치 대 환장 파티를 보는 느낌이다.
본격적으로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감독과 배우들을 살펴보면
감독은 아담 맥케이로 전작 빅 쇼트에서도 미국을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역시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전적이 있다.
보통 정치, 경제 관련 내용은 기반 지식이 없으면 어렵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담 맥케이 감독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으로 영화 속에 내레이션을 첨가하여 영화 진행 도중에 어려운 용어나 관련 지식들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바이스에서도 역시 완전히 같은 방식의 연출이었으며 크리스찬 베일, 에이미 아담스, 스티브 카렐은 전작 빅 쇼트에서도 출연했던 배우들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외에도 쓰리 빌보드에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셈 록웰이 합류하며 짱짱한 배우 진을 자랑했는데
사실 빅 쇼트 때 라이언 고슬링에 브래드 피트까지 출연했던걸 생각하면 배우 섭외력이 미쳐 날뛰는 감독이 아닐까 생각된다.
화려한 배우진과 검증된 감독 외에 바이스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점은 바로 아카데미 분장상 수상이다.
물론 훌륭한 배우들이 소름 돋는 연기력을 뽐내고 있는 것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지만
현실과 구분이 안될 정도의 분장은 이 영화가 실화라는 점을 강하게 인지시킨다. 영화 중간중간에 실제 연설 장면들을 넣어두었는데 몇몇 장면은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아래 주요 출연 배우들의 사진과 실제 인물사진을 직접 보고 비교해보면 얼마나 대단했는지 한눈에 보인다.
특히 부시 대통령 역할의 샘 록웰은 부시 대통령이 직접 와서 찍었다고 했어도 믿었을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여줬다.
딕 체니 / 크리스찬 베일 [출처: 구글 이미지]
조지 W. 부시 / 샘 록웰 [출처: 구글 이미지]
린 체니 / 에이미 아담스 [출처: 구글 이미지] 도널드 럼즈펠드 / 스티브 카렐 [출처: 구글 이미지]
그 외 배우들과 실제 모습 / 부시 행정부 주요 인사 [출처: 익스트림 무비]
그 외 배우들과 실제 모습 / 딕 체니의 두 딸 [출처: 익스트림 무비]
할리우드 대표 고무줄 몸매로 유명한 크리스찬 베일은 역시 이번에도 큰 체중 변화로 완벽히 딕 체니가 될 수 있었는데 이제 살을 찌우고 삭발하는 건 기본 세팅인가 보다.
이전에도 아메리칸 허슬에서 20KG을 찌우고 탈모 있는 졸부 역할을 하더니 이 형은 맛 들인 게 분명하다.
바이스 촬영 직후 모습 / 최근 골든 글로브 시상식 모습 [출처: 구글 이미지]
심지어 이번 촬영 때는 5번의 심장마비를 겪은 딕 체니를 연기하기 위해 심장마비에 대해서 분석해두었다가 촬영 도중 감독인 아담 맥케이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는데
감독이 실제로 운동 중에 이상한 증상을 느끼고 크리스찬 베일의 설명이 떠올라 빠르게 병원으로 가는 덕에 위험을 피했다고 하니 그의 치밀한 연기 준비가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건지 무서울 지경이다...
이렇듯 맛깔난 연출과 싱크로율 100%의 분장, 혼을 갈아 넣은 듯한 연기로 완성된 바이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리뷰를 시작해본다.
※스포 주의※
(약 스포) 바이스 메인 예고편
(이후 이어지는 내용에는 무자비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작성자의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이스는 크게 2개의 챕터로 나뉜다. 딕 체니의 생애를 다룬 영화 전반부와 부통령직을 제안받으면서 시작되는 후반부이다.
첫 번째 챕터를 보고 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는데 이후 후반부 스토리는 거대한 쿠키 영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영화관 포스터에는 바이스에 2개의 쿠키 영상이 있다고 적어두었더라.
후반부까지 모두 끝난 뒤 나오는 진짜 쿠키 영상 또한 영화의 핵심적인 내용을 품고 있어서 다 보고 나면 매우 알차게 관람한 느낌이 든다.
사실 부통령이 되기 이전의 딕 체니는 꽤나 괜찮은 인물처럼 비친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전형적인 입지전적인 인물이랄까.
그는 고등학교 시절 잘 만난 여자 친구를 따라 예일대에 입학했으나 방탕한 생활로 두 번의 낙제와 함께 학교를 그만둔다.
이후 전봇대에 올라타 일하며 하루 벌고 하루 사는 엉망진창인 딕 체니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만나 결혼까지 이어진 아내 린 체니가 그런 딕 체니를 바꿔놓았다.
사실 딕 체니가 처음에 정치에 입문해서 권력과 명예를 얻은 것은 대부분 린 체니에게 권력자의 아내라는 권위를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딕 체니 또한 자신이 부통령까지 올라가는 데에 있어 린 체니의 역할이 컸음을 인정했다.
그는 이렇듯 아내의 인정과 가족의 안정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쏟는 사람이었다. 일례로 공화당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인 둘째 딸 메리 체니를 위해 동성 결혼에 대한 찬성 입장을 펼쳤으며 이후 차기 대권 주자로 나오려다 포기하게 되는 배경에도 메리 체니에게 쏟아질 질타를 걱정해서 스스로 물러나는 자세를 취한다.
이렇듯 성공한 삶과 행복한 가정을 모두 이룬 딕 체니는 글로벌 석유회사 홀리 버튼의 CEO로서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그를 러닝메이트로 영입하며 무지막지한 권력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예고편에서는 편하게 갈비나 뜯으면서 물어보던데 부시도 이때까진 몰랐겠지...)
이후 부통령으로서 딕 체니는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위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펼치는 그야말로 강인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그가 이렇듯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전면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진짜 권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인물이라 생각된다.
그는 부시 위에 있었지만 부시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했으며 모든 권력을 부시와 함께 나누었다.
다만 대통령의 주변 인물을 모두 자신의 인사로 채움으로써 부시를 전면에 내세우고 본인의 권력을 맘껏 휘두른 것으로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라 마케팅 전문가를 기용해 여론에 대한 반응을 조사함으로써 언론은 이렇게 다루는 것이라는 언론의 마술사 급 행보를 보인다.
이런 딕 체니의 야망이 터져나가는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9.11 테러가 터지던 순간인데...
9.11 테러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선과 의견이 있겠지만 딕 체니는 거기서 외부의 적을 이용한 미국 내부 여론의 결집과 비상시 행정부의 강한 권력 강화를 보았나 보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딕 체니의 행보를 보면 아마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이라는 미국의 힘을 그것도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이용해 최대한 있는 힘껏 휘두를 때 어디까지 부수고 빼앗을 수 있는지 궁금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부통령이라지만 아무도 안 믿는다. 아마 부자 대통령이라 부통령인가 보다)
실제로 막강하게 휘둘러댄 힘은 강대국인 미국이 휘청거릴 정도였지만 끝끝내 버텨낸 것을 보고 역시 강대국임을 입증했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이라크전과 사담 후세인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 딕 체니 눈에 가장 만만하고 맛있어 보이던 나라가 이라크였나 보더라.
9.11 테러로 광분한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이 있던 아프가니스탄과 전쟁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는 보복 전쟁이었다.
다만 아프간 옆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이라는 독재자가 세상모르고 독재 정치에 정신이 팔려서 많은 헛짓거리를 하는 중이었는데
이에 딕 체니는 이라크까지 오사마 빈 라덴과 엮어서 악의 축으로 지정해버린다.
그때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담 후세인은 UN까지 받아들이며 미국이 주장하던 대량 살상 무기가 없음을 피력했지만
전쟁은 원래 일으키는 게 더 쉽다고 UN 승인 없이 미국은 이라크 침공에 나선다.
이 사건이 이후 수많은 이라크 파병 미군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딕 체니를 권력의 정점에서 끌어내렸으며 새로운 테러단체인 ISIS 탄생까지 영향을 끼치는 무지막지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생각해보면 악의 축 악의 축 하더니 진정한 악의 축 IS를 만들어내셨다.....
이런 국제적인 사건들 외에도 딕 체니 행정부는 다양한 법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재해석해서 상식 밖의 행동들을 감행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마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고르는듯한 장면으로 풍자한다.
그들은 재해석을 통해 써먹기 좋은 다양한 법들을 입맛대로 모두 주문하고 맛보며 권력을 즐긴다.
이를 통해 모든 미국인의 개인 정보와 이메일을 수집하고 위험인물들은 잡아서 무자비하게 고문하였고, 심지어 무고한 시민들도 테러리스트로 의심하고 잡아서 고문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사건에 관해서 영화 마지막에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딕 체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조금의 후회도 죄책감도 없었다.
그는 테러로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고 무고한 사람 한 명을 희생시켜서 그런 테러를 막을 수 있다면 자신을 몇 번이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의 말을 한다.
이를 보고 딕 체니는 철저하게 강경한 공화당의 대변인이었고 그러한 사람들의 최정점이면서 최전방에 있었던 인물이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든 생각은 정치인은 좋은 정치인 나쁜 정치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각자 어떤 무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딕 체니가 정말 뛰어난 정치인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펼쳤던 다양한 정책들의 여파가 아직까지 공화당 내에 남아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는 철저하게 남을 위한 힘을 최선을 다해 휘두르던 인물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로써 영화 바이스의 리뷰를 끝마치며 한 작품에서 이렇게 연기력, 사회문제, 재미를 모두 만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기회가 된다면 꼭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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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강제당하는 노인들
노인이 주인공인 두 영화가 같은 날(2월 7일) 개봉했다. 한국 영화 〈소풍〉과 일본 영화 〈플랜 75〉. 플롯, 캐릭터, 감성, 질감 등 많은 것이 다른 영화지만 두 영화에는 공통점도 있다. 우리 사회가 ‘노인’이라는 기표의 내용을 어떻게 채우고 있는가? 노인은 그 앞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두 영화가 공유하는 질문이다. 지금껏 살아온 삶의 맥락이 소거된 채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는 자괴감만 남은 현실. 이것이 과연 노인에 대한 온당한 대우일까? 두 영화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는지를 따라가보자.
먼저 〈소풍〉이다. 여성 노인 은심의 집에 갑자기 아들네 가족이 들이닥친다. 사업상 어려움을 겪는 아들은 은심의 보험이나 집을 처분해 목돈을 마련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파킨슨병이 시작되어 몸에 불편을 느끼면서도 아들이 이때다 싶어 요양원 이야기부터 꺼낼까 봐 이를 전하지 않은 은심은 때마침 찾아온 고향 친구 금순을 따라 6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서는 금순과 우정을 더 단단히 다지고, 고향을 야반도주하듯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마주하며, 자신을 짝사랑했던 태호와 재회해 지금껏 누리지 못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한다. 그러나 행복 속으로 불쑥불쑥 끼어드는 노환과 질병은 이들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일깨운다. 은심과 금순은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동안 자신이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데 공감하고 그 일을 매듭 지은 후 소풍을 떠난다.
그들이 마무리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기다. 영화는 계속 부모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자식들을 부정적으로 재현한다. 노인들이 기댈 데 없이 홀로 건강을 돌봐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두 노인은 결국에는 자식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넘겨준다. 사업이 망해 고꾸라지는 아들(은심), 평생 한 번이라도 가족과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은 장애인 아들(금순)은 두 노인이 자식들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간 소풍의 장소. 바다 옆, 아름답지만 날카롭게 깎인 절벽에서 은심과 금순은 손을 잡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의 발걸음이 자식에 대한 ‘책무’를 다했다는 뿌듯함을 만끽하기 위함인지,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친구와 함께 세상을 등지겠다는 뜻인지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영화는 마무리된다. 자녀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노환과 질병이라는 자기 문제에서는 자식에게도, 국가에서도 받아낼 것이 없다는 듯 홀가분한 얼굴이다. 그러나 노인이 가족과 사회 모두에게 ‘부담’이기만 한 사회에서 이들의 삶이 ‘소풍’일 수 있을까? 노인에게 행복한 삶이 가능함을, 그들의 고난이 사적인 영역에 방치되었음을 보여준 영화는 두 노인의 강요된 퇴장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자신이 제기한 비판적 함의를 재빠르게 회수한다. 모든 걸 퍼주고도 ‘부담’이 되길 거부하는 노인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함으로써 말이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더한 〈플랜 75〉에서도 노인이 사회의 ‘부담’인 건 마찬가지다. 영화는 울분에 찬 청년이 노인을 살해하는 범죄 현장과 범인이 자살하며 스스로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인 돌봄에 필요한 ‘비용’에 청년 세대가 극단적 반감을 가지는 것은 미래의 일도, 일본만의 일도 아니라는 점에서 섬뜩한 오프닝이다. 사회 갈등이 증폭되자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다. 정책 이름은 ‘플랜 75’. 75세 이상 노인 중 신청자에 한해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내용이다. 기묘한 정책이다. 정책은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플랜 75는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을 사적으로 책임지라는 일에 공적 권력을 동원한다.
78살의 미치는 고민이 깊다. 혼자 사는 그는 호텔에서 청소하며 생계를 이어왔는데 최근 고령의 노동자가 작업 중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슷한 일이 재발할까 두려운 호텔에 의해 해고당한다. 고령이라는 이유로 재취업은 쉽지 않다. 게다가 미치의 집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러던 와중 정부는 플랜 75가 큰 정책적 효과를 거두었다는 데 고무되어 신청자 연령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한다. 결국 미치는 플랜 75를 신청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풍〉과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자식에게 모든 걸 넘겨주고 아무런 공적 부조를 받지 못하는 삶을 ‘소풍’으로 포장하는 일은 자발적인가? 플랜 75, 즉 죽음을 선택하는 미치의 결정은 자발적인가?
두 영화에서 세 노인이 내린 선택은 강제된 자율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데는 비용이 들고, 그건 우리 모두에게 부담이야’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노인’으로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려면 내려야만 하는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왜 국가가 노인을 방치하냐고 항의하는 자는 미래 세대를 걱정하지 않는 ‘이기적’ 노인이 되도록 이미 담론 지형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존엄’하고 ‘품위’ 있는 마무리는 강제된 역할 기대 혹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소풍〉과는 달리 〈플랜 75〉에서는 미치가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철회하고 삶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 장면의 배경을 은은하게 빛나는 햇빛으로 하여 노인을 ‘비용’, ‘부담’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사회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같은 주제를 다루어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는 두 영화는 노인이 ‘비용’이자 ‘부담’인 시대의 분위기를 공통적으로 포착해낸다. 〈플랜 75〉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실제로 도래하기 전에 〈소풍〉이 그려내는 현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풀어낼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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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택하더라도, 청춘
청춘(靑春)
1.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시절. 또는, 그 시절.
2. 왕성한 정열과 힘찬 기세와 기백으로 나아가는 상태를 비겨 이르는 말.
(출처: Oxford Languages)
'청춘'을 다룬 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껴안고 있는 두 여인과 그들을 지켜보는 한 사람의 실루엣, 영화 감상 전부터 호기심과 긴장감이 솟구쳤습니다. 청춘을 그리는 대만 영화 특유의 방식을 사랑하기에 이 영화를 거리낌 없이 선택했습니다. 제58회 금마장 영화제 공식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청춘시련>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11월 22일(화)에 진행된 <청춘시련>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청춘시련>은 2022년 12월 1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청춘시련
Terrorizers
'샤오장'과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유팡'에게 그녀와 같은 집에 살던 '밍량'이 칼을 휘두릅니다. '샤오장'은 간신히 그를 막아섰죠. '밍량'은 옛 애인이라서 그랬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청춘시련>은 한 도시에 사는 '유팡', '밍량', '샤오장', 그리고 '모니카'의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젊음은 무서울 것이 없고 사랑한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이 포스터 속 카피는 <청춘시련> 속 젊은 청춘들이 죄와 결부될 만큼의 위험한 사랑을 하고 있음을 넌지시 시사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의 인물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문제들 한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밍량'은 검으로 사람을 베는 게임에 심취해있고(게임 중독), '모니카'는 과거에 촬영한 포르노 영상물을 동의 없이 배포한 전 애인으로 인해 배우 인생의 발목이 잡혔습니다(불법 유포). 이 와중에 '모니카'의 포르노 영상물을 보고 사랑에 빠진 '밍량'은 그녀의 뒤를 쫓고(스토킹), 외로움과 공허함을 겪던 '유팡'과 '모니카'는 서로를 보듬어주다가 관계를 갖습니다(성소수자).
청춘들은 본디 종잡을 수 없습니다. '청춘'이라는 이름을 제목에 달고 나온 영화라서 그런지, 이 영화의 이야기도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갑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쉽게 알아낼 수 없는 것이 청춘이듯이, 이 영화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지켜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청춘들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택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들이 겪는 '청춘시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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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젊음은 무서울 것이 없고 사랑한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카피와 '청춘시련'이라는 제목으로 포장하기에 '밍량'의 행동은 도를 지나칩니다. 망상에 빠진 한 남자가 어떻게 범죄자가 되는지를 그리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우연히 포르노 영상 속 배우 '모니카'를 길거리에서 만난 '밍량'은 그녀에게 푹 빠진다. 귀가하는 '모니카'의 뒤를 쫓아 몇 층에 거주하는지 알아내고, 키를 복제해 몰래 집에 들어가 자는 '모니카'를 지켜본다. '모니카'와 사랑에 빠졌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모니카'를 힘들게 하는 전 남자 친구를 대신 폭행해주기도 한다.
여느 때처럼 '모니카'의 집에 숨어든 어느 날,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유팡'을 목격한다. 외국으로 떠나는 '모니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겁내지 말아요, 내가 지켜줄게요. 시집와요. 결혼해요."라는 헛소리를 시전하다가 경비원에게 붙잡힌다. 더는 '모니카'와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된 그는 몰래 촬영한 '모니카'와 '유팡'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고, '유팡'에게 칼부림한다.
영화의 원제가 'Terrorizers(공포감을 조성하는 사람)'라는 점에서 볼 때, 이 영화가 주목하려는 인물이 바로 '밍량'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묘사한 것처럼 영화 중후반부를 장악하는 '밍량'의 이야기는 이처럼 거의 스토킹 범죄자의 범행 진술서와 같은 수준입니다. 피해자의 극복 과정은 거의 보여주지 않고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만을 뒤쫓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르죠. 범죄자 '밍량'의 서사를 풀어내는 데 사용한 시간과 열정을 다른 인물들에게 할애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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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청춘이여! 할 말이 없을 때 다들 이렇게 말하지."
극 중에서 연극에 도전하는 '모니카'의 대사를 빌어 이 영화의 감상 후기를 요약하고 싶습니다. 다들 할 말이 없을 때면 청춘을 들먹이곤 하지만, 청춘이라는 말로 포장하기 어려운 것도 있는 법입니다.
Summary
떠났다, 모두가.
분명 날 사랑한다고 했는데도.
어느 대낮, ‘밍량’은 데이트 중인 ‘유팡’에게 칼을 휘두르고 도주한다.
그는 자신이 ‘유팡’의 전 애인이라고 주장하고, 사건에 휘말린 네 명의 청춘이 서로를 마주한다.
도시를 충격에 빠트린 최악의 사랑
난, 떠나지 않는 사랑이 하고 싶어
Cast
감독: 호위딩
출연: 린 바이 홍, 이목, 지크린, 진정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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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으로 물드는 사랑, 영화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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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Roma, 2018)
제작 : 멕시코, 드라마 │ 감독 : 알폰소 쿠아론
출연 : 얄리차 아파리시오(클레오), 마리나 데 타비라(소피아)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35분뛰어난 색감 구현이 가능한 컬러영화 시대에 흑백영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흑백영화인 <로마>를 보았을 때, 색을 볼 수 없으니 왠지 답답할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차례도 답답함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흑백판으로 다시 개봉된 바 있고, 이준익 감독의 <동주>와 <자산어보>는 아예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이에 대해 두 감독은 비슷한 이야길 한다. 봉준호 감독은 “색이 없으면 텍스쳐에 더 집중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이준익 감독 역시 “현란한 컬러를 배제하면 물체나 인물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형태가 더욱 뚜렷하게 전달된다”라고 말한다. <로마> 역시 그러했다. 이 놀라운 흑백영화가 다시 컬러판으로 재상영한다고 하면 이제는 왠지 배신감이 들 것 같을 정도다.
<로마>는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의 수도, 그 로마가 아니다.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동명의 작은 지역을 가리킨다. 그곳은 멕시코 출신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자란 곳으로, 영화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의 멕시코, 즉 알폰소 쿠아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자전적 이야기이다.
감독의 어린 시절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자신을 낳고 기른 엄마 ‘소피아’. 그리고 엄마 못지않게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폈던 여인 ‘클레오’. 중산층에서 태어난 그의 집에는 입주 가정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극 중의 ‘클레오’라는 멕시코 여성이다.
가정부 클레오가 집을 이리저리 치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네 명의 아이들과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분명히 그들이 고용한 고용인이지만 어쩐지 가족처럼 친밀해 보이는 클레오까지. 화목해 보이는 이 중산층이 그려질 때만 해도 영화는 따스하기만 했다.
어느 날 아빠는 해외로 출장을 떠나게 되는데, 엄마 소피아가 떠나는 아빠의 등을 움켜잡고 울먹이는 게 왠지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길로 아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새 연인이 생겼고, 그래서 다시는 이 가족을 보러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 관객들은 알 수 있었는데, 천진한 아이들은 미처 이 상황을 모른다. 그 모습이 너무도 마음 아팠다.
그 무렵 가정부 클레오는 만나던 남자의 아이를 갖는다. 그러나 비겁한 남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관 앞에 앉아 도망간 남자를 기다리는 클레오의 모습은 얼마 전 소피아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마찬가지로 그 남자도 돌아올 일은 없겠지. 온기가 맴돌던 집안에 남겨진 두 명의 여자.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때는 1970년대다. 가장이던 남편이 떠난 후 네 명의 아이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그 시절 여성의 삶은 너무도 막막하다. 내 뱃속의 애를 부인하고 내뺀 그놈 앞에 유전자 검사결과지를 뿌리며 인생을 조져주겠다는 용기도 쉬이 내기 힘들던 시절이다. 소피아는 양육비도 주지 않는 남편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구하고, 클레오는 비록 아빠는 없지만 뱃속의 아이를 낳을 생각으로 지낸다. 두 여성의 삶이 그 암흑 같던 시절에 얼마나 버거웠을지는 감히 헤아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행으로, 그 돌풍 속에서도 아이들만큼은 아버지의 부재를 크게 실감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이유는 당연히도,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는 두 여성의 눈부신 애정이 있었기 때문. 관객들은 알고 있었다. 그녀들만큼은 이 아이들, 이 집을 떠나지 않을 거란 걸. ‘부모와 아이들’로 구성되어있던 한 가족은, 그렇게 점차 ‘두 엄마(소피아와 클레오)와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가족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고용주-고용인 관계였던 소피아와 클레오의 관계도 여성 간의 연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자신의 물건을 챙기러 집에 들르기로 한 날, 가족은 여행을 떠난다. 물론 여기서의 가족은 엄마 소피아와 가정부 클레오 그리고 아이들이다. 제법 단단해진 엄마 소피아는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이제 아빠는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아이들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말. “아빠가 더는 우리를 안 사랑하세요?” 아니, 많이 사랑하시지. “그럼 언제 볼 수 있어요?” 그건 엄마도 몰라.
경제적 지원마저 끊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야 했을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당시 쿠아론 감독은 고작 열 살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왜 돌아오지 않는지, 넷 씩이나 자식을 낳아놓고도 왜 돈을 보내주지 못하는지, 아이들도 소피아도 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비정한 남자를 대신해 그 옆에 앉아 아이들의 밥을 먹이는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클레오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이들은 다소 파도가 거세 보이는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위험하니 깊은 곳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은 영 듣지 않으며. 결국 아이들은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지고, 이를 지켜보던 클레오가 놀라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간다. (클레오는 이 여행을 오기 전, 멕시코 독재정부를 타도하는 시위대가 정부의 총격에 맞아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 유산을 했다.) 그녀는, 죽을 뻔한 아이를 건져내고는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때 달려온 엄마 소피아는 그녀와 아이들을 부둥켜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클레오, 우린 너를 사랑한단다. 정말로 사랑한단다.” 유산한 클레오의 곁에 있던 것도, 그 남자가 아닌 고용주 소피아와 그 가족들이었다.
그야말로 눈물이 주룩주룩.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던 이 두 여인의 남자들은 어디 있는가. 바닷가에서 두 여인과 아이들이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들은 여지없는 분명한 가족이었다.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이런 것일까. 이 영화에는 색감뿐 아니라 음악도 없는데, 영화의 매력적인 두 요소가 빠졌다는 게 정말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이라 표현하긴 진부하고, 가족애라 표현하기엔 편협한 어떤 커다란 감정이, 오로지 이 영화를 채우는 전부다. 하지만 모자람을 느낄 겨를 따윈 없다는 거.
새소리로 지저귀며 끝나는 이 영화의 엔딩을 통해, 쿠아론 감독이 두 여인의 사랑 속에 얼마나 따뜻한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가족은 다시 그들의 일상을 영위해나간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바다에서 빠져 죽을 뻔한 이야기를 전하고, 클레오는 유산 후의 실어증을 극복하며, 소피아는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알폰소 쿠아론이라는 명 감독을 선물해 준, 감독의 두 여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녀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알폰소 쿠아론이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들은 과연 엄마이자 아빠였고, 그 사랑은 가족애라는 개념을 넘어선 연대정신이었다. 쿠아론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묵직하고 다정한 시선은, 자신을 키워낸 여인들의 그 따스한 품에서 피어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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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웅문> 예고편
무림의 전설이 시작된다!
주왕이 남긴 현무령에 대한 소문이 강호를 떠돌며
무림의 사대 세가는 암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그 중 청룡문과 남궁세가는 현무령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며
강호에는 피바람이 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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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스펙터클 예고편
이렇게 멋있는건 절대 못참Z~ 좋아할 수 밖에? 단합력 찢.어.버.린 #팀덤블도어 스펙터클한 순간들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