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31 11:03:08
겨울 추위에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에는 뼈가 시리다.
달콤 씁쓸, 현실적인 로맨스 영화_국내 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거리에 만개한 벚꽃들 덕분에 마침내 봄이 왔음을 체감하는 요즘.
예쁘게 핀 꽃을 바라보면 마음이 붕 뜨다가도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는데요,
부쩍 변덕스러워진 날씨지만 여러분 모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랄게요.
그런데 혹시 '겨울 추위에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에는 뼈가 시리다'라는 속담을 아시나요?
봄에 찾아오는 꽃샘 추위도 겨울에 찾아오는 추위만큼이나 강력하단 뜻인데요,
씨네랩도 오늘은 마냥 따뜻하고 설레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국내 로맨스 영화를 추천해 드리려고 해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봄날은 간다>부터
아릿한 첫사랑 이야기의 정석과도 같은 <건축학개론>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8편의 로맨스 영화를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연애의 온도(2013)
Very Ordinary Couple

감독: 노덕
출연: 이민기, 김민희, 최무성, 라미란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12분
애인과의 반복되는 싸움에 지쳐봤다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대사들의 향연.
3년의 비밀연애 끝네 헤어진 직장동료 '동희'와 '영'. 서로의 물건을 부숴 착불로 보내고, 커플 요금을 해지하기 전 인터넷 쇼핑으로 됴금 폭탄을 던지고. 심지어는 서로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는 말에 SNS 탐색부터 미행까지! 헤어지자고 말한 후에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사랑할 때보다 더 뜨거워진 두사람. 연애가 원래 이런 건가요?

너 그거 알아?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그중에서 다시 잘 되는 사람들은 3%밖에 안된대.
나머지 97%는 다시 헤어지는 거야,
처음에 헤어졌던 거랑 똑같은 이유로.

헤어지자고 네가 하면 되지, 왜 나한테 시키는데?
야, 넌 뭐 변한 줄 알아? 너야말로 그대로야.
나 만나서 힘들고 지친다, 너 혼자 애쓴다,
너 지금 옛날에 하던 그 짓 똑같이 하고 있잖아.
너만 숨 막히고 피 말라?
나야말로 너랑 있으면 뭘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
나 다시 만난 거 네가 후회하고 있을까봐
나 너랑 있으면 같이...
나 숨도 제대로 못 쉬어.
근데도 결국에 이렇게 너는 네 생각밖에 안 하잖아.
너 서운한 거, 너 힘든 거,
너 혼자 노력하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거.
네 눈에는 너밖에 안 보여? 너만 힘들어?
연애 빠진 로맨스(2021)
Nothing Serious

감독: 정가영
출연: 전종서, 손석구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5분
요즘 애들 자.만.추 는 내가 아는 그 뜻이 아니라고?
일도 연애도 뜻대로 되지 않는 스물아홉 '자영'.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데이팅 어플로 상대를 검색화고, 19금 칼럼을 떠맡아 반강제로 데이팅 어플에 가입한 '우리'와 만난다.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든 두 사람은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에 누구 하나 쉽게 속마음을 터놓지 못하는데...

연애는 방구고,
결혼은 똥이야.
그냥 실컷 방꾸 뀌다가
똥 마려울 때 되면 결혼하는 거지, 뭐.

우리 센 척 작작하자.
여기 안 외로운 사람 있어?
사실 다들 외롭잖아.

야, 근데
우리가 하는 게 연애 아니야?
가장 보통의 연애(2019)
Crazy Romance

감독: 김한결
출연: 김래원, 공효진, 강기영, 정웅인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9분
지긋지긋한 인연들에게 날릴 사이다가 필요하다면,
남친과의 뒤끝 있는 이별 중인 ‘선영’. 새로운 회사로 출근한 첫날, 할 말 못 할 말 쏟아내며 남친과 헤어지던 현장에서 하필이면! 같은 직장의 ‘재훈’을 마주친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일보다 서로의 연애사를 더 잘 알게 된 두 사람. 하지만 미묘한 긴장과 어색함도 잠시,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건 왜 그럴까?

남자랑 여자랑 같니?
- 같지 그럼! 너는 다르다고 배웠니?

나는 그냥 사랑에 환상 같은 게 없어요.
그냥 남잔 많이 만나볼수록 좋다.
그놈이 그놈이다.
몰랐어요?
여자 다 똑같아요, 남자 다 똑같은 것처럼.
그러니까 뭐 그냥 기대할 것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그런거지...
러브픽션(2012)
Love Fiction

감독: 전계수
출연: 하정우, 공효진, 지진희, 유인나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1분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내가 몇 번째야?
완벽한 여인을 찾아 헤매느라 31살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주월'. 그런 그의 앞에 모든 것이 완벽한 여인 '희진'이 나타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괴상한 취미, 남다른 식성, 인정하기 싫은 과거 등 완벽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희진의 단점이 하나둘씩 마음에 거슬리기 시작하는데...

잘못했어. 겨드랑이 털 같은 거 상관없어.
진짜야, 내가 털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는 모자도 털모자만 쓰고, 만두도 털보 만두만 먹고,
성격도 털털하다는 소리를 되게 많이 들어.
우리집 TV도 다 디지털이야.

우린 모두 연애라는 정글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까스로 생존방식을 체득한 원숭이들일 뿐이야.
로맨틱 침팬지 말이야.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My Love, My Bride

감독: 임찬상
출연: 조정석, 신민아, 윤정희, 배성우, 라미란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영민'과 '미영'.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달콤한 신혼생활도 잠시, 사소한 오해와 마찰들이 생기며 결혼의 꿈은 하나 둘씩 깨지기 시작하는데... 신민아와 조정석 주연으로 만든 90년대 레전드 로코영화 리메이크작.

여자한테 첫사랑은 하나가 아니래.
처음 만난 남자가 첫사랑이 아니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 첫사랑이래.

외롭다는 말이었어.
사람이 집에 혼자 있고 그런 게 외로운 게 아니야.
같이 있는데 진짜 외로운 게..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건축학개론(2012)
Architecture 101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첫사랑은 왜 이루어질 수 없다고들 하나
서른다섯살의 건축가 '승민'의 앞에 15년 전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음대생 '서연'이 나타난다. 서연은 승민에게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은 옛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첫사랑이 원래 잘 안되라고 첫사랑이지.
잘되면 그게 첫사랑이니?
마지막 사랑이지.

손목 때리기는 보통 사이에선 하지 않지 않냐?
막 손 잡고 그래야 하는데.

너도 멀리 가 있어.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진 말고.
그 겨울, 나는(2022)
Through My Midwinter

감독: 오성호
출연: 권다함, 권소현, 오지혜, 계영호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사랑이 가장 피곤했던 것 같아
스물아홉 동갑내기 커플 ‘경학’과 ‘혜진’은 내일을 위해 뜨겁게 공부하고, 오늘을 위해 열심히 사랑한다. 하지만 혜진이 먼저 취업을 하게 되자 점점 서로의 내일과 오늘이 변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경학이 엄마의 빚을 떠안으며 공부도 사랑도 위기를 맞게 되는데… 사랑조차 피곤했던 그 겨울,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솔직했을까?

사랑이라는 거,
그거 되게 간사한 감정이야.

나도 힘들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봄날은 간다(2001)
One Fine Spring Day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백성희, 박인환, 신신애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6분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어느 겨울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와 만나게 된다. 녹음 여행을 떠나며 자연스레 가까워진 두 사람은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지만 봄을 지나 여름이 찾아오자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은 변하지 않아.
단지 사람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지.
오늘 추천드릴 영화는 여기까지 인데요, 어떠셨나요?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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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도 면허처럼, 드라이빙 스쿨.
이태경 배우님을 비롯한
여러 배우님들의 열연으로 더 빛났던
단편영화를 소개합니다.
삶도 면허도 뭔가 금방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을 잘 표현한 영화인데요.
바로 드라이빙 스쿨 입니다.
적절한 거리와 너무 붙잡지 않아야 잘 나아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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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쥐려는 마음이 오히려 빠져나가게 만든걸까요
최선은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것을 쥘 수 없었습니다.
직업도, 연애도, 면허도.
마지막 기회로 이 모든 것을 다시 쥘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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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여성 시인이 짊어진 삶과 예술의 무게
잉게보르크 바흐만: 사막으로의 여행/Ingeborg Bachmann-Journey into the Desert
마가레타 폰 트로타/스위스, 독일,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2023/114min/‘새로운 물결’ 세션
비범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자신의 시로 남성 지배적인 독일 문학계를 사로잡는다. 경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바흐만은 유명한 극작가 막스 프리슈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열정적이었으나 일에서도 개인적으로도 끝없이 부딪힌다. 지친 바흐만은 친구들과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기 자신, 무엇보다 자신의 시를 되찾기 위해.(서울국제여성영화제)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를 읽은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사막으로의 여행〉의 한 장면에서 그녀가 ‘독일 유일의 여성 순수 시인’이라 소개받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잉게보르크는 언어의 순수성과 관념성을 탐구한 시인이었다. 그 순수함에 대한 탐구는 그녀가 《삼십세》에서 보여주었듯, ‘순수’ 언어가 젠더화되어 있다는 깨달음과 연동되어 있다. 즉, 잉게보르크는 순수/보편/초월이 젠더 권력을 감추는 익숙하고도 권위 있는 개념임을 알고 있었다. 여성 시인이라는 정체성은 이 깨달음을 위한 토대였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삶‧사랑‧시 궤적을 좇는다. 특히 잉게보르크와 4년간 연애한 저명한 극작가 막스 프리쉬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들은 금세 사랑에 빠지고 함께 창작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잉게보르크는 이내 막스에게 ‘연인/뮤즈/가사노동자’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애초에 꿈꿨던 ‘연인/동반자/동료’의 이상은 점점 흐릿해진다. 오히려 잉게보르크의 명성이 쌓여갈수록 막스는 질투를 느끼며 그녀를 더욱 옥죄려 든다. 영화에는 잉게보르크가 막스와의 관계에서 쇠잔해가는 과정과 막스와의 관계가 종결된 후 그녀가 다른 친구와 함께 사막에서 친밀성과 시, 무엇보다도 자기 인생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교차하여 등장한다. 사막으로의 여행은 잉게보르크에게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독을 수용하는 법을 가르쳐줌으로써 그녀에게 구원을 선사했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라운드테이블에서 이경미 연극평론가는 영화가 잉게보르크에게 선물한 ‘구원’이 실제 그녀의 삶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막스는 잉게보르크과 결별한 후 그들의 관계를 소재로 작품을 썼고, 그 안에서 잉게보르크를 모욕적으로 묘사했다. 잉게보르크는 막스와 헤어진 후 오랜 기간 트라우마와 약물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잉게보르크의 말마따나 “결혼은 일하는 여성(예술하는 여성)에게 불가능한 제도”였다.
예술가인 동시에 뮤즈여야만 했던 그녀 삶의 모순은 여성이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케 한다. 우리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그녀가 남긴 작품과 그녀 삶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를 통해서만 그녀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과 예술적 문제의식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른 누군가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순수’ 언어에 도전하는 역할을 기꺼이 떠맡는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잉게보르크에게 사막에서의 구원을 선물했듯,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그녀와 우리 자신에게 구원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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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호실] 누군가의 일기를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 걸까
성적표의 김민영(2022)
김 :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김씨들이 모여 가장 효용 없는 한 사람을 추방하자, 회의를 했다.
민 : 민영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변호하고 싶었다.
영 : 영원히 제가 이대로 살아가진 않을 거예요.
성적표의 김민영.
영화를 보기 이전 영화에 대해 했던 생각과는 다른 영화였지만 정말 좋았다.
스펙터클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은 영화였고, 정말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을 꺼내어 잘 보여준 영화라 생각한다.
시놉시스에서도 알 수 있듯 매일 매순간을 함께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더 이상의 끈끈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아니 성립될 수 없는 친구들의 관계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
스무살에 이르러 더 큰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이도, 이전의 세상의 머무르는 듯 해보이지만 나름대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도
불과 일 년 사이에 우리가 이렇게 안 맞았었나, 어떻게 친구로 지냈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인물들이 딱 스무살의 나 같았다.
나 또한 학창시절 모든 것이 비슷하고 마음이 꼭 맞아떨어진다 느꼈던 친구와 급격히 사이가 틀어진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느꼈지만
아마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실 별 이야기 아니지만 당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세상을 뒤흔드는 아주 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고 있는 영화라 느껴졌다.
대사도 좋았고 삼행시 센스도 정말 좋았다!
특히 오프닝의 김민영 삼행시와 수산나의 PAUL 사행시.
개인적으로 PAUL 사행시를 다시 한 번 읽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각본집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제목은 '성적표의 김민영'이라 초반에는 민영이의 세계가 펼쳐지려나 짐작했는데
영화는 중반까지 죽 정희에게 초점을 맞추고 정희의 삶을 따라가는데
초반에 몇 없는 민영이의 대사만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민영' 삼행시와 대학에서의 인터뷰 답변만으로 민영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대사들이 참 좋았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민영이가 미웠다 좋았다 했다.
스무살이 되어 다른 환경에 놓인 정희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미웠고
대학생활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곳과 동떨어진 대도시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으려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갔다.
하지만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스무살에 접어든 친구들의 관계'까지라고만 생각했던 때에는 거기까지인 인물이라 생각했다.
정희가 민영이의 일기장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성적표의 김민영'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정희의 삶과 감정을 따라간다.
자연스럽게 정희의 감정을 가져가던 나는 사실 정희처럼 민영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거지
고등학생 시절의 민영이는 무슨 생각을 갖고 살아갔는지
내가 봐도 헛된 꿈을 꾸기만 하던 정희에게 현실을 살라던 민영이는
사실 자기도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그러면서 정희에게 헛된 꿈을 꾸지 말라던 민영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실 정희에게 한 말이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민영이의 일기장이 넘어간 이후로 민영이와 정희가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상반되어 보이던 인물들은 사실 서로 닮아있었고 닮아있으면서도 다르다는 걸 느낀 것 같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민영이 자취방에 있던 액자를 보고 정희가 한 말이 영화의 엔딩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유칼립투스 향이 날 것만 같다던 그림 속 주인공은 당연히 정희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엔딩에서 숲에 앉아 뒤를 돌아본 건 민영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민영이에 대한 이야기도, 정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과 기억들이 합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가장 개인적인 일기를 읽는다는 것 어떤 뜻일까.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걸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부분적으로나마 더 깊이 그 생각을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좋았던 왓챠피디아 평 하나 덧붙이자면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문보영 <일기시대> 중
- 김차원 (왓챠피디아 '성적표의 김민영'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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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케이팝시대!
기대 1도 안했다. 제목부터 언밸런스한 이 작품을 보게 된 건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무리 케이팝이 흥하지만 여기에 퇴마라는 소재를 합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게 너무 뻔한 기획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기획에 도가 튼 넷플릭스가 이 작품을 전 세계에 공개한다고 하니 선입견이 더 들 수밖에. 하지만 오산이었다.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보고 있으면 국뽕이 차오르고, 김밥과 라면이 당기며, 그 즉시 헌트릭스의 팬클럽 회원이 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케이팝 슈퍼스타 아이돌 헌트릭스! 이들은 언제나 바쁘다. 공연은 물론, 악귀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악령들로부터 인간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의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이유도 사람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 지하 세계에 있는 마귀가 나오지 못하도록 결계인 혼문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헌트릭스의 대항마 사자 보이즈가 나타난다. 헌데, 자세히 보니 사자 보이즈가 아니라 저승사자? 마귀? 이 정체를 알게된 헌트릭스는 노래와 인기로 우위를 점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자 보이즈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는다. 한편, 헌트릭스의 리더이자 메보 루미(아덴 조)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로 힘들어하고, 이를 알게 된 사자 보이즈의 리더 진우(안효섭)는 루미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지하에서 이를 지켜보는 저승의 지배자 귀마(이병헌)는 인간세계를 호시탐탐 노린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후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 31개국 글로벌 영화 부문에서 1위를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이 이 정도로 화제성이 높다는 건 그만큼 작품이 가진 무기가 적중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리얼리티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9년 동안 공을 들였다. 한국 역사는 물론, 무당, 저승사자, 당산나무, 도깨비 등 무속 신앙의 소재들이 극에 등장하면서 걸그룹 멤버들이 퇴마라는 허무맹랑한 설정을 비주얼로 설득시켰다. 여기에 남산타워, 한옥마을, 경복궁 등 한국의 건축물들이 등장하고, 민화 ‘작호도’에서 가져온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며, 김밥, 냉면, 순대, 라면 등 우리나라 음식이 자주 나오는 등 과거와 현대의 한국을 작품에 잘 녹여냈다. 여기에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소니 제작진이 구현한 한국 스타일의 무기(사인검, 곡도, 신칼)로 퇴마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 또한 화려하고 퀄리티 자체가 좋다.
이런 탄탄한 고증을 바탕으로 케이팝 아이돌 산업의 특징도 잘 녹여낸다.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은 가까워질 수 없다는 불문율은 물론, SNS를 통해 아이돌 인기를 가늠하는 모습, 응원봉을 흔들며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아니 케이팝을 사랑하는 해외 팬들이라면 저절로 눈이 가게 된다.
흥미로운 건 세계적인 아이돌 멤버이지만 출생의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루미를 통해 사랑받는 아이돌의 모습과 실제 모습의 간극을 성장 서사로 옮긴 부분이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진정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개인이 성장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진정한 음악이 탄생한다는 이야기의 흐름은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이 작품의 스토리가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클리셰 바운더리에 안착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흘러가지만 특색은 실종됐다. 특히 공통적으로 결핍과 두려움을 가진 루미나 진우의 전사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행하는 동기가 다층적이지 못하기에 캐릭터의 매력이 잘 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건 음악이다. 감독은 테디가 이끄는 더블랙레이블과 협업을 했고 안무는 리정이 참여했다. 여기에 트와이스 나연, 정연, 채영이 참여해 타이틀 곡인 ‘TAKEDOWN’을 불렀다. 또한 트와이스 '스트래티지'를 비롯해 듀스의 '나를 돌아봐', 엑소의 '러브 미 라이트', 멜로망스의 '사랑인가 봐' 등 한국 대중음악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이 같은 음악의 힘은 결과적으로 케이팝 음악으로 구성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이 가진 의의 중 하나인 이 가능성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같은 작품을 우리의 문화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역시 꿈은 이루어지는 것 같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벌써부터 속편 제작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그만큼 이번 작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속편이 제작된다면 음악은 또 어떨까? 여러모로 기대된다. 이 기대감을 안고 오늘도 헌트릭스 노래를 play~
덧붙이는 말: 영화는 영어 원어 버전과 한국어 더빙 버전으로 서비스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한국어 더빙을 추천한다. 그게 뭔가 더 잘 어울린다. 참고로 영어 버전에서는 진우 역에 안효섭, 루미의 스승인 셀린 역에 김윤진, 헌트릭스 매니저 바비 역에 켄 정, 돌팔이 한의사 역에 다니엘 대 킴 등이 목소리 연기를 펼쳤다. 초호화 배역진이다. 귀마 역에 이병헌은 두 버전 모두 연기를 펼친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평점: 3.5 / 5.0
관람평: 이게 바로 케이팝 파워! 국뽕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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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허하고도 처연한 연애의 종말
누군가 말했다. 연애는 살면서 다른 사람을 깊이 연구해보게 되는 몇 안 되는 경험이라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내 기분은 좌지우지되며 쉽게 내뱉는 말들은 서로 예상치 못한 상처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연애는 쉽게 시작한다 하여 쉽게 끝나지 않고, 힘들게 시작한다고 하여 어렵게 끝나는 것도 아닌지라 누가 손을 놓아버리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어느 한쪽의 마음이 식어버리는 동시에 이 관계에 사형선고가 내려지며, 통보하는 사람과 통보받는 쪽은 그 둘의 연애가 어떠하였을지라도 그 끝에 다다라야지만 결말을 알 수 있다.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가볍게 시작한 연애의 씁쓸한 대가와 로맨스라고는 조금도 가미되지 않은 현실을 그렸다.
갈비탕 집 아들로 어머니 밑에서 근근이 일을 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사실은 반 백수나 다름이 없는 영운. 그는 어느 날 당돌하고도 섹시한 여자 연아에게 대시를 받는다. 그렇게 결혼할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운은 연아와 화끈한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시작이 가벼운 연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연애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영운을 향하는 연아의 마음은 어느덧 진심이 되어 그가 결혼한 유부남이 된 후에도 좀처럼 그를 끊어내지 못한다. 같은 동료들에게 횡포를 일삼는 룸살롱 이사에게도 당돌하게 덤비던 연아는, 사랑 앞에서 점점 구차해져만 가고 그런 연아를 지켜보는 영운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괴롭기만 하다.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이것을 현실 연애로 보는 것이 마땅한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히 나뉜다. 누군가는 '우유부단한 쓰레기 남자 주인공에게 휘둘리는 불쌍한 여자 주인공'이라 평하기도 하였으며 또 누군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연애'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의 영상이 올라간 유튜브 댓글에는 이 영화를 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연애를 하였기에 이런 영화에 공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전에 영화의 제작노트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특별한 커플, 연아와 영운은 치열한 육박전도 육두문자가 남발하는 황당한 설전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화끈한 연애를 한다. 장난처럼 사랑을 시작한 두 남녀의 대책 없는 연애를 그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이미 <파이란>의 작가로 진정한 삶과 사랑의 모습을 선보였던 김해곤 감독의 첫 영화로 진짜 솔직하고, 화끈한 연애의 참 맛을 선보인다.영화의 제작노트에서도 쓰여있다시피 이 영화는 현실적인 연애를 다루었노라 말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현실은 도대체 무엇일까. 보잘것없는 시골 동네에 사는 반 백수 남자와 룸살롱 여자의 불륜이라 치부해버린다면 이들의 사랑은 남루하기 짝이 없지만, 그들이 한 연애의 속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교적 평범한 연애를 했던 사람일지라도 공감할 부분이 보인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아프고, 끌려다니기 마련이다. 애초에 다리 하나를 걸쳐둔 채 시작한 연애는 그 끝이 초라하고 씁쓸할 뿐이다. 누군가는 더 사랑하는 쪽이 헤어질 때 비로소 웃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연애 당시 자신의 감정을 얼마큼 표현했는가의 차이일 뿐 마음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언제나 연애에 있어 피폐해지는 것은 더 사랑하는 쪽일 것이다.
연아와 영운은 처음부터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먼저 대시한 것도 연아였고, 영운이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첩도 좋고 세컨드도 좋다며 매달리는 쪽도 연아였다. 이 영화를 약혼자에게 배신당한 영운의 여자친구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 두 사람의 지독히도 구차한 연애는 '당연히 남의 남자를 꼬셨으니 이런 결과를 낳은 거지'라며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영운의 약혼자는 그저 두 사람의 갈등 요소로 소비될 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허락받지 못한 불륜의 결과'라기보다는 '가벼운 연애에 뒤따르는 씁쓸함과 초라함'에 더욱 가깝다.
어쩌면 연아가 영훈에게 먼저 대시하였을 때에도, 그리고 영훈이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아와의 이중생활을 시작한 것은 서로 이러다 시들어지면 정리되겠지라는 안일한 가벼움에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하였듯 연애란 쉽게 시작한다 하여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연아는 그토록 당돌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불같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영운을 먼저 걷어차버리지 못하고 악다구니를 쓰면서까지 품고 마는 것이다. 한번 즈음 나만 놓으면 끝날 관계를 붙잡아본 사람이라면 차마 이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연애라고는 단정 짓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연아와 영운처럼 4년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씁쓸한 연애를 애써 피해 가야만 할까. 상처 없는 연애란 존재할까. 내가 주는 마음과 신뢰만큼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토로하고 있을 연애 고민들은 세상에서 온전히 사라질 것이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기대하는 마음, 아닌 것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마음, 아닌 것을 알면서도 붙잡는 그 마음. 그리고 결국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헛헛함. 서로 가까이 가지 못한 채 그저 처연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히던 영운과 연아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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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오브 더 월드> 뉴스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
남북전쟁 종전 5년 후, 참전용사인 '제퍼슨 카일 키드(톰 행크스)' 대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전해지는 뉴스들을 사람들에게 읽어주며 여러 마을을 돌아다닌다. 어느 날, 키드 대위는 키오와 부족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그들의 일원으로 자라난 10살 소녀 '조한나(헬레나 젱겔)'를 발견한다. 법에 따라 그녀를 친척들에게 데려다 주기로 결정한 그. 그는 그녀와 함께 뉴스에 등장한 다양한 사건들과 험난한 자연환경을 뚫고 텍사스의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무엇보다도 현장의 긴장감과 생동감을 날 것 그대로 스크린에 투영시킬 줄 아는 핸드헬드 연출과 빠른 리듬감의 편집이다. 이는 그에게 <블러디 선데이>부터 '제이슨 본' 시리즈, <캡틴 필립스>나 <7월 22일>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뉴스 오브 더 월드>에서는 일부 추격전과 총격전 외에 그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장면은 많지 않다. 대신 그 자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품에 안은 채 서부를 가로지르는 주인공들을 향한 차분한 시선이 대신한다.
그 시선의 중심에는 제목대로 뉴스가 있다. 실제로 영화는 키드 대위가 사람들에게 뉴스를 읽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키드 대위의 여정이 시작되는 첫 장면과 여정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이 큰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다. 우선 뉴스를 읽는 장면의 조명이 다르다.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날에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서 읽어 내려가는 데 비해 끝에서 키드 대위는 밝은 대낮에 글을 읽어나간다. 또한 그가 뉴스를 전달하는 태도도 판이하게 다르다. 허리를 숙인 채 신문 만을 바라보며 건조하게 뉴스를 읽고 전달던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청중들과 소통하며 당당하게 뉴스를 읽어나간다.
심지어 뉴스의 내용도 다르다. 주로 전염병 발병과 같은 객관적인 사실들과 정보들을 전달하는 데 그쳤던 첫 번째 뉴스와 달리 마지막에 낭독하는 뉴스들은 사람들이 공감을 사기 쉬운 해프닝이다. 키드 대위의 뉴스 낭독이라는 동일한 상황을 묘사한 오프닝과 마무리는 그 안의 모든 내용이 다른 것이다. 이는 키드의 대사로부터 알 수 있는 뉴스의 의미, 곧 아침부터 저녁까지 땅을 일구며 일해야 했던 이들에게 고단한 일상을 잊기 위한 엔터테인먼트였던 뉴스가 키드의 여정이 끝난 후에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잃은 한 아이를 가족의 품 안에 되돌려주는 키드 대위와 조한나가 함께 하는 여정은 다른 한 편으로 키드 대위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읽어주었던 다양한 뉴스를 체감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키드 대위가 과거 남부군과 시비가 붙어 총격전을 펼치는 장면은 남북전쟁 이 끝난 직후인 1860년대 후반 남부에서 실시된 북부의 군정기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지역의 경제권을 장악한 지주와 갈등을 빚는 대목도 흑인 노예제의 폐지로 인한 대규모 농장의 해체, 그로 인한 남부인들의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불만이 고조되던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에게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고, 그의 청중들에게는 오락거리이고 정보 전달에 불과했던 뉴스가 갖는 진짜 의미를 깨우쳐 나간다. 그는 남부 사람들에게 얼마 전까지 전쟁을 치렀던 북부의 탄광에서 사고를 당하고도 극적으로 살아남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상황은 달라도 자신들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 공감한다. 그들의 극적인 생환에 환호하고, 그들처럼 힘겨운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힘과 희망을 얻는다. 한 청년은 자신을 억압하던 주인을 죽이고 새 출발 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키드 대위도 전쟁 중에 접한 아내의 죽음을 비로소 직접 마주하고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그래서 그는 뉴스 낭독을 위해 여러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 생활을 이어가는 대신, 본래 집으로 되돌아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뉴스를 읽는다. 그렇게 그는 고단한 일상을 잊게 해 주던 뉴스가 그 이상의 것임을, 그보다 더 중요한 힘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는 조한나가 있고 없음이 영화의 시작과 끝 장면의 또 다른, 그렇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인 이유다. 작중 조한나는 그 자체로 뉴스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나 정보 전달의 역할을 넘어서 공감을 통해 진정으로 서로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함축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로 이주한 독일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 충돌로 인해 본래 부모님을 잃고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 자라난 조한나. 그녀는 미국 대륙횡단철도 공사 구역이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나감에 따라 원주민들이 강제 이주당하거나 살육당하는 통에 양부모마저 잃고 키드 대위에 의해 백인 친척들에게 전해진다.
그런 그녀는 원주민 문화에 동화되었는데도 약간의 독일어를 기억하는 등 서로 다른 인종과 종족,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제각각의 이야기를 간직한다. 또한 그 이야기를 토대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던 키드 대위와 서로의 아픈 가정사를 공유하며,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렇기에 조한나를 구한 이가 나름대로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는 키드 대위인 것, 그녀가 가장 먼저 배운 영어 단어가 '이야기 Story'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아무리 철도가 생기고 도로가 새롭게 놓아지더라도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서로를 이해하도록 만든 것은 결국 세계 각지에서 한 데 모인 이야기인 뉴스라는 사실을 곱씹어 보면 더욱 그렇다.
결국 <뉴스 오브 더 월드>는 각자의 가족을 잃은 이들이 새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뉴스가 단지 문자로 적힌 정보가 아니라 분명 생생히 살아 숨 쉬는 현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심지어 그 뉴스가 담고 있는 진실, 사실, 허구, 거짓의 구분도 쉽지 않은 현재의 휘발적 뉴스 소비 세태에서 자칫 잊히기 쉬운 의미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특히 이 영화가 미국에서 근대적 형태의 뉴스가 성립되어 가던 1870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도 뿌리로 되돌아가 진정한 뉴스가 무엇인지 고찰하고 문제의 답을 내놓는 키드 대위의 여정에 무게감을 더한다.
다만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의도한 메시지나 감정선이 명확히 전해지지 않다 보니 기존과는 다른 폴 그린그래스의 새로운 시도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 영화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앞뒤 장면들의 연결점, 카메라의 움직임과 포커스를 통해 그림의 일부만 조금씩 보여주며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과 이해에 맡긴다. 예를 들어 조한나가 문득 독일어로 말하자 키드 대위는 무언가 기억나는 것이 있냐고 묻지만, 이내 그녀는 입을 다문다. 이때 그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추측과 상상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러한 불친절함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차분하고 잔잔한, 또 감성적인 드라마 장르를 많이 다루지 않았던 데서 기인한 한계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완성도가 완벽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9.11 테러를 소재로 한 <플라이트 93>, 피의 일요일로 대변되는 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다룬 <블러디 선데이>, 노르웨이 연쇄 테러 사건을 영상화 한 <7월 22일>과 같은 전작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사회를 바라보는 폴 그린그래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은 몇 가지 단점과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매력을 부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A(Acceptable, 무난함)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폴 그린그래스의 이름값을 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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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 시사회 후기 - 메마른 관계일수록 불은 빨리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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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미스러운 일로 고향을 떠났던 `에런`은
친구 `루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가족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루크`
유가족의 요청으로 사건을 파헤치던 `에런`은
여자친구였던 `엘리`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묻혀있던 두 개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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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루시드 드림> 예고편
제작자에게 잔소리를 듣던 감독은 조명사고로 인해 쓰러지게 되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여러 장르의 꿈을 꾸게 된다.
기쁜 날을 빙자해서 돈을 사기 치려는 세계, 분노로 직장 상사를 죽이는 범지진, 사랑으로 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엄마, 기사가 실종되는 노선을 운행하게 된 아총의 공포가 즐거움으로 뒤바뀌는 꿈.
감독은 이 네 가지의 꿈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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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플랜 A> 메인 예고편
히틀러와 괴벨스가 자살하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살아남은 유대인 일부는 '나캄'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한다. "눈에눈 눈"이라는 구약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들은 나치가 학살한 600만 명의 유대인에 대한 복수로 600만 명의 독일인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