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31 11:03:08
겨울 추위에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에는 뼈가 시리다.
달콤 씁쓸, 현실적인 로맨스 영화_국내 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거리에 만개한 벚꽃들 덕분에 마침내 봄이 왔음을 체감하는 요즘.
예쁘게 핀 꽃을 바라보면 마음이 붕 뜨다가도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는데요,
부쩍 변덕스러워진 날씨지만 여러분 모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랄게요.
그런데 혹시 '겨울 추위에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에는 뼈가 시리다'라는 속담을 아시나요?
봄에 찾아오는 꽃샘 추위도 겨울에 찾아오는 추위만큼이나 강력하단 뜻인데요,
씨네랩도 오늘은 마냥 따뜻하고 설레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국내 로맨스 영화를 추천해 드리려고 해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봄날은 간다>부터
아릿한 첫사랑 이야기의 정석과도 같은 <건축학개론>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8편의 로맨스 영화를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연애의 온도(2013)
Very Ordinary Couple

감독: 노덕
출연: 이민기, 김민희, 최무성, 라미란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12분
애인과의 반복되는 싸움에 지쳐봤다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대사들의 향연.
3년의 비밀연애 끝네 헤어진 직장동료 '동희'와 '영'. 서로의 물건을 부숴 착불로 보내고, 커플 요금을 해지하기 전 인터넷 쇼핑으로 됴금 폭탄을 던지고. 심지어는 서로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는 말에 SNS 탐색부터 미행까지! 헤어지자고 말한 후에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사랑할 때보다 더 뜨거워진 두사람. 연애가 원래 이런 건가요?

너 그거 알아?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그중에서 다시 잘 되는 사람들은 3%밖에 안된대.
나머지 97%는 다시 헤어지는 거야,
처음에 헤어졌던 거랑 똑같은 이유로.

헤어지자고 네가 하면 되지, 왜 나한테 시키는데?
야, 넌 뭐 변한 줄 알아? 너야말로 그대로야.
나 만나서 힘들고 지친다, 너 혼자 애쓴다,
너 지금 옛날에 하던 그 짓 똑같이 하고 있잖아.
너만 숨 막히고 피 말라?
나야말로 너랑 있으면 뭘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
나 다시 만난 거 네가 후회하고 있을까봐
나 너랑 있으면 같이...
나 숨도 제대로 못 쉬어.
근데도 결국에 이렇게 너는 네 생각밖에 안 하잖아.
너 서운한 거, 너 힘든 거,
너 혼자 노력하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거.
네 눈에는 너밖에 안 보여? 너만 힘들어?
연애 빠진 로맨스(2021)
Nothing Serious

감독: 정가영
출연: 전종서, 손석구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5분
요즘 애들 자.만.추 는 내가 아는 그 뜻이 아니라고?
일도 연애도 뜻대로 되지 않는 스물아홉 '자영'.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데이팅 어플로 상대를 검색화고, 19금 칼럼을 떠맡아 반강제로 데이팅 어플에 가입한 '우리'와 만난다.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든 두 사람은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에 누구 하나 쉽게 속마음을 터놓지 못하는데...

연애는 방구고,
결혼은 똥이야.
그냥 실컷 방꾸 뀌다가
똥 마려울 때 되면 결혼하는 거지, 뭐.

우리 센 척 작작하자.
여기 안 외로운 사람 있어?
사실 다들 외롭잖아.

야, 근데
우리가 하는 게 연애 아니야?
가장 보통의 연애(2019)
Crazy Romance

감독: 김한결
출연: 김래원, 공효진, 강기영, 정웅인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9분
지긋지긋한 인연들에게 날릴 사이다가 필요하다면,
남친과의 뒤끝 있는 이별 중인 ‘선영’. 새로운 회사로 출근한 첫날, 할 말 못 할 말 쏟아내며 남친과 헤어지던 현장에서 하필이면! 같은 직장의 ‘재훈’을 마주친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일보다 서로의 연애사를 더 잘 알게 된 두 사람. 하지만 미묘한 긴장과 어색함도 잠시,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건 왜 그럴까?

남자랑 여자랑 같니?
- 같지 그럼! 너는 다르다고 배웠니?

나는 그냥 사랑에 환상 같은 게 없어요.
그냥 남잔 많이 만나볼수록 좋다.
그놈이 그놈이다.
몰랐어요?
여자 다 똑같아요, 남자 다 똑같은 것처럼.
그러니까 뭐 그냥 기대할 것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그런거지...
러브픽션(2012)
Love Fiction

감독: 전계수
출연: 하정우, 공효진, 지진희, 유인나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1분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내가 몇 번째야?
완벽한 여인을 찾아 헤매느라 31살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주월'. 그런 그의 앞에 모든 것이 완벽한 여인 '희진'이 나타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괴상한 취미, 남다른 식성, 인정하기 싫은 과거 등 완벽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희진의 단점이 하나둘씩 마음에 거슬리기 시작하는데...

잘못했어. 겨드랑이 털 같은 거 상관없어.
진짜야, 내가 털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는 모자도 털모자만 쓰고, 만두도 털보 만두만 먹고,
성격도 털털하다는 소리를 되게 많이 들어.
우리집 TV도 다 디지털이야.

우린 모두 연애라는 정글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까스로 생존방식을 체득한 원숭이들일 뿐이야.
로맨틱 침팬지 말이야.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My Love, My Bride

감독: 임찬상
출연: 조정석, 신민아, 윤정희, 배성우, 라미란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영민'과 '미영'.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달콤한 신혼생활도 잠시, 사소한 오해와 마찰들이 생기며 결혼의 꿈은 하나 둘씩 깨지기 시작하는데... 신민아와 조정석 주연으로 만든 90년대 레전드 로코영화 리메이크작.

여자한테 첫사랑은 하나가 아니래.
처음 만난 남자가 첫사랑이 아니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 첫사랑이래.

외롭다는 말이었어.
사람이 집에 혼자 있고 그런 게 외로운 게 아니야.
같이 있는데 진짜 외로운 게..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건축학개론(2012)
Architecture 101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첫사랑은 왜 이루어질 수 없다고들 하나
서른다섯살의 건축가 '승민'의 앞에 15년 전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음대생 '서연'이 나타난다. 서연은 승민에게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은 옛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첫사랑이 원래 잘 안되라고 첫사랑이지.
잘되면 그게 첫사랑이니?
마지막 사랑이지.

손목 때리기는 보통 사이에선 하지 않지 않냐?
막 손 잡고 그래야 하는데.

너도 멀리 가 있어.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진 말고.
그 겨울, 나는(2022)
Through My Midwinter

감독: 오성호
출연: 권다함, 권소현, 오지혜, 계영호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사랑이 가장 피곤했던 것 같아
스물아홉 동갑내기 커플 ‘경학’과 ‘혜진’은 내일을 위해 뜨겁게 공부하고, 오늘을 위해 열심히 사랑한다. 하지만 혜진이 먼저 취업을 하게 되자 점점 서로의 내일과 오늘이 변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경학이 엄마의 빚을 떠안으며 공부도 사랑도 위기를 맞게 되는데… 사랑조차 피곤했던 그 겨울,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솔직했을까?

사랑이라는 거,
그거 되게 간사한 감정이야.

나도 힘들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봄날은 간다(2001)
One Fine Spring Day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백성희, 박인환, 신신애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6분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어느 겨울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와 만나게 된다. 녹음 여행을 떠나며 자연스레 가까워진 두 사람은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지만 봄을 지나 여름이 찾아오자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은 변하지 않아.
단지 사람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지.
오늘 추천드릴 영화는 여기까지 인데요, 어떠셨나요?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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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좌수사 이순신 그의 난중일기
책 한 권을 빌렸다. 바로 호란과 임진왜란에 대해 조사한 책이었다. 갑자기 자타공인 역덕이 되고 싶은 나. 냅다 깊게 파는 나의 역사덕후적 호기심이 빛을 발한다. 아니. 역사 이야기 능수능란하게 푸는 사람들 멋있지 않아? 어느 년에 뭐가 일어났고 어떤 것 때문에 발생했고 이런 거 줄줄줄 설명하면 왠지 모르게 멋지다. 역사가 약하다는 말은 사실 거의 모든 것이 약점이라는 말을 한 누군가의 명언이 생각난다. 그래. 맞는 말인 것 같아. 왠지 이 부분을 파면 다 잘 풀릴 것 같다.
풀릴지 안 풀릴지는 미래의 내가 아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싶다. 어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굴러다니는 짤들 보다 책으로 읽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아닐까? 반지성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 지성에 그나마 다가가는 것이 민주사회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는다. 이 영화라는 문화예술도 사실 이 '지성'이라고 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를 봐도 역사적 맥락과 관련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시대극 만들기 좋다. 위대하고 극적인 인물이 많이 나와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이 시대극 만들기 좋은 한국사를 소재로 했다. <외계+인> 1부에 이은 여름 대작 두 번째, <한산 : 용의 출현>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1달 후의 조선으로 가보자.
해저 괴물 복카이센
문제가 뭘까? 다 알 것도 같았다. 일본의 장수 와키자카는 해저 괴물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전쟁. 이웃나라 조선은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전쟁에 대한 대비가 단 조금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아쉽다. 갑자기 느닷없이 나타난 이순신이라는 존재에 머리가 아프다. 와키자카는 해저 괴물 복카이센이 전장을 휩쓸고 있다는 말에 여러 번 생각을 되뇌인다. 할 수 있어. 전염병 같은 두려움만 이긴다면.
‘해저 괴물 복카이센’을 이끌던 장수의 관점으로 돌아간다. 전쟁 중이었던 해전. 거북선이 일본의 배에 부딪혔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조선의 거북선. 일본의 배와 조선의 거북선이 붙은 상태에서 백병전이 열렸다. 거북선에서 배를 이끌던 장수 나대용은 방패 하나와 무기를 들고 들이받은 배의 일본 장수 둘을 제거하려 배의 위로 올라간다. 조총이 빗발치던 전장. 방패로는 한계가 있었다. 왼쪽 허벅지에 총알이 박힌 나대용. 위기의 순간, 일본 장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날아온 화살이 나대용을 구해줬다. 나대용을 구한 사람은 이순신이다. 처절한 전투 끝에 부하를 구한 이순신. 그렇게 임진왜란의 어느 전장을 보여주고 카메라는 1달 후를 비춘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생포한 포로들을 심문하다 왜나라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이순신은 열세의 전장을 뒤집어 조선을 구할 수 있을까?
자주 봤었지
사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다들 알고 있다. ‘우리에겐 12척의 배가 있소’부터 시작해서 우리 역사에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낸 이순신 장군. 우리나라의 위대한 전쟁영웅 하면 늘 들어가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이라는 소재는 적지 않게 사용됐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들어갔던 것이 <명량>이다. 또 내 나이 또래라면 다들 기억하는 <불멸의 이순신>도 있다. 굳이 영상매체가 아니더라도 한능검이나 교과서에서도 임진왜란 이야기는 자주 본다.
전쟁영웅의 이야기라 봐도 봐도 좋은 이야기겠지만 이는 곧 창작의 어려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떻게 관객에게 어필하지?를 생각해보자. 여러분과 내가 각본가라고 해보자. 이야기를 2시간가량으로 구성하고자 하면 뭔가 신선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1)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일으킴 2) 한산도, 노량, 명량 해전에서는 조선이 승리한다" 같이 두 결론을 내고 논리관계를 만든다는 것 자체도 충분히 어렵다. 근데 이에 틀어맞게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난이도가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거 또 봤던 이야기 하는 거 아닌가? 또 전작 <명량>에서 흔히 말하는 ‘국뽕’ 마케팅은 이런 우려에 부채질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단점들을 적당히 잘 보완했다.
좋은 기획
일단 영화는 조선의 관점에서 풀지 않는다. 전적으로 일본 장수 와키자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영화의 간단한 배경과 결말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바로 한산도 대첩은 조선의 압승으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보통 어떤 일의 긴장감은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느껴진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서 버키와 캡틴이 맨몸액션을 벌인다. 둘 다 호각세의 능력자들이기 때문에 합을 주고받는 것이 어떤 결론으로 향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결과를 알 수 없음’의 서스펜스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 대신 후반부 하이라이트 신을 위해 최대한 반대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이 기획하고 싸운 전쟁영화임에도 주인공이 두 명이 되는 셈이다. 그것도 물리적인 분량은 와키자카 쪽이 더 많다.
이렇게 되면 갖는 이점이 생긴다. 앞에서 썼듯 왜 나라의 관점에서 이순신의 지략가적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 덕에 같은 소재의 전쟁영화가 있더라도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보다 신선하다고 느끼기 쉬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반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일어나는 게 반전이다. 당시 일본의 관점에서는 이 전쟁이 불가사의했다. 조선은 거의 준비가 안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는 대사도 나온다("전쟁은 금방 끝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전쟁 준비 잘해간다. 이를 일본 관점에서 풀어가니 그 준비성이 더 도드라진다. 그렇게 일본 장수 와키자카의 관점에서 철저한 전쟁 서사를 묘사하면 '와 이걸 어떻게 이기지?'싶은 의문점이 든다. 또 이순신에 대한 정보가 일본 내부에는 거의 없다 보니 와키자카에 몰입하게 된다. 마치 <어벤저스> 시리즈의 '타노스'같은 느낌? 영화 전체적으로 이순신을 깨러 가는 느낌이 강하다. 영화는 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이순신에 대한 미스테리를 후반부의 해전 신을 위해 쓰고 있다. 이야기 구성에 있어 보다 신선한 접근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초중반까지 일본 내부의 권력투쟁과 첩보 대결만 봐도 이야기 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이 영화가 전작 <명량>과 다른 지점이 있어 비교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 이 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의'를 표현하기 쉬운 것도 이 영화의 형식의 강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일본 관점에서 전개해야 내적 논리의모순을 관객이 알 수 없다. 이를 통해 일본의 입장에서도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용이하다. 일단 영화 초반부에 왜 '의'가 중요한지 제시된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이 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다. 이 '의'라는 것이 어디 쪽에 있는 걸까? 쉽다. 이순신에겐 있고 일본의 장수들에게는 없는 것이 이 '의'일 것이다. 흰 종이에 붓 한번 살짝 찍어보자. 그럼 그 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의와는 거리가 먼 일본 내부의 상황을 조명하다가 조선을 쨘하고 보여주면 두 나라의 내부 상황이 대조적으로 보일 것이다. 일본 장수들이 하는 말을 잘 보면 거의 명분이 없다. 누가 싫거나. 그냥 꼴 보기 싫어서. 아래 군사들 죽든지 말든지 알바 아니니까. 거의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의가 없는 왜의 명분과 이에 물든 일본 장수들의 냉정함이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전작 <명량>이 민족주의(속칭 '국뽕')를 위해 영화 전반적인 장면을 희생한 것과는 다르게 뾰족한 기획을 통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특별한 무언가를 위한 발상이 아니라 '이런 영화를 만들 거야!'라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좋은 선택이었다.
이를 위해서
이 신선한 방식의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역시 배우들이 영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일단 박해일-변요한-김성규-박지환 네 배우의 극 이해도가 굉장히 뛰어났다. 일단 박해일 배우는 한국영화의 지난 역사를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할 때 그 '기라성'을 담당하고 있는 박해일 배우. <살인의 추억>, <국화꽃 향기>, <연애의 목적>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올해가 그의 경력 중 최고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영화에서도 그의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상대역의 변요한 배우가 섬뜩한 연기를 워낙 잘해서 좀 심심하다고 느끼는 분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박해일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고 느낀 것이, 1) 가벼워 보이지도 않으면서 2) 뭔가 고뇌하고 있는 내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3) 조선 내부의 상황으로 인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심리상태까지 극의 배경이 되는 좋은 연기를 수행했다. 비교적 와키자카에 비해 물리적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의 존재감이 후반부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박해일 배우의 눈빛, 표정, 발성이 이 영화에 잘 어울리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과 <명량>까지 참 좋은 배우다.
다음은 변요한 배우다. 앞 문단에서도 썼듯 이 와키자카가 영화의 진주 인공이다. 물리적으로 분량이 아마 제일 많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박해일 배우는 잔잔한 파도처럼 극을 이끈다. 이와 대조적으로 변요한 배우는 감정적으로 화려한 연기를 보여주머 이야기를 전개한다. 일단 갖고 있던 감정선이 다양했다. 전쟁 준비는 또 착착 잘 되어가고 있다. 근데 반대쪽에서 승전보를 울렸던 이순신에게 묘한 열등감을 품고 있다. 또 이순신이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자신감까지 있다. 선조의 입장 변화를 위시한 조선의 내부 상황이 시끄럽기 때문이다. 또 일본 내부에서 권력 교통정리가 안 됐다. 이를 묘사하는 연기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전반부의 감정연기를 넘어가면 하이라이트가 있다. 중반부가 넘어가서 이순신과의 한바탕에서 이 사람의 처지는 여러 번 바뀌게 된다. 이때 분출했던 감정표현들이 선명해서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주체로 이끄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한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변요한 배우는 정말 열 일했다. 아마 이 배우의 최고작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김성규-박지환 배우도 기억에 남는 연기를 했다. 두 배우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조연이다. 이 역할을 살리는 좋은 연기였다. 일단 김성규 배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범죄도시> 시리즈였다. 그리고 <악인전>에서도 봤었다. 이 두 작품만으로도 연기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악인전>에서는 뭔가 난잡한 이야기 톤 사이에서도 빛났던 기억이 있다. 이때 단순히 연기만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똑똑한 배우라는 점이다. 이 준사라는 캐릭터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고, 어떤 점에서 이순신이 전투를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리액션 연기가 좋아야 한다. 몸짓 하나, 눈빛 하나가 무언가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박지환 배우 역시 뛰어난 연기였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장이수 캐릭터로 유명한 이 박지환 배우. 솔직히 영화 보면서 '내 아임다' 생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전반적으로 이 캐릭터를 경제적으로 활용한다. 이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연기만 딱 잘라서 보여준 느낌? 이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았던 게 아닐까 싶었던 캐릭터 연출법이었다.
단점이 없지는 않아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시사회 평을 몇 개 봤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명량>의 단점을 극복했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기대 좀 하고 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극복하긴 했다'다. 영화에는 엄청 큰 단점은 없다. 그 대신 아쉬운 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역시 극 중에서 옥택연-김향기 배우가 연기하는 임준영-보름 역의 서사 전부다. 난 이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일단 영화 안에서 스파이가 있어서 얻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이 스파이가 단지 <명량>의 프리퀄이라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할당받는 게 그게 완성도에 도움이 되는가? 는 의문이다. 조선 측의 특정 인물과의 대비를 이루기 위해? 굳이? 일본의 스파이가 있는 것까지 대칭을 이룰 필요가 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중반부까지 이순신-와키자카의 전략적 선택이 재밌다가 임준영이 나오면 산만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배우의 퍼포먼스와도 연관이 있다. 음.. 잘 모르겠다. 이 배우를 캐스팅한 게 좋은 선택인지. <외계+인> 1부의 썬더가 생각나는 연기였다.
그리고 후반부 하이라이트 해전 신에서 CG 티가 난다. 아마 바다와 실제 배에서 찍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 그랬던 건 이해한다. 그런데 사람이 없는 신 정도는 실물로 찍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초중반부는 일본의 관점에서 전개하지만 중후반부는 조선의 학익진과 거북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전반부의 살짝 느리더라도 신선한 템포가 후반부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오잉?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가 식상한 촬영기법으로 치환되니 뭔가 김샌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영화 전반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척임이 있다. 분명 전작에서의 '국뽕'요소를 많이 뺀 것도 안다. 불필요한 사족 많이 쳐냈다. 근데 살짝 유치하고 예전 느낌이 나는 연출법이 장면 장면마다 보인다. 완성도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은 아니나 확실히 아쉬운 지점이다.
그래도 좋았어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좋다. 잘 만들었다. 일단 두말할 필요 없는 후반부 해전 신은 쾌감이 대단하다. 부분 부분마다 꼼꼼하게 동선을 잘 짜 놔서 보는 맛이 있다. 이 액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운드와 표정이 될 것이다. 적의 변수에 당황하는 일본군, 급변하는 전쟁 상황, 포격 소리까지 CG를 많이 사용한 만큼 소리에 집중해야 현실감이 든다. 이 현실감은 유효하게 작용한다. 후반부 전투 신에서 우리나라 말도 자막처리를 할 정도로 집중했던 소리 연출은 러닝타임의 반을 할애한 만큼 제 몫을 다한다. 티켓 가격이 많이 오른 극장가 이 액션신만 봐도 가격 값을 한다.
또 영화에서 묘사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극에서 나오는 군사집단은 이순신의 수군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중반부를 넘어가면 특별한 존재들이 조선의 땅을 지키며 왜적과 항전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주인공이 이순신 장군인 것도 맞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도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전개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제목이 한산이다. 이 한산도대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워온 만큼 이들을 조명하는 것도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좋은 방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가볍지 않은 톤으로 배우들의 연기까지 깔끔하니 임진왜란의 무게감에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극장가, 두 번째 여름 대작으로 부모님과 함께 가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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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모성에 관해
- 케빈은 왜 그런 선택을 하고 말았을까.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대도 관객이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케빈과 어머니인 에바와의 유대감이 부족했다는 점 하나로 이 영화를 부족한 유대감이 만들어낸 파멸을 묘사해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뭉스럽다. 보통 부모와 유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파멸적이거나 극도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지만은 않기 때문이겠다.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그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케빈에 대하여>를 거꾸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애초 영화는 이야기를 뒤집어 서사를 전개한다. 영화는 케빈의 어머니인 에바가 케빈을 낳기도 전, 즉 결혼 그 이전의 시간부터 현재 자신이 마주하는 현실의 순간까지를 계속해서 돌아보는 구조를 보여준다. 영화 속 서사로 봤을 때는 이 영화의 종반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핵심적 사건이 가장 먼저 삽입되어야 한다는 시선을 거둘 수는 없다. 보통은 큰 줄기에서 시작해 곁가지를 뻗어 내는 구조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재미있는 지점은 제목은 <케빈에 대하여>이지만 이 영화를 서술해 내는 주역이 케빈이 아니라 에바라는 점이다. 지극히 어머니의 시선에서 케빈과 그를 둘러싼 상황들을 전개한다. 이쯤에서 질문을 꺼내어볼 수 있다. 케빈의 시선에서 서사를 전개했다면 관객은 그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아마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케빈이 어렸을 때부터 보인, 어쩌면 이상행동이라 부를 수 있을 그런 행동들을 보이는 것을 대부분의 관객은 에바의 시선으로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결국은 어머니의 시선으로 보는 케빈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어머니의 시선으로 케빈을 생각하도록 한다. 에바는 이 영화 속에서 어떤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크게는 영화 속 현재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구조를 보인다는 점과 영화가 강조하는 ‘색’의 의미를 파악해 보아야 한다.
에바는 행복해 보일 수 없다. 남들과 같은 평범하거나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대뜸 그녀의 뺨을 후려칠 수 있다. 또는 그녀가 사는 집 외관과 승용차에 빨간색 페인트를 흩뿌려 버린다. 장을 보기라도 하는 날이 되면, 그녀가 사려고 담은 달걀 한 판을 모두 박살 내야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녀는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에바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낙인과도 같은 화살들을 담담히 지고 나아가려고 한다.
어느 곳을 가든 자신을 감시하듯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집에 마구잡이로 뿌려진 붉은 페인트를 벗겨내려고 하는 것조차 감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 이유는 케빈이 그녀의 아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들이 케빈을 증오할 수는 있어도, 그 부모와 가족까지 증오하고 그들의 삶마저 모두 이 세상으로부터 들어내려고 하는 전복적 시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케빈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재활하게 됐지만 우연히 에바를 만났을 때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한 소년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케빈에게 해를 당했음에도 에바를 증오할 마음 없는 그 당사자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결국은 모성만이 남는다. 모성의 형태가 어떻다고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자식을 위하는 마음과 어떤 일이 있든 그를 이해하려 하는 마음 자체를 모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의도치 않았지만 찾아온 케빈이라는 존재를 결국 낳았고, 후회했지만 결국 길렀다. 그 과정에서 여러 난관이 찾아왔지만, 에바는 포기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를 저버리고 감옥에 수감된 케빈이지만 에바는 그를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대체 왜 그랬으며, 무슨 생각이었느냐고. 그렇지만 케빈은 여전히 에바에게 명백한 답을 전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아닐까.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아야 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고. 그렇게 흐릿한 마음과 시선을 안았지만, 모성을 숨기지 않으며 에바는 살아간다. 모험가로서 책을 출판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과거의 경험을 살려 여행사에 취직한다. 예전의 호화로운 저택은 더 이상 없지만 작은 주택에서 케빈을 다시 맞이하고자 한다. 이웃들이 자신에게 찍은 낙인을 지워내기 위해 조금씩 그 흔적들을 지워낸다. 영화는 에바를 주인공으로 선정함으로써 그렇게 ‘이해 불가능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시선으로 서사를 읽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모성에 관한 서사를 에워싸는 빨간색이 있다. 모험가이던 시절, 토마토 축제에 가서 자유를 만끽했던 순간의 빨강. 섣부른 판단으로 남편과 관계하고 아이를 가지게 됐던 순간 디지털시계가 시간을 알리던 그 빨강. 케빈이 에바의 개인 공간을 물감으로 더럽혔던 순간의 빨강. 그리고 케빈이 학교 친구들을 학살했던 그 순간을 목격한 에바를 감싼 빨강. 그 순간을 회상하고 모든 죄를 자신이 지고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빨간색이 있다.
빨간색은 후회와 불안정한 과거에 대한 에바가 ‘속죄해야 할 것’들이다. 에바는 케빈을 낳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 후회는 계속해서 에바 자신을 칭칭 감아버린다. 후회에 둘러싸인 에바는 케빈이 일으킨 사건을 회상하면서 마치 자신이 그 화살을 맞고 죽는 것처럼 붉은빛 속에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케빈에게는 그런 붉은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케빈은 후회하고 속죄하지 않기 때문일까. 모든 죄를 에바가 짊어지기로 선택했기 때문인 것일까.
결국 에바는 속죄하기를 택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쏟아낸 혐오와 증오를 받아내고, 집과 자동차에 뿌려진 낙인과도 같은 페인트를 긁어내고 이내 파란색으로 그 흔적을 덮어낸다. 그 과정에서 케빈을 만나 그때를 이야기하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종반부에서 그 대화가 모습을 드러내지만, 결정적인 것은 여전히 에바는 이해하지 못하고 케빈은 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그 일말의 여지마저 제거해 버린다. 그렇다고 에바는 케빈을 포기하지 않는다. 집의 한편에 있는 방을 과거 케빈의 방과 똑같이 꾸미고, 케빈의 옷을 다려 가지런히 캐비닛에 넣는다. 케빈이 어떤 행동을 하고 모습을 갖던, 에바는 있는 그대로 케빈을 볼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에바는 모성애가 강한 인물이다. 케빈에게 무관심했던 것은 에바가 그를 너무 사랑했기에 감싸지 못한 것이다. 사랑했기에 자신의 관심으로 그를 덮으려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집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너무나 쉽게 망쳐버린 케빈의 흔적을 쉽게 뜯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에바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할 수 있다. 작 중에서 에바 자신마저도 그런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고 자기 자신을 ‘그 현장’으로 다시 소환시킨다. 그리고 고통스러워 한다. 케빈을 자식으로서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케빈이 영원히 에바가 납득하지 못할 행동을 이어간대도 에바는 그 자리에 서서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에바가 케빈을 ‘섣불리’ 낳았던 것에 대한 참회일 것이며 ‘서투르게’ 케빈을 교육했던 것에 대한 나름의 속죄다.
그러나 에바에게 그 속죄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게 하는 것이 옳은지는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사회에서 흔히 중범죄의 가족은 ‘연좌제’의 개념으로 낙인찍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고루한 개념이 돼 사라져 버린 그 연좌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은 정말 납득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에바가 짊어질 수 있는 그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보아야 할까. <케빈에 대하여>는 미스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끝없이 반복되는 미스터리를 다시 한번 전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겠느냐고. 그렇다면 생각해 볼 때다. 우리는 에바와 케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케빈이 악한이 된 것에 대해 에바에게 그 짐을 모두 짊어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에바를 자유롭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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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영화 트루먼쇼 결말 줄거리 추천 넷플릭스 | 짐 캐리 주연
본인만의 인생 영화가 있으신가요?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손꼽는 영화 트루먼쇼가 있습니다.
믿고 보는 짐 캐리의 명연기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24시간 전세계에 생중계가 된다면 이라는 이야기로
흥미를 한가득 모은 인생 영화 트루먼쇼 그럼, 영화 트루먼쇼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코미디, SF
감독 : 피터 위어
각본 : 앤드류 니콜
출연진 : 짐 캐리
개봉일 : 1998년 10월 24일
평점 : 9.48
스트리밍 : NETFLIX, Wavve
기획 의도
"좋은 아침입니다! 나중에 못 볼지도 모르니,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세요!"
여담
영화 트루먼쇼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에서도 재 개봉을 진행했다.
전 세계적인 흥행으로 각본상, 감독상 등 다양한 수상 기록이 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트루먼쇼 결말
트루먼(짐 캐리)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계속적으로 벌어지면서 의심이 증폭이 된다.
트루먼은 물 공포증이 있음에도 배를 타고 떠나며 인공 폭풍과 돌풍으로 인해 위기에 직면하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고 세트장에서 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트루먼은 머쩍은듯 익상스러운 웃음과 함께 "good morning!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and good night" 외치며 세트장을 벗어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트루먼은 평점 9점대로 정말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감명 깊고 너무 재미있었다는 증거 이지 않나 싶다.
진짜 다시 봐도 너무 재미있는 영화 트루먼쇼 아직 안 봤다면 강력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good mornig! good afternoon!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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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프랑스] 남성적 시선으로부터 탈주하는 클레오의 도시 산책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초기 연출작으로, 여성해방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2차 페미니즘 물결을 통과하는 시기에 만들어졌다. 바르다는 ‘클레오’를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한 여성의 정체성 찾기에 골몰했다. 영화는 젊고 아름다운, 나름 가수로서도 성공한 여성인 ‘클레오’가 암 진단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와 더불어 그의 내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로라 멀비가 대부분의 서사 영화 구조 속에서 여성은 수동적인 볼거리로서의 기능만을 한다고 지적한 바와 달리, 영화는 젊은 여성 주인공 클레오의 ‘시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면서 그녀의 삶과 주체성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1.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클레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제목 그대로 오후 5시에서 오후 7시 사이, 90여 분에 걸친 클레오(코린 마르샹, Corinne Marchand)의 시공간 이동과 대도시 산책을 13개의 장별 구성으로 펼쳐낸다. 이 과정을 통한 내러티브의 방향성은 대상으로서 정체성에 몰입했던 클레오가 주체로 변이생성 해나가는 탈주의 과정이기도 하다. 클레오의 시공간 이동은 자신이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도피하고픈 욕구로부터 발생된다. 젊고 아름다운 스타 가수란 정체성을 즐기며 화려한 삶을 누리던 클레오에게 불현듯 다가온 ‘죽음(암)’에 대한 공포는 존재론적 고뇌를 촉발하는 극적 동기로 작용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타나는 주요 응시 대상은 클레오가 뽑는 9장의 타로 카드들이다. 각각 ‘클레오’라는 인물의 과거-현재-미래를 나타내는 이 카드들은 그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전에 관객들에게 클레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마치 예언처럼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암시하는 기능을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래를 상징하는 카드들은 그에게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이때 등장하는 해골카드를 클레오가 보고 절망에 빠지자 점술가는 이 카드가 꼭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하는데, 이를 대상으로서만 살아가던 클레오가 주체로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기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암시하는 불길한 점괘를 안고 점집을 나선 클레오는 건물 출구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면서, ‘추함이야말로 죽음을 의미하며,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한 나는 살아있다’는 자기주술성 위로로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러나 양 벽면에 걸린 거울이 서로를 비추면서 무한대로 분열되는 그의 이미지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얻게 되는 존재론적 고뇌가 현재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을 것임을 암시한다.
거리로 나선 클레오는 모든 이들의 시선의 대상이 된다. 자신에게 꽂히는 그러한 타인들의 시선을 클레오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 매니저 앙젤르는 ‘아파 보이냐’는 그의 질문에 ‘아름답다’는 답변을 할 뿐이다. 이때 클레오는 또다시 뒤돌아 거울을 바라본다. 앙젤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눈물을 흘리는 클레오를 보며, 그의 절망이 단지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앙젤르가 볼 때 클레오는 미성숙한 자아를 가진 ‘어린아이’로, 자신의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이다. 존 버거가 말한 것과 같이, 클레오는 앙젤르로 대표되고 있는 남성중심적 사회의 규율과 질서의 통제를 받는 인물인 것이다. (영화 속 앙젤르는 여성이지만, 남편을 잃은 과부로서 클레오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소유 및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앙젤르는 남성중심적 사회의 규율과 이데올로기를 상당히 내면화한 인물로 나타난다. 이러한 그의 집착은 영화 전반부를 중심으로 잘 드러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쇼윈도에 놓인 모자를 보고 방문한 모자 가게에서도 클레오는 도처에 놓인 거울들에 비친 새 모자를 쓴 자신의 이미지 보기를 반복한다. 이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 보는 수단이기도 하다. 갖가지 모자를 써 보면서 스스로의 아름다운 외모에 도취하던 클레오는 결국 여름철에 맞지 않는 검은 털 모자를 구매해 쓰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내 ‘화요일에는 새 옷을 입으면 불운이 생긴다’는 미신을 믿는 앙젤르에 의해 제지당한다. 연이어 가부장적 운명론에 집착하는 앙젤르에 의해 두 사람은 운수 없는 차 번호를 피해, 드물게 존재하는 여성 기사의 택시에 탑승하게 된다. 그러나 택시에 탑승함으로써 거리의 수많은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것 같아 보였던 클레오는 차량 속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시선들의 대상이 된다. 이동 중에도 차창 밖의 행인들의 시선과 옆 차선 차량을 운전하는 남성들의 희롱을 겪은 클레오는 심지어는 창밖으로 마주한 아프리카의 원시적인 가면으로부터도 자신을 관찰하는 시선을 느낀다. 그리고 이때 그는 문득 거북함을 호소한다. 한편, 남성 지배적인 택시 업계에서 여성으로서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밤거리도 두렵지 않다며 용감한 투쟁담을 들려주는 이 여성 택시기사와의 동행에서 클레오는 여성의 직업에 대한 일종의 성정치학적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 에피소드 또한 이후 펼쳐질 클레오의 전복적인 산책 여정을 예고해 주는 내러티브 기호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한 클레오는 애인과의 만남을 준비하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느끼면서도 신체 가꾸기를 위한 스트레칭을 한다. 속옷 차림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그에게 앙젤르는 길고 화려한 털로 꾸며진 아름다운 실내가운을 입힌다. 스트레칭을 마친 클레오는 이내 침대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아름답기에 사랑받는 여자’라는 관습적 내면화를 보여주는 반복적인 신체 움직임으로, 닫힌 틀에 갇힌 자아 대상화에 불과하다. 연이은 장면에서는 ‘남자는 아픈 여자를 싫어하니까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말라’는 앙젤르의 충고가 클레오에게 전해진다.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야 할 공간인 집/침실에서마저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위해 꾸밈노동을 해야 하는,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음이 계속해서 영화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스타 가수이자 부유한 애인을 가진 클레오의 일상을 지배하는 행위는 거울 속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다. 영화 속에서 거울은 가부장적 조직과 규제 속에서 훈련된 클레오의 행위가 정체성으로 재현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버거가 말한 바와 같이, 클레오의 자아는 감시자로서의 자아와 감시당하는 자아라는 두 개의 항으로 찢어져 거울 보기의 행위를 반복하면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다음 장인 5장에서, 클레오는 사업 일로 바쁘기에 잠시 들렸다 가는 연인과 의례적인 만남을 갖는다. 연인에게 영화 <돈주앙>을 보러 나가는 데이트를 조르기도 하지만, 그는 ‘나의 여신 클레오파트라’, ‘나의 보석’이란 찬사를 클레오에게 퍼붓고 곧 떠날 뿐이며, 아프다는 클레오의 말에 ‘고운 몸에 병이 나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고통을 ‘괜한 걱정’ 따위로 치부해 버린다. 이후 노래 연습을 위해 방문한 두 친구 역시 클레오의 병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우스꽝스러운 장난을 치면서 클레오 갈등을 빚는다.
이후 이어지는 시퀀스에서 클레오가 <당신 없이(Sans Toi)>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당신 없이는 나는 빈 껍질이에요”라는 가사를 통해 타인의 시선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클레오를 떠올릴 수 있다. 이렇듯 애인의 태도와 자신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클레오가 절망적인 피로감을 느끼게 되면서, 아름다움만이 자신의 가치이고,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성이므로 자신은 행복하다고 믿었던 그녀의 정체성에 균열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강박적 욕망으로부터 탈주 충동을 느낀 클레오는 이제 지금껏 스스로를 옥죄어왔던 가발과 온갖 치장을 벗어던진다. 화려하게 장식된 흰 실내가운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검은 원피스로 갈아입은 그는 앙젤르의 경고를 무시하고서,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털모자를 쓴 채 홀로 집을 나선다.
2. 보는 주체로서의 플로랑스
다시 거리로 나선 클레오는 여전히 도시 사람들의 시선이 가닿는 대상이다. 하지만 이때 클레오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변화가 포착된다. 홀로 거리에 나선 클레오는 중국음식점 외부에 걸린 거울 앞에 서는데, 전반부와 대비되는 태도와 독백으로 자신의 이미지 투영에 직면한다.
“표정 없는 얼굴, 바보 같은 모자…”
그의 독백은 처음부터 이 순간까지 반복되어온 아름다움에 고착된 대상화된 정체성을 전복시키기 시작한다. 이런 전복은 보여지는 대상에서 세상과 자신을 보는 주체로 생성하기 시작하는 산책 여정으로 급진전된다.
이제 그는 ‘스타가수 클레오’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파리라는 도시의 군중 중 하나, 즉 ‘익명의 존재’로서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클레오는 산 채로 개구리를 삼키는 신기하지만 끔찍스러운 마술쇼를 구경하기도 하고, 사람이 붐비는 카페에서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그들을 관찰하기도 하면서, 익명의 군중 속에서 신체의 충동을 따라가며 산책하는 ‘탐사자’로 변화해나간다.
이전까지는 마치 그의 모습을 관음 하듯이 촬영했던 카메라의 시점은 이제 여성이자 주체인 클레오의 시선으로 바뀌어 촬영된다. 그는 여전히 시선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동등한 인격체로서 다른 이들을 관찰하는(따라서 때로는 시선이 부딪히며 눈을 마주치기도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클레오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조각 작업실로 향한다. 이곳에서도 클레오는 작업을 하는 조각가들과 조각품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찰을 멈추지 않는다. 친구는 조각실에서 누드 모델 일을 하는 중인데, 지금까지 줄곧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왔던 클레오가 이제는 ‘보는’ 입장에서 누드 모델, 즉 대상으로 서 있는 친구를 관찰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일을 마치고 클레르는 친구와 같이 거리를 걸으며 신체와 일상, 그리고 자신이 직면한 병과 죽음, 불안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이 과정에서 친구는 누드모델 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휴면상태와 같으며, 조각가들은 그저 형태와 아이디어로 자신의 신체를 보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신체 주체성을 토로한다. 여성의 신체를 대하는 가부장적 통념과 시선을 전복시키는 이런 경험은 점술가의 예언이나 앙젤르의 충고와 같은 운명적 틀에 갇혀있던 클레오에게 주체-되기의 계기로 다가온다.
친구가 헤어진 후, 뚜렷한 목적지 없이 거리를 방황하던 클레오는 홀로 몽수리 공원에 들어선다. 보는 이 없는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는 클레오는 휘파람을 불면서 자신의 신체와 세상의 관계를 즉흥적으로 노래한다.
아름답고 변덕스런 나의 몸/ 새파란 나의 눈은/ 한번 보면 빠져들어/ 나의 매혹적인 모습은/ 포기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유혹/ 모두들 궁금해하지 내 매력과 미소를
이렇게 터져 나오는 노랫말은 보여지는 대상에서 자신의 신체를 관찰하며 걷고 보는 주체가 되어 스스로 연출해 내는 즉흥극이기도 하다. 여기서 스스로의 신체를 관찰하는 클레오의 자아는 존 버거가 이야기한 여성의 분리된 두 자아 중 감시하는 자아, 즉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한 것과는 다르다. 클레오의 이러한 자기 응시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여부에 두었다기보다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또한 이렇듯 능동적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탐색자의 역할을 수행해나가는 클레오를 통해, 영화는 ‘보는’ 행위의 쾌락이 능동적인/남성과 수동적인/여성으로 쪼개진다고 본 로라 멀비의 이론이 다소 이분법적인 구분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대상이었던 여성이 한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일종의 ‘여성적 시선’을 제시한다. 이러한 영화 속에서 관객들은 주체로서의 남성이나 객체로서의 여성보다는 주체되기를 선택한 여성의 시선에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연의 소리와 풍경을 만끽하며 홀로 걷고 있던 클레오에게 ‘앙투완’이라는 남자가 그녀를 ‘여름날 여신(Flora)’이라고 칭송하며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한다. 환대 없는 어색한 상태에서 시작된 둘의 관계는 이내 죽음에 대한 불안감 공유로 소통이 가능해진다. 클레오는 암을 진단받을지도 모르는 불안을, 앙투완은 알제리전 참전 중 나오게 된 휴가의 마지막 날, 전쟁 중 닥쳐올지 모를 죽음에 관한 두려움을 토로한다. 내면의 고통을 드러내며 소통하게 된 타자와의 만남은 클레오에게 잊었던 기억의 ‘체현’, 즉 잠재된 주체성의 발현을 촉발하는 동기로 작동한다.
클레오는 ‘클레오파트라’에서 따온 스타 가수로서의 가명 대신 자신의 본명 ‘플로랑스Florence’(플로랑스는 꽃의 신 ‘플로라Flora’로부터 유래한 이름으로, 꽃처럼 피어나는 생명력을 상징한다.)를 기억해 낸다. 거울 틀 속에 갇혀 보여지는 대상에 머물던 클레오가 플로랑스라는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은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 혹은 거리 군중의 시선에 조응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이 일상과 전쟁, 개인적 삶과 사회적 정치의 공존은 ‘클레오→플로랑스’라는 변화, 즉 보여지는 대상에서 보는 주체로의 변이생성을 충동하는 ‘산책의 변증법’(산책하는 한 존재가 거리에서 군중과 만나며 변화하는 모습을 벤야민은 ‘산책의 변증법’으로 설명해낸다.)을 드러내준다.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은 플로랑스는 가부장적 운명론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처음으로 자신만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3. 경계 밖을 사유하는 산책의 여정
아름다운 스타 가수인 클레오가 익명의 군중 속에 떠도는 플로랑스로 변화해가는 과정은, 거울이라는 틀 속에 갇힌 대상에서, 그 틀을 깨고 탈주하는 주체의 회복이자 생성이라는 점에서 극적 대비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여성 이미지를 구축해온 성차별적 영화 관습에 전복적인 이미지 재현을 달성해낸다. 1961년, 여성들이 처한 삶의 영역과 조건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었던 제2 물결 페미니즘(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어 서구세계 전체로 퍼진 여성주의 운동으로, 제1세대 여성주의가 여성 참정권을 비롯하여 제도적 성평등에 집중한 데 비하여, 제2세대 여성주의는 섹슈얼리티, 가족, 재생산 권리, 불평등 등으로 담론 범위를 넓혔다.)이 막 태동하던 시기 세상에 나온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사회적인 표상으로서의 여성 이미지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존재론적 고뇌를 겪는 한 개인으로서의 여성의 이야기다.
그것은 ‘성녀와 창녀’ 혹은 ‘숭배와 강간’으로 상징되는 틀을 깨고 여성 주체가 생성하는 또 다른 시공간을 찾아 나선 산책의 여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발표된 지 약 반세기가 흐른 현재, 여전히 영화계 내에서 여성은 물신화된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되며 ‘여성으로서의 여성’은 대부분 부재하는 상황에서 이렇듯 클레오가 가지는 주체로서의 여성 이미지 서사는 젠더적 관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쟁점을 가진다. 관습적 세상의 틀로부터 탈주하면서 현실의 변화를 사유하고 스스로 실천해 내는 클레오의 그러한 산책 여정은 현실과 공존하는 영화적 시공간의 기능을 증명해 내는 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변재란, 「아녜스 바르다, 여성의 역사, 영화의 실천」,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제38권 2호,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9, 121-142쪽.
유지나, 「대상에서 주체로의 변이생성 연구: <5시에서 7시까지 클레오>를 중심으로」, 『씨네포럼』, Vol.0 No.34,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9, 9-30쪽.
Berger, John, 「다른 방식으로 보기」, 최민 옮김, 열화당, 2012.
Laura Mulvey, Visual and Other Pleasures, Basingstoke: Macmillan, 1989, 16p.(쇼히니 초두리, 「페미니즘 영화이론」, 노지승 옮김, 앨피, 2012, 67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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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후기] '종이의 집'으로 보는 거짓말.
종이의집으로 보는 거짓말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거나 왜곡하여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다.인간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먼 과거의 아우구스티누스에서부터 소크라테스, 볼프, 칸트 등등 많은 철학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고찰되어 왔다. 하루에도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숨기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명쾌하게 진실만을 이야기하면 답답함 없이 시원하게 흘러갈 텐데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는 걸까?
나에게 이 드라마를 소개해준 친구가 한 말이 있다. "너는 이 드라마를 보고 암에 걸릴지도 몰라. 진짜 답답하거든."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정말 암에 걸릴 것 같아 3화까지 본 후 포기했다. 그 이후 시즌 3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이 드라마를 포기했던 이유가 이제는 다시 보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이 드라마를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로 보았다. 드라마의 내용은 한 천재 교수가 8명의 범죄자를 데리고 조폐국을 장악해 유로를 엄청나게 찍어댄 후 경찰을 피해 도망가려고 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와 예고편만 보면 도둑들이나 오션스일레븐 같은 범죄 영화류로 보기 쉬운데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앞서 소개한 영화들처럼 계획에 맞춰 시원시원하게 돈을 훔치고 재기 넘치는 기술로 경찰을 곤혹스럽게 만들지 못한다. 종이의 집에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거짓말들로 완벽에 가까운 계획을 어긋나게 만들고 임무를 힘겹게 수행해 나간다.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한 "암에 걸릴지도 몰라"라는 말은 "거짓말 때문에 열받아"라는 말과 같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거짓말 때문에 시원한 스토리 전개(예상)에서 힘겨운 스토리 전개(현실)로 변한다. 우리가 암에 걸릴 것 같다는 말도 예상과 다른 현실. 진실과 다른 거짓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의 중심인물들은 8명의 범죄자 그리고 교수, 경찰, 인질들이다. 물론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도 무시하기에는 비중도가 높지만 드라마에서 계속 비추어 주고 있는 인물들이 8명의 범죄자와 교수, 경찰, 인질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등장인물들은 처음 시작부터 혹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과거에 했던 거짓말을 실토하기도 한다. 거짓말은 범죄자들뿐만 아니라 인질들, 경찰도 한다. 가령 경찰과 인질 중 한 명은 자신의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인질 중 한 명은 사랑의 감정을 이용하여 남을 속인 후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당연히 범죄자들은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계속 거짓말을 한다. 등장인물들의 거짓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에서 남보다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거짓말, 감정에 의한 거짓말, 양심 때문에 한 거짓말까지 다양하다. 이 거짓말들이 다양하기에 어떤 범주로 나누기는 힘들지만 결국 이 모든 거짓말은 자신을 위한 거짓말이다. 물론 이타적이라고 느껴지는 거짓말도 있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이타심을 발휘하여 하는 거짓말은 없다. 이곳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이 불편할까 봐 혹은 자신의 기분이 찜찜해질까 봐 거짓말을 한다. 그 결과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되거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만 결코 이타심 때문에 한 행동이 아니다. 거짓말을 할 때 진정 타인을 위한다면 그 거짓말은 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내가 했던 거짓말이 진정 타인을 위했던 것인가? 아니면 나의 감정과 양심에 생채기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가?
"왜 그래? 내가 네 목숨을 구했는데 불쾌하게 굴 것 없잖아"
"날 구했다고요?"
"그래"
"어떻게요?"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처럼요? 나치가 가스실 행렬에서 열외 시키는 것처럼요?"
"난 나치가 아니야 네가 속옷에 핸드폰을 숨기는 바람에 널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잖아"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했는데요 거절했어요? 저항했어요? 아니잖아요 내 다리를 쐈잖아요.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요. 그리고 이렇게 가두었죠. 숨도 못 쉬고 화장실도 못 가요.
그리고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치 중 가장 착한 나치라고 해도 나치는 나치니까요."
- 종이의 집 시즌 1 中 -범죄자 중에 가장 착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범죄자는 범죄자인 듯. 거짓말 중에 가장 착한 거짓말이라 해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이 드라마는 재밌는 장치를 하나 두었다. 가면이다. 가면인즉 거짓말이다. 범죄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당연히 가면을 쓰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인질들도 가면을 쓴다. 인질들이 왜 가면을 쓰지?라고 생각하면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이유를 든다. 첫 번째로 인질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두 번째로 인질과 범죄자 간에 구분을 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범죄자와 인질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경찰은 섣불리 범죄자들을 제압할 수 없다. 때문에 범죄자들은 인질들에게 자신들과 같은 달리 가면을 쓰게 한다. 동시에 범죄자들은 인질과 범죄자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외부와 소통이 될 만한 순간에서 인질들에게 범죄자처럼 하도록 코스프레를 시킨다. 그리고 보통 영화와 다르게 이 드라마에서는 범죄자들은 인질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고 모두 보여준다. 외부와의 단절된 순간. 조폐국 내부에서 인질들과 범죄자들만 소통할 수 있는 순간에 범죄자들과 인질들은 가면을 벗고 서로의 맨 얼굴을 보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결국 외부에만 거짓을 들어낼 뿐 내면에서는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내고 진짜 모습 보인다. 내면과 외면이라고 따지면 페르소나까지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을 텐데 여기까지 나아가면 머리가 너무 아프기 때문에 차치하도록 하자.
극 중 제일 재밌는 장면으로 뽑으면 인질 한 명이 부상을 당해 외부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고립된 조폐국으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이때 범죄자와 인질들은 같은 복장과 가면을 쓰고 총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위협한다. 이 들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표정은 긴장감과 불안감을 극대화 시킨다. 이 장면만 보면 다 같은 복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범죄자인지 누가 인질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장면으로 극은 가면(거짓말)을 범죄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인질)도 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 거짓말 혹은 범죄라는 것은 악인과 평범한 사람 구분 없이 누구나 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즉 보통 거짓말을 나쁜 것으로 규정했을 때, 범인(犯人_죄를 저지른 사람)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범인(凡人_평범한 사람)도 거짓말을 한다. 누구나 다 거짓말을 한다.
극의 전개는 시간이 갈수록 완벽한 계획과 거짓말이 뒤섞여 혼란스럽게 흘러간다. 극 중 범죄자들의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가 계속 거짓말을 하는 범죄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도대체 왜 계획대로 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데 왜 거짓말을 한 거야?" 범죄자 중 하나는 답한다."너에게는 계획이 있지. 하지만 지금 당장 돈이 들어온 것은 아니잖아" 이것을 거짓과 진실로 치환하자면 이렇게 볼 수 있다. "왜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답한다. "진실은 있지.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 좋을지 안 좋을지 모르잖아."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거짓말에 대한 정의들을 점점 더 흐릿하게 만들고 알 수 없게 뭉게버린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과연 나쁘다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지. 진실이 꼭 좋은 것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지. 도통 알 수 없다.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거짓말이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드라마의 답이 어디에 다다를지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거짓말에 대한 답을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을지는 이 드라마의 끝을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각자의 몫.
"난 나치가 아니야 네가 속옷에 핸드폰을 숨기는 바람에 널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잖아"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했는데요 거절했어요? 저항했어요? 아니잖아요 내 다리를 쐈잖아요.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요. 그리고 이렇게 가두었죠. 숨도 못 쉬고 화장실도 못 가요.
그리고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치 중 가장 착한 나치라고 해도 나치는 나치니까요."
"미안해.."
-종이의 집 시즌 1 中-그래도 한 가지 이 드라마에서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있다. 앞서 소개한 대화에서 뒷부분에 범죄자가 하는 대답이다. "미안해.." 내가 한 거짓말이 상대방을 좀 더 나은 상황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지라도 상대방이 그 거짓말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다면 그땐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
종이의 집이 시즌 3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나의 궁금증이 거짓말에 대한 물음이 시즌 3쯤에는 답을 내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누고 싶은 것들.
1. 거짓말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2. 거짓말이 들키는 순간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인가?
3. 가장 최근 한 거짓말은 무엇일까?
4. 이타적인 거짓말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5. 어린아이의 거짓말과 성인의 거짓말은 어떻게 다른가?
6.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7.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8. 내가 최초 했던 거짓말은?
9.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까?
10. 거짓 없이 진실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까마구의 까망책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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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 제 8일의 밤, 실망스러운 오컬트 영화
넷플릭스에 한국 공포영화 제8일의 밤이 공개되었어요.
예고편에서 오컬트 분위기를 한껏 뽐냈기 때문에 꽤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요.
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을 가지고와서 번뇌와 번민을 요괴화 하여 전개되는 이야기인데요.
생각보다 오컬트의 분위기도 약하고 그렇게 무섭지도 않아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이성민 배우가 열연하고 있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네요.
보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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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여운 것들> 메인 예고편
2024년 3월 6일 개봉 확정! 올해 아카데미 최고의 화제작 [가여운 것들] 메인 예고편 공개‼ 엠마 스톤, 마크 러팔로, 윌렘 대포의 유니크한 변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놀라운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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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황비홍: 무신임세영> 예고편
진정한 영웅이 깨어난다!
실력을 숨긴 채 평범한 상인으로 살아가던 ‘임세영’은
일본인들이 시장 이웃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해지려는
‘임세영’ 앞에 전설적인 무림 고수 ‘황비홍’이 나타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