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4-07 10:26:33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실화 바탕 스포츠 영화 모음
<블라인드 사이드>, <우. 생. 순>, <국가대표> 외 5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스포츠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요즘 영화계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을 필두로 다양한 스포츠 영화가 극장가를 채우고 있습니다. 특히 며칠 전 개봉한 <리바운드>와 <에어>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스포츠 영화 8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감동적인 서사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들이랍니다.
미식축구, 핸드볼, 레슬링부터 스키점프, 마라톤, 야구, 복싱, 농구까지! 전부 다른 스포츠를 다뤘지만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묵직한 감동만큼은 서로 같은 8편의 실화기반 스포츠 영화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블라인드 사이드(2010)
The Blind Side

감독: 존 리 행콕
출연: 산드라 블록, 퀸튼 아론, 팀 맥그로, 릴리 콜린스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8분
서로의 인생을 바꾼 따뜻한 인연
어린 시절 약물 중독에 걸린 엄마와 강제로 헤어진 후,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커가던 ‘마이클 오어’. 건장한 체격과 남다른 운동 신경을 눈여겨본 미식축구 코치에 의해 상류 사립학교로 전학하게 되지만 이전 학교에서의 성적 미달로 운동은 시작할 수도 없게 된다. 급기야 그를 돌봐주던 마지막 집에서조차 머물 수 없게 된 마이클. 이제 그에겐 학교, 수업, 운동보다 하루하루 잘 곳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날들만이 남았다.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밤, 차가운 날씨에 반팔 셔츠만을 걸친 채 체육관으로 향하던 ‘마이클’을 발견한 ‘리 앤’.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는 확고한 성격의 리 앤은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마이클이 지낼 곳이 없음을 알게 되자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 잠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추수감사절을 보낸다. 갈 곳 없는 그를 보살피는 한편 그를 의심하는 마음도 지우지 못하던 리 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이클의 순수한 심성에 빠져 든 리 앤과 그녀의 가족은 그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리 앤 가족의 도움으로 성적까지 향상된 마이클은 본격적으로 미식축구 훈련을 시작하며 놀라운 기량과 실력을 발휘하고, 리 앤은 그의 법적 보호자를 자청하며 마이클의 진짜 가족이 되고자 한다. 주변의 의심 어린 편견, 그리고 마이클이 언젠가 자신을 떠나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뒤로한 채...

명예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것은 진정한 자신이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다.
의미 있는 목표를 위해 죽는다면
명예와 용기를 모두 갖게 된다는 점이 좋다.

제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Forever The Moment

감독: 임순례
출연: 문소리, 김정은, 엄태웅, 김지영 등
장르: 드라마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24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한국 여자 핸드볼 성공 신화
대한민국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인 최고의 핸드볼 선수 미숙(문소리 분). 그러나 온몸을 바쳐 뛴 소속팀이 해체되자, 그녀는 인생의 전부였던 핸드볼을 접고 생계를 위해 대형 마트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 일본 프로팀의 잘 나가는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던 혜경(김정은 분)은 위기에 처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감독대행으로 귀국한다. 팀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라이벌인 미숙을 비롯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노장 선수들을 하나 둘 불러 모은다. 혜경은 초반부터 강도 높은 훈련으로 전력 강화에 힘쓰지만 그녀의 독선적인 스타일은 개성 강한 신진 선수들과 불화를 야기하고 급기야 노장 선수들과 신진 선수들 간의 몸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는데...

나 포기 안 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포기하지 마.

우리 약속 하나 합시다,
만약 지더라도 울지 않기로.
결과가 어떻게 되든 오늘 여러분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여줬습니다.
저에게도 지금이 생애 최고의 순간입니다.
당갈(2016)
Dangal

감독: 니테쉬 티와리
출연: 아미르 칸, 사크시 탄와르, 파티마 사나 셰이크 등
장르: 드라마, 전기, 액션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61분
딸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친 아버지
인도 하리야나에 사는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은 아버지의 반대로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레슬링을 포기한다. 아들을 통해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내리 딸만 넷이 태어나면서 좌절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딸이 또래 남자아이들을 신나게 때린 모습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레슬링 특훈에 돌입한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첫째 기타(파티마 사나 셰이크)와 둘째 바비타(산야 말호트라)는 아버지의 훈련 속에 재능을 발휘, 승승장구 승리를 거두며 국가대표 레슬러로까지 성장해 마침내 국제대회에 출전한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기만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슬럼프로 연이은 패배만 이어지는데…

내일 이기면 너 혼자 이기는 게 아니야.
수백만의 여자들이 너와 함께 이기는 거다.
그건 모든 여자들의 승리야.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평가받고
가사 노동을 강제로 하고 자식을 낳기 위해 시집보내지는 여자들 말이다.
내일 시합은 아주 중요한 거다.
왜냐하면 내일 너는 상대방 선수뿐만 아니라
여자를 하찮게 보는 모든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달리스트는 나무에서 열리는 게 아니야.
그들을 키워내야지. 사랑으로, 성실로, 열정으로.
국가대표(2009)
Take Off

감독: 김용화
출연: 하정우, 성동일, 김지석, 김동욱 등
장르: 드라마, 코미디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37분
동계스포츠 불모지 대한민국의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이야기
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된다. 이에 전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 방종삼(성동일 분)이 국가대표 코치로 임명되고, 그의 온갖 감언이설에 정예(?) 멤버들이 모인다. 전(前) 주니어 알파인 스키 미국 국가대표였다가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입양인 밥(하정우 분), 여자 없으면 하루도 못 버틸 나이트클럽 웨이터 흥철(김동욱 분), 밤낮으로 숯불만 피우며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아온 고깃집 아들 재복(최재환 분), 할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하는 짐이 버거운 말 없는 소년 가장 칠구(김지석 분), 그런 형을 끔찍이 사랑하는 4차원 동생 봉구(이재응 분)까지! 방 코치는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엄마와 같이 살 집이 필요한 밥에게는 아파트를, 사랑 때문에 또는 부양가족 때문에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흥철, 칠구-봉구 형제, 그리고 재복에게는 군 면제를 약속한다. 단, 금메달 따면! 스키점프가 뭔지도 모르지만 한때 스키 좀 타봤다는 이유로 뽑힌 이들이 모이면서 대한민국 최초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결성된다. 그러나 스키점프(Ski Jump)의 스펠링도 모르는 코치와 경험 전무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은 험난 하기만 한데...

뛰어 이 새끼야
니가 뛰어야 내가 군대를 안 갈 거 아니야!

나 귀화했어요, 나 버린 나라에.
근데 또 버렸네요, 대한민국이.
말아톤(2005)
Malaton

감독: 정윤철
출연: 조승우, 김미숙, 이기영, 백성현, 안내상 등
장르: 드라마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15분
서브쓰리를 달성한 발달장애 마라토너 이야기
몸은 20살이지만 마음은 5살 아이처럼 순수한 청년 초원. 어린 시절 자폐증을 진단받은 후 여러 가지로 부모님 걱정을 사는 게 일상인 초원에게는 얼룩말과 초코파이, 그리고 마라톤이 그의 전부이다. 어머니 경숙은 아들의 코치로 정욱이라는 전직 마라토너에게 부탁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아들이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데...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

제 소원이 뭔지 아세요?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 거예요.
퍼펙트 게임(2011)
Perfect Game

감독: 박희곤
출연: 조승우, 양동근, 최정원, 마동석, 조진웅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7분
전국이 주목한 전설적인 한국 투수들의 맞대결
대결을 원한 세상 속으로 꿈을 던진 두 남자, 최동원 선동열의 고독하고도 치열한 맞대결!! 불안과 격동의 1980년대,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전 국민을 사로잡고 있었다! 노력과 끈기로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자리 잡은 롯데의 최동원! 그리고 최동원의 뒤를 이어 떠오르는 해태의 천재 투수 선동열! 세상은 우정을 나누던 선후배였던 두 사람을 라이벌로 몰아세우는데... 전적 1승 1패, 그리고 1987년 5월 16일, 자신들의 꿈을 걸어야 했던 최동원과 선동열의 마지막 맞대결이 펼쳐진다! 선동열 앞에서만은 큰 산이고 싶었던 최동원. 그 산을 뛰어넘고 싶었던 선동열

한 물 갔던, 두 물 갔던 끝날 때까지 던집니다.
내한테는 그게 야굽니다!

일구일생, 일구일사
공 하나에 죽고, 공 하나에 산다.
신데렐라 맨(2005)
Cinderella Man

감독: 론 하워드
출연: 러셀 크로우, 르네 젤위거, 폴 지아마티 등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44분
경제 대공황 시기의 미국인들은 전율케 했던 복서 짐 브래독 이야기
1936 미국의 최고 암흑기였던 경제 대공황 시기... 전도유망했던 라이트 헤비급 복서 브래독(러셀 크로우)은 잇단 패배와 부상으로 복싱을 포기하게 되고, 아내(르네 젤위거)와 아이들을 위해 각종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하지만 복싱에 대한 꿈을 단념하지 못한 그는 결국 다시 링 위에 오르고,. 왜소한 체구, 끊임없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연승행진을 이어간다. 이미 2명 이상의 상대를 사망 직전까지 몰아간 악랄한 챔피언 맥스 베어와의 결전을 눈앞에 둔 브래독...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경기를 위해 링에 오르는데... 스스로를 '헝그리 복서'라 칭하며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한 전설적 복서 짐 브래독... 그의 진실된 이야기와 함께 가슴 벅찬 가을의 감동이 시작된다.

당신은 뉴저지의 자존심이고 우리 아이들의 영웅이고
나에게는 최고의 챔피언이에요.

링 위에 오르게 해 줘.
적어도 누가 날 때리는지는 알 수 있잖아.
리바운드(2005)
Rebound

감독: 장항준
출연: 안재홍, 이신영, 정진운, 김택, 정건주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2분
최약체 고교농구팀이 써 내려간 기적
농구선수 출신 공익근무요원 ‘양현’은 해체 위기에 놓인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신임 코치로 발탁된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의 첫 경기 상대는 고교농구 최강자 용산고. 팀워크가 무너진 중앙고는 몰수패라는 치욕의 결과를 낳고 학교는 농구부 해체까지 논의하지만, ‘양현’은 MVP까지 올랐던 고교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선수들을 모은다. 주목받던 천재 선수였지만 슬럼프에 빠진 가드 ‘기범’ 부상으로 꿈을 접은 올라운더 스몰 포워드 ‘규혁’ 점프력만 좋은 축구선수 출신의 괴력 센터 ‘순규’ 길거리 농구만 해온 파워 포워드 ‘강호’ 농구 경력 7년 차지만 만년 벤치 식스맨 ‘재윤’ 농구 열정만 만렙인 자칭 마이클 조던 ‘진욱’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최약체 팀이었지만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가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써 내려간 8일간의 기적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할 때, 우리는 ‘리바운드’라는 또 다른 기회를 잡는다.

명심해라,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누구한테나 처음이란 게 있다.
이번 대회가 네 통산 기록 시작이 될 거야.
이렇게 총 8편의 실화 기반 스포츠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이번 주말은 씨네랩이 추천드린 영화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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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명의 배우가 전하는 가지각색의 이야기
나는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이유는 그냥 멋있어서. 난 사람들을 울릴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무언가 말을 해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앞뒤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건 그 누가 와도 싫겠지? 나는 그런 것들이 엄청 싫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하곤 했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어떤 말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다 내가 재밌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영화 리뷰를 써서 올리는 것도 대중적인 픽들을 골라 쓰는 것, 그러니까 홍상수의 작품보다는 <라라 랜드>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걸 써서 올려야 사람들이 더 많이 본다고 믿고 있다. 아니면 최근에 개봉했던 작품을 쓰는 거지.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에 나름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을 쓰면 사람들이 극장 가기 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나름대로 뿌듯하겠지? 근데 나는 이게 어느 정도는 일반 대중들에게 먹힌다는 걸 앎에도 불구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쓴 세상들을 읽게 만들려면 사람들이 어떤 걸 궁금해야 할지를 알면서도 내가 진정성을 담아 쓸 수 있는 글만 키보드에 적는 것이다.
그런 태도에서 오는 강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글 쓰기가 쉽다는 것이다. 없는 내용을 만들어서 쓰기보다는 있는 생각들을 와다다 쓰는 게 쓸 때 편하다. 두 번째. 몰입이 잘 된다는 것이다. 4초당 1번꼴로 휴대전화를 보는 나는 집중이 잘 돼야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 가치관이 담겨 누가 읽든 글의 힘이 느껴지게 하는 것 같다. <완다 비전>을 보고 느낀 후반부의 처연함이나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를 느낀 인연의 감사함도 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해서 쓴 글이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적용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떤 씨네 아티스트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결합해서 생생한 이야기를 만들곤 하는데, 그런 식으로 극을 만들면 확실히 하고자 하는 말을 진정성 있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교훈을 며칠 전에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지난 8일 왓챠에 박정민-손석구-최희서-이제훈 네 명의 배우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단편영화가 공개됐다. 아무 생각 없이 본 단편영화 4작품이지만 난 이번 해에 봤던 한국영화 중 가장 큰 감동을 받았기에 여러분에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각 배우들이 가진 진정성이 너무나 잘 느껴져 좋았다.
1) 반장선거(박정민)
반장선거는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다. 한 초등학교 반에서 반정 선거를 하는데, 세 명의 후보가 나와서 각자의 선거운동을 펼친다. 사실 돌아보면 '초등학교 반장이 별건가' '고등학교 학생회장이 별건가' '대학교 ~장이 별건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물론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나름대로 치열하게 했을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트와이스 섭외부터 시작해 가지각색으로 공약을 펼치는 아이들. 마치 2022 대선을 앞두고 있는 양 당의 후보를 보는 듯하다. 보통 이렇게 반장선거에 나갔던 아이들은 학생들의 주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흔히 말하는 '아싸'에 속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은 주인공. 사랑받고 싶고 어울리고 싶어 하는 마음에 반장선거를 나서는데, 여기서 오는 코미디와 서스펜스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저랬지'하는 공감을 일으킨다. 아마 <벌새>를 재미있게 봤다면 이 작품 역시 좋다고 느낄 것 같다. <벌새>의 은희는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인데, 이때 여기서 얻었던 따뜻한 포옹을 기억한다면 이 작품이 선사하는 뒤틀린 코미디가 인상 깊을 것이다. 아이들을 동정이나 이해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인격체로 바라보는 박정민 감독의 시선이 돋보인다.
2) 재방송(손석구)
재방송은 무명배우에 관한 영화다. 아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봤던 분들이라면 유이(박정민 역) 옆에서 '너 이 나라 감옥에서 인기 많겠다'라고 말하던 역할을 기억할 텐데, 이때 통역사를 맡았던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임성재 배우는 이모와 함께 사는 그냥 평범한 남자다. 피지컬은 좋아서 배우로서의 재능은 충만한 것 같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무명 배우들이 그렇듯 그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설정과 함께 이모와 함께 병원을 들렸다 결혼식장에 가는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다. 두 주인공 이모와 수인은 거대한 결핍이 있다. 이에 대해 수인은 아무래도 예측하기 쉽지만 이모는 말하는 순간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적으면 안 될 것 같다. 이모가 겪고 있는 심리적 부침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위로가 필요할 때가 온다. 내 옆에 소중한 사람이 울고 있을 때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따뜻한 손 한 번을 건넨다던가 할 때가 그 예시가 될 것이다. 이 마음의 이면에 깔려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진정성일 것이다. 겉으로는 툴툴대도 용기 내 손 한번 건네보는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는데, 손석구 감독은 이런 우리에게 '어떤 마음으로 손을 건네어야 하는가'와 함께 그가 제시한 방식으로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후의 <블루 해피니스>의 이제훈 감독처럼 수인 캐릭터가 손석구 배우의 무명배우를 연상케 하는데, 이때 겪었던 '묵묵한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감독은 아는 것 같다.
3. 반디(최희서)
'없다'라는 단어는 참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늘 하던 것이 없고. 돈이 없고. 헬스장 이용권이 만료되고. 익숙하던 것이 날 떠나고 나서야 드는 슬픔은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이 영화는 이 상실과 부재에 관한 영화인데, 우리가 떠나보낸 것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난 아직도 사라지는 게 두렵다.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서, 또 나이가 들어서 날 떠나간다면 앞이 캄캄하다. 요즘은 이런 두려움을 말해 타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드러내긴 했지만 그게 그렇다고 해서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필연적으로 우리를 따라오는 어두움에 대해 최희서 감독은 어떤 태도로 이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중반부 주인공의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하는 대사나 딸이 엄마에게 하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것이다. 상실에 대한 최희서 감독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나는 4편의 단편영화 중 가장 좋았다. 나는 아직 보내기 싫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우리, 이별하지 말자. 사랑했다면 그 나름대로 영원히 그들을 기다리며 살자. 그게 우리의 전부가 될지도 모르니까.
4. 블루 해피니스(이제훈)
난 지금 25살이다.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이 주위에 많은 요즘, 주위에 주식이나 비트코인 하는 사람들 진~짜 많다. 부동산 정책이 어쩌니 코로나가 어쩌니 원인은 여러 가지가 제시된다고 듣는 것 같다. 근데 사실 이런 걸 떠나서 돈 벌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을 것이다. 그거 했다고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뭐 멘탈이 약한 사람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취업준비생인 주인공을 내세워 어떻게 주식에 빠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훈 감독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퍽퍽한 현실에 놓인 우리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바쁜 세상 속에서 돈 문제로 속 썩는 우리는 이런 실패들에 자연스레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현실을 사는 각자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며 격려를 보낸다. 지금의 스타 이제훈이 아닌 무명 배우 때 겪었던 고민과 딜레마를 현재에 잘 녹아든 작품이다. 자기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내면화했기 때문에 상황이 더 구체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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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삶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전쟁의 찬혹함 <독일영년>
지금까지 봐왔던 전쟁 영화는 대부분 전쟁 상황을 스케일 크게 표현하고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또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은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성인 의 이야기만 보았던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이 끝난 후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 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비극을 맞았는지 아이가 가는 동선을 따라 보여주었다. 그래 서 전쟁 후의 독일 아이들의 삶이 어땠는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에드문트의 12세라는 나이가 어딘가에 소속 되기에 애매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드문트는 계속 새로운 자신의 소속을 찾아 헤매는것 처럼 보였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어리다고 배제 당하고 어른들 사이에서는 일자리도 못구하고 당연히 무시 당한다. 가족내에서도 막내이며 아빠 마저도 큰아들을 먼저 챙긴다. 여기저기 치이다가 선생님 한테 마음을 주 지만 그 선생님 마저도 나치의 일원이었다. 에드문트가 마지막에 본인 보다 어린 아이들 과 축구를 하고 싶어하지만 거기서도 거절을 당한다. 결국 에드문트는 계속 여기에도 저 기에도 속하지 못하고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벼랑으로 몰려 혼자가 되는 모습이 더 비극 적으로 느껴졌다. 감독이 에드문트를 자살하는 결말로 만든 것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기 위한 방법이 에드 문트가 자살하는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주었다 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드문트가 자살하지 않고 선생님한테 일을 받고 의지 하여 살았다 면 아마 나치 일원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 일을 세습하지 않기 위해서 에드문트의 죽음 으로 끝냈다고 생각한다. 또 한 명의 어른이라도 아이에게 손을 뻗어 주었다면 죽음까지 내몰리지 않았을 것 같지만 과연 전후 폐허의 상태에서 남을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있었 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런 전쟁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 할리우드가 취하는 전쟁 영화가 과연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영화하면 멋지게 표현하고 더 큰 자본과 규모로 전쟁을 미화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큰 아픔이자 상처인데 그런 맥락을 무시한채 블록버스터 액션이라는 것에만 치중해서 눈의 즐거움을 위해 전쟁이라는 요소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또 이 영화를 보면서 현대 감독 중에 <신의 소녀들>, <엘리자의 내일>의 크리스 티안 문쥬 감독이 떠오르기도 했다. 개인의 삶을 통해 보여지는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형식이 비슷했다.
에드문트가 마지막까지 그나 마 비슷한 또래애들한테도 끼 지 못하고 다시 길을 나설 때 주변 환경이 전쟁의비극을 더 자세히 보여주었다. 주변의 건물과 에드문트가 한 프레임에 잡히니까 이 아이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는지 비교가 더 극대화 되었다. 그래서 비참 하고 쓸쓸한 감정이 더욱더 잘 전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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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2022>
기대하고 궁금했던 영화를 빠르게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운이 좋게도 제게도 그런 기회가 왔네요. 아카데미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 <로스트 도터>를 시사회를 통해 가장 먼저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여하튼 <로스트 도터>는 상당히 어려운 감정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는 고통들을 쉽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다만 <로스트 도터>가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점은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모성애의 어머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듦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을 버리고 나오는 어머니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식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기심을 드러내기도 하고요. 결과적으로 영화는 단순히 낳았다고 모든 것을 줄 수 없는 모성의 뒷면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육아의 그 참지 못할 스트레스와 더불어 아이들을 버리고 나왔다는 죄책감으로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인물을 그저 보여주면서 약간은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그런 감정들을 점점 스며드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랄까요. 다만 여기에서 그쳤다면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레다의 성장까지 보여줍니다. 어머니라는 것도 처음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게 언제든 간에 성장하면서 메꿔가는 것이겠죠.
직접적인 묘사보단 암시하는 듯한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더불어서 영화는 스릴러처럼 느껴질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안기는 쇼트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실로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흔히 예상했던 인물과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소재를 영화적 긴장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올리비아 콜맨과 제시 버클리의 연기가 놀랍습니다. 특히 제시 버클리가 정말 인상적인데, 이전부터 제시 버클리를 눈여겨보셨던 분들이라면 이 영화 역시 충분히 만족하실 것 같습니다. 다코타 존슨도 비중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전 영화들과는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그 어떤 영화보다 육아에 대한 고통을 생생하게 담은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그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 도피를 택한 독특한 인물을 내세운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가 훌륭한 점은 엄마의 삶보단 자신의 삶을 택한 레다를 비난하지 않음과 동시에 자녀란 존재는 얼마나 따뜻하고, 가족을 꾸리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성공한 연출 데뷔작이네요.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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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대로 사는 인간은 없다
-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코미디 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 언론/배급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영화 상영 이후 이어진 간담회에는 김홍기 감독, 처음으로 주연 역할을 맡은 '혜수' 역의 김재화 배우, '상민' 역의 조민재 배우, '래오' 역의 박강섭 배우, '은채' 역의 장세림 배우가 참석해 영화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표현했습니다."출근길에 듣는 라디오 광고에서 배우 이정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인생이 뭐 계획대로 되나요?" 역시 월드스타의 말은 다 맞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 친구들과 함께 강릉행 KTX에 몸을 싣고 있어야 한다. 현실은 휴일을 반납하고 분노를 삭이며 회사로 가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원통하다. 김 과장이 해야 할 일을 왜 내가, 그것도 주말에 대신해야 한단 말인가! "이 대리, 난 가정이 있잖아."라고 말하는 유부남 김 과장에게 "저도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가정이 있거든요!"라고 소리칠걸. 김 과장 때문에 주말 출근하는 것이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MBTI의 'J', 'P'에 관계없이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계획대로 사는 인간은 없다. 우리의 출생부터가 우리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으니 "나의 계획대로 살 수 있다"는 명제는 참이 될 수 없다. 걸핏하면 예상이 빗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정말 너무 심하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극단적으로 예측을 벗어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망진군'이라는 가상의 지역을 배경으로 지역 축제를 준비하는 콘텐츠 스타트업 '(주)질투는나의힘' 대표 '혜수(김재화)', 이사 '상민(조민재)', 퇴사한 직원 '래오(박강섭)', 단기 알바 '은채(장세림)'를 중심으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좌충우돌을 코믹하게 그려낸다.영화의 제목처럼 영화 속 설정은 '익스트림'하다. 개최 일주일 전, 망진군의 정종 문화제가 갑자기 연산군 문화제로 바뀐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객석엔 빈 의자만 가득하고, 큰돈을 주고 섭외한 국민 가수는 오지 않고, 연극을 하기로 한 지역 극단은 보이콧을 외친다. 잘못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잘못되는 셈이다. 익스트림 불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숏박스', '너덜트' 등 요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스케치 코미디 장르나 과거 김병욱 사단이 선도한 TV 시트콤처럼 잔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개연성에 대한 고려를 조금 내려놓고, 마음을 열고 본다면 90분 동안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라는 생각이 든다. (끝)* 5월 30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익스트림 페스티벌> 언론/배급 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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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석한 사막 위에 찍어낸, 묵직한 첫 발자국
듄 (DUNE, 2021)
개봉일 : 2021.10.20. (한국 기준)
감독 : 드니 빌뇌브
출연 :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삭, 제이슨 모모아, 조슈 브롤린, 하비에르 바르뎀, 젠데이아 콜먼, 스텔란 스카스가드
퍼석한 사막 위에 찍어낸, 묵직한 첫 발자국
<듄>이 개봉하기 전, 이런 카피가 정말 많이 보였다. “반지의 제왕을 이을 시리즈의 탄생”이라고. <반지의 제왕>을 이을 작품? 대체 어떤 세계관을 갖고, 어떤 영화를 만들어냈길래 이렇게 야심만만한 카피를 내놓을 수 있는 걸까?
애정 하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출연과 드니 빌뇌브 감독이 작품을 연출한다는 소식, 그리고 영화의 원작 소설 <듄>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의 오래된 뿌리이자 대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와 동시에 티모시 샬라메의 해변 스틸컷 한 장을 보는 순간 이 영화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비주얼의 영화가 나올지 쉽게 상상 되지 않았다.
<듄>이 개봉 전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며,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티켓 파워를 보여주는 바람에 아이맥스로 예매하기도 참 어려웠다. 꼭 큰 화면, 아이맥스로 보라는 말에 “이 영화의 1회차는 무조건 아이맥스다!”하고 뛰어들었는데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이 영화는 아이맥스 또는 돌비관에서 봐야 한다고 말이다.
여차여차 아주 어렵게 개봉 당일에 만난 <듄>은 말 그대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방대한 원작의 세계관의 아주 일부에 해당하는 분량이었지만 그럼에도 그토록 압도적일 수가 없었다.
이번에 개봉한 Part1에서는 묵직한 사건과 반전 같은 것 없이 꽤나 친절하게 세계관을 설명하고, 이제 막 주인공이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냈다. 오프닝을 이렇게 엄청나게 찍어버리면 다음 편은 어떤 영화가 될지, 벌써부터 심장이 떨린다.
긴 호흡으로 나뉘는 호불호
SF 시리즈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스타워즈>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을 기대할 수 있으나 두 작품은 결이 조금 다르다. 우선 주 배경이 되는 환경이 드넓은 우주와 삭막한 사막 행성으로 다소 차이가 있고, 스타워즈가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우주 활극이 주가 되는 느낌이라면, 듄은 삭막한 우주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위계질서와 지배욕. 그리고 두려움에 맞서 길을 찾는 주인공의 성장 담을 지켜보는 게 주가 되는 느낌이다. 물론 <듄>이라는 영화도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한 영화긴 하지만 말이다.
재빠르고 역동적인 SF를 선호하거나, <듄>에 그것을 기대했다면 영화가 주는 러닝타임의 압박감과 느긋함에 쉽게 눌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좀 많이 나뉘는 것 같다.
드니 빌뇌브 감독님의 전작을 보며 그의 영화는 호흡이 다소 긴 편이라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는데, <듄> 또한 드니 빌뇌브 감독 특유의 긴 호흡이 제대로 담긴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론 지루할 틈 없이 본, 마음을 뒤흔드는 대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호흡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1편이 깔끔히 마무리되는 걸 원했던 관객이라면 충분히 지루하다, 진행된 것 없이 이야기가 끊긴다. 같은 불호평을 이야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웅장한 세계관의 시작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목처럼 Part.1. 챠니의 대사처럼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뿐”이다. 영화를 통해 이 웅장한 세계관을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된다.
연료로 쓰이는 귀한 재료 스파이스와 명예, 부. 그리고 아라키스 행성을 두고 이어지는 아트레이데스, 하코덴 가문. 프레멘들의 대립 속에서 가문과 자신을 위해 두려움에 맞서야 하는 소년 폴의 성장과,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세계관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그리고 폴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며 그가 정말 운명을 바꿀 선택받은 자인지. 이 세계를 관통하는 답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Part.1을 보고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아졌다.
사실 <듄> Part.1이 개봉하기 전, 원작을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는데 1편의 두께에 압도되는 바람에 개봉 전에 원작을 읽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Part.1을 보고 나니 꼭 원작을 완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편이 나오기 전에 꼭 원작을 완독하리라!
드니 빌뇌브 감독님은 2편에선 더 발전된 액션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 언급했는데, Part.1에서 다소 아쉽게 느껴졌던 ‘액션의 부재’가 보완된, 시작 그 이상의 작품이라니. 기대감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영화는 최소 2-3편까지 찍어놓고 순차 개봉해야 하는, 그런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지.
작품 속 세계, 새로운 행성에 빠져들다.
퍼석한 사막의 모래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내 날카롭게 식어버리는 공기. 휘몰아치는 모래의 입체적인 질감과 모든 장면들에 역동적인 숨을 불어넣는 한스짐머의 음악들. <듄>은 시각과 청각을 완벽히 빼앗으며 영화 속 인물들이 서있는 10191년, 아라키스 행성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극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험, 새로운 세계와의 황홀한 만남이 이 영화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시리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역작이 될 것이며 티모시 샬라메의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이길 대표작이 될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마치 다니엘 레드클리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해리포터를 가장 먼저 떠올리듯, 시즌 2,3을 거친 후 티모시 샬라메하면 듄이 먼저 떠오를 때가 올 거라 생각한다.
SF 대작인 <스타워즈> 시리즈를 처음부터 제날짜에 맞춰 극장에서 관람한 세대들을 부러워했었는데, 나도 이제 같이 나이 먹어갈 SF 시리즈가 생겼다는 것에 벅찰 만큼 기쁜 순간이다. 나중에 “나는 듄 1편부터 개봉 당일 아이맥스로 봤다 이거야~” 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겠지?
듄 시놉시스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어떤 계시처럼 매일 꿈에서 아라키스 행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이라 불리는 아라키스는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로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다. 황제의 명령으로 폴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죽음이 기다리는 아라키스로 향하는데… 위대한 자는 부름에 응답한다, 두려움에 맞서라, 이것은 위대한 시작이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덴 가문
아라키스 행성을 오래 지배하던 하코덴 가문은 모래 위 스파이스를 쓸어 담으며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멘들을 억압한다. 프레멘들은 그들을 잔혹한 외지인이라 칭했으며, 하코덴 가문은 아라키스 행성이 가진 스파이스에 눈이 멀어 배려와 양심 따위는 멀리 집어던지고 탐욕스레 스파이스를 긁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계략을 세운 황제가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아라키스의 관리를 맡기게 된다. 소식을 들은 하코덴 가문은 우리가 다 일궈 논, 우리의 행성이라며 이를 갈다 제국과 협력해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공격한다.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덴은 사촌 사이지만 지향하는 바가 좀 다르다. 하코덴은 아라키스 행성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목적이고, 아트레이데스는 프레멘들과 협력해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인 것은 맞지만, 이익을 위해 협력을 부탁하는 것과 무조건적인 지배를 원하는 건 꽤 큰 차이가 있다.
하코덴 가문과 달리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프레멘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스파이스 수확기 안의 인부를 구하려 보호막 장치를 내버리는 결단을 내린다. 던컨은 프레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뛰어난 전사라 칭하기도 한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제국과 하코덴 가문이 원했던 지배와 피지배층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위치의 관계를 지향한다. 폴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프레멘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들의 마을로 합류한다.
Part1.에선 프레멘, 제국+하코넨 , 아트레이데스의 삼각구도였다면, 다음 시리즈는 프레멘+아트레이데스, 제국+하코넨(추가적인 대가문들?)의 구도가 되지 않을까?
레토 공작이 남긴 것
새로운 체계를 정비해 가던 중, 첩자와 하코덴 가문의 습격을 받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레토 공작은 하코덴 남작을 앞에 두고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말한다.
“나 여기 있노라. 여기 남겠노라.”
그는 아트레이데스의 인장 반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사막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폴과 어머니 제시카는 레토 공작이 남긴 반지를 보며 그의 죽음을 알게 된다. 기세를 몰아 하코덴 가문은 다시 아라키스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이제 하코덴 가문에게서 이 행성을 구할 희망은 이 두 사람뿐이다.
폴은 실제 전투 경험이 전무한 상태다. 그는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받았고, 필름을 통해 익힌 풍부한 생존 지식을 갖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사람을 찔러본 적 없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는 어린 소년이다.
하지만 폴은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아라키스 행성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내가 과연 선택받은 자일까?” 반문하고 있을 틈이 없다. 폴은 두려움에 맞서 아버지가 원했던 바른길을 찾고, 자신이 힘없는 어린애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아주 작은 사막 쥐 한 마리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 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고 있는데, 이 소년이라고 못할 것이 있겠는가.
“두려움은 소멸을 가져오는 작은 죽음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마음의 눈으로 그 길을 보리라.
그 길을 지나면 나만 남으리.”
프레멘 마을을 찾아 떠나는 길, 폴은 폭풍을 피하지 않고, 비행체의 방향을 바꿔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두려움을 피하기보단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야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제시카의 오래된 가르침을 직접 행하는 첫 순간이다.
“제 길은 사막에 있어요.”
폴은 가문의 반지를 끼고, 아버지가 원했던 이 행성의 힘을 찾기 위해 사막에 남기로 결정한다. 길이라곤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모래폭풍만이 불어오고 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엔 아버지가, 우리가 바라던 답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과연 폴은 하코덴 가문과 제국의 검은 속내를 쓸어내고, 닥쳐올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나의 편의와 이득을 위해 싸우고, 지배하고. 끝없는 이기심을 뿜어내는 존재들을 이겨내고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예리하게 변하는 폴의 눈빛에서 짙은 결연함이 느껴진다. 이 소년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뿐이다. “내가 선택받은 자가 맞을까?” 두려워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전에 두려움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두려움에 묻혀버린 진짜 나의 길과 답을 찾기 위해서.
친절히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꽤나 긴 시간을 할애한 파트다 보니 영화 자체의 긴장감이나 속도감이 강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나에겐 충분히 차고 넘치는 영화였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진심으로.. 다음 편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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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과 긍정 사이, 작별과 만남 사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유난을 떨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반문할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찬란했던 순간, 나 역시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내 글을 옮기고 싶었다는 메일을 봤을 때나 선거에 참여했던 기억은 그 누구의 것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것이다. 또 있다. 정신병에 신음하던 순간. 이걸 이겨내기 위해 했던 노력들. 그것도 나의 기억 속에서 빛나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아무와도 맺지 않은 약속에 관한 것이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이 따르는 대로. <시네마 천국>을 쓰려고 했던 본래의 계획을 부숴 새롭게 다른 걸 쓰고자 한다. 난 21살이 돼도, 22살이 돼도, 23살이 되고 만남은 쉬운데 이별은 너무나도 어렵다. 떠나보낸다는 건 필연적으로 많은 후회를 풀게 되니까.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으니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난 그래서 약속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하는 걸로. 그게 어떤 방식이든, 또 무엇이든.
<졸업>은 이별에 관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22분 정도인 짧은 단편영화다. 또, 제주대학교 영화동아리 <시네필>이 처음으로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다. 멀쩡히 돌아가는 메가박스도 영업 종료시킬 정도로 제주는 영화를 제작하기에 그렇게 원활한 곳이 아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거 그나마 <낙원의 밤> 정도? 근데 그것도 올해 나와서 그렇지 대부분 해녀에 횟집에 썼던 소재만 써서 영화 소개에 '제주'만 들어가도 접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같이 스무스하게 녹아들게 만들 순 없는 걸까?
이 작품 <졸업>은 제주라는 장소적 특성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제주라는 장소가 영화와 찰떡이다. 뭐 이건 필연적으로 이 사람들이 제주대학교 재학생들이니까 제주에 대한 이해도가 높겠지? 그리고 텀블벅으로 150만 원인가 받고 제작한 작품인데 비행기 타고 장소 섭외하고 그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것이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자는 이런 장소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를 십분 잘 활용한다. (물론 이것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상실의 이미지'가 제주의 바닷소리, 풍광과 함께 시너지가 잘 나는 편이다. 혼자서 바다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바다는 넓고 행복한 사람들은 주위에 한가득인데 나 혼자만 덩그러니 있으면 외로움이 심해진다. 이렇게 낯이 애매하게 진 바닷가에서 두 친구가 손을 잡고 걷는 장면이 있다. 그 대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내가 그렇게 행동했으면 달라졌을까?' 하는 가정일 것이다. 친구 중 한 명인 예원이는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대화는 현실성이 없다. 대사만 봐도 현실의 허전함을 강조할 수 있는데, 바다는 보여주고 배경은 페이드 아웃하는 연출법으로 통해 인물들이 상실로 인해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출이다. 이렇게 이런 처연함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제주라는 장소적 특성(바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결합해 영화의 무거운 정서를 이끌어나간다.
또 이 영화는 성숙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별. 어렵다. 이 '이별, 어렵다.'라는 말을 쓰자마자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었다. 근데 진짜 그 사람들이랑 이별한다고 하면 인생이 어려워질 것 같다. 이 이별이라고 하면 사별도 있고 결별도 있고 뭐 가지각색으로 있겠지. 근데 이별이 정말 아픈 이유는 행복했던 추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잊어. 난 그것들을 잊으라고 한다면 격하게 싫다고 반응할 자신 있다. 가슴에 품어라. 마음으로 잊어라. 말은 쉽지. 근데 그게 쉽게 되면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쉽게 잘라낼 수 있으면 기계지 그게. 내 주치의 선생님도 '생각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으니 정신건강의학적으로도 보장된 사실인 것이다. 물론 나는 '잊으라'라고 독려하는 이별에 관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잊으라는 뭐 그런 거.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와 같이 '이젠 정말 앞으로 나아가는 거 어때?'라는 말은 나에게 또 다른 힘이 되었다. 반대의 맥락에서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 <매그놀리아>인데, 이 작품은 인물이 완벽하게 잊어서 성장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엔딩신에 여자 주인공이 빙긋이 웃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낸다. 이 <졸업>은 후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순간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다. 그게 최선이었니? 그게 됐다면 넌 내 옆에 있었을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리움이 심해져 사람을 더 아프게 할 것이다. 그 상처들을 무조건 잊는다는 게 과연 능사일까. 아닐 것이다. 돌아본다는 건 완벽하게 지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매일이 고통스러운 인물에게 어려운 문제다. 그 사람을 정말 사랑했으니까 그렇게 자주 뒤를 돌아볼 것일 테니까. 아쉬우니까 미련이 생기는 것이니까. 이 영화는 삶에서 계속되는 난제에 대해 '니 잘못 아니야. 고마웠어'라는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단적으로 딱 잘라서 잊으라는 말보다 더 사람 냄새가 나는 화법을 쓰는 것이다. 나는 상실의 아픔을 잊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아주 소중한 원동력이 되는 것인데, 그걸 다 잊기에는 나는 여전한 애새끼다. 이런 나 자신을 긍정해줘서 좋았다.
물론 아쉬운 지점이 있다. 중반부 와랑와랑에서 두 주인공이 술 마시는 장면에서 남자가 '너 그거 정신병이야'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근데 내가 아는 정신질환 중에 지나간 일을 돌이켜보며 힘들어하는 병 같은 건 없다. 각본의 사려 깊음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얼핏 보면 디테일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사항이나 호흡이 느리다는 호불호 갈림의 요소도 영화의 진정성을 살린다는 점에서 왜 단점으로 지적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강점이 되는 부분인 것이다. 좋은 예술이 뭘까? 나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것에는 재주가 없다. 그냥 좋으면 좋다고 감상을 풀어쓰는 사람이다. 이 <졸업>은 풀어서 쓰기 좋은 작품이다. 사람의 마음도 분석적으로 다 보기엔 어렵지 않나.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디테일한걸 굳이 풀지 않는다. 애초부터 어렵기 때문이다. 이별, 작별. 뭐 그런 순간들을 풀어쓰기에는 다들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날 것의 대사들과 이미지들로 인물들의 내면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근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게 우리가 뭘 보고 좋다!라고 느끼는 이유 아닌가? 이런 연출법은 <메기>나 <꿈의 제인>에서 봤던 방식이다. 따라서 한국 독립영화들을 많이 봐 자연스레 배운 연출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마음속에 잊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에 비해 사소한 것들을 놓쳤다는 회한에 사실 일상이 많이 아쉬운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 몇 가지를 이별하지 못했다. 또 내가 정말 사랑했던 순간들이 나를 떠나고 있는 것 같다. 불안한 게 많은 내 성격이라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은 것일 수도 있겠지. 근데 점점 예감이 현실이 된다는 생각은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이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나는 '그냥 그것들 다 잊지 말아라'라고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단적으로 잊고 산다는 것은 더 비현실적인 것 같다. 그러니까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 정말 그 회한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쓰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픔을 아픔이라고 생각하면 아픔이겠지. 난 근데 그것 때문에 내 즐거운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잊고 싶지 않다. 정해종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엑스트라>에서 이 시인은 '더 이상 지나간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라고 썼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지나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 그 대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라. 그게 우리를 만드는 모든 것이겠지. 난 정말 멀어지고 싶지 않은 것들이 분명해서, 아직도 여기서 살고 이곳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이별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싶다. 그게 만남과 이별을 긍정하는 아주 좋은 방식이 될거라고 믿으니까. 뭐 확신할 순 없지만 각본가가 이 극을 썼던 방식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고 이 뭐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바탕이다.
현재 '시네필'의 유투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EWNJ4JOK5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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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브로큰"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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