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3-04-25 11:36:28
자유와 안식을 찾아 떠나는 마지막 여정
<존 윅 4>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윈스턴'(이안 맥쉐인)의 총을 맞고 추락한 '존 윅'(키아누 리브스)'. '바워리 킹'(로렌스 피시번) 덕분에 간신히 살아난 그는 최고 회의에 복수하고, 완전히 자유로워질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최고 회의로부터 처분 권한을 위임받은 '빈센트 드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드) 덕분에 그는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진다. 한 때 동료였던 킬러 '케인'(견자단)과 현상금을 노린 '추적자'(셰미어 앤더슨)가 그라몽 후작의 사주를 받아 존의 목을 노리기 때문. 이들은 존을 쫓아 '코지'(사나다 히로유키)와 '아키라'(리나 사와야마)가 운영하던 오사카 콘티넨탈 호텔까지 습격한다. 존도 앉아서 당하지는 않는다. 그는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줄 마지막 반격을 준비한다.
<존 윅> 시리즈의 명과 암
"그런 거 할 시간에 존 윅은 한 사람이라도 더 죽입니다." <존 윅> 시리즈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다. 오로지 복수를 향해 내달리는 단순한 서사와 셀 수 없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액션의 향연은 <존 윅>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편에서 존 윅은 강아지와 자동차를 잃은 그 순간부터 한 명이라도 더 확실하게 죽이는 데 총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 문구는 <존 윅> 시리즈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시리즈가 점차 커지고 화려해지면서 단순한 매력이 옅어진 까닭이다. <존 윅 3: 파라벨룸>이 대표적이다. 일단 액션이 기대 이하였다. 총격전과 주짓수가 조합된 이른바 '건짓수'의 분량은 줄었다. 대신 나이프나 연필을 사용한 액션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날렵한 닌자에 맞서는 키아누 리브스의 느린 액션은 허술해 보였다. 내용 면으로도 이질감이 강해졌다. 최고 의회, 장로, 패밀리, 심판관 같은 낯선 고유명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존 윅의 복수와 도주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따라서 <존 윅> 시리즈의 잠정적인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존 윅 4> 앞에 놓인 과제는 명확했다. 단순해질 것. 본래 매력인 건짓수의 미학을 보여주고, 존 윅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매듭 지을 것. 결론부터 말하면 <존 윅 4>는 두 과제를 훌륭히 완수한다. 총성과 비명소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를 도배한다. 자유와 안식을 갈망하는 존 윅도 더 바라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퇴장한다.
존 윅의 액션을 망라하다
<존 윅 4>의 러닝타임은 2시간 49분. 대부분 액션이다. 전편을 봤다면 익숙한 장면이 가득하다. 문짝이 떨어진 차, 귀를 때리는 클럽 음악 사이로 퍼지는 총소리, 계단에서 구르고 또 구르는 존 윅,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까지. 무의미한 반복은 아니다. 4편의 배경인 '파리' 덕분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마르스 광장에서 마주 앉아 마지막 '결투' 조건을 정하는 담판. 개선문을 빙 돌며 펼쳐지는 살육. 미술관과 예술 작품 앞에서 이뤄지는 대화... 이전 시리즈에서 비슷한 장면을 봤다 해도 무언가 다른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요소도 있다. 일 대 일로 총을 겨누는 '결투'다. 낯설지는 않다. 서부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존 윅의 작중 첫 등장 덕분에 더욱 그렇다. 사막에서 말을 타는 존 윅. 그는 양복만 입었을 뿐 카우보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인물도 눈길을 잡아 끈다. 케인을 연기한 견자단은 전편에 등장한 닌자 액션과는 다른 현대적인 쿵후 액션을 자랑한다. 특수분장을 한 스콧 애드킨스의 액션도 인상적이다. 외관은 마블 영화의 킹핀 못지않은 거구인 킬라. 그러나 그는 체구에 걸맞지 않게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하면서 존 윅을 위기로 몰아간다. 새로움과 익숙함의 조화는 화려한 피날레로 손색없다.
기술적으로도 뛰어나다. <존 윅 4>는 화면을 흔드는 셰이키 캠을 많이 쓰지 않는다. 대신 격투를 화면 중심에 놓으면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한다. 덕분에 모험적인 시도가 빛난다. 건물 안에서 존 윅이 '용의 숨결'이라는 탄환을 사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존 윅에게 달려드는 킬러들은 총에 맞아 터져 나간다. 영화는 하늘에서 바라보는 '탑 뷰(top-view)' 시점으로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연이은 폭발의 향연 덕분에 관객은 강력한 타격감을 느낄 수 있다. 분위기는 다소 다르지만 <킹스맨> 1편에서 사람들의 머리가 터지는 장면과 유사한 쾌감이다.
액션이 보여준 존 윅의 지옥
<존 윅 4>의 액션은 훌륭한 조력자 덕분에 더욱 빛난다. 단순하면서도 우직한 복수 서사 덕분이다. 1편에서 존은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파괴한 이들에게 복수했다. 킬러의 삶을 그만두고 아내와 살겠다는 소박한 꿈. 아내가 죽은 후로는 살인을 하지 않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겠다는 꿈이 깨졌으니까. 그 꿈을 되찾기 위한 복수 외의 이야기는 없었다.
2편부터는 전편 내용을 계승하되 살짝 변주했다. 존 윅의 복수는 물론 존에게 죽은 이들의 복수가 함께 펼쳐진다. 복수를 끝내고 싶은 존은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살인 때문에 자유를 찾지 못한다. 그는 복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르지만, 바로 그 살인 때문에 다시 굴레에 얽매인다.
4편에서도 마찬가지다. 장로를 만나 초반부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존은 사막에서 장로를 찾아 그를 죽인다. 하지만 장로는 그가 무슨 짓을 해도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오사카 컨티넨탈 호텔도 안식처는 될 수 없다. 복수의 칼날이 존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개선문을 배경으로 한 40여 분의 액션 시퀀스가 감정적으로도 인상적인 이유다. 존 윅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지쳤다. 그에게는 병으로 죽은 아내를 온전히 애도할 자유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그는 상심을 미처 달래지도 못한 채로 온갖 이들에게 쫓긴다. 몇 안 되는 휴식처는 사라졌고, 최고 회의는 친구와 동료까지 이용해 그의 목을 노린다. 그러니 파리 시내에서 총성과 신음, 비명이 이어질수록 관객은 자유와 안식을 갈망하는 존 윅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존의 지옥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상.
서부극으로 시작해 서부극으로 끝나는 이유
그렇다면 존 윅에게 완전한 자유와 안식은 무엇일까? 영화는 두 장면을 통해 그 끝을 암시한다. 하나는 양복을 입은 존 윅이 요르단 사막에서 말을 타고 펼치는 추격전이다. 다른 하나는 '결투'다. 둘의 공통점은 하나다. 서부극에서 빠지면 아쉬운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것. 실제로 <존 윅 4>는 웨스턴 영화다운 피날레로 나아간다.
많은 서부극은 피카레스크 장르가 섞인 이야기, 복수극의 형식을 띤다. 작품 속 주인공은 악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숱한 악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대가를 결코 피하지 못한다. <로건>이 인용한 영화 <셰인>의 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면 고통 속에 살게 돼. 되돌릴 방법은 없어. 그게 옳든 그르든 낙인이 되어 지워지지 않지. 이제 어머니한테 가서 괜찮을 거라고 전하렴. 이제 이 계곡에 총성은 없을 거라고..."
존 윅도 마찬가지다. 그의 끝은 울버린, 로건과 다르지 않다. 그에게 죽음은 슬픈 일이 아니다. 킬러로서의 삶, 영원히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삶, 복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 안식처다. 아내의 무덤에서 시작한 시리즈가 그의 무덤으로 끝나는 이유다.
새로이 등장한 인물들의 관계는 <존 윅 4>의 깔끔한 수미상관에 당위성을 더한다. 케인과 아키라의 악연이 대표적이다. 딸과 함께 살고 싶은 그는 옛 동료인 존을 죽이라는 그라몽 후작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오사카 컨티넨탈의 지배인 코지를 죽인다. 결투를 끝낸 케인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어 딸을 만난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코지의 딸, 아키라가 나타난다. 그녀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존 윅처럼 악행의 대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복수의 굴레를 끊을 방법은 없다. <존 윅 4>의 이야기가 지극히 서부극스럽게 끝나야 하는 이유다.
<존 윅 4>는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영화다. 액션도 서사도 기대한 것 이상을 보여준다. 시리즈의 결말로서도, 한 편의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준수하다. 작별을 고하면서도 존 윅과의 재회를 기대할 여지를 남긴 마무리도 재치 있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너무 길다. 전편(131분)에 비해서도 169분은 과하다. 긴 러닝타임을 액션으로 꽉 채우다 보니 지치는 대목도 있다. 물론 존 윅의 액션도 이야기도 후회 없이 쏟아내겠다는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야망은 잘 전해진다. 그러나 조금만 더 압축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다.
이에 더해 너무나 깔끔한 마무리 역시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봤을 때,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시리즈 본편을 만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존 윅 4>의 완벽에 가까운 결말은 다음 타자인 스핀오프 영화 <발레리나>와 드라마 <콘티넨탈>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 보인다. 과연 그들이 <존 윅>을 넘어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으므로.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마침내 자유와 평화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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