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02 20:03:53
[JIFF 데일리] 필름 속 우리 일상은
<아웃사이드 노이즈> 리뷰

OVERVIEW
다니엘라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그리고 어디에서 살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미아는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석사 학위가 끝나가는 단계에 있다. 비엔나로 이주를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친구인 나타샤까지. 이들은 떠돌며 이야기를 나눈다. 불면증에 걸린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담은 작품.
REVIEW
수면장애를 겪는 다니엘라는 주기적으로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녀는 다른 도시로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들과 책과 논문, 인간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교류한다. 서로의 깊은 역사와 삶의 맥락은 모르지만 그들은 방을 나눠 쓰고 함께 파티에 가며, 헤어진 남자의 집에 남겨진 물건을 대신 받아주면서 서로의 현재를 공유한다. 디지털 시대에 유목민처럼 사는 이들은 공원을 걷고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누는 대화를 선호해 언뜻 구식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방식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영적인 실천으로 보인다. 우연한 관계들은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시작과 끝을 알리고, 도시와 환경은 변하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은 지속된다. 세상이라는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그린 <아웃사이드 노이즈>의 자연스럽고 사실성 높은 대사는 비전문 배우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아날로그 질감의 16mm 이미지와 방황하는 인물을 내세워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온 테드 펜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문성경)
프로그래머의 노트를 읽자마자 생각했다.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이유는 단 하나. 그냥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흘려 보낼, 그런 무위의 시간. 영화 속 미아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했다는 것처럼 읽고, 일기를 쓰고, 그냥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무심히 보아 넘기고 싶었다. 도시의 익명성이 허락하는 가장 단순하고 짤막한 휴식인데, 그나마도 여의치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친구를 만나 대화하고 싶은 마음으로 영화를 골랐다.
실제로 영화 속 다니엘라, 미아, 나타샤 등 인물들은 만나서 별거 아닌 대화들을 나눈다. 사실 대화의 양상이 내가 친구들과 하는 내용과 너무 비슷해서 놀란 때도 있었다. 그냥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 요즘 잠을 잘 못 자. 푹 자고 싶은데 모르겠어. 요즘 이런 책을 읽었어.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 이런 사람이 있어. 멋지지.
걷고. 의자가 아닌 곳에 대뜸 걸터앉아 일기를 쓱쓱 쓰고. 차를 마실 거냐고 묻고, 책장을 비우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햇살 아래 반짝거리는지를 멀거니 바라보는.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일이.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슷한 대화 끝에 이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할까.

이들의 대화는 나직하고 부드럽지만, 이들의 현실은 그렇게 매끄럽지 않다. 잠들지 못하는 도시. 온갖 일이 정신없이 벌어지는 도시. 떠나고 싶어지는 도시. 그러나 결코 떠날 수 없는 도시. 다니엘라가 말하는 도시의 삶은 나의 서울과 닮아 있다. 어쩌면 그래서, 그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영화제를 부지런히 찾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을 잠시 떠나 굳이 남의 일상을 지켜보는 데에는, 결코 나의 일상을 놓을 마음이 없지만 그 일상 속에서 잠들지도 못하는 사람의 비애가 묻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영화에서 갈등은 중심 소재가 된다. 정작 현실에서는 수많은 내적 갈등과 고민들이 가닥가닥 엉켜, 어떤 것도 삶의 중심 소재가 되지 못하고 복잡하게 정신만 빼놓는다. 이 영화는 그런 현실을 닮았다. 직장에 대한 고민을 하고 면접을 가면서도 친구가 읽은 책의 이야기에 세심히 귀를 기울이고 나란히 앉아 와인 잔을 부딪는다. 두 사람이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둘이 앉아있는 거실로 햇빛이 밝아졌다 사그라들고, 그 아래 먼지가 반짝 흩날린다.

영화 속 인물들이 “너무 무거워서 몇 줄 읽고 내려놔야 했다”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책은 <삼십세>다. 나도 몇 줄에 한 번씩 밑줄을 그어 가며 감탄하고 읽었지만, 아직도 완독을 못했다. 삼십세가 될 때 꺼내 읽으려고 이십대 후반에 미리 사두었는데, 삼십을 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펴보지 못했다. 밀도가 너무 높은 책은 종종 그렇게 된다. 감탄하면서도 쉬이 책장을 넘기지 못한다. 일상이 그렇지. 해야 할 일들은 널려 있는데, 정신은 없는데,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 모든 것이 뒤엉켜 하릴 없이 잠만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일상도 찍어 놓으면 영화가 될까. 불안하고 막막한 날들도 자글자글한 필름의 질감에 담아 놓으면 부드러운 색감으로 빛이 날까. 잠들지 못하는 밤들을 헤아리고, 서로를 걱정하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에 대해 그렇게 알게 된 누군가의 멋진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연히 본 그림에 갑자기 감동을 받은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고, “깊게 온전히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찾아 헤맨 경험을 서로 나누고, 가방을 질끈 동여매고 씩씩하게 집을 나서고, 친구와 밖으로 나가 걷고. 그런 일상의 장면도, 저 멀리서도 똑같구만 싶어 웃음이 나왔던 그런 모습들도.
문제가 직장이든 돈이든 순식간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각자가 탐구하는 삶의 세계를 나란히 나누고, 듣고, 그러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확장되어 갈 것이다. 이 영화처럼 슴슴한 빛 안에서 먼지처럼 빛나면서. 비록 흐릿한 날이 더 많을지라도, 16mm 필름을 장착한 시선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친구를 만나고 싶어졌다.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2023. 04. 30. 19:30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359)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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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를 잊는 시인의 여백으로 매운 시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미자는
시를 써보고 싶다.
자꾸만 단어를 잊지만
단어들을 주섬주섬 기록한다.
병원에서 본 어떤 사건,
그녀의 손자가 저지른 어떤 사건,
이후 그녀가 해야 할 어떤 사건들이
겹쳐지며 이야기를 잇는다.
단어를 잊는 시인의
이야기는
끝내 함구하며 이어지는데,
그 여백이 만든 운율은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시각적으로든, 청각적으로든 여백이 가득한 이 영화는 암울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끝없이 반복되며 패러프라이징되는 이야기들은 또 다른 운율을 만든다.
예컨대, 병원에서 우는 여자와, 밭일을 하는 여자, 사과를 받는 여자의 세 이미지는 병치되고 반복되며,
같은 여자에게서 전혀 다른 얼굴들을 발견케 한다.
같은 현상을 다르게 보는 것
하지만 그에 딱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것
반복되는 시도와 실패는
이 영화를 시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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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투름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던 시절
어느덧 입춘이 지난지도 꽤 되었다. 그럼에도 더위는 가시질 않아 낮이면 에어컨을 틀어놓고, 길었던 해가 지면 풀벌레 소리에 잠을 설치며 하루를 보낸다. 괜히 따뜻한 봄날이 그리워지는 게 아닌가 보다. 가장 덥다는 오후 3시에 뛰어도 전혀 덥지 않고, 여름에는 짜증과 곰팡이만 불러대던 비조차 가녀린 벚꽃과 맞닿으면 큰 감성이 된다. 언제나 1년을 시작하는 계절이라 그런지. 봄이 오면 온전히 정돈되지 않았을 지난 1년을 마저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감정이 남아 차마 정리하지 못해 부유하는 시간들도 있으니. 누군가의 대한 그리움이 될 수도, 후회스러운 행동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시간들에도 봄은 한결같이, 위로하고 묻어두어 다시 필 날을 꿈꾸게 한다. 또한 봄은 기대와 불안, 걱정. 온갖 감정들을 미지라는 설렘으로 녹여내서 막연한 나날들에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설레면서 한편 너무나도 짧아 아련한 기분. 이와이 슌지 감독은 <4월 이야기>라는 1시간 짜리 작은 통조림에 그 삼라만상을 모두 담아내었다.
3월에 입학식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벚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는 4월에 입학을 맞이한다. 4월. 멋모르고 떨어지는 벚꽃에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느끼고, 어른들은 ‘올 게 왔구나.’하는 심정으로 몽환적인 하늘을 향해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4월 이야기>는 그 사이,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있는 대학생들의 감정을 다루었다. 짝사랑을 따라 같은 대학교에 진학한 주인공, 언제나 친절하고 멋진 짝사랑. 겉으로 무심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친구 등. 이와이 슌지는 극적인 행동이나 사건이 아닌, 그들이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상적인 장면들에 주목함으로써 그때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했다. 같은 수업을 듣더라도 누군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더라도 누군가의 시선은 사랑을 향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러브레터>, <하나와 엘리스>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이와이 슌지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우리에게 있어 극적인 사건은 잘 없다. 학교, 대중교통, 아르바이트와 같이 우리는 비슷한 환경 속에 일상의 대부분을 태우고, 취미나 사랑 등을 내새워 조금이라도 다름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이따금 일어나는 극적인 사건조차 누군가의 사연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조금의 특별함조차 중복되는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고유한 각자의 감정과 시선을 갖고 있다. 같은 입학식에서도 각자 다른 목표와 꿈을 안고, 같은 벚꽃을 보더라도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을 떠올린다. 어쩌면 봄은 거들 뿐. 그럼에도 하루 빨리 봄이 되어 <4월 이야기>를 다시 보고 싶은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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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대교처럼 와르르
제작비 185억 원이 무색하게 할 정도의 결과물이다. 어떻게든 탈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나 예상대로 흘러갈 줄이야.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는 짙은 안갯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재난물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는 작품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된 만큼 이 영화만의 매력이 있을까 생각될 법도 한데, 그간 봐왔던 국내 재난영화의 모든 걸 담아냈다. 재난물에 익숙지 않다면 무난할 수도 있지만, 눈치가 빠르다면 절정에 다다르기도 전에 김이 팍 샐 것이다.
뻔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탈출'은 흥미로운 소재를 꺼내 들었다. 정부가 방위산업 일환으로 암살용 군견 개발에 착수했으나 문제가 생겨 폐기하려던 당일 추돌사고로 인해 개들이 풀려난다. 위험천만한 차량 연쇄추돌로 공항대교가 마비되고 개들이 케이지에서 탈출하기까지 20분은 관객들에게 긴박감을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이번 재난의 원인인 군견들은 진짜처럼 느껴질 만큼 디테일하게 CG로 구현했다. 하지만 공항대교에 갇힌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관객들에게까지 무서운 존재로 각인될지는 미지수다. 어느 장면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긴장감을 100% 불어넣진 못하다.
더 큰 문제는 영화 속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따로 논다. 주지훈이 연기한 견인차 기사 조박이나 김희원이 맡은 양박사는 극 전체 분위기와 맞지 않아 방지턱 역할을 한다. 분명 조박 캐릭터가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인 건 알겠으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정원(이선균), 경민(김수안) 부녀 관계 또한 영화 '부산행'과 흡사해 기시감이 느껴진다. 두 작품 모두 김수안이 주인공의 딸로 출연해서인지 끊임없이 오버랩된다. 이선균의 유작으로 남겨두기엔 영화 전반적인 완성도가 영화 속 공항대교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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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와이어 선정, 역대 최고의 뱀파이어 영화 TOP22
그 누구보다 극적인 존재인 '뱀파이어'는 여러 해에 걸쳐 이야기꾼들에게 사랑받아 왔는데요.
영화 역시 '뱀파이어'를 사랑해 마지않아 왔습니다.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념비적인 공포영화 F.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 이후,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는 15일 국내 개봉 예정인 로버트 애거스가 새롭게 재해석한 <노스페라투>가 큰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북미에서도 인디와이어가 <노스페라투>에 대한 다양한 감상을 기다리며, 역대 최고의 뱀파이어 영화 TOP 22를 발표했습니다. 해당 리스트에서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16위를 차지하였고, 1월 15일 국내 재개봉 예정인 <렛 미 인>이 2위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최고의 뱀파이어 영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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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미셸 공드리가 좋은 5가지 이유
- 어떤 사람 곁에 10년을 머무르려면, 반드시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10년의 세월을 함께하기가 쉽지 않죠. <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는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와 10년간 함께한 조감독 출신 프랑소와 네메타 감독의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미셸 공드리를 향한 애정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당신, 미셸 공드리를 안 좋아하고 배겨?" 하고 귀여운 으름장을 놓는 느낌이랄까요. 그렇다면 관객도 대답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리하여 적어봤습니다, 미셸 공드리가 좋은 5가지 이유.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Michel Gondry: Do it YourselfSummary<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첫 번째 비디오 클립부터 2023 칸 영화제 감독주간 상영작 <공드리의 솔루션북>에 이르기까지, 그의 독창적이고 특이한 창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Cast감독: 프랑소와 네메타1. 장점이 많다.미셸 공드리는 장점이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좋아하기에 장점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걸까요? 장점이 많아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어쨌든 <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에는 그와 작업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해 미셸 공드리의 장점들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죠.- 따라 하고 싶어지는 결과물을 창작한다.- 끊임없이 창작물을 낸다.- 유행을 팔지 않는다.- 추상적이면서 완결된 표현을 한다.- 일상을 초현실로 만들 줄 안다.- 터무니없는 발상에도 논리를 부여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디어도 다듬어 쓴다.- 고전적이면서도 독창적이다.어떠한 방식으로든 직업으로서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그의 장점으로 거론한 항목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미셸 공드리는 이걸 해내는 대단한 창작자입니다.2. 창작을 사랑한다.'창작자' 하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는 완벽주의자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 영화에도 미셸 공드리가 겪는 창작의 고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공드리다웠다'는 영화 <무드 인디고>를 제작하는 미셸 공드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창작자'처럼 힘들고 지치고 괴로워 보였습니다.그러나 그는 창작을 사랑해 마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신기한 창작자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자신의 좌우명이 무어라고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는데요. 그의 삶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한 문장이 있다면, 그것은 누가 봐도 'Do it yourself(스스로 해라)'입니다. 자신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D.I.Y라 하지요. 미셸 공드리는 D.I.Y가 바로 창작의 기본이라고 말합니다.사실 그는 D.I.Y 그 자체를 무척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밴드 위위(Oui Oui)의 드러머이던 시절, 미셸 공드리는 앨범 홍보에 필요한 모든 창작물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죠. 이 영화에 프랑소와 네메타 감독의 애정이 묻어 있었듯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미셸 공드리의 주변에는 '애정'이라 쓰인 공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습니다.미셸 공드리는 지금도 자신의 방 한구석에 있는 책상에서 연필, 펜, 가위, 풀로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만든답니다. 그가 돌아갈 곳은 언제나 D.I.Y의 세계인 것이죠.3. 비상하다.미셸 공드리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가 한 컷씩 직접 그리고 오려 만든 위위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미셸 공드리의 능력을 보아하니 위위를 해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밴드 멤버의 말처럼, 그는 밴드 해체 이후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영화감독으로서 미셸 공드리도 대단하지만,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미셸 공드리는 정말 남다릅니다. 사실적 풍경으로 리듬감을 표현하고, 끝없는 줌(Zoom) 기법으로 유기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비트를 시각화하는 방식은 뮤직비디오 시장에서는 전례가 없는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세상에 없었고, 노래와 어울리며, 인상적이고 기발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뮤직비디오를 계속, 말 그대로 계속 만들어냅니다. 크, 멋지지 않습니까.4. 결단력이 있다.미셸 공드리는 더 오를 곳이 없으면 무대를 옮기는 사람입니다. 그곳에 안주할 수도 있지만, 편안한 곳에 머물면 고인다고 말하는 멋쟁이죠. 뮤직비디오만 찍어도 먹고살 수 있었을 텐데 영화를 만들어 보고자 할리우드로 갔고, <이터널 선샤인>으로 큰 성공을 경험한 후에도 다시 저예산 영화를 찍었죠. 미대 학생, 밴드 드러머, 뮤직비디오 감독, 영화감독, 드라마 감독, 아마추어 영화공장 운영자까지,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창작'을 향해 끊임없이 결정하며 지금의 자리에 왔습니다.미셸 공드리 덕분에 저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보게 됐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결정을 해왔나?- 나의 결정들은 어떤 방향을 향했나?- 나는 주도권을 쥐고 결정하고 있나?<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를 관람한 이후, 그는 창작자로서, 직업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나아갈 방향을 안내해 주는 저만의 나침반이자 이정표가 되었습니다.5. 귀엽다!마지막으로 미셸 공드리는 귀엽습니다. 장담컨대, 귀여움보다 강한 매력은 없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귀여움은 진솔함에서 나옵니다. 사소하거나 하찮아 보이는 일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꺼내놓는 사람은 귀엽고도 대단합니다.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감독 스파이크 존스와 미셸 공드리의 대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된 학교 있당. 너 있냥?(공드리)", "나도 있엉!(존스)" 엄청난 역량의 두 감독이 나란히 앉아 이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대단한 성과를 주머니에 꿍쳐놓은 사탕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떻게 귀엽지 않을 수 있을까요?⊙ ⊙ ⊙미셸 공드리가 좋은 5가지 이유, 공감하시나요? 만약 공감되지 않으시다면, <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를 감상해 보세요. 분명, 공드리 덕후가 되실 테니까요.One-Liner나는 지금껏 <이터널 선샤인> 덕후였으나, 오늘부터 공드리 덕후가 되었음을 선언한다.Schedule in JIFF2024.05.02(목) CGV전주고사 5관 13:002024.05.04(토) CGV전주고사 8관 13:302024.05.09(목) CGV전주고사 5관 13:30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5월 01일 -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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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뒤의 얼굴
당신이 영원히 아름답기를 빕니다.
이 말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십대 한복판의 나였다면 축복이라 생각했을 지도. 아름다워지는 것으로 인생의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생각했던 나이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생각한다. 그 말은 축복보다는 저주일지 모른다고. 아름다움은 많은 것을 주겠지. 그러나 더 많은 것을 앗아가겠지. 그 목록을 헤아려보지 않은 채로 쉽게 해서는 안될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아름다움으로 찬양을 받다가, 사람들이 원한 모습이 아니라고 수군거림을 받던 이들을 많이 보았다. 사랑한다 생각해본 적 없던 이들이었는데 그 죽음에 마음이, 몸이, 시리듯 아팠다. 그들의 죽음을 오래 숙고한 끝에 생각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지 않기 위해서는 삶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고 긍정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 얼마든지 "코르사주"를 벗어 던질 자유가 필요할 것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영원히 아름답기를 빕니다"는 인사를 들으며 정작 본인은 코르셋에 짓눌려 기절하던 엘리자베트 황후를 보고 한국의 여자 아이돌을, 또 그 영향을 받는 수많은 여자 아이들을 떠올렸다.
더없이 알려진 얼굴을 말하기는 쉬워 보인다
실존 인물 엘리자베트 황후의 삶은 어떻게 보면 여자 아이돌의 삶과 닮은 면이 있다. 당대에 가장 사랑받는 '미녀' 황후였고, '씨시'라는 애칭이 지금까지도 널리널리 전해져 온다.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이역만리 타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고, 그 얼굴은 지금까지도 관광 상품 한가운데 앉아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사랑받는 존재구나 하고 넘기기엔 엘리자베트의 일상이 편치 않았다. 머리카락 무게만 1킬로그램에 달할 만큼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식단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프랑스어로는 코르사주 영어로는 코르셋이라 불리는 기괴한 장치를 허리에 대고 있는 힘껏 조여 신체를 압박해야 했다. "가짜 가짜 진심 없는 가짜"들에 둘러싸여 보낸 세월.
그 중에서도 영화 <코르사주>가 그리는 엘리자베트 황후의 순간은 마흔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한창 나이지만, 당대 유럽에서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생이 저물어갈 날이 가까워지는 나이였다. 세간에는 자신을 운명적으로 사랑했다고 알려진 남편조차 그저 '얼굴'이 되기를 종용해 오는 세상에서 엘리자베트는 서서히 쇠해 가는 젊음, 그리고 거기 따라붙을 세간의 말들을 마주해야 한다.
그가 행해온 '철저한 자기 관리 노력'을 언급하는 문장들은 모두 기묘한 감정을 준다. 꼭 누군가의 기행을 수군거리는 말처럼 들린달까. 묘하게 그의 추락을 기대하고, 그의 나이 듦을 고소해 하는 듯 보인다면 착각일까. 코르사주를 너무 조이다가 쓰러지기까지 했대. 화장품에 엄청 집착했대. 머리 스타일에 자부심이 대단해서 머리카락 무게만 1킬로그램에 달하도록 길렀대. 그런데 글쎄 나이가 들수록 초상화 속 자기 얼굴을 보기 싫어해서 나중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지 뭐야. 어머나.
문장 뒤에서 어쩐지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세상은 여성에게 미를 강요하지만, 여성이 미를 향해 노력하는 순간 그 노력을 폄하한다. 세상이 강요하는 미의 전형도 정해져 있다. 살이 찌면 쪘다고 빠지면 빠졌다고, 성형을 했다고, 무표정했다고... 너무나도 많은 외면과 태도의 검열 조건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름다움이고, 그렇게 어렵사리 인정받은 아름다움은 너무나 한시적이다. 당대에 가장 사랑받는, 존재 자체로 센세이션이었던 연예인들에게 어떤 악질 루머가 따라붙는지, 작은 행동 하나에도 죽일 듯 달려드는 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보라. 알려진 얼굴에 대해 말하기는 참 쉽다.
'알려진 얼굴' 뒤에도 사람 있어요
실존 인물을 활용한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결말이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 하고, 심지어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아예 제목부터 코르사주인 영화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엘리자베트라는 캐릭터의 주체성을 살릴 것인가 궁금했다. 바로 그 질문에 이 영화가 답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우선 이 영화는 엘리자베트 황후의 "알려진 얼굴" 뒤를 더듬는다. 물론 그가 1킬로그램에 달하는 머리를 고슬고슬 유지한 것도, 저체중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다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에도 끊임없이 코르사주를 조이고 머리를 다듬는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영화는 '외면'의 노력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황제보다 강하다고 상호 알고 있었을 정도로 훌륭했던 그의 펜싱 실력, 방에 링을 설치해 둘 정도로 '홈트'에 열성이었던 그의 자세, 시어머니의 '극성'에 반해 '외부 세계'로 데리고 나갔던 딸을 잃은 후 그가 느낀 고통과 그 이후의 자식들에 대해 느낀 애정, 평생 느낀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병동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는 점... 같은 "사실적" 요소들을 충분히 녹여 내면서도, "사실적" 기록에 기술되지 못한 그의 판단과 생각을 상상력으로, 그러나 충분한 설득력을 포함한 상상력으로 담아낸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온전히 전기 영화라 보기 어려움에도, 그 어떤 전기 영화보다 그를 가까이 느끼게 한다. 코르사주를 "조금 더!" 조이면서 그가 바라봐야 했던 현실을, 그 현실에서 그가 취해야 했던 태도를. 그러니 그를 사랑했던 이들이 보기에는 어쩌면 전기 영화보다 더 사실을 품고 있다 여겨질 것이다. 그의 코르사주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태도 또한 묘하게 현실적이다. 1킬로그램의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는 '왜 저렇게까지 기르는 걸까' 의아한 것인 한편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역작이 되는 것처럼.
언젠가 시대를 등져야만 했던 어떤 아름다웠던,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추대되고 내쳐졌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타인의 기록으로 담긴다면 나 또한 이 점을 가장 주목해서 볼 것이다. 그를 둘러싼 상승과 하락이 아닌, 오롯이 그의 발걸음과 그의 마음이 잘 담겨있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어떤 전기영화보다 그 마음을 잘 담아냈으니, 잃어버린 어떤 여자들을 떠올리면 고마울 정도로 소중한 작품이었다.
얼굴 뒤의 얼굴을 본다면
사람마다 어울리는 삶의 양태가 제각기 다른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그게 허용되지 않는 자리에서 종종 비극이 태동한다. 영화 속 엘리자베트는 가면 위에 가면을 덧써야 하는 자리에 앉아서도 자기 삶의 양태를 꿋꿋하게 지켜 나간다. 코르사주를 조이면서도, 머리를 기르면서도. 펜싱을 하고 말을 타고 사촌과 친하게 지내고, 비웃음만 사던 활동사진을 언젠가 사랑받을 거라며 긍정하고.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재를 딛고 미래를 긍정하는 인물은 당대 여성에게 기대되는 인물상이 아니었다.
대신 당대 여성에게 기대되었던 "코르사주"는 이 영화의 공기에 묵직하게 담겨 압박감으로 전해져 온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옥죄었는가. 과연 오늘 이 영화를 보는 21세기의 여자들은 그 코르셋에서 자유로운가. 너무 과하게 익숙해진 나머지 가끔은 자신조차 미소에 감춰둔 얼굴 뒤의 얼굴이 없는가.
얼굴 뒤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아름다운 초상화로만 존재하던 엘리자베트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엘리자베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풀나풀 춤을 추는 엘리자베트까지. 다 보고 나면 이 영화는 새로운 초상 정도가 아니라 초상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온 수준의 존재감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비는 말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 말이 축복이 아니어도 되는 세상에서 각자의 양태대로 행복한 세상이 오길. 그 날까지 이런 영화는 계속 나와야 할 것이다. 자유로워야 했고 자유롭고자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그 모든 위대했던 여자들을 위하여.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2022년 12월 21일 오늘! 개봉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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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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