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2-13 21:37:11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스즈메가, 우리가 바꾸고 싶은 건 어중간한 삶의 태도가 아니니까
*영화추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2005
감독: 미키 사토시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뭐든 하는 일마다 대단하고 특별해 보이는 친구, 쿠자쿠와 달리 우리의 주인공 ‘스즈메’는 자신이 늘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애완용 거북이 밥을 하루도 빠짐없이 챙기면서, 자신이 사람들에게 투명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 걱정한다. 평범하다는 이유로 존재감을 잃어가는 삶. 그렇다, 스즈메의 삶은 너무 평범하다. 단조롭고 반복적이기까지 한데, 쿠자쿠가 가진 센스마저 손톱만큼도 없다. 심지어 딱히 바쁘게 사는 것 같지도 않아, 언제든 무력함과 무료함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은 인생이다.
하지만, 인생은 한방이라고 했다.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스파이 모집 광고, 계단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과를 피하고자 바짝 엎드려 투명 인간인 척하며 찾아낸 일상의 탈출구! 스즈메는 스파이 부부에게 스파이로 채용되면서, 난생처음으로 재미없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스파이의 조건은 딱 하나다.
스즈메가 가장 잘하는 눈에 띄지 않는 것. 평범한 바보가 비범한 스파이가 되는 순간, 영화는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더 가깝게 다가온다. 평범함이 가진 위대함이 아니라 평범하기 전부터 갖는 당연한 ‘존재감’을 중요한 화두로 던진다. 쉽게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사는 사람들 틈에서 똑같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사는 삶이라니, 우린 처음부터 강렬한 아우라를 풍기며 태어난 자들이다. 충분히 각자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자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스파이(?)가 되고 싶을지도 모른다. 맛있는 라멘을 만들 수 있지만 명확한 목적을 위해 그냥 그런 라멘을 만드는 사장처럼, 나 자신만큼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아는 ‘나’로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위로가 아니라 힘을 주는 영화다. 스즈메가, 우리가 바꾸고 싶은 건 어중간한 삶의 태도가 아니니까.
우리 모두 스즈메처럼 실실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쿠자쿠가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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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립 투 그리스> 개봉기념 ! 넷플릭스로 떠나는 방구석 여행 5
여러분 ! <트립 투> 시리즈를 아시나요?
<트립 투 이탈리아>로 시작해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트립 투> 시리즈가
이번 <트립 투 그리스> 2021.07.08 개봉을 마지막으로 시리즈 막을 내린다고 해요.
약 10년간의 대장정 끝에 막을 내린다니, 아쉬움이 가득한데요.
코로나 19로 인하여 여행을 못가 몸이 근질근질 하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씨네랩이 여행 쿨타임 잔뜩 채워줄 방구석 랜선 여행 영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1. 트립 투 잉글랜드 The Trip - 마이클 윈터바텀
2021.07.15 공개 예정
코미디 / 영국 / 112분
영국 여행
" <트립 투 이탈리아>를 즐긴 당신, 이번엔 잉글랜드다! 막 중년에 접어든 두 남자 스티븐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옵저버' 매거진의 제안으로 영국 북부 최고의 레스토랑을 도는 여행을 떠난다.
6일동안 6개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흔적을 따라가며
예술과 사랑, 인생을 논하는 두 남자.
여전히 인텔리전트한 잉글리쉬 듀오의 먹고 마시고 웃는 여행이 시작된다.
Trip Maketh Man! "
2.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 라이언 머피
드라마, 멜로로맨스 / 미국 / 139
이탈리아, 인도, 발리 여행
"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제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생긴 서른 한 살의 저널리스트 리즈.
결국 진짜 자신을 되찾고 싶어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정해진 인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보기로 결심한다.
일,가족,사랑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일년 간의 긴 여행을 떠난 리즈.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
이제 인생도 사랑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
3. 맘마미아 ! Mamma Mia! - 필리다 로이드
코미디, 뮤지컬, 멜로로맨스 / 영국, 미국, 독일 / 108분
그리스 여행
" 그리스의 작은 섬에서 엄마 도나와 살고 있는 소피는 행복한 결혼을 앞둔 신부.
그러나 완벽한 결혼을 꿈꾸는 그녀의 계획에 흠이 있다면
결혼식에 입장할 손을 잡고 갈 아빠가 없다는 것!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한 소피는 아빠로 추정되는
세 남자의 이름을 찾게 되고, 엄마의 이름으로 그들을 초대한다.
결혼식 전날, 소피가 초대한 세 남자가 그리스 섬에 도착하면서 도나는 당황하게 되는데 ...
과연 소피의 아빠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들의 결혼식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
4.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To All The Boys : Always and Forever - 마이클 피모그나리
멜로로맨스, 드라마, 코미디 / 미국 / 115분
한국여행
" 한국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대학 입시는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라라 진. 하지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나의 미래, 거기에도 피터가 있을까? "
5.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 벤 스틸러
모험,드라마,판타지 / 미국 / 114분
아이슬란드 여행
"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월터 미티.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상상'을 통해 특별한 순간을 꿈꾸는 그에게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는 미션이 생긴다.
평생 국내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월터는 문제의 사진을 찾아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평소 자신의 상상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거대한 어드벤처를 시작한다.
누구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월터,
그 누구도 겪은 적 없는 특별한 생에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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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두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워터 릴리스>(2007)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경험은 크게 다가온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한다. 처음 걷고, 처음 말하고, 처음 웃는다. 그 경험들이 유아기 때는 다른 사람에 의해 기억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청소년기에는 자신만이 기억하는 처음의 순간들을 무수히 만난다. 빠르게 성장하는 청소년기는 몸도 빠르게 변하고, 마음도 빠르게 변해가는 시기여서 자기 자신도 그 변화를 다 따라가기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나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함께 해 나가는 순간은 모두 몸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처음 하는 경험이다.
아직 성장하고 있는 미완성의 자신을 통해 좀 더 나아 보이는 상대방을 보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그렇게 좋아해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고,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고민하는 많은 순간들을 그저 멍하니 상대방을 보고 혼자 상상하며 보낸다. 그것은 그 상대방을 그저 생각만으로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좋아하는 사랑의 감정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슴 졸이며 망설이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조차 처음 하는 청소년기의 모든 소년소녀들은 좋아하는 상대방과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교류하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 감정은 꼭 남자가 여자에게 또는 여자가 남자에게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좋아한다는 첫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한 사람으로서 다른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다.
|성장기 첫사랑에 대한 영화 <워터 릴리스>
영화 <워터 릴리스>는 첫사랑과 처음에 관한 영화다. 주인공 마리(폴린 아콰르)는 싱크로나이즈드 선수인 플로리안(아델 에넬)을 보고 좋은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마리의 절친 안나(루이즈 블라쉬르)는 수영부 선수인 플로리안 마음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영화는 마리와 안나가 상대방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얻기 위해 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따라가며 이들의 첫사랑 여정을 하나하나 따라간다.
영화 초반 공연을 마리고 나온 안나가 마리의 자전거 뒤에 올라타며 무섭다는 말을 한다. 자전거 뒤에 타는 것이 무섭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안나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자신의 어떤 행동을 무슨 의미로 받아들일지 무섭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안나는 한동안 마리가 운전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위치를 바꾸어 앞에서 운전한다.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마리도 안나가 그랬듯 누군가의 뒤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들을 똑같이 경험한다.
마리가 좋아하는 플로리안은 싱크로나이즈드 주장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실력과 매력을 갖춘 그는 남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가지만 아직 육체적인 관계를 해보지는 않아 그 처음을 시작하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실 영화 내내 플로리안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리고 플로리안이 이성과 맺는 관계에 대한 소문들도 어떤 것이 진실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약간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없는 예의 없는 사람처럼 보여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리는 더욱 상대방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그저 조금씩 용기를 내 플로리안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보려 애쓴다.
마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수줍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스타일이라면 친구 안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상대방의 반응이 어떤 지보단 자신이 적극적으로 먼저 마음을 표현하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란 기대를 하는 그의 방식은 첫사랑을 대하는 또 다른 모습이다. 사실 두 사람의 접근 방식이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모두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다가간다는 점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반면, 그들이 던지는 사랑의 행동들을 받는 상대방들의 모습도 서투르고 그 받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그들 앞에 있는 사람들의 진정성까지 헤아리지 못한다.
|안나와 마리, 두 여성이 첫사랑을 얻으려는 적극적인 태도
마리가 한 걸음씩 플로리안에게 다가가면서 둘은 서로 교류하게 되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인 마리는 매 순간 플로리안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를 판단하려 애쓴다. 그가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클럽에서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려 할 때 마리는 질투심과 실망감으로 화를 내며 플로리안과 멀리하지만 첫사랑의 마음은 상대방의 그런 모습 속에서 조차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이미 마음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고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실제로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마리는 플로리안에게 육체적인 첫 경험을 선사하지만 플로리안에게는 그저 친구가 선사한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영화 내내 플로리안의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아 울고 웃는 마리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경험한 사춘기 시절의 모습과 닮았다. 마리와 플로리안은 영화 중반 같은 침대에 누워 같은 천장을 바라보지만 각자의 머릿속에 흐르는 생각들은 다르다. 영화의 마지막 마리와 안나가 수영장 천장을 바라보고 똑같이 누워있는 장면이 반복된다. 안나가 플로리안과 바뀌었을 뿐, 그들이 느낀 감정과 상실감은 동일한 것이기에 친구로서 그들이 바라보는 천장은 같은 것이다.
영화 <워터 릴리스>는 안나와 마리, 두 여성이 진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사랑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여성 서사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첫사랑의 결말이 어떠하든 그들이 상대방의 행동이나 표현에 완전히 끌려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모습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리를 연기하는 폴린 아콰르의 감정 연기가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알 수 없는 첫사랑의 대상을 연기한 아넬 에넬은 이 영화에서 그의 치명적인 매력을 완전히 발산하고 있다. 도발적인 눈빛과 미소는 보는 관객들도 그에게 몰입하게 만든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abbitgumi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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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본 칸트 Peter von Kant, 2022
프랑스, 드라마, 85분
감독: 프랑수아 오종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사랑은 난감하다.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하면 달콤한데,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땐 한없이 어렵다. 솔직한 만큼 씁쓸하다. 좋으면서도 아프고, 모르는 척해도 다 알 것만 같고, 낯설다가도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해진다.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 사람들은 틈만 나면 사랑에 조건을 붙인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그 힘을 받아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변화해 인간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 바꿔 놓는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 동시에 한계 없이 존재하는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란 사실이다. 사랑은 개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권력을 과시하고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특별한 조건? 필요 없다, 나만 좋으면 된다. 그다음 당신도 좋다면, 난감해도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다.
결과는 각자 감당하면 되는 일이고.
<피터 본 칸트>엔 사랑이 쏟아진다. 말로, 눈으로, 손짓과 발짓을 포함한 몸짓은 물론이고 인물들의 침묵마저도 전부 사랑을 얘기한다. 무엇이 사랑이고, 사랑이 아닌지 구분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스토리가 품은 반전도 인물이 숨긴 배신도 아니다. 천재 감독, 피터의 파격적인 짝사랑과 절절한 외사랑, 그리고 모두를 죽이고 다시 피어날 끝사랑, 그야말로 '사랑'이다.
아주 사적인 피터만의 사랑, 영화 제목이 '피터 본 칸트'인 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쓰레기를 반복적으로 찍어내기 바쁜 할리우드(?)와는 다른 차원의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자부하는 영화감독 피터는 거대한 창이 세 개나 달린 저택에서 어시스턴트 칼을 두고 새 작품을 위해 대본을 집필 중이다. 하지만 그는 대본 집필에 열성적이지 않다. 자신의 성공을 질투해 끝나버린 사랑, 즉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층 예민해져 뭐든 듣고 보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칼에게 더 날카롭고 무례하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칼은 자신의 고용주를 남몰래 사랑한다. 피터를 향해 있는 칼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피터에겐 그냥 눈알 따위로 보이는 게 슬플 뿐이다. 해서 칼은 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피터의 손과 발이 되어 집 안을 누빈다.
한때 자신의 뮤즈였던 시도니가 찾아오자 피터는 대본에 녹여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사랑에 대한 본인의 철학과 상념을 열정적으로 토해낸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술과 담배, 마약으로 본격적인 이야기 장을 만들고 각자의 사랑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너무나 개인적인 견해이자, 누군가의 생각으로 모두의 가슴에 와닿는 명언이 아니다. 딱 내뱉는 순간 흩어지는 물거품이다. 영양가 있고 포만감도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내쉬는 담배 연기만큼이나 가볍고 허하다. 마치 헛배가 부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언제나 나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진리라고 강조한다.
자신감 넘치는 시도니는 자부심까지 넘치는 피터에게 무명 배우 아미르를 소개한다. 방금 전까지 사랑을 험담했던 피터는 아미르를 보자 사랑에 빠진다. 이때의 카메라 동선이 흥미롭다. 피터와 아미르가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장면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 찰나의 순간 피터의 눈이 반짝인다. <피터 본 칸트>는 아미르와 피터가 사랑에 빠지는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선도 매우 간결하고, 무척 간단하다. 의미를 두지 않는 컷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래 음미하며 볼 컷도 아닌 것이다.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이 모두가 예상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미리 보여준 정도랄까.
피터는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 자존심, 자부심까지 전부 이용해 아미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감독과 연인의 위치를 능숙하게 바꿔가며 적재적소에 아미르에게 꿈과 사랑을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나의 차기작은 아름다운 너를 위한 영화이며 우린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정복도 할 수 있기에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고 말한다. 무명 배우 아미르는 피터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아미르에게 요구되는 건 사랑뿐이고, 완벽하게도 그는 피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다. 그에게 사랑은 꿈을 위한 조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했고 아내가 호주에 살지만, 아직 세상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그에겐 가정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을뿐더러 최우선의 고민거리도 될 수 없었다. 반면 피터에게 아미르의 사랑은 삶의 연료로 필요했다. 전부와 일부의 줄다리기,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은 처음부터 다른 선상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길 위를 달린다.
먼저 식어버린 건 아미르다. 호텔 생활을 하는 아미르를 자기 집에 살게 한 피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을이 된다. 아미르는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당연하게 갑이 됐다. 피터가 먼저 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피터의 헌신적인 사랑과 자신의 쌓여가는 업적으로 인해 소위 말해 버릇없는 애가 됐다. 자신이 모든 걸 조정할 수 있고, 뭐든 해도 괜찮다고 믿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귀중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된 것이다. 그와 같이 속물적이고 세속적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바라는 피터는 애원과 원망을 섞어가며 다시 아미르의 마음을 잡으려 한다.
아내를 만나러 가겠다는 아미르와 추잡스러운 몸싸움까지 벌인 피터는 자기 돈까지 건네며 흔한 연인의 사랑싸움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다시 그에게 이별, 아니 버림 이후의 시간이 온 것이다. 피터의 성공을 질투해 헤어지게 된 전 연인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피터는 늘 그런 유형의 사랑을 해 온 남자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상대의 일부만 갖는 그런 사랑. 그것이 자신의 예술을 돋보이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결국 피터는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집에 놀러 온 딸과 엄마 그리고 친구 시도니에게 분풀이하기 시작한다. 딸의 사랑을 콧방귀 뀌며 비웃고, 돈을 빨아먹는 기생충, 노력이란 걸 해본 적 없는 흉측한 늙다리 창녀, 할리우드 쓰레기나 찍는 배우라 욕하며 마지막까지 아미르의 전화를 기다리다 쓰러진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이 된 채 차라리 죽고 싶다며 오열하는 피터를 진정시키는 건 그의 엄마다.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아들을 가엽게 여기는 그녀의 손길에 피터는 아이처럼 안겨 운다. 사랑은 늘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엄마의 조언에 자신이 그동안 누리고 취했던 사랑이 잘못됐음을 시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건 없는 사랑이라면서 소유를 위한 사랑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이후 그토록 기다렸던 아미르의 전화를, 감정이 배제된 냉철한 전 연인으로서 받는다. 꼭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엔 배움이 없다. 배움을 가장한 태움이 있을 뿐이다. 피터는 처음부터 자기 사랑에 대해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불신도 의심도 필요치 않았다. 그에게 사랑이란 자기 작품과 같고, 가장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불꽃이다. 언제든 발화되어 주변의 것을 다 태우고 끝나는 삶이다. 따라서 피터에게 필요한 건 다른 불꽃이다. 그는 조건 없는 사랑을 원하는 척,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척 칼에게 향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본 칼에게 진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너에 대해 말해달라고 속삭인다. 맹목적인 숭배를 받기 위해 아미르에게, 그 전의 아미르와 같았던 이들에게 썼던 방식을 또 답습하는 것이다.
칼은 대답으로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그리곤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평생 살 것만 같았던 피터의 집에서 제 발로 떠난다. 미친 고용주를 견디지 못한 걸까? 드디어 한계가 온 걸까? 아니다, 칼이 원한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다. 피터의 엄마가 말한 사랑처럼, 피터의 딸이 처음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사랑처럼, 본인만이 설명할 수 있기에 가장 솔직하게 원할 수 있는 '나'의 사랑과 다르기 때문이다.
감히 예상하건대, 칼이 원한 사랑엔 분명 '동등'이 있었을 것이다.
텅 빈 집 안에서 홀로 아미르의 테스트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피터, 그는 자신을 죽이는 사랑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죽이더라도, 자기가 바라는 아름다운 사랑을 또 꿈꿀 것이 분명하다.
그게 피터이자, <피터 본 칸트>다.
관객은 칼의 시선으로 피터를 열심히 관찰하다 나중에서야 제삼자로 그에게서 완전히 멀어진다. 아미르와 시도니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워졌다가, 찰나의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리를 둔다. 지독한 일인칭 이야기는 사실 수많은 예시 중 하나에 불과하고, 칼의 이탈에 명백한 이유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상 피터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피터, 아미르, 시도니는 사랑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야만 삶이 진행되는 인물들이다.)
"모든 이가 사랑하는 것을 죽이네."
시도니의 노래 중 한 구절이며, <피터 본 칸트> 속 세 사람의 사랑 해석본이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은 반드시 사랑하는 것을 죽이면서 사랑을 한다.' 정도가 되겠다
이야기를 이끄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빨려들 수밖에 없는 음악이 본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시도니를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피터에게 전화하라고 시킨 시도니의 모습은 <피터 본 칸트>가 유일하게 가져간 긴장감이자, 뼈 있는 반전이며 풍자의 대상을 끝까지, 정확하게 겨눈 한 방이다.
p.s <피터 본 칸트>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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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여름의 끝자락, 동심을 붙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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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윌 베처, 리처드 펠런
출연] 저스틴 플레쳐, 아멜리아 비테일
시놉시스] 먼 우주에서 길을 잃고 지구에 오게 된 꼬마 외계인 ‘룰라’! 우연히 양떼목장의 비글비글 사고뭉치들 ‘숀’과 친구들을 만난다. 달콤한 젤리와 초콜릿이 가득한 지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룰라’를 위해 집을 찾아 주기로 하는 ‘숀’과 친구들! 우주에 가기 위해 ‘룰라’가 잃어버린 UFO를 찾아 나서고 한편 수상한 비밀요원 ‘에이전트 레드’ 일당이 ‘룰라’를 추적한다. 과연, ‘룰라’는 무사히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스포일러 유의#
대사가 없는 영화는 20년 만에 처음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가 애니메이션 작품이라는 것만 알고 방문한터라 당연히 대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단한 착각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5분이 지나도록 효과음, bgm이 다 나오는데 대사가 없어서 친구와 함께 ‘왜 말들은 안해,,, 대사가 없는건가? 말이 없음 어떻게 내용을 이해하나~’라고 얘기를 나눌 정도였다. 너무 어른의 사고방식이었다. 대사가 한마디도 없고, 심지어 등장 캐릭터들이 다 동물이어서 표정이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았지만 엄청난 내용전달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텔레파시를 통해 대본을 내 머리 속에 주입시키는 느낌이었달까? 영화의 모든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 이 경험이 20년만에 처음 느끼는 새로운 경험이어서 신선했다.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대부분의 시청각자료에서는 ‘음성’이 가장 많은 정보를 주곤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본이 8할은 먹고들어간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는 히히히히, 룰라룰라, 메헤헤헤 온갖 의성어만 난무할 뿐 대사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 캐릭터들의 몸짓, 발짓을 통해 그리고 주어진 상황들을 통해서 각 캐릭터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관계를 파악한다. 게다가 이를 어린이와 어른이라는 서로 다른 세대를 동시에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 표현이 어려웠을텐데 이 작품은 아이와 어른의 공감을 모두 이끌어냈다. 정말 룰라 우주선이 망가지고,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없어졌을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눈물이 다 날 뻔했다. 대사 한마디 없이도 이렇게 집중해서 본 작품은 정말 오랜만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관계의 변화를 그리다
영화 속 외계인 룰라는 우주 저멀리 다른 행성에서 엄마와 아빠가 자고 있던 사이 우주왕복선 키를 만지작 거리다가 지구에 불시착한다. 이미 여기서부터 사고뭉치라는 가장 느낌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피자의 맛있는 냄새에 홀려서 숀을 만나게 되고, 숀가 양들과 함께 재밌게 지내다가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우주선을 찾으러 길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숀은 양들 내에서 사고뭉치였지만 자신보다 레벨이 다른 사고뭉치를 만나면서 룰라의 보호자가 되어 문제가 되는 상황들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하고, 집으로 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렇게 처음 불시착한 장소를 찾아낸 룰라와 숀. 하지만 그곳을 기어코 찾아낸 양치기 개 비처. 그들의 앞에 레드요원들이 등장해 우주왕복선을 통째로 기지로 옮겨버린다.
숀과 비처는 항상 앙숙같은 관계였지만 일단 이 기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합심을 하고 룰라와 숀, 비처는 무사히 기지를 찰출해 룰라의 고향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룰라 앞에서는 의젓했던 숀이 비처가 등장하면서 비처가 조작기를 이리저리 누르는 사이 배가 고프다며 스위치를 누르다가 결국 다시 우주선의 방향이 바뀌고, 지구로 불시착하게 된다. 그 충격으로 우주선은 그만 불타고 만다. 룰라의 엄마와 아빠가 담긴 사진도 날아가고, 우주선도 다 타버리고, 룰라의 능력마저 제대로 못쓰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룰라는 좌절하고, 숀은 이 상황이 꼭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 양들의 도움을 받아 룰라의 집으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파마겟돈의 연극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 숀과 룰라, 그리고 비치와 양들은 힘을 모아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송신기를 위로 올려보내고, 레드요원의 방해에도 결국 송신에 송공하면서 룰라의 엄마아빠가 룰라를 구하러 지구로 날아오는데 성공한다. 룰라는 지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간다.
숀과 룰라, 그리고 비처의 관계를 보면서 어린아이들의 관계에서 항상 고정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보였다. 한없이 철이 없을 것 같던 숀도 자신보다 미성숙한 룰라에게는 어른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비처가 나타나면 다시 천방지축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학교를 전학가거나, 이사를 가는 등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할 때도, 그 이동을 지켜보는 경우도 생길텐데 한 곳에서 좋은 친구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자연스러운 이별의 모습도 담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는 여름의 끝자락, 야외에서 잠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상영시간표>
2024. 9. 7.(토) 20:00 롯데몰 9층 잔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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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 2> 만큼 재미있고 <헤어질 결심>처럼 진하게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유명 아나운서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작가님 준비 많이 해오셨어요? 1시간 녹화가 20분이 걸렸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진짜 영잘알이세요." 내가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그냥 무식하게 시간만 보냈던 것뿐인데요." 대답하자 휴대전화에 카톡 몇 개가 온다. 어느 날에 어떤 영화가 개봉한다는 누군가의 말이다. 어? '어느 날'에 개봉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별 것 아니겠거니 싶어서 그냥 넘어간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켜 조회수를 확인해본다. 정말 감사하게도 2만이 찍힌다. 언제부턴가 바라왔던 순간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그게 몇 개월째 내내 반복되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프로그램 담당 작가가 나에게 말을 했다. "작가님! 출연료는 다음 주에 입금될 거예요. 금액은 얼마입니다!" 엥? 출연료가 '얼마'라고? 무슨 소리야? 내가 대답한다. "그 얼마가 어느 정도 될까요?" 작가가 대답한다. "그 금액은..."
라는 꿈을 꾸었다. 그럴 리가 없지. 가끔 언제까지 이 글을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몇몇 분들의 의견에 편승해서 쓰는 글이 아닌, 내 생각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표현하는 그런 일이다. 나 자신이 '이 정도면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지' 싶은 것들은 이미 얻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저 멀리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자서 그런 꿈을 꿨던 걸까? 어느 멀티버스 중 하나에는 내가 작가로 명성을 많이 얻은 세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면 내 안에 있는 어떤 문제들은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우리)에게 알파버스의 웨이먼드가 느닷없이 나타나 "아니야"라고 답한다. 준비물은 없다. 단지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받아들일 태도만 있으면 된다. 올해 개봉작 중 또 다른 마스터피스가 등장했다. 에블린과 함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멀티버스 속으로 떠나보자.
빈 세탁기처럼 돌아가는 일상
분명히 해야 할 일이 벌어야 할 돈 말고 뭐가 있었는데 말이다.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에블린은 일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홍콩에서 태어난 에블린. 첫사랑이었던 웨이먼드의 설득에 넘어가 타지 생활 중이었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패만 지속했던 그녀.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지금 현재다. 짜증이 나는 오늘. 남편 웨이먼드는 착할지 몰라도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딸 조이는 틱틱대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 공공은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에블린과 함께 살고 있다. 쌓여가는 빨래물처럼 풀지 못했던 마음속 응어리가 점점 더 높아져간다. 이런 에블린의 일상은 점점 더 그녀를 괴롭하는 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날. 평소처럼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남편 웨이먼드는 타향살이를 시작한 보람도 없이 갑자기 이혼 서류를 들이밀었다. 딸 조이는 여자친구를 데려와 가족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일상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런 에블린을 딱히 봐주지는 않았다. 국세청은 에블린의 세탁소에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영수증 속에 쌓여있는 에블린. 영업정지와 생계유지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하다. 이 빈 차를 타고 국세청이 아니라 다른 우주로 날아가면 좋으련만. 세상은 야속하게도 에블린의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한숨이 가득한 얼굴. 에블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편 웨이먼드와 같이 있었던 에블린. 멍하니 있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남편 웨이먼드의 눈빛이 변한다. "여보. 잘 들어. 지금 당신은 위험해. 난 다른 우주에서 왔어.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적어 준 쪽지대로 해."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안 그래도 나사가 좀 빠져 있는 것 같은 웨이먼드. 마침내 미쳐버린 것인가? 에블린은 어리둥절한다. 금세 에블린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는 웨이먼드. 갑자기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우주 속의 에블린. 에블린은 당황한다. 웨이먼드는 이내 자기를 소개한다. 자기는 다른 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이며, 지금 세계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을 전한다.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이어폰을 꽂고 겪었던 경험 때문에 안 믿기도 어렵다. 이 색다른 경험 덕에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 앞에서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에블린. 에블린은 디어드리 앞에서 웨이먼드가 전한 지시사항을 수행한다. 지시사항은 그냥 헛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에블린. 그 다른 차원에서 에블린과 웨이먼드는 조우한다.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세상이 왜 위기에 처했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조부 투파키가 멀티버스를 싸돌아다니며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운명의 조부 투파키는 온갖 세계의 에블린을 살해하고 있었다. 꿈꾸는 소리가 아니다. 에블린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전부 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조부 투파키를 제지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강력하고 빠르게
이 영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엄청 정신없다. 일단 핵심 키워드가 너무 많다. 가장 우선은 코미디. 두 번째는 액션. 세 번째는 가족 드라마. 네 번째는 오마주. 다섯 번째는 멀티버스 구현이다. 키워드만 다섯 가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반부까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가 운명에 관한 작품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화는 이런 키워드를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사정없이 다 때려 박는다. 이렇기 때문에 아마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정신없다’라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정보를 쑤셔놓는 것은 도박이다. 일례로 <프렌치 디스패치>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대사가 쉴 틈 없이 쏟아지지만 감독 웨스 앤더슨은 이런저런 설정을 무리 없이 이해한다. 특유의 섬세한 미장센을 중심으로 대사를 받아들여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측면도 있다. 바로 <외계+인> 1부다. 현재의 MCU는 많은 영화들로 이뤄져 있다. 글쓴이는 다른 글에서 최동훈 감독이 마블의 영화들이 쌓아놓은 빌드업을 너무 쉽게 바라본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냈다. 이를 보여주듯 너무 많은 떡밥이 있는 <외계+인>. 산만한 줄거리 때문에 호평보단 혹평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전자다. 이 영화가 이해가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많은 요소들은 단적으로만 휙 쓰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영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쓰이고, 또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산발적으로 와다다 쏟아지긴 해도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대신 중반부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집중할 필요는 있다. 영화에서 원형의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 원형의 에너지가 어떤 이유로 중요한가?라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때 설명이 후반부에 반복되긴 하지만 대충 보면 중반부에서 이를 놓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분들이 무언가를 마시지 않은 채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 그럼 영화의 재미가 급전직하하는 단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가 섬세한 방식으로 영화의 이해를 도운 것과 유사하게 이 영화는 광기의 에너지로 관객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강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는 다방면으로 강점을 가진 영화다. 일단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쾌감이 엄청나다. 이 쾌감 중 하나는 액션이다. 전체적으로 액션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인물은 주연 양자경이다. 우선 양자경이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는 역할을 많이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상영작들을 찾아봤을 때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도 있다. 바로 <와호장룡>이다. 장첸, 주윤발, 장쯔이, 양자경이 출연한 이 영화. 웅장한 맨몸액션이 많은 이들에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이 시절의 홍콩영화를 재현하듯 화려한 맨몸액션을 선보인다. 일단 양자경의 액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극에서 일대 다수의 연기를 펼치는 부분이 있다. 템포가 굉장히 빠르고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수직적 운동능력을 선명하게 잘 드러낸다. 이는 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에블린의 액션 신에서 싸움을 잘하는 에블린이 되는 계기가 있다. 영화는 이 에블린이 왜 쿵후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잠깐 보여주고 이를 편집술로 보여준다. 이는 편집 능력과 시너지가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구체적으로 상대방과의 액션 주고받기와 이 능력이 구현되기 위한 전제가 엇나가듯이 편집되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를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지식 안에서 멀티버스란 것은 없다. 심지어 이 멀티버스의 묘사가 이 영화처럼 이뤄진다면 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글쓴이는 이를 관객들에게 경제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액션을 삽입했다고 생각한다. 상황 자체를 많이 만들어서 그 룰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럼 이야기에 통일성이 생긴다. 이런 토대의 튼튼함은 영화의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이해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에블린의 액션은 단적으로 시각적인 쾌감만을 전하려고 제시되지 않았다.
또 웨이먼드 역을 맡은 조너던 키 콴의 액션 연기도 굉장하다. 이 웨이먼드 캐릭터가 맡은 역할의 액션 신은 비교적 초반부에 나온다. 어떤 행동을 하고 전투를 시작하는 웨이먼드. 이때 매고 있던 가방을 휘리릭 흔들며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엥? 이거 어디서 봤는데? 갑자기 성룡이 생각난다. 역시 이 웨이먼드의 액션신에서 무언가를 오마주하고 있다. 바로 성룡의 쌍절곤 액션이다. 이는 그냥 얻어걸린 효과가 아닌 듯하다. 배우 조너던 키 쿠안이 성룡을 닮기도 했다. 또 원래 주인공을 양자경이 아닌 성룡을 계획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액션은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액션 시퀀스이기도 하다. 가방 끈을 쌍절곤 쓰듯이 두들겨 패는 웨이먼드. 극초반부에 유약한 모습만 제시됐던 이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런 액션 신이 대비되는 느낌이 있다. 이는 앞에서 쓴 문단과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효과를 낸다. 이 역시 멀티버스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 측면에서도 기능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다 보면 이런 멀티버스를 통한 액션신이 웨이먼드라는 인물의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연출이 멀티버스라는 모티브를 단순히 설정으로만 쓴 게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지게 설정했다. 똑똑한 연출의 힘이었다. 아, 이 두 주인공을 빼고 다른 액션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다. 이 인물들의 액션도 잘 뽑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 웃긴다. 이런 생각을 하는게 정말 또라이같다.
타율 높은 코미디
또 이 영화는 정말 웃긴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코미디로서 사용했던 소재는 두 가지다. 멀티버스를 통해 다중우주를 보여줬던 시각화와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다. 우선 이 영화가 장르적인 특성이 아닌 선에서 뽑을 수 있는 강점은 설득력이라고 생각한다. 에블린이 각각의 우주 속에 한 명씩은 있을 테니 각자가 온갖 직업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직업인으로서의 광경 묘사에 있어서 구체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 꼼꼼함 묘사가 ‘각종 직업의 에블린’에서 굉장히 강력한 코미디가 작동한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글을 쓰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글을 쓰는 특징 중 하나를 뽑아 영화에서 어떤 원동력으로 사용한다. 또 그림을 그리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왜 멀티버스의 에블린이 필요한지를 빼먹지 않았다. 영화의 설정을 단단히 하는 연출이 코미디 소스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직업인으로서의 에블린을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 때 절대 잊히지 않는 시퀀스가 있다. 바로 어떤 영화를 차용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이고, 어떤 식으로 차용했는지를 쓰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 영화의 리뷰를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 왠지 직무유기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멀티버스 중에서 우리가 아는 인간의 물리법칙 외의 것도 있다. 이 부분 역시 골 때리게 잘 설정했다. 쓸데없이 상상력이 고퀄리티라서 놀랐다.
그리고 아마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가 됐을 키워드 ‘전환’이다. 영화의 메인 세계관은 주인공 에블린이 이끄는 시간대다. 그럼 다중우주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코미디 요소를 하나씩 추가한다. 제일 첫 번째 전환 방식은 적당히 상식 선에서 상황에 안 맞는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생각하는 수위를 전부 뛰어넘는다. 단 하나 빼고 전부 예상외로 흘러갔다(그리고 이 ‘예상대로 간 코미디’도 정말 웃긴다). 당연히 이렇게 전형성을 탈피한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 말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소재가 뭐였는지는 쓰기 어렵다. 단지 분명한 것은 하나하나 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관객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난 배우들이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웃겼을까? 자기들도 엄청 웃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저비용 고효율의 코미디 요소로 사용하는 전환이지만 이것도 단지 웃기려고만 넣은 것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이 작품에서 전환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글쓴이 포함) 보통 세상 사람들을 판단하는 게 쉽다. 왜 저 사람은 저러고 있을까? 에 대해서 각자의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만 살고 있기 때문에 단면적인 모습만 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 판단의 오류를 꼬집는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신선하다고 느낄 관객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다양성에 관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설정이 있다. 바로 딸 조이의 퀴어 설정이다. 다양성은 우리 문화예술 매체에서 참 피곤한 소재다. 이른바 PC라고 불리는 이 것은 들어가기만 하면 왓챠피디아에서 투기장이 열린다. 피곤하다. 혹자는 ‘PC 묻었네’라고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억지로 이런 코드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극의 흐름을 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멀티버스 안의 수많은 세상이 있다고 해보자. 거기에는 아시아 인이라는 인종이 아예 없다. 무조건 백인만 있는 우주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화양연화>를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헤어질 결심> 역시 마찬가지다. <공조 : 인터내셔날>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매체의 다양성에만 국한 짓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웨이먼드 역을 맡은 키 호이 콴이라는 배우는 경력이 중간에 끊겼었다. 유년시절 아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 사람은 아시아인 역 빼고는 아무것도 맡을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끊겼었다. 할리우드라는 큰 판에 단지 인종이라는 이유로 주류에 끼지 못한다는 것, 아니 낄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많이 불공평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PC’라는 것이 무조건 예술을 해친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단지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사람도 인간일 뿐인데. 역시 이런 측면에서도 이 사람들이 이런 대우를 받으라는 법은 없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이 PC라는 ‘정치적 올바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소수자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선 끝난다면 우리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우주를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살아온 인생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더 많이 써왔으면 어땠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어땠을까. 막연한 질문은 끝이 없다. 이 질문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연다. 삶의 관문에서 막힐 때마다 이 지점으로 돌아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때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되묻는다. 세상에. 내 운명이란 왜 이따위란 말인가. 지긋지긋한 멍청함 덕에 나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뱉는다. 이 한숨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왠지 잔소리를 하고 싶어 진다. 에블린처럼.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잊히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지금 현재의 우리도 각자가 생각했던 어느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글쓴이만 해도 그렇다.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어렸을 때의 내가 바라왔던 모습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다. ‘그러면 안 됐는데’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 동안 후회하며 보냈다. 막상 이 글을 쓴다고 해서 그런 미련이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다. 그 선택을 했던 평행세계의 나도 맞이해야 할 필연적인 사건이 있다는 것을. 단지 그 일을 그렇게 보냈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가능성이란 그런 것이다. 더 이상 꿈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어떤 선택을 하든 ‘통계적인 필연성’에 앞서 지금 없는 것에 가능성을 갖고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 아무 의미 없는 인형 눈알도, 세탁소에 찌들어 보내는 일상도, 밝게 웃는 딸의 웃음도 우리가 어떤 것을 꿈꿀 수 있는 개연성이 된다는 말과 함께 전한다.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 지금의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풀어야 하는 미스터리의 연속인 걸 너무 잘 아니까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 아니겠어?
메버릭의 박력을 멀티버스로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와 래퍼런스를 때려박은 이 영화. 앞에서도 썼듯 '이걸 다 머릿속에 주워 담아야 영화가 이해되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력이 어마어마하다. 일단 초반부 세탁소 시퀀스부터 BGM이 들어간다.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알파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만나 이어폰을 꽂아주기까지 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바로 액션 삽입하고. 액션 중간에 코미디 요소도 있다. 다 짬뽕처럼 다 넣는다. 그 대신 이야기 전반적으로 멀티버스의 인물들마다 갖는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사실 간단하다. 후반부에 주인공 중 어떤 인물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올해 5월에 <탑건 : 메버릭>이 개봉했다.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때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가 톰 크루즈를 위시로 한 힘찬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비행기로 활주로를 활공하는 듯한 갈등 구성이 영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졌던 주요 연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탑건 : 메버릭>만큼의 박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가 나오면, 바로 그다음 정반대의 무언가가 나온다. 또 그 정반대를 대칭 찍고 완벽히 반대 측면에 있는 무언가가 나온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화장법이나 의상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본 적 없는 헤어스타일을 따라와서 보여준다. 그런 이상한 코디법을 받쳐주는 미장센까지 영화는 소재 하나하나가 신선하기 때문에 딸려오는 힘찬 에너지로 2시간 20분 내로 질주한다. 이 영화가 상영관을 얼마만큼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탑건 : 메버릭>보다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볼 수 있는 뭉클함, 코미디 요소로만 국한 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탑건 : 메버릭>이 이뤘던 성취를 더 크게 돌며 이뤘다고 생각한다. 색다른 경험이다. 분명 스포일러를 없이 쓰는 것 같은데 쓸 내용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말 <아바타 : 물의 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극장가의 허리케인이 되어 많은 관객을 흡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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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져가는 MCU 혼자서 끌고 가네
※ '로키' 시즌 1, 2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도 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끝나고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가 퇴장하더라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무너지지 않고 오래갈 줄 알았다. 5년이 지난 현재, 멀티버스(다중우주)라는 새로운 뿌리를 두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던 MCU는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멀티버스 개념을 대중에게 설득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 MCU가 밀어붙이고 있는 멀티버스를 이해하려면 디즈니+로 스트리밍 중인 '로키' 시리즈를 봐야만 한다. '엔드게임'으로부터 파생된 시리즈이긴 하나, MCU의 멀티버스를 가장 오랫동안 설명하면서 메인 스토리로 삼는 건 '로키' 뿐이다.
총 2개의 시즌으로 나온 '로키'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엔드게임 여파 탓으로 기존 타임라인을 무너뜨리게 된 로키(톰 히들스턴)는 '변종' 취급받으며 TVA(시간관리국)에 붙잡혀 가게 되고, 자신이 알던 세계는 멀티버스의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변종 로키'인 실비(소피아 디 마티노)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로키를 마주한다.
풀버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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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 이종석의 "설계자" / 잘생김이 연기되지 못한 빛바랜 비주얼 / 반전과 결론은 볼만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설계자"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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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델토로 감독이 선사하는 숨을 조이는 매혹적인 범죄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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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탈출!
이보다 더 극적일 순 없다.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중동에 간 미국인 기자이자 블로거 ‘더그’(짐 카비젤)
하지만 난데없이 납치를 당하고,
이란 정권의 스파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다.
한편 국무부에서 일하는 그의 아내 ‘리즈’가 이 사실을 알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미국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리즈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직접 이란행을 택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