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3-05-20 21:16:05
컴 앤 씨 / 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Review
컴 앤 씨 / 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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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독일군에 의해 침공당한 소련 어느 한 도시의 참상을 한 소년의 시각을 통해 조명한 작품.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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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
내가 여태껏 봐온 모든 전쟁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전쟁영화였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주인공이 군인으로 등장해서 전장에서의 그의 활약을 보여주거나, 나치영화의 경우에는 유대인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는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한 주인공 소년이 전쟁의 현실을 맞닥뜨리며 겪는 시련을 보여준다.
내가 생각했던 이 영화의 전개는 이 소년이 전쟁에 참여하여 폭탄을 실어나르든, 총을 쏘든 하며 그 군대에 어우러지고, 생존하는 전개였다.
근데, 이 영화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매우 현실적인 전쟁 상황을 보여준다.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들과 자란, 고등학생정도의 나이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 군대에 입대하면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완전무장을 하고 적군을 향해 돌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소음에 정신도 못차리고 여기저기 숨느라 바쁠 것 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폭풍에 휩쓸려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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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주인공의 표정과 대사이다.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체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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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명깊은 장면은 역시 마지막씬.
히틀러를 향한 주인공의 분노와 증오를 느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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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글이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되게 좋은 영화인만큼 여러분들이 한번쯤 감상해주셨으면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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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관 감독, 시네밋터블 그리고 조제
시네필 박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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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인스타그램을 보던 중 우연히 Cinemeetable(시네밋터블) 이라는 페이지에서 김종관 감독을 만날 기회를 가질 참석자를 모집하는 글을 보았다. 시네밋터블은 민용준 영화기자와
그 주차의 영화 주제에 대해 탐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주연 미식기자가 영화로부터 모티브 얻은 레시피로 직접 요리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이다. 즉시 지원했으나 아쉽게 선착순에서 밀렸다. 하지만, 며칠 뒤 취소자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고, 즉시 수락을 했다.11월 22일 오후 5시, 바람이 많이 불고 날이 조금은 추웠지만 그래서 더 운치 있었던 노들섬에 도착하였다. 다른 참석자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평소 김종관 감독이 즐기는 레시피로 만든 하이볼 칵테일을 웰컴 드링크로 마시고 있었다. 곧이어 민용준 기자와 김종관 감독의 인터뷰가 시작 되었다. 준비된 자료인 과거 김종관 감독의 영화들을 일부 클립으로 시청하며 김종관 감독에 대해 깊게 파헤치고 직접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12월 10일에 개봉하게 될 “조제” 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김종관 감독은 필자에게 특별한 감독이 되 었다. 막연하게 영화감독 을 지망하던 시기에 영화 와 시나리오 작성법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 왔었 다. 책들을 사서 보고 영 상도 많이 찾아봤지만,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 다. 그 당시 ‘클래스101’ 이라는 사이트에서 김종 관 감독의 클래스가 오 픈 된 것을 발견했다. 그 때는 누군지 몰랐지만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믿어보고 싶었다.
그 후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순으로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의 감성이 마음에 들었다. 특별 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도 이야기가 있고 상황들이 만들어 내는 재밌는 그림이 연출 되었다. 거창한 이야기만을 고뇌하던 시기에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이런 영화도 충 분히 매력 있어’ 라고 말하는 듯했다. 101클래스를 수강하던 중 접하게 된 김종관 감독의 단편영화 “하 코다테에서 안녕”은 나에게 큰 충격을 가져왔다. 오로지 내레이션으로만 스토리를 진행시켜나간 이 짧은 영화가 등장인물이 등장해야 만 한다는 편견을 깨주었다. 적은 자본으로도 영화를 시작하고 싶 은 상황의 사람들에게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의 작품이었다.
김종관 감독을 알게 되고 매력을 느끼고 난 뒤, 한국판 조제가 제작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영화 제작 담당이 김종관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 놀랐으며, 기대가 무척 되었지만, 걱정 도 되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국내에 어마어마한 팬덤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나름의 비난도 감수해야 될 일종의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독립영화계에 계셨던 감독이 조제 리메이크를 통해 메이저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의 작품을 다 본 사람으로 서 기대가 안될 수도 없었다. 그가 그려내는 조제의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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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원작 소설이 아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지 칭한다)의 특징은 더러운 사랑이라 고 생각한다. 감동적인 러브스토리 일 수 있지만, 각각의 등장인물들 이 숨기고 있는 더러운 내면, 단점 들이 있다. 그것들을 가리고 사랑 을 하다가 끝까지 담담한척 이별을 마주하는 작품이다. 극 후반부의 담담한 이별이 미치도록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저런 이별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찰나에 폭발해 버리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보여주는 엔딩이 이 작품이 많은 팬덤을 보유하게 된 이유라고도 생각한다.
12월 10일 개봉과 동시에 영 화관에서 김종관 감독의 조제를 관람했다. 예상과는 다른 전개였으 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조제를 보았다. 판자촌 집과 그곳 에 사는 조제(한지민역), 그리고 우연히 조제와 인연을 갖게 된 영석 (남주혁역)의 캐릭터는 원작에서 대부분을 가져온 모습이었다. 원작의 조제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김종관 감독의 장점이다. 그 장점 은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조제가 사는 집, 집앞 눈쌓인 거리, 조제가 넘어진 골목 등 조제와 영석이 보내는 모든 공간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지금 당장 마스크 쓰고 나가도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들이다. 하지만 이 공간들을 감독은 사건이 벌어지는, 우연한 만남이 있는 특별할 수도 있다는 듯이 툭하고 무심하게 보여 준다. 나열된 풍경 인서트는 위에서 말한 “하코다테에서 안녕”의 아이디어 를 재활용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거리는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 하는 요소이다. 감독님 스 스로도 사고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신다 하셨고 걸으면서 느낀 그 공간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주로 영화에 담아왔다. 원작 조제와 다르다고 느낀점은 엔딩이다. 결국 조제 커플은 서로의 차이에 속앓이를 하다 이별을 맞이한다. 이별을 맞이하고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며 마무리 되는데, 원작속 남자주인공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역)의 오열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힌다. 반면 원작 속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역)는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마트를 다녀오는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 습으로 마무리 된다. 그렇다면 김종관 감독의 조제에서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영석은 자신을 좋아하 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분명히 조제를 추억하는 모습도 보여준 다. 이별 후 조제의 삶이 나에겐 다소 충격(?)이었다. 원작으로부터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조 제도 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적 도움이 많아졌다. (스스로 차도 몰 수 있다!!) 그런 기술적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할머니의 유골을 안장하는 일도 하면서 대견한 나날을 살 아간다. 원작의 조제의 모습이 무기력해 보일 정도이다. 누군가의 도움만 바라는 성격이 아닌 조제 에게 어울리는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조제가 결국 스스로 스코틀랜드에 가서 자기가 원했던 위스키 양조장에 가서 영석을 추억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꼭 필요한 콘셉트였나, 꼭 필요한 장면인 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김종관 감독과 시네밋터블에서 식사를 하며 들은 이야기로는 리메이크 판 조제에서 조제는 보다 더 자기 취향이 확고한 성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성인 조제가 현실의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켜가며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담으로 위스키를 좋아하는 취향은 실제 감독님의 술 취향이 위스키라고 한다.
영화 한 줄 평을 올리는 별스타그램에도 올렸지만 필자는 ‘원작만큼 담담하게 보다 더 당당하 게’라고 평가한다. 뭐가 더 명작이고 수작이라고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전달하고자 했 던 주요 메시지가 다르며 그저 조제라는 인물만을 빌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만큼 조제 위주로 전 개되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코로나 시기에 맞물려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제작사 사정으로 인 해 개봉 시기는 어쩔 수 없었다고 들었다. 기존의 김종관 감독 특유의 잔잔함에 상업영화에 길들여 진 대중은 지루함을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모습을 보니 원작에 마냥 못 미 치는 영화도 아니었다고 느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히려 조제라는 그늘에 가려져 대중도 감 독도 일정한 틀에 고립될 수 있지 않았나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리메이크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 다. 수많은 원작 팬덤, 어려운 시기 속에서 첫 메이저 영화를 당당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관철해내 려 한 김종관 감독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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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집 남편 괜찮다!
결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 이미지들은 아마도 성장과정에 가정에서 보고 배운 바를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첫문장은 아직까지도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톨스토이가 이 책을 쓰던 1800년대에도, 지금까지도 수많은 가정이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기 때문이다.
현세대의 결혼기피현상을 집값으로 뭉뚱그려 보는 사람이 많다. 정말 돈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걸까?
남성의 입장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동물들도 수컷이 둥지도 없이 암컷에게 구애하지는 않을 테니까.
반면 여성의 경우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늘날 결혼적령기 여성들은 부조리한 가정 상황을 목도하며 자라왔고, 그것이 내 일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비혼을 말한다.
나도 그런 쪽이다.
이를테면 맞벌이를 하지만 요리청소빨래 집안대소사 모든 것을 감당하는 엄마와, 새벽 5시에 엄마가 일어나서 차려준 밥을 먹고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엄마가 차린 저녁 먹고 TV에 나오는 외화를 보다가 술 한잔 하고 자는 아빠. 그걸 다 치우고 녹초가 되어 잠든 엄마.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느라 집에 안 오는 아빠. 친구도 없는 엄마. 그리하여 온몸의 관절에 관절염이 왔으나 아직도 일하는 엄마와 단지 술로 인해 병든 것 외엔 건강한 아빠.
나는 결코 엄마의 삶을 답습하고 싶지 않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구한 차별의 역사쯤이야 일이 년만에도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한 건가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악습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전복시켜버린 여자가 있다. 이름은 박강아름.
#역할전복
박강아름은 진보당 활동을 하던 정성만을 만나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먼저 결혼하자고 하고, 공부를 해야겠으니 프랑스로 가자고 제안한다.
이미 결혼을 해버렸으니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비혼주의자였던 정성만은 한국에서 요리보조로 일하며 소설을 쓰던 사람이었다.
박강아름과 달리 프랑스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박강아름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했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이를 낳았다.
프랑스에서의 출산과정은 지난했다.
커뮤니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고, 도와줄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본인의 선택이었기에 박강아름은 모든 걸 감내한다. 어차피 아이를 낳는 건 본인 몫이니까.
그렇다. 아이를 낳는 건 여자의 몫이다.
토하고, 쓰러지고, 입원하고, 뼈와 근육이 제멋대로 놀고, 출산 후 손목 통증이 가시질 않고. 젖을 물리는 내내 젖꼭지에 피가 난다.
그러므로 출산에 관한 선택은 여자의 것이어야 한다.
정성만은 무엇을 하는가 하니, 살림을 한다.
박강아름의 표현에 따르면 '독박살림 독박육아'다.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아이를 돌보고, 놀아주는 모든 역할을 정성만이 한다.
박강아름이 학교에 다니고 작업을 하는 동안 정성만은 박강아름의 보조, 정성만의 표현에 따르면 '식모'다.
어디서 많이 본 시나리오가 아닌가.
남편을 따라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아이를 낳고, 밥을 짓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고, 놀아주고, '식모' 같다고 느끼는 삶.
가부장제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요새 맞벌이 안 하는 여자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돈도 벌고, 애도 키우고, 집안일도 하고. 결혼 전과 돈 버는 건 같은데 노동의 양은 몇 배로 증가한다.
또는 수 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내, 엄마로서 기능해야만 한다.
그러려고 공부하고 일한 건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 사람들은 웃는다.
성만이 살림할 때, 본인을 '식모'라고 부를 때, 살림의 고달픔을 토로할 때, 혼자 김장을 하면서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말을 걸 때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과연 그 반대였더라면 웃음 포인트가 되었을까?
그저 일상적인 풍경을 보면서 웃기는 쉽지 않다.
나는 재능있는 여자들이 예술가 남편을 뒷바라지 하느라 재능을 갖다 버리는 걸 수도 없이 보고 듣고 겪었다.
#외길식당
이들 부부는 프랑스에 와서 자아가 없어진 성만을 위해 가정집 원테이블 식당을 열기로 한다.
원래도 요리를 잘했던 터라, 성만은 내심 기뻐 보인다.
부부의 식당에는 가난한 유학생, 집밥을 그리워 하는 유학생들이 찾아온다.
그릇을 사고, 좋은 재료를 고르는 성만의 표정이 밝다.
누구와도 교류할 수 없는 사람은 고립되기 마련이다.
성만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름 뿐.
뜨겁게 사랑하다 보면 세상에 너랑 나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없을 거라고 말하게 되지만, 실제로 세상에 단둘이 남겨지면 미쳐버릴지 모른다.
고립되어 가던 성만은 외길식당을 차린 후에, 한식부터 일식, 중식, 양식까지 뚝딱 만들어내며 자신의 쓸모를 다 한다.
하지만 집안 살림에 식당 영업까지, 아름은 작업에다 손님 대응까지 하려니 힘에 부친다.
결국 외길식당은 문을 닫고, 이사를 몇 번 다닌 후에야 다시 문을 연다.
이유는 역시나 그들의 고립 때문이다. 고립된 채 서로에게만 의지하는 부부에게는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넌 이런 부분이 이기적이야, 너는 늘 이기적이야. 그래서 아름은 다른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외길식당2에 다녀간 여러 형태의 커플들 역시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민들을 안고 산다.
결국 아름은 외길식당2에서도 답을 얻지 못한다.
#덩케르크
누릴 수 있는 사치라고는 커피 한 잔 사 마시는 것이 전부인 그들.
아름은 영화제작 기금을 받으러 다니느라 바쁘다.
그런 그들도 여행이라는 걸 떠난다.
덩케르크 해변으로 가는 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성만은 왜 비오는 날 바다에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아름은 바다에서 찍고 싶기 때문에 가는 거라고 한다.
이들 부부의 주도권은 대부분 아름에게 있다.
성만은 투덜대지만 어쨌든 간다.
해변에 도착하자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고, 날은 잔뜩 흐려 옥빛 바다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모래사장으로 유모차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결국 성만이 앞에서 지고, 아름이 뒤에서 들고 바다 앞까지 간다.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에서는 전쟁 상황과 대비하여 바다가 너무 예뻤다.
영화관에 앉아서도 그 대사를 떠올렸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조국(Home)."
<덩케르크>를 볼 때도 그 부분에서 속으로 으악... 하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던 기억이 난다.
덩케르크 씬은 마치 조국 그 자체, 프랑스에 있어도 부부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성만 같은 남편이 있다면 한번쯤 결혼을 해봄직도 하다.
어쩌면, 행복한 가정의 서로 닮았은 모습이 박강아름과 정성만, 정보리강 가족에게서 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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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박강아름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보니, 한편으로는 홈비디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과 가수 이랑의 노래가 아니었더라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서두에서 박강아름 감독은 개인의 이야기가 전체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확신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수상 및 국내외의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실로 개인의 이야기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2020년 한 작가의 오토픽션(자전적 소설)이 문단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카톡으로 나눈 대화의 전문을 작품에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문학이든 영화든 자전적일 수밖에 없다.
조근식 감독이 <품행제로>를 촬영할 때 1980년대 본인이 살았던 동네의 풍경을 재현한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작품이 되느냐, 한 개인의 일기장이 되느냐는 개인적 관점이 전체를 관통할 때가 아닐까.
처음에는 '도대체 이건 뭘까' 싶다가,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는 이런 관점과 용기와 행동력을 가진 여성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작에서도 이미 여성의 몸에 관해 할 수 있는 말들을 다 했던 감독이다.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보고 듣기 쉽지 않았던 여성의 자궁과 질, 출산과 모유수유, 예쁘게 꾸미지 않은 여성의 몸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직면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직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현 시점에서 박강아름 감독은 응당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는 남자 주인공 다미앵은 어느날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여성중심사회로 간 이야기다.
물론 이 영화는 픽션이다.
그러나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리얼리티다.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 시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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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찬 상영중] 기생충
[김태혁의 ‘절찬 상영중’ – 기생충]
이것은 빈부격차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파이프(로 보이는 물체)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음으로써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 <이미지의 반역(배반)>이라는 그림이다. 정말 그럴까? 이 그림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의 사유를 차용해 물질적 속성을 따지자면, 이 이미지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이미지의 반역(배반)>이라는 '그림'을 스캔한 '컴퓨터 파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 르네 마그리트는 언어와 대상, 대상과 대상을 재현한 이미지, 언어와 이미지의 연결은 자의적이므로 얼마든지 단절되거나 자유롭게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대상이 통념상 있음 직한 공간을 벗어난 생경한 장소에 위치하고, 현실에서라면 한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 불가능한 대상들이 공존하는 그의 그림들은 나태한 사고를 깨부순다. 생각의 한계를 무너뜨린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는 당대를 뒤흔들었고, 후대의 다양한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블랙코미디, 스릴러, 가족 드라마 등 하나의 영화 안에서 함께 존재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뒤섞여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영화 <기생충>을 본 후, 현실의 경계를 파괴하는 파격적 미학을 선보인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반역(배반)>이 떠올랐다. 르네 마그리트가 회화 예술의 관습을 격파했듯이 봉준호 감독은 영화 장르의 틀을 붕괴시켰고, 언뜻 누가 보아도 빈부격차가 핵심인 것 같은 <기생충>에 빈부격차 자체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가정 형편이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두 가족이 등장한다. 두 가족은 사는 곳이 정반대다. 잇따른 자영업 실패로 궁지에 몰린 기택(송강호) 가족은 누추한 반지하집에 살고, 성공한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 가족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대저택에 산다. 햇빛이 잘 들어올 리 없는 기택의 반지하집은 대낮에도 어둑하고, 채광이 끝내주는 박사장의 대저택은 실내에 있어도 비타민D를 합성할 수 있을 만큼 자연광이 풍부하게 들어온다. 기택 가족은 고기는커녕 한끼 제대로 챙겨 먹기도 힘들지만, 박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는 짜장 라면에 한우 채끝살을 넣어 먹는다. 박사장 집에 사는 강아지들이 기택 가족보다 영양 상태가 훨씬 더 좋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두 가족 간의 극심한 격차는 영화 플롯의 변곡점이 되는 비 오는 밤 시퀀스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기택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수직적 계급 사다리가 연상된다. 가난한 자는 달동네처럼 높이 올라가야 하거나, 반지하처럼 깊이 내려가야만 하는 곳에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 물론 부자도 지대가 높은 곳에 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부자는 가난한 사람처럼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 않고,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에 앉아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집에 도착한다.
이처럼 빈부격차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설정과 상징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기생충>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빈부격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기생충>에는 부자와 빈자가 함께 등장하는 영화라면 으레 기대할만한 부자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없다.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박사장의 부인 연교와 기택에게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박사장이 재수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계급 격차를 다룬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자들처럼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부를 일군 사람들이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돈을 지급하고, 속마음은 다를지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예우한다. 기택의 부인 충숙(장혜진)이 술에 취해 박사장 가족의 인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돈이 다리미야.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라고 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기생충>은 빈부격차의 ‘현상’ 자체는 실감 나게 보여주지만, 빈부격차를 타파하고 경제적으로 더 평등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는 아니다.
돈을 매개로 엮인 박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의 관계는 빈부격차를 문제시하기보다 빈자와 부자 간의 상호의존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박사장 가족은 굳이 자신들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출퇴근 운전, 집안일, 자녀 교육을 자신들보다 더 잘 처리해주는 사람에게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박사장 가족에게 귀찮고 시간 낭비에 불과한 일들을 대신해주는 기택 가족은 요긴한 존재다. 한편, 박사장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임금은 기택 가족이 당장 먹고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돈이다. 박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의 제목인 '기생충'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과연 박사장의 재력에 의지한 기택 가족만 누군가에게 기생한 것일까? 부자의 일상을 누리기 위해 허드렛일을 대신해줄 누군가가 꼭 필요한 박사장 가족도 기택 가족에게 기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 중에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택 가족의 사업이 잘 풀렸다면, 기택 가족이 누군가를 고용해 잡일을 맡겼을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기생충>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따름이다. 강한 신분 상승 욕망을 지닌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자신의 계획대로 부자가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기우는 박사장만큼 주름지지 않은 부자로 살 수 있을까? 혹시 나쁜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내면의 꿈틀거리는 욕망과 콤플렉스를 잘 살펴보라고 영화 <기생충>은 우리 앞에 거울을 들이민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태혁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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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의 신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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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영웅 스토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마블을 만난 뒤부터는 챙겨보고 있다. 마블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을 그려낸 ‘마블 코믹스’로 시작하였다. 지금은 그 캐릭터들로 영화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선 ‘마블’ 하면 영화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마블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곳이 ‘DC’인데 슈퍼맨, 배트맨 등이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
예전에 본 어떤 리뷰에 "디씨의 영웅에는 스토리가 없고, 마블의 영웅은 스토리가 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은 참말로 찰떡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캡틴 아메리카는 아직도 애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라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꾸역꾸역 챙겨보기만 한다.
사실 어벤져스에 대한 그리고 마블에 대한 리뷰는 검색만 해도 많이 나온다. 약 1,100만의 관객이 있었으니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보라색 악당인 타노스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블의 전반적인 세계관이나 영웅에 대한 캐릭터 분석도 재미있지만, 환경운동가로서 타노스의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음모론이나 미스터리도 참 좋아한다. 언젠가 스쳐 지나가며 읽었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 인구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행하는 자정작용 같은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나에겐 신뢰감을 주는 이야기였다. 조금 다르게 말해서 이 말이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오염된 것에 대해 자정작용을 끊임없이 하고 있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면 무의식중으로 그런 행동들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도 '인재'냐 '자연재'냐의 논란이 많이 있지만 인재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말을 쓰면 아주 조금은 쉬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덕적으로 혹은 인성적으로 부족한 사람의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완성형은 아니니까 하고 위안을 해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말도 안 되고 아주 위험한 발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타노스가 딱 비슷한 말을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구는 늘어가고 격차는 심해지고.
타노스가 자신의 고향인 타이탄의 인구를 줄이는 것을 제안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았고, 결국 망해버리고 말았다. 타노스는 (아마도)자신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심지어 딸처럼 아끼는 가모라 고향과 그와 비슷한 몇 개의 별에서 인구를 줄이는 것이 답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이를 전 우주적으로 확장할 방법을 찾아서 실행에 옮건 것뿐 아닐까?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지금의 지구는 타노스가 걱정하는 딱 그런 상황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몇 년 전, 아니 몇 개월 전만 해도 기후위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지상파의 대기업 광고에서도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의 이야기였던 재난이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기까지 인정하게 만들게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여름 우리나라에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 현상을 기후위기로 인식한 국민들이 많아졌다. 수치로 따지면 관측 이래 가장 강수량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도 이상 기후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20년은 최근 10년의 어떤 해 보다도 가장 한국의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 해이기도 했다. 이를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이 줄어서라고 극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다시 돌아온 뚜렷한 계절의 변화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렇다고 타노스의 방식이 전부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없고, 잘살고 못살고 대단함과 비루함 관계없이 랜덤으로 반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참 우습게도 내가 사라지는 사람 명단에 있더라도 그렇게 나쁜 상황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버렸다. 타노스 역시도 본인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을 튕겼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의 간섭이 줄면서 나타나는 다른 변화들도 있었다. 인간이 찾지 않는 해변과 도시에 야생동물이 찾아왔고, 배가 다니지 않으니 물이 깨끗해졌고, 비행기가 적게 날아다니니 하늘이 맑아졌다. 환경운동가들이 늘 말하던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게 되면 변화하게 될 자연과 환경은 증명해 보일 길이 없었는데 바이러스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는 인간의 활동이 조금 줄어든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변화가 나타나는데 반이나 줄어들게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기대가 되기도 한다면 위험한 발상일까?
그래서 그런지 타노스는 내가 본 마블의 캐릭터 중에는 가장 영특하고 인간적이고, 대의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근데 그 목적이 개인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었고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겉으로 표현할 줄 아는 그런 캐릭터였다. 사실 보면서는 '가식 아니야?' 했고, 그가 다른 캐릭터들을 죽이는 것에는 화가 났지만 결국엔 그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중적인 마음마저 생기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타노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떤 오두막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씬에 대해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즘 현대인들이 바라는 삶이 아니냐며 웃었다. 퇴직하고 시골 내려가서 휴식하는 삶, 타노스, 우리의 타농부는 대의를 이루고 휴식의 정점인 귀촌까지 해냈다고 말이다.
그래서 다음 편이 기대된다. 감독(안소니 루소, 조 루소)들이 이번 편은 전적으로 타노스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했다. 이번 편에서는 타노스의 인간적인 면이 아주 조금 나타났지만 다음 편에서 분명 그 마음이 극대화될 것이고 (귀촌해서 혼자 살다 보니 외로움이 증폭될 것이라 판단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들이 그를 파멸로 이끌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파멸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 타노스의 행복을 바라면서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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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올해의 힐링영화가 ‘거의’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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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는 행복이 낯설다. 행복은 단 한 번도 그녀의 것인 적이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춘희의 부모가 갑자기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이유로 꼽을 테고, 누군가는 외삼촌 가족의 구박이 그녀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걸을 때마다 바닥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다한증이 심해 춘희가 사회생활에서 위축된다는 걸 그 원인으로 지목할 것이다. 어쨌든, 춘희가 행복과는 영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춘희가 불행하지 만은 않다는 게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의 묘한 재미다. 춘희에게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은 사람에게 으레 보이기 마련인 체념, 무심함, 냉소와 같은 정서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다한증 수술비 마련을 위해 매일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음, 맨발로 자는 노숙자를 걱정하며 새 신발을 선불하는 마음, 사람들이 ‘주황’의 말더듬이 증세만 볼 때 그 내용을 듣고 칭찬해주는 마음에서 춘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주황과 춘희가 알콩달콩 만들어내는 케미가 압권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뻔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짜증이 아닌 기분 좋은 미소를 유발하는 건, 어려움 속에서도 차분한 단단함으로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춘희와 주황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귀함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길 잘했어〉에 결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극 후반부의 조금은 헐거운 감정선은 어리둥절함을 자아낸다. 춘희의 어려움을 ‘치유’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도 아쉽다. ‘당신 내면의 아이를 안아주세요’와 같은 명제에 굉장히 비판적인 편이다. 왜 상처받았는지는 도외시한 채 치유 그 자체에만 몰두함으로써 상처를 병리화하는 효과를 자아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인 진단과 해결이 아닌, ‘잘 버티는’ 임시방편에만 집착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길 잘했어〉는 좋은 영화다.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은 남들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변에서 아무리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자기 자신이 이를 믿지 못하면 수치심과 좌절감은 걷어지지 않는다. 즉, 상처가 생긴 원인을 적확하게 인지하고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태어나길 잘했어’와 같은 강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문제는 내가 아닌 날 힘들게 한 것들에 있다’는 명제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으로써 말이다.
춘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도 ‘태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증명한다. 관객을 웃게 만드는 춘희의 마음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수술비를 벌기 위해 매일 마늘을 까는 춘희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길거리에 누워 있는 맨발의 노숙자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춘희는 따뜻한 연대의 마음이 ‘가진 자의 특권’이 아닌 ‘인간 존재의 특권’임을 가르쳐준다. 말을 더듬는 주황을 남들처럼 무시하지 않는 춘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이를 알아봄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답고 풍성해질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리하여 춘희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심리 상태로 축소 환원하는 세상에서도, 자기 위로에서 시작하는 더 큰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희망적 명제를 벼려낸다.
춘희가 우연한 계기로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는 건 영화의 주요 설정이다. 여러 영화‧드라마 덕에, 많은 사람이 과거의 나를 만나보는 걸 상상해보곤 한다. 만약 누군가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상상에 마냥 설레고 기쁘기만 하다면, 그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린 주황, 부모님 사후 힘든 시간을 보냈던 춘희에게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건 잊고 지내던 아픔을 상기시키기에 설렘‧기쁨이 아닌 두려움‧긴장을 자아내는 일이었다. 춘희가 과거의 자신에게 ‘부모님과 함께 죽어버리지 그랬냐’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그가 얼마나 큰 아픔을 견뎌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춘희는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 과거의 상처를 대면하고 미래로 나아간다. 자신과 자기 주변 아끼는 춘희의 태도는, 그녀가 끝내 한 번도 자기 것인 적이 없었던 ‘행복’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나아간다. 몇몇 단점으로 인해 〈태어나길 잘했어〉가 올해의 힐링영화가 될 것 같다는 예감에 ‘거의’라는 단서를 붙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춘희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세상이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나의 태도’로서 이를 거스를 수 있음을 알려준 춘희와 그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의 많은 외로운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최진영 감독의 마음이 당신에게도 전달된다면 좋겠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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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두 멍청한 놈들이 만든 영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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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괴상하고, 황당하고, 어이없게 웃기고, 그럼에도 감동적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언급할 내용이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영화만큼이나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넘쳐난다.
•-제작사가 ‘A24’다. 〈문라이트〉, 〈킬링 디어〉, 〈더 랍스터〉, 〈미나리〉, 〈애프터 양〉을 제작한 바로 그 제작사 말이다. A24가 역량 있는 제작사인 건 분명하지만 기존 포트폴리오의 연장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논하면 곤란하다. 이전 영화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2022년 3월에 미국의 단 10개 극장에서만 개봉했다. 그런데 극장 당 5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역대 극장 당 수입 기준 전체 3위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3,000개 극장으로 상영을 확대했고,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냈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출한 루소 형제가 제작했다. 멀티버스 소재를 활용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결이 완전히 다르다. '정통 블록버스터' 멀티버스와 'B급 코미디' 멀티버스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양연화〉, 〈라따뚜이〉 등을 오마주한 장면은 덤이다.
•-양자경이 할리우드 진출 20년 만에 단독 주연을 맡았다. 원래 성룡을 주인공으로 낙점한 후 양자경을 그 부인 역에 캐스팅하려 했으나 각본 과정에서 서사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여성 주인공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씨네필이 주로 활동하는 영화 평론 사이트 레터박스에서 ‘올타임 베스트 250’ 1위에 올랐다. 이전에는 〈대부〉, 〈기생충〉이 차지했던 왕좌다.
이제 영화 이야기. 그러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매력을 글로 설명하기는 영 어렵다. 줄거리가 있고, 설정이 있고, 웃음과 감동 포인트도 있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직접 봤을 때만 확인 가능하다. 블록버스터의 소재인 양자역학과 멀티버스를 B급 감성 가득한 코미디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거창한 설정 속에서 조금씩 웃음 타율을 높여나가다가 장대한 드라마로 결론 짓는 식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여성 에블린은 여러 모로 퍽퍽한 삶을 살아간다. 깐깐한 아버지와 유약하기만 한 남편, 레즈비언 반항아 딸만으로도 괴로운데 세무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로 그나마 운영해오던 세탁소마저 문을 닫을 판이다. 심지어 자기가 먹여 살린다고 여겼던 남편이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스트레스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멀티버스가 열린다. 무한한 다중 우주에는 절대 악 조부 투파키가 있고, 에블린이 그에 대항할 유일한 인물이란다. 그녀가 최후의 희망인 이유가 가관이다. 그녀는 멀티버스의 수많은 에블린 중 가장 불행한 에블린, 즉 최악의 에블린이라는 이유로 저항의 아이콘이 된다.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엉망진창 현실이 에블린에게 준 ‘깡’이 그녀의 무기인 셈이다. 그러나 아직 최악은 아니다. 조부 투파키가 사실은 에블린의 딸 조이라는 사실이 남았기 때문. 에블린이 딸 조이에게 권위적으로 굴며 윽박질렀기에 조이가 흑화해 조부 투파키로 변했단다. 이제 에블린은 선택해야만 한다. 우주의 운명을 위해 딸을 무찌를 것인가, 형편없는 엄마였지만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을 하며 다른 미래를 만들 것인가.
에블린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B급 코미디 요소도 폭발한다. 딜도와 애널 플러그, 장난감 눈깔, 베이글, 쇼킹한데 고급스러운 비주얼 등등이 적극 활용된다. 여기에 심각하고 진지한 의미는 ‘없다.’ 영화를 연출한 다니엘스의 말마따나 “농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에블린의 싸움은 진지하고, 그녀가 가족과 우주 중 그 무엇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우당탕탕 대모험 끝에 에블린이 도달한 그곳에서는 마침내 감동이 피어난다. 억척스런 사업가이자 가장이었던 에블린은 웃음을 되찾고 주변 사람과 이를 함께 나눈다. 무한히 넓은 멀티버스의 모든 것(에브리씽)과 모든 장소(에브리웨어)가 모두 함께(올 앳 원스) 어우러진다.
만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코드가 자신과 맞을지가 고민이라면, 2016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차지한 다니엘스의 전작 〈스위스 아미 맨〉으로 취향 테스트를 해봐도 좋다.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방귀만 뀌는 언데드로 나오는 이 황당한 영화는 B급 웃음과 감동이라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공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 두 영화 모두 호불호가 갈릴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누군가의 가슴에 꽂힐 영화임도 분명하다. 모든 진지함은 잠시 내려놓고 다니엘스의 상상력을 따라가보시기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두 멍청한 놈들이 만든 영화"일 뿐이라는 다니엘스(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말은 다소 과한 겸손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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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석 형네집? 안젤리나 졸리의 로멘스? 이터널스 모든 사건의 중심, 바빌론을 알아보자!
#이터널스 #길가메쉬 #마동석
2021. 06. 02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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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모두가 놓친 장소
00:40 역사의 시작, 바빌론
02:00 길가메쉬 & 바빌론
02:55 안젤리나 졸리의 사랑
03:50 이터널스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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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별나도 괜찮아 시즌4>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9일, 넷플릭스 공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10대 소년 샘은 어느 날 여친을 사귀겠노라 마음먹는다.
샘의 홀로서기로 인해 샘 바라기였던 가족들은 느닷없이 자아 찾기에 내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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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썰> 티저 예고편
“내 얘기 들어볼래?”
일주일에 무려 200만원, 핵이득 꿀알바 VVIP 돌봄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공시생 ‘정석’(강찬희)이 인적 드문 산골에 위치한 저택을 찾는다.
역대급 말빨을 장착한 선임 알바생 ‘이빨’(김강현)은 만나자마자 쉴 새 없이 썰을 늘어놓고,
그 와중에 일명 전설의 10초녀 ‘세나’(김소라)가 눈앞에 등장한다.
믿기 힘든 썰의 스케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데…
단단히 도른자들의 B급 전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