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3-05-20 21:16:05
컴 앤 씨 / 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Review
컴 앤 씨 / 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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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독일군에 의해 침공당한 소련 어느 한 도시의 참상을 한 소년의 시각을 통해 조명한 작품.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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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
내가 여태껏 봐온 모든 전쟁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전쟁영화였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주인공이 군인으로 등장해서 전장에서의 그의 활약을 보여주거나, 나치영화의 경우에는 유대인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는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한 주인공 소년이 전쟁의 현실을 맞닥뜨리며 겪는 시련을 보여준다.
내가 생각했던 이 영화의 전개는 이 소년이 전쟁에 참여하여 폭탄을 실어나르든, 총을 쏘든 하며 그 군대에 어우러지고, 생존하는 전개였다.
근데, 이 영화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매우 현실적인 전쟁 상황을 보여준다.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들과 자란, 고등학생정도의 나이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 군대에 입대하면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완전무장을 하고 적군을 향해 돌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소음에 정신도 못차리고 여기저기 숨느라 바쁠 것 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폭풍에 휩쓸려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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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주인공의 표정과 대사이다.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체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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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명깊은 장면은 역시 마지막씬.
히틀러를 향한 주인공의 분노와 증오를 느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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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글이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되게 좋은 영화인만큼 여러분들이 한번쯤 감상해주셨으면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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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피커] 촬영팀 세컨드 / 학생에서 현장으로
촬영 5년 차, 막내에서 시작해 이제는 촬영팀 세컨드가 되어 열심히 현장을 누비고 있는 촬영팀 형정훈님. 지난 인터뷰 이후, 7월 6일에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 촬영팀 세컨드로 참여 중이라고 하는데요. 드라마를 보면서 괜히 더 반갑고 가깝게 느껴지더라구요.
오늘은 촬영팀을 꿈꾸는 많은 분이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를 여쭈어보았어요. 영화를 만드는 일을 꿈꾸던 학생에서 OTT 제작 현장에서 실제 작품을 만드는 것에 참여하기까지 형정훈님의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Q. 요즘은 독학으로 시작하는 1인 크리에이터도 많지만, 제작팀으로 촬영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 같아서, 꼭 촬영 혹은 영화 전공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더라구요.
A. 만약 제대로 내가 이 일에 관심이 있다, 이 일이 해보고 싶다면 전공 관련된 공부나 대학교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 이 일에 관심이 있어서 학교가 아니라 현장으로 바로 투입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전공을 거치지 않고 오시는분 중에 저보다 더 일찍 시작하고 어린 나이에 워크플로를 이해하시고 뛰어난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0에서 시작한다고 봤을 때 저는 전공을 하면서 카메라에 관해 공부하고, 직접 촬영감독으로써 앵글을 잡고 작품을 만들어 본 경험이 좋았어요. 제 말이 정답이 아닐 수 있는데, 저는 정말 많은 도움을 느껴서 전공하는 걸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Q. 사실 영화 제작에 많은 분야가 있잖아요. 그런데 특별히 ‘촬영’을 선택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우선 대학교 진학할 당시에는 연출 전공이었어요. 연출 전공을 희망해서 글도 써봤는데 ‘ 아 나는 연출은 하고 싶은데 글은 못 쓰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누군가 작가가 있다면 내가 그 글을 받아서 연출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그런걸 생각했던 것조차 너무 웃겼던 것 같아요. (웃음) 제가 현장을 봤을 때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촬영 감독님이었던 것 같더라구요. 연출 감독님은 배우들과 디렉팅이라던지 모든 분야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오히려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촬영 감독님이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저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보다 촬영이 재미있고, 작품을 할 때마다 저의 실력이성장하는 걸 보면서 촬영 감독을 꿈꿨던 것 같아요.
Q. 학교에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길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된 거네요. 그래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는 전공을 추천했군요. 시간을 거슬러 영화전공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도 궁금해요.
A. 학생 때 ‘정말 이 직업을 하고 싶다’라는 뚜렷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공부하고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스펙도 열심히 쌓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거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이제 슬슬 장래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기도 한데, 그 당시에는 전공보다 ‘학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교가 어디 있을까 고민하는 상황이었어요. 그즈음에 인천 아시안 게임 자원봉사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기자분께 느껴지는 에너지가 좋더라구요. 그래서 ‘아,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신문방송학과를 검색해 보니까 커트라인이 너무 높은거예요. 그래서 조금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영화를 공부하는 친구가 “내신 성적 비율보다 면접 비율이 높은 영화과가 낫지 않아?”라는 말을 해서, 자연스럽게 영화과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저는 신문방송학과나 영화 영상학과나 비슷한 계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영화 좋아했잖아. ‘ ‘아버지와의 추억이 어렸을 때부터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거였잖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나름 영화관의 에티켓을 어린 나이부터 알고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영화라는 게 어린 나이에 멋있어 보였어요. ‘나 영화해.’ ‘나 예술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멋있어 보여서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웃음) 돌아보면 우연히 운 좋게 시작한 직업이 저에게 잘 맞고 행복을 느끼며 일을 해서요. 그 당시에 저에게 영화과를 제안해 준 친구에게 정말 고맙네요.
Q. 그럼, 엄청 영화가 하고 싶었던 시네필은 아니었겠네요
A. 네, 어릴 때는 시네필은 전혀 아니었어요. 그냥 아버지가 보고 싶은 영화를 따라가서 보는 정도. <해운대> <디 워> 그런 영화 있잖아요. 누구나 보는 영화들.
Q. 그럼, 영화는 대학교에 가서 많이 보게 된 건가요?
A. 대학교 입시 준비를 할 때 영화를 진짜 많이 봤고 대학교 가서는 처음에는 찍느라 바빠서 영화를 안 봤는데 찍기 시작하다 보니까 레퍼런스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꼈기에 그 당시에는 영화를 찾아서 봤던 것 같아요.
Q. 입시 준비하면서 보는 영화나, 연출 공부에 도움이 되는 영화는 일반 관객이 봤을 때 좋은 영화랑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촬영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를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A. 어려운 질문이네요. 촬영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정말 많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굉장히 좋게봤습니다. 로저 디킨스 감독의 <1917>,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버드맨> 작품도 좋은데, 저는 기술력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감히 제가 따라 할 수 없는 영화다’ 그런데 특히 <기생충>이 좋았던 점은 촬영이 보이지 않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관객들이 ‘와 이 영화 촬영 진짜잘했다’라고 생각이 드는 영화도 좋지만, 제가 원하는 영화는 관객들이 촬영이 보이지 않는 영화를 찍는 게 목표였거든요. <기생충>에서수많은 무빙이 있고 수많은 앵글이 바뀌는데 이 무빙들이 ‘어? 카메라가 이렇게 움직인다’가 아니라 관객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동시켜주는 무빙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그걸 보고, 제가 많이 착안했던 것 같아요. 아,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을 컷이나 이런 게 아니라 무빙이나포커스 이동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이동시켜 줄 수 있는 게 좋은 촬영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홍경표 촬영 감독님 작품을 그때 찾아봤던 것 같아요.
Q. 촬영 감독이 가져야 할 덕목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제가 졸업 영화도 찍고 그 외 작품들도 찍으면서 느꼈던 건 ‘포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는 것이었어요. 저는 포기를 잘하는 사람이 촬영을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컷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맞지만 모든 현장이 그렇듯이 시간에도 쫓기고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본인이 계획한 게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 생기는데, 그럴 때 본인이 이건 포기하면 안 된다. 이건 포기해도 된다. 라는 결정을빨리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인물에 대한 바스트샷을 찍는데, 무빙이 살짝 못 따라온 거예요. 근데 사실 찍는 사람만 보이는 정도의 실수인데 예전이었으면 ‘아, 이거 안 된다’라고 연출 감독님이나 배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무빙이 지금 마음에 안 들었다. 한 번만 더 가자’라고 이야기했을 텐데, 연차가 쌓이면서는 전체를 조금 더 보게 된 것 같아요. 제작 시간을 고려해 보면 이 영화, 작품을 완성 시키는 게 더 우선이기 때문에 ‘이 바스트샷보다 내가 그 뒤에 힘써야 할 부분이 있으니까, 거기에 더 집중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그 컷에 대한 욕심을 포기를 했는데 나중에 편집을 붙여놓으니까 괜찮은 거예요. 그 부분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그 부분을 만약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배우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걸 원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집중을 하다 보니까 그게 안 보이는 거예요. ‘아, 내가 이걸 포기를 한 게 잘한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 이후에도 포기를 하냐 안 하냐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리고 했던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포기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한다니, 어렵고 책임감이 따르는 선택이네요. 혹시 감독님의 MBTI는 뭔가요?
A. 대학생 때는 ENFP가 나왔었는데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 INTJ로 바뀌었어요. (웃음) 아무래도 객관적이어야 하는 시선들도 많이 필요하고, 촬영 현장에서는 항상 모든 상황에 대해 계획을 해야 하거든요.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 감독님한테도 항상 듣는 게 이런 상황이 놓였을 때연출 감독님한테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라고, 말할 때, 그것 말고도 두세 가지의 대안을 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항상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계획적으로 사람이 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우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일이 즐겁고 행복해서, MBTI마저 바뀌어 버린 형정훈님.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열심히 영화를 보고, 원하는 촬영 방법에 관해 공부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 촬영감독으로써 해야 할 일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이제 영화를 볼 때 기술적으로 잘 찍은 촬영과 관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촬영이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보게 될 것 같아요. 다음 주엔 실제 촬영 현장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다음 주도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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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밤마다 다른 사람 같은 남편의 낯선 모습.
2023년 9월 6일에 개봉한 장편 영화<잠>는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이다.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 제56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토론토 미드나잇 매드니스 섹션, 판타스틱 페스트와 같은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일상에서 가질 수 있는 공포를 극대화하여 차별화된 공포를 선보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공포의 주체가 됐을 때의 상황 포착하여 더욱 몰입감 있게 다가온다. 과연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게 된다.
자다 깬 현수가 내뱉은 혼잣말은 정말 누군가가 들어온 것처럼 일상을 공포로 가득 메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이 점차 크기를 키워 가기 시작하는데, 몽유병을 진단받으며 치료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그런 결심도 무색하게 밤마다 낯선 사람이 된 것 같은 현수의 이상 행동은 점차 더 위험해진다. 심지어는 곧 태어날 아이까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두려워진다. 믿기 힘든 광경은 온갖 노력을 하는 수진에게 있어서 몽유병인지 현수 안에 깃든 초자연적인 존재인지 알 수 없어지게 만들기 시작한다. 과연 수진과 현수는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 폭력의 주체로 변해갈 때, 마주하는 공포를 포착한다. 그 대상이 결코 나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찾아오는 신뢰였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현수보다 더 두렵게 다가오는 건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진이었다.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기까지 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인데, 그 과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광기 어리다. 몽유병 당시 자기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수와는 다르게 수진은 현수의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랬기 때문에 설명되지 않는 것을 증명하고 이전과 같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발버둥을 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봤던 현수가 수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준 것 또한 '함께' 상황을 견뎌줬던 수진 때문이었다. 정말 이 영화의 결말 뒤엔 극복한 두 사람이 서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잠'이 두려워진다. 편안한 공간에서 잠을 깊이 자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이 밤이 오지 않길 바라는 상황으로 이어져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극 중 현수가 앓고 있는 몽유병은 수면장애이기 때문에 잠이 든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이상행동을 보이는 증상이다. 걸어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을 공격하는 행동을 하므로 더욱 위험할 수 있다. 당사자가 기억을 못 한다는 사실과 주변 사람에게 남는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이 잘 드러났다. 잠과 관련된 영화가 많기 때문에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잠과 그 과정을 다뤄낸 이야기 전개 또한 예상을 뛰어넘는다. 가장 익숙하고 필수적인 '잠'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낯설게 만드는 영화의 화법이 신선하면서도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결말 부분은 상당수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영화였다. 무엇보다 정유미 배우와 이선균 배우의 연기가 너무 인상 깊게 남았다.
영화의 결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쉽게 풀리지 않은 부분을 해석의 여지로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열린 결말에 3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첫 번째, 수진의 망상이었다.
우선, 수진의 망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부분은 몽유병을 앓는 현 수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지며 받게 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본인 또한 수면에 상당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있지 않았던 일을 착각하는 일도 상당해 병원에도 가게 된 것 같다. 현수는 노력하는 수진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말에 따라줬고 그 끝에도 점점 심해져 가는 수진을 위해서 '연기'한 것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잠들지 못해 눈이 새빨개지고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망상의 일부분처럼 여겨진다.
두 번째, 진짜 빙의된 상황이었다.
실제로 현수가 밑의 집 할아버지에 빙의됐다. '누가 들어왔어요'라는 말은 정말 빙의가 돼서 한 말이다. 또한, 할아버지 사망 후 귀신이 된 날짜와 현수의 몽유병 증상이 나타난 날짜가 동일하다. 또한 특히 '개', '아이'라는 말을 한 것을 보면 할아버지가 틀림없다. 부적을 붙이고 굿을 하는 행위를 통해서 악영향을 모두 막았고 수진의 모든 행위가 할아버지가 무사히 정각 전에 성불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특히 딸을 말을 듣고 현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통해서 현수의 몸에 할아버지가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그저 몽유병이다.
현수는 심각한 수면장애인 몽유병을 앓고 있었다. 오래된 단역 배우 생활을 전전하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누가 들어왔어요'라는 말은 드라마 대본의 대사였다. 치료를 받아 봤지만 어려움을 겪었고 마침내 치료에 성공하게 된다. 반면, 수진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설명되지 않는 것을 납득하기 쉬운 것을 믿게 되었다.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일들을 생각하고 행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수진을 통해 드러났다. 현수는 그런 수진을 위해 그녀가 믿고 싶은 현실을 '연기'한다. 의사가 말했듯 이상 행동이 늘 일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미신과 관련된 행위는 우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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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없는 주인공은 흥행 보증 수표?!
대사 없는 주인공을 내세워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있다.
<늑대소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그리고 <소리도 없이>는 말 없는 주인공으로 흥행에 성공해 주목받은 작품으로, 대사 없이 캐릭터의 표정과 몸짓으로 내용을 풍부하게 채워준 캐릭터들에 대한 호평도 쏟아졌다.
대사 대신 더 다양한 눈빛과 표정 연기, 때로는 절제된 감정선 등을 녹여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 영화 3편의 주인공을 알아보자.
<늑대소년>의 '철수'
2012년 개봉해 700만 관객의 선택을 받은 <늑대소년>은 순수한 시골 소녀 ‘순이’와 늑대소년 ‘철수’의 아름답고 깨끗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극 중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습득하지 못한 ‘늑대소년 철수’를 맡은 송중기는 대사 없이 눈빛으로 표현하는 연기가 힘들게 느껴졌지만, 늑대소년을 표현하기 위해 마임을 배우면서 늑대의 움직임과 호흡을 연구하고, 영화 <반지의 제왕>부터 <동물의 왕국>까지 수십 번 반복하며 탐구했다고 한다. 많은 탐구와 노력으로 거칠고 야생적이면서도 속은 순수하고 여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흥행에 힘을 더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엘라이자'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목소리를 잃은 청소부 ‘엘라이자’와 비밀 실험실에 갇힌 괴생명체와의 만남을 그린 로맨스 판타지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환상적인 연출과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애틋함을 섬세하게 표현한 배우 샐리 호킨스의 열연으로 국내 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소리도 없이>의 '태인'
<소리도 없이>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소리 없는 청소부 ‘태인’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말을 하지 않는 인물로 배우 유아인이 연기 인생 최초로 대사 없는 캐릭터에 도전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태인의 생활 연기를 위해 삭발을 하고 15kg 증량을 감행하며 캐릭터를 완성시키는데에 많은 열정을 녹여낸 배우 유아인은 어쩌다 맡은 의뢰로 계획에도 없던 범죄에 휘말리게 된 ‘태인’의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 감정을 단 한마디의 대사 없이 오로지 눈빛과 몸짓만으로 200% 표현해 내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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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란하기만 한 뇌신의 사랑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노스와의 전쟁이 끝난 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합류한 천둥의 신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새로운 동료들과의 모험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 공허함을 달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의 모든 신들을 몰살하려는 신 도살자 '고르(크리스천 베일)'가 등장하고, 토르는 그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급히 뉴아스가르드로 돌아간다. '킹 발키리(테사 톰슨)'와 전 여자 친구이자 부서진 묠니르를 휘두르는 '마이티 토르'가 된 '제인(나탈리 포트만)'과 재회하여 고르의 습격을 막아낸 토르. 그는 '제우스(러셀 크로우)'를 비롯한 신들의 도움을 얻어 고르의 복수와 더 많은 신들의 죽음을 막기 위한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토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우주로 떠난 토르의 후일담을 다룬 작품으로,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았다. 그래서인지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전작과 유사한 스타일을 유지한다. 이별했던 애인과 무기와의 재회가 낳은 토르의 개그와 유머는 오프닝 로고를 포함해 적재적소에 힘을 준 올드락과 어우러지며 전반적으로 경쾌한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전작에서 장족의 발전을 보여줬던 액션씬도 여전히 호쾌하다. 토르의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살린 장면들은 물론이고, 분리도 가능해진 묠니르를 활용한 망치 액션도 인상적이다.
또한 색상을 명징하게 대비하는 만화적 연출도 눈에 띈다. 특히 그림자 영역(shadow realm)에서의 전투씬이 압권이다. 화려한 색감으로 무장한 토르와 마음 가득한 절망을 표현한 듯 명암의 대조만 남은 고르의 대결은 두 캐릭터의 능력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면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이 모든 장점이 한 데 모였는데도 <토르: 러브 앤 썬더>의 몰입도는 떨어지고, 토르의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으며, 심지어 토르라는 히어로의 존재감도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왜냐하면 스타일은 화려할지 몰라도, 10여 년 간 쌓아 올린 토르라는 슈퍼히어로의 캐릭터성과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르: 러브 앤 썬더>의 가장 큰 특징은 MCU의 히어로 중 네 번째 솔로 영화가 나온 첫 사례라는 사실이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도 삼부작으로 시리즈를 끝내고 퇴장한 가운데, 유독 토르만 다시 한번 솔로 영화로 돌아온 것이다. 이는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를 기점으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을 거치며 토르라는 캐릭터가 성장할 수 있는 다른 방향성이 제시되었기에 가능했다. 그간 아스가르드의 왕자인 토르는 오딘의 후계자로서 아스가르드의 왕위에 올라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왕위의 무게감이 주는 책임감과 부담을 견뎌야 하는 역경과 시련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토르: 라그나로크>를 기점으로 토르는 왕이 되어야만 하는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 왕이 아닌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정체성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호자이고, 다른 하나는 신이다. 아스가르드의 멸망인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수르트를 처치한 것, 사카아르 행성에 갇혀 있던 와중에도 아스가르드로 되돌아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것, 한쪽 눈을 잃어가면서까지 아스가르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헬라에게 저항한 것. 이 모든 것은 토르가 왕으로서 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아스가르드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가 끝내 아스가르드의 왕좌에 앉은 것 역시 같은 연장선상이다. 토르는 오딘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아스가르드를 보호하는 수호자였기에 왕이 되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그가 타노스를 향한 복수심에 불탄 것도, <엔드게임>에서는 끝내 아스가르드를 지키지 못했다며 깊이 절망한 것도 그가 왕이기 이전에 아스가르드의 수호자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천둥의 신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립해 나간다. 왕위 계승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던 시리즈의 첫 두 편과 달리 전작인 <라그나로크>에서 유달리 그가 신이라는 사실이 강조된 이유다. 헬라는 그에게 왕의 자격보다도 그가 무슨 신이냐고 묻고, 오딘은 그가 망치의 신이 아니라 천둥의 신이라고 일갈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그래서 묠니르를 잃은 대신 토르는 뇌신으로서 각성해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활용하게 된다. <엔드게임>에서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가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타노스와 맞서는 순간, 러닝타임 내내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던 천둥의 신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타노스와의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발키리에게 아스가르드의 왕을 맡긴 채 우주로 떠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왕이 아닌 토르는 수호자이고 신으로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탐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4편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래서 <토르: 러브 앤 썬더> 속 토르는 수호자로서, 또 신으로서의 여정을 지속하고, 새로운 캐릭터와의 만남을 통해 두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한다. 우선 수호자로서 토르는 제인과의 재결합을 통해 수호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자격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사실 토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함께 전우주를 돌아다니며 여러 외계 행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서지만, 항상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들을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토르에게 제인은 다르다. 이미 모든 가족과 친구를 잃은 토르에게 그녀는 그가 지킬 수 있고, 지켜야 할 이유가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토르와 제인의 재회는 자연스럽다. 즉, 제인을 향한 사랑은 수호자로서 토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 그가 묠니르에게 그녀를 지켜달라고 부탁했기에 제인이 마이티 토르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홀로 고르를 상대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제인을 보호하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수호자로서 토르의 서사를 로맨스와 결부시킨다.
한편 신 도살자인 빌런 고르와의 서사는 토르가 신으로서의 자격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이때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강조되는 신의 자격 역시 보호와 사랑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먹을 음식과 마실 물조차 없어 딸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의 신에게 헌신했던 고르. 그러나 정작 신이 그들을 보호하거나, 자신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분노하여 신 도살자가 된다. 이러한 고르의 분노는 인간과 신 사이에 상호 호의가 있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고대인들의 믿음을 연상시킨다. 고대 종교적, 신화적 질서 안에서 신은 인간에게 삶과 세상을 베풀고, 인간은 신이 베푼 세상에 대한 감사함과 그 세상을 앞으로도 유지해줄 것에 대한 기대를 헌신으로서 보답하며, 이에 신은 다시 인간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영화는 고르를 통해 이 질서를 신의 사랑과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책임으로 재해석한다.
이는 고르의 분노가 향하는 대상이자, 고대의 대표적인 인격신인 토르와 제우스의 갈등 안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작중 신 중의 신으로 등장한 제우스는 고르를 사전에 제압하기 위해 지원군을 보태 달라는 토르의 부탁을 거절한다. 제우스는 신들을 사랑했고 또 믿었던 인간의 분노가 낳은 재앙은 외면한 채 자신의 목숨만 부지하려 한다. 쿠키영상에서 그는 인간들이 토르와 같은 히어로만 사랑하고 정작 신은 사랑하지 않는다며 토르에게 복수하려 하는데, 이는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고르에게 납치된 아이들의 믿음에 응답한 토르와 달리 제우스는 사랑에 따르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호자이자 신으로서 토르의 존재 의의는 이제 사랑에 달려 있게 된다. 모든 신을 죽이려는 찰나에 고르가 토르의 사랑을 보고 예상외의 마지막 선택을 한 것, 토르에게 다시금 지켜야 할 가족인 '러브(인디아 로즈 헴스워스)'가 생긴 것이 이를 방증한다. 또한 이는 아스가르드의 왕 대신 수호자와 천둥의 신으로서의 성장을 완결시킨 토르의 후일담 제목이 '러브 앤 썬더'인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작중 마침내 수호자와 신으로서의 정체성을 꽃피운 토르보다 그의 성장을 돕는 두 조역, 제인과 고르의 서사가 더 빛난다는 점이다. 이는 전작의 유쾌한 분위기는 유지했지만 정작 웃음 뒤에 슬픔을 숨기는 토르의 캐릭터성을 살리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토르라는 캐릭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상실감'이었다. 가족과 고향, 무기와 친구,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잃어버리면서 그는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신이라는 완벽함 대신 인간성을 갖게 되었다. 그렇기에 어떤 일에도 무너지지 않는 진취적인 태도, 거기서 기인한 그의 유쾌함과 웃음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가슴 깊이 남아있는 아픔과 흉터, 상실감을 애써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그의 모습이 개그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엔드게임>에서 뚱보가 된 토르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동시에 상처 입은 그의 내면을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잘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제우스가 토르의 옷을 벗기는 개그 장면에서도 그의 등에 로키의 죽음을 기리는 문신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러브 앤 썬더> 속 토르에게서는 그의 웃음 뒤에 자리 잡고 있을 아픔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토르는 그저 염소들에게 시달리고, 묠니르와 스톰브레이커의 삼각관계 안에서 동일한 개그를 반복할 뿐이다. 감독판을 원한다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과 크리스 햄스워스 언급대로 많은 장면이 편집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MCU의 대표 캐릭터에게 기대할 법한 무게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그의 성장을 돕는 제인과 고르의 진중한 이야기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를 만나 탄생한 고르는 조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섬뜩하고, 제인과의 로맨스는 그나마 토르가 진지해지는 순간이기에 오히려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의 서사를 완결 짓는 결정적인 순간에 정작 토르의 존재감은 부족해진다. 그로 인해 영화의 전개와 구조는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느껴지고, 이는 아이들에게 토르의 힘을 나눠주는 장면처럼 영화의 유쾌함이 유치함의 선을 자주 넘나드는 문제로 이어진다.
MCU에게도 어벤져스 원년 멤버인 토르의 실패는 큰 타격일 수 있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토르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매듭지음과 동시에 다시 한번 세계관의 확장을 시도한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더 많은 신들과 발할라라는 새로운 배경을 등장시키면서 그 스케일을 더욱 키우는 두 개의 쿠키 영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페이즈 4 이후 커지는 세계관에 비해 각 영화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토르: 러브 앤 썬더>도 피하지 못한 이상, 이러한 선택이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과거 케빈 파이기의 발언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비법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대해 "세계관을 걱정하지 마라. 영화를 걱정하라(don't worry about the universe. Worry about the movie")"라고 답한 바 있다. 과연 지금의 마블은 작품 하나하나를 걱정하고 있는 걸까? 적어도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그렇지 않다는 심증에 확신을 더해준다.
D(Dreadful, 끔찍한)
유쾌함과 경박함 사이에서 방황하는 천둥의 사랑
*Byron E. Shafer et al, Temples of Ancient Egypt.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9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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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섭'에 대한 우려는 접어도 될 듯 하지만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
살짝 낡은 버스가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지나가고 있다. 버스 안에는 한국인이 있다. 어떤 남자가 버스 가운데에 서서 말을 하고 있다. 아마 교회에서 온 사람들 인 것 같다. 어수선한 2007년. 사실 아프가니스탄은 나라 내, 외적으로 어수선했다. 분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아프가니스탄. 이들은 위험한 여행길에 있었다. 종교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판국에 교회 사람들이 간 것이다. 지금 당장 아무나 달려가서 ‘당장 한국으로 귀국하세요’라고 하고 싶지만 이들에게 그런 자각은 없었다. 이 걱정이 무색하게 갑자기 버스에 총알이 날아든다. 동시에 버스를 막아선 몇몇 군인들.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버스에 난입해 교회 사람들을 데려갔다. 피랍 사건이 발생했다. 분쟁지역에 간 한국 사람들이 총기로 무장한 탈레반들에게 납치당한 것이다.
외교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재호. 재호는 교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뉴스를 보는 재호. 탈레반이 한국인들을 납치했다는 영상을 배포했다. 탈레반의 협상조건은 아프가니스탄에 잡혀있는 탈레반들을 석방하는 것이다. 아니 왜 가지 말라고 한 곳을 가는 거지? 납치된 사람들의 신상정보부터 확인한다. 다 같은 교회 사람들이네? 그럼 이 사람들 종교로 내전 중인 나라에 선교하러 간 거야? 부하 공무원을 부르는 재호. “야. 이 사람들 지금 다 자원봉사 차 갔다고 말해. 안 그럼 이 사람들 다 죽어!” 살해 시간은 24시간. 이 업무지시를 시작으로 장재호와 외교부 직원들은 탈레반을 상대해야 한다. 과연 재호는 피랍된 한국인들을 생환시킬 수 있을까?
믿고 보지
사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우려의 시각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주제가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 피랍 사건은 약 15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교회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입국을 강행해서 일어난 이 피랍사건. 당시에 엄청 큰 일이었기 때문에 초등학생이었던 글쓴이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이 일이 그렇게 먼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교회인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가 몇몇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영화에서 감독이 이들을 우호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교회 사람들을 좀 비꼬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이전에 글쓴이는 이 영화에 대한 그런 비판적 시각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바로 전작 <제보자> 때문이다. 전작에서 다뤘던 소재는 '황우석 사기 사건'이다. 줄기세포 복제와 관련해서 온 나라를 속이던 과학자를 고발하는, 진정한 저널리스트에 다뤘던 이 영화는 나름 갖고 있는 균형감각이 좋았다. 당연히 <제보자>와 흑막이자 현대사의 빌런 중 하나였던 그 과학자는 나름 잘 구현했다. 이 외에 이 과학자를 믿는 일반 국민들의 관점이 어떻게 주인공에게 딜레마로 작용하는지를 영화 내적으로 팽팽하게 드러내서 좋은 직업영화가 되었다.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대사는 '국익이 우선이냐, 진실이 우선이냐'인데, 이를 영화의 내적 리듬으로 잘 구현해 과연 임순례라는 인물의 경험치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영화는 이미 그런 걸 만들어 본 적이 있는 듯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끌고 갔다.
과한 에너지
이렇게 직업윤리를 두고 갈등하는 인물의 모습을 잘 드러내면 역시 임순례!라는 말을 듣기 충분했을 것이다. 역시나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막 엄청나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임순례라는 작가의 개성을 느끼기는 좀 어렵다. 왜냐하면. 일단 주인공 재호의 설정방식은 좀 아쉽다. 재호는 굉장히 헌신적인 공무원이다. 극에서 온갖 개고생을 다 한다. 게다가 후반부를 보면 이 사람은 외교의 신이 점지한 느낌까지 난다. <제보자>의 주인공 윤민철과 공통점이 있다. 직업윤리적으로 굉장히 높은 수준의 것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두 인물 간의 차이점이 너무 짙어 아쉽다. <제보자>에서 윤민철은 이 이장환 박사의 사기 행각 피해자를 몇 번 만나며 동기부여가 생긴다. 반대로 재호는 이에 대한 묘사가 없다. 그래서 감정선이 좀 얕았다. 글쓴이는 균형감각에 대한 지나친 의식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덩그러니 탈레반에게 살해당하라고 놔두는 것도 웃기는 짓이다. 그럼 이를 생환하기 위한 나라의 노력이 중요하겠지? 영화는 이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재호를 이 쪽에 지나치게 헌신적으로만 묘사한다. 만약에 재호 입에서 이 사람들을 욕하는 대사가 나왔으면 영화의 내적인 논리가 분산될 것이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당시 피랍 피해자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하고 각본을 썼다면 인간적으로 이 인물이 이렇게 처절한지를 묘사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사기 사건은 온 나라가 이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아서 윤민철의 내면묘사를 살짝 얕게 설정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2007년 피랍 사건은 많은 국민들이 이 교회인들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들이 이 공무원 분들의 존재감을 비교적 옅게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얕은 감정선 덕에 재호가 하는 대사가 살짝 이질감이 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영화 전체적으로 '이게 핵심이야!'라고 때려 박는 듯한 대사가 좀 아쉬웠다. 어떤 장면에서 한 인물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중반부에 뿌렸던 떡밥을 수거하며 영화의 키워드가 되는 어떤 대사를 한다. 글쓴이는 이 대사와 그 후의 장면이 좀 아쉽게 느껴졌다. 너무 관객에게 '이거 멋있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 아니더라도 다들 그렇게 느낄 것 같다. 그러니까 같은 말을 너무 직접적으로 두, 세 번 하는 것이다. 이는 대식이라는 인물에게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식이 어떤 일이 있어서 이 교섭 일에 진심이고 왜 아프가니스탄에 있는지를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중간에 보여주는 액션 신은 역시 현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액션 신까지 잘 뽑혔으니 극 연출에서 재호보다 대식에게 힘을 더 준 셈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대식이(역시나 헌신적이지만) 재호의 직업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됐다는 것은 영화의 큰 단점으로 뽑힐 것이다. 시각적으로 셔츠 색을 이용해서 대비를 준 것부터 시작해 영화 안에서 중요한 결정권이 누구한테 있는가? 가 그에 대한 근거가 될 것 같다.
임팩트 한 방이 없어
이렇게 재호가 성자 같은 인물이라 <제보자>와 같은 맛이 없다. 몰입도는 좋다. 그런데 이 몰입도가 후반부의 협상 기점으로 뭔가 힘이 빠지더니 엔딩에서 밋밋해지는 것이다. <제보자>는 장르적인 특성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데어데블> 시리즈의 '킹핀'이 연상될 정도의 빌런인 이장환 박사. 당시 한국에서 끌던 인기가 선풍적이었기 때문에 국민 여론이 그의 편이었다. 이를 활용해서 인물을 어떻게 압박하는지, 또 이 사람이 어떻게 정체가 드러나는지를 본다면 영화가 기본적으로 직업영화 이전에 스릴러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영화가 이런 장르적인 강점을 가진 것에는 기획력에 있었다.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직업의식을 장르 특성으로 바꾸자'라는 창의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실을 외면하고 피상적인 국익에 집중하는 것이 <제보자>의 주인공에게 중요했던 걸 이야기로 잘 설계한 감독의 꼼꼼함, 섬세함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교섭>에게는 이런 느낌이 없다. 그냥 재호가 처음부터 끝까지 헌신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인물이 단점을 가진 것 때문에 뭔가 위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비협조적인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의 악함을 영화의 굴곡으로 사용하고 그 나머지는 없다. <제보자>의 윤민철은 좀 밑도 끝도 없어서 이에 대한 리스크가 있었는데 재호는 우직하게 하나만 판다. 그럼 뭐가 단점이냐? 이는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는 영화가 지나치게 쉽다고 뽑고 싶다.
의문이 드는 기획
이렇게 영화가 좀 단면적이다 보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부족했다고 느꼈다. 올바른 직업윤리를 묘사할 것이었다면 이 일을 포기하는 내면 묘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주인공들이 고민을 해야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볼 법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 고민도 없이 무작정 들이박는 인물을 보면서 헌신적인 직업윤리보다는 과함이, 교회인들에 대해 '왜 쓸데없는 짓을 하나'하는 탄식이 느껴졌다. <리틀 포레스트>와 <제보자>의 중간단계 느낌? <리틀 포레스트>에서 현생으로 돌아오고 난 다음의 낙관적인 시각과 <제보자>가 가진 숭고한 직업의식 사이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언가가 탄생한 것이다.
장르적으로 잘 잡았다? 이것도 좀 아쉽다. 각본에서 딱히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극에서 전개되는 몇 개의 협상이 들어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다 근거가 있다. 왜 이 일이 벌어지는지 다 꼼꼼하게 묘사한다. 한 사건이 어떤 분들에겐 좀 아쉽다도 느껴질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를 동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런 상황이니까 그 사람이 그런 선택지를 골랐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영화는 이야기를 어떻게 쥐고 펴야 긴장감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근데 이 긴장감이 후반부의 카타르시스로 이어지지 않는다. 왜? 후반부의 하이라이트신이다. 이 인물들은 좀 급발진한다. 주제를 위해 이 사람들은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 선택지만 딱딱 고른다. 김이 새는 것이다. 갑자기 서스펜스가 쭉 추락하니 그냥 적당히 볼만 한 영화가 나왔다. 임순례라는 큰 이름에 이런 걸 기대하고 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직업인에 관한 영화인데 직업인에 몰입이 안되고. 장르적으로도 실화 바탕이라는 한계가 있고. 아~무것도 아닌 모호한 영화가 나왔다. 주제? 그렇다기엔 단순히 그냥 숭고한 한 직업인인을 보여줄 거라면 다큐멘터리 하나가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연출력은 돋보였지만 기획력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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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머리카락에 녹아 있는 기억
SYNOPSIS.
애착 인형 이름은 제프 브리지스, 애정하는 밴드는 플리트우드 맥. 감수성 넘치는 베니와 똘똘한 사촌 돈의 특별한 우정
PROGRAM NOTE.
때는 1990년, 록밴드와 인형을 사랑하는 원주민 혈통 소년 베니는 어느 여름날 부모님에 의해 난생 처음 도시를 떠나 애리조나 원주민 보호구역 내 양떼 목장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애로운 외할머니, 빵떡 소녀라는 별명의 사촌 돈과 자유로운 영혼 루시 이모, 마초맨 삼촌 마빈을 만나게 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성인이 된 베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도시 소년 베니의 시선 아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조조래빗>을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 영화는 이제껏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원주민들이 중심이 된 가족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묘사한다. 록밴드와 TV의 시대였던 90년 미국의 멜랑콜리한 활기, 촌철살인의 유머가 넘치는 미국 인디펜던트 영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최은영)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적이 있다. 머리카락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는다고. 프로그램에서는 국과수에서 머리카락을 분석하는 실험을 해 보였는데, 오랫동안 종사한 직업은 물론 최근 바다를 다녀왔다는 사실까지 맞출 수 있었다. 어딘가 오래 묻혀 있다 ‘미라’ 상태로 나온, 한때 살아있던 사람의 몸에서도 머리카락은 비교적 오래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몸이 발견될 때마다 뉴스 기사들은 하나 같이 “상태 양호”하다고 했다. 이런 머리카락을 통해 DNA를 분석하면 또 그 몸이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가 주렁주렁 올라올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파편적으로나마 알게 된 이후로, 가끔 머리카락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머리카락 하나는 평소라면 그냥 방바닥에서 증식을 하는지 의심될 만큼 치워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현장에서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감고 말리고 빗고 넘기는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히 여길 무엇일 것이다.
<빵떡 소녀와 나>를 보고서는, 그게 그토록 애틋하고 찡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고른 영화였다. Frybread를 빵떡이라고 번역할 귀여운 생각은 누가 했을까. 유난히 잘 붓곤 하는 얼굴을 스스로 빵떡이라고 종종 말하긴 해도 그게 표준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어엿하게 영화 제목으로 들어가 있는 걸 보니 기특하기까지(?) 했다. 기특한 우리 탄수화물과 탄수화물의 조합 같으니.
귀여운 제목에 귀여운 스틸컷을 보고 골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옥수수죽처럼 슴슴하고 든든한, 어쩐지 따스하고 구수한 내음이 나는 영화였다.
1990년 미국. 키치하게 반짝거리는 도시 한 가운데서 베니가 열중하는 것은 헤드셋으로 쏟아지는 밴드 음악과 손에 쥐어지는 크기의 인형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액션 피규어') 두 개다. 인형 두 개로 베니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긴장 일촉즉발의 갈등 상황이다. 외부로 표현되지 않는 소리들이 베니 안에서 왕왕 울릴 때, 부모님 손에 의해 여름방학 동안 할머니댁 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된다. 베니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럴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심각한 표정의 부모님의 긴장과 갈등이 이미 베니의 손 끝 인형에까지 묻어나고 있으니까.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도달한 할머니 댁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초원 한 가운데 있다. 지금은 다 집을 떠난 이모 삼촌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여전히 벽에 붙어 있는 곳.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할머니와 나바호족 말을 할 줄 모르는 베니, 그리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삼촌. 그 사이로 빵떡이가 등장한다. 모두가 빵떡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름은 '새벽Dawn'인 소녀가.
영화는 실제로 방학 동안 할머니댁에 맡겨진 아이들의 일상처럼, 슴슴한 모험의 맛으로 가득 차 있다. 분명 애들한테 물어보면 "심심해 죽겠어!"라고 대답하겠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가장 소중한 추억이 거기 다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그런 날들. 아이들에게 호의적이고 다정한 태도를 보이며 아이들 마음을 풀어주는 이모가 있는가 하면, 있는 상처 없는 상처 박박 긁어 결국 갈등을 표면화하고 마는 삼촌도 있다. 그들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점 쓸쓸해지는 풍경이, 그곳을 지키는 마지막 사람들 같은 스산한 기분이, 함께 올라온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동네의 마지막 젊은이 같은 기분이 든달까. 내가 한국인이라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지, 저들에게는 잃어가는 원주민 문화의 흔적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영어 배우기를 거부한, 나바호족 문화를 꼿꼿하게 지키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양탄자를 만들어서 기념품 가게에 팔지만, 양탄자에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만은 할머니 곁에 모조리 남아있을 것만 같다. 양탄자 무늬의 의미와 거기 담긴 상징들, 나바호족에게는 '진실보다 중요한' 상징들을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이유식처럼 떠 먹인다. 할머니의 자장 안에서 나바호족의 문화는 보드랍고 편안하게 풀어진다. 비록 어른이 되면서 (영화에서는 서술되지 않는) 여러 원주민으로서의 어려움 속에서 제각각의 길을 가는 이모삼촌 삶의 궤적은 쓸쓸한 감정을 불러오지만, 아기의 '첫 웃음'을 축하하며 첫 웃음 잔치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이 영화 속 가족은 아주 애틋하거나 아주 냉담하지 않은, 그래서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임에도 어쩐지 더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볼 때쯤이면 할머니 댁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이 영화에서 가족들은 많은 순간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손주들의 머리를 정성껏 감겨 주고, 머리를 묶어 주고, 어루만져 주는 할머니의 사랑. 머리카락은 기억이라는 말은 DNA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나바호족의 상징에서도 진실이다. 가끔은 사실보다 상징이 더 진실을 닮아 있는 세상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지혜가 고요히 빛난다.
사실은 서로 다 알고 있던, 녹록지 않은 가족사를 이고 '빵떡 소녀와 나'는 앞으로도 성장해 갈 것이다. 아이라 해서 모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기억을 간직하듯, 가족 안에서 켜켜이 쌓이고 흐른 일들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떠먹여준, 고요하게 빛나는 지혜와 상징이 촛불처럼 아이들의 삶을 밝혀주지 않을까. 나도 촛불 하나를 들고 영화관 밖으로 나서는 듯한 마음이다. 어쩐지 창포 향이 날 것 같은 기분.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렇게 우리네 이야기 같아도 되나? 아마 그게 영화의 힘이겠지. 이 기억 또한 내 머리카락에 남을 것을 안다.
9월 17일 20:00-21:29 롯데시네마 은평 7관
9월 18일 19:30-20:59 롯데시네마 은평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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