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to2023-06-27 17:51:10
오선지 위에 그려낸 실험정신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이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및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시험기간 도중에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시사회에 다녀왔다. 종강하고서야 쓰는 리뷰...!
<석양의 무법자>를 제외하면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은 영화를 많이 본 적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먼저 영화 시작하기 전에 영화사 진진 관계자분이 나오셔서 간략히 영화와 이벤트 설명해주시고 마지막으로 '오늘 밤 집에 돌아가시는 길에 귓가에 엔니오의 음악이 맴돌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해주신 게 정말 좋았다. 멘트 하고 가신 건데 뭔가 더 세심한 기획 같은 느낌을 받았다ㅎㅎ
앞서 쓴 것처럼 본 영화가 거의 없었고, 스코어나 클래식에 관한 지식도 정말 부족한데다가 시험기간에 바닥난 체력 + 다큐멘터리라는 점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울까봐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러닝타임이 실제보다 짧게 느껴질 정도로 좋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먼저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이 보더라도 영화음악가로서의 엔니오, 그리고 영화음악으로써 마에스트로가 된 그에 대해 많은 걸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영화가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8-90년대의 스코어(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피아니스트의 전설>)들이 나오면서 엔니오의 음악이 할리우드 음악의 전형, 그리고 '영화를 보지 않아도 들어본 적은 있는' 아이코닉함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그가 '스타일'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넬이나 디올이 새로운 '핏'을 만든 것처럼, 예술가로서 굉장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영화상으로는 후반부이기도 하고 나에겐 귀에 익은 음악들(그리고 그 당시 영화에 많이 나오는 형식들)이어서 무감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엔니오가 커리어의 정점에 다다라서 끝내 스타일이란 것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워 보일수록 그 사람이 일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그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예술, 정치적인 철학이나 특별한 대의보다는 자신의 원칙과 작업으로서 음악에 접근하고, 실험할 기회가 있다면 받아들이고 협업하는 과정이 그가 이미 영화 음악의 거장이 되었을 시점까지도 계속해서 드러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자연스레 다큐멘터리 또한 위인의 일대기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일하는 방식과 정체성에 대한 작품처럼 읽힌다. 엔니오가 가진 겸손함도 자연스레 영화에 묻어난다.
영화 초반부부터 편집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편집상을 벌써 하나 받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잘 모르는 관객이 보더라도 영화음악가로서의 엔니오에 대해 많은 걸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영화로 거듭난 데에는 편집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건 실제 엔니오의 인터뷰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와 오케스트라 영상, 영화의 몽타주가 일정한 순서대로 배치되었고 엔니오가 인터뷰 도중에 흥얼거리면서 곡을 설명하는 장면을 영화 장면과 함께 사용하면서 그의 정체성(영화 음악가)을 강조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지알로부터 세르지오 레오네와의 작업, 8-90년대 할리우드 영화, 타란티노와의 협업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작업량을 매끄럽게 담아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덧붙여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이러한 성공적인 편집은 적절하게 배치된 인터뷰와 에피소드로 완성되었다. 예컨대 스탠리 큐브릭 특유의 '아니면 말고!' 하는 반응 대문에 엔니오와의 작업이 불발된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관객인 내가 더 아쉬워질 지경이었다.
다만 영화의 극후반에 다다라서는 조금 더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평가를 나열하는 식으로 여러 영화 및 음악인들의 인터뷰를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물론 엔니오를 기리고 훌륭한 예술가에 대한 찬사를 보내려는 것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앞부분에서 관객 스스로가 그의 예술적 성과를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고도 친절한 편집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칭찬 세례를 마지막에 전부 배치한 것이 영화의 막바지를 약간 느릿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실제 영화 푸티지를 극장에서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점, 개인적으로는 거장 예술가를 새로 알게 해준 친절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이 정말 만족스러웠던 시간이었다. 개봉하면 다시 극장을 찾아 관람하게 될 것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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