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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2025-05-14 01:48:26

지금 직시해야 할 또 하나의 케이

케이 넘버(2025)

 

 


1970년대 초, 길에서 우연히 발견된 미오카.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오카는 가족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조작된 서류와 감춰진 기록. K-Number의 진실은 무엇이며, 사라진 서류는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시간과 국경을 넘어, 숨겨진 진실이 풀리기 시작한다.

<케이 넘버> 줄거리

 

 

 

 

케이팝, 케이뷰티 등 'K-'를 붙여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기 이전, 이미 'K-'를 붙여 세계로 수출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가 허가 하에 홀트아동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의 입양알선기관에서 해외로 입양 보낸 이들은 어떠한 규칙성이 있는 일련번호, K-넘버가 붙여져 해외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보내진 해외입양인들이 추산 20만 명을 넘는다고 하는데, 이 충격적인 숫자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이 어마무시한 숫자와 이들의 입양에 돈이 오간 걸 연관시킨다면 입양을 '사업'으로 이용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 넘버>는 이런 한국의 잘못된 입양 시스템이 횡행하던 과거를 관통한다. 영화는 국가가 주도한 거대한 사업이 된 시작점을 다루며 이 시스템의 이면에 혼혈아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계산, 기부장제에서 미혼모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잘못됐다는 시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낱낱이 들춰낸 사실들에 우리는 당연히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끝낼 수 있지만, <케이 넘버>는 이 잔혹사의 가장 중심인 입양인들을 조명한다. 과거를 들추긴 하지만 영화의 중심은 언제나 현재에 있으며, 입양사업을 하던 시대에서 40-50년이 지난 지금을 살아가는 입양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따라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오카 역시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이다. 자신의 친생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만 4번째 방문 중인 그는 부정확한 자료와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하여 탐문을 이어나가야 한다. 국가도 입양기관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입양인은 여정은 갑갑함과 분노를 일으킨다.

 

또한 사회가 조금의 책임도 없이 그들을 외면했기에 입양인들은 친생부모를 찾는 과정부터 찾은 이후, 그리고 그저 삶을 살아갈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미오카는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자신을 입양한 미국인 부모가 입양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 없이 입양 간 미국에서 평생을 살아왔음에도 불법 체류자가 될 위기에 처한다. 그는 다행히도 시민권을 얻었지만, 미오카는 말한다. 시민권을 취득하기 어려운 이들도 많다고. 이 문제 역시 국가와 입양기관이 그들 주도하에 아이들을 입양 보냈음에도 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내면 끝이었던 무책임한 행태는 끝내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추방된 한 입양인이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1심에서는 국가기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2심에서는 홀트의 책임 역시 인정하지 않으며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국가 주도하에 입양 보내진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것에 과연 국가와 입양기관의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있을까.

입양인들이 입양된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국적취득 등의 서류상의 문제가 처리되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자신의 입양 정보를 보기도 어려우며,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친생부모를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부모의 거절로 보지 못하는 것에 과연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문제들에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케이 넘버>는 한국의 잘못된 입양 시스템이 잔혹했던 과거의 아픔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가해 행위임을 분명히 한다. 과거에 사후 대처 없이 무분별하게 입양 보낸 무책임한 과거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영화를 통해 입양인들을 약간이라도 알게 됐다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도 직면해야 한다. 당신은 입양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가가 전 세계로 보낸 수십만 명의 입양인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들의 인생에 국가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전 세계로 퍼지는 우리 문화에 'K-'를 붙이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면 제일 처음 'K-'를 붙여 해외로 보낸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케이 넘버>를 통해 입양인들을 약간이라도 알게 됐다면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더 이상 비극을 이어나가지 않게 감시해야 할 것이다. 영화가 준 충격이 이 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참석한 <케이 넘버>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 .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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