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6-29 10:21:59
6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주 씨네 뉴스는 국내외 다양한 소식으로 알차게 준비 해 보았는데요!
그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킹더랜드> 임윤아 이준호 로맨스 시청률 화제성
이준호는 연애가 서툰 본부장 구원 역으로 사랑에 빠진 남자의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여심을 장악했습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넷플릭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화제를 몰고있으며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상승세를 기록하며 로맨틱 코미디의 진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밀수> 김혜수X염정아X조인성 독보적인 아우라
영화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입니다.제작사 외유내강, 류승완 감독은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김혜수와 염정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며 웃음과 감동, 액션 이 3박자가 고루 갖춰진 작품에 예비 관객들의 기대를 자아냈습니다.
설경구, 도경수 <더 문> 전세계 155개국 선판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 김용화 감독의 차기작 <더 문>은 오는 8월2일 개봉을 확정했습니다. 설경구를 비롯하여 김희애, 도경수, 조한철, 박병은, 최병모, 홍승희 등 출연을 하며 제작비 280억원이 들어간 대작입니다. 국내 최초로 유인 달 탐사를 소재로 한 우주 배경의 영화며 미국, 호주,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태국 등 세계 155개국에 선판매 됐다고 밝혔습니다.
김시은 <오징어 게임2> 여주인공 캐스팅
<오징어 게임2> 원지안 비롯 박규영, 김시은, 조유리가 출연 확정을 지었습니다. 시즌2 남성 출연자 공개만 뜨면서 여성 출연자들이 없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여성 출연자들의 캐스팅 소식을 알렸습니다. 앞서 넷플릭스는 지난 17일 이정재, 이병헌, 위하준, 공유, 임시완, 강하늘, 박성훈, 양동근이 출연한다고 밝혀 기대감을 고조시켰습니다.
부천국제영화제 <보 이즈 어프레이드> 감독 아리에스터 “가장 나다운 작품”
<유전>과 <미드소마>의 감독 호러 마스터 아리 에스터 감독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작으로 찾아옵니다.감독은 “10년 동안 구상한, 나의 개성과 유머가 담긴 가장 나다운 작품”이라며 영화를 소개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특별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가진 감독이자 파워풀한 도전자”라고 말을 덧붙였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협찬 최민식 배우 특별전
수많은 캐릭터로 한국영화에 획을 그은 최민식배우가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주빈으로 선정되어 특별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습니다.대종상3회, 백상예술대상3회, 청룡영화상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3회등 30여개의 연기상을 받은 최민식에대해 정지우 감독은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무엇이든 다 뚫을 수 있는 창 같은 존재”라며 소개말을 남겼습니다.BIFAN은 6월 29일부터 7월 9일까지 개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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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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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플리트 언노운 | 반골 음유시인의 시작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1년. 무명 뮤지션 '밥 딜런'(티모시 샬라메)이 뉴욕으로 향한다. 롤모델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스쿠트 맥네리)가 입원했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그를 만나기 위해 곧장 뉴욕으로 떠난 것. 우디를 만나고, 그를 위한 노래를 불러준 밥. 우디의 절친이자 우디 옆에서 밥의 노래를 들은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는 밥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그가 작곡한 노래를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다.
피트가 내어준 무대에서 펼친 밥 딜런의 공연은 '조안 바에즈'(모니카 바바로), '조니 캐시'(보이드 홀브룩)를 비롯한 뮤지션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더 나아가 뉴욕에서 만난 사랑 '실비 루소'(엘 패닝)의 응원 속에 작업한 앨범마저 성공을 거두자 밥은 새로운 포크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밥은 겉잡을 수 없는 관심과 유명세를 견디지 못하고, 그는 상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노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반골 음악가, 밥 딜런
전기 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으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인물 자체가 흥미로워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자 그의 인생을 조명한 <스티브 잡스>와 <잡스>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바 있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복귀해 회사를 살려낸 스토리는 그 자체로 극적이었기 때문.
하지만 인물이 전부는 아니다. 두 작품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호평은 전자에게, 혹평은 후자에게 집중됐다. 취사선택의 차이가 원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미니멀한 형식으로 잡스의 인생을 재구성했다. 세 번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에만 집중했다. 주변 인물 간의 대화와 갈등을 통해 잡스의 인간됨과 성장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잡스>는 과유불급이었다. 애플 설립부터 복귀까지의 여정을 영화 한 편에 무리해서 밀어 넣었다.
두 영화의 차이는 전기 영화의 매체적 한계에서 기인했다. 한 인물의 생애를 모두 보여주기에는 분량과 형식이 애초에 부적절한 것. 따라서 전기 영화는 확실한 주제나 아이디어에 닻을 내린 채 그 외의 내용은 과감히 생략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영화의 의도가 관객에게 분명히 전달될 수 있다. 일례로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의 핵무기 개발과 청문회에만, <링컨>은 링컨의 수정헌법 제13조 발의 및 통과에만 집중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밥 딜런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취사선택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사실 밥 딜런의 인생을 영화 한 편에 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시대를 노래한 음유시인', 밥 딜런은 60여 년 동안 정규음반만 40개를 발표할 정도로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했기 때문. 그래서 맨골드는 1961년부터 65년까지의 밥 딜런을 요약하는 한 단어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눠서 보여주는 데 열중한다. 바로 '반골'이다.
반골의 음악
가장 먼저 돋보이는 층위는 밥 딜런의 음악이다. 이는 <컴플리트 언노운>의 오프닝 시퀀스가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전기 영화치고 이 작품의 오프닝은 이상하다. 밥 딜런의 전기 영화인데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등장하기 때문. 영화는 '우드 거스리'라는 포크 가수가 출연한 방송과 함께 그의 음악을 들려주고, 그다음에는 '피트 시거'라는 가수가 포크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재판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컴플리트 언노운>을 밥 딜런의 반골 기질을 압축한 작품이라고 보면 이보다 밥 딜런을 잘 소개하는 오프닝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초창기 음악 세계를 지탱한 저항 정신의 겉뜻과 속뜻을 모두 들려주기에 최적화됐기 때문. 더 나아가 전체 영화 내용에 대한 요약, 암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초창기 음악 세계는 물론, 그의 음악 스타일과 활동 영역이 돌연 달라진 이유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으니까.
우선 거스리가 출연한 TV 방송은 초창기 밥 딜런 음악 정체성을 알려주는 장치다. 미국 포크 음악의 전설인 그는 사회 운동 메시지를 노래에 담았다. 밥 딜런은 그로부터 노래에 저항 정신을 담아내는 법을 배웠다. 밥 딜런이 "그로부터 나는 가장 위대한 교훈을 배웠네"라고 노래했고, 그를 음악적 아버지로 부를 정도였다.
피트의 재판 장면은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포크 음악은 단순히 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사회 저항 운동을 이끄는 주체였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에 담긴 변화에 대한 열망은 포크 음악을 만들고 듣던 음악가와 팬들에게 직관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이는 밥 딜런이 데뷔와 동시에 포크 음악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 두 장면 덕분에 빕 딜런이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은 전형적이지만, 깊다. 밥 딜런, 거스리, 피트와의 만남이 군수산업에 대한 비판을 담은 ‘Masters of War'나 자유와 평등을 꿈꾸는 'Blowin’ in the Wind’ 등의 노래 가사에 담긴 저항 정신을 음미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밥 딜런이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 삽입된 흑인 민권 운동, 쿠바 핵 미사일 사태, 케네디 대통령 암살 뉴스 등도 가사의 의미에 집중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반골의 앙시앵 레짐
흥미롭게도 그의 반골 기질은 음악과 가사로만 표출되지 않는다. 그는 특정 도그마에 갇힌 채로 규정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타고난 예술가였으니까. 그래서 피트가 그에게 포크 가수냐고 물을 때, 그는 그저 포크를 좋아하고 포크를 할 뿐이라고 대답한다. 이 문답은 그의 반골 기질 중 또 하나의 층위를 보여준다. 바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외부의 권위와 교의를 거부하고 맞설 줄 아는 용기다.
포크의 스타가 밥 딜런. 피트와 동료들은 그가 상징적 존재로서 민중 운동과 사회 운동을 계속 이끌어야 한다고 압박한다. 이에 밥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마지막 날 일렉기타를 든 채 그 유명한 'Like A rolling Stone'을 답가로 불러준다. 포크의 저항 정신은 사회 운동의 도구여야 한다는 교의와 레짐 앞에서 포크 록 음악을 연주하며 공개적으로 맞선 것. 설령 자신을 향한 기대와 유명세가 파괴되더라도, 곧 '완전한 무명(Complete Unknown)이 되더라도 자기 정체성과 음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이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안타깝다. "당신의 낡은 길은 빠르게 낡아가고 있어/새로운 길에서 비켜나 주세요"라고 노래한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에는 열광하던 이들이, 정작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이를 비난하는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기 때문. 본인이 기득권인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저항과 혁명을 논하는 이들에게 맞서는 쾌감, 그 변화를 스크린에서 만나야 한다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다.
그렇기에 밥 딜런과 거스리의 만남이 장식하는 결말은 특히 감동적이다. 대부분의 동료들에게 배신자라고 비난받은 밥. 그는 과거 거스리가 선물한 하모니카를 돌려주려 하지만, 거스리는 밥이 계속 하모니카를 간직하라고 부탁한다. 밥의 변화가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본질을 표현하는 방식임을 거스리만큼은 이해한 것. 이 만남 덕분에 우디 거스리를 보여준 오프닝과 결말은 의미심장하게 수미상관을 이룬다.
반골의 사랑과 상처
반골이라서 포크 가수로 스타덤에 오르고, 또 반골이라서 과감하게 음악적 도전과 변화를 추구할 수 있었던 밥 딜런. 하지만 반골 기질이 언제나 그에게 따스한 빛만 비쳐주지는 않았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기 힘든 상처와 그림자도 안겨주었으니까. <컴플리트 언노운>은 반골의 이면이라는 세 번째 층위를 두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여준다.
밥의 반골 기질은 실비와 조안, 둘과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실비는 여러 시위 현장에 그를 데려가면서 그의 음악 세계가 확장되고 깊어지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피트 시거, 우드 거스리와 같은 결의 포크 가수였던 조안도 그가 반골이기에 그와 사랑에 빠졌다. 시대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그의 노랫말을 들으면서 유망한 뮤지션 정도로 여겼던 그를 다시 본 것.
하지만 밥은 반골이라서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했다. 고정된 관계성을 견디지 못한 그가 떠나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했기 때문. 이때 두 여성은 각자 밥의 인간적인 상처를 하나씩 상징한다. 실비는 유명세에 짓눌려 고통받는 밥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열광하는 대중이 두려운 밥은 공포가 커질 때마다 실비를 찾는다. 하지만 실비는 그의 자유로움을 이해할지언정, 그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관계는 진전되지 못한다.
조안은 예술가로서의 상처를 상징한다. 그와 조안은 항상 음악 때문에 싸운다. 합동 투어에서 신곡을 부르려다가 조안과 다툰 후 공연을 포기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밥의 반골 기질, 새로움에 도전하는 그의 음악 스타일이 동료들과의 더 큰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암시나 다름없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을 향한 원망과 실망이 조안과의 연애에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불친절하지만, 끝까지 읽게 되는 시집
다만 <컴플리트 언노운>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밥 딜런의 별명답게 영화도 한 편의 시와 같다. 압축적이고 간결해서 설명이 많지 않다. 그래서 불친절하다. 당시 좌파 진영, 사회운동가들의 갈등 양상이 짧은 뉴스 장면 등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그가 동료들과 갈등을 빚게 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밥 딜런의 과거를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갑작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인 뉴포트 페스티벌 공연은 덜 직관적이다.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그가 부른 노래에 담긴 의미도, 좌파 진영과 운동가들이 그에게 원한 역할을 그가 거부하는 쾌감도 명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라이브 에이드 공연으로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 역경 극복 서사에 방점을 찍은 것과 비교하면 심심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만 오히려 그래서 음유 시인의 전기 영화다워 보이는 게 아이러니다.
그래도 배우들의 역량이 설명의 공백을 일부분 채워준다. 5년 간 작품을 준비했다는 티모시 샬라메는 숱한 남우주연상 수상의 이유를 증명한다. 특히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이어 재회한 엘 패닝과의 비슷한 듯 다른 호흡은 영화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모니카 바바로도 <탑건: 매버릭> 속 '피닉스'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노래 실력과 매력을 자랑한다. 그 덕분에 <컴플리트 언노운>이라는 시집을 도중에 덮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Acceptable 무난함
밥 딜런을 깊이 알면 알수록 배가되는 감동과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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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의 방> - ‘긴 시간을 돌아, 가족이란 이름 아래 모인 작은 방’
마빈의 방 (Marvin's Room, 1996)
개봉일 : 1997.10.18 (한국 기준)
감독 : 제리 작스
출연 : 메릴 스트립,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다이안 키튼, 로버트 드 니로
‘긴 시간을 돌아, 가족이란 이름 아래 모인 작은 방’
나에게 남은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이 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가족 구성원을 이야기하게 된다. 좋든 싫든,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어찌 됐든 ‘가족’이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자 가장 가깝고 진한 관계다.
<마빈의 방>은 불완전했던 가족이 어느 날 전해진 비보에 맞서며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처음 이 영화의 포스터를 봤을 때, 난 당연하게도 포스터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레오의 이름이 마빈일 것이라 예상했고,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과 갈등하는 어머니의 관계를 그린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추측은 4분의 1쯤만 맞았다. 큰 주제는 아니었지만, 소년과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일부 그려져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모두 내 예상 밖이었다. 마빈은 포스터에 등장하지 않는 자매의 아버지 이름이다. 왜 포스터에 있는 소년과 자매가 아닌 할아버지의 이름이 이 영화의 제목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일찍이 독립해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는 싱글맘 리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에 매진하느라 고향 플로리다에 있는 가족들을 보살피지 못한다. 큰딸 베시는 장녀라는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간 동생의 몫까지 자신이 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여전히 집을 떠나지 못한 채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고모를 모시고 있다. 정해진 시간마다 아버지에게 약을 먹이고 연약한 고모를 지키는 것. 내 인생 대신 그 두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 그게 베시가 해야 할 일이었다. 서로 성격도 목소리도 말투도 너무나 다른 두 자매는 각자의 자리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자매는 그렇게 20년을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어느덧 자매는 중년의 나이가 됐고 리의 아들 행크는 18살 생일을 앞두고 있다. 자매의 현실은 여전히 이루지 못한 것 투성이었고, 행크는 떠나간 아빠만을 생각하며 점점 더 엄마를 미워하게 된다. 어느 것도 완전하게 자리 잡지 못했지만 시간은 자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끝내 새로운 비보마저 가져온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자매, 몸 져 누운 아버지와 불편한 고모, 반항적인 아들. 당장이라도 뿔뿔이 흩어질 듯 진동하고 있던 가족은 베스의 비보를 전달받고 마빈의 방으로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빈의 방>의 러닝타임은 대략 100분 정도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살짝 짧은 편이다. 영화 자체의 흡입력도 한몫했겠지만, 개인적으론 영화가 조금 빠르게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끝났기에 이 영화가 더 좋았던 걸까-싶기도 하다. 부드럽게 내 마음을 스치던 소년의 미소가, 서로를 마주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자매의 떨리던 눈가가 너무도 기쁘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마빈의 방 시놉시스
미국 플로리다주. 백혈병에 걸려 곧 죽게 된 언니 베시가 20년 동안 헤어져있던 동생 리를 찾는다. 그녀와 같은 골수를 가진 혈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하이오주의 어느 초라한 미장원에서 헤어드레서의 꿈을 키우며 미용술을 배우고 있는 동생 리는, 마침 아들 행크가 지른 불 때문에 집이 다 타버리고 갈 곳이 없어 수녀원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중이다. 20년 만에 만난 두 자매. 아버지 마빈이 쓰러진 후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언니에게 맡겨둔 채 자신의 삶을 찾아 멀리 떠나버린 사연이 있었기에, 두 자매의 만남에는 반가움보단 미움과 원망, 그리고 어색함이 흐른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가족이 있으시죠?”
고향집에서 홀로 아버지와 고모를 돌보던 베시에게 백혈병 진단이 내려진다. 닥터 월리는 베시에게 가족이 있냐고 물어보고 베시는 아버지와 고모가 있다고 말한다. 오하이오에 살고 있는 여동생 리와는 연락조차 잘 하지 않는 사이이기에 베시는 월리가 여동생이 있지 않았냐고 다시 묻고 나서야 여동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 물어봤을 때 바로 답할 정도는 아니지만 또다시 물으면 그때야 이야기하게 되는 사람. 형제라곤 단둘뿐이었지만, 베시와 리는 끈끈한 관계의 자매가 아니었다.
“행크에게 신경 써주세요.”
행크는 자신의 옛날 사진과 그때의 부모님 사진을 카펫에 펼쳐놓고 불을 붙인다. 행크는 여전히 떠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그를 잡지 않은 어머니 ‘리’를 원망하고 있다. 매일 일 때문에 바빴던 리는 행크를 챙기지 못했고, 부족한 관심과 일방적인 대화는 행크를 되바라진 길로 이끈다. 행크는 집에 불을 질렀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리는 그런 아들의 말썽에 지쳐간다. 행크가 잠들어 있던 오후, 리는 침대에 묶인 채 누워있는 행크의 가슴 쪽에 초콜릿 몇 알을 올려놓고 자리를 뜬다. 과연 손이 자유롭지 못한 행크가 그 초콜릿을 집어먹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리는 그런 사소한 부분은 신경 쓰지 못하는 듯 보인다.
베시와 리는 20년 만에 고향집에서 다시 만난다. 리는 집에 도착하기 전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며 용모를 점검하고, 언니를 위해 구매한 쿠키 한 통을 챙겨 차에서 내린다. 그녀는 치료 부작용으로 인해 가발을 썼을지도 모르는 언니를 위해 부분 가발을 뒤집어쓰는 배려심을 선보였지만 단 걸 먹지 못하는 언니의 몸 상태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듯하다. 리는 가족을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과자 하나를 먹기 전에도 예절을 지키게 하고 흘리지 말고 먹으라며 잔소리를 한다. 리는 밖에 나가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의도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데 아이의 입장에선 그게 꽤나 강압적으로 느껴진다. 행크는 일방적인 엄마의 대화법에 질려 금세 자리를 뜬다.
대부분의 대화를 꾸중과 잔소리로 채우던 모자의 거리는 되돌리기 힘들 만큼 벌어진다. 베시는 처음 만나는 조카들이 반가워 지속적으로 말을 걸지만 행크는 쉽게 경계심을 거두지 않는다. “네가 꺼낸 거니?”라고 물으면 “갖다 놓을게요.”, “언제 나왔니?”라고 물으면 “들어갈까요?”라고 답하는 행크의 모습에서 그동안 행크와 리가 나눴던 대화의 뉘앙스가 어땠는지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행크는 계속 다정하게 다가오는 베시를 향해 “사람들이 잘해줄 땐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예요.”라고 말하며 베시의 골수 이식을 위한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반항한다.
항상 자기밖에 모르는 엄마의 자매라니. 행크는 당연히 베시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시는 항상 행크의 결정을 존중했고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평생을 궁금해했던 아버지의 존재를 말해주지 않던 리와는 다르게 베시는 단편적인 기억이라도 기꺼이 꺼내 행크에게 보여준다. 행크는 베시의 진심을 느끼고 마음속에 쳐놨던 두꺼운 선을 거둬낸다. 지금껏 그 누구도 행크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불을 냈으니 정신이 불안정한 것이라는 결론만 냈을 뿐 왜 카펫에서 사진을 태우게 되었는지 그때의 마음이 어땠는지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다. 베시는 유일하게 행크의 마음을 들어준 어른이었다. 행크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행크는 거짓말을 시작하고, 올바르지 못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행크의 말을, 담아뒀던 마음을 들어줬다면 행크가 이렇게 큰 사고를 치는 일은 없었을 텐데..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족들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지 못하고 더 높이 쌓아간다. 두 자매는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가족을 보살폈다”고 말한다. 베시는 리를 대신해 두 어른을 보살폈다고, 리는 힘들었지만 꿋꿋하게 두 아이를 키워냈다고 말한다. 베시와 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했는지,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공유하지 않는 ‘친하지 않은’ 사이로 지내왔기에 상대가 어떤 고충과 아픔을 겪어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리는 언니의 가발을 손질하며 베시는 동생이 손질해 준 가발을 쓰며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눈물을 보인다. 베시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가발 벗은 모습을 리에게 보여준 순간 두 자매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가깝고 진실되게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
두 자매와 아이들은 마빈의 방에 모인 날부터 서로에 대해 새롭게 또는 다시 알아가게 된다. 리는 이제 행크에게 “바람이 세니, 행크?”라고 말을 걸며 행크의 의사를 물어보게 되었고, 베시는 짐이라고 생각했던 가족을 사실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생긴 행크는 더 이상 일탈을 하지 않게 되었고 이모 베시의 말대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썼던 공구가방을 물려받게 된 행크가 할아버지처럼 행복한 가정과 멋진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할아버지가 낯선 아이들이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바라보기만 했던 마빈의 방. 이제 그 공간은 낯설거나 무서운 곳이 아닌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이는 장소가 된다. 베시는 거울을 들고 햇빛을 반사시키며 방 곳곳에 밝은 빛을 떨어트린다. 그 빛은 리의 눈가에 고모의 어깨에 아이들의 손에 그리고 베시와 마빈의 마음속에 내려앉아 온 가족들을 밝혀주고 있다. 나는 이 가족의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함께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 빛이 되어 그들의 앞날을 영원히 밝혀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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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박하경을 쫓는 매력에 빠지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영화제에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스틸컷 / 출처: 다음 영화]
소탈한 여행 이야기가 선사하는 두근거림
배우 이나영의 4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인 박하경 여행기는 웨이브에서 5월 24일 공개 예정인 드라마이다. 이번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총 8화 중 1-4화까지의 내용을 선공개하여 미리 볼 수 있었다.
사실 이나영 배우의 작품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평소 어떤 역할을 맡아왔는지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맡은 박하경 역할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우선 드라마 자체가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에 극 중 박하경이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상이 힘들고 지칠 때 훌쩍 여행을 떠난다는 기본적인 설정만으로 지난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을 설레게 하기는 충분했다.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은 소탈함이다. 2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 박하경은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생각지도 못했던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다. 모든 여행은 지나고 보면 너무 짧게 느껴지듯 드라마의 한 편 한 편도 매우 짧다. 하지만 그 속에는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짧은 시간 안에 전달되는 이야기는 그 주제가 무엇이든 가볍게 우리 옆에 다가온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면 이야기 역시 그렇게 끝나버린다. 여기서는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도 복잡한 서사도 있지 않다.
주인공 박하경은 이러한 작품의 특징을 인물로 옮긴듯한 캐릭터로 그녀는 주인공이지만 크게 두드러지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그저 당일치기 여행을 온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짧게 머물다 갈 뿐이다. 이러한 극의 흐름들이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 영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부담을 덜어가준다. 관객은 그저 짧은 이야기를 따라 함께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준비도 필요하지 않고 설사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여행의 끝나면 모두 지나갈 문제들에 불과하다.
이런 소탈함은 오히려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고 다음 여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런 기분 좋은 기다림이 쌓여가면서 드라마와 박하경의 팬이 되어가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시즌제로 제작되어서 10년째 제작 중인 <고독한 미식가>처럼 오랫동안 계속해서 나와주는 힐링 드라마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특징 역시 여행과 맛집이라는 유형이 다를 뿐 일견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다.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스틸컷 / 출처: 다음 영화]
영화제에 가장 잘 어울리던 드라마처음 <박하경 여행기>를 예매할 때에는 이나영 배우가 나온다는 것과 간단한 시놉시스만 보고 예매해서 당연히 영화일 줄 알았다. 하지만 상영관에 입장하기 전 찾아보고 드라마라는 사실에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영상을 보면서 말끔하게 해결되었는데 드라마지만 동시에 영화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박하경 여행기>는 OTT 오리지널 웹드라마라 그런지 일반적인 국내 드라마와는 분위기도 방식도 많이 다른 편인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연출과 배우이다.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님은 <박하경 여행기> 전까지는 영화 연출을 해오신 감독님으로 이번이 첫 드라마 연출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치 독립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요 출연진 역시 독특한데 고정된 배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박하경 역의 이나영 배우와 학교 동료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조현철 배우를 제외하면 매 편마다 출연하는 전체 배우가 바뀐다. 어찌 보면 매 편마다 서브 주연과 조연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출연하는 배우가 누구이냐에 따라서 편마다 재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꽤 쏠쏠하다.아마 영화제에서 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나는 3화에 출연하는 구교환 배우가 나오는 편이 특히 재밌었다. 구교환 배우는 최근 독보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인 만큼 기대가 안될 수가 없었는데 영화 <메기>에서 보여준 그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를 한번 더 보여주면서 유일하게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에피소드였다.<박하경 여행기>는 영화 같은 느낌 외에도 일본 드라마스러움과 독립 영화스러움을 동시에 품은 완전히 독립된 옴니버스 드라마로 제작되어서 얼핏 새로운 장르의 시리즈 영화처럼 느껴지는데, 대다수의 국내 드라마는 옴니버스 사건의 형태를 띠더라도 <천 원짜리 변호사>처럼 전체적인 드라마의 스토리는 이어지면서 사건만 개별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박하경은 매 편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관찰자에 가까워서 절반정도만 이야기에 참여하고 나머지 절반은 각 편의 주인공들이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가장 비슷한 건 앞서 말한 <고독한 미식가>였지만 해당 작품은 스토리보단 음식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나는 방식 자체는 영국의 오래된 SF 드라마인 <닥터후>와 조금 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닥터후>는 시즌에 따라서 이어지는 방식의 옴니버스인 편도 많고 주인공이 조금 더 해결사의 포지션에 가깝게 활동하긴 하지만 뜬금없이 여행을 떠나서 그곳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방식 자체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이처럼 다양한 분위기와 방식이 합쳐지면서 받은 느낌은 신선함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젊은 분위기의 드라마랄까…, 짧은 템포와 복잡하지 않은 전개 속에서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깊이 있게 녹아있다. 이런 특징이 요즘 시대에 소비되기 좋은 방식의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았던 건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숏폼의 특징은 짧은 시간에 강한 자극을 남겨서 많이 소비되도록 만든다는 것인데 <박하경 여행기>는 짧은 시간에 잔잔한 힐링을 전달하면서 자극만이 숏폼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는 새로운 시선을 주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스티븐 유니버스>도 10분 내외의 짧은 분량에서 얻을 수 있는 힐링에 매료되었던 것을 생각했을 때 자극 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박하경 여행기>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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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장애인을 ‘장애인’이게 하는가
7★/10★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1998년에 제정되었다. 이후 장애인은 장애 정도에 따라 1~3급(중증), 4~6급(경증)으로 나뉘어 차등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수많은 장애의 양상이 고작 여섯 개의 등급에 완전히 들어맞을 리 없다. 존재를 등급으로 나누어 차등하는 일은 언제나 딱 맞지 않는, 경계에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 〈복지식당〉은 장애등급제가 어떻게 제정 목적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야기하는지를 고발한다. 주인공은 “누가 봐도 1급”인데 장애등급 심사에서 5급 판정을 받은 재기다. 재기는 교통사고로 ‘중증’ 장애를 입었으나, 팔을 들어 올릴 수 있고 몇 미터나마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5급’ 판정을 받는다. 결과는 재앙이다. ‘5급’은 사사건건 재기의 발목을 잡는다. 활동보조를 신청할 수도, 장애인 콜택시를 지원받을 수도 없다. 모두 ‘중증’ 장애인에게만 제공되는 복지 혜택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전동휠체어 구입 지원을 알아보려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하지만 공단 직원은 장애인 단체에 가서 상담을 해보라고만 말한다. 장애등급을 재지정받기 위한 행정심판을 알아보는 재기에게 ‘업무 방해’ 운운하며 짜증을 내는 공무원도 있다. “왜 진작 5급이라고 말 안 해서 사람 헷갈리게 해요?”라는 수모는 그에게 일상이다. 즉, 재기에게 장애 등급을 부여한 국가는 있지만 재기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는 없다. 국가는 멍에만 줄 뿐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다. 제도와 인간의 뒤바뀐 위계에 권위를 부여하여 장애인을 수치심과 좌절의 영역에 방치할 뿐이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재기는 민관이 함께 마련한 장애인 취업 면접에 참여한다. 그러나 면접관은 ‘제대로 걷고 물건도 들 수 있는 사람(경증 장애인)’만 채용한다고 말한다. “제대로 걷고 물건도 들 수 있으면 그게 장애인인가요? 비장애인이지”라는 재기의 대꾸에는 깊은 분노와 좌절이 담겼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고 공허히 흩어진다. 그렇다고 중증 장애인을 채용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기가 ‘5급’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이런 식이다. 지팡이를 지원받을 때, 행정심판 비용 마련을 위해 은행에 대출받을 때도 등급이 문제다. 현실과 등급의 불일치는 재기가 가는 모든 곳을 끈덕지게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힌다.
〈복지식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재기는 복지 제도의 모순과 공백을 영악하게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도 소외당한다. 병호는 재기가 병원에 있을 때 만난 지체 장애인으로 어려움에 처한 재기에게 행정심판을 위한 변호사 소개, 장애인 콜택시 지원, 장애인 스포츠 선수 등록 등 여러 호의를 제공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재기에게 병호의 호의는 큰 도움이 되고 둘은 금세 서로 호형호제하며 가까워진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병호의 호의가 재기 삶에 대한 통제로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병호는 이를 위력으로 전환해 금전적‧감정적 착취를 일삼는다. 심지어 홀로 아들을 키우는 재기의 사촌누나에게도 자신이 재기의 안위를 손에 쥐고 있다고 뻐기며 치근덕거린다. 병호는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단단한 카르텔을 형성하여 위력을 획득했다. 재기뿐만 아니라 장애인 지원센터, 활동보조인 모두가 병호의 위력 아래 있다. 병호가 동료 장애인을 데리고 장애인 활동지원 센터를 옮기면 그 센터는 망하고, 병호에게 밉보이면 활동보조로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병호는 장애등급제의 허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 가족에게 버림받고 시설에 들어갔다가 18살에 나온 그는 제도의 틈새에서 자신의 ‘살 자리’를 찾았다. 장애인에게는 ‘집단 내 밥그릇 싸움이 유일한 생존 수단’이라는 감독의 말**은 병호의 주도면밀한 ‘악랄함’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를 가늠케 한다. 요컨대 병호는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제도적 수혜의 최대치를 활용하는 데 능숙하다. 이는 병호에게 이용당하다 버림받은 재기가 끝내 가지지 못한 것이다.
병호에게 굽신거리기를 거부하는 재기가 그에게 맞는 등급을 부여받아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복지제도의 은유인 ‘식당 메뉴판’은 과연 모든 장애인이 누려 마땅한 권리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언어로 다시 쓰일 수 있을까? “부디 제가 자립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장애 등급을 재지정해달라는 판사를 향한 재기의 호소는 제대로 응답받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복지 제도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본래의 목적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무엇이 장애인을 장애인이게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나아간다. 재기는 단 한 번도 장애 그 자체 때문에 좌절하지 않는다. 장애가 곧 불행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기가 등급과 상관없이 활동보조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공적 권력이 자신의 책임을 다해 병호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면, 애초에 인간에 ‘등급’을 매겨 차등 지원하는 폭력적 발상이 없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정(假定)들은 늘 재기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재기를 ‘불행’하게 만든다. 병호의 호의로 잠시나마 긍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었을 때, 재기가 행복한 표정으로 웃는 장면 역시 그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장애 그 자체가 아님을 짐작케 한다.
2022년,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생긴 큰 ‘소란’이 해가 바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은 다른 소수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더 큰 ‘온정적’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건 호의가 아닌 권리 보장이다. 장애인이 자신에게 허락된 선을 넘은 결과는 처참했다. 재기가 행복할 가능성을 배반한 여러 가정이 그러했듯, 섬세하고 꼼꼼하게 질문되어야 할 문제들은 비장애인들의 ‘불편함’과 대립하는 구도에 갇혀 이번에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복지식당〉은 권리 보장을 외치는 장애인의 몸과 말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영화적 개입이다. 재기가 묻는다. 무엇이 장애인을 ‘장애인’이게 하는가.
*진보적 장애인 단체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이들의 주장은 일부 수용되어 현재는 장애가 중증과 경증의 두 단계로 나뉜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의 요구는 장애등급제의 ‘완전한’ 폐지다.
**김소미, “‘복지식당’과 함께 장애인 권리 투쟁의 현실을 돌아보다”, 〈씨네21〉, 2022.04.21.
★이 영화는 시리즈온, 티빙, 웨이브, 쿠팡 플레이, 왓챠 등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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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최고은 PD
최고은 PD는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통해 광주극장에서 이루어지는 뮤지션들의 인터뷰와 라이브 클립을 선보이며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오랜 시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잘 버텨내고 존재하는 광주의 광주극장처럼,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 ‘버텨내고 존재하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제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국내 경쟁작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얼굴 마담이 되고 싶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던(웃음)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입니다.
간략히 영화 소개해 주세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공간을 지켜내고 있는 광주극장, 그곳에서 저를 포함한 8명의 뮤지션이 어떻게 음악을 하고 있는지 라이브 클립 공연하는 모습과 인터뷰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제목을 우선 시 생각하는데 '버텨내고 존재하기' 제목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생각하게 되셨나요?
음악을 시작 한 지 12년 차가 되었는데 10년 차 때 부터 생각했던 화두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라 이전에 음악 하던 흐름과 많이 달라져야 했습니다.활동 방향과 방법이 변하면서 음악을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버텨내고 어떻게 존재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이었지만, 제 주변 뮤지션들도 그러했습니다. 오래된 공간들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어졌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되는 주제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었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의도하신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호스트 입장으로 영화에 설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2019년부터 매해 진행했던 커밍홈의 세 번째 이야기라, 제가 호스트 되어 주변의 뮤지션을 광주에 초대해 광주 알리고자 했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감독님과 PD님이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권철 감독님께서 영화 상영후 GV에서 적절한 표현을 해주셨는데, ‘냉장고를 부탁해’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제가 냉장고를 준비해서 냉장고 안 에 요리할 수 있는 재료를 넣어 권철 감독님께 드리면 권철 감독님이 요리하는 과정입니다. 저의 역할은 주제와 뮤지션 및 공간 섭외였습니다.
그렇다면 권철 감독님께 제안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권철 감독님은 2011년에 처음 뵈었는데, 이후로 해외 투어 가거나 라이브 클립 작업 시 권철 감독님과 함께 했습니다. 감독과의 작업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음악 대한 애정이 깊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서 보는 것이 듣는 것과 같은 쾌감이 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에세이 읽는 것처럼, 시 낭독 들었던 것처럼 기억되도록 작업하십니다. 일련의 흐름처럼 영상 파트에 권철 감독님이 늘 계셨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공연하는 뮤지션들의 라이브 클립곡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뮤지션들을 광주로 초대할 때, 주제를 소개하면서 스스로 어울리는 곡을 생각해 라이브 클립을 하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우리가 선정하지 않고 뮤지션 자신이 생각해서 어울릴 만한 곡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곡들입니다.
기억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마도 이자람밴드가 떠오르네요. 광주극장이 4층 건물 높이인데 당시 이자람 님이 4층에서 라이브 하셨고 저는 1층에 대기하는데 4층 이자람 님의 목소리가 1층까지 울렸어요. 폭발적인 가창력, 목소리 트임에 아주 놀랐습니다.
최고은 PD님의 버텨내고 존재하는 비중을 나타내자면 어느 정도 일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존재한다는 것’ 에 집중했습니다. 버티는 것 자체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나를 기록에 남기지’ 의 존재에 집중했다면 가면 갈수록 버텨내는 힘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버텨낸다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앞에 있는 것이라 ‘다른 일을 하더라도 똑같겠지, 음악 아니면 뭐 하지’ 생각해도 음악이 저에게 대체 불가한 길이라 버텨냈는데 요즘은 밸런스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 시대를 버텨내고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하고 나의 이야기가 소중한 만큼 남의 이야기도 소중하게 생각하면 서로가 힘이 되어 잘 버텨내고 잘 존재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통해 무엇을 얻어 가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우리 모두의 사람살이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괄호 앞에 들어가야 합니다. 광주극장이라는 공간은 1933년 개관했으니 90여년 되었고,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션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꾸준히 하고 만들어 갑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숨어있는 가치를 지켜내는 것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광주에 갈 기회가 있다면 광주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의 음악도 들어 보시고, 중간중간 나오는 뮤지션들의 추천 영화들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최고은 PD는 10월 말에 있을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광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마지막 손간판쟁이로 알려진 박태규 화백이 작업한 '버텨내고 존재하기' 손간판을 직접 세워 영화를 상영하고 뮤지션들이 공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간이 보이는 공간, 광주극장에서 90여 년 세월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존재하는 장소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가 너무나 기대된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김문숙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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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이드 아웃2] 감정도 처음이다
[인사이드 아웃2]
이야기에 앞서
금일 검색 기준, 국내 관객 수 352만 명을 동원했다. 아무래도 500만 명을 동원한 전작을 넘어서는 후속작이 탄생할 것 같다. 인사이드 아웃2 흥행은 비견 국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마블 영화는 물론이고, 위시까지 흥행 실패를 겪은 디즈니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내년 봄에 디즈니플러스를 통해서 라일리의 꿈을 만드는 ‘드림 프로덕션’에 대한 스핀 오프도 나온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의 흥행은 곧 감정에 대한 공감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라일리가 겪는 작은 행동에도 여러 가지 감정이 함께 자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이번 속편에서 ‘억눌린 감정들’과 등장만으로도 압도적인 ‘나만의 비밀’은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달라는 욕망을 해소한다. 영화관에 두 번 방문했는데, 처음과 두번째 모두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이 든 어르신까지 자리하고 계셨다. 전 세대와 인종을 신경 쓰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소재는 언제나 경이롭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부터 이미 인간의 감정은 중요한 소재였다. 여전히 우리는 감정을 알아가는 중이다.
상상력
불안은 막연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극 중 ‘라일리’가 고등학교 하키 캠프에 방문해 자신의 우상 같은 선배를 만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불안’이가 다른 감정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사실 상상력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정신력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천천히 발생하거나 길러진다.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서 나의 미래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수기를 작성한다. 상상력의 놀라운 점은 정말 터무니없는 내용이라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문자 그대로, 내 마음대로 만들어도 괜찮다. 그러나 상상력은 이따금 우리를 너무나 불행하게 만든다. 영화에서도 잠깐 지나가는 대사로 처리되는 말이 있다. 불안이가 다른 다섯 감정을 억압하려고 보내는 순간, ‘졸업하고? 아니면 평생? 나도 모르겠어! 그럼 안녕!’이라고 말한다. 정작 불안조차도 얼마나 자신이 오랜 시간 불안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이윽고 상상력을 통해 주인공 ‘라일리’가 실패하거나 다치거나 절망하는 장면을 만든다. 상상력 덕분에 우리는 위험이나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상상력 때문에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위험이나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멈출 수 없는 불안함은 이윽고 감정의 폭풍으로 자라난다.
따분, 당황 그리고 분노
영화를 보며 재밌던 부분이 참 많았다. ‘라일리’ 스스로 당황스럽거나 부끄러운 상황으로 몰리면 ‘따분이’가 등장해 자학개그를 하며 상황을 타개한다. 문제는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대화는 내면의 상처(계곡)를 만든다는 점이다. 다시 처음부터 상황을 짚고 넘어가자면, ‘따분이’가 ‘라일리’의 감정을 대변하는 장면 대부분이 ‘라일리’ 스스로 진실한 감정이나 솔직한 이야기를 기피하는 순간이다. 나에게 솔직하지 않은 행동은 곧 상대에게 거짓을 고하는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재치 있고 유쾌하던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영어 표현으로 장난치는 단순한 해석을 떠나서 따분함과 자신을 속이는 건 다르니까 말이다.
팟캐스트에서도 언급했만, 재미를 떠나서 나에게 감동을 선사한 장면도 존재한다. ‘슬픔이’가 본부로 몰래 잠입했으나 ‘당황이’가 그것을 발견하고 갈등 끝에 오히려 ‘슬픔이’를 도와주는 장면이다. 어딘지 모르게 내 마음속 ‘당황이’가 이 장면에서 울컥하고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들 영화니까 ‘당황’이라고 표현하지, 영어를 해석하면 ‘부끄러움’이라고 읽을 수 있다. 사람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때, 비로소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따지면 얼굴 빨개지고, 말도 못 하고, 어딘가로 숨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생기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언행 자체가 실수도 잦고, 특정한 순간에 눈치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가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고 싶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치심을 겪었기에 다음 행동을 조심했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보다 당황해서 진땀 흘리고 동공이 흔들릴 줄 아는 바보이고 싶기도 하다.
사춘기를 맞이한 ‘라일리’를 영화 전체가 비유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서 ‘분노, 버럭이’가 눈에 보이는 장면이 많았다. 작은 생각이나 적은 외부의 자극에도 쉽게 화를 내는 사춘기를 표현했다 생각한다. 모험을 떠나는 중에도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짜증을 부리는 모습은 어딘가 귀여웠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분노’는 억압된 감정 일행이 거대한 장벽에 막히거나 문제를 맞닥뜨릴 때 진가를 발휘한다. 먼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기쁨이’가 어쩔 줄 몰라 할 때, ‘기쁨이’의 억압을 터트려주는 결정타를 날린다. 다음으로 본부로 복귀할 수 없는, 희망이 없어진 상황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존재도 ‘분노’였다. 영화는 ‘분노’가 누군가를 해할 때 생성하는 감정이 아니라 일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잘못된 일을 맞이할 때, 스트레스를 받고 곧 짜증이 몰아친다. 곧 문제가 해결하면 짜증은 사라지고 맑은 경쾌함을 느낀다. 해결의 열쇠는 언제나 올바른 분노에서 나왔다.
전부 다 라일리
영화를 관람한 모두가 잊던 사실이 존재한다. 이미 많은 분이 눈치채신 사실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한 ‘당황, 분노, 불안, 기쁨, 까칠함, 부럽, 슬픔, 따분함, 두려움’ 아홉 가지 감정은 모두 ‘라일리’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제각각이 라일리의 기쁨이자 라일리의 슬픔이다. 아홉 명의 라일리가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느 감정이 없어져도 ‘라일리’ 본체는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서운 사실이다. 전쟁터에서 자란 아이는 기쁨 대신 불안과 슬픔을 먼저 만났을 것이다. 사람과 상호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에게 당황스러움이나 부끄러움을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당신은 인류가 느껴온 감정을 모두 경험하고 살고 있는가? 만약, ‘라일리’가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면 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감정이 사라진다는 것을 억압한다고 설명한다. 본편과 반대로 ‘불안이나 부러움’을 억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겨둔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아쳐 자아에 영향을 준 것 같이, 억압한 불안은 곧 다시 거대한 폭풍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아가 흥미로운 점은 각 감정 모두 ‘라일리’이기에 서로 닮은 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를 구성하는 색을 서로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증거다. 기쁨이 가는 곳에 슬픔이 존재하듯, 기쁨이의 머리는 슬픔이의 색깔이다. 까칠함 속에는 외부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져 있음을 색감으로 알 수 있다. 감정들이 서로 의논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라일리’ 스스로 고민하며 미래를 나아가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다.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다
영화 연출적으로 감탄한 순간은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장면이다. 불안함에 친구들을 멀리하고, 부러움에 눈이 멀어 뛰어난 선수로 보이기 위해 발악하던 ‘라일리’가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까지 무너진 이후다. 그동안 억압했던 ‘감정들’이 다시 본부로 복귀하며 불안하기에 만들어버린 또 다른 자아가 무너진 순간이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소녀로 자라는 굉장한 인생의 시점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던 자아가 어쩌면 ‘나는 완벽하지 않다’는 의심을 했고, 불안함에 밤새 잠을 못 자는 경험을 한다. 영화는 ‘라일리’가 고안한 자학적인 요소를 이렇게 해결한다. 친구들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이 장면에서 영화는 ‘라일리의 감정’이 아니라 ‘라일리’ 그 자체를 화면에 담는다. 그 어떤 감정이 라일리를 조종하거나 대변한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며 여러 감정을 목격한다. 우리는 일련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상황에 따라 어떤 감정을 선택할지 결정한다. 그러나 매번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격정적인 황소는 아니다. ‘라일리’가 스스로 차에서 내리기까지 슬픔을 참았던 것처럼, 우리도 감정을 절제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라일리’가 감정에서 울어 나오는 못난 고백이 아닌, 마음 속 깊숙이 감춰둔 진심을 드리우는 장면인 것이다. 놀랍게도 이 장면 이후, 라일리는 스스로 ‘기쁨이’를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지금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감정에게 돌봄 받던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 감정을 제안하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픽사는 매번 잊고 지내던 삶의 진실을 우화로 아름답고 유쾌하고 풀어간다. 우리가 어른으로 자라나며 쉽게 잃어버린 장난감과 상상 속 친구를 기억나게 만든다. 실화가 아님이 분명하지만, 어느새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캐릭터를 창조해 그들의 삶을 관찰한다. 이윽고 충분히 서사가 쌓이면 경이로운 장면으로 캐릭터에게 안녕을 고하며 ‘이것이 삶이다. 그럼에도 나아가라.’는 한겨울의 난로 같은 조언을 남긴다. 설령 소중한 이를 잃거나 놓쳐버린 괴로움에 갇혀 버린다고 하더라도, 희망은 늘 존재하며 세 잎 클로버가 늘 곁에 머문다고 말한다. 이번 인사이드 아웃2를 관람하며 처음에는 상영관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조용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 있는 어른들도 남몰래 훌쩍이는 것을 들었다. 동화를 어설프게 각색하며 공감을 바라는 것보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잊어버린 동심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다시금 느꼈다. 우리는 여전히 성장 중이고, 우리 안에 감정은 무수히 많은 폭풍과 변화 그리고 억압을 당하며 살고 있다. 이 영화를 관람하며 조용히 내 안의 감정에게 손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누구나 언제고 나 스스로와 마주하는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은 본 작품을 관람하고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그래왔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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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2월 3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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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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