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3-02 19:11:24
컴플리트 언노운 | 반골 음유시인의 시작
<컴플리트 언노운>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1년. 무명 뮤지션 '밥 딜런'(티모시 샬라메)이 뉴욕으로 향한다. 롤모델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스쿠트 맥네리)가 입원했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그를 만나기 위해 곧장 뉴욕으로 떠난 것. 우디를 만나고, 그를 위한 노래를 불러준 밥. 우디의 절친이자 우디 옆에서 밥의 노래를 들은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는 밥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그가 작곡한 노래를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다.
피트가 내어준 무대에서 펼친 밥 딜런의 공연은 '조안 바에즈'(모니카 바바로), '조니 캐시'(보이드 홀브룩)를 비롯한 뮤지션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더 나아가 뉴욕에서 만난 사랑 '실비 루소'(엘 패닝)의 응원 속에 작업한 앨범마저 성공을 거두자 밥은 새로운 포크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밥은 겉잡을 수 없는 관심과 유명세를 견디지 못하고, 그는 상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노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반골 음악가, 밥 딜런
전기 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으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인물 자체가 흥미로워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자 그의 인생을 조명한 <스티브 잡스>와 <잡스>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바 있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복귀해 회사를 살려낸 스토리는 그 자체로 극적이었기 때문.
하지만 인물이 전부는 아니다. 두 작품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호평은 전자에게, 혹평은 후자에게 집중됐다. 취사선택의 차이가 원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미니멀한 형식으로 잡스의 인생을 재구성했다. 세 번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에만 집중했다. 주변 인물 간의 대화와 갈등을 통해 잡스의 인간됨과 성장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잡스>는 과유불급이었다. 애플 설립부터 복귀까지의 여정을 영화 한 편에 무리해서 밀어 넣었다.
두 영화의 차이는 전기 영화의 매체적 한계에서 기인했다. 한 인물의 생애를 모두 보여주기에는 분량과 형식이 애초에 부적절한 것. 따라서 전기 영화는 확실한 주제나 아이디어에 닻을 내린 채 그 외의 내용은 과감히 생략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영화의 의도가 관객에게 분명히 전달될 수 있다. 일례로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의 핵무기 개발과 청문회에만, <링컨>은 링컨의 수정헌법 제13조 발의 및 통과에만 집중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밥 딜런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취사선택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사실 밥 딜런의 인생을 영화 한 편에 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시대를 노래한 음유시인', 밥 딜런은 60여 년 동안 정규음반만 40개를 발표할 정도로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했기 때문. 그래서 맨골드는 1961년부터 65년까지의 밥 딜런을 요약하는 한 단어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눠서 보여주는 데 열중한다. 바로 '반골'이다.
반골의 음악
가장 먼저 돋보이는 층위는 밥 딜런의 음악이다. 이는 <컴플리트 언노운>의 오프닝 시퀀스가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전기 영화치고 이 작품의 오프닝은 이상하다. 밥 딜런의 전기 영화인데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등장하기 때문. 영화는 '우드 거스리'라는 포크 가수가 출연한 방송과 함께 그의 음악을 들려주고, 그다음에는 '피트 시거'라는 가수가 포크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재판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컴플리트 언노운>을 밥 딜런의 반골 기질을 압축한 작품이라고 보면 이보다 밥 딜런을 잘 소개하는 오프닝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초창기 음악 세계를 지탱한 저항 정신의 겉뜻과 속뜻을 모두 들려주기에 최적화됐기 때문. 더 나아가 전체 영화 내용에 대한 요약, 암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초창기 음악 세계는 물론, 그의 음악 스타일과 활동 영역이 돌연 달라진 이유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으니까.
우선 거스리가 출연한 TV 방송은 초창기 밥 딜런 음악 정체성을 알려주는 장치다. 미국 포크 음악의 전설인 그는 사회 운동 메시지를 노래에 담았다. 밥 딜런은 그로부터 노래에 저항 정신을 담아내는 법을 배웠다. 밥 딜런이 "그로부터 나는 가장 위대한 교훈을 배웠네"라고 노래했고, 그를 음악적 아버지로 부를 정도였다.
피트의 재판 장면은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포크 음악은 단순히 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사회 저항 운동을 이끄는 주체였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에 담긴 변화에 대한 열망은 포크 음악을 만들고 듣던 음악가와 팬들에게 직관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이는 밥 딜런이 데뷔와 동시에 포크 음악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 두 장면 덕분에 빕 딜런이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은 전형적이지만, 깊다. 밥 딜런, 거스리, 피트와의 만남이 군수산업에 대한 비판을 담은 ‘Masters of War'나 자유와 평등을 꿈꾸는 'Blowin’ in the Wind’ 등의 노래 가사에 담긴 저항 정신을 음미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밥 딜런이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 삽입된 흑인 민권 운동, 쿠바 핵 미사일 사태, 케네디 대통령 암살 뉴스 등도 가사의 의미에 집중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반골의 앙시앵 레짐
흥미롭게도 그의 반골 기질은 음악과 가사로만 표출되지 않는다. 그는 특정 도그마에 갇힌 채로 규정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타고난 예술가였으니까. 그래서 피트가 그에게 포크 가수냐고 물을 때, 그는 그저 포크를 좋아하고 포크를 할 뿐이라고 대답한다. 이 문답은 그의 반골 기질 중 또 하나의 층위를 보여준다. 바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외부의 권위와 교의를 거부하고 맞설 줄 아는 용기다.
포크의 스타가 밥 딜런. 피트와 동료들은 그가 상징적 존재로서 민중 운동과 사회 운동을 계속 이끌어야 한다고 압박한다. 이에 밥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마지막 날 일렉기타를 든 채 그 유명한 'Like A rolling Stone'을 답가로 불러준다. 포크의 저항 정신은 사회 운동의 도구여야 한다는 교의와 레짐 앞에서 포크 록 음악을 연주하며 공개적으로 맞선 것. 설령 자신을 향한 기대와 유명세가 파괴되더라도, 곧 '완전한 무명(Complete Unknown)이 되더라도 자기 정체성과 음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이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안타깝다. "당신의 낡은 길은 빠르게 낡아가고 있어/새로운 길에서 비켜나 주세요"라고 노래한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에는 열광하던 이들이, 정작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이를 비난하는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기 때문. 본인이 기득권인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저항과 혁명을 논하는 이들에게 맞서는 쾌감, 그 변화를 스크린에서 만나야 한다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다.
그렇기에 밥 딜런과 거스리의 만남이 장식하는 결말은 특히 감동적이다. 대부분의 동료들에게 배신자라고 비난받은 밥. 그는 과거 거스리가 선물한 하모니카를 돌려주려 하지만, 거스리는 밥이 계속 하모니카를 간직하라고 부탁한다. 밥의 변화가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본질을 표현하는 방식임을 거스리만큼은 이해한 것. 이 만남 덕분에 우디 거스리를 보여준 오프닝과 결말은 의미심장하게 수미상관을 이룬다.
반골의 사랑과 상처
반골이라서 포크 가수로 스타덤에 오르고, 또 반골이라서 과감하게 음악적 도전과 변화를 추구할 수 있었던 밥 딜런. 하지만 반골 기질이 언제나 그에게 따스한 빛만 비쳐주지는 않았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기 힘든 상처와 그림자도 안겨주었으니까. <컴플리트 언노운>은 반골의 이면이라는 세 번째 층위를 두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여준다.
밥의 반골 기질은 실비와 조안, 둘과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실비는 여러 시위 현장에 그를 데려가면서 그의 음악 세계가 확장되고 깊어지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피트 시거, 우드 거스리와 같은 결의 포크 가수였던 조안도 그가 반골이기에 그와 사랑에 빠졌다. 시대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그의 노랫말을 들으면서 유망한 뮤지션 정도로 여겼던 그를 다시 본 것.
하지만 밥은 반골이라서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했다. 고정된 관계성을 견디지 못한 그가 떠나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했기 때문. 이때 두 여성은 각자 밥의 인간적인 상처를 하나씩 상징한다. 실비는 유명세에 짓눌려 고통받는 밥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열광하는 대중이 두려운 밥은 공포가 커질 때마다 실비를 찾는다. 하지만 실비는 그의 자유로움을 이해할지언정, 그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관계는 진전되지 못한다.
조안은 예술가로서의 상처를 상징한다. 그와 조안은 항상 음악 때문에 싸운다. 합동 투어에서 신곡을 부르려다가 조안과 다툰 후 공연을 포기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밥의 반골 기질, 새로움에 도전하는 그의 음악 스타일이 동료들과의 더 큰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암시나 다름없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을 향한 원망과 실망이 조안과의 연애에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불친절하지만, 끝까지 읽게 되는 시집
다만 <컴플리트 언노운>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밥 딜런의 별명답게 영화도 한 편의 시와 같다. 압축적이고 간결해서 설명이 많지 않다. 그래서 불친절하다. 당시 좌파 진영, 사회운동가들의 갈등 양상이 짧은 뉴스 장면 등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그가 동료들과 갈등을 빚게 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밥 딜런의 과거를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갑작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인 뉴포트 페스티벌 공연은 덜 직관적이다.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그가 부른 노래에 담긴 의미도, 좌파 진영과 운동가들이 그에게 원한 역할을 그가 거부하는 쾌감도 명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라이브 에이드 공연으로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 역경 극복 서사에 방점을 찍은 것과 비교하면 심심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만 오히려 그래서 음유 시인의 전기 영화다워 보이는 게 아이러니다.
그래도 배우들의 역량이 설명의 공백을 일부분 채워준다. 5년 간 작품을 준비했다는 티모시 샬라메는 숱한 남우주연상 수상의 이유를 증명한다. 특히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이어 재회한 엘 패닝과의 비슷한 듯 다른 호흡은 영화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모니카 바바로도 <탑건: 매버릭> 속 '피닉스'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노래 실력과 매력을 자랑한다. 그 덕분에 <컴플리트 언노운>이라는 시집을 도중에 덮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Acceptable 무난함
밥 딜런을 깊이 알면 알수록 배가되는 감동과 전율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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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한국에서 노동자의 삶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예술 작품은 1990년대 이후로 찾아보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독재정권이 폭력을 휘두르던 시기와 노동운동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노동자는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독재정권이 만든 '산업화' 전략의 결과물이다. 그 전까지 농업국이던 한국이 경공업 제조를 시작으로 '수출입국'을 국가의 경제전략으로 채택한 이후, 독재정부와 자본가는 값싼 노동력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절실해졌다.
독재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정책은 구체적으로 개인의 삶에 직접 타격을 가한다. 박정권은 농민의 삶에 기본이 되는 쌀값을 '저곡가 정책'으로 유지하면서, 농촌의 청년들이 도시와 공업단지의 노동자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든다. '저곡가 정책'은 박정권에게 일석이조의 이득이 있었는데, 농민에게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도시에 사는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은 주식인 쌀을 싸게 사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저곡가 정책'은 도시와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저임금' 구조로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태어난 세대는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로, 인구 전체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들이 성장하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박정권이 산업구조를 농업에서 경공업으로 이동하던 시기였고, 농촌에는 '잉여노동'이 넘쳐나고 있었고,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경공업 분야에서 낮은 임금으로 일할 조건이 갖춰지고 있었다.
청계천 섬유 노동자 - 거의 대부분 여성이며, 어린 여성들이었다 - 들이 하루 18시간 이상 노동하면서 받는 임금은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했다는 전태일 열사의 기록도 있는 것처럼, 이 시기의 노동자는 인간 이하의 처우에서 고통당하고 있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직접적 원인도 노동조건의 열악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노동자로 처음 공장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1975년 무렵이었다. 동네에 있는 대나무 낚시대 공장이었고, 가내수공업 규모였다. 두번째는 압핀을 만드는 공장이었고, 세번째는 유리병 만드는 공장이었다. 모두 작은 공장이었고, 노동자들도 몇 명 되지 않았다. 노동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고, 임금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공장에서의 노동은 저임금에 단조로운 노동으로 인간성이 말라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장 노동자로 산다는 건, 자본의 노예라는 거창한 이유를 떠나 원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은 단조로운 노동을 오래 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자체가 심각한 고통이다. 나는 공장을 떠나 건설현장으로 옮겼다. 소위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현장은 공장 노동보다 더 힘든 부분도 있지만, 공장의 부품처럼 움직여야 하는 기계적, 반복적, 단조로운 노동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면이 많은 것이 장점이었다. 게다가 임금도 공장보다 많았다.
육체노동은 힘들었지만, 한곳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으며, 자율성이 상당히 있고, 숙련도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어서 나에게는 공장보다 건설현장이 더 좋았다. 길지 않은 공장 생활에 질린 나는 다시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더구나 건설현장은 지방으로 다니면서 오히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것보다 더 좋은 환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 지방을 전전하며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군대에 다녀왔고, 다시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그때가 1987년 무렵이었고, 나는 구로공단에 있는 작은 도금공장에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순간인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목격했다. 이 시기의 구로공단은 1970년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은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고, 상당수 노동조합이 민주노조였다. 노동조합의 절대 수가 늘어난 것은 1987년 이후였고, 공단 주변의 닭장집, 벌집은 그때도 남아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경공업 분야의 공장에서 노동착취와 열악한 노동환경이 심했고, 그만큼 노동운동의 투쟁력도 강했다. 여성들은 약하지만, 여성노동자는 강했다. 그들은 끈질기게 투쟁했고, 온갖 물리적 폭력과 모욕을 견뎠다.
영화에서는 1970년대 닭장집이 나오고, 인분을 뒤집어 쓴 여성노동자의 모습도 보여준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독재를 거쳐 1980년 전두환의 쿠데타 이후 군사독재까지 무려 27년 동안의 군부독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빨갱이'로 매도당하며 처절하게 짓밟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사회는 독재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이전했다.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 사회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으며,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 전반의 확대와 노동자의 삶도 나아졌다. 한국전쟁 이후 수천만 명의 노동자의 피와 살을 갈아넣어 이룩한 산업화는 자본가의 배를 불렸으며, 노동자에게도 아주 적은 몫이 돌아갔다.
기업은 성장했지만 노동자의 삶은 자본가가 배를 불리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개선이었으며, 그마나도 1997년 구제금융 사태가 발발하면서 노동자의 삶은 붕괴되고 말았다. 이후 한국에서는 '노동자'라는 하나의 이름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임시직, 이주노동자와 같은 수 많은 갈래와 분류가 나타났고, 이는 노동자를 쥐어짜고, 경쟁시켜 노동자가 단결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자본의 의도가 짙게 깔여 있었다.
영화에서는 200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고통 당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기업이 외국에 진출해서 그 나라의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발생하는 문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비참한 노동현실, 이랜드 노동자, 마트 노동자, 항공사 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물리치료 노동자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육체적, 감정적 노동의 고통을 보여주고 있는데, 노동의 형태와 조건은 조금씩 좋아졌을 수 있고, 달라졌지만, 본질에서는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노동자는 여전히 자본의 노예이며, 임금을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는 비자율적 존재이자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는, 사슬 없는 노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노동운동' 등을 말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다. 자본가와 자영업자(쁘띠 부르주아,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제외하고도 노동자와 그 가족은 전체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정작 노동자들은 자기 이야기에 관심이 없고,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왜곡된 사회 체제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는 특권 계급이 되었으며,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임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자신들과는 다른,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기괴한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말은 오늘 날, 아무도 귀기울여 듣지 않는 외로운 메아리가 되었다.
노동자의 분열을 가장 기뻐하는 것은 자본가들이다. 노동자들이 서로 싸우고, 비난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자본은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하고, 임금을 낮추며, 노동조건을 나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고, 노동자는 자기들의 노동으로 번 돈이 자본가의 배를 불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노예 상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본이 던져주는 약간의 먹이를 받아먹으며 고마워할 뿐이다.
영화는 노동자의 투쟁과 노동조합의 노동운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자의 개인적 삶에 주목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의 어머니가 동대문에서 섬유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시작으로, 노동운동에서 주목받았던 여성노동자들을 인터뷰한다.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말하는 것만으로 지나온 과거의 노동 조건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증언한다. 그리고 그런 열악하고 비참한 노동 조건과 현실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라는 것도 말한다. 예전에는 '감정노동', '정신노동'이라는 개념도 없었지만, 모든 육체노동자는 감정노동과 정신노동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걸 자본가는 모른 채 할 뿐이다. 노동자의 인권은 과거보다 향상되고 있지만,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와 비교할 때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으며, 저임금, 성적 학대, 동등한 기회의 박탈 같은 심각한 차별과 싸우고 있다.
과거의 노동자는 독재정권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악과 싸워야 했고, 그래서 더 큰 상처를 입었다.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부르주아정부와 자본은 더욱 교묘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노동자를 통제하고 착취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단결, 투쟁하기가 과거보다 더 어렵다. 형식은 달라져도 노동자가 당하는 결과는 늘 똑같다. 일자리를 뺐기고, 돈을 벌 방법이 사라지면 굶어죽을 자유밖에 남지 않는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고, 그것을 아는 노동자는 두려움에 떨며 자본의 폭력 앞에 납작 업드려 죽은 듯이 시키는대로 움직이게 된다.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는 '단결'인데, 지금 '신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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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콕하는 자들에게 카타르시스 선사할 넷플릭스 액션 영화 추천
코로나로 인해 강제 방콕이 된 저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넷플릭스 액션 영화를 모아보았다.
극장 개봉작도 있지만 대부분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다.
프로젝트 파워
▶일시적으로 슈퍼파워를 갖게 해주는 미스터리한 알약으로 인해 범죄자가 증가하자 경찰과 전직 군인, 10대 소녀 딜러가 손을 잡고 이를 소탕하는 이야기
5분 동안 일시적으로 슈퍼파워를 갖게 해주는 알약이 한 도시 전체를 혼동에 빠뜨리는 내용이다.
자신의 딸을 납치해 딸을 찾기 위해 약 유통, 거래, 제조 등 추격해가는 소령을 제이미 폭스가 맡았고, 엄마 치료비를 위해 돈이 필요했던 약을 거래했던 10대 소녀는 도미니크 피시백이 맡았다. 이전부터 약을 거래하던 경찰 역은 조셉 고든 레빗이 맡았으며, 알약을 먹는 순간 사람마다 슈퍼파워 능력이 달라지는데.. 누구는 먹으면 펑 하고 터지거나 과다 복용해도 부작용으로 죽게 된다. 슈퍼파워 능력은 사람마다 달라지는데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 조금 더 다양하게 액션을 선보일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편이니 큰 기대감 없이 킬링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큰 그림이 신선한 편인데 그 속 안에 들어간 알맹이는 섬세하지 않는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길.
6 언더그라운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개인의 모든 기록을 지우고 스스로 ‘고스트’가 된 여섯 명의 정예요원이 펼치는 지상 최대의 작전을 담은 액션 블록버스터
마이클 베이 감독과 라이언 레이놀즈가 만난 <6 언더그라운드>.
<6 언더그라운드>는 개인의 모든 기록을 지우고 고스트가 된 여성 명의 정예요원이 작전을 펼치는 내용인데 각 정예요원이 어떻게 고스트가 되었는지 보여주며, 화끈하다 못해 폭발감 넘치는 액션을 선보인다. 초반 20분 정도 카 체이싱 장면은 아주 좋은 편이라 폭발감 넘치는 마이클 베이 표의 화려한 색감을 지닌 액션은 볼만하다. 하지만, 다소 정신없는 편집에 개연성 부족. 거기다가 캐릭터 부연 설명에도 쓸데없는 장면이 종종 있어 스토리는 정말 재미없었다.
액션이 화려한 반면 스토리는 폭발과 함께 날려버렸기에 큰 기대는 어려운 영화로 아무 생각 없이 액션만 보기에 딱 좋은 구조이긴 하다.
런던 해즈 폴른
▶ 영국 수상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전 세계 28개국 정상들이 모인 런던, 역사상 가장 철저한 보안 태세가 유지되던 런던 도심 전체에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나는 가운데, 5개국 정상이 무자비한 테러에 희생되고 미국 대통령이 납치 당하는 초유의 상태가 벌어진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아비규환 속, 비밀 경호원 마이크 배닝은 MI6과 함께 전세계를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세력을 막기 위해 나서는데…
<런던 해즈 폴른>은 <백악관 최후의 날> 후속 2편이며, 런던 도심 전체에 동시다발적 테러가 일어나는 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납치당하는 내용이다. 인물 관계도는 1편을 봐야 할 수 있지만, 경호인 마이크 배닝, 대통령과 부대통령 관계만 안다면 스토리 이해하는 데에 문제없을 정도이다. 폭풍전야인 듯 세계 28개국 정상들이 모여 평화로운 일상은 조금은 지루한 점이 있었지만, 런던 어느 한곳에서 펑 하고 터지니 런던 중심가 곳곳에 펑펑하고 터진다. 이때부터 정신없이 터지며, 무너지는데 영화 속에서는 테러가 일어난 일이지만 관람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펑 하고 터지며, 건물들이 무너지는데 스케일이 엄청났으며, 후반에 보여주는 야간 투시경을 끼고 보여주는 장면과 그렇지 않은 어둠컴컴한 장면이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액션은 서든 게임 같은 느낌을 선사해 준다.
스토리는 초간단하여 단순한 편이고 계속 펑펑 터지면서 무너지니 아무 생각 없이 스트레스 풀기 좋은 영화이다.
익스트랙션
▶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납치된 의뢰인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전직 특수부대 출신 용병이 거대 범죄 조직에 맞서 벌이는 리얼 액션 구출극
각본 루소 형제와 크리스 햄스워스가 만난 <익스트랙션>은 범죄조직 아들이 납치되어 의뢰인의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내용으로 특수부대 출신 용병 역을 크리스 햄스위스가 맡았다. 넷플릭스 영화 중 액션 타격감이 상당히 좋은 영화로 단순 집에서 킬링용으로만 보기에 아깝고,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게 다소 아쉽다.
스토리에서 개연성 부족은 없었으나, 발암 캐릭터도 없었고 깔끔하게 이어지는 게 마음에 들었으며, 제일 장점인 것은 역시 장르적 쾌감을 선보인 액션 장면이다. 특히 아이 구출 장면에서 화면 전환 및 편집 없이 롱테이크로 총, 격투 장면을 보여주고, 카 체이싱은 뒷좌석에서 촬영한 듯 리얼감을 선사해 주었다. 크리스 햄스워스가 선보인 액션 또한 스피드하고 쾌감 넘쳐 <익스트랙션>을 추천하고자 한다.
올드 가드
▶ 오랜 시간을 거치며 세상의 어둠과 맞서운 불멸의 존재들이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또다시 힘을 합쳐 위기와 싸워나가는 이야기
불멸이라는 소재와 액션이 만난 <올드 가드>는 오랜 시간을 거치며 세상의 어둠과 맞서 운 불멸의 존재들이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힘을 합쳐 싸워나가는 이야기인데 불멸의 리더 샤를리즈 테론, 멤버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루카 마리넬리, 해리 멜링 등 출연하며, 불멸의 멤버 중 신입 키키 레인이 맡았다. 후속을 위한 프롤로그로 그들이 왜 불멸이 왜 어떻게 되었는지 사전 스토리는 나오지 않아 오히려 더 궁금하게 만들었으며, 엔딩 장면에서 꾸인 등장으로 인해 후속에서 아마 많은 것을 풀어내지 않을까 싶다. 불멸의 리더 앤디 역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력이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에 아주 좋았으며, 총과 도끼를 이용한 격투 액션도 상당히 좋았다
아쉬운 설정이 있으나, 불멸이라는 신선한 소재, 샤를리즈 테론의 액션 만남이 재미를 선사해 주어 후속이 더욱 기다려지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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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의 어둠에도 사랑으로 빛나는 북극성은 반드시 있다
"밀폐된 공간의 사람들,
예측 불허의 상황에 끊어지는 소통,
죽어가는 바깥의 비극."
얼마 남지 않은 2020년을 돌이켜보면 금세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유행병으로 폐허가 된 세상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혹독했던 일 년 동안 생존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체감했을 것이다. 전 세계는 록다운과 거리 두기로 함께 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야 하는 순간을 경험했고, 매일 현황판 속 증가하는 숫자들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죽음과 아픔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에 앉은 채 SF에 눈을 돌린다. 과학의 발전으로도 막지 못한 세상의 멸망이 눈앞에 찾아온 순간에 우리보다 앞서 겪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불확실한 근미래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밀폐된 공간의 사람들,
예측 불허의 상황에 끊어지는 소통,
죽어가는 바깥의 비극."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필멸의 시간이 다가온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죽어가는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도할 빛에 관한 이야기이다.
출처: 다음 영화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넷플릭스에서 개봉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영화다. 2049년, 지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으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었다. 쫓기듯 지상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속 북극해에 있는 바르보 천문대의 늙은 과학자 어거스틴은 혼자 그곳에 남기로 한다. 암 말기 환자인 그는 아직 대기가 오염되지 않은 극 지대에서 생을 마치려고 한다. 수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티기 힘든 그는 마지막 삶을 거센 눈보라의 텅 빈 천문대에서 정리하고 있다. 그러던 중 어거스틴은 건물 안에서 대피하지 못한 한 소녀를 만난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아이의 이름은 아이리스. 과학자는 구조를 요청하지만 이미 통신은 끊어졌고, 어쩔 수 없이 아이리스를 데리고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목성의 위성 K-23의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는 에테르 호의 다섯 명의 대원을 보여준다. 인간이 거주할 행성을 찾아 이년 간 임무를 수행했고, 긍정적인 결과를 든 채 고향인 지구로 돌아가고 있다. 통신 담당 설리는 이주 전부터 지구와의 연락이 끊긴 상황을 의아해한다. 처음에는 우주선 내부의 문제로 여겼지만, 곧 원인은 지구에 있음을 인지한다. 설상가상으로 에테르 호는 경로를 이탈해 미탐사 구역을 거쳐 지구로 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다시 지구로 돌아와서, 늙은 과학자는 모든 우주 탐사가 정지된 상황에 에테르 호만은 지구를 향해 돌아오고 있음을 알게 되고, 현재 상황을 알리기 위해 교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수신이 약해 통신은 번번이 좌절된다. 그는 멀리 떨어진 하젠 호수의 성능 좋은 안테나를 이용해 교신하기로 하고, 아이리스와 함께 가혹한 눈보라와 미지의 북극을 헤치고 하젠 호수로 떠난다.
감독이자 주인공인 어거스틴을 맡은 조지 클루니는 원작인 릴리 브룩스돌턴의 SF소설 「굿모닝, 미드나이트」를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서로 떨어진 두 적막의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재난 상황 속에 단절된 관계를 잇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끝나가는 세상에서도 우리가 끝내 붙잡을 북극성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은 코로나 시대의 고립과 불안에서 가족과 인간을 향한 마음속 깊은 간절함과 선의가 만드는 변화를 담았다.
결말을 이끄는 어거스틴의 모습은 지구와 닮아있다. 그의 외모와 더불어 신체적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마치 죽어가는 지구의 형상처럼 보인다. 그의 삶에 주어진 마지막 임무인 교신은 지구가 인간에게 전하는 조언이자, 그 안에 살아가는 인류가 지켜야 할 가치를 놓지 않을 의지를 관객에게 촉구한다.
설리 역할을 맡은 펠리시티 존스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긴즈버그 연방대법관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그는 실제 촬영 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렸고, 감독과 작가는 원작에는 없던 설리가 임신 중이라는 설정을 시나리오에 추가했다. 이는 후반부 가족이라는 소재로 연결되는 등장인물과 더불어 설리에게 또 다른 층을 부여하여 해석의 가능성을 넓힌다. 우연과 운명으로 얽힌 영화는 개인에서 인간 전체로 확장된다. 희망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연대의 노력은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응원하고 있다.
소설을 각색하며 빠진 인물의 배경은 영화 중간 인물의 어떠한 선택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아름다운 영상에 비해 평이한 이야기 전개나 예측 가능한 결말 역시 영화의 아쉬움이라 할 수 있다. 플래시백 연결이 더 매끄럽게 이어갔어야 했던 점이나 중간에 삽입된 웃음 코드 장면은 사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훌륭한 음악으로 장면 간 연결을 이어가는 부분은 인상적이나 서사의 부족함을 음악으로 채운다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연말,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집콕’과 더불어 이 영화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인류애를 충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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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파리' 이후 15년, 그리고 '화란'
7★/10★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한 고등학교의 운동장. 한 학생이 제 손에 주먹만 한 돌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그러고는 동급생의 머리에 그 돌을 냅다 내리꽂는다. 가격당한 학생은 쓰러진 후 소리를 지르고, 저 멀리서는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달려온다. 연규의 손에 들려 있던 돌은 운동장의 조그만 물웅덩이에 떨어진다. 돌에는 피가 묻어 있다. 물웅덩이의 흙탕물 사이로 붉은 색 피가 조금씩 퍼져나간다. 영화 〈화란〉의 시작이다.
〈화란〉의 오프닝은 이 영화가 출구 없는 폭력의 연쇄를 다룰 것임을 암시한다. 연규는 가난한 재혼 가정의 고등학생 아이로, 새아빠의 딸이자 이복 여동생 하얀을 괴롭히는 동급생을 응징하기 위해 돌을 손에 들었다. 연규가 하얀을 특별히 아껴서는 아니다. 연규는 엄마에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며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인데 그냥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정작 연규가 ‘같이 사는’ 새아빠에게 수도 없이 구타당한다는 점이다. 새아빠는 발소리, 숨소리만으로 연규를 얼어붙게 만든다.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진 폭력은 그렇게 작동한다.
하얀을 위하는 연규의 마음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것과 현실의 합의금은 별개의 문제다. 연규는 당장 300만 원을 마련해야만 한다. 엄마는 돈이 없다. 새아빠에게 말했다가는 또다시 죽을 듯 맞을 것이 뻔하다. 300만 원은 아르바이트 비용을 가불해 지급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큰 금액이다. 궁지에 몰린 연규에게 구원자가 나타난다. 연규의 사정을 알게 된 동네 조직 폭력배 중간 보스인 치건이 부하를 시켜 돈을 전달한 것이다. 연규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치건은 연규에게서 자신을 보았고, 그래서 연규를 도왔다. 그러나 치건의 호의가 마냥 선의의 발현인 것만은 아니다. 치건이 연규에게 건넨 ‘구원’은 그의 세계에 들어오라는 암묵적 초대이기도 하다. 합의금을 손쉽게 마련한 것으로 끝낼지, 아니면 치건의 초대에 응할지는 연규의 몫이다.
짐작 가능하듯, 연규는 치건의 길을 따른다. 치건은 연규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연규가 결코 갖지 못할 힘과 돈을 가졌다. 연규는 빠르게 치건의 조직에 적응하고, 그들과 ‘같이 살며’ 가족이 된다. 처음부터 글러먹은 도시, 탈출할 수 없는 절망으로 가득찬 도시에서 자란 치건과 연규는 빠르게 유대를 형성한다. 그러나 동시에 연규는 하얀을 지켜주고자 한 선한 마음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는다. 조직의 냉혹한 문법과 기존 마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연규는 기지와 수완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연규가 어떻게든 지켜내고자 한 그 무엇이 그가 영화의 마지막에 하얀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도시 밖으로 나가는 밑절미가 되어준다.
치건을 연기한 송중기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화란〉 시나리오를 보고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떠올랐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력이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엉켜 영속되는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서서히 질식되어가는 사람들. 그 적나라한 폭력의 현시에서 우리는 눈을 질끔 감고 고개를 돌리고만 싶다. 그러나 연규를 연기한 홍사빈 배우의 얼굴이 우리의 고개를 다시 스크린으로 돌린다. 절망 속에서 피어난 비천한 희망을 담아내는 그의 연기가 주는 흡인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괴로울지라도 영화(그리고 영화가 그려내는 현실)를 응시하도록 붙잡아둔다. 나아가 그가 겪어내는 폭력의 파편을 관객의 몸과 마음에도 새겨 넣는다. 송중기 역시 기존 출연작이 잘 떠오르지 않는 묵직한 연기로 연규가 마주한 구원과 고난의 엄숙함을 증폭시킨다.
〈화란〉은 영화 말미에 아주 자그마한 숨구멍을 뚫어 놓는다. 희망이라고 말하기에는 터무니없고, 연규와 하얀이 그럴싸한 미래를 마주할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둘은 폐쇄적 폭력의 연쇄의 바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결말은 연규의 ‘선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연규가 마냥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직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치건과 오해가 생겨 갈등이 극에 달한 장면에서, 두려움에 질린 연규는 하얀을 담보로 치건과 협상을 벌인다. 즉, 연규는 ‘같이 사는 사람’인 하얀을 하나의 화폐로써 치건에게 지급한다. 연규가 적당한 선함을 가진 건 맞지만, 그가 절대적 선함의 담지자는 아니란 소리다. 사람을 화폐로 제시하는 연규의 이 비겁함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를 재현할 때 종종 발생하는 ‘약자는 완벽히 선해야 한다’는 요구를 비틀며 그의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똥파리〉 이후 15년, 〈화란〉은 사회와 폭력에 대한 영화적 재현은 얼마나 다르고 같은지를 질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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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면 팔수록 현혹되는 씻김굿!
(이 글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 몸이 아팠다. 마치 134분동안 신비롭고도 무서운 기운이 한데 몰아치는 가운데, 신명나는 굿판을 체험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파묘>는 여러모로 에너지가 상당한 작품이다. 한국형 오컬트의 길을 더 확장한 장재현 감독은 물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게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는 일명 ‘묘벤져스’ 배우들은 그 에너지를 한 데 모아 도깨비불처럼 관객을 끝까지 현혹시킨다. 후반부 새로운 이야기가 다소 생경스러움을 줄지언정 이 굿판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할 정도. 뭐가 나온다 한들,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감독의 뚝심은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한다.
실력 있는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미국행 비행길에 오른다. 기이한 병이 장손에게 대물림되는 집안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 대번 조상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낸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거액의 의뢰엔 의심과 위험이 따르는 법. 묫자리를 본 상덕은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를 보고 이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파묘를 시작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생기는 기이한 이들이 벌어지고, 결국 이들은 험한 것들과의 전면전을 치른다.
<파묘>는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 <사바하>의 장점을 고르게 가져간다. 서울 명동에서 펼쳐지는 엑소시즘, 기독교과 불교, 사이비 종교의 만남 등 이질적인 것을 붙였을 때 느껴지는 신비로움과 그로테스크함이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특히 풍수와 의례, 무속신앙과 국가를 넘은 초자연적 현상이 함께 맞물리며, 악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과 작품 전반에 깔린 기묘한 매력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검은 사제들> 보다 이야기 층을 두텁게 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 <사바하>보단 더 쉽고 직관적으로 가져가려는 감독의 의도가 담기며 그 장점이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부터 크게 전후반(전반부는 불교 후반부는 사이비 종교)을 나누어 이야기의 전복을 꾀했는데, <파묘>에서도 그 방식을 이어간다. 영화는 첩장(관이 두 개)된 묘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전반부는 파묘 이후 악의 기운을 가진 혼령의 비밀과 이를 없애려는 묘벤져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의뢰자 집안의 진실이 숨겨진 채로 행해지는 화림의 대살굿과 파묘, 이장 과정은 이후 괴이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을 계속 부여하며 이야기를 주시하게 만든다. 감독은 이 분위기를 계속 가져가기 위해 최대한 숨겨진 진실의 빗장을 서서히 풀어가고 혼령의 모습을 절제하면서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취한다. 빛과 어둠의 대비와 교차 편집을 통한 극적 긴장감도 유지해 나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두 번째 파묘 이후 이야기는 오컬트에서 어드벤처 크리처물로 장르의 변화를, 개인에서 민족으로 대상의 변화를 꾀한다. 기존 관보다 더 깊숙하게 박혀 있는 관의 봉인이 풀려 ‘험한 것’이 나오며 비로서 이 묘가 왜 생겼는지를, 산 주위에 왜 여우들(여우 음양사)이 있었는지, 그 관이 가로가 아닌 세로로 묻혔는지(쇠말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다. 그리고 묘벤져스는 쇠말뚝과 같은 관 속의 험한 것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또 한 번 대결을 치른다.
이야기와 장르가 전복되는 후반부는 다소 당황스럽다. 일단 악의 실체가 보이는 순간, 전반부에 고조되었던 쫀쫀한 긴장감은 풀려 버린다. 장르 선택에 따른 이 결과치에 악령을 퇴치하기 위한 목적이 애국주의로 모이면서 생기는 낯간지러움이 더해진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이 생경한 이야기는 그 목적을 이해하면 달리 보인다. ‘과거의 것을 들춰서 잘못된 것을 꺼내 없앤다’는 게 실제 ‘파묘’를 하는 목적이자 필요성이다. 위험 부담을 안고도 감독이 뚝심 있게 후반부 이야기를 밀고 나간 건, 개인에서 민족, 더 나아가 우리의 땅으로 대상을 확장하며 그동안 감춰져 곪아 터진 상처와 고통, 아픔의 근원을 꺼내 없애는 의미를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숨겨진 진실(혹은 이름)을 찾으며 개인과 사회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마주하게 하고, 결국 이 과정을 통해 얻는 작은 희망을 그린 전작들을 미뤄봤을 때 이번 이야기는 일본 제국주의라는 우리 민족의 어둡고 공포스러운 존재를 심연에서 끌어올려, 상처를 치유하고 두려움을 몰아내는 씻김굿처럼 보인다. 이에 걸맞게 영화는 음양오행이란 가장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섭리로 ‘험한 것’에 대항한다. 장르 전환에 따른 낯설음을 바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영화가 품은 의미는 물론, 이야기 확장성을 위해 일정한 방향으로 ‘파묘’하는 감독의 뚝심은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다.
관객이 끝내 설득당하는 건 배우들의 호연도 영향을 미친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 각 역할에 맞게 그 선을 지키며 공조하는 연기가 돋보인다. 극중 각 영역 전문가라는 특성에 맡게 이어달리기처럼 그 순서가 되면 곧바로 바통을 전하듯 이들의 협업은 마지막까지 극적긴장감을 올린다. 특히 초반 대살굿으로 가장 확실한 인장을 찍는 김고은은 물론, 땅파먹고 산 경험을 토대로 일본의 ‘험한 것’ 을 향해 일격을 가하는 최민식, 이들과 함께 자신의 역량을 100% 표출하는 유해진, 이도현의 연기 등 이들의 앙상블은 영화에 힘을 더한다.
<파묘>에서 다룬 이야기가 어떻든간에 장재현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오컬트 장르를 길을 열어가고 있다. 후반부 봉길의 병실에서 먹을 것을 놓고, 그에게 깃든 ‘험한 것’을 불러내기 위해 구라액션을 펼치는 화림과 동료 무당인 광심(김선영), 자혜(김지안) 장면은 우리만의 엑소시즘을 멋스럽게 변형한 장면이다. 이뿐인가? 다수의 장면에서 이런 감독의 한국적인 오컬트 요소와 장면을 만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런 말을 전했다. “진보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을 하고 나아가야 했다. 이 영화가 그 결과물이다.” 감독님이여~ 그 마음 변하지 말고 한 길 우직하게 열심히 파묘하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본 이후에는 꼭 소금 사시 뿌리시길. 국내산 천일염으로. 그것도 씨알 굵은놈으로다가!
사진 출처: 쇼박스
평점: 4.0 /5.0
한줄평: 파면 팔수록 현혹되는 씻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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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나게 맛있는 엄마의 집밥처럼!
눈물나게 맛있다! 특별한 재료도 들어가지 않는데도 엄마의 밥은 그 눈물이 아깝지 않도록 맛있다. 그 맛이 그리워 손수 해먹어봐도 이내 실망하게 되는 건, 엄마의 정성이 담긴 손맛이 빠졌기 때문. <3일의 휴가>는 눈물나게 맛있는 엄마의 집밥과도 같은 영화다. 엄마, 집밥, 추억, 그리고 눈물과 감동은 다소 올드해보이지만, 원래 아는 맛이 무서운 법. 이 작품은 변하지 않는 그 진리를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
시간은 저승에서도 빨리가는가보다. 죽은 지 벌써 3년째를 맞이하는 복자(김해숙)은 지상에서 보낼 수 있는 3일간의 휴가를 받는다. 가이드(강기영)의 안내에 따라 우크라(UCLA) 대학 교수인 딸 진주(신민아)를 만나러 간 그녀는 기쁨 대신 당황한다. 미국에 있어야 할 딸이 자신이 살던 시골집에서 백반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 복자는 어떻게든 딸을 미국으로 보내려 하지만, 말도, 접촉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켜만 봐야 하고, 이런 복장 터지는 어미의 마음을 모르는 진주는 단짝 미진(황보라)과 엄마의 레시피대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추억에 잠긴다.
음악영화를 보면 음악이 나를 그리운 과거로 데려간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우리를 어떤 기억으로 데려간다.
<3일의 휴가>를 집필한 유영아 작가(드라마 <서른, 아홉>, 영화 <도그데이즈> 등)의 말처럼, 이 영화는 음식을 매개체로 우리들의 엄마를 소환하고, 잊고 지냈던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엄마의 음식, 그 안에 담긴 맛과 사랑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그 맛이 구수하다. <방가? 방가!> <나의 특별한 형제> 등 소외된 이들의 따뜻한 감성을 영화에 녹여냈던 육상효 감독은 죽음 엄마가 3일 동안 이승에서 딸을 만난다는 판타지 요소를 가미해 구수한 영화의 오감을 살린다.
애증의 관계라 불리는 극 중 모녀 이야기는 영화의 동력이자, 궁금증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복자가 죽은 뒤, 진주는 미국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시골집에서 사는데, 그 이유는 대외적으로 공황장애지만 결국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다. (복자 또한 진주에게 부채감이 있다.) 이들의 관계가 왜 소원해졌는지 플래시백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딸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복자의 모습. 그런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사랑을 받지 못해 서운하고 원망스러워 쌀쌀맞게 반응한 진주는 우리의 삶을 투영한 듯한 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의 아픔은 요리가 치유한다. 진주는 어렴풋이 생각나는 엄마의 레시피에 따라 음식을 만들고, 복자는 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이 때 요리에 담긴 각자의 추억이 소환되는데,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당시 서로 몰랐던 감정을 알게 되고,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마치 마음 속 메워지지 않았던 구멍이 음식이 불러온 기억으로 메워진 느낌이랄까.
후반부로 갈수록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한 모성애가 올드함을 전하긴 한다. 이로 인해 초반 복자는 물론, 가이드와 미진의 위트와 유머가 쌓아올린 분위기가 반감된다. 그럼에도 영화의 모성애가 주는 감동은 크다. 특별히진 않지만 맛있는 집밥처럼, 매번 봐왔지만 끝내 눈물을 훔치는 모성애의 쓰임새는 적절한 모양새다. 여타 모성애를 강조한 영화 보단 과잉되지 않은 감동을 전한다.
극중 가이드는 휴가를 떠나는 복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휴가 동안 좋은 기억만 담고 오시면 됩니다”라고. 모성애 부분 등 태생적으로 가진 호불호 지점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사처럼 영화를 보면 엄마와의 좋은 기억이 샘솟는다. 영화 속 차려진 스팸 김치찌개, 만두, 잡채, 잔치국수 등은 아닐지언정 엄마와 함께 했던 한 끼 추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사진 제공: 쇼박스
평점: 3.0 / 5.0
한줄평: 올드한 모성애, 그럼에도 보게 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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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6] 주눅들어있는 평범한 가장의 본 모습, 노바디
존윅의 각본가가 존윅 시리즈를 기획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영화 노바디 입니다.
전반적으로 존윅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집에 침투하는 적을 제압하는 액션 장면도 그렇고,
다양한 격투장면은 존윅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확실히 이 제작진의 인장이 확실히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조금 다른 점은 가족과 아빠의 가정 내 위치에서 소외당하는 모습을 넣어서 가족적인 감정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고 가족에게도 그것을 보여주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죠.
다른 것 보다 액션이 좋습니다.
존윅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려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물론 있는 영화죠.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끝까지 봐주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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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은] 정재헌 성우님의 타키 연기 드디어 공개!! 너의 이름은 명장면 황혼의 시간을 재연해봤습니다(feat. 황보, 라이언)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마사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ine_massage/
EP.28
정재헌 성우님의 비공식(?) 타키 연기를 감상해봐요!!
*열악한 녹음 환경에서도 열연을 해주신 정재헌 성우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더빙 음성과 영상이 원본 감성 그대로 깔끔하게 살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빙 영상에 깔린 배경음악으로 Firefly Piano님께서 커버 음악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 감사합니다^^
Firefly Piano 유튜브 채널 : ? http://bit.ly/SubscribeFireflyPiano
해당 커버곡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75Lxu...
출연
황보 라이언 정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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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 티저 예고편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 12월 20일 큰 스크린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라! 올겨울 최후의 승리를 함께하라! ?개봉일 확정 기념? #노량죽음의바다 티저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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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마일> 압도적 공포 예고편
#스마일 의 압도적 공포를 보이기엔 30초면 충분. 10월 6일, 너도 곧 웃게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