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18 10:35:09
[JIMFF 인터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존재하기' 최고은 PD 인터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최고은 PD |
최고은 PD는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통해 광주극장에서 이루어지는 뮤지션들의 인터뷰와 라이브 클립을 선보이며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오랜 시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잘 버텨내고 존재하는 광주의 광주극장처럼,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 ‘버텨내고 존재하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
![]()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제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국내 경쟁작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얼굴 마담이 되고 싶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던(웃음)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입니다.
간략히 영화 소개해 주세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공간을 지켜내고 있는 광주극장, 그곳에서 저를 포함한 8명의 뮤지션이 어떻게 음악을 하고 있는지 라이브 클립 공연하는 모습과 인터뷰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제목을 우선 시 생각하는데 '버텨내고 존재하기' 제목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생각하게 되셨나요? 음악을 시작 한 지 12년 차가 되었는데 10년 차 때 부터 생각했던 화두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라 이전에 음악 하던 흐름과 많이 달라져야 했습니다.활동 방향과 방법이 변하면서 음악을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버텨내고 어떻게 존재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이었지만, 제 주변 뮤지션들도 그러했습니다. 오래된 공간들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어졌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되는 주제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었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의도하신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호스트 입장으로 영화에 설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2019년부터 매해 진행했던 커밍홈의 세 번째 이야기라, 제가 호스트 되어 주변의 뮤지션을 광주에 초대해 광주 알리고자 했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감독님과 PD님이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권철 감독님께서 영화 상영후 GV에서 적절한 표현을 해주셨는데, ‘냉장고를 부탁해’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제가 냉장고를 준비해서 냉장고 안 에 요리할 수 있는 재료를 넣어 권철 감독님께 드리면 권철 감독님이 요리하는 과정입니다. 저의 역할은 주제와 뮤지션 및 공간 섭외였습니다.
그렇다면 권철 감독님께 제안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권철 감독님은 2011년에 처음 뵈었는데, 이후로 해외 투어 가거나 라이브 클립 작업 시 권철 감독님과 함께 했습니다. 감독과의 작업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음악 대한 애정이 깊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서 보는 것이 듣는 것과 같은 쾌감이 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에세이 읽는 것처럼, 시 낭독 들었던 것처럼 기억되도록 작업하십니다. 일련의 흐름처럼 영상 파트에 권철 감독님이 늘 계셨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공연하는 뮤지션들의 라이브 클립곡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뮤지션들을 광주로 초대할 때, 주제를 소개하면서 스스로 어울리는 곡을 생각해 라이브 클립을 하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우리가 선정하지 않고 뮤지션 자신이 생각해서 어울릴 만한 곡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곡들입니다.
기억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마도 이자람밴드가 떠오르네요. 광주극장이 4층 건물 높이인데 당시 이자람 님이 4층에서 라이브 하셨고 저는 1층에 대기하는데 4층 이자람 님의 목소리가 1층까지 울렸어요. 폭발적인 가창력, 목소리 트임에 아주 놀랐습니다. |
![]() |
최고은 PD님의 버텨내고 존재하는 비중을 나타내자면 어느 정도 일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존재한다는 것’ 에 집중했습니다. 버티는 것 자체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나를 기록에 남기지’ 의 존재에 집중했다면 가면 갈수록 버텨내는 힘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버텨낸다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앞에 있는 것이라 ‘다른 일을 하더라도 똑같겠지, 음악 아니면 뭐 하지’ 생각해도 음악이 저에게 대체 불가한 길이라 버텨냈는데 요즘은 밸런스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 시대를 버텨내고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하고 나의 이야기가 소중한 만큼 남의 이야기도 소중하게 생각하면 서로가 힘이 되어 잘 버텨내고 잘 존재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통해 무엇을 얻어 가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우리 모두의 사람살이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괄호 앞에 들어가야 합니다. 광주극장이라는 공간은 1933년 개관했으니 90여년 되었고,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션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꾸준히 하고 만들어 갑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숨어있는 가치를 지켜내는 것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광주에 갈 기회가 있다면 광주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의 음악도 들어 보시고, 중간중간 나오는 뮤지션들의 추천 영화들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최고은 PD는 10월 말에 있을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광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마지막 손간판쟁이로 알려진 박태규 화백이 작업한 '버텨내고 존재하기' 손간판을 직접 세워 영화를 상영하고 뮤지션들이 공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간이 보이는 공간, 광주극장에서 90여 년 세월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존재하는 장소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가 너무나 기대된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김문숙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
Relative contents
-
- 에린 브로코비치
에린 브로코비치
몇 번을 본 영화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인공인 에린 브로코비치의 삶과 개인적 매력을 발견하는 데 집중하다가 차츰 주변의 인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에린은 '미스 위치타' 출신으로 큰 키에 날씬한 몸매의 미인이다. 그는 자신의 미모를 돋보이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닌다.
애기를 돌봐야 하는 젊은 엄마로서 힘들지만 꿋꿋하게 일자리를 찾고,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줄 아는 자의식 강하고 똑똑한 여성이다. 그와 살던 남자는 떠났는데, 떠난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가난한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살기에는 환경과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고,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정도로 밑바닥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변호사를 만난다. 승소가 확실한 재판에서 지고, 보상금 한푼 받지 못하게 되자 에린은 변호사를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말한다. 이런 태도를 보면 에린이 강한 성격이라고 보이지만, 궁지에 몰린 가난한 여성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애원이라고 생각하면, 에린이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삶을 이어가는 바탕에는 강한 모성애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에린이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보면, 그가 우연히 발견한 소송 서류에서 수질오염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가식이 아닌, 진정한 공감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린은 스스로 말하듯, 똑똑하고 일도 빨리 배우는 여성이다. 거기에 책임감도 강하고 사람들과의 친화력도 매우 뛰어나다. 에린은 대기업(PG&E)이 일으킨 수질오염으로 각종 질병과 암으로 고생하는 마을 주민들을 찾아가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한다. 에린과 그의 변호사가 마침내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기록을 세운 것은 에린이 보여준 '공감'에서 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공공상수도관리소에서, 대기업이 배출하는 폐수를 몰래 담으면서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에린은 처음부터 억세거나 강한 이미지의 여성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에린이 옆집으로 이사 온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남자, 조지를 만난 이후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지는 자유로운 남성으로, 먹고 살 만큼의 일을 하고는 한동안 쉬고, 오토바이를 타고 자유롭게 떠돌아 다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남자였지만, 에린을 만나고는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렇다고 에린에게 질척대거나 마초처럼 굴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의 아빠 노릇을 살뜰하게 하는 것으로 에린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눈에 들어온 인물이 바로 '조지'다. 조지는 독신 또는 미혼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지만, 에린을 만난 이후 자연스럽게 에린의 두 아이를 돌보면서 에린을 돕기 시작한다. 두 아이는 조지의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을 좋아하고, 아버지처럼 따른다. 조지는 에린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사랑하는 마음이 따뜻하고 자상한 남성이다.
하지만 에린은 그런 조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건 에린이 이미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고, 그가 만난 남성들은 에린이라는 '인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에린의 성적 매력만 좋아했다가 싫증나면 떠나버린 인간들이었다.
에린은 조지도 그런 덜 떨어지고 되먹지 못한 남자일 수도 있다고 경계해서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조지 덕분에 에린은 자유롭게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수질오염으로 피해를 당한 마을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말을 듣고,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조지는 에린에게 청혼하려고 반지까지 준비하지만, 에린은 조지를 그저 '베이비 시터' 정도로 취급하는 태도에 화가 나서 에린을 떠난다. 조지가 떠나고 나서야 에린은 조지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다. 에린은 후회하지만 그렇다고 감상적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후회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는 순간, 세상은 더 잔인하게 자신을 해친다는 사실을 에린은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자기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지가 돌아왔을 때, 에린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로서는 진심과 최선을 다한 사과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지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조지는 무심한 듯,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준다. 아이들은 조지가 있어 행복하고, 에린도 조지의 존재가 더 없이 고맙다.
조지가 보여주는 부성애와 외조의 모습은 미국에서도 특이할 정도로 훌륭한 귀감이 되는 남성의 모습이다. 조지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남성으로, 혼자 살면서도 좋아하는 여성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롭다고 사랑하지 않는 여성과 만나서 살기는 싫고, 그러느니 차라리 혼자 즐겁게 사는 삶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에린을 만나게 되고, 에린에게 두 아이가 있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있어서 에린과의 사이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가족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조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진심을 다해 사랑할 줄 아는 멋진 남성이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유머가 있고, 다정다감한 남성이라면 최고의 신랑감이자 아버지 아니겠는가.
에린은 소송이 승리하고, 피해주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러 가는 길에 조지와 함께 가기를 희망한다. 자기가 그동안 고생해서 얻은 결과를 조지에게 보여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에서다. 에린과 가까워진 주민에게 손해배상 금액으로 2백만 달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때, 암으로 고생하던 여성 주민의 눈물은 상식과 정의가 승리하는 장면이어서 감동이다.
조지도 이 모습을 보면서 흐믓한 웃음을 짓는다. 에린이 그렇게 고생한 것에 보람이 있어서 기쁘고,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돕는다는 멋진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는 기쁨도 있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 좋은 일을 하고, 정의롭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사랑하는 건 행복하다. 에린이 볼 때 조지가 그런 사람이고, 조지 역시 에린의 본 모습을 한눈에 알아본 탁월한 사람이었다.
-
- 빛바랜 프랑스 파리…사랑과 자유가 번뜩인다
12일 개봉한 <파리, 13구>(감독 자크 오디아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흑백의 파리와 섹스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펼쳐지는 스크린 속 파리에게서 화려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영화의 시작. 성냥개비 모양의 아파트처럼 각 잡힌 건축물이 규칙적으로 배치된 모습이 등장한다. 감정적으로 메마른 파리의 단면이다. 그렇게 파리 13구의 겉모습은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그 도시 속 남녀 주인공들은 분주하게 사랑을 찾아 헤매고 섹스를 반복한다. 섹스 장면이 많이 나온다. 빛바랜 도시에서 펼쳐지는 진한 섹스라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낯선 두 조합은 스크린을 긴장하게 하며 동시에 요동치게 한다. 105분의 러닝 타임이 지났을 때쯤 관객은 각자 어떤 진한 색을 떠올린다.
에밀리(루시 장)는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찾아온 남자 카미유(마키타 삼바)와 함께 살게 된다. 타인과 관계 맺는데 서툰 에밀리는 카미유가 맘에 들었지만 좋은 관계로 발전하진 않는다. 카미유는 스트레스를 섹스로 푸는 스타일이다. 대학생 노라(노에미 메를랑)는 포르노 배우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를 닮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또래들의 놀림감이 된다. 그러던 노라는 카미유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어딘가 해소되지 않는 느낌이다. 노라는 앰버의 유로 채팅 사이트에 접속해 말을 건다.
네 주인공은 자석처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달콤한 사랑은 짧고 외로움과 투덜거림은 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외롭지 않다. 어느 순간 강렬한 빛으로 울렁거리기 때문이다. 이 넷은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마음이 가는 데로 움직이고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상대를 있는 힘껏 헐뜯기도 했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도 했다. 아지랑이처럼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감정의 선들이 막 피어오른다. 그 선들은 다정한 종착지를 향해 조금씩 내닫는다. 그때쯤 알게 된다. 우리의 파리는 여전히 빛바래지 않았고 실제로는 여러 빛깔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그곳의 젊은이들은 생기 있게 살아간다.
이 영화가 좋았다. 늘 조심스러워하는 나에 비해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듯 성숙해 보여서다.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직선으로 내리꽂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래 본적이 사실 거의 없다. 늘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 조심스러웠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어도 그랬다. 언제나 나를 적당히 드러내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조심스럽다는 건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해소되지 못한 찜찜함이 남는 일이기도 했다. 때로는 관계가 틀어질 지경이 되어도 에밀리나 카미유처럼 속 시원하게 내뱉지 못했다. 그래서 이 지독하고 때로는 배려가 전혀 없는 이 관계들이 참 반듯하게 보였다. 멋진 주인공들의 멋진 부딪힘으로 기억될, 그런 영화였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이토록 무해하고도 진실된 자작극!
‘어떻게 결혼을 가짜로 해?’ 다큐를 완성하기 위해 가짜 결혼식을 올리는 영화 <다우렌의 결혼>을 보면 이 말이 나올 법하다. 다큐를 찍기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간 조연출이 신랑 행세를, 그 마을 처녀가 신부 행세를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거짓 결혼에 하객들은 진심으로 이들의 행복을 축하한다. 중요한 건 카메라에 담긴 모든 이들의 모습이 진짜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가짜처럼 느껴지는 건 카자흐스탄의 믿을 수 없는 자연 풍광일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조연출 승주(이주승)는 비행길에 오른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결혼식을 찍어오면 입봉 기회를 준다는 말에 이 프로젝트를 덥석 문 것. 하지만 촬영감독 영태(구성환)와 함께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그는 첫 시작부터 삐거덕거린다. 현지에서 만든 연출 유라(박루슬란)는 촬영을 하기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찍기로 한 고려인 결혼식은 늦게 도착해 기회를 날려버린다. 연출자도 없고, 제작비도 떨어져 가는데, 제작사는 어떻게든 찍어오려고 말할 뿐. 승주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이들은 유라의 삼촌 게오르기(조하석)가 있는 마을로 향하고, 그곳에서 가짜 결혼식을 준비한다.
<다우렌의 결혼>은 진짜를 찍고 싶은 한 남자가 가짜 결혼식을 만들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심의 힘을 깨닫는 내용이다. 승주는 찐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는 게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하청으로 받은 해외 영상에 가짜 이름을 지어내는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입봉의 꿈을 놓지 않는다. 비루한 현실에 봉착했어도, 심지어 이국땅에서 가짜 결혼식을 만들고 직접 신랑 역을 할 정도로 그에게 꿈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놓친 게 하나 있다. 진심을 담는 방법이다. 극 중 제작사 대표에게 자신이 만들려는 다큐 <갈치의 꿈>을 피칭하는 장면이 나온다. 새끼 갈치가 어른 갈치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담아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말에 대표는 생김새가 비슷한 새끼 갈치를 어떻게 알아보고 어른이 될 때까지 담을 거냐고 반문한다. 그만큼 현실화가 어렵다는 말인데, 이는 진짜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를 전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한 답을 하는 것처럼 승주는 가짜 결혼식을 촬영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진심을 담는다면 아무리 거짓으로 포장된 자작극이라고 할지라도 보는 이들에게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말 그대로 감독은 승주를 통해 겉이 아닌 알맹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가짜 신부 역할을 하는 아디나(아디나 바잔)를 통해 비춘다. 카자흐스탄에서 주목받는 양궁선수였지만, 아픈 엄마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그녀는 자신의 꿈처럼 살지 못한다. 어쩌면 아예 마음을 접은 상황. 하지만 가짜 신랑인 승주와 연을 맺으면서 잊고 지냈던 꿈을 되살린다. 지금은 자신이 그리던 삶과 다른 가짜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간 진짜인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품게 된다. 가짜 신랑이지만 승주가 지닌 진심이 가닿아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 변화는 아디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너무나 착하고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이 결혼식이 진짜라고 생각하며 승주와 아디나를 축복한다. 그리고 결혼식에 참여해 행복하게 살라는 말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흥겹게 춤을 춘다. 그 순간 이 결혼식은 진짜가 되고, 승주의 진심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결국 진심이 이들을 엮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야기 자체는 허술하다. 다큐를 완성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승주는 매번 난관에 봉착하지만, 고민에 비해 쉽게 해결된다. 승주와 아디나의 감정 교류도 미흡하고, 난데없이 등장하는 멧돼지 사냥 장면은 실소를 머금게 한다. 하지만 큰 고민 없이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감사하며, 친한 사람들과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처럼, 관객 또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이 분위기에 동화된다.
이주승, 구성환 콤비는 영화의 분위기를 전하는 안내자를 자처하는데, 이주승은 극의 중심을 잘 잡아나가고, 구성환은 마을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쉬는 모습만으로 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힐링 되는 카자흐스탄의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의 표정은 이내 마음을 정화시키며, 전통 음식과 결혼 풍습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극 중 승주가 가짜 결혼식을 하기 위해 선택한 카자흐스탄 이름은 다우렌이다. 이 의미는 바로 ‘행복한 시간’. 이토록 무해하고도 진실된 자작극을 따라가다 보면 단어 그대로 행복한 시간을 마주할 것이다.
사진 제공: ㈜트리플픽쳐스
평점: 2.5 / 3.0
한줄평: 이토록 무해하고도 진실된 자작극
-
- 영화 <더 웨일(2022)> 리뷰
※ 스포일러 주의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을 무척이나 따르는 8살 딸을 버리고 집을 떠난다. 그가 매정한 선택을 한 이유는 바로 단 하나, 연인이다. 자신이 가르쳤던 독실한 남학생. 그리고 시간이 흘러 8살 소녀는 장래 문제가 코앞에 닥친 청년이 되었고, 연인을 잃은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느리게 자살을 시도해 온 남자는 자문한다. 내가 이 삶에서 잘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영화 <더 웨일(2022)>은 <블랙 스완(2010)>, <재키(2016)> 등으로 이름을 알린 대런 애로노프스키 신작이다. 감독은 찰리(브렌든 프레이저)의 마지막 일주일을 조망하며 한 인간의 지극히 다면적인 면모를 스크린에 담아내며, 주인공이 역시나 입체적인 주변 인물과 맞물리고 부딪히는 장면을 통해, 끝끝내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약 120분에 걸쳐 풀어낸다.
연극을 원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카메라는 주인공 찰리의 집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간이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배경이 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잘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찰리는 멈춰있는 사람이다. 연인이 죽은 이후로 그의 시공간과 감정, 기억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아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찰리는 감히 죽은 연인 앨런 그랜트의 방을 정리하지 못하고 보존하며, 온라인 강사로 근무하고 배달음식을 시키면서까지 집을 떠나지 못하고, 폭식을 통해 스스로를 학대한다. 심지어 딸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그가 기억하는 딸 엘리(세이디 싱크)의 집은 이미 몇 년 전에 이사를 간 과거의 장소이다. 게다가 그는 울혈성심부전으로 어려움을 겪는 초고도비만환자로 설정되어, 혼자서 이동하는 것조차 어렵고, 큰 웃음을 내는 것조차 힘들어 능동적인 변화를 자아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하니 그는 늘 실내에 머문다.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다. 가장 내밀한 심장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삶이 면면히 이어져 오던 어느 월요일 찰리는 선교사 토마스(타이 심킨스)를 만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연히 밖에서 찾아온 손님은 그의 기억을 들쑤시고, 고통을 나눈 친구이자 전담 간호사이기도 한 리즈(홍 차우)는 찰리에게 허락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는 고통스럽다. 낙담에 빠져 긴긴 세월을 보낸 탓에 그의 시야는 오로지 절망만 포착할 줄 안다. 찰리는 이혼 후 받아들였던 접근 금지 제약을 어기고 엘리에게 연락한다. 언뜻 보면 마지막 순간을 앞둔 아버지의 부성애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사실은 아니다. 그는 세계로부터 확인받고 싶었다. 자신이 이번 생에서 잘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엘리를 만났을 때 찰리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잘못된 선택을 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딸의 근황조차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찰리는 엘리가 세계를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만난 이후에 간신히 알게 되는데, 그럼에도 아버지는 상호 관계의 회복을 추구하고자 자신을 먼저 내려놓는 시도를 하기보단 거래를 선택한다. 찰리는 이렇게 제안한다. 자신과 함께 있어 달라고, 그렇게 하면 돈을 주거나, 과제를 대신해주겠다고. 전 부인이었던 메리(서맨사 모턴)가 찰리의 장점 중 하나가 낙관주의였다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찰리가 지나치게 큰 희망을 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딸 엘리가, 어릴 적 쓴 모비딕 독후감에서 보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자신은 어쩌면 딸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야속하지 않던가. 찰리가 8여 년 간 변했듯, 엘리 역시 변했다.
물론 찰리의 시간을 아는 관객에겐 그의 선택이 어색하게 보이진 않는다. 찰리는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기엔 시간이 없다. 얼어붙은 현재를 사는 자에겐 과거로 귀환하는 것도, 미래로 나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죽음을 앞두어 평소보다 거동이 어려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딸 엘리는 그러한 속사정을 모른다. 예전엔 아버지를 따랐던 딸은 이미 크게 상처 입었다. 오랜 기간 연락 한 번 없던 아비의 요청은 뻔뻔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엘리는 찰리의 요청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 엘리가 최초에 내밀었던 패는 과제물이 아니었다. 찰리가 옛 추억에 젖어 당장의 거래를 요구했다면, 엘리는 찰리에게 외부 세계로의 물리적 확장을 요구한다. 자신의 두 발로 세계를 버텨낼 것을, 그리하여 끝내 자신에게 걸어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엘리는 찰리에게 분노하면서도 거듭 아버지의 집에 온다. 그를 잠재우고 집의 구석구석을 탐독하며 멈춰있는 찰리의 시간을 본다. 그의 세계에 토마스를 끌어들이기도 하며,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찰리와 토마스를 폭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엘리는 차츰 알아간다. 누군가는 사랑으로 절망에 빠질 수 있음을, 끊어진 애정은 인간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음을, 그저 단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해답이 아닐 수 있음을. 이 모든 과정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상당히 파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엘리는 결국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애정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일조했음을 배운다. 언젠가, 세상을 미워하기보단 모비딕의 인물을 향해 연민을 품었던 소녀가 되돌아온다.
엘리의 변화에 찰리는 화답한다. 그는 두 발로 세상에 선다. 모비딕 에세이를 읽는 딸의 목소리를 듣는다. 변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찰리는 딸에게서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의 삶이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에 확신을 얻으며 스스로를 긍정했다. 원망이나 절망의 시간은 끔찍했더라도 결국은 오늘의 삶, 찬란한 마지막을 위한 삶의 여정 중 일부였다. 그것이 과정의 처절함을 모두 중화시켜주진 않겠으나 영화 말미 쏟아지는 빛처럼 작게나마 위로가 되는 듯하다.
<더 웨일>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너무도 쉽고 편리하게 타인에 대해 말을 늘어놓지만, 실은 타인을 그리 쉽게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너무도 복잡다단하며 그 삶이 촘촘히 쌓이고 연결되어 만들어진 사회는 더더욱 복잡하고 다양하여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세계를 그 누가 감히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영화의 짧은 몇 장면이 더없이 빛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의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 차마 모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앨런을 도운 메리나,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탕아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에 성공한 엘리에게서. 영화 속에서 실현되는 찰나의 완전함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일궈낸 기적적인 한 순간이었다.
찰리는 살아있으라는 생명의 본원적 명령을 거부하고, 삶이라는 운명을 수행하지 않는다. 악명 높은 미국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저축조차 딸을 위한 것이었다며 사용하지 않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딸 앞에서 죽는다. 이것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가를 떠올리다 보면 찰리의 선택은 낭만적 비극의 전형임과 동시에 너무도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소망의 실현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허나 영화는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지속적인 낙담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한 인간이 삶의 의지를 잃은 모습부터 최후의 구원까지 훌륭하게 연기한 연기자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박수를.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
- 영화 <우연과 상상(2021)> 리뷰
-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우연과 상상>을 감상했다. 러닝타임은 두 시간가량이지만 세 개의 옴니버스가 엮인 영화이기에 각 단편은 30-40분쯤 된다. 이것은 각본이 의도적으로 특정 주제만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며, 실제로 영화는 각기 다른 상황의 인물이 ‘우연’ 속에서 ‘상상’하는 모습을 거듭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끊임없이 기대 지평을 배반하는 각본을 통해 관객 역시 영화를 감상하는 도중 여러 상상을 하고, 자신에게 이러한 우연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되기에, 제목 자체가 적지 않은 확장성을 지닌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우연과 상상이란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보편 경험일 테니.앞서 언급했듯 <우연과 상상>은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기묘한 애정 전선을 통해 우연이 낳은 상상을, ‘문은 열어둔 채로’는 앙심을 품은 개인의 상상과 우연이 맞물리며 맞이하게 되는 어떤 파국을, ‘다시 한번’에서는 우연과 상상이 동시 결합하여 빚어낸 가슴 아린 재회를 그린다. 모든 에피소드는 단절되어 있으나 대다수의 장면이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선 분명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특별한 액션이나 빠른 화면 전환조차 없어 단조로워지기 쉬운 세 개의 단편에 감독은 121분 동안 ‘우연’과 ‘상상’을 예상치 못한 곳에 배치함으로써 매번 새로운 활력과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이 솜씨가 정말이지 굉장하다. 상영관에서 다른 관객과 웃음과 탄식을 공유하는 건 참 오랜만이었지 않았나, 생각했을 만큼.※ 이하 스포일러 주의세 에피소드각 에피소드의 플롯을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우연히 태어난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츠구미(현리)는 업무를 통해 친해진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에게 최근 만난 한 남자,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에 대해 말한다. 그는 아직도 2년 전 헤어진 전 여자 친구를 떠올릴 만큼 순정이 깊은 사람이기도 하다. 소중했던 순간을 말하는 츠구미의 이야기가 너무도 따뜻한 탓에 그와 카즈아키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지는 즈음, 영화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카즈아키의 전 여자 친구가 바로 메이코라는 사실이다.두 번째 이야기인 ‘문은 열어둔 채로’ 역시 첫 번째 에피소드처럼 세 사람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취업이 예정되었던 사사키(카이 쇼마)는 교수 세가와(시부카와 키요히코)가 재학 중 취업자에 대한 특례 인정을 해주지 않아 유급생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어그러진 것에 대해 세가와를 원망하고, 그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자 불륜을 저지르는 파트너이자 늦깎이 대학생인 나오(모리 카츠키)에게 교수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오는 문이 열린 세가와 연구실에서 그의 신작 소설(심사위원조차 노골적인 행위 묘사라며 지적했던 페이지)을 낭독한다. 연구실의 문이 열려있는 동안엔 그 누구도 나오와 세가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나오의 녹음 파일이 타인의 손에 떨어짐에 따라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운명을 겪게 된다.마지막 에피소드인 ‘다시 한번’은 20년 만에 고향을 찾은 나츠코(우라베 후사코)의 이야기다. 동창회에 어울릴만한 타입이 아님에도 그는 그리워하던 친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고향을 찾는다. 허탕을 쳤다고 생각했으나, 우연히 나츠코는 기차역 앞에서 아야(카와이 아오바)를 마주한다. 아야의 집에 초대된 후에야 나츠코는 그가 자신이 찾던 사람(유키)이 아닌 걸 알고, 아야 역시 도쿄로 갔던 다른 동창과 나츠코를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둘의 이야기는 더욱 깊은 곳으로 향한다.우연/상상을 포용하는 인간의 선택우연이란 무엇인가? 하마구치 감독은 "우연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리얼리티”라고 말했다는데, 운명을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인간의 입장에선, 완전한 필연이란 조작된 가상의 세계 – 시나리오 따위 – 에서만 허락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매일같이 발생하는 무수한 사건 중 결국 우리가 ‘기억하기로 선택'하여 우연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일련의 사건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적나라하게 설명하는 무엇이지 않을까.만일 우연을 관계에 기초한 불확실성, 그러니까 타인과 자신이 유관하다는 전제 하에서 발생하는 불확실한 사건들의 연속이라 정의한다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메이코는 우연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메이코는 자꾸만 모르겠다는 말을 거듭한다. 무책임한 발언일지도 모르겠지만, 메이코에게 있어 ‘모르겠다’는 고백은 자신이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다. 그런데 메이코가 츠구미의 이야기를 듣고서 카즈아키를 2년 만에 찾아갔을 때, 관계의 주도권이 옮겨간다. 카즈아키는 분명 헤어진 후에도 메이코를 잊지 못했지만, 최근 관심이 생긴 사람이 그가 아니라면 메이코를 따라가지 말라는 부하직원의 충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에 산재한 우연이 인간에게 운명처럼 다가온다고 생각하지만 우연은 기실 우리가 인지하고 운명이라 받아들이는 순간 발생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근사하게 비유할 수 있을까. 결국 메이코는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홀로 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 그가 찍는 것은 완공되지 않은 거리의 풍경이며 나뭇가지로 막혀 트이지 못한 하늘이다. 메이코는 예기치 않게 진실을 발견하였을지라도 사랑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불확실성을 확언하는 데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메이코이기에 그가 사랑을 인식하는 데에 시간이 소요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순간이 자신만을 위해 적절하게 찾아오지는 않는 법이니, 상실 역시 마땅한 결과물로 받아들여야 하리라.이렇게 우연 자체의 속성을 파고든 이후 등장하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감독은 인과관계가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가 우연이라 적당히 부르는 사건이, 사실은 스스로가 뿌린 씨앗의 결과물이 아닐까 의심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오와 세가와의 이혼/지위 박탈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은 사사키의 비대한 자아(자신은 이보다 더 나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를 접점/시발점으로 하여 파생되었을지라도, 뜯어보면 인물 각자가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사사키는 자신이 프랑스어 강의를 수강하지 않았으며, 나오는 가족이 있음에도 내연관계를 저버리지 않았고, 세가와는 나오에게 녹음파일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나. 그리고 5년 후, 나오와 사사키는 우연히 버스 안에서 만난다.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속성조차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인생에서 필요하다고 말한 세가와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인지 나오는 사사키를 껄끄럽게 대하던 태도를 철회하고 자신의 명함을 건넨 후 세가와와의 관계를 회복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이는 이전보다 성숙한 모습이었으나 사사키는 거부한다. 나오의 손을 빌려 세가와를 응징하는 데에 성공했음에도 사사키는 자기 우월감에 도취된 상태에서 답보하는 셈이다. 이에 나오는 자발적으로 유혹을 선택한다. 그저 한 번의 마주침으로 끝날 수 있었던 긴장은 그리하여 연장되고, 우연이란 인간의 선택으로 인해 동일한 패턴으로 영원 회귀할 수 있음이 암시된다.마지막 에피소드는 '당신은 분명히 내 기억 속 누군가일 것'이라는 믿음이 부른 상상의 부산물이다. 충분히 어색해질 수 있음에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완전히 정립한 중년은 흔들리지 않는다. 서로를 나츠코의 옛 연인/아야의 친구라 상상하며 역할극을 진행함으로써 나츠코는 하지 못한 말을 토해내고, 아야는 자신조차 바라보지 못했던 내면을 이끌어낸다. 마음 깊은 곳의 공허를 메웠다기보다는 공허를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놓은 두 사람은 묘한 연대를 이룩하고, 이는 역 앞에서 헤어지던 순간 아야가 동경했던 20여 년 전 동창의 이름을 나츠코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 아야가 기억해낸 이름이 노조미(소망)이라는 점은 퍽 의미심장하다. 이렇듯 우리는 우연을 통해 후회를 털어내거나 잊었던 꿈을 되찾음으로써 성장할 수도 있는 셈이니,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에게 덤블도어가 건넨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해리,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통해 나타나는 거란다."영화를 본 후, 우리네 일상을 시나리오로 만든다면 이보다 더 엉뚱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촌극에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영화든 현실이든 기대를 배반당하는 지점은 한결같이 우스꽝스럽다. 역시 삶은 원경에서는 비극처럼 보일지언정 가까이에선 희극인 모양이며, <우연과 상상>은 그런 점에 있어 더없이 훌륭한 리얼리즘 영화일 것이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
- help or hurt
핑계 없는 무덤은 없고, 나의 모든 행동에는 늘 이유가 있다.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낙인찍듯 단편적으로 결론 내려질 때 억울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에 올라오는, 짧은 영상이나 몇 줄 글만으로 상대를 쉽게 간파했다 생각하며 낙인찍듯 손쉽게 말한다. 사람은 정말 왜 이럴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내일 되면 뉴스 속 누군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나는 또 왜 이럴까?
영화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는 사랑스럽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다.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를 종합할 때, 그가 과거에 내린 선택이나 행동들이 남긴 상처를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면서도 괜찮다, 미안하다, 말을 달고 있는 그의 측은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진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 몰았을까?
#hurt: 상처받은 마음
극이 진행되면서 조각조각 이어지는 정보들을 통해, 관객은 찰리의 삶을 스친 일들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그가 남긴 상처와 그에게 남은 상처. 너무 사랑한 것들이 소실된 자리에 남은 커다란 상처들. 그 자리는 어쩌면 누군가가 쓰던, 지금은 텅 비어버린 방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찰리로서는 들어갈 수도 없는 방.
찰리는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저렇게 먹으면 없던 병도 생기겠는데…’ 싶은 음식을 욱욱거리며 밀어 넣은 끝에 그가 토해내는 것은 눈물이다. 눈물을 토하기 위해 음식을 토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눈물도 토해내기 어려운 마음이란 무엇일까.
그 안에서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했던 찰리는 이제 잔뜩 지친 고래처럼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그 자리에서 그가 꺼낸 카드는 뜻밖에도 딸이다. 상처를 주었던 존재이자, 이제 상처를 되돌려 받으면서도 바라보는 존재.
#help: 도움의 손길
이 극에는 찰리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친구 리즈는 찰리의 필요를 살피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함께 있다. 찰리의 서사를 공유하고 있고, 찰리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는다. 찰리의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 뻔한 음식도 사다 준다. 이대로는 찰리의 죽음이 가까워져 온다는 걸 감지하지만, 찰리의 방향성을 바꾸려 하진 않는다. 리즈는 인간이 결코 서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믿으니까.
반면 토마스는 자신이 보기에 찰리에게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 즉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따금 찰리를 찾아온다. 찰리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알고 난 후로 오히려 찰리에게 더욱 접근하며, 찰리의 방향성을 바꾸기 위해 애쓴다. 그는 자신이 내미는 손길이 선의의 도움, 도움닫기를 할 수 있도록 내미는 발판 같은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본 도움이 있다면, 메리가 앨런에게 건넸다는 “May I help you?”라는 말에서. 어쩌면 종교인들이 그토록 목 놓아 외치는 복음은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메리에게는 사랑이 있다. 오랜 고통과 절연의 시간 끝에서 상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 자리에 생명이 있다. 이제는 말해도 소용없는 추억들을 굳이 더듬거리면서 듣는 숨소리. 상처와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잠깐 내보이는 그 속살 같은 마음.
그 마음을 찰리도 느꼈는지 모른다. 토마스가 엘리에 대해 말하면서 “날 도우려고 한 건지 아니면 상처 주려고 한 건지help me or hurt me” 모르겠다고 할 때, 그게 도움이었다고 판단한 걸 보면. 결국 상처를 남겼지만 사랑한 대상에게서 미진하나마 포용을 보고, 그는 날아오르는 고래가 된다.
#love, 어쩌면 그것이 사랑
찰리뿐 아니라 이 극 속의 인물들은 제각각의 생채기가 나 있기에,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상처 난 마음에서 배어 나오는 말들은 절반의 진실만을 품고 있다. 사람은 사람의 무게를 온전히 구원할 수 없다는 리즈의 말도 맞지만, 동시에 사람이 사람을 무조건 외면할 수 없다는 찰리의 말도 맞다.
그 안에서 help와 hurt는 어쩌면 한 끗 차이다. 종교적인 행위의 일탈에 대한 토마스의 이중적인 태도에서 help라는 말에 감추어져 있던 hurt를 보아도, help로도 hurt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엘리의 행동을 보아도, hurt의 마음을 품고 있다 생각했지만 실은 괴로워하면서도 help가 우러나왔던 메리의 마음을 보더라도. help와 hurt는 모순적으로 뒤죽박죽이다.
인간과 인간이 솔직한 마음을 부딪는 일은 너무 어렵지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인지 모른다. 솔직하게 마음을 여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의 서사에 귀를 기울이며 포용하는 것. 지저분해진 찰리의 방에 붙어 있는 포스터는 하필 <템페스트>다. 복수 대신 포용과 용서로 화해라는 결말을 이루는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서사를 품고 있다. 찰리가 토마스에게 했던 말처럼, 누구에게나 겉보기로 알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어쩌면 ‘전형적인’ 사람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사는 계시처럼 받아들이면서 타인의 서사를 견디지 못한다면 그들의 help는 hurt밖에 될 수 없으며, 사랑은 전해지지 않고, 구원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솔직할 것. 마음을 열 것. 그것이 모든 처음이다. 그 작은 단추를 풀지 못하면 온 생에 상처가 남고 만다. 고래를 향한 “가엾은 집념”으로 가득한 <모비 딕>의 늙은 선장처럼. 동시에 이는 모든 끝이기도 하다. 남은 상처를 다시 헤아리게 만드는 힘 또한 여기에서 비롯되니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무수하게 변용되고 변주되며 닳고 해진 문장. 우리가 모두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이 문장을, 빛나는 고래 같은 찰리의 순간들을 통해 다시 헤아려 본다. 솔직하게, 열린 마음으로.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
-
-
- 영화 <열아홉> 메인 예고편
그 여름, 비밀이 생겼다.
괴물 같았던 아빠는 집을 떠났고,
엄마마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날
열아홉 ‘소정’은 피를 토한 채 죽어있는 엄마와 마주한다.
엄마의 시신을 욕조에 숨긴 ‘소정’은 음악으로 도피하며
위태로운 홀로서기를 시작하는데…
-
- 영화 <죽을 때까지> 메인 예고편
호화스러운 별장, 다이아몬드 목걸이, 아름다운 장미…
완벽한 결혼기념일을 보낸 엠마와 남편.
다음 날, 사랑하는 남편이 엠마의 눈 앞에서 죽어버린다.
죽은 남편과 단 둘이 별장에 고립된 엠마.
곧이어 정체 모를 괴한까지 들이닥치고
미쳐버릴 정도로 끔찍한 상황이 연속 되는데…
미칠 틈도 혼란스러울 틈도 없다!
지금 당장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