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7-06 20:35:07
[BIFAN 데일리] 진실과 진심 사이에
영화 <다우렌의 결혼>

감독] 임찬익
출연] 이주승, 아디나 바잔(Adina BAZHAN), 구성환, 조하석 등
프로그램 노트] 다큐멘터리 조연출 승주는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 꿈이지만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도 역시 조연출 신세로 고려인 결혼식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승주. 그러나 감독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예정된 촬영을 하지 못하고 제작비만 날리고 만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면 승주의 연출 입봉작을 제작하겠다는 대표의 말에 승주는 가짜 결혼식 촬영을 계획한다.
목표가 간절할수록 처해 있는 현실은 더욱 괴롭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유혹에 쉽게 빠지기 마련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이룬 목표는 달콤하기보다는 쓰디쓸 뿐이다. 자명한 인생의 진리를 전하는 이 작품은 카자흐스탄의 아름다운 풍광과 이에 어우러진 배우들의 따뜻한 연기로 그 메시지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승주가 가짜 결혼을 위해 선택한 카자흐스탄 이름 ‘다우렌’의 진정한 의미가 빛을 발하는 결말에 이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정엽)
선혈이 낭자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스크린 중에도 이따금, 부드러운 초록빛이 스크린을 메울 때가 있다. 좀비를 비롯한 이생명체의 공격, 디스토피아의 살벌한 세계관, 고어나 호러 영화를 전혀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자주 찾는 이유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라면 <다우렌의 결혼>이 꽤나 반가울 것이다. 이 영화는 처참한 장면 대신 말갛고 순한 장면으로 마음을 두드리니까.
일상을 군더더기 없이 연기하며 감탄을 자아내는 배우 이주승은 여기서도 적당한 피로와 타협으로 점철한 현대인의 얼굴로 포문을 연다. 난민촌을 담은 다큐멘터리라면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 보호 차원에서 이름을 적당히 가명 처리하고 가명임을 밝혀도 될 것 같은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조연출 승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책상 앞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대로 고민하며, 열심히 일상을 채운다.
꿈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분명 입봉이라는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데, 어쩐지 자꾸 꼬이고 박살나고 멀어지기만 하는 느낌으로 승주는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을 걷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이방인에게 기꺼이 자리와 음식을 내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얼굴만은 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실 고려음식 열전이었던가 싶어질 만큼 멋진 식탁 장면들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에도, 승주만큼은 뚱한 표정이다.

마을 잔치를 결혼식처럼 둔갑시키는 것도, 거짓 결혼식을 만드는 것도, 그는 내켜 하지 않는다. 진짜가 아니니까. 다큐는 진짜를 찍는 작업이니까. 그러나 도저히 물러설 길이 없다 싶자, 그는 결국 가짜 결혼식을 결정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결혼식이라고 믿는다면, 그럼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에 적당히 물러선다. 어쩌면 승주가 이 영화에서 처하는 갈등은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더 정확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인가 사실인가" 하는 질문과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진짜'라는 말의 범위를 가늠하며 영화를 보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는 때로는 진실, 때로는 사실의 의미로 통용되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혹은 진실과 사실에 대한 깊은 고뇌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다. 대신 진짜라는 말의 경계를 슬며시 녹이고 넓힌다.

순한 마음은 진짜다
샤슬릭을 굽는, 그러니까 음식을 만드는 연기와 냄새를 피우면서 결혼식 소식을 알린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 결혼식 소식을 전하고, 어쩌다 마주친 승주의 카자흐스탄 이름 '다우렌'을 연신 부르며 환한 미소로 축하를 건넨다. 그 입소문과 축하의 장면들은 하나 같이 순하기만 해서, 보는 내내 참 좋았다. GV에서 들으니 실제 마을 이장님도 그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던데, 촬영에 열려 있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게 드러난 모양이다.
상대와 나의 관계성이나 거기서 얻게 될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누군가의 행복에 마냥 기뻐하는 마음. 물론 거기에는 아디나가 그 동안 마을에서 쌓아 온 덕망이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그냥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합을 어여삐 여겨 주는 마음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그 순한 마음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다.

같이 옮긴 걸음은 진짜다
가짜 결혼으로 시작했지만 아디나와 승주 일행은 점차로 가까워진다. 기분 좋은 날, 바람 좋은 날 함께 둘러앉아 좋은 음식을 같이 먹고, 같이 걸어다니고, 같이 웃는다. 이러한 과정이 단순히 연인으로서의 과정으로 그려졌다면 이 영화를 굳이 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영화는 그런 진부한 멜로 서사 쪽으로는 힘을 주지 않았다.
가짜 연인 행세를 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애정이 꽃피는 드라마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으며, 심지어 가짜 결혼이라니 얼마나 올드한 틀인가. 이 영화에서 결혼이라는 틀은, 서로를 종속하는 폐쇄적 로맨스가 아닌 순한 동화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기능한다. 멜로 드라마라기엔 개연성이 흐릿하다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디나와 승주 각자의 걸음이 모였다 흩어지는 또 모이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으니까. 다소 거짓말 같은 엔딩도 그럭저럭 납득하게 되는 건, 그래 세상에 이런 이야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지기 때문이다.

마주본 눈은 진짜다
누군가의 방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의 꿈과 소원을 보는 것과 같다. 거기까지 보았다는 것은 상당히 가까운 관계일 때만 가능한 일이다. 순한 마음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같이 걷고, 그의 마음 한 자락을 엿보고, 그의 눈 속에서 자신과 같은 면까지 보고 나면, 이제 그 두 사람은 먼 사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상대에게 턱 튀어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상대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다우렌' 승주와 아디나가 서로를 보고 자신을 본 것처럼, 이 영화를 본 나도 다시 나를 본다. 푸른 갈치를 생각하면서. 나의 '진짜'는 어디에 있는지, 혹시 어디 그물에 걸려 빠르게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영화에서 '진짜'를 느끼게 한 것들은 모두 그저 진심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담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지만, 연출자 따로 감독 따로인 상황에, 아예 가짜 상황을 연출해 담는 상황조차 "다큐도 연출이라니까!" 하는 말에 어영부영 묻히는 상황에서, 그 말은 자꾸 삐그덕거리고 어긋나기만 한다. 대신 이 영화 내내 오롯이 빛나는 것은 진심이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욕심이 없어 희여졌"고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으며,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한 존재들처럼 조용히 새하얀 진심.
백석을 생각하니 더더욱, 이 영화의 배경에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1937년 척박하게 얼어붙은 땅에 대뜸 던져졌으나,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들. 거기서도 국수를 말고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 이 세월 다 가고도 그 마음은 그대로여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는 사람들. 어쩌면 이 영화에 묻어난 진심은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푸른 산과 너른 초원에 곱게 펼쳐진 이들의 톡톡한 존재감을 극장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17:00-18:23 CGV소풍 8관 (상영코드 431)
7월 5일 16:30-17:53 CGV소풍 4관 (상영코드 724)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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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의 괴물을 마주한 아이들
여기 한 한부모 가정이 있다. 엄마는 아들이 느낄지 모르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고자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아들은 점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인지 점점 파악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한 터널에서 발견이 되질 않나, 학교에서 선생님과 나눴던 이해 못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조합해 보니 아들이 담임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 학교에 항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학교의 대응은 무성의하기 그지없다. 사과는 하는데, 눈에 영혼들이 없다. 절차 상 필요한 행동만 하고 사건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과정에서 담임에게서 아들이 왕따를 주동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전하는데........ 이 일의 진위는 무엇인 걸까? 내 아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엄마는 혼란을 감출 수 없다.
1. 3가지 시점이 존재하는 영화
영화는 주인공이 두 명이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두 명의 시점에서만 진행되진 않는다. 미나토의 엄마, 미나토의 담임 두 사람의 시점도 함께 보여준다. 이 세 가지 시점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본 것만 믿으면서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소문을 창조해내는 한없이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1-1. 아이들의 시점
한 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미나토와 요리, 두 친구는 멀리서 보면 그리 친해 보이진 않는다. 표면적인 교실의 풍경 속에서 요리는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미나토는 그 왕따를 관망하는 쪽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이 둘이 정말 영혼의 단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어른들이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거라고 몰아갈 수는 없다. 어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아이들이 굉장히 잘 숨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들이 잘 못 생각하는 지점 중에 하나가 초등학생들의 심리 정도는 어른들이 가뿐히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틀렸다. 아이들도 집단으로 뭉치게 되면 그 어린 영혼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존재하게 되고, 집단 논리라는 것이 생긴다. 요기는 그 집단의 논리에 적응을 못해 남자 아이들의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였고, 미나토는 집단의 논리에는 순응하는 듯 했지만 사실은 반감이 있었던 아이였던 것이다. 이 두 지점이 통했던 아이들은 수업 시간이 끝나면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가 힐링의 시간들을 보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별해야 할 시점이 오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이 그저 우정이 아니라 그 너머의 있는 감정임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감정은 어린 초등학생이 느끼기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1-2. 담임
담임은 표면적인 잘못은 한 적이 없지만 아이들 사이에 어떤 논리가 형성되어 있는지부터 학생들의 개개인적인 특성을 잘 알지 못했다. 표면적인 평화를 지키는 데에 급급했을 뿐이다. 그는 학교폭력을 저지르거나 세상의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은 한 적이 없지만 아이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아이들이 숨긴 메세지가 불러온 나비효과에 직격탄을 맞은 것 뿐이다. 요리와 미나토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아이들이었지만 끊임없이 선생님에게 표현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혼란한 감정들을 말이다. 조금만 관심있게 지켜봤었다면 이 아이들이 겉으로는 친해 보이지 않아도 아주 깊은 공감대가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이성애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이기에 설마 이 어린 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 지점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3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
사오리는 아들의 상처를 보고 폭력을 당했다고 1차원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곧장 학교를 달려가 항의를 하는데, 점점 미나토가 이상한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라는 둥, "아빠는 다시 태어났을까" 등등 엄마로서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말들을 한다. 정상적인 엄마라면 사오리의 행동이 정당했겠지만 미나토가 엄마에게조차 자신의 동성애 기질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사오리는 과연 자신의 아들을 잘 알고 있었던 걸까 의심하게 된다. 모든 엄마들은 자식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사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이들은 엄마라는 친근함을 느끼는 존재에게마저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모습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철저히 숨긴다. 나는 내 아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며, 그 오만으로 사오리는 자신의 아들이 명백히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갖혀 한 교사를 폭력 교사로 몰아가기에 이른다.
2.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돌아왔다.
일본이 사회적 이슈들을 소재로 삼아 영화화 해왔던 감독인 만큼 이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도 이지메라는 일본 사회의 왕따를 앞세워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진짜 키워드는 동성애이다. 그것도 어린 아이들이 느끼는 동성애, 그리고 그 혼란한 감정을 숨기는 과정에 있어서 어린 아이들의 서툰 모습들이 어른들의 삶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그런 이야기이다. 영화가 처음부터 잔잔한 파도처럼 시작되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몰아치기 시작한다. 잔잔한 과격함이 있다라고나 할까. 분명히 자극적인 내용이기는 한데, 모든 인간군상에 대한 이해를 하게 만든다. 그게 고레에다 감독의 장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분명 선악이 명확하지 않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만든다. 이건 범죄자를 미화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저 사람이라는 존재가 다 그런거지 하면서 씁쓸한 인정을 하게 만든달까.
3. 괴물이라는 제목
영화는 요리보다는 미나토의 관점이 주된 영화적 시점인데, 요리 캐릭터도 흥미로운 것이 미나토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는데, 요리는 마치 이전부터 자신의 그런 성향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온다. 아들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요리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괴물 취급을 하고, 그렇게 괴물 취급을 당하면서도 요리는 특유의 해맑음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리의 그런 해맑음이 어린 아이가 경험하기엔 너무 가혹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느끼게 한다.
그래서 괴물이라는 영화 제목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보니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닫는 분들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하다가 사회에 안정적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자책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때로는 외계인 같기도, 때로는 괴물 같이 느껴지는 것일까. 미나토도 언젠가 자신이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자신의 엄마 앞에서 자신의 아빠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그 모습에서 자신이 세상과는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세상에 융화되지 못하는 자신은 괴물이거나 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돼지의 뇌니 뭐니 하는 대사가 나오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니 그저 안쓰러울 수 밖에 없었다.
4. 결말에 대한 의문
영화는 과연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빗속에서 실종된 아이들을 담임과 사오리가 찾아냈다는 장면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상에서 두 아이들은 비가 그친 뒤의 들판을 해맑게 뛰어나간다. 이것은 아이들이 나온 곳이 진짜 세상인 건지, 그들의 죽음 이후의 세상인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상태가 어떤 것이든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안식을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에 미나토가 교장 선생과 부는 불협화음 색소폰이 그 증거일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면 그저 힘껏 색소폰을 불어보라는 교장의 말에 희미하게 웃는 미나토의 밝은 웃음을 믿어보고 싶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돌파구를 찾은 거라고.
아, 그리고 담임이 궁지에 몰려 난간에 서있을 때 그 불협화음 색소폰이 울려퍼지는데, 보면서도 이 기괴한 음악은 뭘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미나토의 일종의 절규였음을 알게 되자, 감독의 연출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의 모호하지만 처절한 외침을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곱씹을수록 슬프면서도 선생님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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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데믹 시대, 모두를 위한 음악 선물 <씽2게더>
2022년 새해를 활짝 열어준, 올해 첫 애니메이션 <씽2게더>를 만나고 왔다.
<씽2게더>는 지난 2016년 개봉해 국내 17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애니메이션’이라는 수식어에 완전히 자리 잡았던 <씽>의 6년만의 속편이며 전편 개봉 당시 매튜 맥커너히, 리즈 위더스푼, 스칼렛 조핸슨, 태런 에저튼 등 화려한 성우진으로 팬층을 두텁게 쌓았었다. 이번 <씽2게더>는 1편의 오리지널 성우진에 더해 가수 퍼렐 윌리엄스와 할시까지 합세하며 최강 성우진 군단을 한층 더 단단하게 구축했다. 이번 <씽2게더>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아낌없이 활용을 잘한 작품이다. ‘노래’와 ‘춤’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다채로운 방면으로 승화시키는데, 우리가 흔히 뮤지컬에서 보던 세트와 의상, 특수효과, 무대 장치들에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있는 힘껏 녹였다. 각 캐릭터마다의 설정과 사운드트랙에 맞게 그래픽 효과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더욱더 영화의 즐거움을 한층 높여준 느낌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도시 ‘레드쇼어 시티’에 대한 표현도 정말 센스있다. 가지각색의 건물들과 네온사인, 아기자기한 도심 속 풍경들의 포인트들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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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2게더>는 ‘무한한 즐거움’이라는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자신 있게 설득한다. 고로 애니메이션의 ‘비현실적’이라는 의문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개인적으로는 소소하게 드러내는 단점들을 덮을만한 장점 요소들이 더 많은 작품이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에 ‘질주’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질주하는 즐거움’이라는 표현이 정말 알맞다. 눈과 귀가 꽉 차다 못해 벅찰 정도로 신나고, 유쾌하고, 흥겹다. 아무래도 <씽> 시리즈의 장점은 그동안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들을 다시 재해석한다는 점인데, 1편의 케이티 페리, 샘 스미스, 테일러 스위프트, 존 레전드, 엘튼 존의 노래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빌리 아일리시, 아델, 숀 맨데스, 콜드플레이 등 다채로운 팝스타들의 노래로 꽉 채워졌다. 평소 팝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노래가 어떤 식으로 재탄생했을지 눈 여겨 봐도 좋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씽2>에서 ‘Gather’이라는 단어가 붙어 <Sing Together>가 되었다. 전 세계적인 펜데믹 시대에 함께 모여 노래한다는 것, 함께 열기를 느낀다는 것에 의미와 그리움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씽2게더>는 ‘공연’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펜데믹 시대에 선물과도 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이제는 ‘음악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씽> 시리즈의 활약을 계속해서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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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13구, Les Olympiads (2021)
자크 오디아르 감독
“사랑이든 인생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화를 내든 울든 너의 틀을 벗어나서 비로소 찾게 되는 너의 자리가 좋은 거야.”
회색 빛의 집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뿜어낸다. 그 안에는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있을까?
에밀리와 카미유.
이 영화의 제목은 파리 외곽 비즈니스 지구인 라데팡스(La Défense)와 비슷한, 파리 외곽 주거 지역인 13구 (13th arrondissement) 를 뜻한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파리 13구의 에스플러네이드, 영화의 주인공인 중국계 프랑스인 에밀리가 거주하고 일하는 차이나 타운도 있다고 써있다.
영화의 시작은 수많은 집들을 보여준다. 입체적인 사각 면체 안의 수많은 방들, 쓸쓸한 집들에게서 번져 나오는 외로움들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저 시간만 흐를 것 같은 공간들 속에서, 구슬픈 목소리로 중국어 노래를 부르는 에밀리의 나체가 눈에 들어온다. 에밀리와 카미유는 룸메이트로 만났고, 처음 만난 날부터 즉각적인 육체 관계를 가진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학교 선생일을 하는 카미유는 일에서의 스트레스는 ‘격렬한 섹스’로 풀어낸다고 에밀리에게 말한다. 파리 정치 대학을 졸업하고도 OTT 스트리밍 멤버십 가입을 권유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에밀리는, 사실은 어딘가 조금 부서져 있고, 사랑과 자유 – 가족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꿈꾸는 여자다.
그녀는 섹스를 할 때만,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그녀에게 그것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행위인 것 같고, 그녀가 가장 그녀 자신일 수 있는 순간인 듯하다. 그러나 카미유와 에밀리의 관계는, 카미유가 다른 여자친구인 스테파니를 집에 들이면서 틀어진다. 스테파니에게 집세를 내라는 둥, 카미유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둥 하며 이간질을 하던 에밀리는, 카미유에게 화가 난 감정을 주체 못하고 일할 때 그것을 풀어내고 만다. 성적인 뉘앙스로 고객 응대를 했다는 것을 빌미로 회사에서 잘리고 만 에밀리. 설상 가상 카미유도 집을 나가 버려 그녀에게는 수입원이 사라진다. 그렇게 에밀리에게는 ‘어쩌면 필요했을지도 모를’ 변화의 시기가 찾아온다.
다음으로 등장한 엠버 스위트. 그녀는 화상 채팅으로 자신의 ‘성’을 팔고 있다. 동시에 30대 초반에 법대생으로 파리에 온 노라가 등장한다.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 하고 홀로 서기를 하기 위해 대학의 문을 두드린 그녀는 그러나, 신입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참석한 파티장에서 쓴 금발 가발 때문에, 포르노 모델인 엠버 스위트와 동일 인물로 오해를 받고 만다.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공공연히 그녀에게 야유를 보내고, 그녀는 휴학한 뒤 원래 했던 일인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자 카미유가 친구 대신 운영하던 사무실에서 그와 처음 만난다.
여자를 좋아하는 카미유가 능력있고 매력적인 노라를 그냥 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에밀리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는 카미유의 문자에, 가능한 한 모든 욕을 섞어서 답변하는 에밀리. 그와 만나는 자리에서도 뻔뻔하게만 구는 그녀. 하지만 카미유는 그녀에게 노라와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에밀리 또한 새 직장인 중국 레스토랑의 동료 웨이트리스들에게 알아낸, 데이트 매칭 앱에서 만난 남자들과의 잠자리 이야기를 한다. 업무 시간에도 잠시 집에 가서 그 행위를 하고 돌아오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워 보인다.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의 유산인 집에서, 카미유라는 룸메이트가 없이 살았던 에밀리는 일과 집에 눌려 박제된 사람처럼 매일을 살던 그런 여자였다. 카미유와의 일들이 없었다면, 그런 자신의 인생에 화를 내는 일도, 섹스에 눈뜨는 일도, 사랑을 찾으려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데. 노라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야유를 당한 노라는 직접 자신과 닮았다는 포르노배우 엠버 스위트와 유료 채팅을 시작한다. 그녀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노라, 야동 사이트에서조차 정직하게 자신의 본명을 쓰는 노라에게 엠버 스위트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털어놓고, 둘은 개인 스카이프 계정을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로 발전한다. 노라는 또, 카미유와 정기적인 성관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인 고객의 통역을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 에밀리를 보고, 노라는 깨닫는다. 카미유에게 필요한 그녀는 노라 자신이 아니라는 걸.마음이 헛헛하고 추울 때, 매일이 그냥 어제와 같을 때, 나를 둘러싼 것들이 답답해 견딜 수 없을 때, 그럴 때. 섹스는 그저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할 수 있는 행위일 뿐일 때. 다들 어딘가의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지만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것 또한, 큰 용기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이 셋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그게
‘일’ 외에 ‘사랑’이라면, 방법이 섹스만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포스터 카피가 인상적이다. 서울도 파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미디어가 발달한 만큼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온라인/오프라인 구분이 명확하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는 건, 내가 서울을 난 10년 전보다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오랜만에 들른 서울에서 이 영화를 보며 감명 깊었던 것은, ‘아직 포기를 모르는’ 에밀리의 절제 없는 매력. 어디로 튈 줄 모르지만 자기 자신은 명확히 알고 있는 그녀의 당찬 모습이었다. 파리 13구 차이나 타운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가 찾아가는 파리에서의 사랑 이야기. 단조로운 듯 해도 감각적인 Rone 의 음악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영화니까 비로소 가능했던 이야기일까? 나의 관점에서 에밀리와 노라, 엠버와 카미유는 모두 닮아있다. 그저 외로운,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현실에도 수많은 에밀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대부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이 계절이면 좋겠다.
..메마른 감성의 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한 시사회를 바탕으로 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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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호실] 다들 당시에는 모르는 마음들이 있으니까
aftersun(2022)
첫 장면부터 관객에게너 이 영화 좋아하게 될 걸? 너 마음에 박히게 될 걸? 하고 통보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어떤 영화는 러닝타임을 따라갈 수록 그 감동이, 여운이, 감정이 올라오게 한다.
애프터썬은 완벽히 후자의 경우를 따른다.
사실 영화가 시작된 이후로 큰 감동이나 감정이 찾아오지는 않았는데 영화의 중반부에 다다르자 아, 이 영화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가 느껴지고 후반부에 이르면 음악의 힘을 받아 성인이 된 소피의 마음을 따라가게 된다.
이렇게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에 사운드트랙이 큰 역할을 했다. 모든 사운드트랙이 다 좋았다! 삽입된 씬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도 정말 좋았음. 영어가사에 익숙했던 곡들이 한글 자막으로 스크린에 비춰지고 그 글자들이 화면과 어우러지면서 단순히 화면만 존재할 때보다 감정이 더 큰 파도로 찾아오는거야. 특히 Queen, David bowie의 under pressure.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걸 알지만 모국어인 한글로 가사를 읽을 때 느껴지는 직관적인 느낌을 크게 받을 수 있었다고 해야하나. 영화 보고 집 가는 내내 under pressure를 들으며 소피와 칼럼의 불안이 밑에 깔린 행복한 시간을 머릿속에서 돌려보게 되는 그런 사운드트랙이었다 이 음악 때문에 영화가 더욱 좋아지는 그런.
사실 친절한 영화는 아니고 계속 영화에 집중해서 따라가고 또 생각해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그 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건 한 시간 반 동안 쌓아온 소피, 칼럼의 이야기와 감정을 마지막 10분 동안 관객들이 마음에서 같이 열어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제 막 커가면서 새로운 것들을 궁금해하고 경험하는 소피. 소피가 이제 막 해가는 것들을 이미 다 해보고 잠깐 흔들리는 중인 칼럼.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두 명의 여행이 아름답고 행복해보였다.
캠코더로 계속해서 아빠의 모습을 담으려 하던 소피는 열한살에는 몰랐겠지 아빠가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성인이 되어 그 영상을 재생해 이미 눈으로 봤던 광경을 다시 한 번 보면서는 그제서야 칼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다들 당시에는 모르는 마음들이 있으니까
그 마음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더 과거를 재생해 보면 또 새롭게 칼럼과 떠났던 튀르기예 여행을, 칼럼을 생각할 수 있겠지. 여운을 깊게 주는 영화 참 좋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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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에게 배우는 삶의 태도
다니는 회사를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한 지 몇 년 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소위 말하는 안정된 대기업, 연차에 맞는 괜찮은 연봉, 그리고 내가 늘 사랑해 왔던 PD라는 직업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나의 일터.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선배가 되면서,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회사가 원하는 업무 사이에는 점점 거리가 생기고 있었다. 일이 더이상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해온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반짝 반짝 빛나는, 젊고 열정 넘치는 20대들의 도전을 보며, 부러웠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보아야 할 아이가 둘이고, 무엇보다 체력도 떨어졌다. 핑계도 가지 가지 였다.
‘이건 정말 아닌데…’ 하는 마음과 ‘ 이만한 회사가 없지’ 라는 마음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보내기를 몇 년이 흘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과 답답함이 목까지 차 올랐을 때, 안온한 직장생활에서 다시 야생의 세계도 나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도전하라고 용기를 준 것은 뜻밖에도 영화 <루카>였다.
루카는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해안 마을 포르토로소의 바닷속에서 사는 어린 바다괴물로, 양떼를 지키는 양치기 처럼 물고기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물고기들이 달아나자 바다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고기들을 찾아 모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바다 밖 세상의 인간의 물건인 시계와 카드 같은 것을 줍게 된다. 곧이어 인간들의 모터보트를 발견한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루카는 보트가 어디에서 오는 지 할머니와 부모님께 물어보는데...할머니께서 물 위의 육지괴물 마을에서 온다고 말하고, 엄마는 "호기심 많은 물고기는 잡혀!" 하고 말하고, 육지 근처는 가지 말라고 한다. 루카는 다시 일을 하러 간다.
호기심 많은 루카는좀 전에 시계와 타로카드를 주운 그 곳 주변에서 축음기를 발견하고 신기해하는데 그 사이에 잠수복을 입고 작살을 든 누군가가 루카의 뒤에서 나타나 "내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고, 루카는 도망가지만 막다른 동굴에 갇혀 도망칠 수 없게 된다. 잠수복을 벗어 보인 것은 육지괴물이 아닌, 루카와 같은 바다괴물인 알베르토였다. 자신이 어제 고기잡이 배에서 훔쳐낸 물건을 다시 가져가기 위해 왔던 알베르토는 축음기뿐만 아니라 루카의 지팡이까지 가져가 버렸고, 루카는 알베르토를 따라가는데, 알베르토는 그대로 바다 밖으로 나가고, 지팡이를 이용하여 루카까지 육지로 끌어 올린다.
지상에 올라오자 인간과 똑같이 변해버린 루카는 겁에 질린채로 비명을 지르지만 알베르토가 루카를 진정시키고, 곧 주위를 둘러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높은 하늘. 바닷속과는 다른 풍경에 잠시 넋을 잃은 듯 감탄하지만, 이내 육지로 올라가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을 떠올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시작 부분을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물속 세상을 한번도 나가 보지 않은 루카가 알베르토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가게 되었을 때, 타인에 의해서지만, 이제까지 자신이 알지 못했던 능력을 알게 된다.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 ! 나가보기 전엔 알지 못했던 능력은 자신을 둘러싼 안전한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만 발현 되는 것이었다. 나가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게 아닐까.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육지위로 올라 가면 바다괴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이 되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타인에 의해서 끄집어 내어지는게 아닌 스스로(!) 자신의 힘과 의지로 바다 밖 세상을 나가기엔 두려움이 가득한 루카의 표정에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어서 나가. 다른 세상으로 발을 내딛어. 그 곳이 바다 속 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하게 될꺼야.’ 루카가 스스로 바다 밖으로 나오는 그 짧은 순간의 장면에 나는 마음을 다해 외쳤다. 그 것은 어쩌면 나에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다 밖 세상으로 나온 루카는 물에 닿으면 바로 본 모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바다 괴물을 사냥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잦은 불안감과 위기를 겪지만, 새로운 세상의 법칙을 익히고 , 친구를 사귀고, 적도 만난다. 그리고 루카도, 바다 밖 세상 사람들도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성장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성장 영화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 말자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우자고 말하고 있다. 이 성장의 서사의 사운데 내가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것은 ,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루카의 태도였다.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은 루카를 보며,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닷속에 살던 아이가 바다 밖 세상으로 나오고, 더 넓은 머나먼 하늘의 별과 행성을 보고 배우고 나아가고 싶어하는 루카의 호기심과 열정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인 우리도 살아가는 내내 지녀야 할 마음이 아닐까? 성장은 어린이만 하는게 아니니까. 살아가는 내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지녀야 할 태도를 작은 바다아이 루카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퇴사를 하고 다른 세상으로 한발을 내 딛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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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참혹하고, 가슴 아프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는 오리지널 영화가 아니다. 1929년 소설 원작을 비롯 이미 1930년대와 1979년에 영화화한 작품이고, 이번 2022년에 한 번 더 리메이크화 된 작품이다. 20세기 영화들과 크게 변화된 줄거리 없이 이어지는 플롯과 대비된 더 생동감 있는 미장센이 1차 세계대전 속 참담함과 잔혹함을 부각한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스틸컷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 지방 동북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참호전 중 독일 병사 시선에서 플롯이 진행한다. 서로 죽고 죽이는 이 치열한 참호전의 실태와 현실을 영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고작 몇 백 미터 땅을 진전하고자 백병전과 인해전술을 동원해 몇 백만 명이 희생되는 1차 세계대전 속 참혹함을 너무나도 훌륭한 미장센을 통해 표현한다. 색조 효과는 참호전에 띄는 푸른빛은 전쟁의 차갑고 냉담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경기관총과 수류탄이 쏟아내는 난사로 푸른빛의 전장이 곳곳에서 터지는 갈색 먼지바람과 병사들이 흐르는 피로 붉그스름하게 섞이며 공기가 변화한다. 이 뿐만 아니라 오블리크 샷(oblique shot), 클로즈 업(close up)을 이용해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롱 샷(Long shot)을 통해 격전으로 죽거나 다치는 병사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던가 혹은 전쟁으로 떠들썩한 환경에 맞지 않는 주변 자연경관을 조용히 보여주며, 조용하지만 늘 불안함을 안고 있는 1910년대 풍경을 보여준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가 세 번째 영화화를 할 정도인 이유는 역시 뛰어난 원작의 내용 덕분이다. 참혹한 참호전의 표현, 인간의 윤리 배반, 1분에 1명 꼴로 죽어나가는 전쟁터가 익숙하듯이 사람이 죽는 게 낯설지 않다는 뉘앙스가 강렬한 영화 제목 등이 있다. 특히, 프랑스나 여타 연합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 전쟁 속에서는 서로가 피해자만 되는 꼴인 의미 없는 희생과 불필요한 싸움으로밖에 없는 아픔을 영화 속에서 훌륭하게 표현하기에 원작이 칭송받지 아니한가. 그러나 흑백영화와 당시에는 대단했지만 지금 들어서는 아쉬운 사운드 연출을 이번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에서 완전히 업그레이드하여 더 강렬하게 전쟁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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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두렵지 않아요 테레즈 / 캐롤 명대사 모음 ?????
- BGM Day 7 - Sweet Sorrow
Day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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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은 할 수 없는 DC의 한방
#조커 #스포일러_없는 #리뷰
최신 외국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조커'를 소개합니다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제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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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b.writer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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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떻게든 되는 나날> 예고편
"그런 이유로 첫 키스 상대는 여자애였는데..."
옛 애인 유리의 결혼식에서 만난 '엣짱‘과 '아야',
남학교 교사 '사와‘와 학생 '야가사키',
소꿉친구 '미카‘와 '신짱' 그리고 '사요코'.
여러 가지 사랑의 설렘을 따뜻하게 그리는 옴니버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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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서펀트>
[2021년 4월 2일 넷플릭스 공개]
- 살인자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실제 사건에 기반한 <더 서펀트>는 끊임없이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찰스 소브라즈(골든글로브 후보 타하르 라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를 법정에 세우고자 전력을 다한 이들의 분투 또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