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04 09:44:44
배우 홍경이 사랑한 영화
CINE LOVERS CLUB vol.1
CINE LOVERS CLUB vol.1

개인 인스타그램, 지면 인터뷰 등 다양한 매체에서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배우 홍경이 사랑한 영화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최근 또 다른 소문난 시네필인 장도연 개그우먼과 함께한 웹예능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화제 되기도 했죠.
그래서! 그의 영화 취향이 궁금했던 분들을 위해 준비해 보았습니다!
다만, 언급한 영화들이 워낙 많아 다 적지 못해 아쉬웠는데요.
언젠가 ‘홍경이 사랑한 영화’ 2편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럼 타인이 사랑한 영화를 소개하는
’씨네 러버스 클럽‘은 12월에 다시 돌아올게요!
(혹, 사랑한 영화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인터뷰 출처: 노컷뉴스, 씨네21, 얼루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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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을 낼 시간 - 어떤 여행은 캐리어가 없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어요
평균 나이 약 26살! 전 재산은 98만 원? 우리는 시끌벅적한 여행을 계획했다! 주목받지 못해 은퇴한 아이돌 ‘러브앤리즈’의 수민과 사랑, ‘파이브 갓 차일드’의 태희.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학창 시절에 갈 수 없었던 수학여행을 뒤늦게 떠나 보기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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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티저 예고편
“나도 쿨해질거야 이제!”
3년 동안 지지고 볶은 남자친구 ‘정민’에게 가.짜. 이별 통보를 한 지
30분 만에 한 개의 캐리어와 함께 집에서 쫓겨난 밀.당.실.패 취준생 ‘하늘’.
이별 1일차, 갈 곳 없어 무작정 쳐들어간 친구 ‘봉식’의 옥탑방에서
헤어진 연인과 쿨하게 밀당을 이어보는데…
“내가 하는 건 다 힙해!”
BJ를 하며 번 돈으로 플.렉.스.하며 원룸보다 작은 옥탑방을 명품샵으로 꾸미고
‘마흔 전에 죽기’를 목표로 세운 채 오늘만 사는 자.유.영.혼. 힙스터 ‘봉식’.
썸 1일차, 연애 따윈 필요 없다고 다짐 또 다짐했건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썸남에게 자꾸만 눈이 가는데…
쿨하고 힙한 청춘들의 하이텐션 썸머 로맨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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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레이브 언더 파이어>
최대 규모의 화재 발생! 반드시 막아야 한다!
과거 화재 현장에서 사고로 동료 대원을 잃은 소방 팀장 ‘안드레이’.
아픈 상처가 아물기도 전, 사상 최악의 화재가 발생한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시베리아의 화재 현장 속,
‘안드레이’를 필두로 한 팀이 된 6명의 소방 진압 대원들이 불길로 출동한다.
최악의 산불을 진압하고 화마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살아남을 마지막 기회,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자들!
불길로 뛰어든 영웅들의 마지막 사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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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2021)
개봉일 : 2021.11.18. (한국 기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국내에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가장 유명한 감독, 웨스 앤더슨. <개들의 섬> 이후 3년 만에 공개된 그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껏 봐왔던 그의 작품 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공개된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 일러스트와 여러 스틸컷들을 보자마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호텔과 색감이 자연스럽게 연관되어 떠올랐고, 이 영화는 ‘가장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아주 행복할 만큼 착-맞아떨어졌다.
이 두 작품은 외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웨스 앤더슨 감독이 담아낸 작품 속 메시지 또한 서로 닮아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구스타브와 제로의 우정, 오랜 시간 한 장소를 지켜낸 그들의 인생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작품이라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매거진인 ‘프렌치 디스패치’를 운영했던 편집장 아서와 매거진에 글을 기고한 작가들. 즉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글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존중하며 오랜 시간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주간지를 만들어온 편집장 아서와 저명한 필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발행을 앞두고 시작된다. ‘내가 죽으면 매거진도 발행을 중지한다.’라는 아서의 유언을 따라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매거진 또한 죽음(마지막 발행)을 준비하게 된다. 오래 이어져온 길고 긴 매거진의 역사가 끝나는 기념적인 마지막 발행본에 어떤 특종을 실을 것인가. 편집장실에 모인 저널리스트들은 각자의 특종을 이야기하며 고민한다.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
‘웨스 앤더슨스럽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을 전부 다 보지 않고 아주 일부만 봤다 하더라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확 체감이 될 것이다. 이전까진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두 가지만 추천한다면 <로얄 테넌바움>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이야기했는데,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고 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그만큼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스러움’의 끝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감각이 엿보이는 색감과 이야기의 구성과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과 매력 또한 이 영화의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가득 충전한다. 웨스 앤더슨 사단이라고도 불리는 빌 머레이, 애드리언 브로디, 오웬 윌슨, 틸다 스윈튼 배우와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색감에 완벽하게 물든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제프리 라이트 배우 등. 훌륭한 배우들이 웨스 앤더슨 감독이 그린 아름다운 세계를 가득 채운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매거진의 특성을 알맞게 살린 영화로, 각각의 주제를 가진 4개의 챕터로 이뤄진 옴니버스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저널리스트들이 준비한 에세이와 3가지 특종. 그리고 쇠락과 사망에 대한 챕터까지.
사건들 사이에 연관성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을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부분이 더 큰 장점으로 와닿았다. 필진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색다른 세상 이야기를 보며 여러 세계를 한곳에서 만나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모든 이야기가 매력적이었고, 하나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아.. 저런 미학적 세계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내 시간을 저 세계에 넣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세계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1회차 관람이 아닌 다회 관람을 추천한다. 1회차 관람 때는 초반부에 와르르 쏟아지는 정보량과 수많은 인물들, 눈을 깜빡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요소들로 가득찬 화면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그제서야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무심하게 ‘No Crying’ 던지던 아서 편집장의 작은 행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며 영화의 엔딩을 더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영화에 담긴 색감과 미술 장치들, 컷의 구성, 캐릭터들의 디테일 등을 눈에 담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영감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언제 멈추든 상관없이 모든 순간이 작품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시놉시스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가상의 도시 블라제 다양한 사건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지막 발행본에 실을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신을 매료시킬 마지막 기사가 지금 공개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도시의 성쇠, 희로애락. 모든 것을 함께 한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는 아서의 편집장 부임과 함께 '피크닉' 대신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이 매거진은 아서와 함께 탄생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마지막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여러 이야기를 담은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시작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성장과 함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모아 한곳에 엮어낸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훑어보는 도시 여행기를 시작으로 정신 병동에 갇힌 천재 예술가의 비밀, 이 도시에 오랜 시간 이어져온 공화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겁 없이 커다란 게임을 시작한 청년들의 도전기, 아주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경찰서장의 아들 납치 사건,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도록 매거진을 만들어준 훌륭한 저널리스트 아서의 일대기까지.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은 아서와 이 도시의 일대기이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다.
알고 보면 다정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르는 필진들
세 편의 특종과 부록에 해당하는 도시 에세이 한편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착착 줄 맞춰 지나가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해당 호를 준비하며 필진들의 글을 읽는 아서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무심한 표정으로 'No Crying'을 강조하던 아서의 모습을 보면 다정함 같은 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만큼 따스한 마음을 가진 편집장이 또 없다. 그리고 필진들도 자연스레 아서의 말을 따른다.
아서는 원고의 양이 예상을 훌쩍 웃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고를 쳐내는 대신, 매거진 인쇄에 들어갈 용지의 부수를 늘리는 선택을 하고, 마감을 앞둔 채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 작가를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말없이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크레멘츠 옆에 쌓인 몇 장의 바삭한 토스트, 조심스레 들리던 아서의 노크 소리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의자. 손짓을 한 번 한 후 불편한 기색 없이 타자기를 두드리는 크레멘츠. 다른 기자가 제안한 수정사항은 바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아서의 한마디는 바로 수긍하는 세저랙. 낯선 도시의 차가운 창살 안으로 건네진 입사 지원서와 한 권의 책. 매거진의 발행 중지와 함께 문제없을 만큼 챙겨주라는 보너스에 대한 언급까지. 편견 없이 따뜻한 편집장의 시선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스며있다.
글과 함께한 일생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친구 같은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를 지탱했던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매거진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함께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랐던 훌륭한 작가들. 아서의 죽음을 확인하고 한곳에 모인 작가들은 마지막 기사로 편집장의 부고문을 쓰기로 결정한다. 매거진이 만들어지기 전 그의 삶부터 프렌치 디스패치의 탄생과 편집장으로서의 행보까지. 각자가 보고 느껴온 아서의 이야기가 편집장실 안에 가득 차고, 탁탁-경쾌한 타자기의 소리와 함께 부고문이 조금씩 완성된다.
아서는 평생을 글을 읽고, 모으며 작가들과 함께 살아왔다. 글과 사람을 사랑하던 저널리스트의 죽음은 또 한편의 글이 되어 프렌치 디스패치에 실린다. 아서의 일대기는 발행이 중지된 매거진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를 사랑하던 작가들이 써낸 글 속에서 말이다.
부고문이 실린 마지막 발행본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프렌치 디스패치가 발행되는 저 가상의 도시에 살아봤다면 참 즐거웠을 텐데,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는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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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러영화에는 재미도 있고 슬픈 전설까지 있어
여러분은 어떤 것에 무서워하는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화되면 무섭다. 거의 대부분 현실로 이뤄지는 게 함정이지만 이 공포에 무덤덤함이란 없다. '혹시 누가 화장실 물을 안 내렸으면 어떡하지' 싶으면 간혹 그 더러운 광경을 보게 된다. 비단 시각적인 것으로만 국한 지을 필요는 없다. '이 쯤되면 뭐 하나 잃어버릴 것 같은데' 싶으면 잃어버린다. '돈 다 쓸 것 같아'라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돈이 빠진다.
당연히 우리 모두 다 재미없는 삶을 싫어하기 때문에 혹시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불안장애라는 병으로 발현되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 외로 내 운명이 바뀔까 하는 두려움은 거의 클래식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각자가 믿는 신에 다들 기대곤 하는 거 아니겠어? 그 점을 활용한 예술 장르가 공포영화고. 한국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 대만에서 호러영화 한 편이 공개됐다. 이 영화, 무섭다, 기괴하다. 당신의 110분을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주 걸린 여자의 삶 가까이에 다가가 보자.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
저주가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저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백하는 여자. 자기를 리궈난이라고 소개한 주인공은 과거에 있던 일을 털어놓는다. 끔찍한 금기를 건드렸다는 여자. 금기를 건드린 탓에 리궈난의 주변에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카메라를 들고 간 경찰서에는 의문의 자살사고가 벌어진다. 계속되는 불행에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체념하기로 한 것 같다. 리궈난은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고 금세 이 영상을 찍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 딸의 불행을 극복하고 싶어서에요”
카메라는 리궈난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리궈난에겐 딸 한 명이 있다. 어두운 낯빛이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리궈난. 리궈난은 양육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 같다. 평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친모로서의 권리가 박탈될지도 모른다. 카메라와 리궈난은 한 남자와 만난다. 아마 공동으로 양육권을 가질 아버지가 되는 분인 것 같다. 촬영하고 있는 영상의 목적 ‘영상일기’를 설명한다.
둬둬는 리궈난 인생의 전부다. 그녀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유일하게 웃는 것도 딸을 만날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편하게 굴러가진 않는다. 같은 차에 탔는데도 흐르는 어색한 기류. 차에 타서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둬둬와 리궈난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간단한 놀이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녀. 둬둬는 어머니 리궈난에게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돌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시작됐다. 리궈난은 정해져 있던 저주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사실 뻔하다. 이 영화는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호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저주에 걸리는 설정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아무 이유도 계기도 모른 채로 맞이한 비극, 식인종 연쇄살인마와의 대담, 내재되어있는 분노 폭발 등 기존에 있는 호러 영화 수작들처럼 창의성 있는 도입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금기를 건드리게 된 계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뻔하다. 당장 떠오르는 <텍사스 전기톱 2022>부터 <이블데드>까지 전통과 근본의 주요 소재를 기시감이 들 정도로 답습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저주의 시각화다. 이 저주를 시각화한 방식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차이점을 부여한다. 이 저주에 힘을 빡 줘서인지 인트로에 힘이 영 없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이 단점이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초반부가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야기 전개가 예상대로 이어진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 자극적인 저주뿐이다. 단점이 이런 선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편집이 좀 산만한 감이 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의 등장인물이 직접 카메라를 찍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의 특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근데 이 장르의 특성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내용이 좀 있다. 구체적으로 초입부의 저주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첫 번째로 저주가 시각화되는 장면이 있다. 이 신은 아쉬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후반부의 폭주하는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다음 장면에 '어떻게 주인공들이 저주에 걸리게 됐는가'를 정작 영화에서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지라 전반부는 기능적으로 단지 분위기만 제시하기 위해 쓰인 느낌이 강하다. 냉장고에 물건들이 다 엎어지고, 느닷없이 꼽등이가 날아들며 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후반부까지 통일성 있게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그냥 잊힌다. 이 장면에서 둬둬가 저주가 걸린 부분을 1/3으로 줄이고 중반부로 이야기를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초반부는 단지 무서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쓰인다. 이때 이 영화의 미술팀이 열일을 해서 무서운 느낌을 내는 건 충분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영화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자극적으로 높은 템포를 단지 유지하기 위해서 러닝타임을 썼다는 점은 사람에 따라서 지루하다가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치 있고 흥미로워서 영화의 서사가 희생된 느낌?
이 단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앞에서 쓴 현재 시퀀스 바로 다음은 과거 회상이다. 어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주인공. 친구들과 함께 한 마을의 전통을 취재하려고 한다. 이 취재는 리궈난이 저주에 걸린 계기가 된다. 그니까 둬둬가 걸려있는 저주의 증상을 보여주고 리궈난이 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엇갈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중반부 터닝포인트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근데 이건 사실 좀 더 쉽게 전개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초반부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이 저주를 알면 알수록 더 큰 위험에 빠져들어요'라고. 그러면 이 저주가 대체 뭐하는 것이길래 인물들을 이렇게 끔찍한 비극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걸까? 의문점이 든다. 난 이 저주의 숙주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런데 계속 저주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그게 불필요한 건 아닌데 주인공이 어겼던 종교적인 금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끊기는 느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 배치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게 현재 시점에서 겪는 저주 연출이 현실적으로 기괴해서 그렇지 미술팀의 열일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다행히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줘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만 천천히 쌓아 올린 빌드업이 불친절한 것은 영화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저주에 걸린 모녀의 모습 - 과거에 어떻게 저주에 걸렸는가 - 현재 관점에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 - 하이라이트 신(과거 회상) - 엔딩으로 이어져도 극이 훨씬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다른 단점 중 하나는 엔딩이다. 아마 "..?" 싶을 것이다. 중후반부까지 쌓아 올린 압도적인 이미지에 무색하게 좀 허무하게 끝난다. 근데 이 영화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무섭고 기괴한 에너지가 강점인 영화다. 그래서 엔딩이 그렇게까지 페널티는 아니다. 좀 어이없을 뿐. 아무 인상도 주지 못하는 엔딩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압도적인 시각 디자인
이 영화는 이렇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사실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일단 앞에서도 쓴 시각 디자인은 정말 노력의 대가가 그대로 나타났다. 일단 기괴한 이미지를 너무 잘 짰다. 어쩜 그렇게 무서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초반부에 어떤 할머니가 차 밖에서 인물을 관찰하는 신이 있다. 그냥 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딱 달라붙어서 구경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하는 행동들, 몸의 각도들, 대사들까지 경제적인 활용법이 돋보인다. 이 감독은 어떻게 해야 그냥 지켜보는 행위로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기괴한 짓만 골라서 러닝타임을 끌고 가기 때문에 호러 영화의 제1원칙 '일단 무서워야 함'을 아주 충실히 충족한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계속 생각난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만든 세트장은 진짜 실제로 그런 게 있을 법하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뭐라 뭐라 보여주지 않아도 디자인의 현실감 하나로 모든 설득력을 갖는다.
이 시각 디자인의 강점은 신체를 활용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분명 여러분들이 다 익숙한 맛일 것이다. 근데 그 익숙한 맛에서 살짝 비켜나가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반부에 입 안을 열었는데 치아가 많은 장면이 있다. 이 때 치아가 좀 누리끼리하지 않다. 정말 새하얗다. 근데 입 안이 또 완전 새빨간색은 아니다. 적당히 빨갛다. 적당히 빨갛고 아예 새하얀 치아를 탁한 조명으로 묘사한다. 이 이미지에서 오는 기괴함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다. 그리고 무슨 피부에 발진이 나는 형태도 현실감 있게 잘 그렸다. 단순히 끔찍하게만 그려서 무서운 게 아니다. 진짜 일어날 법한 상처라서 더 무섭다. 이 상처를 비추는 조명이나 촬영 방식도 잘 골랐다. 연출자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믿음이 가는 이 느낌
<랑종>이 생각난다. <랑종>과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비슷한 감이 있다. 아시아권의 영화감독이 동양적인 소재로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궤를 공유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도 장점을 공유한다. 바로 신뢰를 팍 주는 중심인물들이다. <랑종>에서는 님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다큐를 보는 듯한 든든한 연기를 보여줬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유사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인물의 특성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의 표정연기와 대사 치는 톤으로 신뢰감을 형성한다. 이 사람은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로 이어지는 폭발하는 연기 역시 생동감 있게 잘 소화했다. 이 인물의 행보, 등장과 퇴장을 유심하게 지켜보면 극의 배경이 되는 연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또 모녀의 연기 역시 좋았다. 특히 아역 배우 둬둬를 맡은 배우는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이 호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을까? 90년대-00년대 아마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귀신 들린 연기를 깔끔하게 잘 소화했다. 또 리둬난 역을 맡은 배우도 리액션 연기가 좋았다. 기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내면을 탄탄하게 소화했다. 어쩌면 불안한 각본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세 배우의 호연 덕이다.
그냥 보기 좋아
영화를 왜 볼까? 난 그냥 본다.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본다.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개체가 주는 특성은 남다르다. 가끔은 장점이고 단점이고 나발이고 순수하게 무서운 영화가 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장점을 충실히 구현하는 좋은 영화다. 일정한 톤으로 기괴한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극에 빠져드는 장점이 될 것이다. 시각 디자인팀이 만든 영화의 에너지를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을 것이다. 작년 <랑종> 역시 무서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랑종>의 장점과 단점을 어느 정도는 갖고 와 나름의 방식으로 변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 깐 상태로 보기 좋은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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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데 매력적이야 근데 이상해
즐겨 보는 영화들은 이렇다. 스토리가 뛰어나거나 영상미가 기막힌. 한 마디로 어느 한 면이라도 최소한의 완결성을 갖춘 작품을 보고자 한다. 그런 내게 <지옥의 화원>은 별종이다. '지상 최대의 여직원'을 가린다고 빌드업하다가 캐릭터 붕괴라고 느낄 만큼 생뚱맞게 끝내다니. 작년부터 영화를 보고서 왓챠 피디아에 별점을 기록 중인데, 말만 봐서는 0.5점이라도 던졌을 것 같다. 하지만 손가락은 3.5를 눌렀으니, 나 스스로도 의문에 답해야 했다. 이 영화가 왜?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작중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고, 관람객은 그 의미를 찾고 연결하며 감상한다. '메시지'라고 해서 반드시 교훈 담긴 말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시청각을 화려하게 자극하는 영상미가 전부이기도 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기만 한 코미디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의 카테고리는 후자에 가까운데 시트콤 같은 상황을 보며 왁! 하고 터지는 웃음이 아니었다. 어이없는 헛웃음이 끊길 듯 끊기지 않다가 영화가 끝난다.
좀 더 언질 하자면, 러닝타임 마지막 부분에서 헛웃음이 가장 많이 터진다. 굉장한 허무함과 함께. 나름 특색 있게 쌓아온 모래성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며 사실은 이게 완성이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애석하게도 완성된 모래성은 재미, 유쾌함, 감동, 여운, 그 무엇도 남기지 못했다. 완성 직전의 클리셰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렇게까지 결말 관련 혹평을 던지는 건 관람객보다는 창작자로서의 마음이 담긴 탓이다.
작품을 보는 동안 관람객은 그 세계에 흠뻑 빠진다. 한 사람을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본다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보고 듣기만 한다. 얼굴 표정이며 말, 행동까지 세세하게 보니까. 이쯤 되어 이 영화 내용과 접목시켜 보아야겠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세계관은 딱 하나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의 싸움 세계. 그 사람들이라고 맨날 쌈박질하는 건 아니다. 일할 땐 일하고, 싸울 땐 싸운다. 본업과 부업 개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한 후에 사이드잡 하는 경우가 요즘엔 왕왕 있지 않은가. 독립된 공간으로 나누어 구분하지 않고, 한 곳(회사)에서 두 가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회사들은 겸업을 허락해 주는지 피까지 흘려가며 쌈박질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 딱 한 사람은 계속 주시한다. 주인공인 나오코. 나오코를 포함한 두 명의 동료는 부업을 안 한다. 즉 어느 파벌에 들어가지도 않아서 회사에서 싸움할 일이 없다. 다만 싸움 자체에 무관심한 동료들과 달리 매번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흘끗 댄다.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나오코의 회사는 파벌 셋으로 나뉜다. '광견' 사타케 파, '대괴수' 칸다 파, 그리고 '악마' 슈리 파. 꽤 치열한 싸움 끝에 슈리 파가 승리하고, 사타케 파와 칸다파는 자연스럽게 슈리 파 아래로 합쳐진다. 이러면 사이드잡을 잃는 건가 했을 무렵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신입 '호조 란'.
약자를 괴롭히는 걸 못 참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싸움에 별 관심 없는데 어느덧 슈리 파를 이기는 바람에 회사 내 질서를 정리한 인물이다. 나오코의 내레이션처럼 만화영화 같은 설정이다. 사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그렇다. 나오코의 내레이션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것도 그렇고, 인물들의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한 태도도 그렇고. 싸움을 제일 잘하는 란과 주인공 나오코가 친구가 된 것마저. 둘은 드라마 얘기를 하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며 쇼핑을 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함께한다.
이제 또 하나의 변곡점. 다른 회사들의 수장을 이기면서 은근한 유명세를 떨치던 란. 이때 나오코가 란을 끌어들이기 위한 인질로 끌려간다. 게임으로 치면 보스몹이 나온 셈이다. 혼자 오라는 말을 착실히 따르며 란은 불구덩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 들어갔다. 당연히 이길 것 같던 란은 주요 간부 4명 중 3명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만다.
란은 일명 '히로인' 역할이 아니었던 건가. 그들은 회사의 다른 직원들에게 란의 패배를 알리라며 나오코를 묶은 사슬을 풀어준다. 그리고 이제 힘을 숨기던 주인공 나오코는 자신의 싸움 실력으로 직원들 전부를 무너뜨린다. 쓰러진 란을 대신한 복수라기엔 제 안위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싸움 잘하는 집안의 딸로 타고난 능력이 있던 나오코는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싸움이건 끼지 않고 멀리서 관망했고.
애석한 건 란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은 반대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싸움으로 인정받길 원했는데 나오코의 압도적인 실력에 도망쳤다. 회사에서는 나오코의 의도대로 모든 공이 란에게 돌아갔다. 란이 없는 건 찝찝해도 그런대로 평화로운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엔 나오코의 회사까지 찾아왔다. '지상 최대의 여직원'이라는 오니마루를 모셔오면서까지.
사타케, 칸다, 슈리 등 모든 직원들이 고전할 때 나오코가 싸움에 끼어든다. 이번에도 별 수 없이 제 힘을 발휘하며. 오니마루와의 경합은 만화영화의 끝판왕으로 치닫았다. 몸이 붕 뜨는 와이어 액션이나 에너지파 같은 CG를 동원해서. 결국 나오코의 승리로 모든 부업이 종결되는 듯했다.
그때 란이 돌아왔다. 핏빛으로 물든 유니폼을 입고서. 사라진 2주 동안 '최초 여직원'을 찾아가 한 수 배운다. 감독은 코미디 요소로 넣었겠지만, 수련 내용이 꽤나 시대착오적이다. 전화를 상냥하게 잘 받고, 커피 심부름을 잘하고, 복사기를 정확하고 빠르게 잘 쓰기.
사실 이런 요소는 틈틈이 보였다. 남성 직원이 등장하면 흐름이 조금 깨졌다. '지상 최대의 꽃미남'인 것 같은 효과를 넣는다거나 여직원들이 갑자기 탕비실을 바쁘게 정리하거나 시급한 와중에도 젤리 사놨으니 먹으라는 말에 걸음을 몇 번이나 멈춰 선다거나. 학원물을 성별만 바꿔서 그대로 오피스로 옮긴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나올 필요가 없지만, 완전히 잡무 위주로 돌아간다는 게 아쉬웠다.
이제 마지막.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란과 나오코는 동등하게 싸움을 이어갔고, 결투는 옥상에서 끝이 났다. 란은 자신이 졌다고 생각했고 나오코에게는 무승부였다. 다시 예전처럼 밥 먹고 잘 지내자는 꽤 훈훈한 결말인 것 같았는데
남직원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뒤바뀐다. 여직원의 본분은 싸움이 아니라 잡무를 잘하는 것이라는 뜬금없는 설교를 시작하고, 란에게 사랑 고백을 던진다. 란은 그 말에 동화된다. 나오코가 걸어가는 뒷모습에 '완패'라는 단어로 끝.
별점 1.5점은 모두 이런 요소 때문이었다. 과장스럽고 우스운 상황은 코미디의 일부이니 괜찮았다. 서브 컬처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영화가 나오는 게 좋은 현상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맥락을 몇 번 끊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인물들의 모든 배경이나 노력을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하다니. 이건 창작자로서 지양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기꺼이 내용에 몰입하며 따라왔을 관객들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을 안겨주는 플롯이니까.
남직원과 여직원 사이의 위계를 슬쩍 내비치려는 의도였으면 또 모르겠다. 학원물이나 소년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설정을 성별 바꾼 채로 회사 배경에 옮긴 과정에서 조금 더 심도 있는 고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쪼록 실험적인 시도로도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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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어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당신의 단짝을 기억하는가?
나의 단짝을 떠올려본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공유한 타인. 별거 아닌 일에도 눈만 마주쳤다 하면 깔깔 웃곤 했던 그때. 유머 코드도, 대화도 잘 통했던 우리. 오랫동안 함께 하리라고 믿었던 어린 나. 번호조차 모를 미래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친구는 가끔 꿈에 나온다. 우리는 때로 화해를 하고, 때로 싸우고, 때로 예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눈을 뜨는 순간 실제 같은 잔상은 빠르게 사라진다. 오묘하다. '오묘함'은 대체 어떤 감정인지 몰라서 어떻게 떨칠 수 있는지 모른다. 추억이 된 단짝과의 기억은 그렇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안생도 비슷한 아침을 보냈을까.
꼬꼬마 시절, 안생과 칠월은 같은 학교에 다녔다. 공통점이라곤 그거 하나인 것 같았다. 칠월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모범생의 길을 걸었다. 공부도 잘하고, 말썽도 안 피우고, 하라는 일은 착실히 해냈다. 안생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길을 만들어 갔다. 성향이 상극인 두 사람은 종일 붙어있다시피 한다. 정반대여서 끌렸을까?
▶ 그래야만 하는 칠월, 그래도 되는 안생
안생과 칠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둘이 걷는 방향이 멀어진다. 안생은 공부 대신에 미용을 배우고, 칠월은 어려서부터 듣던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다. 둘의 마음은 멀어지지 않았다. 안생은 여전히 칠월의 가족처럼 식탁에 앉는다. 칠월은 조금 불만이다. 저에겐 타박만 하는 어머니가 안생을 다정하게 대한다.
태도뿐만 아니라 들려주는 말도 다르다. 칠월에게는 바른 삶을 이야기한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고, 그마저도 힘드니까 좋은 대학에 가서 적당한 때에 결혼을 해야 한다며. 칠월은 그 조언을 진리라고 믿었다. 한 번도 엇나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안생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유분방함과 씩씩함, 복스럽게 먹는 모습 따위에 대한 칭찬만 들었다.
칠월은 친딸이고, 안생은 딸의 친구라서 하고 싶은 말이 달랐을까? 어쩌면 둘이 태생부터 다르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칠월은 얌전하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유약한 아이. 안생은 밝고, 쾌활하고, 재밌고, 흥이 많은 아이. 안생이 훔쳐온 귀걸이를 칠월의 어머니께 선물하자, 칠월은 도덕성에 어긋난 안생의 행동을 꼬집는다. 안생은 언젠가 갚을 생각으로 가져온 거라 훔친 게 아니라고 답한다. 칠월의 어머니가 사실을 알게 되면, 안생보다는 친구를 말리지 않은 칠월을 나무랄 것이다. 칠월을 '그래야 하는' 아이로 키워왔다.
안생은 곧 넓은 세계로 나가겠다며 고향을 떠난다. 칠월은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킨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이제 꼭 해야 하는 공부는 끝났다. 앞으로 할 일을 직접 찾아야 한다. 호기심과 들뜸을 안고, 저마다 관심 있는 동아리 부스로 찾아가는 사람들. 칠월은 그 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하고 싶다는 욕구를 품어본 것도, 그 욕구를 따라가 해소한 경험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결국 주어진 길로 돌아온다. 칠월은 목표했던 신문방송학과 대신 경제학과를 졸업해 은행원으로 취직한다. 스물일곱에 애인과 결혼하면, 적어도 가족이 말했던 여성에게 안정적인 길은 따라갈 수 있다. 안생은 긴 시간 세상 곳곳에서 칠월에게 편지를 쓴다. 매 편지마다 직업도, 머무는 장소도, 어울리는 사람도 다르다. 매일을 다르게 사는 안생은 문득 재미를 잃는다. 지친 것이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 칠월에게 돌아간다.
▶ 나는 네 존재만큼 부족하다
둘은 상해로 여행 간다. 칠월은 처음으로 고향에서 벗어났다. 정해진 길을 충실히 산 덕에 여행자금이 풍족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에 족하던 안생은 돈이 없다. 안생의 안내로 낡은 여관으로 간 둘. 칠월은 자신이 돈을 내겠다며 고급 호텔로 데려간다. 식사를 하러 나온 둘. 안생은 칠월에게 제가 살아온 방식을 보여준다. 바텐더에게 술 10병을 팔면 자신에게 공짜로 1병을 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테이블로 가 내기를 건다. 20초 안에 안생이 한 병을 다 마시면 추가로 10병 시키기로. 안생은 해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술병을 따는 안생. 잠시 머물렀던 테이블에서 두 남자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안생은 친구가 술을 못한다며 자연스레 거절하려고 한다. 칠월은 술잔을 단숨에 비운다. 당황한 안생, 다시 빌붙으려는 남자들을 융통성 있게 쫓아낸다. 상황을 가볍게 넘기려고 애써 농담을 붙이는 안생. 칠월은 날카롭게 받아친다. 감정은 말이 오갈수록 격해지고, 결국 안생의 언행이 저급하다고 깎아내린다. 안생도 지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지 못한 칠월을 비꼰다. 상처만 남은 여행은 각자 찢어진 채로 끝난다.
안생에게 있는 것이 칠월에게 없고, 칠월에게 있는 것이 안생에게 없다. 전자는 자유로운 사고, 친화력, 추진력이고 후자는 따뜻한 가정, 안정적인 삶이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부러워한다. 성격과 가정환경은 후천적으로 창조할 수 없다. 절대 가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갖고 싶어 하고, 그것을 가진 이의 자랑에 자존심이 깎인다.
둘의 사이는 극악으로 치닫는다. 칠월의 삶은 안생과 애인뿐이었다. 칠월이 가졌기에 안생은 가질 수 없는 사람, 칠월의 애인 가명. 오래전, 안생이 떠나기 전에 가명은 가장 소중한 목걸이를 안생에게 주었다. 둘의 이상한 분위기를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칠월은 모른 척했다. 둘 다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안생에게 뺏기기 싫었다. 안생을 다시 만난 칠월은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낸다. 칠월이 이전에 저급하다고 말했던 방식대로 안생을 공격한다.
느지막이 칠월은 깨닫는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서 가명과 결혼을 해도 행복은 없을 것이다. 살면서 온전히 자신 뜻대로 무언가를 한 적도, 원한대로 된 적도 없었다. 칠월은 큰 결심을 단행한다. 가명에게 결혼식 날 도망가라고 말한다. 그래야 자신도 당당하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며. 그렇게, 둘의 사이는 끝났다. 고향을 벗어나 혼자 살아가던 칠월은 안생을 찾아간다. 부른 배를 안고서.
안생은 직장을 잡고, 결혼할 애인을 옆에 두고, 한 곳에 머문다. 예전의 칠월이 살던, 매일이 똑같은 삶이다. 칠월은 지난 일들을 털어놓으며 미움, 분노, 억울함까지 고백한다. 그리고 자유를 갈망한다. 안생처럼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도는 삶, 정해진 길이 없는 삶, 하고 싶은 것을 주저 없이 따르는 삶. 안생과 칠월은 서로의 인생을 바꾸기로 한다. 칠월의 아이는 안생이 맡고, 칠월은 생애 첫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 그래서 너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어
자유를 얻은 칠월은 안생의 흔적을 따라간다. 여관, 유람선, 바, 거리. 안생은 후에 가명을 만나 칠월의 이야기를 전한다. 가명은 안심한다. 하지만 안생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진다. 가명이 현실이라고 믿는 그 이야기는 사실 안생이 쓴 소설의 픽션 부분이었다. 칠월은 아이를 세상에 남기고 죽었다. 자유를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떠난 친구의 명복을 안생이 빌어주기로 한다. 적어도 소설 속 칠월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얼마든 머물 수 있고,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
누가 만든지도 모를 길을 견뎌내느라 지쳤을 칠월, 자유에 손 뻗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헐뜯던 칠월, 자유를 쉽게 얻은 안생을 미치도록 부러워했던 칠월. 신중하고, 겁 많고,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화재경보기를 장난으로 울리려고 한다. 안생은 경보기를 감싼 유리를 깨뜨리려고 돌멩이를 쥐었지만, 망설인다. 뒤에 있던 칠월이 안생의 손을 잡고 유리를 부쉈다. 스릴을 즐기고, 겁 없고, 장난기 많았던 칠월. 정해진 길을 걷기 위해서 제거해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안생이 그린 칠월의 자유로움은 칠월의 바람이 깃든 것만은 아니다. 잃어버린 칠월을 되찾은 이야기이다.
'너 자신을 알라'.
사회의 무수한 기준, 잣대, 평가에 나를 욱여넣던 지난날. 이제 뒤돌아 자신이 찍은 발자국을 살펴볼 시간이다. 내가 원했던 방향을 걷고 있는지, 이상과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래서 어떻게 할지. '나'에 관한 답을 만들어 갈수록 생각은 명확해지고, 길은 뚜렷해진다. 물론 어렵고 힘든 여정이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는 모두 네이버 영화입니다.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원작
도서 칠월과 안생
러닝타임
110분
감독
증국산
출연
주동우(안생 役), 마사순(칠월 役), 이정빈(가명 役) 등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박윤혜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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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
오는 3월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리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각 부문 후보가 공개되었습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가 총 1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가장 많이 노미네이트되었고, 애니메이션 <Flow>의 노미네이트로 라트비아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열풍을 일으킨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 역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가운데, 골든글러브에 이어 상을 거머쥘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배우로 더 익숙한 제시 아이젠버그가 본인의 가정사를 담은 <리얼 페인>으로 각본 부문에 후보로 오른 것도 눈에 띕니다.
그럼 우리는 3월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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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최초 힙합영화
- 줄거리
줄거리라고 할 게 있는지 사실 모르겠다.
- 느낀 점
학생의 입장으로서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 힙합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고, 랩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는 한 명은 부유한 집안 외동아들, 한 명은 가난한 집안이지만 양아치 무리 중 한 명으로 캐릭터를 잡았다.
이로 인해서 현실에서 랩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모두 안 좋은 이미지로 바라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현재의 학생들을 잘 알지 못하거나 질이 안 좋은 학생들 말고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사에 욕이 많이 나오는 부분 또한 랩하고 힙합 하는 애들은 다 그럴 것이라고 작가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나 싶었다.
중학생이라는 설정을 잡은 것 같은데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고등학생으로 설정을 했어야 알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이미지 말고도 극 중에서 나오는 대사나 상황들을 보았을 때 중학교 3학년은 극에 이입하기에는 깨는 설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운전을 한다, 칼을 들고 다닌다)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동아리와 함께 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송주는 갑자기 마이크 스탠드를 고치러 간다.
근데 이 전에는 송주가 마이크 스탠드 근처에 가거나 그쪽을 쳐다보는 장면이 없어서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서 스탠드를 고치는 게 진짜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왜 이 이야기가 들어갔는지, 왜 이 장면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건 많고 담고 싶은 건 많은데 제대로 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감상하고 나서는 내가 뭘 본 건지도 모르겠고, 뭘 느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헷갈리고,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심지어는 저 등장인물이 왜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졌고, 이 이야기는 왜 들어간 것이며 엔딩 또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면 불편하게 느껴졌던 장면들도 이해하고 넘어갔을 텐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대체 그 부분들이 왜 들어간지도 몰라서 그냥 불편했다.
(+주연 와 송주가 햄버거를 만들 때 장난치면서 했던 대사들, 전체적으로 많은 욕, 오토바이 교통사고, 중3의 운전 등)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고, 시나리오가 좋아야 한다는 이유 또한 알게 되는 경험이 되었다.
파노라마_테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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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지지고 볶은 남자친구 ‘정민’에게 가.짜. 이별 통보를 한 지
30분 만에 한 개의 캐리어와 함께 집에서 쫓겨난 밀.당.실.패 취준생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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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규모의 화재 발생! 반드시 막아야 한다!
과거 화재 현장에서 사고로 동료 대원을 잃은 소방 팀장 ‘안드레이’.
아픈 상처가 아물기도 전, 사상 최악의 화재가 발생한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시베리아의 화재 현장 속,
‘안드레이’를 필두로 한 팀이 된 6명의 소방 진압 대원들이 불길로 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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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을 마지막 기회,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자들!
불길로 뛰어든 영웅들의 마지막 사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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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2021)
개봉일 : 2021.11.18. (한국 기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국내에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가장 유명한 감독, 웨스 앤더슨. <개들의 섬> 이후 3년 만에 공개된 그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껏 봐왔던 그의 작품 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공개된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 일러스트와 여러 스틸컷들을 보자마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호텔과 색감이 자연스럽게 연관되어 떠올랐고, 이 영화는 ‘가장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아주 행복할 만큼 착-맞아떨어졌다.
이 두 작품은 외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웨스 앤더슨 감독이 담아낸 작품 속 메시지 또한 서로 닮아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구스타브와 제로의 우정, 오랜 시간 한 장소를 지켜낸 그들의 인생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작품이라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매거진인 ‘프렌치 디스패치’를 운영했던 편집장 아서와 매거진에 글을 기고한 작가들. 즉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글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존중하며 오랜 시간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주간지를 만들어온 편집장 아서와 저명한 필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발행을 앞두고 시작된다. ‘내가 죽으면 매거진도 발행을 중지한다.’라는 아서의 유언을 따라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매거진 또한 죽음(마지막 발행)을 준비하게 된다. 오래 이어져온 길고 긴 매거진의 역사가 끝나는 기념적인 마지막 발행본에 어떤 특종을 실을 것인가. 편집장실에 모인 저널리스트들은 각자의 특종을 이야기하며 고민한다.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
‘웨스 앤더슨스럽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을 전부 다 보지 않고 아주 일부만 봤다 하더라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확 체감이 될 것이다. 이전까진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두 가지만 추천한다면 <로얄 테넌바움>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이야기했는데,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고 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그만큼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스러움’의 끝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감각이 엿보이는 색감과 이야기의 구성과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과 매력 또한 이 영화의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가득 충전한다. 웨스 앤더슨 사단이라고도 불리는 빌 머레이, 애드리언 브로디, 오웬 윌슨, 틸다 스윈튼 배우와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색감에 완벽하게 물든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제프리 라이트 배우 등. 훌륭한 배우들이 웨스 앤더슨 감독이 그린 아름다운 세계를 가득 채운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매거진의 특성을 알맞게 살린 영화로, 각각의 주제를 가진 4개의 챕터로 이뤄진 옴니버스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저널리스트들이 준비한 에세이와 3가지 특종. 그리고 쇠락과 사망에 대한 챕터까지.
사건들 사이에 연관성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을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부분이 더 큰 장점으로 와닿았다. 필진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색다른 세상 이야기를 보며 여러 세계를 한곳에서 만나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모든 이야기가 매력적이었고, 하나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아.. 저런 미학적 세계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내 시간을 저 세계에 넣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세계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1회차 관람이 아닌 다회 관람을 추천한다. 1회차 관람 때는 초반부에 와르르 쏟아지는 정보량과 수많은 인물들, 눈을 깜빡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요소들로 가득찬 화면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그제서야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무심하게 ‘No Crying’ 던지던 아서 편집장의 작은 행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며 영화의 엔딩을 더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영화에 담긴 색감과 미술 장치들, 컷의 구성, 캐릭터들의 디테일 등을 눈에 담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영감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언제 멈추든 상관없이 모든 순간이 작품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시놉시스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가상의 도시 블라제 다양한 사건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지막 발행본에 실을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신을 매료시킬 마지막 기사가 지금 공개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도시의 성쇠, 희로애락. 모든 것을 함께 한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는 아서의 편집장 부임과 함께 '피크닉' 대신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이 매거진은 아서와 함께 탄생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마지막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여러 이야기를 담은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시작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성장과 함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모아 한곳에 엮어낸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훑어보는 도시 여행기를 시작으로 정신 병동에 갇힌 천재 예술가의 비밀, 이 도시에 오랜 시간 이어져온 공화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겁 없이 커다란 게임을 시작한 청년들의 도전기, 아주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경찰서장의 아들 납치 사건,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도록 매거진을 만들어준 훌륭한 저널리스트 아서의 일대기까지.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은 아서와 이 도시의 일대기이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다.
알고 보면 다정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르는 필진들
세 편의 특종과 부록에 해당하는 도시 에세이 한편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착착 줄 맞춰 지나가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해당 호를 준비하며 필진들의 글을 읽는 아서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무심한 표정으로 'No Crying'을 강조하던 아서의 모습을 보면 다정함 같은 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만큼 따스한 마음을 가진 편집장이 또 없다. 그리고 필진들도 자연스레 아서의 말을 따른다.
아서는 원고의 양이 예상을 훌쩍 웃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고를 쳐내는 대신, 매거진 인쇄에 들어갈 용지의 부수를 늘리는 선택을 하고, 마감을 앞둔 채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 작가를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말없이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크레멘츠 옆에 쌓인 몇 장의 바삭한 토스트, 조심스레 들리던 아서의 노크 소리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의자. 손짓을 한 번 한 후 불편한 기색 없이 타자기를 두드리는 크레멘츠. 다른 기자가 제안한 수정사항은 바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아서의 한마디는 바로 수긍하는 세저랙. 낯선 도시의 차가운 창살 안으로 건네진 입사 지원서와 한 권의 책. 매거진의 발행 중지와 함께 문제없을 만큼 챙겨주라는 보너스에 대한 언급까지. 편견 없이 따뜻한 편집장의 시선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스며있다.
글과 함께한 일생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친구 같은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를 지탱했던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매거진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함께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랐던 훌륭한 작가들. 아서의 죽음을 확인하고 한곳에 모인 작가들은 마지막 기사로 편집장의 부고문을 쓰기로 결정한다. 매거진이 만들어지기 전 그의 삶부터 프렌치 디스패치의 탄생과 편집장으로서의 행보까지. 각자가 보고 느껴온 아서의 이야기가 편집장실 안에 가득 차고, 탁탁-경쾌한 타자기의 소리와 함께 부고문이 조금씩 완성된다.
아서는 평생을 글을 읽고, 모으며 작가들과 함께 살아왔다. 글과 사람을 사랑하던 저널리스트의 죽음은 또 한편의 글이 되어 프렌치 디스패치에 실린다. 아서의 일대기는 발행이 중지된 매거진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를 사랑하던 작가들이 써낸 글 속에서 말이다.
부고문이 실린 마지막 발행본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프렌치 디스패치가 발행되는 저 가상의 도시에 살아봤다면 참 즐거웠을 텐데,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는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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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러영화에는 재미도 있고 슬픈 전설까지 있어
여러분은 어떤 것에 무서워하는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화되면 무섭다. 거의 대부분 현실로 이뤄지는 게 함정이지만 이 공포에 무덤덤함이란 없다. '혹시 누가 화장실 물을 안 내렸으면 어떡하지' 싶으면 간혹 그 더러운 광경을 보게 된다. 비단 시각적인 것으로만 국한 지을 필요는 없다. '이 쯤되면 뭐 하나 잃어버릴 것 같은데' 싶으면 잃어버린다. '돈 다 쓸 것 같아'라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돈이 빠진다.
당연히 우리 모두 다 재미없는 삶을 싫어하기 때문에 혹시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불안장애라는 병으로 발현되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 외로 내 운명이 바뀔까 하는 두려움은 거의 클래식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각자가 믿는 신에 다들 기대곤 하는 거 아니겠어? 그 점을 활용한 예술 장르가 공포영화고. 한국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 대만에서 호러영화 한 편이 공개됐다. 이 영화, 무섭다, 기괴하다. 당신의 110분을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주 걸린 여자의 삶 가까이에 다가가 보자.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
저주가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저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백하는 여자. 자기를 리궈난이라고 소개한 주인공은 과거에 있던 일을 털어놓는다. 끔찍한 금기를 건드렸다는 여자. 금기를 건드린 탓에 리궈난의 주변에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카메라를 들고 간 경찰서에는 의문의 자살사고가 벌어진다. 계속되는 불행에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체념하기로 한 것 같다. 리궈난은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고 금세 이 영상을 찍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 딸의 불행을 극복하고 싶어서에요”
카메라는 리궈난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리궈난에겐 딸 한 명이 있다. 어두운 낯빛이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리궈난. 리궈난은 양육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 같다. 평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친모로서의 권리가 박탈될지도 모른다. 카메라와 리궈난은 한 남자와 만난다. 아마 공동으로 양육권을 가질 아버지가 되는 분인 것 같다. 촬영하고 있는 영상의 목적 ‘영상일기’를 설명한다.
둬둬는 리궈난 인생의 전부다. 그녀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유일하게 웃는 것도 딸을 만날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편하게 굴러가진 않는다. 같은 차에 탔는데도 흐르는 어색한 기류. 차에 타서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둬둬와 리궈난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간단한 놀이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녀. 둬둬는 어머니 리궈난에게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돌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시작됐다. 리궈난은 정해져 있던 저주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사실 뻔하다. 이 영화는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호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저주에 걸리는 설정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아무 이유도 계기도 모른 채로 맞이한 비극, 식인종 연쇄살인마와의 대담, 내재되어있는 분노 폭발 등 기존에 있는 호러 영화 수작들처럼 창의성 있는 도입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금기를 건드리게 된 계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뻔하다. 당장 떠오르는 <텍사스 전기톱 2022>부터 <이블데드>까지 전통과 근본의 주요 소재를 기시감이 들 정도로 답습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저주의 시각화다. 이 저주를 시각화한 방식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차이점을 부여한다. 이 저주에 힘을 빡 줘서인지 인트로에 힘이 영 없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이 단점이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초반부가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야기 전개가 예상대로 이어진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 자극적인 저주뿐이다. 단점이 이런 선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편집이 좀 산만한 감이 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의 등장인물이 직접 카메라를 찍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의 특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근데 이 장르의 특성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내용이 좀 있다. 구체적으로 초입부의 저주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첫 번째로 저주가 시각화되는 장면이 있다. 이 신은 아쉬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후반부의 폭주하는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다음 장면에 '어떻게 주인공들이 저주에 걸리게 됐는가'를 정작 영화에서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지라 전반부는 기능적으로 단지 분위기만 제시하기 위해 쓰인 느낌이 강하다. 냉장고에 물건들이 다 엎어지고, 느닷없이 꼽등이가 날아들며 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후반부까지 통일성 있게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그냥 잊힌다. 이 장면에서 둬둬가 저주가 걸린 부분을 1/3으로 줄이고 중반부로 이야기를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초반부는 단지 무서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쓰인다. 이때 이 영화의 미술팀이 열일을 해서 무서운 느낌을 내는 건 충분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영화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자극적으로 높은 템포를 단지 유지하기 위해서 러닝타임을 썼다는 점은 사람에 따라서 지루하다가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치 있고 흥미로워서 영화의 서사가 희생된 느낌?
이 단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앞에서 쓴 현재 시퀀스 바로 다음은 과거 회상이다. 어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주인공. 친구들과 함께 한 마을의 전통을 취재하려고 한다. 이 취재는 리궈난이 저주에 걸린 계기가 된다. 그니까 둬둬가 걸려있는 저주의 증상을 보여주고 리궈난이 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엇갈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중반부 터닝포인트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근데 이건 사실 좀 더 쉽게 전개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초반부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이 저주를 알면 알수록 더 큰 위험에 빠져들어요'라고. 그러면 이 저주가 대체 뭐하는 것이길래 인물들을 이렇게 끔찍한 비극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걸까? 의문점이 든다. 난 이 저주의 숙주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런데 계속 저주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그게 불필요한 건 아닌데 주인공이 어겼던 종교적인 금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끊기는 느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 배치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게 현재 시점에서 겪는 저주 연출이 현실적으로 기괴해서 그렇지 미술팀의 열일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다행히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줘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만 천천히 쌓아 올린 빌드업이 불친절한 것은 영화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저주에 걸린 모녀의 모습 - 과거에 어떻게 저주에 걸렸는가 - 현재 관점에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 - 하이라이트 신(과거 회상) - 엔딩으로 이어져도 극이 훨씬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다른 단점 중 하나는 엔딩이다. 아마 "..?" 싶을 것이다. 중후반부까지 쌓아 올린 압도적인 이미지에 무색하게 좀 허무하게 끝난다. 근데 이 영화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무섭고 기괴한 에너지가 강점인 영화다. 그래서 엔딩이 그렇게까지 페널티는 아니다. 좀 어이없을 뿐. 아무 인상도 주지 못하는 엔딩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압도적인 시각 디자인
이 영화는 이렇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사실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일단 앞에서도 쓴 시각 디자인은 정말 노력의 대가가 그대로 나타났다. 일단 기괴한 이미지를 너무 잘 짰다. 어쩜 그렇게 무서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초반부에 어떤 할머니가 차 밖에서 인물을 관찰하는 신이 있다. 그냥 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딱 달라붙어서 구경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하는 행동들, 몸의 각도들, 대사들까지 경제적인 활용법이 돋보인다. 이 감독은 어떻게 해야 그냥 지켜보는 행위로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기괴한 짓만 골라서 러닝타임을 끌고 가기 때문에 호러 영화의 제1원칙 '일단 무서워야 함'을 아주 충실히 충족한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계속 생각난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만든 세트장은 진짜 실제로 그런 게 있을 법하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뭐라 뭐라 보여주지 않아도 디자인의 현실감 하나로 모든 설득력을 갖는다.
이 시각 디자인의 강점은 신체를 활용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분명 여러분들이 다 익숙한 맛일 것이다. 근데 그 익숙한 맛에서 살짝 비켜나가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반부에 입 안을 열었는데 치아가 많은 장면이 있다. 이 때 치아가 좀 누리끼리하지 않다. 정말 새하얗다. 근데 입 안이 또 완전 새빨간색은 아니다. 적당히 빨갛다. 적당히 빨갛고 아예 새하얀 치아를 탁한 조명으로 묘사한다. 이 이미지에서 오는 기괴함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다. 그리고 무슨 피부에 발진이 나는 형태도 현실감 있게 잘 그렸다. 단순히 끔찍하게만 그려서 무서운 게 아니다. 진짜 일어날 법한 상처라서 더 무섭다. 이 상처를 비추는 조명이나 촬영 방식도 잘 골랐다. 연출자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믿음이 가는 이 느낌
<랑종>이 생각난다. <랑종>과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비슷한 감이 있다. 아시아권의 영화감독이 동양적인 소재로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궤를 공유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도 장점을 공유한다. 바로 신뢰를 팍 주는 중심인물들이다. <랑종>에서는 님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다큐를 보는 듯한 든든한 연기를 보여줬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유사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인물의 특성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의 표정연기와 대사 치는 톤으로 신뢰감을 형성한다. 이 사람은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로 이어지는 폭발하는 연기 역시 생동감 있게 잘 소화했다. 이 인물의 행보, 등장과 퇴장을 유심하게 지켜보면 극의 배경이 되는 연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또 모녀의 연기 역시 좋았다. 특히 아역 배우 둬둬를 맡은 배우는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이 호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을까? 90년대-00년대 아마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귀신 들린 연기를 깔끔하게 잘 소화했다. 또 리둬난 역을 맡은 배우도 리액션 연기가 좋았다. 기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내면을 탄탄하게 소화했다. 어쩌면 불안한 각본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세 배우의 호연 덕이다.
그냥 보기 좋아
영화를 왜 볼까? 난 그냥 본다.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본다.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개체가 주는 특성은 남다르다. 가끔은 장점이고 단점이고 나발이고 순수하게 무서운 영화가 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장점을 충실히 구현하는 좋은 영화다. 일정한 톤으로 기괴한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극에 빠져드는 장점이 될 것이다. 시각 디자인팀이 만든 영화의 에너지를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을 것이다. 작년 <랑종> 역시 무서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랑종>의 장점과 단점을 어느 정도는 갖고 와 나름의 방식으로 변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 깐 상태로 보기 좋은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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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데 매력적이야 근데 이상해
즐겨 보는 영화들은 이렇다. 스토리가 뛰어나거나 영상미가 기막힌. 한 마디로 어느 한 면이라도 최소한의 완결성을 갖춘 작품을 보고자 한다. 그런 내게 <지옥의 화원>은 별종이다. '지상 최대의 여직원'을 가린다고 빌드업하다가 캐릭터 붕괴라고 느낄 만큼 생뚱맞게 끝내다니. 작년부터 영화를 보고서 왓챠 피디아에 별점을 기록 중인데, 말만 봐서는 0.5점이라도 던졌을 것 같다. 하지만 손가락은 3.5를 눌렀으니, 나 스스로도 의문에 답해야 했다. 이 영화가 왜?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작중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고, 관람객은 그 의미를 찾고 연결하며 감상한다. '메시지'라고 해서 반드시 교훈 담긴 말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시청각을 화려하게 자극하는 영상미가 전부이기도 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기만 한 코미디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의 카테고리는 후자에 가까운데 시트콤 같은 상황을 보며 왁! 하고 터지는 웃음이 아니었다. 어이없는 헛웃음이 끊길 듯 끊기지 않다가 영화가 끝난다.
좀 더 언질 하자면, 러닝타임 마지막 부분에서 헛웃음이 가장 많이 터진다. 굉장한 허무함과 함께. 나름 특색 있게 쌓아온 모래성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며 사실은 이게 완성이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애석하게도 완성된 모래성은 재미, 유쾌함, 감동, 여운, 그 무엇도 남기지 못했다. 완성 직전의 클리셰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렇게까지 결말 관련 혹평을 던지는 건 관람객보다는 창작자로서의 마음이 담긴 탓이다.
작품을 보는 동안 관람객은 그 세계에 흠뻑 빠진다. 한 사람을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본다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보고 듣기만 한다. 얼굴 표정이며 말, 행동까지 세세하게 보니까. 이쯤 되어 이 영화 내용과 접목시켜 보아야겠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세계관은 딱 하나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의 싸움 세계. 그 사람들이라고 맨날 쌈박질하는 건 아니다. 일할 땐 일하고, 싸울 땐 싸운다. 본업과 부업 개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한 후에 사이드잡 하는 경우가 요즘엔 왕왕 있지 않은가. 독립된 공간으로 나누어 구분하지 않고, 한 곳(회사)에서 두 가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회사들은 겸업을 허락해 주는지 피까지 흘려가며 쌈박질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 딱 한 사람은 계속 주시한다. 주인공인 나오코. 나오코를 포함한 두 명의 동료는 부업을 안 한다. 즉 어느 파벌에 들어가지도 않아서 회사에서 싸움할 일이 없다. 다만 싸움 자체에 무관심한 동료들과 달리 매번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흘끗 댄다.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나오코의 회사는 파벌 셋으로 나뉜다. '광견' 사타케 파, '대괴수' 칸다 파, 그리고 '악마' 슈리 파. 꽤 치열한 싸움 끝에 슈리 파가 승리하고, 사타케 파와 칸다파는 자연스럽게 슈리 파 아래로 합쳐진다. 이러면 사이드잡을 잃는 건가 했을 무렵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신입 '호조 란'.
약자를 괴롭히는 걸 못 참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싸움에 별 관심 없는데 어느덧 슈리 파를 이기는 바람에 회사 내 질서를 정리한 인물이다. 나오코의 내레이션처럼 만화영화 같은 설정이다. 사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그렇다. 나오코의 내레이션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것도 그렇고, 인물들의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한 태도도 그렇고. 싸움을 제일 잘하는 란과 주인공 나오코가 친구가 된 것마저. 둘은 드라마 얘기를 하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며 쇼핑을 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함께한다.
이제 또 하나의 변곡점. 다른 회사들의 수장을 이기면서 은근한 유명세를 떨치던 란. 이때 나오코가 란을 끌어들이기 위한 인질로 끌려간다. 게임으로 치면 보스몹이 나온 셈이다. 혼자 오라는 말을 착실히 따르며 란은 불구덩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 들어갔다. 당연히 이길 것 같던 란은 주요 간부 4명 중 3명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만다.
란은 일명 '히로인' 역할이 아니었던 건가. 그들은 회사의 다른 직원들에게 란의 패배를 알리라며 나오코를 묶은 사슬을 풀어준다. 그리고 이제 힘을 숨기던 주인공 나오코는 자신의 싸움 실력으로 직원들 전부를 무너뜨린다. 쓰러진 란을 대신한 복수라기엔 제 안위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싸움 잘하는 집안의 딸로 타고난 능력이 있던 나오코는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싸움이건 끼지 않고 멀리서 관망했고.
애석한 건 란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은 반대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싸움으로 인정받길 원했는데 나오코의 압도적인 실력에 도망쳤다. 회사에서는 나오코의 의도대로 모든 공이 란에게 돌아갔다. 란이 없는 건 찝찝해도 그런대로 평화로운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엔 나오코의 회사까지 찾아왔다. '지상 최대의 여직원'이라는 오니마루를 모셔오면서까지.
사타케, 칸다, 슈리 등 모든 직원들이 고전할 때 나오코가 싸움에 끼어든다. 이번에도 별 수 없이 제 힘을 발휘하며. 오니마루와의 경합은 만화영화의 끝판왕으로 치닫았다. 몸이 붕 뜨는 와이어 액션이나 에너지파 같은 CG를 동원해서. 결국 나오코의 승리로 모든 부업이 종결되는 듯했다.
그때 란이 돌아왔다. 핏빛으로 물든 유니폼을 입고서. 사라진 2주 동안 '최초 여직원'을 찾아가 한 수 배운다. 감독은 코미디 요소로 넣었겠지만, 수련 내용이 꽤나 시대착오적이다. 전화를 상냥하게 잘 받고, 커피 심부름을 잘하고, 복사기를 정확하고 빠르게 잘 쓰기.
사실 이런 요소는 틈틈이 보였다. 남성 직원이 등장하면 흐름이 조금 깨졌다. '지상 최대의 꽃미남'인 것 같은 효과를 넣는다거나 여직원들이 갑자기 탕비실을 바쁘게 정리하거나 시급한 와중에도 젤리 사놨으니 먹으라는 말에 걸음을 몇 번이나 멈춰 선다거나. 학원물을 성별만 바꿔서 그대로 오피스로 옮긴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나올 필요가 없지만, 완전히 잡무 위주로 돌아간다는 게 아쉬웠다.
이제 마지막.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란과 나오코는 동등하게 싸움을 이어갔고, 결투는 옥상에서 끝이 났다. 란은 자신이 졌다고 생각했고 나오코에게는 무승부였다. 다시 예전처럼 밥 먹고 잘 지내자는 꽤 훈훈한 결말인 것 같았는데
남직원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뒤바뀐다. 여직원의 본분은 싸움이 아니라 잡무를 잘하는 것이라는 뜬금없는 설교를 시작하고, 란에게 사랑 고백을 던진다. 란은 그 말에 동화된다. 나오코가 걸어가는 뒷모습에 '완패'라는 단어로 끝.
별점 1.5점은 모두 이런 요소 때문이었다. 과장스럽고 우스운 상황은 코미디의 일부이니 괜찮았다. 서브 컬처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영화가 나오는 게 좋은 현상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맥락을 몇 번 끊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인물들의 모든 배경이나 노력을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하다니. 이건 창작자로서 지양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기꺼이 내용에 몰입하며 따라왔을 관객들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을 안겨주는 플롯이니까.
남직원과 여직원 사이의 위계를 슬쩍 내비치려는 의도였으면 또 모르겠다. 학원물이나 소년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설정을 성별 바꾼 채로 회사 배경에 옮긴 과정에서 조금 더 심도 있는 고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쪼록 실험적인 시도로도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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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어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당신의 단짝을 기억하는가?
나의 단짝을 떠올려본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공유한 타인. 별거 아닌 일에도 눈만 마주쳤다 하면 깔깔 웃곤 했던 그때. 유머 코드도, 대화도 잘 통했던 우리. 오랫동안 함께 하리라고 믿었던 어린 나. 번호조차 모를 미래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친구는 가끔 꿈에 나온다. 우리는 때로 화해를 하고, 때로 싸우고, 때로 예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눈을 뜨는 순간 실제 같은 잔상은 빠르게 사라진다. 오묘하다. '오묘함'은 대체 어떤 감정인지 몰라서 어떻게 떨칠 수 있는지 모른다. 추억이 된 단짝과의 기억은 그렇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안생도 비슷한 아침을 보냈을까.
꼬꼬마 시절, 안생과 칠월은 같은 학교에 다녔다. 공통점이라곤 그거 하나인 것 같았다. 칠월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모범생의 길을 걸었다. 공부도 잘하고, 말썽도 안 피우고, 하라는 일은 착실히 해냈다. 안생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길을 만들어 갔다. 성향이 상극인 두 사람은 종일 붙어있다시피 한다. 정반대여서 끌렸을까?
▶ 그래야만 하는 칠월, 그래도 되는 안생
안생과 칠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둘이 걷는 방향이 멀어진다. 안생은 공부 대신에 미용을 배우고, 칠월은 어려서부터 듣던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다. 둘의 마음은 멀어지지 않았다. 안생은 여전히 칠월의 가족처럼 식탁에 앉는다. 칠월은 조금 불만이다. 저에겐 타박만 하는 어머니가 안생을 다정하게 대한다.
태도뿐만 아니라 들려주는 말도 다르다. 칠월에게는 바른 삶을 이야기한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고, 그마저도 힘드니까 좋은 대학에 가서 적당한 때에 결혼을 해야 한다며. 칠월은 그 조언을 진리라고 믿었다. 한 번도 엇나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안생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유분방함과 씩씩함, 복스럽게 먹는 모습 따위에 대한 칭찬만 들었다.
칠월은 친딸이고, 안생은 딸의 친구라서 하고 싶은 말이 달랐을까? 어쩌면 둘이 태생부터 다르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칠월은 얌전하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유약한 아이. 안생은 밝고, 쾌활하고, 재밌고, 흥이 많은 아이. 안생이 훔쳐온 귀걸이를 칠월의 어머니께 선물하자, 칠월은 도덕성에 어긋난 안생의 행동을 꼬집는다. 안생은 언젠가 갚을 생각으로 가져온 거라 훔친 게 아니라고 답한다. 칠월의 어머니가 사실을 알게 되면, 안생보다는 친구를 말리지 않은 칠월을 나무랄 것이다. 칠월을 '그래야 하는' 아이로 키워왔다.
안생은 곧 넓은 세계로 나가겠다며 고향을 떠난다. 칠월은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킨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이제 꼭 해야 하는 공부는 끝났다. 앞으로 할 일을 직접 찾아야 한다. 호기심과 들뜸을 안고, 저마다 관심 있는 동아리 부스로 찾아가는 사람들. 칠월은 그 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하고 싶다는 욕구를 품어본 것도, 그 욕구를 따라가 해소한 경험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결국 주어진 길로 돌아온다. 칠월은 목표했던 신문방송학과 대신 경제학과를 졸업해 은행원으로 취직한다. 스물일곱에 애인과 결혼하면, 적어도 가족이 말했던 여성에게 안정적인 길은 따라갈 수 있다. 안생은 긴 시간 세상 곳곳에서 칠월에게 편지를 쓴다. 매 편지마다 직업도, 머무는 장소도, 어울리는 사람도 다르다. 매일을 다르게 사는 안생은 문득 재미를 잃는다. 지친 것이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 칠월에게 돌아간다.
▶ 나는 네 존재만큼 부족하다
둘은 상해로 여행 간다. 칠월은 처음으로 고향에서 벗어났다. 정해진 길을 충실히 산 덕에 여행자금이 풍족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에 족하던 안생은 돈이 없다. 안생의 안내로 낡은 여관으로 간 둘. 칠월은 자신이 돈을 내겠다며 고급 호텔로 데려간다. 식사를 하러 나온 둘. 안생은 칠월에게 제가 살아온 방식을 보여준다. 바텐더에게 술 10병을 팔면 자신에게 공짜로 1병을 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테이블로 가 내기를 건다. 20초 안에 안생이 한 병을 다 마시면 추가로 10병 시키기로. 안생은 해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술병을 따는 안생. 잠시 머물렀던 테이블에서 두 남자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안생은 친구가 술을 못한다며 자연스레 거절하려고 한다. 칠월은 술잔을 단숨에 비운다. 당황한 안생, 다시 빌붙으려는 남자들을 융통성 있게 쫓아낸다. 상황을 가볍게 넘기려고 애써 농담을 붙이는 안생. 칠월은 날카롭게 받아친다. 감정은 말이 오갈수록 격해지고, 결국 안생의 언행이 저급하다고 깎아내린다. 안생도 지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지 못한 칠월을 비꼰다. 상처만 남은 여행은 각자 찢어진 채로 끝난다.
안생에게 있는 것이 칠월에게 없고, 칠월에게 있는 것이 안생에게 없다. 전자는 자유로운 사고, 친화력, 추진력이고 후자는 따뜻한 가정, 안정적인 삶이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부러워한다. 성격과 가정환경은 후천적으로 창조할 수 없다. 절대 가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갖고 싶어 하고, 그것을 가진 이의 자랑에 자존심이 깎인다.
둘의 사이는 극악으로 치닫는다. 칠월의 삶은 안생과 애인뿐이었다. 칠월이 가졌기에 안생은 가질 수 없는 사람, 칠월의 애인 가명. 오래전, 안생이 떠나기 전에 가명은 가장 소중한 목걸이를 안생에게 주었다. 둘의 이상한 분위기를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칠월은 모른 척했다. 둘 다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안생에게 뺏기기 싫었다. 안생을 다시 만난 칠월은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낸다. 칠월이 이전에 저급하다고 말했던 방식대로 안생을 공격한다.
느지막이 칠월은 깨닫는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서 가명과 결혼을 해도 행복은 없을 것이다. 살면서 온전히 자신 뜻대로 무언가를 한 적도, 원한대로 된 적도 없었다. 칠월은 큰 결심을 단행한다. 가명에게 결혼식 날 도망가라고 말한다. 그래야 자신도 당당하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며. 그렇게, 둘의 사이는 끝났다. 고향을 벗어나 혼자 살아가던 칠월은 안생을 찾아간다. 부른 배를 안고서.
안생은 직장을 잡고, 결혼할 애인을 옆에 두고, 한 곳에 머문다. 예전의 칠월이 살던, 매일이 똑같은 삶이다. 칠월은 지난 일들을 털어놓으며 미움, 분노, 억울함까지 고백한다. 그리고 자유를 갈망한다. 안생처럼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도는 삶, 정해진 길이 없는 삶, 하고 싶은 것을 주저 없이 따르는 삶. 안생과 칠월은 서로의 인생을 바꾸기로 한다. 칠월의 아이는 안생이 맡고, 칠월은 생애 첫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 그래서 너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어
자유를 얻은 칠월은 안생의 흔적을 따라간다. 여관, 유람선, 바, 거리. 안생은 후에 가명을 만나 칠월의 이야기를 전한다. 가명은 안심한다. 하지만 안생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진다. 가명이 현실이라고 믿는 그 이야기는 사실 안생이 쓴 소설의 픽션 부분이었다. 칠월은 아이를 세상에 남기고 죽었다. 자유를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떠난 친구의 명복을 안생이 빌어주기로 한다. 적어도 소설 속 칠월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얼마든 머물 수 있고,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
누가 만든지도 모를 길을 견뎌내느라 지쳤을 칠월, 자유에 손 뻗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헐뜯던 칠월, 자유를 쉽게 얻은 안생을 미치도록 부러워했던 칠월. 신중하고, 겁 많고,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화재경보기를 장난으로 울리려고 한다. 안생은 경보기를 감싼 유리를 깨뜨리려고 돌멩이를 쥐었지만, 망설인다. 뒤에 있던 칠월이 안생의 손을 잡고 유리를 부쉈다. 스릴을 즐기고, 겁 없고, 장난기 많았던 칠월. 정해진 길을 걷기 위해서 제거해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안생이 그린 칠월의 자유로움은 칠월의 바람이 깃든 것만은 아니다. 잃어버린 칠월을 되찾은 이야기이다.
'너 자신을 알라'.
사회의 무수한 기준, 잣대, 평가에 나를 욱여넣던 지난날. 이제 뒤돌아 자신이 찍은 발자국을 살펴볼 시간이다. 내가 원했던 방향을 걷고 있는지, 이상과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래서 어떻게 할지. '나'에 관한 답을 만들어 갈수록 생각은 명확해지고, 길은 뚜렷해진다. 물론 어렵고 힘든 여정이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는 모두 네이버 영화입니다.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원작
도서 칠월과 안생
러닝타임
110분
감독
증국산
출연
주동우(안생 役), 마사순(칠월 役), 이정빈(가명 役) 등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박윤혜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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