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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3-07-21 09:28:51

엄청나게 야심차고 믿을 수 없게 지루한

<바비>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완벽한 세계 바비랜드에서 매일 같이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던 '전형적인 바비'(마고 로비). 어느 날 바비는 갑작스럽게 변한 자기 자신을 깨닫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하이힐을 신기 위해 까치발이었던 발이 평발은 됐으며, 다리에는 셀룰라이트가 생겼기 때문. 

 

이에 전형적인 바비는 이상한 바비를 찾아가 해결책을 구한다. 현실에서 자신을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에게 변화가 생겼으니, 현실 세계로 넘어가 그 아이를 직접 만나라는 것. 이에 전형적인 바비는 현실 세계로 넘어 가 사태를 바로잡고 다시 완벽한 바비가 되려 한다. 그녀 없이는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는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영화와 메시지

봉준호 감독은 "영화는 메시지를 담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영화든 메시지가 있으면 좋지만, 메시지는 영화의 아름다움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은 영화는 선동을 위한 프로파간다와 다를 게 없기 때문. 즉, 영화는 일단 흥미로워야 한다. 그래야 감독, 작가, 배우 등이 심어 놓은 메시지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잘 전달될 수 있을 테니까.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감독인 그레타 거윅은 위의 예술관에 부합하는 여성 감독이었다. 거윅의 영화는 주로 페미니즘 메시지로 무장했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는 않았다. 전작인 <작은 아씨들>만 봐도 그렇다. 거윅은 고전 소설의 매력을 한껏 살리면서 그 안에 핵심적인 목소리를 물 흐르듯 담아냈다. 어떤 모습의 삶을 살든 여성들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고. 

 

그레타 거윅의 신작 <바비>는 반대다. 화려한 분홍빛 바비랜드는 여러 메시지로 가득하다. 가부장제를 깨뜨려야 한다, 현시점 페미니즘은 문제가 있다, 백래시를 극복해야 한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도 해결해야 한다... 제각기 자기주장이 가장 중요하다며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메시지를 쏟아내기 급급하다. 그 결과 이 야심차고 화려한 영화는 점차 지루해진다. 마치 대학 교양 강의를 듣는 듯한 인상까지 남는다.

 

 

바비랜드, 바비가 바꾼 세상

첫 장면부터 <바비>는 야심을 드러낸다. 바비 인형의 명암을 조명하고, 바비의 이상적인 의미를 찾아내겠다고 선언한다. 우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오마주한 오프닝은 바비의 등장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력을 상기시킨다. 아기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엄마라는 꿈만 꿔야 했던 여자 아이들. 그들은 바비를 만난 이후 엄마가 아닌 다른 삶도 살 수 있다고 깨닫는다.  

 

전 세계의 분홍색 페인트를 모두 가져다 쓴 '바비랜드'는 여성의 가능성이 완전히 꽃 피운 세상을 보여준다. 작가, 대통령, 대법관, 우주비행사, 과학자 바비 등 여성이 주도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바비랜드에서는 인종과 피부색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 같은 바비일 뿐이다. 그들 스스로도 세계를 더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자화자찬한다.

 

이는 바비의 역사를 요약하는 대목처럼 보인다. 그간 마텔은 고정된 성 역할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간호사, 항공 승무원 등 여성 비율이 높은 직업뿐 아니라 의사, CEO, 파일럿, 경찰관 옷을 입은 바비도 출시했다. 문화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수용해 히스패닉 계 바비, 아프리카계 미국인 바비, 블랙 바비를 연달아 선보였다. 최근에는 다운증후군 바비 인형도 등장했다. 

 

 

미처 바꾸지 못한 현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바비>는 바비 인형에 내재한 모순을 마냥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형적인 바비를 현실 세계에 던져 놓으면서 전면에 부각한다. 일단 영화는 바비 인형에게 늘 따라붙는 가장 일반적인 비판부터 짚고 넘어간다. 아이들이 바비를 자신의 롤모델로 여기고, 바비처럼 되고 싶어 할 거라는 우려를 투영한다.

 

전형적인 바비의 몸에 문제가 생기자 다른 바비와 켄이 깜짝 놀라거나 구토를 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마치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이. 이처럼 <바비>는 바비가 젊은 여성에게 비현실적인 신체 이미지를 홍보한다는 비판을 스토리의 시작점부터 수용한다. 

 

이에 더해 바비랜드와 현실 세계를 대조하며 바비의 한계도 지적한다. 바비들 생각과 달리 영화 속 현실은 바비랜드와 많이 다르다. 마텔 본사에 고위급 임원 중 여성은 없고 경찰도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다. 바비랜드에서 완벽한 여성이었던 바비는 현실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바비 인형의 여러 변화가 현실에서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는 일각의 지적도 반영된 셈이다. 

 

 

바비와 켄, 페미니즘과 휴머니즘

바비랜드와 현실 세계의 괴리감은 켄에게도 투영돼 있다. 그의 이야기에는 바비 인형의 모순과 다소 가려져 있던 현실이 깃들어 있기 때문. 바비랜드에서 켄은 바비만 바라보고 사는 부속품이다. 그녀가 말을 걸어주고, 쳐다봐 주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를 맛본 뒤로 켄은 바뀐다. 말, 자동차, 맥주로 대변되는 남성성의 신봉자가 된다. 가부장제를 도입하고 바비랜드가 아닌 켄덤을 세운다. 

 

켄의 행보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백래시'라고 규정하는 사회적 반발을 반영하는 듯 보인다. 다만 바비랜드가 바비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극단적인 여성 중심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켄의 저항은 단순히 치기 어린 반발이 아니다. 오히려 바비랜드도 텐덤도,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진 사회에서는 누구나 차별 또는 역차별당할 수 있다는 지적에 가깝다.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자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비랜드와 같은 이상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라는 기대는 잘못됐다고. 

 

이에 <바비>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휴머니즘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바비는 완벽한 여성이라는 한계를, 켄은 바비의 부속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자고 말한다. 바비와 켄 모두 원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자고 말한다. 또 누가 더 우월하고 낫다고 싸울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능성에 귀를 기울이자고 덧붙인다. 영화는 바비는 바비, 켄은 켄, 또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막을 내린다. 마고 로비가 "완벽히 페미니즘 DNA에 기반하고 있고, 환상적인 휴머니스트 영화"라고 <바비>를 소개한 이유다.

 

 

메시지와 메신저의 부조화

문제는 메신저다. 전개와 연출이 메시지와 잘 이어지지 않으면서 영화를 혼란스럽고, 지루하게 만든다. 비중 있게 다룬 켄의 이야기와 충돌하는 후반부 전개가 대표적이다. 종국에 바비랜드는 처음 바비랜드로 되돌아온다. 모든 권력은 바비에게 넘어간다. 켄들은 약간의 권리를 얻어내지만,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정반합(正反合)이 아닌 정반정(正反正)이라 해야 할 마무리다. 

 

메시지를 보여주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벡의 명성을 생각하면 의아할 정도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바비랜드를 되찾는 과정에서 바비와 글로리아는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가부장제의 폐해를 직접적으로 읊는다. 이는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처럼 관객에게 모든 메시지를 떠먹여 주려는 듯 느껴진다. 즉, 영화와 프로파간다 사이에서 주객이 전도될 여지를 남긴다.

 

더 나아가 장르적 기반도 흔들린다. <바비>는 외관과 달리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그런데 <바비>의 풍자는 풍자가 아니라 비웃음이나 조롱차럼 느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여성과 남성, 바비와 켄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바비의 시점에서 켄만 웃음거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켄끼리 전투를 버리는 장면, 남자다운 척하도록 유도해서 켄을 속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블랙 코미디는 민감하고 불편한 소재를 당사자가 자조적으로 풍자할 때 성립되는 경우가 많은데, <바비>는 이 대목에서 불협화음이 들린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메시지는 정리가 안된다. 내용과 메시지가 따로 논다. 페미니즘과 휴머니즘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 하지만 정작 결론은 한쪽으로 애매하게 치우친다. 그러니 바비와 켄이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말도 서서히 공허해진다. 바비 인형의 역사와 모순을 파고들다가 스스로 발이 꼬인 형국이다. 

 

 

빛 좋은 개살구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레타 거윅의 개성이 느껴지는 연출도 이 모순과 부조화를 끝내 메꾸지는 못한다. 사실 <바비>는 분명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마고 로비는 이견을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형적인 바비 인형의 이미지를 잘 재현했다. 무엇보다도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예고편에서 마냥 병맛 캐릭터 같아 보였던 켄은 온몸으로 감정 변화를 전달하며 주인공인 바비보다도 더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분홍빛으로 가득한 바비랜드의 풍광은 현실과 분리된 인형 세계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긴장이 풀릴 법하면 등장하는 화려한 뮤지컬, 내레이션을 통해 제4의 벽을 넘나드는 메타적인 요소 역시 재기 넘친다. 마치 아담 맥케이의 <빅쇼트>나 <바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번쩍거리는 이미지와 퍼포먼스는 그저 휘발된다. 메시지 이전에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잡아야 한다는 전제를 <바비>는 끝끝내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Acceptable 무난함

메시지는 문제없다. 메신저가 문제다.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runch.co.kr/@potter111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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