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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3-07-24 14:50:34

그저 '핑크빛 연설문'일 뿐

〈바비〉 리뷰

5★/10★

  〈바비〉의 출발은 자못 웅장하다. 태초에는 아기 인형밖에 없었다. 그러다 바비 인형이 나왔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의 바비는 그저 ‘백인 금발 미녀’가 대변하는 ‘보편적’ 아름다움의 상징일 뿐이었다. 하지만 점차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해 여러 바비가 만들어졌다. 아기 인형을 보살피며 ‘엄마’라는 미래만 꿈꾸었던 수많은 소녀가 바비를 롤모델 삼아 다채로운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비는 다양성과 페미니즘의 상징이 되었다.

 

  바비들은 자신들끼리 모여 사는 ‘바비랜드’에서 자부심 넘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바비랜드는 대통령, 대법원장, 과학자, 작가 모두가 여자다. 바비 랜드에서는 아무도 늙지 않고, 어제와 같이 행복한 오늘이 내일에도 반복되는 빛나는 미래만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비의 몸에 ‘이상’이 생긴다. 늘 하이힐을 신기에 적합한 모양으로 발뒤꿈치가 한껏 들려 있던 발이 평평해지고, 허벅지에는 셀룰라이트가 보인다. 바비는 수소문 끝에 이 문제가 바비 월드 바깥 현실 세계의 인형 주인과 관련된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 이에 바비는 어디든 자신을 쫓아다니는 켄(남자 바비 인형인 켄은 바비의 관심이 있을 때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다)과 함께 현실 세계로 넘어간다. 모두가 페미니즘 다양성을 선물한 자신을 우러러보리라는 기분 좋은 기대와 함께.



  

기대는 보란 듯이 박살난다. 남자들은 바비를 성희롱하기 바쁘고, 여자들도 구시대의 유물인 바비가 획일적 아름다움을 강제하고 성상품화를 부추겼다며 비난한다. 게다가 늘 바비 앞에서 의기소침하던 켄은 현실 세계의 가부장제에 매료되어 바비 몰래 음흉한 계획을 세운 뒤 먼저 바비 랜드로 돌아간다. 바비 몰래 가부장적 역모를 획책하는 것이다. 이에 바비와 그 인형의 소유자, 즉 두 세계의 여성은 바비 랜드와 현실 세계가 부정적으로 닮아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연대한다.

  그러나 내내 영화의 기저에서 비집고 나올 틈을 노리던 계몽의 욕망이 절제되지 못하고 끝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면서 〈바비〉의 거대한 야심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영화 결말부, 여러 인물들에게서 쏟아지듯 나오는 페미니즘 계몽의 목소리는 황당하다 못해 질릴 정도다. 메시지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전개와 별다른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 메시지의 넘치는 반복이 문제다.

 

  분명 처음에는 좋았다. 바비 랜드는 양면성을 지녔다. 매일이 행복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늙음, 죽음, 추함’과 같은 인간의 필연적 속성이 배제된 곳을 우리는 유토피아라 부를 수 없다. 두 세계를 오고 가는 바비의 모험에는 이 이중적 속성을 지닌 바비 랜드에서 무엇을 빼고 더하여 피상적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넘어 설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겠다는 감독의 야심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막상 모험이 본격화되자 영화는 길을 잃는다. 두 세계의 여성들이 남성들의 서열 문화, 맨스플레인, 이성애 욕망을 영리하게 전유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문제는 웃음이 몇몇 풍자 장면에서 단발적으로만 생긴다는 점이다.


  

화가 처음에 던진 야심찬 문제의식을 힘 있게 밀고 가지 못하고 이를 단발성 농담으로 대체한 결과는그저 ‘핑크빛 연설문’이다. 배우들은 진지하고 감동적인 표정으로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관객은 어리둥절하다. 그 메시지를 영화의 어떤 장면과 연결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밖 세계에서 그 메시지를 독해할 단서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대의 상식에 떠넘긴다.

 

  〈바비〉가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 등을 연출한 그레타 거윅의 작품이라는 데서 의아함은 더 커진다. 그녀의 전 영화 주인공들에게는 〈바비〉의 인물들처럼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주인공들이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좇다 보면 관객이 자연스레 영화의 메시지에 감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 짜인 플롯과 캐릭터를 갖춘 영화라면 〈바비〉처럼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안달복달하며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계몽이 목적이었다면 글을 써서 SNS에 올리든, 캠페인을 벌이든, 시민단체를 꾸리거나 후원하든, 유튜브 영상을 찍어 올리든 하면 된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 위한 매체로 영화를 택했다면, 메시지가 영화 내에서 자연스레 드러나게 했어야 한다. 억지 계몽의 향연이 가속화될수록 초반에 번득였던 영화의 야심은 빛을 잃는다. 기발한 상상력과 페미니즘의 당위는 〈바비〉의 알리바이 수 없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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