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7-25 13:18:51
그날의 역사 | 남산의 부장들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우리의 그때 그 역사적 사실들을 재각색하여 만든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있습니다.
그때의 역사에 관하여 한 번 더 되짚어 보며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곁엔 내가 있잖아" 라는 명대사와 함께 정말로 사실 그래도 믿고 하면 큰일 난다는 교훈을 보여주며 영화 남산의 부장들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느와르, 범죄, 미스터리, 서스펜스, 액션, 시대극, 첩보, 정치, 피카레스크, 고어
감독 : 우민호
각본 : 이지민
출연진 :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개봉일 : 2020년 01월 22일
평점 : 8.46
스트리밍 : tvN , NETFLIX, Wavve, Whatch, 쿠팡
기획 의도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1970년 10월 26일, 중앙 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성민)을 암살한다. 이 사건의 40일 전, 미국에서는 전 중앙 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청문회를 통해 전 세계에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며 파란을 일으킨다. 그를 막기 위해 중앙 정보부장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나서고,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 세력들과 반대 세력들이 뒤섞이기 시작하는데... 흔들린 충성, 그날의 총성
여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영화에서는 과장스럽지 않고 절제된 배우들의 연기의 합이 매우 좋아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1위 자리를 굳건하게 막아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남산의 부장들 결말을 살펴보자면...
우리가 잘 알듯 김규평(이병헌)은 박통(이성민)을 처단하고 참모총장을 모시고 본인의 본거지인 중앙정보부가 있는 남산으로 가서 군을 장악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참모총장의 설득에 못이겨 육군 본부로 가면서 김규평은 그자리에서 체포되며 사형을 받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만약, 이병헌이 참모총장의 말을 안 듣고 중앙정보부로 가게 되었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코믹함을 최대한 배제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쫄깃했던 영화 남산의 부장들 아직 이 영화를 안 봤다면,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역사.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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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년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선택하시오
이번에도 어김없이 넷플릭스(Netflix)에 내가 좋아하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검색한 후 그의 영화 중 하나를 선택했다.
늘 그렇듯 서정적인 가족 영화일 거라 예상하며 미리 눈물을 흘릴 준비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원더풀 라이프(Wonderful Life)'는 예상과 달리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 영화가 아닌 오히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 영화였다.
이 영화는 내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22년 동안 살아오며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선택하라. 그 기억 하나만을 품고 천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란 질문이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만을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분노하거나 슬펐던 기억은 또렷했지만 정작 행복했던 순간들은 선명하기보다 흐릿하고 넓게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어떤 기억을 품고 떠날까? 행복했던 추억이야 많지만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는 삭제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가족과의 기억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무엇 하나 지우고 싶은 순간이 없었기에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나는 가족들과 함께했던 첫 유럽 여행을 선택하기로 했다. 현재 각자의 바쁜 일상 속에서 다섯 명이 함께 긴 휴가를 떠나는 것이 어려워져 그때의 추억들이 더욱 그립고 아쉬워진다. 오롯이 우리끼리 떠난 여행이었고 가족들과 마주 앉아 진득하게 이야기를 하고 웃을 수 있었던 순간만이 있던 추억이었다. 그 여행 속에서 나는 사랑받고 있음을 온전히 느꼈고 그만큼의 따뜻한 사랑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부모님 곁에서 자고 싶어 사소한 다툼을 벌인 것과 관광을 하지 않고 잠만 자 혼났던 기억들이 지금은 그리운 장면이 됐다. 어쩌면 그 장면들은 시간이 흐르며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때의 작은 다툼조차 따뜻한 추억이 돼버린 지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가족의 추억은 특별할 것 없이 쌓여가지만 결국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장면이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모습은 곧 삶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영화는 죽음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다시 삶을 비춘다. ‘원더풀 라이프’ 속 천국은 단순히 선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다. 오직 행복한 기억을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갈 수 있다. 영화 속 사람들은 △디즈니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탔던 기억△생후 5개월 되던 가을 오후에 알몸으로 햇볕을 쬐던 추억△전쟁 속 적군에게 밥을 얻어먹었던 기억 등을 선택한다. 인간은 풍요 속에서도 불행을 느끼고 반대로 고난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삶의 행복과 불행은 외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결국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지며 그 끝에 마주하는 죽음의 얼굴 또한 결정된다.
아름다운 추억은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우린 과거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미화하고 윤색한다. 때론 사실보다 더 아름답고 극적으로 덧칠한다. 그렇게 추억은 원래보다 더 빛나고 때론 실제와는 다른 모습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움은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진짜든 가짜든 우린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대로 살아간다. 지나간 순간이 아무리 덧칠된 것이라 해도 그 기억이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닐까? 어쩌면 아름다움은 사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추억은 하나의 영화고 우리는 그의 기억을 편집하는 영화감독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은 편집해 삭제하고 인생의 중요한 추억은 명장면으로 남긴다. 어떤 순간을 남길지 어떤 장면을 더 아름답게 빛낼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이에 나는 앞으로의 내 인생이 지나온 날들처럼 더 많은 따뜻한 장면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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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극장과 같은 영화 <더 랍스터>
1. ’더 랍스터’의 첫 번째 세계인 호텔은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는 곳이다. 극단적인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진 세계이기도 하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이혼을 하고 호텔에 들어온다. 데이비드는 커플이 되지 못할 시 스스로 랍스터가 되길 원한다. 100년 가까이 살고, 무한한 번식을 하고, 귀족처럼 푸른 피를 가졌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어찌됐든 데이비드는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성에게 구애를 하거나, 커플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공통점’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감정이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감추는 것 보다 더 어렵다’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작정한 듯 찔러도 피 한방울 날 것 같지 않은 냉정한 여성에게 ‘비정한 여자의 말투와 짧은 머리가 마음에 든다’고 구애를 하기 시작한다.
물론 자기도 냉정한 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감정을 감추는 일이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니어서 여성과 커플은 성사 되지만 형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모습 그녀 앞에서 그는 끝까지 연기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이 세계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없는 감정 또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사회의 시스템에 100% 순응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러기에는 마음이 너무 약한 사람이었거나, 자기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닐까 싶다.
2. 데이비드는 호텔을 뛰쳐나와 숲 속으로 오게 된다. 이 곳은 자유로운 삶은 보장받는 대신, 사랑을 금지하는 곳이다. 호텔의 세계와는 다른 극단적인 이분법의 세계이다. 여기서 데이비드는 아이러니 하게도 근시라는 ‘공통점’이 있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절대적으로 사랑을 금지하는 숲 속의 리더에게 사랑이 발각되고 근시의 여성은 시력을 잃게 된다. 공통점이 사라진 데이비드는 다른 공통점을 찾게 된다. 결국 숲 속으로부터 도망쳐 도시로 오게 되고, 그 또한 자신의 시력을 잃게하여 사랑의 매개체의 ‘공통점’을 유지하려 한다.
3. 커플이 된다는 것은 사랑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랑은 보이지 않고 그저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기계적으로 공통점을 찾고 커플이 되려한다. 현실 안에서 사랑하기에 앞서 조건을 궁금해한다. 나와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하겠고, 수준이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슷하게도 현실의 우리도 사회가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을 ‘진짜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4. 호텔도 숲 속도 모두 정해 놓은 시스템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중간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의심하지 않고 아무런 반감없이 시스템에 맞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행복을 그리고 사랑을 정해진 시스템에 맞춰 살면 편할 수도 있겠지만 정해진 시스템과 정해놓은 사회적인 강요에서 조금씩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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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이라는 공포
*해리 포터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중간중간 노출됩니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프랜차이즈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한편 판타지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어두운 색채로 아쉽다는 평을 듣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시리즈 중 박스오피스 성적이 가장 낮지만 나름의 매니아 층이 양산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금번 어린이날에는 지금까지 재개봉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순서를 거슬러 재재개봉되었다(현재 4편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까지 4D 재개봉되었음). 영화 자체를 공포영화와 비슷하게 연출하기도 했지만 감독의 편을 들어준다면 원작 자체가 상당히 어두운 색채를 띠고 있기도 하다. 특히 사이빌 트릴로니 교수(엠마 톰슨 분)가 무언가에 빙의한 듯 예언을 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읽으면서 오싹한 느낌을 주었을 정도다. 사실 원작 시리즈 중에서는 특별하게 크게 평가받는 작품은 아니지만 다음 편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성장통의 서막을 알리는 동시에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 분)의 유일한 가족인 대부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 분)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건널목으로 기능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통해 해리는 때로는 모종의 이유로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생각보다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는 비록 숙적 볼드모트를 무찌르지는 못했지만 볼드모트에게 타격을 입히고 전교생의 이목을 끄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마법사의 돌을 파괴하고 퀴렐 교수가 죽음으로써 볼드모트의 회생 시도가 저지되며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에게 이젠 교내에서 그 사건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고 이야기해 준다. 심지어 그 사건으로 인해 해리와 해리의 친구들이 기숙사 점수를 무더기로 퍼받으며 그리핀도르 기숙사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때문에 웹상에서 덤블도어 교수의 그리핀도르 편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듬해 비밀의 방에 있던 톰 리들의 일기장을 파괴하고 지니를 구한 해리는 연회장에서 환영받고 한 학년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연회로 그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이르러 해리는 부모님의 배신자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 자신의 대부와 살아갈 날을 꿈꾸지만 피터 페티그루(티모시 스펄 분)의 탈주로 진실을 암흑 속에 묻는 신세가 된다. 외려 무고한 시리우스 블랙을 디멘터들로부터 간신히 탈출시키고도 교수를 공격한 학생이 되었을 뿐이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한 해가 끝난 것을 축하하는 호그와트의 화려한 연회로 끝맺지 못하고 시리우스가 이름조차 쓰지 못하고 보낸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로 마무리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서사 자체로 비극이 난무하기도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많은 장면을 공포영화에 가깝게 연출했다. 해리가 프리벳 가에서 가출해 처음 죽음의 개(정체는 모두들 아실듯)를 마주치는 장면이나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디멘터가 객실로 들어서는 장면 모두 상당히 공포스럽다. 이전 두 영화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길은 언제나 햇살로 가득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제 성장통의 길목에 들어선 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호그와트로 진입하며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공포와 마주한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냐고 묻자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분)는 무섭게도(!)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이외에도 자신이 유일하게 자신있었던 퀴디치에서조차 비오는 날씨와 디멘터라는 벽에 부딪혀 첫 패배를 경험한 해리는 자신이 아끼던 빗자루 님부스 2000마저 잃고 만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진실 아닌 진실을 듣게 된 해리는 성장기를 맞이한 대담한 청소년답게 시리우스 블랙이 찾아왔으면 하고 바란다. 앞으로도 해리는 수많은 비극을 맞이할 예정(..)이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그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은 이를 공포스럽게 연출함으로써 성장은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는, 일종의 공포와도 같다고 선언한다.
돌이켜 보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언제나 성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인 <그래비티>는 라이언(산드라 블록 분)이 자신의 과거를 딛고 한발 나아가 재탄생하는 이야기였으며 마찬가지로 발 디딜 곳 없는 우주 공간에서의 공포를 놀랍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라이언은 성장 혹은 재탄생하기 위해 죽음에 이르는 극한의 공포를 겪어야만 했다. 역시나 세계적인 마니아층을 양산한 <칠드런 오브 맨>도 마찬가지로 죽음에 관한 비유(와 실제 죽음)로 넘쳐난다. 그리고 여러 작품을 거쳐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에서 꺼낸 <로마>는 대놓고 자신의 성장담이기도 했다. <로마> 또한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동시에 처연하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로마>라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본다면 어쩌면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성장기를 통해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공포가 동반되며, 때로는 죽음이 함께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성장담 그 자체인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만났을 때, 그리고 시리즈 가운데 가장 어두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났을 때 그 스토리텔링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아닐까. 이후 스케줄 문제로 시리즈에서 하차했다고 하는데 크리스 콜럼버스가 떠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쿠아론 감독이 도맡았다면 이후 작품들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마이크 뉴웰,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솔직히 성에 안 찬다).
한편 쿠아론의 성장담이 비극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청소년 판타지 영화답게 서비스 장면도 쿠아론 감독은 잊지 않았다. 그리핀도르 남학생 기숙사에서 동물 젤리를 먹으며 장난치는 호그와트 학생들의 모습이나 호그스미드에서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네빌의 사탕을 훔치는 해리 등 곳곳에는 풋풋한 성장기 청소년들의 모습도 종종 보인다. 순간이지만 해리는 더즐리네를 벗어나 시리우스와 함께 사는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하며, 아빠 제임스 포터가 자신을 구하러 와줬을 거라는 환상에 행복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구한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해리는 제임스를 만나지 못한 것에 슬퍼하는 대신 어려운 패트로누스 마법을 해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히포그리프 벅빅을 처음 만나 당황했던 해리는 용감하게 올라타 호그와트를 한바퀴 돌고는 빗자루를 타는 것과는 또 다른 짜릿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해가 마무리되었을 때, 비록 본인이 원했던 바로 그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빗자루인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는 인생이라는 기나긴 비극에서 다시 한번 순간이나마 짧은 환희를 경험한다. 쿠아론 감독은 결국 해리에게 중요한 소품인 빗자루를 부러뜨리고 새로운 빗자루를 선사하면서 성장이란 이런 것이라고, 갖고 있던 것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얻는 환희와도 같다고 말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영화마다 달랐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마지막 장면이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마무리에서 독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석연치 않은 감정을 느꼈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도맡아온 슬리데린 기숙사에게 한방 먹이고 떨떠름한 스네이프 교수(알란 릭맨 분)의 표정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전 시리즈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해리가 믿고 따랐던 루핀 교수(데이빗 튤리스 분)는 결국 어둠의 마법 방어술 자리를 사임했고 해리의 대부 시리우스는 여전히 누명을 벗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해석했던 바와는 달랐지만 트릴로니 교수의 불길한 예언은 결국 현실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울적해하는 해리 앞에서 루핀 교수는 바뀐 게 없지 않다며 해리를 달랜다. 해리는 무고한 생명을 구했으며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궁극적으로는 거대한 악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선인에 대한 이야기도 결코 잊지 않는다. 원작자인 J.K.롤링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독자들이 항상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은 않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무섭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은 해리에게 인간은 보이는 그대로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처음 맞닥뜨리게 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 이르러 해리는 생각보다 많은 악이 세상에 숨어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이 바꾸려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세계의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 이야기는 많지 않다. 환상의 세계임에도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정의로운 곳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해리는 이제 비가 내리고 디멘터가 활보하는, 어두운 성장의 터널을 거치며 세상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배운다. 쿠아론 감독은 이 과정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와중에도 인생이라는 비극을 관통해나가며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극을 놓치지 않았다. 해리가 처음 패트로누스 마법을 성공시키는 순간 떠올린 기억은 그 자체로 온전히 행복한 기억이 아니며 해리 스스로 복잡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쿠아론 감독의 인생관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이를 몇 번이고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인생의 행운이자 희극이 아닐까. 이런 관객의 기대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크레딧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해리는 속삭인다. "마법의 장난 끝".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레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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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어데블 | 자경단이냐, 변호사냐, 그것이 문제로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슈퍼히어로의 도덕적 딜레마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말했다. 법은 외적인 행위에 대한 강제적 규범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율적이고 내면적 동기에서 기인하는 도덕의 영역 중 일부만 제한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법과 도덕은 딜레마를 낳는다. 도덕적으로는 옳아도 법적으로는 규제돼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답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이 딜레마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는 기본적으로 현행법을 위반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범죄자다. 그렇기에 일부 시민, 경찰, 검사나 정치인은 그를 경계하고 통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민들은 슈퍼히어로의 선한 의도를 믿기에 그가 옳은 일을 할 거라고 기대한다. 그들의 희망은 슈퍼히어로가 의심받고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영웅다운 일을 해내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슈퍼히어로는 부상당하거나 강력한 적이 등장했을 때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도덕적 동기를 의심하고, 주어진 법에 순응하려 할 때 그는 약해진다. <스파이더맨 2> 속 피터 파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브루스 웨인, <어벤져스: 엔드게임> 속 토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젊은 찰스 자비에까지. 그들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순간 정체성을 잃고, 위기에 처한다.
디즈니+로 공개된 MCU의 새로운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이하 <데어데블>)도 마찬가지다. <데어데블>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넷플릭스에서 시즌 3까지 공개되었던 <마블 데어데블>의 후속작으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변호사 쉬헐크>에서 먼저 카메오로 등장한 '맷 머독/데어데블'(찰리 콕스)의 MCU 복귀작 역시 역시 슈퍼히어로의 도덕적 딜레마를 다룬다.
익숙한 고뇌
<데어데블>은 데어데블로서의 활동을 포기하는 맷 머독을 비추며 시작한다. 친구인 '포기 넬슨'(엘든 헨슨), '캐런 페이지'(데보라 앤 월)와 평온한 저녁을 보내던 와중에 맷은 '포인덱스터/불스아이'(윌슨 베델)의 기습을 받는다. 맷은 포인덱스터를 제압하는 데 성공하지만, 총에 맞은 포기가 사망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포인덱스터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이려 한다. 데어데블만의 불살주의를 지키지 못한 것.
포기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캐런마저 뉴욕을 떠나자 맷은 깊이 고뇌한다. 불살주의마저 지키지 못한 이상 데어데블이 과연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지, 폭력으로써 범죄에 맞서는 자경단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회의한다. 고민 끝에 그는 자기 내면의 규범이 아니라 외적 규범, 곧 법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데어데블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한 엘리트 맹인 변호사 맷 머독은 합법적으로 세상을 바꿀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그 일환으로 맷은 경찰을 죽였다는 혐의로 체포된 '헥터 아얄라'(카마레 데 로스 레예스)의 변호를 맡는다. 그는 헥터가 부패 경찰에 의해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헥터가 사실 '화이트 타이거'라는 자경단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를 도왔다는 전력을 강조한 끝에 무죄를 받아낸다.
하지만 헥터가 무죄 판결을 받은 바로 그날 밤에 살해당하자 맷은 다시 한번 좌절한다. 합법적인 방식으로 선을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마저 배신당하자 그는 데어데블 마스크를 다시 만지작거린다. 법이 무용하다면, 불법이라 해도 데어데블의 힘과 능력을 이용하는 게 도덕적으로 옳은 게 아닐까 자문하면서.
시의적절한 빌런의 등장
여기까지만 보면 <데어데블>의 서사나 메시지는 특별하지 않다. 다른 히어로들이 경험한 도덕적 딜레마, 정체성의 위기를 맷 머독도 똑같이 경험한다. 그러나 <데어데블>에는 두 가지 특이점이 있다. 첫 번째는 <호크아이>와 <에코>에 얼굴을 비추며 MCU에 복귀한 빌런, '윌슨 피스크/킹핀'(빈센트 도노프리오)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악역으로 묘사된 킹핀 덕분에 데어데블의 고뇌는 다른 히어로들과 다른 결을 갖추는 데 성공한다.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다가 돌아온 MCU의 '블립' 사건 이후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진 뉴욕. 킹핀은 이를 데어데블, 화이트 타이거, 스파이더맨 같은 자경단의 탓으로 돌리면서 대중들의 불안함과 기대감을 공략한다. '레드 후크 부두'와 같은 우범지대를 재개발하고, 영장을 팔요로 하지 않는 초법적 권한을 가진 자경단 특별 수사대 출범과 같은 사이다 공약을 내세운 끝에 킹핀은 뉴욕 시장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다.
킹핀의 정치적 성공은 극우 정치인의 등장을 MCU에 맞게 각색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대중의 사회적 불만과 불안함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들의 지지에 힘입어 민주적으로 집권한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후에는 합법적인 척 불법적인 행위를 일삼는다. 일례로 백악관에 재입성한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일 때 사적으로 발행한 밈코인을 위해 대통령이라는 직위와 백악관을 동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부두 재개발 사업을 사업 확장과 탈세에 악용하려는 킹핀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특히 킹핀이 자기가 사주한 테러를 명분 삼아 뉴욕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순간, 맷 머독의 고뇌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불법적인 내용을 형식적 정당성으로 가리려는 킹핀의 독재를 합법적 수단은 막지 못한다. 이에 법과 도덕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맷은 데어데블의 길을 다시 걷기로 결심한다. 설령 위법하더라도 도덕적으로는 옳은 길을 선택해야 비로소 킹핀에게 맞설 수 있을 테니까. 이처럼 히어로의 정체성 회복 서사를 사회 정의를 바로잡는 공동체 차원의 이야기로 확장하면서 <데어데블>은 차별화에 성공한다.
보여주지 않아서 부각되는 갈등
두 번째는 <데어데블>의 구조와 연출이다. <데어데블>에서는 히어로와 빌런이 좀처럼 만나지 않는다. 데어데블과 킹핀은 1화와 8화에서 각각 한 번씩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 접점이 없다. 둘이 한 액션 시퀀스에 함께 등장하는 장면도 없다. 그 대신 드라마는 그들을 편집으로 이어 붙여서 킹핀과 데어데블이 서로를 의식하고,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다음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가시적 충돌을 보여주지 않는 연출은 오히려 그들의 신념을 부각하는 데 효과적이다. 윌슨 피스크가 뉴욕 시장과 킹핀 중 후자로 거듭나고, 맷이 변호사가 아닌 데어데블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점진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과 흥분으로 물드는 뉴욕의 밤거리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는 킹핀과 혼란스러운 거리의 소음을 들으며 데어데블의 필요성을 깨닫는 맷 머독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드라마의 메시지도 구체화한다. <데어데블>은 다음 시즌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질 킹핀과 데어데블의 싸움을 예고하며 막을 내린다. 이때 카메라는 킹핀이나 맷 머독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바텐더, 전직 경찰, 변호사, 상담사, 기자와 같은 일반 시민들의 얼굴을 한 명씩 비추고, 그들이 킹핀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길과 맷을 도와 킹핀에게 맞서는 길 중 어떤 선택지를 골랐는지 암시한다.
이는 시민의 역할, 곧 시민적 덕성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설령 법을 위반할지언정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실질적인 위법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가 시민에게 주어져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즉, 만약 히어로와 빌런의 대결에만 포커스를 맞췄다면 상대적으로 희미해졌을 사회적, 공동체적 차원의 메시지를 결말을 통해 다시 한번 환기하는 셈이다.
과정을 잊게 만드는 결과물
다만 킹핀과 맷 머독을 일부러 조우시키지 않은 선택은 일장일단이 있다. 서사적으로는 영리하지만, 장르적으로는 아쉬움을 남긴다. 히어로와 빌런이 좀처럼 만나지 않으니 절대적인 액션 분량이 줄어들고, 클라이맥스라고 할 만한 장면도 찾기 어려워지기 때문. 데어데블의 초인적 감각을 살린 고유의 액션 스타일은 건재하지만, 슈퍼히어로 장르의 쾌감을 살리지는 못한 것. 결국 다음 시즌을 위한 빌드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액션씬의 부재는 잡음이 많았던 제작 과정의 여파처럼도 보인다. <데어데블>은 본래 <마블 데어데블>과는 달리 법정물로 기획됐지만, 내부 시사회 평가가 좋지 않자 촬영 도중 작가와 감독들을 해고한 뒤 방향성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새롭게 추가된 에피소드인 1, 8, 9화에만 액션 시퀀스가 집중된 것은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데어데블의 MCU의 복귀는 아쉽더라도 충분히 성공적인 듯하다. 제작 과정의 난맥상을 고려했을 때 데어데블과 킹핀의 첫 발걸음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서사와 시의적절한 메시지로 꽉 차 있으니까. 이에 더해 '카말라 칸/미스 마블'의 아버지인 '유수프 칸' 같은 캐릭터를 활용해 MCU와의 연계도 있지 않았으니 <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기존 팬들도, MCU 팬들도 모두 만족할 후속작 겸 복귀작처럼 보인다.
Exceeds Exectations 기대 이상
캐릭터 서사도, 현실적 맥락도 놓치지 않고 MCU에 안착한 헬스키친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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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의미에서든 절반의 성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무기 ‘텐 링즈’의 힘을 이용해 수세기 동안 끊임없이 더 강한 권력을 쫓아온 '웬 우(양자 위)'. 만다린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아버지 웬 우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암살자로 훈련을 받아온 '샹치(시무 리우)'는 어느 날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도망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둘도 없는 친구 '케이티(아콰피나)'를 만나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아버지의 테러 조직 텐 링즈의 습격을 받은 후 그의 야욕이 자신은 물론 동생 '샹리(장멍얼)'에게까지 미친 것을 눈치챈 샹치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어머니 '장 리(진법랍)'의 고향이자 신비의 마을인 탈로로 향한다.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힘과 관련해 이모 '장 난(양자경)'의 도움을 받으면서 샹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거이자 두려움인 아버지 웬 우와의 전투를 준비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에서 <블랙 위도우> 다음으로 개봉한 두 번째 영화다. 현재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 중인 드라마를 포함하면 페이즈 4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다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페이즈 4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나온 영화와 드라마들이 어디까지나 이른바 '인피니티 사가'의 부록이었던 것에 비해, <샹치>는 <캡틴 마블> 이후 2년 만에 마블이 선보인 새로운 히어로인 만큼 페이즈 4라는 새로운 시대의 막을 알리기에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첫 선을 보인 샹치라는 캐릭터는 물론 그와 텐 링즈를 중심으로 암시되는 MCU의 미래 모두 불안감을 배제할 수 없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는 샹치라는 새로운 히어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소개한다. 첫 번째는 액션으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전반에는 <와호장룡>이나 <살파랑>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국 무협 영화의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정교하고 화려한 합을 맞춰서 마치 하나의 춤을 추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액션을 원테이크로 선보이는 것이다. 그 안에서 웬 우의 절도 있는 움직임과 장 난 혹은 장 리의 유려하고 부드러운 선이 이루는 대조, 즉 상이한 액션 스타일의 조화를 통해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낸다. 일례로 웬우와 장 리의 대련은 사랑의 시작을, 웬우와 샹치의 대결은 부자의 갈등과 화합 등을 격한 춤에 싣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단지 중국의 전통을 오마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재해석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대마무 숲에서 펼쳐지는 웬 우와 장 리의 맞대결이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전형적인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마카오 고층 빌딩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가건물에서 샹치와 샤링이 텐 링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이는 것은 대나무 숲이라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이소룡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동양인 히어로를 21세기에 소개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간 마블 영화들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신선한 스펙터클로 무장한 것도 흥미롭다. 새로운 무기인 텐 링즈의 활용은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 존재감은 토르의 묠니르 혹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비견될만하다. 이에 더해 동양 판타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용과 그에 맞대응하는 존재인 서양의 악마적 존재가 펼치는 대결은 같은 디즈니 작품이자 동양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연상시키면서 마치 괴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색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문제는 영화가 새로운 히어로를 소개하는 두 번째 방식에 있다. 영웅 서사의 구조적 측면에서 샹치라는 캐릭터는 결코 MCU에 안착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샹치는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아버지 죽이기 신화의 전형을 따른다. 주인공인 아들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아버지의 뜻과 철학을 수용하고,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아버지를 꺾어야 한다. 실제로 샹치에게 웬 우는 그의 모든 기술, 힘과 뜻을 전수하면서도 자신의 방식을 아들에게 강제하는 두려운 존재다. 이때 샹치는 아버지를 꺾는 대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도 알려주었지만 그가 잠시 잊고 있었던 가르침으로 그를 설득하려 한다. 그래서 텐 링즈를 이용해 파괴적인 전투를 벌이는 웬 우 앞에서 샹치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상대방까지 포용하는 어머니의 방식으로 대항한다.
그런데 이 부자 관계는 사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 <아이언 맨> 속 토니 스타크와 하워드 스타크, <토르> 시리즈 속 오딘과 로키의 관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익숙하다. 그래서 영화는 샹치-웬 우의 관계에 역사, 사회적 맥락을 덧붙이며 단순한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다채롭게 변주한다. 그 중심에는 샹치의 조력자인 샹리와 케이티가 있다. 예를 들어 샹치의 동생이지만 아버지에게는 거의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오빠가 받는 교육도 공식적으로 허락받지 못했던 샹리는 전통적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웬 우-샹치의 부자 관계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아버지 죽이기 신화를 변주하는 셈이다. 이 상징성은 마카오에서 거대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그녀가 아버지의 제국을 차지할 수 없다면 자신의 것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으며, 두 번째 쿠키영상까지 보고 나면 더욱 확실해진다.
한편 샹치의 절친인 케이티는 중국계 미국인(넓게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초반부에 카메라는 중국말을 쓰고 중국 전통대로 생활하는 할머니, 미국인이고 영어를 사용하지만 사고방식은 중국인인 어머니, 그리고 외관만 동양인일 뿐 보통의 미국 사람인 케이티 간의 갈등을 비춘다. 웬 우 - 샹치의 부자 관계를 성공을 위해 이민을 선택한 부모 세대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자녀 세대의 대립, 가정과 사회 사이의 문화적 차이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아시아계 이민자 2세의 이야기로 간략하게나마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초반부 배경인 샌프란시스코가 골드러시와 미국 대륙 횡단 철도 공사의 영향 때문에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한 첫 번째 도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샹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아픔을 다룬 <블랙 팬서>와 궤를 같이 하는 면이 있다.
문제는 샹치, 샹리, 케이티가 각각 뜻하는 아버지 죽이기 이야기가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케이티의 이야기를 다른 주인공들과 하나로 연결시키기에는 감정적 유대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주인공 일행의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서사를 굳이 함께 붙여 놓을 공통분모가 부족하고, 케이티의 이야기는 중반부부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유달리 겉도는 경향을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웬 우의 가족사나 텐 링즈의 역사에 관한 정보가 굉장히 단편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플래시 백의 형태로 이들의 과거사가 등장하다 보니 샹치나 샹리가 아버지를 기필코 막아 세우려고 하는 동기나 각오는 머리로 이해되는 선에서만 머무를 뿐,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이는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 차원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만다린의 존재와 텐 링즈라는 테러집단은 <아이언 맨> 시리즈에서 10년 전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암시가 되었던 존재이기에 이처럼 빈약한 묘사는 팬들의 호기심과 갈증을 모두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는 곧 양조위의 웬 우, 만다린이라는 빌런의 존재감이 히어로인 샹치를 넘어설 정도로 뛰어나게 느껴지는 이유로 이어진다. 부족한 감정적 유대와 가족사를 대신해 배우의 존재, 그의 카리스마와 여유로운 분위기만이 영화에 통일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샹치에게 향해야 할 삼중의 서사로 쌓아 올린 스포트라이트마저 자연히 빌런에게 쏠리는 것이다. 그 결과 샹치의 데뷔전은 데뷔 자체로만 만족해야 하는 애매한 성공에 머무른다.
이에 더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확장되는 MCU의 세계관 역시 절반만 성공적이다. 물론 MCU만의 매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아이언맨 3>에서 가짜 만다린으로 등장했던 '트레버 슬래터리(벤 킹슬리)'의 재등장이 대표적이다. 반쯤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이미 각인된 이 캐릭터는 전개 상의 구멍을 피해 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곤경에 처한 샹치 일행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적재적소에 제공한다거나, 자칫 작위적이나 편의적인 전개로 보일 수 있는 대목에서도 그는 모든 것을 말이 되게 만드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빠지지 않은 MCU 특유의 유머 역시 예상외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칫 가벼울 수 있는 일부 캐릭터들의 변심에 최소한의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페이즈 4의 기반을 놓아야 한다는 과제를 수행하다 보니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텐 링즈라는 무기가 수천 년 간 존재했고 만다린이 천 년간 늙지 않았다는 점, 또 만다린의 존재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본작의 의문점들을 일부러 해결하지 않는 게 대표적인 예시다. 마블의 다음 영화인 <이터널스>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인류 문명의 숨은 전파자이자 수호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기에 이에 대한 복선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후반부에 장르가 히어로 영화에서 괴수물로 급격히 변하면서 히어로와 빌런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고 괴리감을 안기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급전개는 최근에 큰 화제를 모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예고편에서도 볼 수 있는 멀티버스와 우주로의 세계관 확장을 염두에 둔 전개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10여 년 전 복선 뿌리기에 급급하던 마블처럼 텐 링즈를 인피니티 스톤처럼 활용한 결과 이번에도 단독 영화의 완성도에 큰 부담을 안기는 셈이다. 이렇게 한 편의 영화로서도, 시리즈의 한 부속으로서도 뚜렷한 명암을 보여준 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데뷔전을 마무리한다.
A(Acceptable, 무난함)
아직은 안갯속에 쌓여 있는 샹치와 마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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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서사의 가능성
한국형 서사의 가능성
오늘날 한국은 김구 선생님이 꿈꾸었던 ‘문화강국’의 모습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전 세계가 ‘한국적인 것’을 궁금해하고, 기꺼이 소비하며, 스스로의 문화로 재해석한다. 곧 ‘한국적인 것’이 트렌드다.
지난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은 성공 기로를 달리고 있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차트 최상위권에 올랐고, 41개국 1위에 진입했다. 영어권 영화 중에서는 전 세계 2위에 올랐으며, 첫 3일 동안 9.2백만 뷰, 총 시청시간 15.4백만 시간 기록했다. OST 앨범이 미국 아이튠즈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수록곡 중 ‘Golden’ 등은 각국 음악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진입했다. 뚜렷한 성공 지표를 보유한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단히 한국적이다.
전 세계적 대중문화로 떠오른 케이팝을 한국의 무속신앙과 결합했다. 아이돌은 화려한 군무를 추고 노래를 부르며 귀신을 퇴치하고 세계를 구한다. 미국 제작사 소니에서 제작을 맡았으나 국내 인력을 고용하여 최대한 고증을 살리고자 했다. 먹는 음식, 옷을 비롯하여 캐릭터의 입 모양, 자세와 같은 사소한 부분들에도 신경을 썼다. 고증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오로지 국내팬이 아닌 해외팬 입장에서 아이돌 활동이 그려졌다는 점이다.
세계는 넓고, 한국은 작다. ‘K-Culture’가 세계적으로 대중성을 가지려면 문화적 원주민의 소비를 넘어서 수많은 외부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은 예로부터 노동요를 부르며 노동을 하는 ‘흥의 민족’이다. 집단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감정 몰입에 익숙하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신파’적인 이유다. 따라서 한국형 서사 구조는 ‘참여’와 ‘몰입’이 중요시되는 현대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강점을 갖는다.
<기생충>은 계급 서사와 블랙코미디를 결합해 아카데미를 휩쓸고, <오징어 게임>이 생존 게임에 한국적 정서를 더해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의 독자적인 케이팝 아이돌 문화와 전통 무속 신화를 결합해 새로운 한국적 이야기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 이런 실험이 쉽지 않다. 기성 매체는 검증된 장르와 익숙한 서사 구조 내에서 비슷한 콘텐츠를 양산한다. 글로벌을 타겟으로 하는 넷플릭스에 비해 위험을 감수할 자본과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있다.
한국에서 새로운 서사로 발굴될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는 아직 많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글로벌 기획을 통해 한국 서사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내에서 더 많은 시도가 이뤄지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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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액션은 줄고 좀비도 줄고 지루함은 늘어난 리부트!
콘솔 게임을 원작으로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새로운 리부트 영화죠.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영화인데요.
주인공 클레어 역할로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주연을 맡았어요.
아직까지는 레지던트 이블 하면,
과거 밀라 요보비치가 앨리스로 출연했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더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스타일리쉬한 액션이 중심이되었던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이번 리부트된 영화는 액션이 줄었는데요.
그럼 어떤 부분이 달라졌고, 영화는 어떨까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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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ug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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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스타트는 지금부터> 메인 예고편
도쿄의 직장을 그만두고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미츠오미’는
대를 이어 가구점 후계자가 되겠다는 다짐과 달리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츠오미’는 구마이 할아버지의 양아들 ‘야마토’와 농원 일을 돕게 된다.
동갑내기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미츠오미’는 밝아 보이지만 아픈 상처를 지닌 ‘야마토’에게 점점 마음이 쓰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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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티저 예고편
다시 시작된 마법 세계의 혼돈!
운명을 건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본격적인 대결,
과연, 뉴트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