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3-08-07 00:13:02
'모가디슈'의 친구이자 '교섭'의 형님쯤 되는
<비공식작전> 스포일러 없는 후기
줄을 잘 서야 해
어느 날의 레바논. 두 사람이 차를 타고 있다. 임무 수행 중이다. 외교관 신분으로 타지에 온 두 사람. 치안이 불안정한 레바논이었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재석에겐 가족이 있기 때문에 아무 탈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운전 중인 두 사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 실제로 이루어졌다. 차 앞에 갑자기 어떤 차량이 끼어들더니 총기를 든 괴한이 내린다. 재석은 납치당한다.
분명 앞길이 창창할 것 같았다. 외무관 민준. 온갖 고생해서 외무고시에 붙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찬밥 신세다. 제5 공화국 시기. 막상 합격했는데 예상만큼 미래가 밝지 않았다. 이왕 외무관 일 할 거면 미국 정도는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어림없다. 학벌에 밀려난 민준. 무려 서울대 출신에 몇 기수 아래인 후배를 부러워하기만 한다.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뭐 방법이 없을까? 뾰족하게 떠오르는 수는 없다. 괜히 심술 나 후배의 책상 위 물건을 어지르는 민준. 속이라도 시원하면 다행이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길. 복도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갑자기 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민준. 수화기 너머에선 암호가 들렸다. ‘저는 대한민국 서기관 오재석입니다. 저는 살아있습니다’ 당황한 민준.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외교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또 그 스스로를 위해 주인공은 레바논 출국길에 오른다.
이 집 잘하네
<비공식 작전>은 김성훈 감독의 주특기가 적절히 잘 들어간 영화다. 전작들과 겹쳐지는 설정이 몇 있다. <끝까지 간다>에서는 두 남자가 대결구도를 이룬다. 이야기의 끝을 모를 정도로 강력한 서스펜스 역시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던 요소 중 하나다. 틈새마다 담겨있는 유머도 장르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음 작품 <터널>은 거대한 재난영화이면서 사회 시스템에 대해 코멘트하는 영화다. 터널을 둘러싼 설계,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보도윤리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사건들이 떠오른다. 이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사건’은 사실상 영화의 진주인공으로 기능한다. 주인공의 처절함과 터널 외부 환경에 대조를 둬 차이점을 부각했다.
이 <비공식작전>은 전작의 특성들이 이어진다. 영화는 후반부까지 서스펜스를 통해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영화는 크게 두 소재(와 인물)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우선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오재석을 구해라’다. 여기에 주인공 민준이 욕망하는 부분인 출세가 극 중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는 인물설정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판수 덕에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다른 서스펜스 요소인 ‘오재석을 구할 돈을 구해라’도 있다. 이 영화에서 판수는 이야기에서 민준만큼 중요한 주인공이다. 장르적으로 톤 앤 매너를 가볍게 유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판수 스스로의 욕망이 이야기에서 핵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두 서스펜스를 적절하게 유지하다가 한 번에 합쳐 엔딩즈음에 어떤 장면으로 환기시킨다. 이를 위한 각본의 인과관계를 잘 설정했다는 점, 연출로 이를 살린 점은 김성훈 감독의 경험이 오롯이 들어간 부분이다.
두 주인공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은 네 사람이다. 주인공 민준, 납치당한 재석, 택시운전사 판수,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등장하는’ 한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판수는 실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인물의 어떤 특성은 후반부 사건전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판수 서사는 이 영화에서 낯선 이야기에 넓이를 더한다. 익숙하기도 하다. 이 판수가 이야기에서 어떻게 역할하는지는 <끝까지 간다>에서 봤었다. 그러나 본작에서 둔 차이점은 판수가 자연재해같이 불현듯 찾아오는 악당이 아니라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하는 점이었다. 영화의 소재 특성상 올해 개봉했던 <교섭>이 떠오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 <교섭>과의 차이점은 인물의 입체성에서 온다. 입체적인 판수, 그 판수만큼이나 입체적인 민준이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교섭>에서 황정민 배우가 맡았던 역할은 성자 같아서 재미가 없는 것과 대조되는 지점이다.
영화에서 빌런 캐릭터로서 활약하는 인물이 있다. 김응수 배우가 맡은 안기부장이다. 이 이야기에서 안기부 내지 제5공화국이라는 세팅은 겉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2009년 즈음으로 옮겨도 이야기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안기부가 외교부에 하는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행정부처는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왜 안기부가 이런 역할을 하는가’라는 점은 ‘비공식 작전’이 제목인 이유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가 민준에게 던진 질문은 ‘네가 하는 고생 그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코멘트하고 있는지를 사진만 등장하고 실질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캐릭터에서 알 수 있다. 당시 안기부의 위상을 생각하면 더더욱 확실해진다. 이 영화가 공식적과 비공식적인 측면이 대조되어 위선적이었던 당시 시대상에 대한 코멘트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자매품 친구들
영화의 소재만 보면 <모가디슈>와 <교섭>이 떠오른다. 이 영화가 앞선 두 작품과 가지는 차이점과 공통점은 직업윤리를 다루는 방식과 액션에 있다. 영화에서 두 인물은 대비된다. 김응수 배우가 맡은 안기부장 역과 김종수 배우가 맡은 외교부 장관 역이다. 이 두 사람은 첫 등장에 입은 의상부터 대비된다. 이 대조는 영화 후반부에 어떤 장면을 통해 더 두드러진다. ‘외교부 내의 학벌로 인해 승진에 차질이 생겼다’에서 시작한 이야기라 이런 전개가 생뚱맞은 감이 없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이 장면이 엔딩부에서 ‘굳이 필요했을까’라는 점 역시 약간 의문점이 드는 구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연장선상에서 이 시퀀스는 꼭 필요했다. <교섭>에서 황정민 배우가 맡았던 역할의 단점은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 인물은 내내 거룩하기만 해서 결함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유머가 적재적소에 들어간 것이 후반부의 직업윤리에 대해 감정이입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영화의 액션에 관한 부분 역시 <모가디슈>와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루는 부분이 있다. 우선 영화를 보고 나면 <모가디슈>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디테일에 관한 부분에서는 확실히 차이점이 느껴지기는 하나 <모가디슈>를 봤던 관객분들이라면 감흥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끝까지 간다>를 봤던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에 등장한 액션들이 감독의 시그니쳐 유사하게 연출됐다는 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후반부 액션과 별개로 총기를 사용한 시퀀스를 통해 영화에서 무난한 긴장감을 만들어줘 이 영화의 메시지 이전에 상업적인 노선까지 적절히 잘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주지훈, 하정우 배우는 능청맞게 연기 정말 잘했다. 특히 하정우 배우는 전작 <수리남>에서보다 더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훨훨 날아다닌다. 반대로 조력자 캐릭터들이 살짝 작위적으로 연출된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다. 관람에 큰 영향이 갈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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