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8-11 14:55:09
나는 스크린을 찢어. 차기작이 궁금해지는 배우 최현욱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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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 이탈 체포조(D.P.) 준호와 호열이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벌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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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는 상위 1% 모범생 연시은이 타고난 두뇌와 분석력으로 학교 안팎의 폭력에 대항해가는 약한 소년의 강한 액션 성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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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청량 청춘 케미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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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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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소년소녀들의 유기농 깨발랄 성장기
[차기작]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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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11월 2주 개봉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Black Panther: Wakanda Forever , 2022
가장 혁신적인 히어로 ‘블랙 팬서’가 돌아온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와칸다'의 왕이자 블랙 팬서 '티찰라'의 죽음 이후
거대한 위협에 빠진 '와칸다'를 지키기 위한 이들의 운명을 건 전쟁과 새로운 수호자의 탄생을 예고하는 블록버스터입니다.
1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와칸다'의 모습과 깊은 바닷속 신비로운 세계인 '탈로칸'이 압도적인 비주얼로 펼쳐지는 동시에
이들이 대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이전보다 확장된 스케일과 강렬한 액션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2022년 대미를 뜨겁게 장식할 최고의 마블 스튜디오 기대작 와칸다와 탈로칸의 확장된 세계관!
이번주 추천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입니다.
첫번째 아이 FIRST CHILD , 2021
2022년 올해의 소셜 리얼리티 드라마
영화 "첫번째 아이"는 육아휴직 후 복직한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무수한 딜레마를 통해
의지할 수도 홀로 설 수도 없는 세상과 마주한 우리 시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소셜 리얼리티 드라마입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배우 박하선의 섬세한 연기와 신예 허정재 감독의 절제된 연출과 묵직한 촬영이 주목받은 작품이죠
드라마, 영화, 라디오, 예능 프로그램 등을 망라해 다양한 매체와 장르, 작품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 박하선의 스크린 주연작입니다
또한 우리 시대의 소셜 딜레마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이 돋보이는 신예 허정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전작 단편영화들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과 감각을 입증받으며 차세대 감독으로 떠오른 허정재 감독의 탄탄한 각본과 연출이 빛을 발하는 작품입니다.
우리 시대의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올해의 소셜 리얼리티 드라마!
이번주 추천영화 "첫번재 아이" 입니다.
내 친한 친구의 아침식사 我吃了那男孩一整年的早餐 , My Best Friend's Breakfast , 2022
대만 박스오피스 1위!, SNS 신드롬 실화 로맨스 원작
영화 "내 친한 친구의 아침식사"는 2015년 대만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D card에 '난 1년 동안 그 소년의 아침을 먹었다'라는 제목으로
한 여대생이 올린 실제 남친과의 귀여운 러브스토리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업로드된 게시글은 댓글과 좋아요가 5만 개를 넘으며 계속해서 입소문이 났고,
2016년에는 소설로 각색되어 여러 언어로 번역 및 출판되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실제 주인공은 2018년 결혼에 골인하며 대만 SNS를 강타한 실화 로맨스는 "내 친한 친구의 아침식사"로 탄생했습니다
1020 관객들의 취향 저격 영화! 첫사랑 먹방 로맨스!
이번주 추천영화 "내 친한 친구의 아침식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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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
흔히 '가족'이라는 단어를 보면 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와 피가 섞인 엄마, 아빠, 남매나 자매. 혹은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족 같은' 이들을 '가족'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키우던 애완동물, 나와 오랜 기간 함께한 친구, 내게 정말 소중한 존재인 이들. 현 사회에 들어서, 기존의 우리가 기억하던 '혈연' 관계로 맺어진 '가족'의 정의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어디까지를 가족이라고 보느냐에 따라 그 범위는 크게도, 좁게도 바뀔 수 있다. 이는 더는 '유전자를 나누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인공에겐, 누가 진짜 가족일까?
영화 <바튼 아카데미>
감독 알렉산더 페인
주연 폴 지아마티,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1. 모두가 떠난 순간, 우리만이 함께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학생들이 모두 떠난 학교에 꼼짝없이 발이 묶인 중년 교사 폴, 주방장 메리, 그리고 자유를 꿈꾸는 학생 앵거스가 만들어내는 잊지 못할 연말 이야기다. 폴 허넘은 방학을 맞은 바튼 아카데미에서, 방학이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담당하게 된다. 그중에는 오늘 보스턴에 가기로 했다며 수업을 일찍 끝내달라던 앵거스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 계획과 달리, 엄마가 새아빠와 단둘이 신혼여행을 가게 되어 앵거스를 데리고 갈 수 없다며 계획 취소 통보를 해 버린 것. 보스턴에 가 아빠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앵거스는 그토록 떠나고 싶어하던 학교에 남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지라고 여겼던 네 명의 학생들은 곧 '전용 헬기'가 있는 집안의 학생을 따라, 부모님의 허가를 받고 스키를 타러 학교를 떠난다. 여기서도 앵거스는 예외다. 다른 학생들의 부모님이 전화를 받고 허락을 해 준 반면, 앵거스의 엄마는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앵거스의 답답한 마음을 모르는 듯 엄마의 허락은 들려올 리가 없고, 결국 앵거스는 학교에 남은 단 한 명의 학생이 되어 엄격하고 고지식한 역사교사 폴 허넘과 함께 방학을 보내게 된다.
-2. 정반대의 둘 = 부딪히며 성장하게 된다는 건 공식!
엄격하고 고지식한 역사교사, 학교를 싫어하고 떠나고 싶어하던 학생.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된, 입장도, 나이도, 모든 게 다른 둘은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부딪히고 멀어지기만 하면 성장할 수도, 변화할 수도 없다. 영화는 이 둘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같은 공간에 이들을 몰아넣고, 하나의 조건을 부여한다. '폴 허넘은 앵거스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
미성년자인 앵거스의 부모가 앵거스를 돌볼 수 없는 동안, 폴 허넘은 앵거스의 교사로서, 보호자로서, 또 한 명의 관찰자로서 늘 그와 함께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다시 말해 앵거스는 폴 허넘 없이 어디에도 갈 수 없고, 폴 허넘은 앵거스를 두고 떠날 수 없다. 이는 그들이 서로 안 맞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함께하도록 만들고, 마침내 어느 순간 서로를 생각하고 지지하도록 만드는 발판이 된다.
영화가 흘러갈수록 앵거스가 폴 허넘에게 보이는 태도의 변화는 꽤나 인상적이다. 끊임없이 갈등하던 이들은 어느 순간 서로를 위해, 우리만의 '앙트레 누'를 만들고, 이를 비밀로 지켜주기로 한다. 영화에서 '앙트레 누'는 '우리만의 비밀 이야기'를 뜻한다. 병원에 가 보험 적용을 해야 했을 때, 폴 허넘은 보험 적용을 하고 부모님께 알리고 나면 자신은 교사 자격이 없어 해고되고 말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런 폴 허넘을 본 앵거스는 폴 허넘에게 아빠 행세를 하라는 듯 눈치를 주며,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는데, 이 소식을 엄마가 알게 되면 다시는 아빠를 못 볼 것'이라고 둘러댄다. 거짓말을 통해 사고를 무마하고, 폴을 지켜준 것이다.
'거짓', 다시 말해 서로가 알게 된 서로의 '앙트레 누'는 이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든다. 이후 허넘은 여행 중 대학교 동창을 만난 순간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대신, 거짓말로 근황을 꾸며내 이야기한다. 앵거스는 허넘을 속이고 병원의 아빠를 보러 가려다 오해를 빚게 된다. 계속해서 함께했음에도 서로에게 미처 털어놓을 수 없었던 각자의 사정이 드러나는 순간, 그들은 암묵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시도한다.
이는 이후 보스턴에 가 아빠를 만난 앵거스가 이 사실을 들킨 뒤 앵거스의 엄마에 의해 사관학교로 보내질 위기에 처한 순간 정반대의 구도로 다시 드러난다. 앵거스가 허넘이 교사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병원에서 자신과 허넘의 관계를 속였다면, 이번에는 허넘이 앵거스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쪽을 선택한다. 허넘은 자신의 '고향'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자신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튼 아카데미'에서의 직위를 유지하는 대신, 앵거스를 위해, 지도자로서, 교사로서, 또는 2주간의 양육자로서의 선택을 한 것이다.
-3. 짧은 기간, 그만큼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이들은 허넘의 선택이 갑작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들이 바튼 아카데미에서 함께 보낸 '2주'는 짧디 짧고, 결과만 두고 보자면 앵거스는 허넘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몰래 아빠를 보러 가다 사고를 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허넘과 앵거스의 유대를, 그들의 관계를 얼마나 깊다고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오히려 앵거스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앵거스와 오랜 기간 함께한 앵거스의 엄마가 아니라, 2주간 앵거스를 이해하고, 앵거스를 위한 연말 파티를 해 준 폴 허넘이다. 그렇기 때문에 앵거스는 폴 허넘에게, 그리고 요리를 준비해 준 메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크리스마스를 보낸 건 처음이라고.
이는 앵거스가 새아빠는 가족이라고 느끼지 않지만, 허넘과 메리에 대해서는 유대와 위로를 느끼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폴 허넘, 메리, 앵거스는 저마다의 이유로 바튼 아카데미에 '홀로' 남아 있다. 폴 허넘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방학 기간 담당 교사를 맡게 되었기 때문에, 메리는 바튼 아카데미 출신 아들 커티스 램을 베트남 전쟁으로 잃었기 때문에, 그리고 앵거스는 엄마와 새아빠가 신혼여행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떠났기 때문에. 저마다의 사정으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이 셋은, 함께 연말 파티에 가면서, 함께 연말 트리 앞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함께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이들이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각자의 결핍을 딛고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자신의 시간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앵거스가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 폴 허넘이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된 순간에, 메리가 자신의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술에 취해버린 순간에.
이들을 누가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그리고 서로를 위해 먼저 나서고자 하는 순간.
그들은 모두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감싸안을 수 있는 충분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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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도 모른 채로 답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영상의 ㅇ자도 모르지만 난 언론을 전공한 사람이다. 전공 학과의 거의 모든 것이 싫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누군가를 취재했던 기억이다. '누구는 잘할 거야!'라고 날 믿었던 적은 많은데 저널리스트 비슷한 걸 하면서 재밌다고는 못 느껴본 것 같다. 기자로서의 글쓰기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 나. 낯을 안 가리고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며 만드는 걸 좋아하는, 언론사가 좋아하는 특성은 다 갖고 있어도 난 그게 재미있지는 않다. 나는 나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니면 재미를 못 붙일 것 같아서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냥 딱 지금 정도로만 쓰고 읽는 게 좋은 것 같다.
근데 그러기엔 사람 만나는 게 뭔가 기 빨리는 MBTI I형의 특징이 오롯이 담겨있다.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 사실 세상이 궁금해할 것 같은 게 아니라 내가 묻고 싶은 것들이다. 또 세상이 관심 있어할 주제가 아니라 내가 호기심이 있는 주제를 고르는 것이다. 만약 이게 내 일 외적으로 작용해서 내가 궁금해하지 않는 부분을 뭔가 세상에게 묻는다면 재미없어 질게 뻔해 2년 버텨야 오래 살아남는 게 안 봐도 비디오가 될 것 같다. 근데 사실 이런 마음에는 내가 아직까지 내 지난 일에 대해 완벽하게 답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다. 그게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물음이 여러 개 생기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근데 가끔은 이 짐이 무겁다고 생각한다. 무거우니까 영화를 보는 거겠지? 시간에 집중하고. 글로 소통하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 세상에 의문을 가졌던 남자 둘이 있다. 이 두 남자는 삼촌과 조카 사이다. 헤어질 결심을 여러 번 명심했던 남, 녀를 뒤로하고 두 사람의 여행에 같이 합류해보자.
어색한 전화 한 통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자세히 보아하니 남자의 여동생인 듯하다. 뭔가 어색해 보이는 둘. 남자는 결혼하지 않은 것 같다. 여자는 아마 아들이 있는 듯하다. 금세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둘은 남매인 것 같다.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여동생 비브는 오빠 조니에게 부탁한다. 오랜 시간 동안 거리를 두고 살던 남매. 그 원인에는 엄마의 죽음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자주 보지 않았던 남매. 엄마가 아프다는 이유로 둘은 꽤나 자주 싸웠던 것 같다.
그렇게 드문드문 연락만 하고 지내던 남매. 원래 같으면 거의 먼저 연락 안 할 사이지만 오빠가 용기를 낸 것 같다. 오빠에게 사정을 들어놓는 여동생. 아마 여동생의 아들을 맡겨달라는 부탁인 것 같다. 아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오빠 조니. 조니는 아이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을 한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에 대해, 그리고 올바르게 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질문하는 조니. 그렇게 세상과 인터뷰하는 조니는, 조카 제시와 함께 세상이라는 거대한 의문을 하나, 둘 씩 채워나간다.
인터뷰어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조니의 질문하기와 제시 키우기다. 일단 극을 이끄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제시 키우기다. 육아 난이도 최상의 제시. 모든 9살 아이들의 특징이 잘 나타나듯 제시는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 맘대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고 조니의 본업인 아이들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한다. 역시 초등학교 2학년이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섭다. 그런데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톡톡 튐은 영화와 조니에게 긍정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하라는 건 일단 다 안 하는 제시. 직장인 조니가 쉬고 있을 때 엿이나 먹으라는 듯 방 안에 큰 음악을 튼다. 이어 절 땐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제시의 동거 난이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증가하기 시작한다. 자기한테 들어온 인터뷰 제의는 콧방귀를 뀐 조카 제시. 오히려 인터뷰어인 조니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엄마랑 왜 오랫동안 연락 안 했어요?" "결혼은 어떻게 됐어요?" 9살이라 가질 수밖에 없는 순수함을 가진 제시. 이렇게 뜨문뜨문 찾아오는 변수에 조니는 삶을 새로운 각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조니의 시각 변화와 함께 관객인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는데, 이 색다른 감정이 영화의 주요 소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시할 수 없던 이야기들
사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감정과 기분은 조니가 무시하면 안 됐던 내면의 상처와도 맞물린다. 왜 여동생과 교류하지 않았나. 여동생과 조니는 사실 자주 싸웠던 것 같다. 엄마에게 치매가 생겼다는 건 남매가 예민해진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자주 싸웠던 조니. 조니에게 제시는 그렇게 갖고 있던 내면의 흉터와도 관련이 있다. 이 맞이해야 했던 내면의 상처는 하나 더 있다. 사랑하던 이와 있던 이야기다. 인터뷰는 직업의 특성상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직업이다. 물론 답변을 어떻게 할지는 그 사람 마음이지만 좋은 질문은 양 쪽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게 도와준다. 이렇게 '인터뷰'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조니가 떠나보내야 했던 것에 대해 묘사하는 방식의 이야기 전개는 분명한 영화의 강점이다.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인물이 제시와 함께 이겨내야 하는 것에 대해 의문문을 던지는 이중의 효과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상호에게 계속되는 질문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영화의 메시지와도 관련 있다. 사실 인터뷰어 조니는 의문이 많은 사람이다. 날 떠났던 연인, '이 직업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회의감, 여동생과의 갈등까지 남겨진 기억에 답을 찾아 나서기 위해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근데 이 질문의 해결책을 뾰족하게 남겨두지 않는다. 그 대신, 그 구멍을 상회할 정도의 어떤 것으로 채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조니의 내적 성장은 아마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미괄식 영화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다. 늦깎이 삼촌 조니의 우당탕탕 육아일기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의 명대사들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제시의 매력보다 후자에 더 마음이 갔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보면 좋은 영화다. 그러나 어른들이 보고 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에서 조니가 제시의 대화가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그러면 조니가 제시하게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아니다. 이는 조니가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극의 후반부에 어떤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조니의 대사에서도 다시 조명된다.
우리는 어른이다. 직장에 치일 때, 취업이 안될 때, 연애에 실패할 때, 인간관계에 질릴 때, 수도 없는 무엇에 포기하고 싶거나 혼자 일어날 힘이 없을 때 항상 숨겨야 이득이 된다고 믿고 있다. 지금 당장 글을 쓰다 말고 '나 힘들어요'를 한 2천 자 쓰면 읽는 이들이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또 세상을 향한 걱정을 주변 사람에게 전부 늘어놓기도 참 두렵다. 왜냐면 그 사람들도 같은 고민하고 사는 거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비슷한 상황 연출과 그에 맞는 설루션까지 잔잔한 로드무비로서의 역할에 300% 충실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대사는 호아킨 피닉스가 맡은 조니가 내레이션을 통해 전하기도 한다. <어머니 : 사랑과 잔인함에 대한 에세이>, <카메라맨이 할 수 있는 불완전한 목록>까지 에둘러 말하면서도 우리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 그냥 무작정 빛나는 삶의 위로를 전하는 게 아니다. 보다 깊이 있는 대사들, 또 배우들의 연기, 시각적으로 중요한 흑백 연출까지 영화는 뭐가 중요해서 어떤 걸 보여줄지에 대해 깊게 알고 있는 듯하다.
날 키워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마이크 밀스 감독의 <가족 3부작>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의 전작 <비기너스>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의 20세기>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또 이 작품 <컴온, 컴온>에는 동생과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앞 두 작품에서 장점을 승계하기도 했다. 두 작품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의 본인으로 돌아가세요" "깊은 말보다 함께 있는 것의 힘"일 텐데, 영화는 앞 두 작품과는 아주 살짝 방식으로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우선 비슷한 방식은 대사 뉘앙스의 힘이다. 영화 대사 좋다. <우리의 20세기>에서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됐어요?'라고 묻는 게 생각난다. 근데 영화가 온 힘을 다해서 그 말에 힘을 빡 주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게 관계를 통해 이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사실 중요한 건 여기에 있다. 말은 오래 남는다. 근데 그 말을 한 사람은 더 가까이 우리 주위에 있다. 한 번 위로가 되는 존재는 다음번에 계속 봐도 좋다. 엄청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이 문장은 우리가 놓치고 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이 '놓친 것'에 관한 영화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아주 살짝 다른 것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관한 질문을 묻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어린아이에게 물어 올바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또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의문 투성이었던 지난 과거에 조니가 대답을 하는 형식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 둘은 기존의 영화들이 갖고 있는 것에서 살짝 뒤집어 각자의 동심에게 질문을 요청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의문 투성이인 세상에게 지나간 일을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대답을 했나? 의 답변은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이 <컴온 컴온>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아마 우리는 살아있는 평생 동안 이 질문에 끊임없는 대답을 하며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내가 살아온 삶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의 연속이었다. 이 의문에 끊임없이 질문한다. 어쩌면 내가 만든 불행일 수도, 행복일 수도 있다. 이거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스티븐 스트레인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건 참 질리지만 사실이다. 영화는 이런 현대인들에게 손을 건네며 '컴온!'이라 외친다. 답을 한 번 얻었다는 건 두 번, 세 번 얻을 수도 있으니 이들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좋은 작품이었다. 괜히 <탑건 : 메버릭>과 <토르 : 러브 앤 썬더>, <범죄도시>, <헤어질 결심>에 묻힐까 아쉽긴 하다. 그래도 시원한 극장에서 이 영화와 함께 나를 만들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조커>만큼은 아니더라도 와킨 피닉스의 호연 역시 빛나는 영화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선한 힐링 로드무비를 원했던 분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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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시선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 "캐롤"
날 부정하며 산다면 무슨 엄마 자격이 있겠어?
캐롤의 말 중에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그 누구도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우연한 어떤 계기로 점차 스며들 듯이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되죠.
자신도 모르게 말입니다.
그 대상은 한정되어 있지 않고 무한히 열려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간의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과 눈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그 순간만큼은 이게 진정 나의 모습인가 할 정도로 나조차도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저절로 눈길이 가면서 쫓느라 바쁘고,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랑'의 면모를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캐롤'입니다.
때로는 사랑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다가도, 또 때로는 그런 자신을 부정하기도 하며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게끔 만들어 줍니다.
영화 '캐롤'은 사랑은 시선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서 그 메시지를 더욱 강렬히 전달해주죠.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자 매력은 바로 '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보는 여러분도 등장인물의 시선에 집중하며 같이 따라가면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더욱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캐롤'은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애절하고 강한 인상을 안겨 주는 영화입니다.
그럼 어떤 영화인지 간단히 살펴볼까요?
첫 번째 사진의 갈색머리 여성의 이름은 '테레즈'이고, 두 번째 사진의 금발머리 여성의 이름은 '캐롤'입니다.
영화는 테레즈의 지인인 '잭'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시작됩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음식과 바가 어우러진 어느 장소였습니다.
그는 우연히 테레즈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죠.
테레즈와 캐롤은 멀리서 봤을 때 평범하디 평범하게 식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잭이 인사를 걸어오는 바람에 캐롤은 어쩐지 미련이 가득한 얼굴로 황급히 떠나게 됩니다.
잭을 따라 차를 타고 가게 된 테레즈 역시 얼굴에는 미련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창밖에 비춰지는 캐롤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테레즈의 시선이 캐롤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이 장면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테레즈와 캐롤의 첫만남입니다.
테레즈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캐롤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딸에게 줄 선물을 사러 온 손님이었습니다.
테레즈는 우연히 캐롤을 본 순간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빠져들어 넋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테레즈의 시선이 캐롤에게 집중되어 있죠.
이 이후부터 테레즈는 알게 모르게 캐롤을 신경쓰게 되는데요.
캐롤이 두고 간 장갑을 캐롤에게 전달해준다든지, 캐롤이 산 기차 장남감 세트가 잘 도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재차 확인하는 등 은근히 캐롤을 생각하게 됩니다.
캐롤 또한 테레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점심 약속을 잡게 되죠.
점심시간에 만나게 된 둘은 서로에 대해 차차 알아가며 또 다른 약속을 잡게 됩니다.
21일 일요일 오후 2시, 캐롤은 테레즈로부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게 되죠.
이렇게 테레즈와 캐롤은 이를 계기로 만남을 가지게 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나게 됩니다.
테레즈와 캐롤에게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개인 사정이 숨겨져 있었는데요.
캐롤은 위협과 혐박을 가하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혼 소송 준비중이었습니다.
테레즈 또한 잘 챙겨주는 남자친구가 있긴 했으나,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테레즈는 사진을 좋아하긴 했으나 사람을 제외한 사진만 찍었죠. 사람을 찍는 건 사생활을 침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진에 있어서도 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캐롤은 테레즈에게 같이 떠나줄 수 있겠냐며 제안하는데요.
Would you?
영화 속에서 캐롤이 테레즈에게 이렇게 두 번 질문합니다. 캐롤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서 강렬한 문장 중 하나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행 중에 이 둘은 점차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테레즈는 사람 사진을 찍지 않다가 캐롤을 계기로 사람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테레즈가 찍은 캐롤의 사진이랍니다.
여행이 깊어져가면 갈수록 테레즈와 캐롤의 관계도 점점 깊어져만 가는데요.
테레즈는 캐롤과의 여행을 통해 남자친구에게는 줄 수 없었던 확신을 캐롤에게는 확신할 수 있게 되면서 줄곧 자신을 의심해왔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캐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캐롤 역시 테레즈와 같이 지내게 되면서 테레즈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게 됩니다.
첫 만남부터 이 둘은 강한 이끌림으로 인해 서로에게 확신했을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캐롤에게는 4살이 된 어린 딸이 있습니다.
이혼 소송 중에 자신이 동성인 테레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되면 양육권을 가져올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캐롤은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캐롤에게는 딸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존재이기에, 캐롤은 테레즈로부터 어쩔 수 없이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테레즈도 나의 상황을 이해할 것이라면서요.
마음은 테레즈에게 가 있지만, 상황이 그녀를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헤어져 있는 사이, 테레즈는 '뉴욕타임스'라는 직장을 얻게 됩니다.
캐롤은 우연히 차 안에서 길을 걷고 있는 테레즈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캐롤의 시선은 한동안 테레즈에게로 가 있었고, 테레즈의 움직임을 따라 눈을 떼지 못하는 캐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되게 마음이 찡했는데요.
앞선 영화의 첫 부분에서 테레즈가 차 안에서 캐롤을 따라 시선을 쫓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이번에는 테레즈가 아닌, 캐롤이 테레즈를 따라 시선을 쫓는 장면이 나타나니 잠시 뭉클했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요?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걸까요?
서로를 향한 이끌림은 어느 방해물이 있어도 막아낼 수 없나 봅니다.
캐롤은 테레즈에게 이별을 고한 것을 계속해서 후회하기 시작했고, 뒤늦게서야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테레즈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전에 캐롤은 양육권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하죠.
캐롤은 남편을 만나 힘겹게 울음을 삼키고 딸 양육권을 포기합니다.
대신 자주 만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요.
그러면서 캐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날 부정하며 산다면 무슨 엄마 자격이 있겠어?
캐롤은 테레즈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아주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이렇듯 나에게 솔직해져야 딸에게도 부끄럼 없이 살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날 부정하며 사는 건 딸에게도 좋은 가르침을 주지 못할 거라는 것이겠죠.
저는 이 대사가 순간 저의 마음을 훅 덮쳐 왔달까요?
영화 캐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였어요.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자아를 되찾은 느낌이라서요.
그리고 장면은 다시 처음 장면으로 되돌아옵니다.
이렇게 끝까지 보니 처음 봤던 장면하고 이해 정도가 달라져 느낌이 이상하고 새롭더라고요..
'아, 이게 이런 장면이었구나.' 하는 느낌이었달까요.
테레즈는 캐롤을 향한 약간의 원망이 있었던 것인지 약간의 냉정함이 보였고,
캐롤은 테레즈를 다시 잡고자 하는 절실함이 돋보였습니다.
아까 위에서 혹시 캐롤이 테레즈에게 한 말, 기억나시나요?
Would you?
캐롤은 또 한번 테레즈에게 제안합니다.
넓은 집에서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하지만 캐롤은 안 되겠다며 거절합니다.
그럼에도 캐롤은 자신이 오크룸에서 9시에 사람들을 만난다며 저녁을 먹을 예정이니 혹시 마음 바뀌면 이곳으로 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테레즈가 말이 없는 사이 처음에 등장했던 '잭'이 테레즈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이렇게 알고 보니까 잭.. 너무 눈치 없는 거 아니니..?
이 타이밍에 나타나는 거, 너무했다는 생각 저만 한 것일까요? ㅎㅎ
처음에는 놓쳤던 테레즈와 캐롤의 감정과 표정이 이제서야 자세하고 섬세하게 보이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캐롤은 테레즈를 아쉽게 뒤로 한 채 떠납니다.
테레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테레즈는 잭을 따라 파티를 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잠시, 테레즈의 마음 또한 알게 모르게 캐롤에게 향해 있기에 결국에는 그 파티에서 빠져나와 캐롤이 알려준 장소로 급히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테레즈는 캐롤을 발견했고, 캐롤 또한 테레즈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 둘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 채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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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이란 통제할 수 없는 무언의 힘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캐롤과 테레즈 사이에는 끊어져야 끊어질 수 없는 실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죠.
자신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숨길 수 없는 게 시선이라는 사실도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어 시선에 따른 인물의 감정을 세세하게 나타내어 줍니다.
이 부분에 얼마나 신경을 써 가며 만들었을까 영화 관계자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기도 했죠.
그만큼 인물의 감정선이 돋보였던 영화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여성과 여성 간의 사랑도 이렇게 애절하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편견을 한 차례 깨 주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관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에 맞는 영화라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따뜻한 연말이 되어줄 것 같네요!
이상 영화 '캐롤'의 관람 후기였습니다.
가장 눈여겨 봤던 점!
테레즈와 캐롤 간의 시선.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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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시즌 2가 기다려지는 드라마
인류학자 캐롤 코니한은 자신의 저서 《음식과 몸의 인류학》(갈무리, 2005)에서 힘·권력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군림하고 강압하는 힘이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절대적 자원을 독점하여 타인을 통제하는 힘을 말한다. 두 번째는 영향력이다. 남들에게 베풂으로써 생겨나는 책임감과 유대감이 두 번째 힘의 핵심이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시기, 국가가 탄생하기 전 부족 연맹의 시기를 바탕으로 하는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이 두 가지 힘 중 무엇이 더 센지를 묻는다. 타곤(장동건 배우)은 첫 번째 힘의 화신이고, 은섬(송중기 배우)은 두 번째 힘의 가능성을 체화한 자다. 연맹장 타곤은 공포로 군림하는 왕을 꿈꾸고 은섬은 단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선의의 공동체를 꿈꾼다.
〈아스달 연대기〉 스틸컷 ⓒtvN두 주인공이 힘을 정의하는 방식의 차이는 각자의 서사가 펼쳐지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타곤의 주 무대는 여러 부족장과 대제사장이 모여 있는 아스 땅 한복판이다. 타곤과 그의 연인·동지인 태알하(김옥빈 배우)는 교묘한 술수와 탁월한 계략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이들이 펼치는 고도의 두뇌 싸움과 심리전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정치 드라마가 될 수 있을 정도이다.
반면 타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와한족의 은섬은 타곤으로부터 부족민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나 결국 노예로 팔려간다. 은섬은 서로를 외면하고 핍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노예 세계에서도 와한족의 가르침인 베풂과 믿음, 연대의 가치를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 운명의 시험을 통과하여 아스달이 아직 점령하지 못한 아고족의 우두머리로 거듭난다.
〈아스달 연대기〉 시즌 1은 타곤과 은섬이 각자의 세력을 결집해 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타곤과 은섬의 대결이 자아내는 긴장감은 힘과 권력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하기 위한 둘의 싸움이 21세기에도 끝나지 않았다는 데서 나온다. 타곤과 은섬의 시절이 그러했듯,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타곤의 계승자들이지만 은섬의 뜻을 잇는 자들도 치열한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시대에 따라 다른 사상과 권력 체계를 무기 삼아 벌여온 타곤과 은섬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스달 연대기〉 스틸컷 ⓒtvN
한편, 〈아스달 연대기〉에는 힘과 권력을 정의하는 관점 말고도 정치적 의미를 해석할 만한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정치적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 사이의 괴리였다. 타곤과 은섬은 서로 다투지만, 이 둘은 모두 ‘지도자’다. 아스달의 연맹인과 아고족은 거의 언제나 타곤과 은섬이 벌이는 정치적 이벤트의 철저한 수용자로만 재현된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없다. 어떤 소문이 돌면 우르르 몰려갔다가,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 또다시 법석을 떨며 되돌아오는 식이다.결국 타곤과 은섬의 대결은 피지배층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타곤과 은섬은 피지배층의 마음이 주인 되는 정치를 상상하지 못한다. 이들은 정치가 합리적 이성의 결과물이라는 허상을 보기 좋게 깨버리고 마음과 감정이야 말로 정치가 작동하는 근본 원리임을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마음과 감정을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만 봤다는 점에서 둘은 똑같다. 다만 다스림의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를 ‘현실적 재현’으로 볼 수도 있고, ‘상상력 부재’로 볼 수도 있다. 내겐 후자가 더 그럴듯했다. 다만 〈아스달 연대기〉의 정치적 상상력 부재는 제작진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 정치적 상상력의 한계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모략을 일삼는 정치인, 약자를 보듬고 챙기는 정치인은 참고할 대상이 많다. 하지만 피지배층을 정치의 주인으로 만드는 정치/인은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아스달 연대기〉가 탁월한 상상력을 서사, 세계관, 비주얼뿐만 아니라 정치적 가능성에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어찌 됐든, 〈아스달 연대기〉는 매우 빼어난 드라마다. 정치적 메시지의 한계가 있지만 이 조차도 또 다른 가능성을 사유하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완전히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놀라운 비주얼을 입혀 설득력 있게 구축한 시도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극 초반의 지루한 전개와 떨어지는 대사 전달력은 흠이지만, 이 고비(?)를 넘으면 웅장한 서사시가 펼쳐진다. 코로나 19로 후속 시즌 제작이 중단된 〈아스달 연대기〉의 속편이 하루빨리 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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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앞 한 남자의 회한 그리고 따뜻한 마지막
시사회 참석으로 개봉 전 관람하고 작성한 리뷰 입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영화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습관적으로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는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걸까. 왜 계속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는 걸까.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등장하는 각기 다른 상대방에게 모두 미안하다는 말을 던진다. 그의 육중한 몸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정말 잘못을 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인생의 분기점을 만난다. 그 분기점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떤 식이 될지 그 선택의 순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때론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어쨌든 선택을 해낸다.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는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결과가 바로 볼 수 있게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결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 회한의 감정이 들 때에서야 비로소 그때 그 결정이 옳았는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죽음이 곧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자신이 했던 수많은 결정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중에서도 후회가 되는 선택들을 떠올리며 그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는 사과를 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후회되는 선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선택으로 인한 행복한 순간들도 머릿속에 같이 맴돌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더 강렬하게 반복되는 감정은 후회와 미안함이다. 이제 더 삶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삶의 의지를 점점 떨어뜨린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주인공 찰리의 마지막 7일
영화 속 찰리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다. 엄청나게 살이 찐 그를 옆에서 돕고 진료를 하는 친구는 간호사 리즈(홍 차우)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유하지만 찰리는 병원에서 돈을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 리즈는 찰리가 살 수 있는 날이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찰리는 육중한 몸을 스스로 가누기가 어려워 걸을 때도 보조기구를 활용한다. 그는 온라인 강의로 간간히 생활비를 벌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동성애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불운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그렇게 연인의 죽음 이후 찰리는 거의 집에만 갇혀 살게 된다. 찰리가 동성 연인을 만나기 전에 그는 이미 한 여자와 결혼을 했었고 딸 엘리(세이디 싱크)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혼 후 동성 연인과 함께하는 선택을 한다.
찰리의 그 선택은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그 선택을 했고 뜨겁게 자신의 사랑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 선택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과거 부인이었던 메리(사만다 모튼)에게 상처를 주었고, 딸인 엘리에게도 큰 상처를 줬다.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찰리는 마지막 7일 동안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찰리가 집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딸 엘리
마지막 7일 동안 다양한 사람이 집에 찾아온다. 친구인 리즈가 매일 찾아와 그를 진료하고 상태를 봐주고, 한 교회의 선교를 하러 다니는 토마스(타이 심킨스)가 우연히 집에 왔다가 찰리와 대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부인 메리와 엘리도 찰리에게 찾아와 대화를 나눈다. 특히나 딸 메리와 찰리가 함께 있는 모든 순간들은 꽤 긴장감이 넘친다.
엘리는 아빠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있다. 반항적이면서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의지도 없어 보인다. 영화는 그를 바라보는 찰리의 얼굴을 가만히 비추며 그가 딸에게 던지는 말을 세세히 전달한다. 그의 딸을 향한 말들은 매우 늦었다. 그가 떠난 몇 년 동안 엘리가 겪었던 상실감은 지금의 찰리가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찰리도 잘 알고 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을 딸에게 전달한다.
엘리는 아빠와 대화하기 거북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빠를 찾아와 그의 앞에 앉는다. 수많은 비아냥과 분노를 솔직하게 내뱉는 그의 모습은 찰리에겐 딸에 대한 다른 면을 발견하게 만든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 그것이 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다른 오해를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찰리는 엘리의 마음속 깊은 곳의 언어를 발견해 나간다.
영화 <더 웨일>은 영화 내내 긴장감이 넘친다. 영화는 찰리의 집 안에서만 진행된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게다가 찰리는 고도 비만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전혀 긴장감이 없을 것 같은 구성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그의 앞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이용해 영화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찰리가 기분이 우울해져 음식을 마구 먹을 때 긴장되는 음악이 같이 연출되어 있어 혹시나 찰리가 죽지 않을지 숨을 죽이며 바라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의 말이 모든 인물들과의 대화를 마친 찰리가 딸 엘리에게 엘리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의 모든 감정들이 폭발하며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긴장감 넘치고 따뜻한 영화 <더 웨일>
이 영화는 찰리를 연기한 브렌든 프레이저의 영화다. 그는 고도 비만의 남자를 연기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굴곡들과 자신의 회한까지 캐릭터에 담아냈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미이라> 시리즈로 할리우드의 정상에 섰지만 그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고 이혼을 하면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동성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면서 예전의 샤프한 모습을 잃어갔다. 그래서 찰리는 브렌든 프레이저, 그 자체로 보이는 캐릭터다. 이 영화로 그는 배우로서 완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연출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2011년에 개봉했던 <블랙스완>이나 <마더!> 같은 인물의 심리를 이용한 긴장감을 잘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이번 <더 웨일>에서도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을 바탕으로 긴장감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그가 그간 연출했던 어떤 영화보다 따뜻한 감정을 끌어낸다.
영화 <더 웨일> 속 찰리는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던 것일까.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던지는 찰리의 태도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찰리라는 한 사람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찰리는 자신이 동성 연인에게 가기 위한 분기점에서 사랑을 택했다. 그가 딸을 버리고 싶어 떠난 건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은 영화 끝까지 계속 그를 괴롭힌다. 이 영화는 찰리의 마지막 7일을 다루는 이야기이지만 그가 가진 회한과 후회를 잘 정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꽤 감정적이고 따뜻한 이 영화는 힘든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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