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2023-08-11 16:28:03
사람은 산으로서 살아가는가
여덟 개의 산(2023)
도시에 사는 '피에트로'와 산에 남은 유일한 아이 '브루노' 알프스에서 만나 친구가 된 두 소년은 자연을 누비며 우정을 나눈다. 그 후 성인이 된 '피에트로'는 아버지 '조반니'가 세상을 떠난 뒤 산으로 돌아오고 '브루노'와 재회한다
<여덟 개의 산> 줄거리
브루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벽돌공으로 피에트로는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며 집을 나오며 방황하는 삶을 이어나간다. 자연에서 우정을 이어나가던 둘은 그렇게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인다. 긴 시간 동안 부모와 연을 끊고 살아가던 피에트로는 아버지 부고 소식을 듣고 예전에 브루노와 함께 놀던 곳으로 돌아간다. 연락 한번 않던 아들, 피에트로와는 달리 브루노는 피에트로의 부모님과 자주 만나며 지냈고, 그런 그에게 피에트로의 아버지는 예전에 셋이 갔던 산 중턱에 위치한 베이스캠프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했었는데, 이 부탁은 그가 죽은 뒤 피에트로와 브루노가 다시 그 산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한참을 방황하며 자신의 가족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던 피에트로는 그와 반대로 살아가고 있던 브루노와 함께 집을 만들면서 가족들과 다시 소통을 하고 산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들은 다시금 우정을 회복하며 자신들을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하는데,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산에서 뛰어놀며 같은 위치에 있었지만 삶이 이어져 나가면서 서로의 삶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실패나 사랑 등을 하며 다르게 살아간다. 서로 다른 삶이 어떻게 교차되고 이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호흡이 매우 긴 영화이다. 콘텐츠를 즐기다 보면 후반부쯤 가서는 거의 결말에 가까워지는구나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씬이 나와도 계속 영화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하지만 화면에서 보여지는 지연의 광활함만으로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영화 중반 즈음에 피에트로가 브루노에게 여덟 개의 산과 중심에 있는 수미산에 대해 얘기해 주면서 영화 제목이 등장하는데, 브루노와 피에트로는 수미산을 오른 사람과 여덟 개의 산을 오른 사람 중 누가 더 우월한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세계 각지의 산들을 오르면서 살아온 하지만 아버지와 브루노가 올랐던 산은 아직 오르지 못한 피에트로와 자신이 평생 산 곳의 산만을 오르며 살고 있는 브루노 둘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처럼 생각했을 때 각자의 삶에서 서로를 부러워 하기도 하고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기 때문에 둘 중 더 우월한 것은 없다는 나만의 답을 내놨다.
피에트로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브루노가 올랐던 산들도 하나하나 올라가며 지도를 채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그 역시 브루노, 그리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브루노와 함께 만든 아버지의 집이 있는 산이 수미산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떠났던 수미산을 아버지의 죽음에 의해 다시 돌아오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린 브루노와 그의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냈지만 브루노의 죽음으로 다시금 그 산을 떠나게 된다. 아마도 피에트로는 그 산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돌아간다 한들 그 산은 더이상 피에트로의 수미산이 아닐 것이다. 여덟 개의 산, 그리고 중심에 있는 수미산을 통해 두 사람의 다른 삶을 그려낸 <여덟 개의 산>을 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여덟 개의 산>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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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왕비의 삶, 보통 여성의 삶 <코르사주>
영화의 제목과 같이 주인공인 엘리자베트는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 역할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지성과 신체력은 ‘여성'이라는 미명하에 국가라는 옷에 달린 왕비라는 코르사주가 되어버린다. 왕비라는 신분은 구속이나 억압 없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엘리자베트는 영화 초반부터 흉부를 꽉 조이는 코르셋 때문에 호흡곤란으로 귀빈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기절한다. 지난 역사 속 여왕의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보통 여성의 삶과는 다르지 않았다. 영화는 여왕이 자신의 코르셋을 조이는 하녀에게 ‘더 조여'라며 엘리자베트가 겪었을 숨 막히는 삶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비극적인 삶에도 희로애락은 있다. 작고 소소한 일상이 공유될 때 그 사람의 미소와 눈물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솔직한 욕망이 드러날 때 우리는 주인공에게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덕분에 한 여왕의 일대기가 아닌 한 여성의 삶을 공유하는 영화로 다가온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의 결말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현실성 있는 삶이기에, 죽음만큼은 자유로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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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너네 오빠도 그럴 수 있어.
이 글은
영화 [성덕]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인용 및 퍼가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사실 너를 이해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오빠”가 포승줄에 묶여 기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미안한 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우리 오빠는 아니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는 또 다른 “오빠”의 덕후인 너를.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괜찮은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자기 오빠만 아니라면 저런 일이 일어나도 된다고 생각하는 너의 태도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네가 웃고 있다는 점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미소 안에 숨겨진 알 수 없는 우월감과 안도감을 결국 숨기지 못해 내게 들켰다는 사실을 네가 알까.
우리 사이를 10년이나 지속하며 지내온 나조차도 덕후가 되어 이상한 필터가 눈과 마음에 씌워버린 채 내 앞에 앉아 있는 낯선 너를 이해할 수 없는데. 어째서 만들어진 신(God)에 가까운 검은 머리 짐승에게 이토록 마음뿐 아니라 이성까지 빼앗겨 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너와 있을 때 생겨나는 묘한 불편함은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계속 나를 긁어 댔다. 너는 늘 우리 오빠 이야기만 했고. 우리 오빠의 작품을 보기를 강요했으며. 우리 오빠가 팬들 중 유일하게 너를 팔로우했다며 제주도에서도 보인다는 롯데 타워만큼이나 올라간 어깨를 으쓱댔으니까. 만난 것은 우리 두 사람인데 어째서 약속 장소에는 나는 허락하지 않은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 같기만 한지. 그리고 왜 약속을 잡은 나와는 이야기하지 않고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주제에 내 약속 상대를 뺏아간 그 누군가와만 이야기하는 것 같은지. 네가 즐거워서 얼굴이 더 밝아질수록 나의 불쾌함은 그 밝음의 그림자처럼 깊어져만 갔다.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늘 입버릇처럼 자존감의 성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고. 나는 그 틈을 비집고 심리학에서 의존할 대상이 필요하거나, 누군가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충족시킬 대상을 내세울 때 연예인에게 집착하는 성향이 생긴다는 사실을 대입했다. 그만큼 너의 애정은 자신을 향한 푸념만큼이나 광기에 가까웠고. 나는 너의 그런 찬란함만 가득한 광기가 이해가 가면서도 온전히 안을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너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저런 거”쫓아다니는 애들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던가. 혹은 직업에서 그다지 입지를 다지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너는 참 열심히도 살았다. 덕질하느라 적금도 겨우 넣는다는 너의 푸념은 입가에서 마를 날이 없었던 건 너는 쏙 빼고 말하겠지만.
영화 속엔 네 친구들이 참 많더라. 그런 사건이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오빠가 그럴 리가 없다며 옹호하기도 했고. 쿨한 척 죗값을 치르고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으며. “너네 오빠”의 가면 벗은 모습을 밝힌 기자 한 사람이. 세상에서 잠시 없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느낄 때까지 무지성으로 헐뜯기도 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나는 팬으로 대변되는 집단의 대다수가 가진 좋아한다는 감정이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도 한다. 그 죽고 못 사는 오빠가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인 줄 짐작으로 알았으면서도 기꺼이 눈을 가렸음을 말할 때는 머뭇거리는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더더욱. 결국 그들의 선택적 눈가림이 진짜 피해자들에겐 2차 가해이기도 함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일하며 그 사람을 좋아하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해도 온전히 떳떳함을 느끼지 못하고 슬그머니 어깨를 움츠리는 것처럼.
물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너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억울하기도 하겠지. 입에도 담기 싫은 그 일이 생긴 후, 팬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동급 취급을 당하거나. 걔 언젠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당사자가 아닌 팬들에게 넘겼을 테니까. 그뿐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너를 떠올리고 있는 나조차도 내가 너를 이해해 “주겠다”는 시건방진 마음을 가지고 다리나 꼰 채로 의자에 앉아 맘껏 너를 비웃으며 영화를 관람하고 있으니까. 너를 포함한 그 집단은 이런 시선과 아니꼬움까지 업은 채 본질보다 더 왜곡되고 있을지도 모르지.
영화가 다루는 대상, 혹은 질문에서 빠져 있는 게 피해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너도 피해자 중 한 부류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것도 돈, 시간, 마음까지 다 바친 대상에게.
세연이 박사모를 찾아가는 모습을 비추었을 때의 얼굴을 네가 보았어야 했다.세연에겐 거울 요법이었을 테고. 그 어떤 기준도 없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열변을 토하는 박사모 회원 중 한 사람을 보면서 세연이 느꼈을 어이없음은 내게도 조금의 통쾌함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기세에 밀린다는 생각을 아마 너네 오빠가 최고인 줄 알던 너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처음 만나보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뭐 요새 하는 말을 빌리자면 자강두천(자존심 강한 두 천재) 정도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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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와 동시에. 영화의 마지막 지점은 묘하게 내가 너와 별반 다른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나 조차도 은근히 선을 긋고 있음을 알게 되는 그 시작점. 불쾌하지만 사실적이고 어딘가 축축하지만 화려한 독버섯이 가득 피어 있는 길티 플레저를 닮은 이 영화처럼.
나도 충동적으로 용돈의 일부를 털어 [리틀 드러머 걸] 블루레이 세트를 사고(언제 오냐ㅠ),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것에 강박적이며.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영화를 찾기 위한 여정을 외롭게 걷는 것을 즐기는 데다 “대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고급인 척 하지만. 그래도 “너 정도”는 아니니까.라는 말로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그 오빠”에 빠져 있을 때 나는 너보다는 “수준 높은”것을 하고 있다고 너를 매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훅 밀려왔다.
그런 사람 좋아하지 말고 네 인생에나 신경 쓰라고 말하고 싶어 늘 마음속 파우치에 그 문장을 고이 챙겨 다녔던 나도 그다지 떳떳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 물론 그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개입해야 할 문제일지 아닐지 투표를 한다면 개입하지 않는다에 더 많은 표가 들어있을 것임은 투표 전인 지금도 명백해 보이니까. 어차피 정도와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좋아하는 것을 향한 다양한 감정은 네가 그렇고, 영화 속 인물이 그렇고 나에게도 그랬듯이, 모두의 마음속 하늘에 뜬 채 지지 않는 엉망진창 무지개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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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덕질이 하루 안에 그칠 리 없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그려진 것처럼. 행복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건강하게 덕질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그 행복하기 위한 덕질의 전제 조건으로 나중에 상처받을까 봐 애초에 마음을 다 주지 말자고 말하는 영화 속 인물의 말에는 반대한다. 사랑이란 것이 우연처럼 찾아와 남남이던 두 사람을 우리로 엮어 뗄 수도, 떼고 싶지도 않게 여겨지던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과연 그 다짐이 제대로 작동해서 헤어질 때 마음 한 구석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강판에 갈려 나가는 것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 적은 없지 않은가.
어차피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의 행동이 정상에 가까울 리 없다. 그러니 너도 나도. 정상인 척 숨기려 하지는 말자. 하지만 일상만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자. 여전히 나보다 정도가 심한 덕질을 하는 네게는 힘들 수도 있겠지만. 두 발 모두를 허공에 띄워 정처 없이 표류하기보다 적어도 가계부만은 쓰기를.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선택한 덕질이라 할지라도 현실 앞에 눈 감기보다 한쪽 눈 정도는 뜰 수 있기를.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는 지긋지긋하게 너를 덕질하는 현실이 너를 놓아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는 말자.
그러니 다음에 만날 때는 너의 23 아이덴티티 중 그 오빠의 덕후인 모습은 숨긴 채 만나자. 덕질은 너만의 것일 뿐. 다른 사람 마음의 옷걸이에 제멋대로 걸어두는 외투가 아니다. 불쾌함을 느낀 상대방이 너의 외투를 툭 떨어뜨린다고 해서 네가 옷걸이를 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너와 나는 그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만 한다. 그래야 서로 간의 시간도 감정도 존중하는 길일 테니까.
또한 네가 좋아해 마지않는 그 오빠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자. 우리 오빠는 그럴 리가 없다라던가 어떻게 팬들한테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철학적으로라도 인정해야 한다. 행여나 네 마음속 감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런 “안 좋은 일”이 탈옥해서 세상에 돌아다닌다 해도.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늘 알아야 한다. 애초에 너네 오빠의 자유의지가 그랬을 뿐이다. 너네 오빠는 그럴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었을 뿐. 너는 그 사람을 소유할 수 없고. 그 사람은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어야 할 의무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의 덕질은. 이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길 때 비로소 더 자유로울 것이다. 물론 어렵겠지만.
삶에 지쳐 오아시스를 찾을 수는 있을지언정. 신기루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말자.
우리, 남보다 나를 앞세운 삶을 살자.
마치면서
정말 뒤틀려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분명 어이없는 마음이 들게 하면서도 마지막의 성찰을 보여 주는 부분에서 세연의 얼굴 표정은 아 자신이 이렇게 비쳤을 수도 있겠구나를 알게 한다. 어머니의 부분도 좋았다. 적어도 어머니는 팬심에 삶의 지혜가 더해져 조금 더 건강한 방법으로 강제 탈덕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이제 웃으면서 지나 보낸 것 같은 모습을 보이셨으니까.
정말 영화 보는 내내 친구의 모습이 겹쳤다. 실제로 리뷰 속 사건들과 친구의 태도 때문에 절교를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친구가 이제는 만날 때 더 이상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기간제 연장을 한 것 이긴 하지만. 내가 누굴 이해하려는 스스로의 마음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에 대한 좀 더 나이 들어버린 자가 할 수 있는 꼰대 마인드를 온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학생=공부라서 나는 전교에서 놀았고 혹은 사범대를 갔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부분도 우스웠다. 어차피 학벌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님은 스스로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애초에 화이트 칼라에 해당하는 집단들이 도덕적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그게 말이 되는 일이었다면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의대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테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올 만큼 노력한 사람이니 사람 하나쯤 화장실에서 죽인다고 매장당하는 게 아깝다는 말에 이토록 분노감을 느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리뷰를 쓰는 방식도 매우 고민했다. 애초에 덕질에 대한 과도한 친구로 인해 그다지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보통 덕질을 바라보는 사람이 훈계하는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똑같은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보다 낫다는 시선을 가진. 내 모습의 일부이기도 하기에 영화의 내용과 녹여서.
흑역사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놓고 성찰하려는 태도를 가진 감독의 배짱도. 영화도 모두 좋았다.
[이 글의 TMI]
1. 은근히 터지는 부분이 있음.
2. 9월에 본 영화 중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음.
3. 마지막 남은 사랑니가 대공사(+위험함)를 해야만 뽑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됨.
4. 치과에서 이 덩치에 울 뻔함.
5. 정말 지옥의 카운트다운만 남은 셈.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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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저는 단순히 영화는 영화,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라, 내 삶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터 '선이정'님 인터뷰
방자까님에 이어 오랜 시간 씨네랩과 함께 해온 크리에이터 선이정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세상 곳곳의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선이정님의 일과 영화 그리고 글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저는 씨네랩에서 ‘선이정’이라는 크리에이터명으로 글을 쓰고 있고, 본업은 NGO에서 해외 사업을 합니다. 시민분들께서 후원해주신 후원금으로 아프리카에 식수를 전달하거나, 학교를 짓거나, 여자아이들에게 생리대를 전달하는 등의 일이에요.
그동안 계속 궁금했었는데 크리에이터명을 ‘선이정’으로 짓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제 이름이 ‘선’으로 끝나요. 그래서 예전에 인도에 살 때 사람들이 저를 ‘Sunny’라고 불렀거든요. 그때 미국인 한 분이 잠깐 오셨었는데, 한글을 배우는 분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제 이름을 한글로 쓰면 ‘써니’라고 쓰는데, 이분은 항상 ‘선이’라고 쓰는 거예요. 그게 너무 귀여워서 사용하게 되었어요. 거기에 이제 성씨인 ‘정’을 더하면서, ‘선이정’이 된거죠.
NGO 단체에서 처음 일하게 되신 것도 인도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나요?
저는 원래 인도에 있을 때 NGO 파견 단원이었어요. 그래서 인도에서 귀국할 때 ‘NGO 일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어요. 싫었던 건 아니지만 할 만큼은 한 것 같아서 다른 일을 하려고 생각하며 한국에 왔고, 수험생활을 한 1년 정도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하나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거예요. 제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라서, 저한테 그 친구의 존재가 너무 당연했더라고요. 저에게는 처음 겪어보는 상실이었어요.
그 일을 겪고 우울한 시기를 보냈는데, 도저히 온 힘 다해 공부할 힘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진로를 고민하다가 인도에 살 때 그곳의 아이들을 위해서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슷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공부를 할 때 매일 국제 뉴스를 봤거든요. 그때가 한창 시리아 내전이 심할 때라서 뉴스마다 시리아 아이들 사진이 나왔어요. 울고 있는 것도 아니고, 멍한 표정의, 아이들이 지을 수 없는 수준의 절망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았어요.
마음이 힘들었던 차에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진로를 정하게 됐죠.인도에서의 생활과 개인적인 경험 자연스럽게 현재의 일로 이끌었네요. 그래도 이 길을 걷고자 하신 지 꽤 시간이 지났어요. 그 사이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NGO 단체에서 일하게 되는 동력이 무엇인가요?
저도 일의 기쁨과 슬픔이 있기는 해요.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그래도 이 일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른 세상에 있는, 저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직업은 이야기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 손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또, 후원자와 후원아동,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일들도 즐거워요.
(선이정님 추천작, <목소리들>(2025))
하시는 일을 통해 경험하시는 일들이 영화의 취향이나 선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할 것 같아요.
네, 엄청이요. 저는 영화제를 처음 다니게 된 계기 자체가 인도 영화 보기 위해서 였어요. 3년을 살았기 때문인지 인도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영화제에 가서 인도 영화를 한두 편씩 봤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리아 다큐멘터리처럼 본업과 연관된 작품도 보게 되고 하면서 영화제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지금도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나 사람들이 잘 안 보는 영화, 그런 영화를 엄청 좋아해요. 제3세계 영화 있잖아요. 제작 국가에 국가 이름 5개 정도 들어 있는… 그런 영화 있죠? (웃음) 딱히 국가를 보고 고르는 건 아닌데 시놉시스를 읽고 고르면 국가가 그렇게 분포가 되어 있어요. (웃음) 또, 개봉 절대 안 할 것 같은 영화도 영화제에서 영화를 고르는 포인트 중 하나죠.(개봉하는 영화는 나중에 봐도 되니까요. 영화제에서는 특히 여기 아니면 절대 못 보겠다 싶은 영화들이 있죠.)
네, 특히 영화제때 보면 난민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많잖아요.
이것도 일종의 자해라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웃음) 왜냐하면 다큐는 특히나 푸티지 자체가 정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보기 힘들기도 하고, 폭력 상황은 배경도 비슷하게 보이거든요. 미얀마나 홍콩이나… 흔들리고, 최루탄 터지고 이러면 비슷한 장면들을 계속 보다 보면 멀미도 나고 힘들거든요. 그래도 약간 의리를 지키는 느낌으로 보러 가죠.그렇게 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다 보면 피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일을 하다가 힘들어지는 부분을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동기부여를 얻기도,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거죠.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있잖아요. 그 말에서 저는 희망을 얻어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외로울 때가 있거든요. 요즘 누가 후원해? 아프리카 아동이 중요해? 자기 삶이 중요하지! 그런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 때가 있어요.영화는 안 그렇죠. 각자도생을 주장하는 영화는 보통 별로 없잖아요.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협업을 통해 완성되고,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도 대부분은 희망을 말하고 싶어하죠. 그렇게 영화 사이에 담긴 희망을 발견하면서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힘을 내게 돼요.
관련해서 영화를 보고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소셜 모임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처음에는 영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기존에 있는 활성화된 일반 영화 사교 모임을 나가기엔 에너지가 없고,
진짜 조예가 깊은 영화인들 모임에 나가기엔 그곳에서 제가 할 말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갈 수 있는 영화 모임은 어디일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영화 얘기는 뭘까’ 고민 했죠.
몇 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시리아에서 탈출하여 난민이 되기 전까지의 과정들을 이야기로 담은 <전장의 피아니스트>(2022)라는 영화를 본 생각이 났어요.
그 영화를 보고 나와서 혼자 있는데, 너무너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영화가 개봉하고 동종업계 친구들 데려가서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눴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영화를 매개로 소셜 이슈를 이야기하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근데 모든 영화가 난민 같은 이슈를 주제로 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런 얘기만 하다 보면 한계가 있어서, 현재는 넓은 범위의 소셜 이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플랜 75>(2024)를 보고 나서 ‘우리는 과연 불안 없이 노년이 된 우리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이런 법안이 시행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런 얘기를 함께 나누죠,하나의 영화를 보더라도, 함께하는 사람들 각자의 해결하고 싶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니까 전 방향으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혼자였다면 생각하지 못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그럼 소셜 모임의 처음과 지금, 선이정님에게 변화를 가져온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영화 얘기 같이 하고 싶어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 모임이 저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좀 더 알게 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소셜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같이 하는 것. 또,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많아요.
거기에 영화가 진짜 좋은 매개체라는 걸 느끼죠. 정말 난생 처음 보는 사람끼리 이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영화를 매개로 하다 보니 인물에, 스토리에 기대 예민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느끼게 되었어요.(선이정님 추천작, <되살아나는 목소리>(2024))
영화 질문으로 넘어가볼게요. 선이정님에게 삶의 이정표 같은 영화, 내가 흔들릴 때마다 보고 싶은 영화가 혹시 있을까요?
음, 삶의 이정표까지는 아닌데 저는 마음이 힘들 때 <아멜리에>(2001)를 봐요.
쭉 한 번에 보지도 않아요. 그냥 틀어 놓고 밥 먹으면서 오늘 여기까지 보고, 그 다음 날 청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보고 하는 식으로 보죠.
<아멜리에>를 보면 행복해져요. 주인공도 그렇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거든요. 그리고 혼자 살다 보니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지친 감각이 아멜리에가 처음에 도시에서 느끼는 외로움, 그리고 사랑을 찾아 나서는 마음과 공명이 되더라고요.
또, 색감이나 이런 것도 예쁘니까 그냥 보고 있으면 저한테는 약간 행복특효약 같아요. 어떤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틀어 놓으면 행복해지는 영화예요.그리고 제일 많이 본 영화는 <러브레터>(1995)예요.
<러브레터>는 영원히 사랑할 것 같아요. 작년에 오타루를 갔거든요. 홋카이도에서 오타루로 가는 기차에 올라 내리는 눈을 보며 OST를 듣는데, 진짜 첫사랑 만나러 가는 기분인 거예요. 진짜 첫사랑을 만나러 갈 때도 그렇게 설렌적이 없는데. (웃음) 내 첫사랑이 이 영화였구나 그 때 다시 한번 느꼈어요. (웃음)음, 영화를 볼 때 이 작품 명작인 건 알지만 나의 5점을 줄 수 있는 영화는 다르잖아요.
4.5점을 주는 영화와 5점을 주는 영화의 차이점을 만드는 기준이 있을까요?심장을 쳐야죠. 내 심장을 폭행했다. 그럼 5점이죠. 근데 그게 기준이 없어요.
그냥 얻어맞는 거예요. (웃음)((웃음) 어떤 영화에 심장을 때려 맞은 건가요.)
작년에 개봉한 <되살아나는 목소리>(2024)라는 독립 다큐가 있어요. 박수남, 박마의 감독님이라고, 모녀가 같이 만드신 작품이에요. 그걸 보고 저렇게 살고 싶다, 저렇게 혁명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님 작품 중에 개봉 안 한 작품인데,
<천상의 육체>(2011)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게 또 제 심장을 치고 갔어요.그럼, 일반적으로 영화를 볼 때 가장 주목해서 보는 지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의외로 영화 속의 공간을 주의 깊게 보는 것 같아요.
사실 예산의 차이가 있으니까 예산이 작은 영화는 공간도 조금 어설플 수 있잖아요.
그래도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그 에너지가 저를 그 영화에 스미도록 만들면 좋다고 느껴요. 다큐 같은 경우는 공간을 고를 수 없으니까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제일 좋아하시는 영화 속 공간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나는 건 <페인 앤 글로리>(2019)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워낙 원색 많이 쓰고 공간을 예쁘게 쓰잖아요.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장면에 등장하는 공간이 따뜻해서 좋았어요. 진짜 ‘이거다!’ 싶은 공간은 지금 딱 기억이 안 나네요. (웃음)
아, 최근에 좋았던 영화는 <더 폴: 디렉터스 컷>(2024)이 생각나네요.
어렸을 때 봤을 때는 그 정서가 잔인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잔인하게 느껴졌는지 말을 못 했거든요. 장면만 놓고 보면 더 잔인한 영화들이 많은데, 나는 왜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서요.
그런데 커서 다시 보니까 그 ‘왜’가 제 안에서 언어화가 되더라고요. 절망에 빠진 사람을 절망의 끝까지 밀어 넣는 과정이 잔인했던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에서 빠져나오려 싸우는 모습이 지금은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죠.
저 주목하는 거 공간 아닌가 봐요. 그런 에너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웃음)
청춘 영화들도 왜, 그런 에너지 있잖아요.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그런 느낌의 에너지를 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시작되는 영화들이요.
공간은 아닌 걸로, 그냥 허세의 답변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공간도 좋고 에너지도 좋고 둘 다 중요한 것으로 하겠습니다.(웃음))
남들은 잘 모르지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도 있을까요?
아직 개봉 안 했어요. 아마 곧 개봉할 것 같은데 <호루몽>이라는 작품이에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작품인데, 자이니치로 살아가시는 분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헤이트 스피치와 싸우는 인물의 법정에서의 시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어>(2022), <카운터스>(2018) 하셨던 이일하 감독님 작품이예요.
저는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구성적 측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그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게 되잖아요. 그분이 에너지가 넘치고, 또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굉장히 많은 힘을 얻게 된 영화예요.
글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처음에 영화로 긴 글의 리뷰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단순히 좋아서 시작했어요. 제가 어떤 영화를 봤는데, 제 눈에 이런 것들이 보였다는 게 너무 좋아서 시작했죠. 제가 초반에 쓴 글은 거의 그냥 줄거리 요약이에요.
그저 신나가지고 써서 인터넷에 올려놓았는데, ‘진진’에서 개봉하는 영화 시사회를 초대해 주신거예요. 신기했죠. 그렇게 보고, 쓰고 것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쌓이고 쌓여서 여기까지 왔네요.글을 쓰다 보면은 감상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가 가끔 있죠. 요즘은 영화를 볼 때 쓰면서 보거든요.
시사회나 영화제 같은 경우에는 리뷰를 제한된 시간안에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일을 하니까 하루 종일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볼 때 꼭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 보는 거죠. 그래서 감상이 잘 변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있기는 해요.
쓰다 보니 더 좋아지는, 그러니까 볼 때는 감정만 있었다면, 쓰면서 좀 더 명확해지는 때가 있어요.그런데 글로 기록하는 것의 장점은 영화를 만든 사람의 시간에 대해 내가 애정을 갖게 되는데에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 뜯어보면서 글을 쓰다 보면 만든 사람의 의도를 알아채고, 이해하게 되는 거죠.
(선이정님 추천작, <말없는 소녀>(2022))
보니까 거의 150개의 리뷰를 올리셨어요. 꾸준함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어떻게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나요?일단은 아직 좋아서 해요. 영화 보는 것도 좋고, 그걸 글로 쓰는 것도 좋아요. 게다가 씨네랩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계속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죠.
예전에는 제가 이걸 계속해도 될까 고민이 많았어요. 혼자 좋아서 하는데, 취미라기에는 들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거죠. 그쯤에 씨네랩를 만나서, 계속 새로운 기회들이 만나게 되었거든요. 이제 더이상 이걸 계속해도 될까 라는 질문은 하지 않아요.그럼, 안 써지는 글들을 쓰시는 노하우 같은 것도 있을까요?
없는데, 있으면 정말 배우고 싶네요. (웃음)
저는 만약 어떤 영화의 메시지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면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태풍 클럽>(1985)이 그런 작품이었거든요. 사람들이 이 영화에 감탄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저에게는 너무 불편했어요. 아주 옛날 영화라서 중간에 폭력적인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저한테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이 영화가 전하는 대단함이 저는 유쾌하지 않았죠.이 감정에 대해 한참 생각을 하다가, 긍정적인 리뷰는 아니었지만 박경리 작가가 일본에 대해서 쓴 ⟪일본 산고⟫라는 책과 연결지어서 리뷰를 작성 했어요.
반대로 <서브스턴스>(2024) 같이 너무 좋은 감정에 압도되어서 정리가 안 돼서 못쓰는 경우들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도 다른 책과 연관 짓거나 해서 작성하죠.
결국 영화만으로 정리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경우에는 책과 같이 다른 인풋이 많아야 글도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그리고 예전에 도움 많이 받은 말이 있어요. ‘정확하게 칭찬하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신형철 평론가가 하신 말씀인데, 그 말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영화의 장점을 못 봐도, 이 영화의 장점이 분명히 있고, 그것들을 잘 찾아내고 싶다. 그저 단어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감정의 이유를 좀 더 정확하게 말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 그 말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씨네랩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주셨어요. 계속 함께해 주시는 마음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처음에는 멋 모르고 시작을 했어요. 계속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하이스트레인저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그러면서 너무 이 영화 생태계에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영화 업계에 진짜 맑은 물 붓는 것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긴장도 했죠. 그런데, 앞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말씀해 주셨던 부분들, 시사회나, 영화제 프레스 같은 부분들과 같이 점점 뭐가 늘어나는 것을 눈으로 보이니까 더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그럼, 오랜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두 번의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제천은 비도 많이 오고 처음 가본 곳이라 동선이나 시간을 정하는 데 미숙했다 보니 정말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요. 두 번째 제천은 정말 행복해서예요.
둘 다 다른 의미로 강렬해서 잊혀지지가 않아요. (웃음)
첫 번째 제천은 기자단 활동을 함께한 방자까님과 한동안 제천 얘기밖에 안했어요.그리고 그다음 제천에서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님과 사진도 함께 찍고 해서, 제천이 강렬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때 인터뷰도 진행 하셨잖아요. 이번에 인터뷰 준비하면서 그 때 인터뷰를 진행해 주신 크리에이터분들의 대단함을 느꼈어요.
저는 직업상 종종 인터뷰를 할 때가 있어요.
현장에서 주민들이나 아동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할 때가 있는데, 사실 되게 힘들거든요.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제가 원하는 답으로 유도하는 것처럼 될 수 있어서 질문을 잘 짜야 해요.
하지만 감독님들은 본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된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회사에서 영화 상영회 분기별로 진행해서 GV를 함께 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처음엔 정말 무서웠는데 세상에 완벽한 GV는 없다는 마음과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만 전달되게 하자고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럼, 선이정님께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화들이 있을까요?작년 8월에 개봉한 <이오 카피타노>(2023)라는 영화가 있어요.
사람들이 난민이 주인공인 영화를 생각하면 시리아같은 분쟁 지역을 생각하는데, <이오 카피타노>의 주인공 에드는 세네갈에서 왔어요. 거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분쟁이나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는 곳은 아닌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세네갈을 나와서 유럽까지 가는 여정을 담았어요.이 영화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진짜 난민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세상에 내가 모르는 현실이 이렇게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영화예요. 국제개발협력 업계에 있는 제게도 너무 낯선 현실이었어요. ‘리비아 불법구금’이라고 흔히들 얘기하는 걸 들어만 봤거든요. 그냥 불법 구금 하나 보다 했는데, 그 불법 구금이 얼마나 끔찍한 형태인지를 이 영화로 처음 본 거죠.
그리고 또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2022)인데요.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해 목소리를 내게 되는 일이 삶에 찾아올 수 있잖아요. 그들을 지켜줄 보호 장치가 없을 때 정말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죠. 그 상황에서 너무 아름다운 저항을 하는 영화였어요. 게다가 영화에서 보여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통해 고민하게 만드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와 같은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이런 영화 리뷰를 쓰실 때 리뷰를 봐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쓰시기도 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영화의 숨어 있는 의미를 잘 찾는 사람도 아니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영화가 촉발한 감정을 적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이 이제 제 일과 관련된 영화일 때는 그것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서술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설령 본인이 이 영화에 대해 느낀 감정이 아니더라도, 제 글에서 묻어나는 감정을 읽고 ‘그래 이런 감정도 느낄 수 있지.’하고 공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업에 관련된 영화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친절하게 정리된다고 느꼈으면 좋겠고요.
예를 들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2024) 리뷰 같은 경우에는 제가 이란의 상황을 같이 정리해서 올렸거든요. 이런 내용이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나누려는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인지 들어보면서 오늘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제가 살면서 겪어볼 수 있는 일의 총합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어떤 경우에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못할 때가 있잖아요. 힘든 일을 겪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힘듦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이 보여지는 지 상상할 수 없죠.
영화는 살아본 적이 없는 삶을 간접적으로 상상하게 하고, 살게 하면서 내 안에 나도 몰랐던 나를 끄집어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좀 더 풍성해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 더 좋아지는 거죠.
저는 단순히 영화는 영화,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라, 내 삶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이 저에게 있어 영화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사람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을 살피는 선이정님의 따듯함을 느끼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명으로서 큰 힘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세상을 연결하고자 하는 선이정님의 마음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닿아 세상에 필요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선이정님이 추천하는 '몰랐던 세상을 알게 만들어주는 영화' 3편!
🎬 <목소리들> / 지혜원 감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책을 아시나요? 그 책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입니다. 모든 분쟁과 재난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먼저 칩니다. 약자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취약한 자리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에 분쟁과 재난 앞에 더 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주 4.3사건은 분쟁/재난이라기보다는 국가폭력사건이지만, 약자의 얼굴이 더 쉽게 지워진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김군> 볼 때도 느낀 건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사건이라고 해서 상처도 과거의 문장이 된 건 아니라는 걸... 이 영화에서 덜덜 떠시는 한 분의 모습 앞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되살아나는 목소리> / 박수남, 박마의 감독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특히 이런 어마어마한 분의 다큐멘터리는 마음을 쉽게 떠나지 않아요.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또 다시 기억이 되고, 그 사이 감상과 해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수남 감독님의 탁월한 기억과 기록을 보며 “저런 삶이 가능하구나! 너무 멋지다!” 하고 무릎을 쳤어요. 이 영화를 스무 살에 보았다면 아마 다짜고짜 일본에 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록하는 삶이 얼마나 힘있는지, 제게 그 경계를 폭발적으로 열어준 영화입니다.
🎬 <말없는 소녀> / 콤 베어리드 감독
클레어 키건 소설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원작 소설과 각색 영화가 결이 너무 일정해서 경이롭습니다. 클레어 키건을 좋아하신다면 꼭! 추천드려요.
제게 이 영화가 인상깊었던 이유는,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돌봄의 객체일 뿐 아니라 돌봄의 주체가 되기도 해야 하는구나 느껴서예요. 우리는 흔히 돌봄 받지 못하는 아동들을 생각하고, 의무감이나 선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돌봄은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상에 너무 쉬이 잊힌 마음이지만, 제가 일할 때마다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시 <행복>, 유치환)
‘선이정'님의 더 많은 글을 확인 하고싶다면, 씨네랩 글 보러가기
‘선이정’님 개인 SNS 페이지 https://brunch.co.kr/magazine/laviecultur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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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0년의 기다림> "이야기, 그 사람의 기나긴 우주의 일부를 함께 한다는 것."
*해당 게시물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해 작성했습니다.
지난 12월 27일, 조지 밀러 감독이 7년 만에 낸 신작 <3000년의 기다림>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유사한 장르의 영화들이 지니고 있었던 틀을 깨어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일러 없는 후기, 함께 자세히 알아보자!
<3000년의 기다림>은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등의 배우들이 출연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샀다. 총 러닝타임은 108분이며 국내 정식 개봉은 1월 4일이다. 제 75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해외 유력 매체의 언론과 세계 평단의 찬사가 쏟아진 작품이다. 세상 모든 이야기에 통다한 서사학자 알리테아(배우 틸다 스윈튼)가 골동품 가게에서 산 공병으로부터 우연히 소원을 이뤄주는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를 깨워낸다.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3번, 마음 속 가장 깊은 곳! 가장 오랫동안 바라온 소원을 말하면서 알리테아와 지니의 사이는 깊어진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어떤 장르인가 생각해봤다. 역사물도 아니고, 철학물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닌 그 셋을 아우르는 영화다. <3000년의 기다림> 역시 그러길 바란다.” - 조지 밀러 감독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영화의 폭주하는 쾌감과 스릴로 러닝타임을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매드맥스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사뭇 느낌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3000년의 기다림>에서 오스만 제국 시대를 걸쳐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긴, 3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났던 환상적인 이야기를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넘나들며 구현해내고 있다. 시각적으로 강렬하지만 부드러웠으며 청각적으로 웅장한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최고의 오감만족을 선사해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스크린이 선사하는 경험에 자신을 맡기면 영화로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므로 <3000년의 기다림>은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1.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과 소원을 비는 사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며 묘하게 <미녀와 야수>,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알라딘>, <팬텀스레드> 영화가 생각났다.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소위 말해, ‘지니’겠다)과 소원을 비는 사람 간의 아련하고도 슬픈 관계는 사실 어느 영화에서나 성립했다. 그러나 <3000년의 기다림>은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강렬한 서사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호평을 하고 싶다. 지니가 왜 그 병에 3천 년 동안 갇혀 있었는지, 왜 알리테아가 그에게 평생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인물인지 풍부한 서사로 관객들을 설득시켰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지니의 3천 년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부족할 정도로 화려했다. 그 화려함 안에는 정령의 아픔, 사랑 그리고 고통이 모두 섞여 있었다.
한편, 알리테아는 이성적인 캐릭터로 본인 인생에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므로 처음 지니를 마주하며 소원을 빌어야 할 때, 그 절실함을 느끼지 못 한다. 하지만 지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층 그의 삶에 더욱 가까워질수록 정확히 형언하지 못할 사랑을 느끼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소원을 빌게 된다. 그렇다, 이 과정에서 기존 영화에서 비쳐졌던 소원을 비는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의 관계가 타도된 것이다, 그것도 매우 아름답고 서글프게.
2. “우린 고독을 함께 해요”
알리테아가 지니에게 던진 한 마디, 어쩌면 그들의 3000년의 기다림을 요약해주는 한 마디였다. 이 영화를 보면, 단순히 판타지‧멜로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로맨스가 아니라 외로운 두 인물이 함께, 새로운 고독함을 맞닥트린 영화라고 생각했다. 알리테아에게 닿기 위해 지니가 버텼던 3천 년은 분명 행복한 꿈이었을 것이다. 한편, 지니에겐 3천 년의 기다림이었겠지만 알리테아 또한 얼마나 그 무던한 시간을 홀로 버텨왔을까? 평소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그런 그녀에게 감정의 요동을 선물해준 지니였다. ‘내가 미친 건가? 무엇이 진짜일까?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라며 끝없는 고뇌 안에 갇혀있었던 알리테아. 정령 지니는 알리테아에게 존재의 이유를 선물해줬다고 느꼈다.
지니가 살아온 삼천 년도 도착지 없는 여행이었겠지만, 알리테아가 겪은 무수한 고독함 또한 그랬을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함 2명이 만나면 묘한 사랑으로 번져지는, 정말 물감이 묻은 하나의 붓이 천천히 물병 안에서 퍼졌던 영화였다.
지니, 알리테아; 각 캐릭터가 지닌 공허함을 잘 표현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이드리스 엘바다. 특히나 오랜만에 틸다 스윈튼을 큰 스크린으로 보니, 어딘가 모르게 갈 곳 잃어버린 그녀의 눈동자는 더더욱 아름다웠다.
3. 이야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갈망
가수 아이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잘 잤으면 하는 건 사랑이라고. 이 말을 본 영화에 비유해보자면,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사랑해’라는 피상적인 말이 없어도, 그 사람이 건너온 무수한 우주를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본인 내면 속, 무의식 안에서 피어올랐던 진정한 ‘갈망’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을 첨예하고도 부드럽게 그려낸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이다.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연출이 관객에게 선물해주는 ‘타임캡슐’. 실제 지니 역을 맡은 배우 이드리스 엘바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타임캡슐에 담긴 영화같다. 배우와 감독이 함께 이야기를 꺼내서 들려준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뭘 얻을 수 있을까? 갈망에 관한 교훈적인 이야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관객은 지니의 3천년의 기다림, 그리고 알리테아와 지니가 앞으로 함께 걸어나갈 무수한 시간의 외로움이 담긴 타임캡슐을 고스란히 극장에서 열어볼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이야기 속에서 아름답고도 고통스럽게 피어오르는 3천년의 기다림과 그들의 미래들.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그 사람의 기나긴 우주의 일부를 함께 한다는 것."라고 나의 한 줄을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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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자본 순일까?
백 투 더 퓨처 2
줄거리미래에서 돌아와서 제니퍼와 감격의 포옹을 하는 순간, 갑작스레 마티를 찾아온 브라운 박사.
박사는 그들의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빨리 미래로 가자고 한다.
왁자지껄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더니, 마티가 살던 세상이 변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1985년을 바로잡기 위해, 마티는 다시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행복은 자본 순일까?
숨은 의미 찾기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마티를 보고 있노라면
혈압이오른다. 하지만 어쩌겠어, 주인공이니 참아야지. 네가 그렇게 사고를 쳐야 영화가 진행이 되는 거지, 그렇지? 활발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마티 덕분에(?) 영화는 예측불허로 흘러간다.1편이 타임머신으로 역사의 흐름을 유지해서 ‘미래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주력했다면, 2편은 타임머신이 만들어낸 오류를 잡아 ‘미래의 상황을 보존’하는데 주력한다. 어쨌든 꼬여버릴 뻔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2편은 1편의 빌런이기도 했던 ‘비프’의 활약으로 뒤죽박죽이 된 미래를 보여준다. 악인의 손아귀에 들어간 타임머신은 어떻게 악용되는지, 브라운 박사가 우려했던 점을 제대로 짚어낸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방영된 ‘대탈출 4’에서도 타임머신 이야기가 나왔었다. 과학자의 탐구심과 호기심의 산물이 개인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도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의 이야기가 2020년대에도 똑같이 활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타임머신으로 인류문명의 발전에 힘쓴다는 이야기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라면 타임머신이 눈앞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로또 번호를 외운다느니, 테슬라 주식을 산다느니, 비트코인을 넣는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내가 작품 속 악인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왕 살 거 부자로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돈과 행복은 비례한 것인가.
물론 부유함이 빈곤함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어쨌든 가난에 찌들어 사는 것보단 적당한 부가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맞으니까. 때로 너무 많은 부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례를 보긴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런 이야기조차 사치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유하지 않음이 곧 불행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먹고 살만큼의 돈으로도 인생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이 말은 부자면 불행하고 가난해야 행복하다,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자면 행복하다는 식의 극단적 비유가 아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든, 내가 행복하고자 하면 얼마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소리다.
1편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마티가 과거로 가기 전, 마티의 가족은 가난했다. 가난한 가족은 화목함과 거리가 멀었다. 서로를 돌보지 않으며 각자의 비전조차 없는 마티의 가족은 암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티가 과거에 다녀와서 다시 구성된 가족은 조금 달랐다. 화목하기 그지없었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부유함이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부자인 가족만이 완벽하고 완성된 형태인 것일까.
이전 리뷰에도 말했지만 마티는 가난했던 자신의 가족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자신이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애써 자신의 부모가 다시 만나도록 노력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런 가족, 처음부터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2편 역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지만, 1편에서 느꼈던 씁쓸함을 더 크게 느끼도록 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나라고 비프의 상황에서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악용하는 것은, 부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아닌 당신을 부정해가면서 부자가 되려 하지는 마라.
그것이 백 투 더 퓨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아닐까?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2015년
감상평전에 한 번 보고 리뷰 직전에 또 봐도 여전히 질리지가 않는 영화.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 시대에 상상했던 ‘2015년’의 모습. 하늘을 떠다니는 자동차와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 말 한 마디면 척척 알아서 움직이는 가전제품,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커지는 음식, 버튼만 누르면 젖은 옷을 말려주는 기능까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과학 상상화 대회 같은 게 열리면 꼭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옛날 옛적 생각이 나면서 묘하게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달까. 우리가 상상하고 열광하고 설레며 미래를 기다리던 그 시절의 향수 말이다. 물론 2015년은커녕 2021년에도 이렇게나 불편하게 살 거라는 걸 과거의 인간들이 알면 어떨까 궁금하다. 당신들은 인간의 과학문명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아,그리고그런패션은영원히유행하지않아,유행해선안돼.따지고 보면 뻔하고 유치한 내용이다. 하지만 과거에 말했던 미래가 현재로 닥쳐오고 나니, 우리는 더 먼 미래를 꿈꾸고 상상한다. 2050년의 모습은 어떨까, 미래의 내가 과거에 써 두었던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는 것은 유치하거나 나쁜 게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자, 어쩔 수 없는 욕구다.
그래서 이 영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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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짜 페르시아인이 뇌리에 새긴 불편한 진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초청 받은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우리 주변의 '가짜'들
살다보면 우리는 숱한 가짜들을 마주한다.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들을 말하냐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짜란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다른 탈을 뒤집어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어떠한 목적에 의해 그러한 개인의 고유한 특질을 감추거나 가리고 또다른 가면을 쓴다. 이유는 다양하다. 정말로 자신이 가장한 삶처럼 살고 싶어서일수도 있고, 피치 못하게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본질과 가면(페르소나)를 양립시켜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러한 가짜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주 견고하고 확고한 의지, 혹은 신념이다. 꼭 어떤 것을 해내야만 한다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질' 역시 그러한 가짜의 탈을 쓴 사람 중 하나이다.
2. 살기 위해 가짜가 되다.
때는 세계 제2차 대전. 나치 독일의 야욕은 온 유럽을 집어 삼키고, 그들의 광기는 인종학살적인 경지에 이른다. 뛰어난 종만을 살려서 더 나은 인간종을 만들겠다는 우생학의 골조 아래에 숱한 비-아리아인(흔히 전통적인 독일 민족이라고 일컫어지는)들이 '청소'당했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유대인은 이들의 대표적인 학살 대상 중 하나였다. 유대인인 '질'은 이들의 인종 청소로부터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수용소로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그가 다다른 곳은 소위 '쓸모 없는 인간'은 지워지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곳.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바로 그곳에서 질은 살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사칭한다. 정작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면서!
하늘이 도운 걸까? 이 가짜 페르시아인이 끌려간 곳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독일군 대령 '코흐'가 있었다. 질이 알고 있는 단어는 '아버지'를 뜻하는 '바바' 뿐이지만, 살려면 그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야 했고, 그리하여 이 가짜 페르시아인은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위해 필사적으로 단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단어는 대충 지어낸다 쳐도, 가르칠 단어는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날텐데 그 많은걸 어떻게 다 기억한단 말인가? 한참을 고전하던 질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이름과 인상에서부터 단어를 착안해내고, 그 기발한 발상으로 말미암아 2000개가 넘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단어에서 시작되었던 언어는 이윽고 문장이 되고, 문장은 일련의 이야기가 된다.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짜가 이름과 이름들이 견고하게 엮임으로써 하나의 실제하는 언어가 된 것이다.
3. 가장 평범한 악인들
질과 코흐는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거듭하면서 묘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코흐는 질을 철저하게 착취하는 입장이면서도 그에게 나름대로의 '관용을' '베풀'고, 질은 그 얄팍한 관용 속에서 코흐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아 나간다.
코흐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이기적이고, 쪼잔하며 얼마쯤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도 있다. 요리사였던 그는 수용소의 수감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그들을 학살하는 독일군 장교들을 배불리 먹인다. 그는 직접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지만 학대한 적은 있고, 적어도 간접적으로 독일군의 광기어린 살인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냉혈한일 것만 같은 그 코흐도 퇴역 후 낯선 땅에서의 안락한 여생을 꿈꾸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가정하며 친애를 표했다. 그는 그 자신이 평범한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 대단한 만행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평범한 악인은 그뿐만이 아니다. 작중에 나오는 독일군 모두가 그러하다. 그들은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악행을 합리화한다. 코흐는 스스로의 손을 직접 더럽히지는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고, 또 어떤 병사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잣대로 평가된 '유대인들의 저급함'을 학대의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믿음은 거의 종교와도 같다. 때때로 종교가 우리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듯이, '그러니까 저들은 그르고 나는 옳다'는 이기적인 신념은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그 대단한 파시즘적인 발상에의 추종과 '나 자신의 안락함'을 위한 외면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고, '치우고', '묻었다'.
4. 살아남은 가짜 페르시아인과 가짜 페르시아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 질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가 만들었던 언어, 즉, 수용소에서 죽어간 약 2000여 명의 사람들의 이름 역시 살아 남았다. 처절한 생존의 의지가 만들어 낸 어떤 기적이다.
페르시아어를 배운 코흐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영화를 직접 보는 편이 좋겠다. 이 영화가 악인을 그리는 방식은 대단히 흥미로워서, 이를 관찰하는 것 역시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신념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신념은 사람을 죽이고, 어떤 신념은 사람을 살린다.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생각이어서 얼마든지 그릇될 수도 있는 것인데, 때때로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신봉한 나머지 그것에 매몰되곤 한다. 우리는 언제든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러한 가짜들이 진짜인 우리를 집어 삼키게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영화의 독일군들처럼!
내가 쓰는 가면은 어떨까. 나는 내 가면을 올바르게 닦고 있을까? 나의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은 어떻게 분리해야 할까? 내가 그러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세계를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수밖에는 없을 거 같다. 나만 생각해서는 내 가면에 내가 잡아먹힐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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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팬, 웬디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다-영화 웬디
올해가 피터팬 탄생 110주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피터팬을 재해석한 웬디 라는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하여 영화를 관람하고 왔어요!
원작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장르의 성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조금 다른 영화로 만들어졌는데요.
웬디가 중심 인물이 되어서 피터를 만나면서 한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어요.
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에요.
나이 듦에 대한 생각과 아이와 노인을 대비시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특히나 아름다운 섬의 풍경과 신비로운 고래의 모습이 눈길을 잡아두는 영화입니다.
단, 일반 판타지 물의 오락적인 성향은 적은 영화에요. 잔잔하고 진중합니다.
그래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조금 심심한 듯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들은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는 않지만 웬디 역을 맡은 데빈 프랑스의 좋은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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