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버레이터 : 500일의 오디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즌1은 1-4화로 완료.
'밴드 오브 브라더스' 이후 제대로 만든 전쟁영화를 만났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미군의 전투 영화는 이미 수백 편 나왔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 영화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이전의 전쟁영화가 '자연주의', '낭만주의'적 요소가 주류였던 것은, 영화 제작 기법의 문제와 함께 '세계의 경찰'이자 '영웅'을 선호하는 미국인의 정서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특히 미국이 소련과 냉전을 펼치던 1950년대부터 2000년 이전까지 시기는 급격한 군비 경쟁과 동서 진영의 냉전 상황이 전쟁영화에도 영향을 끼쳤고, 미군 참전 영화는 필연적으로 독일군에 의한 유대인 학살 장면과 이어지게 된다. 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세계경찰 또는 군사패권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이후 중동에 개입해 이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예전의 '국제경찰'에서 '국제깡패'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결국 미국이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전쟁은 유일하게 '2차 세계대전' 뿐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참전하지 않았지만, 연합국에 군수물자를 대량으로 판매하면서 연합군이 무기와 군수물자로 독일군을 압도할 수 있는 뒷받침을 해주었다. 1940년대 미국의 생산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탱크나 군함이 전쟁터에서 부서지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대량으로 생산되어서 전투로 손실되는 양보다 더 많은 물자를 공급해 연합군을 든든하게 지원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군이 쏘련을 침공했을 때, 미국은 쏘련에 군수물자를 제공했다. 쏘련군은 초기 독일군의 공격에 밀렸으나 겨울이 되면서 반격을 시작해 독일군을 궤멸시키게 되는데, 이 독-쏘 전쟁이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를 정도로 쏘련군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 필릭스 스파크스가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해 프랑스, 독일 지역을 옮기며 전투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영화 내용을 언급하기 전에 영화의 형식에 관해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는 왜 그래픽노블 형식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을까.
첫째는 미학적 표현을 추구한 것이다. 전쟁, 전투 영화는 그 자체로 잔혹하고 참담한 상황이기에 전쟁을 아름답게 그릴 수는 없다. 전쟁영화를 가장 미학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테런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 라인'인데, 전쟁, 전투와 개인의 존재를 다룬 철학적인 내용이다. 전쟁 자체가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전투를 다룬 장면은 물론, 전투를 하지 않는 군인들의 일상에서 순수한 '개인'의 사유와 내면의 목소리를 철학적, 미학적으로 뛰어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씬 레드 라인'처럼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게 만들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형식에 변화를 주어 관객이 신선한 느낌을 갖도록 만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반씩 섞은 효과를 낸다. 배우들은 실제 배우들이 움직이는 걸 찍은 다음, 그래픽 효과를 주어 만화적으로 표현했다. 오로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그러면 사실성-리얼리티-이 떨어져 관객의 감정에 울림을 주는 효과가 줄어든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중간 형태는 전쟁영화에서 드러나는 참혹함을 완화하고, 사실성을 완화해 관객으로 하여금 실사보다는 감정적 거리를 만들어 전쟁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효과를 갖는다. 여기에 그래픽노블 효과를 내면서 영화와 만화의 장점을 결합 또는 융합한 형식을 만든다.
미국의 '히어로물'들이 그래픽노블에서 실사 영화로 옮겨오면서 사실성-리얼리티-을 강조한 것과는 반대 이유다. '히어로물'을 실사로 제작하는 이유는, 사실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고, 이는 관객이 상상과 현실의 간극을 최대로 좁히는 것에 목적이 있다. 사실성을 높이면 관객은 영화 속 '히어로'를 실제 인물처럼 생각하게 되고, 친근하고 가깝게 느끼게 된다.
이는 만화 속 인물이 생명을 얻으면서 관객(대중)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이후의 비슷한 '히어로물' 영화의 제작과 기존의 만화(그래픽노블)의 판매에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
둘째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함이다. 전쟁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동원되는 물자도 많고, 2차 세계대전 상황을 고증하고, 그때 쓰던 물건은 물론 배경이 되는 건물을 구현하려면 일반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건 당연해 보인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하면, 제작비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각종 화기, 포, 탱크에서 발사하는 탄환과 포탄의 폭발은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실제 폭약을 설치해 터뜨리는 것보다 아주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낼 수 있으며,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실사 영화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것보다는 가시적 효과가 부족한 건 분명하지만, 이 영화가 그래픽노블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폭발, 화염 등의 효과는 만화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살레르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 선더버즈. 독일군과 전투 중에 스파크스 대위는 독일군 포격에 부상당해 후방으로 이송된다. 살레르노는 이탈리아 중남부 지역으로, 나폴리, 폼베이, 소렌토, 아말피로 이어지는 바닷가 지방이다.
장면이 바뀌어, 2년 전, 오클라호마 포트 실에 있는 부대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때 스파크스는 소위였으며, 하와이에서 3년을 복무하고 있었다. 부대장과의 짧은 면담에서 드러난 것만 보면, 그는 17살에 집을 나와 독립했고,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가 하루 세 끼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모병관의 말을 듣고 입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학공부를 위해 학비를 벌 목적으로 입대한 것이다.
스파크스 소위가 오클라호마로 오게 된 이유는, 통제가 안 되는 중대를 지휘해 병사들을 훈련시켜 제대로 된 군인으로 만들라는 임무 때문이었다. 'J중대'는 'Jail' 즉 감옥을 뜻하며, 실제로 이 중대원들은 전부 군대에서 사고를 치고 감옥에 갇혀 있는 병사들이었다.
부대장은 스파크스 소위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준다. 스파크스는 '감옥 중대'를 찾아가 그들에게 사격 훈련을 통과하면 외출을 시켜주겠노라고 말한다. 이때 스파크스가 보여주는 태도는, 사고 친 병사들에게 동등한 군인으로 또는 남자 대 남자로, 친구처럼 담담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그의 태도는 감옥에 갇혀 있던, 상급자를 폭행하고 들어온 사병들에게 믿음을 준다.
스파크스와 J중대 사병들이 가까워지는 첫번째 사건은, 사격장 교관과의 싸움 장면이다. 사격장 교관은 백인 상사로, 몸집도 크고, 입에 걸레를 문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자인데, J중대는 주로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서 사병들을 자극한다. 이를 보던 스파크스가 나서서 사격장 교관에게 훈련을 제대로 가르치라고 말하자, 교관은 스파크스 소위에게 계급장을 떼고 화장실 뒤에서 붙자고 도발한다. 상사가 소위에게 덤비는 건 분명 항명이지만, 상사는 소위보다 경력이 더 많고, 군 생활도 오래했기 때문에, 소위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스파크스는 교관의 도발을 받아들이고, 화장실 뒤에서 한바탕 결투를 벌이는데, 체격이 좋은 교관이 묵사발이 된다. 교관과 싸운 사람은 스파크스 소위가 아니라 J중대원인 콜드풋이었고, 스파크스와 J중대원은 즐거운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부상으로 후송된 스파크스는 북아프리카 알제리, 알제의 야전병원에서 치료하다 전선에 있을 때의 지휘관을 만난다. 그도 스파크스가 부상당하고 일주일 뒤에 지뢰폭발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군생활을 끝내게 되면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지휘관은 스파크스에게 전쟁터에서의 기억은 다 잊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스파크스는 귀국하는 지휘관의 가방에 아내 메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고, 지휘관의 명령 없이 스스로 최전방 부대로 돌아간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스파크스의 나레이션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이다. 스파크스의 심경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으며, 그가 '전우', '동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다시 최전방으로 돌아가 전우들을 만나는 심정과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스파크스가 J중대를 만나는 것으로 간략하게 보여주지만, 157연대는 미국 중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인종의 미국인이 등장한다. 아파치족, 세미놀족, 체로키족, 수족, 촉토족, 멕시코계의 미국인 등이 등장하고, 이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독일군들은 이들 미국의 소수인종, 소수민족이 백인들에게 차별당하고 있는 현실을 조롱하면서, 미국에서 차별당하는 너희들이 미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건 웃기는 짓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옳은 지적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거대한 악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한다는 점에서, 이들 소수인종의 참전은 '연합군'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미 흑인으로만 구성한 부대가 있었으니, 미군의 구성은 그 자체로 '연합군'이다.
넋이 나간 듯한 스파크스 대위는 부대에서 안치오(Anzio) 전투에 관한 내용을 진술한다. 안치오는 로마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바닷가 지역으로, 선더버즈 부대는 살레르노 전투에서 독일군을 밀어내며 로마 가까운 곳으로 진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944년 1월 22일 안치오 해변에 상륙한 미군은 독일군을 8km 밖으로 내몰지만, 이후 3주 동안 전진하지 못하고 대기만 하고 있었다. 스파크스 중대는 다가올 독일군의 공격에 대비해 참호를 파고 수비하는데, 예상대로 독일군이 먼저 쳐들어오고, 적은 병력으로 독일군을 상대하게 된 157연대 E중대는 아군의 포격으로 위기를 넘긴다.
안치오 상륙작전은 이탈리아 내륙에서는 험준한 산에 가로막혀 연합군의 진군이 이탈리아군의 방어를 뚫지 못하게 되자, 바다를 통해 로마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주력부대는 여전히 내륙으로 진군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독일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안치로 상륙작전을 펼쳤으며, 이 작전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 와중에 헌병 장교 칠더스 중위가 전선으로 찾아와 스파크스 대위에게 소환장을 내민다.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독일군의 공격이 거세질 것이 분명하지만, 157연대는 병력의 절반이 사라진 상태에서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사흘을 버티다 바닷가 근처 동굴로 후퇴한다.
독일군의 포위망을 뚫고 적진을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E중대는 독일군에 들켜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 중대원 대부분이 이 후퇴 상황에서 전사하고, 스파크스 대위를 데리러 왔던 헌병 장교 칠더스 중위도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 스파크스 대위에게는 무엇보다 오클라호마 포트 실에서 만나 생사의 전투를 함께 치른 동료 병사를 여럿 잃은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스파크스는 아내 메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전우들이 어떤 존재인지 말한다. 그는 생사를 함께한 부대원들을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행운이 아니라, 평생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고 있다.
스파크스가 속했던 157연대는 부대를 재편해 제6군에 소속되고, E중대는 새로운 병사들로 채워진다. 두달 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고, 스파크스의 부대는 프랑스 남부 생뜨막씸므에 상륙해 '용기병 작전'을 펼치게 된다. 생뜨막씸므는 마르세유와 칸느 사이에 있는 바닷가 지역이다.
'용기병 작전'은 두달 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이어 프랑스 남부를 장악해 보급로를 확보하려는 작전으로 미군이 주도했다. 이 작전에서 미군은 약 2천여 명이 전사하고, 자유프랑스군은 1만 명 이상이 전사한다.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한 스파크스가 이끄는 157연대는 바짝 긴장하고 상륙하지만, 독일군은 이미 퇴각한 뒤였다. 부대는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며 프로방스 지방을 지난다.
1945년 1월, 스파크스 연대는 독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 있는 보주 산맥을 넘는다. 독일 노이슈타트,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서 독일 쪽으로 조금 들어간 지역에 있던 독일군 산악부대는 미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보주 산맥에 진을 치고 미군을 기다린다.
스파크스가 이끄는 대대가 부대 표창을 받는다. 157연대 2대대 전체가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지만, 정작 생존자는 스파크스를 포함해 세 명에 불과했다. 안치오 전투에서 대부분 전사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보주 산맥의 중턱에 참호를 파고 독일군의 공격에 대비하는데, 이 지역을 잘 알고 있는 독일군은 길목을 차단하고 미군의 보급로를 끊는다. 독일군은 대전차 지뢰를 매설하고, 삼각 매복을 통해 화망을 집중할 수 있는 자리에 기관총과 저격수를 배치해 걸리기만 하면 전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첫번째 보급팀이 거의 전멸당하고 몇 명만 살아남은 상태에서, 장갑차를 포함해 두번째 팀이 올라가지만 역시 독일군에게 전멸당한다. 눈이 많이 쌓였고, 몹시 추운 날씨에 병사들은 감각을 잃고 얼어죽기 직전에 이른다. 독일군이 공격하고, 아군의 포격 지원으로 겨우겨우 버티고는 있으나 지리와 지형을 잘 아는 독일군의 매복 공격을 당하지 못한다.
고립되어 있던 병사 가운데 한 명이 산 아래를 향해 뛰지만 독일군 저격수에게 당하고, 두 번째 병사가 겨우 스파크스 소령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결국 스파크스 소령이 직접 고립되어 있던 병사들을 구출하러 올라가고, 부상당한 채 눈덮인 땅에 쓰러진 병사들을 보고 몸을 사리지 않고 병사를 업어 나른다. 이 장면을 독일군들이 모두 보고 있었지만, 총을 쏘지 않는다. 비록 적이지만 자기 생명을 내놓고 병사를 구하는 장교의 모습을 보면서, 독일군도 감동한다.
산중턱에 참호를 파고 방어하던 157연대 약 500명은 결국 독일군에 항복하고, 항복에 동의하지 않는 병사는 개별적으로 산 아래로 내려가는데, 독일군 매복조에 걸리면 사살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스파크스와 함께 싸웠던 병사들은 모두 항복을 거부하고 살아서 부대로 귀환한다.
스파크스 소령은 사단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지만, 사단장도 어쩔 수 없는 명령을 내려야 할 때가 있는 거라고 말한다. 스파크스로서는 참패한 전투였고, 무엇보다 부하 병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다.
1945년 3월 31일, 독일 아샤펜부르크로 진입하는 미군. 프랑크프루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크지 않은 도시인 아샤펜부르크에서 저격수에 맞서 시가전을 치른다. 이 시가전에서 지금까지 무수한 전투에서 살아남았던 J중대 고메스 병장이 전사한다.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일부 병사들의 감정이 흔들리고, 이성보다 감정에 이끌리는 행동을 하는 병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군의 죽음을 너무 많이 봤고,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보니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샤펜부르크로 진입하기 전에, 독일군 지휘관이 총동원령을 내렸고, 병가를 낸 독일군 장교를 반역자라고 누명을 씌워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매다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아내가 보는 앞에서. 미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항복을 받으러 가는 길에 길거리에 매달린 독일군 시신과 그의 아내를 발견하고, 억울하게 죽은 독일군 장교의 시신을 내려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게 한다.
이런 장면을 비롯해 전편에서도 독일군이 스파크스 중령을 충분히 쏠 수 있었음에도 쏘지 않았던 것처럼, 작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장면이 보인다.
1945년 4월 29일, 미군은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주로 진입한다. 뮌헨에 이르기 전, 다하우에서 포로수용소를 발견하고 수색하는데, 열차에서 무수한 유대인의 주검을 발견한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엄청난 민간인(유대인)의 주검을 발견한 미군들은 증오의 마음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수용소를 수색하던 병사들은 항복하는 독일군을 사살하고, 살아 있는 유대인들을 발견한다. 수용소에는 부상당한 독일군들이 있었는데, 병사들은 지휘관인 스파크스의 명령 없이 이들 가운데 일부를 살해한다. 나중에 병사들의 행동을 알게 된 스파크스가 달려가 저지하지만, 이때는 이미 17명의 독일군이 사살당한 뒤였다. 스파크스는 총을 쏜 병사를 체포하고, 부상당한 독일병사를 치료하도록 조치한다.
스파크스는 사단장에게 히틀러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수용소에서 독일군을 임의로 처단한 사건에 대해 군 사법기관에서는 엄정한 처벌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제6군은 유럽에서의 전투를 마무리하고 재정비한 다음 일본과의 전투를 위해 아시아로 갈 계획이었으나 스파크스 중령은 여기서 제외된다. 군 사법기관에서 전쟁범죄 혐의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사법원장을 만나라는 명령을 받은 스파크스는 지휘부 건물에 도착하고, 자신의 혐의가 매우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는 다음 날, 군사법원장이 지시한 건물에서 한 장군을 만나는데, 그는 패튼 장군이었다.
패튼 장군 - 이때 이미 별 네 개의 대장이었다 - 을 만나는 스파크스. 패튼은 스파크스의 혐의가 매우 무겁다고 입을 연다. 패튼 장군은 스파크스의 기록을 읽는다. 스파크스는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으며, 시칠리아의 찰리 앵콘의 부대, 살레르노에서는 미들턴과 싸우다 부상당해 알제리의 알제에 있는 야전병원에 입원했다 다시 이탈리아 전선으로 자진 복귀한다. 비아 안치오 전투에서 독일의 케셀링 부대의 진격을 저지하고, 이 전투로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는다. 용기병 작전, 프랑스 전선으로 이동해 보주산맥에서의 전투, 아샤펜부르크 전투, 끝으로 독일 다하우에서 유대인 수용소를 발견한다. 1945년 4월 29일 09시 30분 경, 스파크스 중령의 지휘 아래 있는 157연대 I중대원들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비무장 독일군 17명에 대해서.
패튼은 자신도 37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살았지만, 실제 전투는 350일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스파크스의 전투는 500일이나 된다. 그것도 만만한 전투가 아니라 언제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격렬한 전투에서. 패튼 장군은 스파크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패튼 장군이 스파크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스파크스는 아마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아시아로 갔을 것이다.
스파크스는 패튼의 명령에 따라 - 물론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중령으로 예편하고, 이후 콜로라도 볼더대 법대를 졸업, 변호사가 되어 후에 콜로라도주 대법원에서 근무. 2007년 사망한다. 아내 메리와 65년을 함께 살았다.
이 작품을 쓴 원작자 알렉스 커쇼는 이 시리즈의 조연출로도 참여하고 있다. 알렉스 커쇼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나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작가다. 그가 쓴 책은 한국에 겨우 한 권이 번역되어 있을 뿐이다. 알렉스 커쇼는 '잭 런던', '로버트 파카'의 전기를 쓰기도 했으며,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여러 작품을 작가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미군 전쟁, 전투 작품(소설, 영화)에는 거의 대부분 유대인 수용소와 유대인 학살 장면이 나온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므로 전혀 문제가 없지만, 특히 영화(헐리우드) 제작에서 영화 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자본의 '의도'가 개입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있었던 사실을 드러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그것을 반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유대인들이 역사적 피해자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그 피해자의 권리를 이익으로 치환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이 살던 지역을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했으며, 지금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패권국가이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학살자로 변했다. 그럼에도 헐리우드에서는 여전히 피해자 유대인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며,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의 깡패로 살아가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유대인 수용소 장면이 나오고, 그 참혹함은 실사 영화가 아닌, 그래픽노블 형태의 형식이어서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를 갖지만, 유대인 학살, 유대인 피해자의 각인 효과는 엄청나다. 작가인 알렉스 커쇼가 유대인이어서 이런 장면을 의도해서 넣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의도하지 않았어도 이런 장면이 주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알렉스 커쇼의 홈페이지
http://www.alexkershaw.com/about/
알렉스 커쇼의 트위터
https://twitter.com/kershaw_alex
알렉스 커쇼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battlesofww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