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2023-08-17 10:19:12
감정을 들여다 보는 미술 감독 '류성희'
영화라는 것은 어차피 허구지만, 공간이나, 어떤 한 장면의 이미지가 영화의 어떤 분위기나 이미지 그자체로 인식 될 때도 많다. 장화홍련의 꽃무늬 벽지라든가. 올드보이의 방, 헤어질 결심의 파도 벽지 같은 것들. 때로는 아름다움과 영감을 주는 영상으로 가득 찬 영화를 보고 나면, 스토리나 연출이 다소 아쉬운 영화라 하더라도, 눈이 호강했으니까 좋은 시간이었다. 하고 생각 할 때도 있다.
8월 18일 넷플릭스에서 릴리즈 되는 <마스크걸>은 화려한 출연진과 감독 만큼이나 명품제작진의 참여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특히 내가 가장 기대 하는 것은 영화 <아가씨>로 한국인 최초 칸영화제 벌칸상을 수상한 류성희 감독이 이 시리즈의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벌칸상은 영화 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주로 촬영부문에서 수상하고, 류성희 감독이 수상하기 전 미술 감독이 단독으로 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류성희 감독이 이 상을 수상함으로써 지금까지 감독이나,배우,촬영에 상대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감독” 이라는 세계를 주목 받게 해주었다.
그에게 벌칸상을 안겨준 영화 <아가씨> 뿐 아니라 <작은 아씨들> <헤어질 결심> <암살> <괴물> <박쥐> <달콤한 인생> <올드보이> 등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화제를 모은 대부분의 영화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스토리면에서 <마스크걸>은 류감독의 전작과 비슷한 장르의 느낌이지만, 사실 웹툰의 이미지들은 등장인물위주의 드로잉으로 색이 거의 간결하고 심플한 그림체를 띄고 있어서, 영상 콘텐츠에서 어떤 분위기로 만들어졌을지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공개된 티저에서 강렬한 색채의 모미의 침실과 화려한 조명의 바 욕실의 그린빛 조명, 그리고 무엇보다 회색으로 가득 찰 것 같은 교도소에서 기도 하는 장면을 성스러운 분위기의 세트로 만든 것을 보고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기대감이 올라 오는 느낌이었다. 교도소는 라일락,보라,그린의 색 조합을 통해 판타지적인 느낌이 들게 했다고 한다.
감독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한 장소는 김모미가 처음 살인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텔이었다고 한다. "가짜의 로맨틱 러브모텔, 벽지의 야자수가 판타지적이지만 어딘지 도달할 수 없는 노을 지는 시간부터 밤의 시간까지 표현되고, 아름답지만 슬픈 감정도 만들어 내는 곳"이라고.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이미지 너머 ‘아름답지만 슬픈 감정’ 을 생각 하고 공간을 디자인 하는 그 지점이 지금 까지 류성희 감독이 참여한 작품들이 자극적인 소재를 넘어선 깊은 감정에 다다를 수 있게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영상이라는 장르에서 스토리텔링은 웹툰과 다르게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서만 전달 되는 것이 아니고,촬영, 조명, 음향 그리고 2차원의 공간이 3차원으로 구현되는 미술이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다. 그림과 텍스트로 이미 만들어진, 알고 있는 스토리텔링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어떻게 기획하고 연출을 했을까. 기대감으로 이번 주말은 <마스크걸> 정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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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만에 중국 개봉하는 한국 영화
한국 영화가 중국 시장에서 6년의 공백을 깨고 드디어 와이드 릴리징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12월 3일, 금요일에 중국 내 극장들이 2020년 9월, 국내에서 개봉되었던 영화 <오! 문희>를 상영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는데요. 나문희 배우와 이희준 배우가 열연을 펼친 영화 <오! 문희>는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할머니가 그녀의 개와 함께 손녀의 뺑소니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고, 이에 아들 '두원'과 '문희'가 손녀를 의식불명에 빠뜨린 범인을 직접 찾아 나서는 코믹 드라마입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그해부터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영화, 드라마 및 미디어 방영을 금지하는 이른바 '한한령'을 내린 바 있는데요. 이에 따라, 국내 천만 관객을 달성했던 전지현, 이정재 주연의 <암살> 이후 중국 내에서 제대로 된 극장 개봉을 이뤄낸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었습니다.
예외로, 2018 베이징 국제영화제에 홍상수 감독의 <클레어의 카메라>(Claire's Camera), <그 후>(The Day After)를 포함하여 총 7편의 한국 영화가 초청 및 상영되며 한한령 완화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당시에는 위 상영이 한한령 해제로 이어지지 못하였지만, 드디어 2021년 12월 <오! 문희>의 개봉으로 한한령 해제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한 편일지라도 한국 영화의 공식 개봉을 승인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인데요. 이는 세계 최대 영화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시장에 한국 영화가 다시 진입할 수 있게 됨을 뜻합니다.
게다가 같은 날, GQ 잡지의 중국판 12월 호 표지를 한국 배우 '이동욱'이 장식할 것이라 밝혀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중국 내에서 K-컬쳐가 공식 수입된 적은 없을지라도, 수년 동안 한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중국에서도 비공식 채널을 통해 많은 중국팬들을 끌어모아 왔습니다. 중국 내에서 "#Korean Films Released in the Mainland After 6 Years" 라는 해시태그가 1억 5천만 회 이상 조회되는 등 한국 문화가 다시 중국 본토에 수입될 수도 있다는 전망에 수많은 중국 팬들이 설렘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는데요. 많은 팬들이 드디어 한한령이 풀리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글을 게시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전해집니다.
<오! 문희>의 개봉 발표는 실제 개봉을 불과 이틀 앞두고 나왔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질 시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마오얀에서는 약 2,000만 명의 사람들이 영화에 관심을 표했으며, 개봉 당일 중국 내 257회의 상영이 계획되어 있다고 합니다.
알리바바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 역대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한국 영화 TOP 5는, 1위부터 <암살> (4,700만 위안), <명량> (2,700만 위안), <도둑들> (2,200만 위안), <7광구> (2,120만 위안), <해운대> (1,670만 위안)로, 국내 흥행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데요.
과연, <오! 문희>가 흥행에 성공하여 한국 영화 극장 개봉의 활로를 터줄 수 있을지 지켜봐주시길 바라면서,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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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꾼 계 자강두천의 볼만한 대결
영화의 시작은 심플하다. 전후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시체를 집 바닥에 숨기고 집을 불태워버린다. 시체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주인공이 죽인 건지, 그저 죽은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이 의심받을까봐 그렇게라도 처리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영화는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 스탠턴은 특별한 대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그 누구보다도 추진력이 있었다. 그 추진력의 바탕이 된 그의 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성공하는 사람이라면 가질 법한 야망이 있는 남자였다. 그런 야망과 영리함에 반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가 잠시 몸을 숨긴 유랑단에 소속된 외로운 여자였다. 두 외로운 남녀가 눈이 맞아 더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가는데, 이들의 미래는 순탄하기만 할까?
1. 내용이 예상가지만 그래도 끝까지 보게 된다
영화 초반에 감독은 관객들에게 굉장히 불친절하다. 스탠턴이 왜 유랑단에 숨어들어가게 되었는지, 대사가 암시하듯 그의 과거에 아버지와 관련한 안 좋은 추억이 있는 듯한데, 그 추억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다만, 그의 과거가 어떠했을지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짐작만으로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가 왜 그렇게까지 야망을 표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는지 그저 대사가 주는 암시로 짐작만 하기에는 납득이 잘 안되었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음에 이 남자가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갈등이 있을지 혹은 어떻게 추락할지 어렴풋이 예상이 가능할 만큼 뻔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았다. 영화의 크레딧이 가면서 꽤 곰곰이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내용이 드라마틱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내용도 이정도면 드라마틱하긴 했지만 꽤나 클리셰들이 많았다. 욕망이 가득한 남자가 갈 곳이 결국 어디겠는가? 당연히 타락인 것을. 그리고 그 타락의 과정에서 등장한 묘령의 매력적인 여인, 릴리스 박사의 존재도 주인공의 목적 실현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가도 그의 집중력을 흐릿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본드걸과 비슷한 역할이어서 찾으려면 다른 영화에서도 그런 역할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영화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되짚어보면, 결국 연출의 힘이었던 것 같다.이 영화가 연출이 정말 좋은 영화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인물 하나하나의 감정이 알 것 같으면서도 그렇다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도록 미스터리함을 유지하는 배우들의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배우들의 표정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워킹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되돌아보니, 오히려 초반에 캐릭터에 대한 인식을 헷갈리게 한 것도 오히려 이 영화가 가진 클리셰를 미스터리로 푸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포스터에서는 근 10년간 나오지 않았던 반전이라고 홍보했던데, 그 정도로 반전이었는가라고 생각해 본다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말로 인해 이 영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인상은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 기예르모 델 토로인 듯 그렇지 않은
오히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때, 더 놀랐던 점이 있다면, 감독이 기예르모 델 토로였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양심선언을 하자면, 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과거에 LA시립뮤지엄에 놀러갔다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영화 소품들을 모아놓은 전시회를 갔던 적은 있었다. 그 때, 이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해 얼추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 때, 느꼈던 이 감독에 대한 인상은
"아니, 기괴하고 고어(gore)한 생물체를 왜 이렇게 많이 등장시킨 거야? 이 감독 진짜 특이하고, 웃긴(좋은 쪽으로) 사람이다."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딱히 외관적으로 기괴한 생물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행위들이 죄다 기괴하다. 서커스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초반부에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슬로건을 마음 속에 품고, 비인류적인 행위(멀쩡한 사람을 데려다가 반불구를 만드는 일)도 서슴치 않고, 다른 이들을 위로한다는 명분 아래 사기치는 것도 당연시되는 그 서커스 사회 자체가 이미 기괴하고, 고어하다. 외관적으로 기이해 보이지 않아도 이미 그 사회 속에 들어가서 주인공이 적응하는 것만 봐도, 이 주인공 또한 범상치 않은 인간임을 보여준다. 주인공을 묘사한다면, 그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새디즘적 기질과 기괴한 환경이 만들어낸 괴물, 딱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감독의 의도를 감히 뇌필셜로 유추해 본다면, 이 영화는 더 이상 외적으로 솟구쳐 표현된 기괴함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깊게 자리잡은 울퉁불퉁한 욕망의 위험성에 대해 고찰해 본 그의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스탠턴은
3. 나쁜 놈 위에 나쁜 놈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냐,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지”
스탠턴은 사람을 속이는 일에 대해 점점 대담해지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서 돈 버는 게 왜 나쁘냐는 식이다. 하지만 릴리스 박사는 좀 다르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왜 이 여자는 이 위험한 게임에 동참하는 것인지 도저히 목적이 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명백하게 돈 때문에 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이 여자가 더 큰 빌런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볼 때의 시원함을 느꼈다. 스탠턴과 같은 나쁜 놈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것은 회개도 아니고, 착한 사람들의 존재가 아니다. 결국, 더 나쁜 캐릭터가 등장해 뚜들겨 패놓아야 비로소 자신의 현실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애매모호하게 나쁜 놈 위에 날고 기는 더 나쁜 사람으로 분한 릴리스 박사가 오히려 이 영화의 리얼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해 후반부의 스릴러를 담당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스탠턴이 소시오패스 같았는데, 영화를 다 보면, 결국 이 세게의 최강 소시오패스는 릴리스 박사임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돈도 아니고, 스탠턴의 파멸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서 움직인 것이기 때문에 공부도 즐거워서 하는 이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듯, 스탠턴은 그녀를 이길 수가 없었다. 애초에.
4. 총평
결국 스탠턴은 본인이 다른 이에게 행하던 사기를 다른 이에게 똑같이 당하고 만다. 자신이 만든 덫에 다른 이들만 잡아넣은 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빨려 들어간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계속적으로 되돌아봐야 하는 것 같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너무 달리기만 하느라, 놓친 것은 없는지 등등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뭐, 과거에 매여서 후회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든 덫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은지 최소한의 점검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최소 틀린 길은 아닌지 인지한다면, 당신의 욕망에 눈을 가려진 스탠턴이 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당신의 삶은 최소한 불행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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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펜하이머>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모든 것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독일 물리학자들이 우라늄의 원자핵을 쪼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를 비롯한 미국 물리학자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원자폭탄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국 정부 역시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로브스 대령'(맷 데이먼)을 책임자로 삼고 신무기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을 추진한다.
하지만 맨해튼 계획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로브스 대령은 오펜하이머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인 로스 앨러모스에 연구소를 짓고 가능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과거 공산주의에 경도됐던 오펜하이머 이력이 재조명되고, '원자폭탄의 아버지'는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공격에 직면한다.
크리스포터 놀란 필모의 정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기영화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쓴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스크린에 옮겨 미국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다뤘다. 영화는 특히 그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과정과 전후 수소폭탄 반대 운동을 펼친 뒷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오펜하이머>는 개봉 전부터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CG 없이 트리니티 실험의 핵폭발 장면을 재현했다고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1달 전에 개봉한 영화 <바비>와 '바벤하이머' 밈으로 얽혀 이슈였고, 해외에서는 <바비>와 함께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다. 워너 브라더스가 아닌 유니버설 픽처스가 처음으로 놀란 영화를 단독 배급한 점도 화제였다.
사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3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하는 작업은 어렵다. 원작 평전은 심지어 오펜하이머의 삶만 다루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은 들었을 사건과 정치인, 과학자의 이름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펜파이머>는 더욱 놀랍다. 놀란의 스타일, 기술, 직관, 통찰력이 한 데 모여 모순적인 물리학자의 일생을 긴장감 넘치게 재구성했기 때문. 달리 말해 <오펜하이머>는 영화감독 놀란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자폭탄 같은 영화
<오펜하이머>는 기본에 충실하다. 주인공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사실 그의 내면과 감정선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공산주의에 경도된 좌익 과학자.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미국의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지휘한 유능한 행정가. 자기 손으로 만든 신무기를 경계하는 야심 찬 정치인. 모순적인 세 인물이 한 사람이니 당연히 어색하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마치 원자폭탄처럼 재구성한 놀란의 각본은 그의 내면을 유려하게 보여준다. 핵분열물질의 원자핵에 중성자가 충돌하면 원자핵은 분열되고, 더 많은 중성자가 다른 원자핵과 충돌해 새 핵분열이 발생한다. 원자폭탄은 이 연쇄반응에서 생긴 에너지를 활용한다.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트리니티 핵실험이라는 목표까지 거침없이 질주한다. 관객의 시선을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 헌신하는 오펜하이머에게 집중시킨다. 그러고 나서는 트리니티 실험이라는 클라이맥스가 유발한 연쇄적인 폭발로 시선을 돌린다.
미국 정치권과 과학계는 수소폭탄 개발을 두고 갈등을 빚는다. 오펜하이머의 주변인도 아군과 적군으로 갈라져 계속해서 충돌한다. 오펜하이머는 소련의 스파이로 의심받아 공격당한다. 놀란이 처음 1인칭으로 작성했다는 각본은 이 지점에서 빛난다. 트리니티 실험 전까지는 맨해튼 계획이 주인공이었다면, 이제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이 주인공이 된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양심의 가책, 매카시즘과 스트로스에게 시달리는 고통 등 오펜하이머의 감정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원자폭타과 같은 구조는 절제미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한 직후, 영화는 순간적으로 완급을 조절한다. 원자폭탄이 터질 때 극장은 순간적으로 고요해진다.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할 무기를 개발했다는 기쁨에 심취하지 않는다. 인류가 다룰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힘을 손에 넣은 두려움이 정적 속 독백을 통해 전해진다. 그 덕분에 관객은 오펜하이머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다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강당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흥분한 사람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는 폭탄 폭발음과 오버랩된다. 이 장면은 원자폭탄으로 인한 흥분과 열광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그가 받은 충격과 죄책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단번에 납득시킨다. 원자폭탄 희생자 시신을 오펜하이머가 밟는 환상이 나오기도 전에, 관객은 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날 때, 그의 선택 중 이해되지 않는 결정이 없을 정도다.
양자역학의 인문학
<오펜하이머>는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펜하이머는 논란의 인물이었다. 그가 소련의 스파이가 아니었다고 미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복권한 게 불과 반년 전 일이다. 영화는 이 모순적인 물리학자에게 스스로를 변론할 기회를 준다. 동시에 관객이 스스로 그를 판단할 공간도 열어준다.
핵심은 컬러와 흑백의 전환이다. 오펜하이머의 시점에서 흘러가는 'Fission(핵분열)'이라는 제목의 파트는 컬러로, 스트로스가 중심이 되는 'Fusion(핵융합)'이라는 이름의 장면은 흑백으로 묘사된다. 원자폭탄의 원리인 '핵분열'은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 과정을 보여준다. 수소 폭탄의 원리인 '핵융합'은 그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다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연출은 마치 양자역학의 인문학적 해석 같아 보인다. 양자 역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관측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전자나 빛이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중첩되어 있는 두 가지 상태는 관측을 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한 가지 성질로 표현이 된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관점에서 주인공을 관측한다.
애국심이 투철한 미국인이지만 동시에 공산주의자이고,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지만 반핵 운동의 중심에 선 정치인이 있다. 그는 자신이 위치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영화는 그의 시점에서 그 모순점을 이해시키고, 타인의 시점에서 그 역설과 중첩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을 비춘다. 인간이 그 자체로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인지, 그렇기에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상기시킨다. 이는 제목에 걸맞은 접근법이다. 오펜하이머는 본래 양자 역학 연구자였으니까.
놀란의 <소셜 네트워크>
그래서일까? <오펜하이머>는 마치 놀란의 <소셜 네트워크> 같다. <소셜 네트워크> 역시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모아놨기 때문. 저커버그의 시점과 동업자였던 윙클보스 형제 및 왈도 세브린의 시점을 충돌시킨다. 두 영화가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법도 흡사하다. <소셜 네트워크>는 법원 조정 과정으로, <오펜하이머>는 청문회로 서로 다른 시점의 충돌을 보여준다.
<소셜 네트워크>가 받은 찬사를 생각하면, <오펜하이머>는 작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역량을 재증명하는 장이기도 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놀란의 통찰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므로. 그간 놀란은 캐릭터를 플롯의 장치와 도구로만 사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르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모순을 통찰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조연 캐릭터가 여전히 수단처럼 느껴지기는 해도 이번만큼은 놀란이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놀란의 트레이드 마크
그러면서도 놀란은 자기만의 스타일과 색채를 잃지 않았다. <덩케르크>처럼 <오펜하이머>도 시간대가 세 개다.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에서 맨해튼 계획까지, 또 그 이후로 이어지는 시간대가 주 재료다. 1954년 원자력 협회의 오펜하이머 청문회와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 청문회는 양념이다. 특히 두 시간대는 철저히 조각난 상태로 삽입된다. 주요 사건에 따라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 형태로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을 비트는 연출과 구조는 주제의식과 긴밀히 연관된다. 오펜하이머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 붙임으로써 과학자의 책임을 논할 공론장을 연다. 통상적으로 과학자는 신기술의 개발자로만 인식된다. 그들의 역할은 기술을 만드는 데서 그친다고 여겨진다. 오펜하이머도 그랬다. 그는 원자폭탄의 오남용과 악영향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건 과학자의 몫이 아니라고.
하지만 자기가 바꾼 새로운 세상을 목도한 뒤로 그는 달라진다. 과학자에서 행정가, 정치인으로 변한다. 새 기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앞장서야 한다고 확신한다.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즈(Thomas P. Hughes)의 표현대로 이제 그는 '시스템 건설자'(system builder)가 되려 한다. 그는 사회 구조와 관계망 안에서 신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원자력을 평화롭게 이용할 체계를 만들지 못했고, 수소폭탄의 개발도 막지 못했으며, 자기 자신의 삶도 지키지 못했다. 대통령을 설득할 만큼 신중하지 못했고, 앙심을 품은 정치인을 꺾을 만큼 영리하지 못했다. 마치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지만, 정작 자기 미래는 지키지 못한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처럼. 이렇게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로서, 기술자로서 성공했지만, 시스템 건설자가 되지 못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빛과 그림자를 가감 없이 들춘다.
SF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기 영화
이러한 맥락에서 <오펜하이머>는 외관과 달리 SF 영화 같은 면도 있다. 많은 SF 영화는 과학의 발달이 초래할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우려로 가득하다. 달리 말해 SF 영화는 과학에 근간을 둔 스펙터클을 통해 오히려 인간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는 통로나 다름없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SF 영화의 본질을 품고 있다. 영화는 만약 오펜하이머의 고뇌를 잊는다면, 그의 업적과 과오에서 현명한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손으로 전 세계를 초토시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설령 0에 가까운 확률이라 해도 인류가 세상의 파괴자가 되는 날이 멀지 않을 거라고.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정점은 멕시코에서 핵폭탄이 폭발한 순간이 아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킬리언 머피의 표정과 지구를 불바다로 만드는 핵 미사일이 교차되는 결말이 정점이다. 오펜하이머와 놀란이 입을 모아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경고를 가득 담고 있으니 뇌리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오펜하이머>는 테넷의 정신적 속편이자 프리퀄인 셈이다. <테넷>의 주된 플롯은 핵폭탄을 막는 미션이었고, 인류의 존속을 위한 현재와 미래의 전쟁이 시대적 배경이었으니까. 이는 SF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준 놀란스러운 착상이기도 하다.
모두가 좋아할 영화는 아니다
물론 <오펜하이머>는 호불호가 심하게 나뉠 영화다. 천 페이지 분량의 책을 영화화한 만큼 밀도가 높다. 책을 읽은 독자라면 놀란의 꼼꼼한 각본이 반갑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맨해튼 계획 이전의 오펜하이머의 개인사나 초기 생애에 관련한 내용이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도 낯선 영화다.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 대신 트리니티 실험을 기점으로 영화가 다시 시작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 친절한 영화도 아니다. 1930~50년대 미국 사회를 강타한 정치적, 국제적 이슈에 대한 배경 지식을 요한다. 갈 길이 바쁜 만큼 상세한 설명은 제공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기대에 비해 시각적 임팩트가 약하다. 블록버스터 영화다운 쾌감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그래도 배우 덕분에 진입장벽이 낮아지기는 한다. 우선 킬리언 머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놀란 사단 중 하나로만 알려졌던 그는 이제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증명했다. 명배우들의 향연도 인상적이다.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데인 드한, 라미 말렉, 플로네스 퓨는 앙상블을 이루며 머피 뒤를 단단히 받쳐준다.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니었다면 후반부는 힘이 빠져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몇몇 단점은 취향의 문제이지, 완성도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놀란이 의도한 방향성만 정확히 짚어 쫓아간다면 <오펜하이머>는 <인셉션>, <다크 나이트>, <덩케르크> 보다도 강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놀란이 그간 자기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준 스타일과 장점, 통찰력을 한데 모아 만든 폭탄 같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종합하면, 단언컨대, <오펜파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마스터피스다.
Outstanding 특출함
원자폭탄 섬광과 굉음으로 빚어낸 프로메테우스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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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브리 정주행 특집 ④] 바람이 분다 (The Wind Rises, 2013)
- 지브리 정주행 특집 네번째 영화 -
"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2013
바람결에 흘러가듯 날아온 한 소년의 꿈과 사랑!
당신의 마음에는 아직 바람이 부나요?
<바람이 분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안노 히데아키, 타키모토 미오리
개봉: 2013. 09. 05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SYNOPSIS
하늘과 비행기를 좋아하는 소년 지로.
근시를 가진 지로는 시력 때문에 비행기 조종을 못하는 대신 비행기 설계사라는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어느 날, 지로는 기차에서 바람에 날아간 자신의 모자를 잡아준 소녀 '나오코'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날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서로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된다.
그 후 비행기 설계사로 취직하여 계속해서 꿈을 좇아가돈 지로는 10년 뒤, 어느 바람 부는 언덕에서 나오코와 우연히 다시 재회한다.
나오코는 지로에게 자신이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하지만, 이미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린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다.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두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지로는 마침내 자신의 염원과도 같았던 전투기 '제로센'을 완성시킨다.
▶ REVIEW
1. 1930년대 일본 풍경
1930년대의 일본 풍경을 보고싶다면? 이 작품을 보시길!
6-70년대도 아니고 30년대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작품은 그 나름대로 희소성이 있지 않나 싶다.
일본 전통 의상과 나막신을 볼 수 있고,
삼등칸, 이등칸으로 나뉘어진 기차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등급별 칸으로 나뉘어진 기차를 타 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차를 타고 가다가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씬이 가장 예뻤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는 작품 속 가장 좋아하는 대사도 이 때 나오고! :-)
2. 비행기는 꿈, 설계사는 꿈을 만드는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는 비행기를 참 좋아한다.
그의 은퇴작이라고 발표한 작품에 비행기를 사랑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만든 것도 그렇고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비행기는 꿈이고, 비행기 설계사는 그 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대사가 참 좋았는데,
어느 분야든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꿈을 꾸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대상을 향한 애정이 많이 담긴 대사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는 현실세계와 주인공이 꾸는 꿈의 세계가 자주 번갈아 등장하는데
꿈 속에서의 비행기는 사람들을 태우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행복한 비행기고,
현실에서의 비행기는 전쟁을 위해 쓰이는 수단으로 나온다.
나는 그 모습이 냉정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꿈을 좇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았다.
행복한 모습만 보고 싶고, 내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라고, 최선이었다고 믿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런 마음이 무언가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원동력을 만들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3. 한 사람의 일대기? 친절하지 않은 설명방식
이 작품은 전투기 제로센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어쩌면 그의 일대기를 다뤘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을 관찰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딱히 정형화된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고,
장면 전환이나 내용 전개에 있어서 꽤 불친절한 설명 방식을 보여준다.
갑자기 꿈을 꾸고, 갑자기 몇년의 시간이 흘러가버리며
사건 중심으로 내용이 펼쳐지기보단 시간의 흐름에 충실한 이야기같은 느낌이다.
작품을 보면서도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보고 있다기보단
그저 저 인물들을 흘러가듯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봤을때와 비슷했다.
4. 전쟁 미화의 아쉬움
아무리 비행기를 꿈에 비유하고, 그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해도
전쟁을 미화하여 그린 점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남았다.
아무리 예쁘게 포장을 해도 지로가 설계하는 비행기는 사람을 태우는 비행기가 아닌
사람을 죽이러 가는 전투기, 살생무기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 지로가 동경의 마음을 가지고 비행 설계에 대한 도움을 받으러 간 나라 역시 독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에 대한 미화와 은연 중 제국주의에 대한 동경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은 반박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가 작품 내 등장하는 모든 것을 현실과 한 발자국 떨어져 보이게 만들고,
그로 인한 미화의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체가 전쟁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가직 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감독의 다른 작품인 <붉은 돼지>는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회의감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 BEST QUOTES
1.
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
바람이 분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2.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사는 그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3.
감각은 시대를 앞서가지. 기술은 그 뒤에 따라가는 거야.
4.
인생의 창조적 시간은 10년이지
예술가나 설계가나 똑같아
자네의 10년을 최선을 다해 살게.
5.
살아있다는 건 멋진거예요.
당신은 살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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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도는 표면에서 찰나의 만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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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왕가위의 영화는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두 편이 떠오른다. <중경삼림>(1994)과 <타락천사>(1995)다.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타락천사>다. 의외의 선택처럼 보일 수 있겠다. <중경삼림>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영화지만, <타락천사>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비운의 작품이다. 두 편의 영화는 같은 듯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두 영화는 모두 청춘들의 몸부림이 스며든, 홍콩의 중국 반환 직전의 세기말 감성이 물씬 피어나는 90년대를 공유한다. 사실 <중경삼림>엔 경찰 663과 페이의 이야기 뒤에 이어졌어야 할 세 번째 에피소드가 있었다. 하지만 두 개의 에피소드만으로 장편 분량을 충족하자, 왕가위 감독은 후속 에피소드를 덧붙이지 않고 영화를 내놓았다. 그렇게 <중경삼림>에 편입되지 못한 이야기가 <타락천사>의 근간이 된다. 덩그러니 남은 세 번째 에피소드를 각색하고 살을 붙여 만든 영화가 바로 <타락천사>다. 그래서 묘하게 <타락천사>는 태생적 배경에서부터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소외감과 주변을 배회하는 외로움 따위가 묻어나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떠도는 표면
<중경삼림>이 낮의 영화라면 <타락천사>는 밤의 영화다. 대도시의 밤은 언제나 외롭다. 컬러풀한 네온사인의 잔상이 밤거리의 쓸쓸함을 더욱 짙게 만들고, 번화가 주변부에선 마음 둘 곳 없는 영혼들이 술로 밤을 지새운다. 도시가 밤으로 물들어가면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종종 출현한다. 컴컴한 뒷골목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사람들도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쉬거나 자고 있을 때 움직이기 시작한다. 직업이 없이 부유하는 사람들도 밤이 되면 이곳저곳에 기웃대며 나름대로 존재감을 표출한다. <타락천사>의 인물들은 한적한 도시의 밤을 누비는 외로운 방랑자들이다. 마음 놓고 쉴 곳을 찾지 못해 계속해서 떠도는 유령들. 이들의 피상적인 몸부림, 표면적인 움직임은 왕가위의 광각 렌즈 속에 갇혀 진한 고독과 상실 등의 파편들로 형상화된다.
<타락천사>는 불친절하다. 인물의 사연을 펼쳐놓긴 하지만, 어쩐지 관객을 설득하기보다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볼지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왕가위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스치는 인연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자들의 부유하는 떨림만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어쩌면 이런 시선은 미국 독립영화계의 상징인 존 카사베츠의 눈과 맞닿아 있다. 언젠가 왕가위가 카사베츠의 영화를 인상깊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카사베츠는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1976) 속 비텔리를 그려낼 때도 이미지의 잔상들과 조명, 인물의 인생관을 펼쳐놓는 듯한 장황한 대사들, 도통 의뭉스러워 보이는 클로즈업을 활용해서 삶의 표면과 심연을 오가는 시선을 드러냈다. 비텔리에게 마냥 몰입할 수만은 없지만, 그의 사연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타락천사>의 인물을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날 것의 감정들이 내게 전해지긴 하지만, 어쩐지 쉽사리 공감하기는 힘든 이야기들. <타락천사>가 <중경삼림>과 유사한 스타일이 묻어나는 영화임에도 지지층이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타락천사'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표출하는 카메라
<타락천사>에는 고독과 불안함, 공허와 갈망, 회상과 아련함, 애정, 사랑, 연민 등이 뒤얽힌 복잡한 감정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이 영화는 시청각적 표현력 혹은 영화 기법으로 빚어낸 전달력 등에 있어서 그 어떤 왕가위의 영화들보다도 직관적이고 강렬한 효과를 유도해낸다. 시작부터 끝까지 광각 렌즈를 피사체(주로 인물)에 들이밀면서, 삐딱한 구도를 통해 프레임 내부를 맴도는 인물의 공간을 왜곡한다. 인물들은 과장되고 뒤틀린 형상으로 주변 공간을 점유한다. 특히나 버스 내부, 단골 술집, 식당 등의 장소에서 킬러와 파트너의 얼굴을 통해 그들의 황량한 내면이 극단적으로 표출된다. 작정하고 도시 주변부 방랑자들의 외로움을 담아내는 영화다. 그러니까 왕가위는 영화를 찍는 순간부터 이미 무엇을 담아낼지, 어떻게 표현할지 계획된 공식 아래 솔직하게 드러내고 가감 없이 표출한다.
킬러와 파트너는 늘 엇갈린다. 작업을 마친 킬러가 비밀 아지트로 복귀하고 휴식을 취한 뒤 다른 작업을 위해 자리를 뜨면, 파트너는 킬러가 머문 자리를 청소하고 정보를 건네는 등 중개인처럼 킬러를 돕는다. 두 사람은 유대감이나 이성 간의 호기심이 아닌 비즈니스로 얽힌 사이이므로, 서로가 맡은 일에만 충실하면 잘 맞은 부품이 쉼 없이 돌아가듯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트너는 킬러를 마음에 품게 되고, 더는 엇갈림을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킬러는 얼굴을 보자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한다. 일과 감정이 섞이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킬러와 파트너는 모두 각자의 사정과 나름의 사연으로 고독에 파묻힌다. 파트너의 수음 행위가 적나라하게 프레임에 두 번째로 담기는 신을 떠올려 보자. 이 장면은 킬러와 베이비(염색한 여자)가 같이 있는 모습 이후 제시된다. 이때 왜곡된 구도 및 광각 렌즈, 음악을 통해 킬러와 엇갈리기만 하는 파트너의 상황과 그녀의 참담한 심리를 아주 짙은 고독감으로 환원한다. 시작부터 광각으로 프레임을 구획하던 왕가위의 카메라는 숨김없이 인물의 표면과 심리를 함께 포착하고 드러낸다.
'타락천사'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찰나의 만남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짙은 고독에 신음하는 <타락천사>의 무드는 하지무가 나오는 에피소드로 인해 살짝 달라진다. 킬러와 파트너, 하지무와 아버지, 킬러와 베이비, 하지무와 찰리의 에피소드가 뒤섞이다가 마침내 영화는 파트너와 하지무가 만나면서 끝으로 향한다. 하지무는 아버지를 잃고 찰리를 떠나보냈으며, 파트너는 킬러를 잃었다. 광각 구도에 갇힌 파트너의 뒤에 피를 흘리는 하지무가 있다. 상처받은 두 사람은 상실과 고독을 잠시 뒤로하고, 같이 오토바이에 몸을 맡긴다. 왕가위는 마지막에 두 사람을 이어준다. 상실의 흔적, 고독을 지우려는 몸부림, 오토바이 등이 두 사람 사이를 매개하면서 두 사람의 조우는 아슬아슬하게 잠시나마 지속된다. 인물 간의 만남이 짧게나마 유지되는 이 순간이 <타락천사>뿐만 아니라 왕가위 영화에선 특히 중요하다. 영원한 이별이나 영원한 만남은 없다. 우리가 <타락천사>에서 포착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건, 어지럽게 흩어지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얼굴을 맞댈 수 있는 아주 잠깐의 순간들이다. 따라서 터널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쇼트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오토바이를 타는 두 사람을 영원히 담지 않고 하늘로 향한다.
하지무는 <중경삼림>의 경찰 223과 묘하게 겹친다.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을 뱉는다든가, 파인애플 통조림에 관한 에피소드라든가. 223과 하지무를 연기하는 배우가 같다는 점 또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렇다고 두 영화를 매개하는 이런 요소들을 가볍게 흘려보내기에는 어딘가 아까운 구석이 있다. 두 영화는 사실 한 편의 영화로 기획됐었다. 경찰 223과 마약 밀매상의 관계가 삐삐로 인해 강화됐던 것처럼, 하지무의 캠코더에 담긴 영상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유대가 강화되는 듯 보인다. 이때 인물과 매개물 사이의 실질적인 만남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삐삐 속 목소리와 캠코더 속 영상은 휘발되지 않고 남아 있다. 게다가 파트너와 킬러는 단골 바의 주크박스 속 음악(망기타[忘記他])에 의해 매개되기도 한다. 음악은 인물이 바를 떠난 뒤에도 계속 필름에 남아 킬러와 파트너의 상황적인 괴리를 강조하고 있다. 형식과 내용의 경계를 짓이기는 기묘한 매개가 펼쳐진다.
어쩌면 이 영화는 찰나의 만남을 매개하는 것들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 하지무가 끊임없이 제공하는 아이스크림 덕분에 장발 남자의 가족이 한데 모여 잠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족이 다 모여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짧은 시간은 아이스크림이 만들어낸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이렇듯 클로즈업과 왜곡된 앵글을 동원하는 뒤틀린 표면의 탐닉은 피상적인 조우의 순간들과 스치는 만남을 담아내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휘발되는 순간들을 매개하는 몇몇 요소들이 이 영화를 표면과 심연을 넘나드는 매력적인 텍스트로 가공하고 있다. 왜곡된 듯한 표면적인 움직임과 심연 어딘가의 보존된 추억,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매개물을 통해 공존할 수 있다. 그래서 순간을 가두려는 스텝 프린팅 기법이 왕가위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게 아닌가. <타락천사>는 그 표면과 심연을 오가는 움직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영화다. 스쳐가는 만남이 자아내는 자그마한 위안과 추억들을 잠시나마 머금으려는 솔직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원한 낭만도, 영원한 고독도 없이 오로지 찰나의 마주침에서만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이게 바로 <타락천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타락천사'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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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트> 시대를 바꿀 개인의 역동성을 담은 액션의 향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일정 중 예상치 못한 테러 공격을 받고 가까스로 범인을 제압한 안기부 해외팀 팀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팀장 ‘김정도’(정우성). 뒤이어 도쿄에서도 북한 고위 관리의 망명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조직 내에 북한의 간첩인 '동림'이 침투했음을 확신한 박평호는 스파이 색출 작전에 돌입하고, 상부의 지시를 받은 김정도 역시 뒤질세라 동림을 쫓기 시작한다. 서로서로를 용의선상에 올려둔 채 조사에 박차를 가하던 해외팀과 국내팀은 먼저 찾지 못하면 첩자로 지목될 위기 속에서 치열하게 대립한다. 그러던 중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 숨기고 있던 은밀한 비밀에 접근하고,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의 실체를 깨닫는다.
사극이나 시대극을 보다 보면 유달리 영상화가 잘 되는 특정 시기가 있다. 여말선초가 대표적이다. 조선이라는 새 국가가 설립되던 혼란기를 배경으로 정도전, 이방원, 이성계, 정몽주와 같은 인물들의 피 튀기는 암투는 수없이 조명되고, 또 재조명되었다. 사무라이의 전성기가 열렸던 일본의 전국시대, 한나라가 무너지고 긴 혼란기의 시작을 알린 중국의 삼국시대, 이에 더해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도 수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시대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고, 국가와 법의 영향력보다 주먹과 칼, 총의 힘이 더 강하며, 개인들의 역동성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본래 지녔던 신념과 명분을 고수하거나 포기하는 이들의 대립, 과거의 질서를 따르는 이와 새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갈등. 이러한 분열과 싸움은 심지어 한 개인 안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진다. 그저 시대에 순응하여 장기 말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설령 꺾기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의 주체로서 시대에 맞설 것인지. 그 덕분에 이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는 감독 이정재의 첫 연출작인 첩보 액션 영화 <헌트>에서 화려한 액션보다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두 주인공의 에너지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이유다. 1980~83년을 관통하는 팩션 영화인 <헌트>는 '이웅평 대위 미그-19기 귀순 사건'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사건들을 선보인다.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도 잠시 스쳐 지나가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 역시 한 축을 차지한다. 이에 더해 작중 북측 간첩을 지칭하는 암호명 동림은 안기부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 사건인 '동베를린 사건', 일명 '동백림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들은 여말선초만큼이나 혼란했던 전두환 신군부 초반부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안기부의 고문 및 간첩 조작은 전두환 정권 치하의 불안정성을 상기시킨다. 간첩을 침투시키고 전면전을 준비하는 북한은 군사 정권을 위협하면서도 그들에게 명분을 주는 양날의 검이다. 대학 운동권들은 뚜렷한 목표나 수단에 대한 합의도 없는 뜨내기일 뿐이고, CIA로 대변되는 미국은 인권보다는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 유지에만 관심 있는 존재다. 이들은 한데 모여 좀처럼 올바른 선택지를 알 수 없는 카오스와도 같은 무채색의 시대상을 그려낸다. 그래서 <헌트>는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지 않는다. 영화는 특정 사건에 대한 정치적 입장에 관심이 없다. 그저 사건에 휘말린 개인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고, 그들이 어떻게 시대의 풍파에 맞서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덕분에 <헌트>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개인들의 발버둥에 주목할 수 있다. 당장 <1987>, <택시 운전사>, <화려한 휴가>, 그리고 살짝 앞선 시간대의 <남산의 부장들> 등만 보더라도 생사와 옳고 그름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개인들을 그려낸 바 있다. <헌트>도 다르지 않다. 그 결과 <헌트>는 첩보 액션 영화 중에서도 <007> 시리즈보다는 시대극과 스파이 장르물을 오가면서 개인의 고뇌와 선택에 주목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가깝다.
이 혼란의 중심에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위치한다. 안기부 해외팀 팀장인 ‘박평호’는 조직 내 침입한 스파이 동림으로 인해 도쿄에서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실체를 맹렬히 쫓는다. ‘김정도’는 안기부 국내팀 팀장으로, 안기부 내에서의 스파이를 색출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이행한다. 박평호는 김정도를 동림으로 몰아가기 위해, 김정도는 박평호를 동림으로 몰아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본 적 있는 2인자가 되기 위한 두 세력의 다툼이 이어진다. 이때 <헌트>는 영화 내외의 다양한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갈등의 양상을 다채롭게 변주한다. 우선 스타의 존재감을 활용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조우했다는 화제성을 오프닝부터 영화의 동력으로 삼아 두 주인공의 관계를 단숨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첩보 영화의 정체성을 모범적으로 살려낸 구현해낸 구성과 연출도 인상적이다. '첩보'는 '상대편의 정보나 형편을 몰래 알아내어 보고'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잘 만든 첩보 영화는 극 중 인물들에게 언제 정보를 공개할지 그 타이밍을 정확히 잡아, 긴장감을 지속시킬 줄 안다. 또 스토리텔링이 결국 관객들에게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고려하면, 정보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첩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그래서 안기부 내의 첩자인 동림의 정체를 두고 전반부와 후반부가 극명히 갈리는 <헌트>의 구성은 영리하다. 서로 다른 의미의 '사냥(hunt)'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대책 없이 부딪히는 전반부의 박평호와 김정도는 양극단에 서서 다른 극단을 제거하는 데 혈안이 된 권력의 장기짝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림의 정체라는 정보가 공개된 이후 그들은 같은 목적을 쫓는다. 서로가 감추고 있던 '불꽃 작전'과 '베드로 사냥' 계획의 일부에 대해 알게 된 두 주인공은 이제 동시에 1호라는 사냥감을 추적한다. 그런데 박평호와 김정도가 한 팀이 되었는데도 영화의 갈등선은 오히려 입체적으로 변한다. 북한의 전면전 계획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마지막 사냥의 목적과 의미를 두고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선택한다. 두 인물 간의 외적 갈등에 자기 자신을 쫓는 내적 갈등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는 수많은 사건 사이에서 권력의 장기 말이었던 이들이 시대를 거스르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움직이는 새로운 페이지의 시작을 알린다. 그렇기에 영화가 박평호와 김정도의 비밀을 공개할 때 그들이 문자 그대로, 또 상징적으로 손을 맞잡으며 사냥의 의미가 달라지는 장면의 임팩트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는 사냥의 중심에 위치한 두 인물의 타협할 수 없는 신념 간의 충돌, 곧 영화의 메시지에는 자연히 힘이 실린다. 남한과 더 나은 평화 협상을 끌어내기 위해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북한 간첩 동림과 대통령을 암살하고 독재를 청산하여 광주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의 넋을 달래주고 민주주의 실현을 꿈꾸었던 군인. 이들은 정당하지 않은 국가의 폭력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고, 대규모 유혈 사태가 필연적인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도 남북의 군사적 대립과 유신정권의 붕괴, 쿠데타와 실패로 귀결된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트>가 진정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저 한 명의 독재자가 아니다. 서슬 퍼런 권력과 혼돈 앞에서 자기 자신을 포기한 개인의 무기력함이야말로 숨어 있던 진짜 내부의 적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방콕 테러 사건은 이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풀어낸다.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액션으로 가득한 클라이맥스이자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한 곳으로 집약된 고통의 현장을 그려낸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 인물은 모두 자신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는 데 실패한다. 한 명은 우려했던 대규모 살상 사태를 막아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온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는 실패한다. 다른 한 명은 죄책감을 씻어낼 암살 미션의 성공을 목전에 두었지만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모래 마냥 놓치고 만다. 하지만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무너져 잿빛 가득한 테러 현장에서 기어코 다시 총을 쥐고, 또 총을 쥔 이를 막아서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의 신념이 강렬하게 전해진다. 권력에 충실했던 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동적인 개인들의 에너지가 스크린 위로 분출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박평호와 '조유정(고윤정)'이 바통 터치하는 <헌트>의 에필로그는 희망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혼란한 시대의 파도 앞에서 개인의 신념과 뜻이 꺾이는 듯 보이더라도, 끝내 한 발 더 나은 세상과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으며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줄 아는 개인들의 역동성을, 아이러니하게도 시대를 극복하지 못한 개인들의 실패가 담아낸다. 이처럼 1980년대라는 시대의 틀에 갇히지 않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는 영화의 끝은 강렬한 액션만큼이나 여운이 길다.
이러한 구성과 주제, 메시지는 <헌트>가 상당히 영리한 영화이기에 더욱 눈에 띈다. 사실 <헌트>는 단점도 적지 않다.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가 꽤 복잡할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한국 현대사를 일정 수준 알지 못하면 100%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또 쉬어가는 틈이 없이 전력으로 내달리는 영화라서 피곤할 수도 있다. 스릴러라 하더라도 긴장감과 압박감을 조절하는 리듬감이 있어야 마지막까지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는데, 끝없이 정보와 사건이 쏟아지기에 벅차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 이에 더해 폭발음과 총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사를 알아듣기 힘든 고질적인 음향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는 데 온 힘을 쏟은 결과 위와 같은 단점은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 액션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헌트>의 액션은 기본적으로 양도 많고, 현장감을 잘 살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부닥친 주인공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채 상황에 끌려가는 장면이 대다수라서 긴장감도 상당히 높다. 보여주기 위한 액션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암시와 복선을 액션에 담아낸 것도 인상적이다. 액션씬을 보다 보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의문점이 있는데, 그 의문점들이 한데 모이다 보면 영화의 반전과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에 더해 핵심적인 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에 변화를 주는 분기점을 액션으로 표현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대표적인 것이 박평호와 김정도가 한데 뒤얽혀 싸우고, 계단을 뒹굴며 떨어지는 모습으로 끝나는 사내 난투극이다. 작중 유일한 일대일 맨몸 액션으로, 둘 중 누가 우위에 있고 누가 감정적으로 쫓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의 모든 메시지가 집약된 방콕에서의 테러 장면도 개인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숱한 폭발 장면을 통해 분출시킨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자연히 숨어 있는 단점을 굳이 들춰내는 것보다 확연하게 드러나 있는 장점에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감독 이정재의 데뷔작은 묵직하고 씁쓸한 첩보 액션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총성과 폭발음 안에서 주체로 거듭나는 장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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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올해 최고의 복합장르 가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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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10월 12일 개봉하는 작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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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 공포, 소리내면 튀어나온다! 콰이어트 플레이스2 리뷰!
콰이어트 플레이스 2편이 지난 주 개봉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장면이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1편에 이어 이번 2편에도 소리를 활용한 공포가 잘 표현되어 있어요.
소리내지 않게 걷고 행동해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그들이 실수로 소리를 낼 때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공포심은 정말 심장을 튀어나오게 하는데요.
2편은 청각장애를 가진 딸의 모험과 성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소리를 듣는 괴물들도 열연을 펼치고 있죠. 소리만 나면 엄청나게 빠르게 뛰어옵니다. :)
영화에 대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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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조2 : 인터내셔날> 티저 예고편
삼각 공조로 더 강력하게! 짜릿하게! 돌아왔다!?? 현빈X유해진X임윤아의 뜨거운 재회부터 다니엘 헤니X진선규의 신선한 에너지까지!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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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타다 :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 티저 예고편
한국의 우버로 불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TADA).
출시한 지 9개월 만에 100만 유저를 확보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택시업계의 반발로 법적 공방에 휘말린다.
뜨거운 논란 속 치러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날, 모든 팀원들은 함께 모여 ‘종이컵 와인 파티’로 자축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단 14일 뒤, ‘타다금지법’이 통과됐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이 들려오는데...
그들은 이 최악의 위기를 뚫고 타다를 새롭게 부활시킬 수 있을까?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의 이야기로 세상에 공개되는
‘스타트업’에 대한 국내 최초의 다큐멘터리 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