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징2023-08-28 18:40:20
유해진 한국 로맨스 영화 '달짝지근해: 7510' 스포일러 포함
쿠키 없음
달짝지근해: 7510
23.08.15 개봉
코미디, 12세 관람가
한국, 119분
감독: 이한
출연: 유해진, 김희선, 차인표 등
유해진 배우가 로맨스에 도전을!?
게다가 상대 배우가 김희선 님이다?
형은 이것까지 성공하면 진짜 다 한 거야...
라는 나영석 피디님의 말씀이 있으셨는데
로맨스 진짜 잘 어울리세요 ㅋㅋ
전체적인 분위기가 엽기적인 그녀 40대 버전 같더라구요
그나저나 제목이 왜 '달짝지근해:7510'일까 했는데
유해진 님 캐릭터 이름이 치호(75)고
김희선 님 캐릭터 이름이 일영(10)이었어요
근데 이름을 그렇게 지을 정도로 의미 있는 건간 모르겠더라구요
김희선 님 남편 이름은 이육구(269)던데 그냥 코믹 요소인가,,
아 근데 보고 있으면 카메오 라인업 진짜 대박이에요
일개 커플로 임시완, 고아성 님이 나오시고
개짧게 나왔다 죽는 역할로 정우성 님이 나오시고
코믹스러운 장면만 맡는 약국 직원이 염혜란 님이시고...
외에도 그냥 카메라에 비추는 얼굴마다 아는 얼굴이에요
아마 감독님의 필모가 대단하신 만큼......
다들 우정 출연을 해 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런 B급 코미디 영화는
사실 볼 때 기대하고 보는 마음이 크지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추석 시즌에 나왔으면 잘 팔렸겠다 싶은... 가족 영화랄까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웃기는 건 아니지만
사소한 말장난이 웃기고
무엇보다 유해진 님이 대사 치는 실력이 좋으시니까
평범한 대사도 웃기게 보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많이 본 듯한 구성이 아니라서 좋아요
보통 석호가 정말 죽일 만큼 나쁜 놈이라서
끝끝내 일영에게 나쁜 짓을 한다~ 가 마무리일 법한데
원랜 정말 착한 형이었고 마지막엔 회개도 했더라고요
병훈과 은숙도 처음엔 치호, 일영 커플을 방해하려 했지만
단 10초 만에 서로에게 반해 아름다운 커플이 되었고요
주인공을 크게 방해하는 인물이 없는 게 이 영화의 특징이에요
그냥 커플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OST가 나오는 방식이 굉장히 특이해요
치호와 일영의 옆에서 어느 커플이 프러포즈를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치호와 일영의 뒤로 라이브가 깔리고
와중에도 둘이 서로 고백하는 멘트를 엿듣느라
커플 둘이 힐끗거리는 게 웃음 포인트 ㅋㅋ
다만 아쉬웠던 점이 있냐 하면
은근한 범죄 미화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너한테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
그냥 너희 엄마한테 시비 걸 생각으로 찾아갔던 건데
네가 먼저 날 때리고 협박하고 (생략)"
이게 주거 침입을 한 사람의 대사입니다
심지어 길에서 일영의 미성년자 딸을 발견하고
그 뒤를 밟아 닫히는 문을 잡아 멋대로 들어간 건데요
실제로 혼자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는 중인데
대중 문화에서 이런 식으로 미화해 버린다면......
범죄자들에게 변명할 거리를 주는 것밖에 안 되지 않을까요?
또또 아쉬웠던 건 일영의 남편 등장이 허무했다는 것?
뭐 나쁜 놈이라 죽이고 싶다느니 뱀 사냥을 다닌다느니
겁이란 겁은 온통 줘 놓고서
자기가 잡았던 뱀한테 물려 교통사고를 내고 사망해요
등장한 지 약... 2분 만에......
그 남편 역할 맡으신 분이 정우성 배우님이신데
그냥,, 특별 출연 시키고 싶어서 어떻게든 끼워맞춘 느낌
아무래도 이런 장르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기 아깝잖아요
저는 쿠폰을 잘 잡아서 4,000원에 봤어요 ㅎㅎ,,,
VOD로 나왔을 때 봐도 늦지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특전 주는 것도 없어서 다들 잘 안 가시는 것 같더라고요
*스토리: 3/5점
*연출: 3/5점
*영상미: 2/5점
*연기: 5/5점
*OST: 3/5점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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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해피엔딩이 누군가에겐 새드엔딩일 수도 있다
감기
줄거리
전염되면 무조건 죽음에 달하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졌다.
너무 빠른 전염 속도에 결국 도시 폐쇄 조치가 내려지는데...
*해석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해피엔딩이 누군가에겐 새드엔딩일 수도 있다
숨은 의미 찾기
보통 이런 재난 영화 속 인물들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만 나누기 힘들다.
그들을 구분 짓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인물들에게 갈림길이 주어지고, 그중 하나를 무조건 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사람들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연구원이 막상 자기 딸이 감염된 순간에는 그 사실을 숨기고 이기적 행태를 보이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하나 이 영화에서 평이한 인물은 앞서 말한 ‘인해’ 외에는 찾기 어렵다. 그 외의 인물들은 온전히 선이거나, 온전히 악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극렬하게 대립하는데, 이 과정 탓에 관객은 지루해진다. 완전한 선의 편에 서는 인물이 존재할 경우 99%의 확률로 선이 이기기 때문에 긴장감이 사라진다. 게다가 이에 맞서는 악인은 강할지언정 진부하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선한 인물로 대변되는 ‘지구’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정의감으로 무장한 구조 대원이다. 그는 조건반사적으로 타인을 돕고 무적이며 동료 조력자까지 있다. 그는 남들이라면 쉬이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해낸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감염되지 않고, 민간인 금지구역에도 자유롭게 들어가며, 자신을 막는 열댓 명의 사람들에 맞서고도 아이를 업고 기어이 빠져나온다. 이렇게 무적의 주인공을 세워놓고 그토록 진부한 악인이라니. 영화 내용은 앞의 30분만 보더라도 어떻게 이어질지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리뷰하는 것은 순전히 ‘몽싸이’라는 인물 하나 때문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밀항을 시도한 동남아인.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의문의 바이러스로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죽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면역항체를 가진 사람이다. 그가 죽는 장면을 보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는데,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어떤 질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백인이고 몽싸이가 흑인이라면?
영화가 인종차별을 의도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앞뒤 맥락 없이 ‘한국에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설정을 할 수는 없으니 그 경로를 비교적 가까운 동남아로 설정했을 뿐이다. 해외에 다녀온 한국인이나 외국인 여행객이 바이러스의 원인일 수도 있었지만,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확산되었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밀항’하는 ‘동남아인’이라는 인물을 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의아한 것은 몽싸이라는 인물을 영화 내에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는 대한민국에 감기 바이러스를 퍼트린 원흉이면서도 동시에 유일하게 항체를 가진 희망이기도 하다. 상반된 두 가지의 역할을 부여받은 그는 한 쪽에게는 쫓기고 한 쪽에게는 보호받는 기이한 상황에 놓인다. 그러다가 결국 쫓는 쪽에 붙잡혀 죽음을 당하고 만다. 원흉으로서도 희망으로서도 제 역할을 종료당한 그는 ‘희망’이라는 타이틀만 미르에게 수혈하고 사라진다.
사실을 짚어보자. 그는 가난한 집에 돈을 보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밀항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밀항을 주선한 브로커는 한국인이며, 그들을 운반하려다가 놓친 운반책 역시 한국인이다. 그에게 감기를 옮아 바이러스를 산발적으로 퍼트린 사람도 한국인이고, 이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늑장을 부린 이마저 한국인이다.
그렇다고 몽싸이에게 처음 감염되어 죽은 병우를 탓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몽싸이가 밀항을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악으로 만들어버리고, 죽어도 안타깝지 않은 자로 만드는 영화의 구조가 아쉬웠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미르에게 가려져 '숭고한 희생'으로도 취급받지 못한다. 그저 한 명의 밀입국자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남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나 버린다.
우리 엄마 쏘지 마세요!
게다가 문제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어린아이를 해결책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긴박한 대치상태에서 뛰쳐나온 작은 아이가 평화를 요구하는 장면은 감동을 넘어선 한국식 신파에 가깝다. 거기에 '항체 보유자 김미르'라니. 아이는 우리 미래의 새싹입니다, 따위의 구호가 생각난다. 아무리 영화일지라도 고작 9살 밖에 안 된 어린 소녀에게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워야 했을까?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쯤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자. 동남아 계열 외국인 노동자와 어린아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 놓인 이들은 전부 사회적 약자다. 영화는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인류에게 닥친 재앙도, 인류에게 남은 미래도. 잘 생각해 보라, 영화 끝의 에필로그까지 지켜보아도 감염자의 시체를 대량으로 불태웠던 일에 대해 누가 책임졌다는 언급조차 없지 않은가.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모두에게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해피엔딩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새드엔딩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새드엔딩도 언젠가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기에.
코로나 이후 보니 하이퍼리얼리즘 공포영화
감상평
개봉 당시엔 그저 그런 흔한 재난 영화인 줄 알았더니 WHO의 팬데믹 선언을 예언한 영화, 감기.
순위권 안으로 돌아갈 땐 안 보다가 문득 볼 것도 없고 해서 다시 봤다. 영화 속 결말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괴리감이 컸다. 금방금방 바이러스가 종식되는 영화에 비해 현실은 코로나가 장기화되는 걸로도 모자라 위대 코로나 시대로 접어드는 판국이니.
어쨌거나 코로나 사회를 살아가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기침할 때 비말이 퍼지는 슬로 모션은 소름이 돋았다.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주 '불-편'했다. 중간중간 마스크도 안 끼고 손수건으로 대충 끼고 다닌 장혁이 대체 어떻게 감기 안 걸렸는지 그게 제일 의문.
보는 내내 그 짤이 생각났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캐릭터 중 하나가 ‘정의롭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잘 참는 장혁’이라던…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영화. 그야말로 장혁이 아니면 이 역할을 할 사람이 없겠다 싶은… 너무도 뻔한 캐릭터지만, 이런 뻔하디 뻔한 캐릭터에 딱 맞게 설정된 영화이다 보니 억지스러워도 이 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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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프랑스] 남성적 시선으로부터 탈주하는 클레오의 도시 산책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초기 연출작으로, 여성해방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2차 페미니즘 물결을 통과하는 시기에 만들어졌다. 바르다는 ‘클레오’를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한 여성의 정체성 찾기에 골몰했다. 영화는 젊고 아름다운, 나름 가수로서도 성공한 여성인 ‘클레오’가 암 진단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와 더불어 그의 내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로라 멀비가 대부분의 서사 영화 구조 속에서 여성은 수동적인 볼거리로서의 기능만을 한다고 지적한 바와 달리, 영화는 젊은 여성 주인공 클레오의 ‘시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면서 그녀의 삶과 주체성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1.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클레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제목 그대로 오후 5시에서 오후 7시 사이, 90여 분에 걸친 클레오(코린 마르샹, Corinne Marchand)의 시공간 이동과 대도시 산책을 13개의 장별 구성으로 펼쳐낸다. 이 과정을 통한 내러티브의 방향성은 대상으로서 정체성에 몰입했던 클레오가 주체로 변이생성 해나가는 탈주의 과정이기도 하다. 클레오의 시공간 이동은 자신이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도피하고픈 욕구로부터 발생된다. 젊고 아름다운 스타 가수란 정체성을 즐기며 화려한 삶을 누리던 클레오에게 불현듯 다가온 ‘죽음(암)’에 대한 공포는 존재론적 고뇌를 촉발하는 극적 동기로 작용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타나는 주요 응시 대상은 클레오가 뽑는 9장의 타로 카드들이다. 각각 ‘클레오’라는 인물의 과거-현재-미래를 나타내는 이 카드들은 그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전에 관객들에게 클레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마치 예언처럼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암시하는 기능을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래를 상징하는 카드들은 그에게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이때 등장하는 해골카드를 클레오가 보고 절망에 빠지자 점술가는 이 카드가 꼭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하는데, 이를 대상으로서만 살아가던 클레오가 주체로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기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암시하는 불길한 점괘를 안고 점집을 나선 클레오는 건물 출구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면서, ‘추함이야말로 죽음을 의미하며,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한 나는 살아있다’는 자기주술성 위로로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러나 양 벽면에 걸린 거울이 서로를 비추면서 무한대로 분열되는 그의 이미지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얻게 되는 존재론적 고뇌가 현재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을 것임을 암시한다.
거리로 나선 클레오는 모든 이들의 시선의 대상이 된다. 자신에게 꽂히는 그러한 타인들의 시선을 클레오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 매니저 앙젤르는 ‘아파 보이냐’는 그의 질문에 ‘아름답다’는 답변을 할 뿐이다. 이때 클레오는 또다시 뒤돌아 거울을 바라본다. 앙젤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눈물을 흘리는 클레오를 보며, 그의 절망이 단지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앙젤르가 볼 때 클레오는 미성숙한 자아를 가진 ‘어린아이’로, 자신의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이다. 존 버거가 말한 것과 같이, 클레오는 앙젤르로 대표되고 있는 남성중심적 사회의 규율과 질서의 통제를 받는 인물인 것이다. (영화 속 앙젤르는 여성이지만, 남편을 잃은 과부로서 클레오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소유 및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앙젤르는 남성중심적 사회의 규율과 이데올로기를 상당히 내면화한 인물로 나타난다. 이러한 그의 집착은 영화 전반부를 중심으로 잘 드러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쇼윈도에 놓인 모자를 보고 방문한 모자 가게에서도 클레오는 도처에 놓인 거울들에 비친 새 모자를 쓴 자신의 이미지 보기를 반복한다. 이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 보는 수단이기도 하다. 갖가지 모자를 써 보면서 스스로의 아름다운 외모에 도취하던 클레오는 결국 여름철에 맞지 않는 검은 털 모자를 구매해 쓰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내 ‘화요일에는 새 옷을 입으면 불운이 생긴다’는 미신을 믿는 앙젤르에 의해 제지당한다. 연이어 가부장적 운명론에 집착하는 앙젤르에 의해 두 사람은 운수 없는 차 번호를 피해, 드물게 존재하는 여성 기사의 택시에 탑승하게 된다. 그러나 택시에 탑승함으로써 거리의 수많은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것 같아 보였던 클레오는 차량 속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시선들의 대상이 된다. 이동 중에도 차창 밖의 행인들의 시선과 옆 차선 차량을 운전하는 남성들의 희롱을 겪은 클레오는 심지어는 창밖으로 마주한 아프리카의 원시적인 가면으로부터도 자신을 관찰하는 시선을 느낀다. 그리고 이때 그는 문득 거북함을 호소한다. 한편, 남성 지배적인 택시 업계에서 여성으로서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밤거리도 두렵지 않다며 용감한 투쟁담을 들려주는 이 여성 택시기사와의 동행에서 클레오는 여성의 직업에 대한 일종의 성정치학적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 에피소드 또한 이후 펼쳐질 클레오의 전복적인 산책 여정을 예고해 주는 내러티브 기호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한 클레오는 애인과의 만남을 준비하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느끼면서도 신체 가꾸기를 위한 스트레칭을 한다. 속옷 차림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그에게 앙젤르는 길고 화려한 털로 꾸며진 아름다운 실내가운을 입힌다. 스트레칭을 마친 클레오는 이내 침대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아름답기에 사랑받는 여자’라는 관습적 내면화를 보여주는 반복적인 신체 움직임으로, 닫힌 틀에 갇힌 자아 대상화에 불과하다. 연이은 장면에서는 ‘남자는 아픈 여자를 싫어하니까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말라’는 앙젤르의 충고가 클레오에게 전해진다.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야 할 공간인 집/침실에서마저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위해 꾸밈노동을 해야 하는,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음이 계속해서 영화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스타 가수이자 부유한 애인을 가진 클레오의 일상을 지배하는 행위는 거울 속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다. 영화 속에서 거울은 가부장적 조직과 규제 속에서 훈련된 클레오의 행위가 정체성으로 재현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버거가 말한 바와 같이, 클레오의 자아는 감시자로서의 자아와 감시당하는 자아라는 두 개의 항으로 찢어져 거울 보기의 행위를 반복하면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다음 장인 5장에서, 클레오는 사업 일로 바쁘기에 잠시 들렸다 가는 연인과 의례적인 만남을 갖는다. 연인에게 영화 <돈주앙>을 보러 나가는 데이트를 조르기도 하지만, 그는 ‘나의 여신 클레오파트라’, ‘나의 보석’이란 찬사를 클레오에게 퍼붓고 곧 떠날 뿐이며, 아프다는 클레오의 말에 ‘고운 몸에 병이 나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고통을 ‘괜한 걱정’ 따위로 치부해 버린다. 이후 노래 연습을 위해 방문한 두 친구 역시 클레오의 병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우스꽝스러운 장난을 치면서 클레오 갈등을 빚는다.
이후 이어지는 시퀀스에서 클레오가 <당신 없이(Sans Toi)>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당신 없이는 나는 빈 껍질이에요”라는 가사를 통해 타인의 시선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클레오를 떠올릴 수 있다. 이렇듯 애인의 태도와 자신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클레오가 절망적인 피로감을 느끼게 되면서, 아름다움만이 자신의 가치이고,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성이므로 자신은 행복하다고 믿었던 그녀의 정체성에 균열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강박적 욕망으로부터 탈주 충동을 느낀 클레오는 이제 지금껏 스스로를 옥죄어왔던 가발과 온갖 치장을 벗어던진다. 화려하게 장식된 흰 실내가운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검은 원피스로 갈아입은 그는 앙젤르의 경고를 무시하고서,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털모자를 쓴 채 홀로 집을 나선다.
2. 보는 주체로서의 플로랑스
다시 거리로 나선 클레오는 여전히 도시 사람들의 시선이 가닿는 대상이다. 하지만 이때 클레오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변화가 포착된다. 홀로 거리에 나선 클레오는 중국음식점 외부에 걸린 거울 앞에 서는데, 전반부와 대비되는 태도와 독백으로 자신의 이미지 투영에 직면한다.
“표정 없는 얼굴, 바보 같은 모자…”
그의 독백은 처음부터 이 순간까지 반복되어온 아름다움에 고착된 대상화된 정체성을 전복시키기 시작한다. 이런 전복은 보여지는 대상에서 세상과 자신을 보는 주체로 생성하기 시작하는 산책 여정으로 급진전된다.
이제 그는 ‘스타가수 클레오’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파리라는 도시의 군중 중 하나, 즉 ‘익명의 존재’로서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클레오는 산 채로 개구리를 삼키는 신기하지만 끔찍스러운 마술쇼를 구경하기도 하고, 사람이 붐비는 카페에서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그들을 관찰하기도 하면서, 익명의 군중 속에서 신체의 충동을 따라가며 산책하는 ‘탐사자’로 변화해나간다.
이전까지는 마치 그의 모습을 관음 하듯이 촬영했던 카메라의 시점은 이제 여성이자 주체인 클레오의 시선으로 바뀌어 촬영된다. 그는 여전히 시선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동등한 인격체로서 다른 이들을 관찰하는(따라서 때로는 시선이 부딪히며 눈을 마주치기도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클레오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조각 작업실로 향한다. 이곳에서도 클레오는 작업을 하는 조각가들과 조각품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찰을 멈추지 않는다. 친구는 조각실에서 누드 모델 일을 하는 중인데, 지금까지 줄곧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왔던 클레오가 이제는 ‘보는’ 입장에서 누드 모델, 즉 대상으로 서 있는 친구를 관찰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일을 마치고 클레르는 친구와 같이 거리를 걸으며 신체와 일상, 그리고 자신이 직면한 병과 죽음, 불안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이 과정에서 친구는 누드모델 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휴면상태와 같으며, 조각가들은 그저 형태와 아이디어로 자신의 신체를 보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신체 주체성을 토로한다. 여성의 신체를 대하는 가부장적 통념과 시선을 전복시키는 이런 경험은 점술가의 예언이나 앙젤르의 충고와 같은 운명적 틀에 갇혀있던 클레오에게 주체-되기의 계기로 다가온다.
친구가 헤어진 후, 뚜렷한 목적지 없이 거리를 방황하던 클레오는 홀로 몽수리 공원에 들어선다. 보는 이 없는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는 클레오는 휘파람을 불면서 자신의 신체와 세상의 관계를 즉흥적으로 노래한다.
아름답고 변덕스런 나의 몸/ 새파란 나의 눈은/ 한번 보면 빠져들어/ 나의 매혹적인 모습은/ 포기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유혹/ 모두들 궁금해하지 내 매력과 미소를
이렇게 터져 나오는 노랫말은 보여지는 대상에서 자신의 신체를 관찰하며 걷고 보는 주체가 되어 스스로 연출해 내는 즉흥극이기도 하다. 여기서 스스로의 신체를 관찰하는 클레오의 자아는 존 버거가 이야기한 여성의 분리된 두 자아 중 감시하는 자아, 즉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한 것과는 다르다. 클레오의 이러한 자기 응시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여부에 두었다기보다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또한 이렇듯 능동적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탐색자의 역할을 수행해나가는 클레오를 통해, 영화는 ‘보는’ 행위의 쾌락이 능동적인/남성과 수동적인/여성으로 쪼개진다고 본 로라 멀비의 이론이 다소 이분법적인 구분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대상이었던 여성이 한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일종의 ‘여성적 시선’을 제시한다. 이러한 영화 속에서 관객들은 주체로서의 남성이나 객체로서의 여성보다는 주체되기를 선택한 여성의 시선에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연의 소리와 풍경을 만끽하며 홀로 걷고 있던 클레오에게 ‘앙투완’이라는 남자가 그녀를 ‘여름날 여신(Flora)’이라고 칭송하며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한다. 환대 없는 어색한 상태에서 시작된 둘의 관계는 이내 죽음에 대한 불안감 공유로 소통이 가능해진다. 클레오는 암을 진단받을지도 모르는 불안을, 앙투완은 알제리전 참전 중 나오게 된 휴가의 마지막 날, 전쟁 중 닥쳐올지 모를 죽음에 관한 두려움을 토로한다. 내면의 고통을 드러내며 소통하게 된 타자와의 만남은 클레오에게 잊었던 기억의 ‘체현’, 즉 잠재된 주체성의 발현을 촉발하는 동기로 작동한다.
클레오는 ‘클레오파트라’에서 따온 스타 가수로서의 가명 대신 자신의 본명 ‘플로랑스Florence’(플로랑스는 꽃의 신 ‘플로라Flora’로부터 유래한 이름으로, 꽃처럼 피어나는 생명력을 상징한다.)를 기억해 낸다. 거울 틀 속에 갇혀 보여지는 대상에 머물던 클레오가 플로랑스라는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은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 혹은 거리 군중의 시선에 조응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이 일상과 전쟁, 개인적 삶과 사회적 정치의 공존은 ‘클레오→플로랑스’라는 변화, 즉 보여지는 대상에서 보는 주체로의 변이생성을 충동하는 ‘산책의 변증법’(산책하는 한 존재가 거리에서 군중과 만나며 변화하는 모습을 벤야민은 ‘산책의 변증법’으로 설명해낸다.)을 드러내준다.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은 플로랑스는 가부장적 운명론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처음으로 자신만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3. 경계 밖을 사유하는 산책의 여정
아름다운 스타 가수인 클레오가 익명의 군중 속에 떠도는 플로랑스로 변화해가는 과정은, 거울이라는 틀 속에 갇힌 대상에서, 그 틀을 깨고 탈주하는 주체의 회복이자 생성이라는 점에서 극적 대비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여성 이미지를 구축해온 성차별적 영화 관습에 전복적인 이미지 재현을 달성해낸다. 1961년, 여성들이 처한 삶의 영역과 조건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었던 제2 물결 페미니즘(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어 서구세계 전체로 퍼진 여성주의 운동으로, 제1세대 여성주의가 여성 참정권을 비롯하여 제도적 성평등에 집중한 데 비하여, 제2세대 여성주의는 섹슈얼리티, 가족, 재생산 권리, 불평등 등으로 담론 범위를 넓혔다.)이 막 태동하던 시기 세상에 나온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사회적인 표상으로서의 여성 이미지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존재론적 고뇌를 겪는 한 개인으로서의 여성의 이야기다.
그것은 ‘성녀와 창녀’ 혹은 ‘숭배와 강간’으로 상징되는 틀을 깨고 여성 주체가 생성하는 또 다른 시공간을 찾아 나선 산책의 여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발표된 지 약 반세기가 흐른 현재, 여전히 영화계 내에서 여성은 물신화된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되며 ‘여성으로서의 여성’은 대부분 부재하는 상황에서 이렇듯 클레오가 가지는 주체로서의 여성 이미지 서사는 젠더적 관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쟁점을 가진다. 관습적 세상의 틀로부터 탈주하면서 현실의 변화를 사유하고 스스로 실천해 내는 클레오의 그러한 산책 여정은 현실과 공존하는 영화적 시공간의 기능을 증명해 내는 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변재란, 「아녜스 바르다, 여성의 역사, 영화의 실천」,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제38권 2호,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9, 121-142쪽.
유지나, 「대상에서 주체로의 변이생성 연구: <5시에서 7시까지 클레오>를 중심으로」, 『씨네포럼』, Vol.0 No.34,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9, 9-30쪽.
Berger, John, 「다른 방식으로 보기」, 최민 옮김, 열화당, 2012.
Laura Mulvey, Visual and Other Pleasures, Basingstoke: Macmillan, 1989, 16p.(쇼히니 초두리, 「페미니즘 영화이론」, 노지승 옮김, 앨피, 2012, 67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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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절대 미화되지 않을 기억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공동 수상에 빛나는 '루카스 돈트' 감독의 매우 사적인 기억에 가까이 다가가볼 수 있는 영화 <클로즈>는 성정체성을 다룬 작품 <걸>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작품으로, 이번에도 역시 사회가 강요하는 틀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렇지만 너무나도 보통의 인물을 이야기한다.
작품의 배경이자 루카스 돈트 감독의 출신지인 벨기에는 2003년,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동성혼 합법화를 이뤄낸 국가이다. 인식은 제도를 뒤따르기 마련이고, 해당 제도가 갖춰진 지 약 20년이 흐른 현재 벨기에 국민의 82%가 동성혼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편견은 존재하며, 동성결혼 자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동성애에 관해선 거부감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클로즈>는 꽃이 만개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두 소년의 모습으로부터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에서 히데코와 숙희가 들판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의 해방감이 느껴지는 두 소년의 질주는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을 것 만큼 강인하며 아름답다. 이렇게 서로가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이던 두 소년은 새 학기가 시작됨과 함께 사회의 그릇된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될 건 없지만 이상하다는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또래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칼이 되어 이 둘의 관계를 조각내고, '레오'를 고정관념이라는 틀 안으로 밀어넣고 만다. 그렇게 레오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스하키를 하는 등 사회가 남성적이라 규정하는 것들에 몰두하며 래미를 자신의 울타리에서 몰아내기 시작한다.
한순간에 래미의 세상은 무너져 내리고, 관계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청소년기의 한 소년의 삶도 함께 무너져버리고 만다. 레오는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에 나가고, 아이스하키를 하며 일상을 유지하려 하지만, 전혀 괜찮을 리 없는 레오는 다른 사람의 등을 보는 순간 감춰왔던 감정이 한순간에 터지고 만다.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친구는 떠났지만, 레오는 이 추억을 그대로 안고 살아갈 것이다. 영화의 끝자락에 레오가 혼자 들판을 달리는 장면에선 초반 들판씬에서 느껴지던 해방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레오'의 모습을 통해 이 소년이 잔혹한 세상을 결국 살아낼 것이라는 희망이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기억을 온전히 갖고 결국 살아낼 것이며, 세상의 수많은 '레오'들 역시 살아내리라.
루카스 돈트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 2022 | 104min | DCP | Color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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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겪었고, 겪고있고, 겪을 이별과 가족이야기를 담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독립영화는 엄청 찾아서 보는 스타일이 아니라 존재조차 몰랐지만 보는 내내 소소한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굉장히 다양한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스펙타클하고 자극적인 일반 상업영화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평단에서 엄청나게 좋은 평을 받는 작품들을 봤을 때는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시놉시스남매 옥주와 동주는 방학기간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렇게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의 여름이 시작되고 불편할 줄만 알았던 남매는 할아버지 집에 적응하며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치매로 쓰러지시고 고모도 사정상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남매와 할아버지, 아빠와 고모. 이렇게 다섯 식구의 여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다.
평범함을 무기로 전세대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렇게나 고증이 잘 되어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있었던 검정색에 휘황찬란한 자개장, 그리고 문고리에 달려있는 색색의 노리개, 노랗게 변색된 선풍기, 테이프와 CD를 넣을 수 있는 커다란 오디오 기계. 화면에 비춰진 공간이 너무나도 할머니 할머버지 집인 것 같아서 어린 남매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투영되다 보니 공감이 안될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같이 영화를 본 친구 역시 다 보고 나서 ‘저 자개장 나만 익숙하니...?’, ‘겨울 배경이었으면 아주 비단이불 나왔겠다.’라며 코멘트를 달기도 했다. 그와 함께 자개장에 저 시대 혼수였던 것 같다며 자체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영화 속에는 노년층 캐릭터 하나, 장년층 캐릭터 둘, 청소년 캐릭터 둘 이렇게 설정이 되어 있다. 가족이라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어린 아이부터 노년층 까지 누구나 다 거쳐가는 과정이다. 그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음으로서 관객의 나이에 따라 더 공감의 정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 겪어왔고, 겪고있고, 겪을 인생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침착함은 유전자인 것이 분명하다영화 《남매의 여름밤》 작품이 평범함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공감을 하면서도 이해를 할 수 없었던 특징이 있다. 바로 ‘침착함’이다. 어쩜 그리도 모든 가족 구성원이 침착할까?
친구와 대화를 하며 ‘와 너무 공감이 잘 되는데 다 내가 겪었던 내용이고, 앞으로 겪을 내용이라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왜 저렇게 침착해? 사람들이 왜 저렇게 다들 성숙한거야? 사춘기인 딸마저 저렇게 차분하다고? 우리집이 이상한거야?’라고 속사포 랩을 했다가 친구가 ‘우리집도 안그래^^’라고 해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딸이 아빠가 장사하는 물건을 훔쳐 중고거래를 하다가 들킨 후 파출소에 다녀왔는데 이유도 안물어보고 혼내지도 않고 넘어가는 모습에서 저게 가능하다고? 우리집이었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등짝스매싱각인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큰소리 한 번 안나고 언성이 높아지지 않을 수 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런 집이 있을 수도 있구나 신기해 하면서도 영화의 내용이 평범하고 일반적인 가족들이 살아가며 겪는 일상 그 자체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공감이 완벽하게 이뤄지다보니 순간적으로 ‘우리집이 비정상인거야?’하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의 사례도 비슷한걸 보니 영화 속 가족의 유전자가 굉장히 Calm한 것으로 자체 결론을 내렸다.
누구나 겪는 부재에 관한 이야기
여름날 가족의 일상을 다루고 있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부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주와 동주 남매는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함께 살아간다. 옥주는 엄마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을 엄마와 동생 동주에게 분노로 표출한다. 그리고 고모는 고모부와 이혼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 전체가 함께 겪는 부재를 표현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사회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누구나 이별은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그 부재 속 상실감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상쇄시키며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간다. 사람이라면 겪는 과정은 담담하고도 평범하게 과장없이 표현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별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앞으로 언젠가 경험할 사람에게는 덤덤한 조언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는 잔잔한 영화 속에서 지루함을 잘 느끼는 내게 지루함 없이 공감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 거리도록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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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신세경과 서촌의 모습을 담다
마케팅 사의 지원으로 제공된 Seezn 관람권을 이용해 웹에서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 시작은 아마도 10대 시절일 것이다. 10대의 대부분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대학이라는 관문으로 열심히 달려가다 대학교에 간 이후에는 취업의 문을 향해 달려간다. 그게 끝이 아니다. 취업한 이후에는 사회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커리어와 성공의 문으로 향한다. 숨을 헐떡이며 앞으로 달려가면서 주위를 둘러볼 시간은 없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볼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어쩌면 인생은 끊임없이 그런 작은 목표들로 열심히 달려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그다음 문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를 외치다 보면 어느덧 지치고 정신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잠시 멈추는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잠깐 그 자리에 멈추는 시간은 꽤 중요하다. 앞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 속에서도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지금 뛰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결정도 해보고 다른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 하면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준다. 사람마다 그 기간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그렇게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앞에 보이는 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앞을 보며 다음 문을 향해 차분히 걸어간다.
배우 신세경의 마음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나더 레코드>
다큐멘터리 영화 <어나더 레코드>는 쉼 없이 일을 하며 달려온 배우 신세경의 멈춤을 담는 시네마틱 리얼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이 영화 속에서 서촌의 거리를 걷고 여러 카페나 가게를 돌아다니며 그 주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서촌 특유의 분위기와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은 느린 시간이 영화의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동네다. 좀 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북촌에 비해 서촌은 좀 더 조용하고 한적하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의외의 식당이나 가게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은 이 복잡한 길을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배우 신세경은 아역배우 출신으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연기라는 일을 하며 계속 달려왔다. 영화 속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20대 중반까지 계속 일에 바빠 여유로운 시간 속에 머무르지 못했다. 그저 다음 가야 할 곳을 보며 앞으로 연신 달려갈 뿐이었다. 영화 초반 신세경 배우가 타로 점을 배운 김주우 배우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신세경 배우는 자신에 대한 타로 점을 보고 설명을 듣는다. 그가 하는 질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것, 과거 선택에 대한 것 그리고 자신 주변에 있는 존재의 마음에 대한 것이다. 즉,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것들을 차례로 물으며 자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타로 점을 믿든 믿지 않든 그가 받아 든 결과는 그가 결정한 휴식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면의 소리를 보게 만들었다.
그가 방문하는 곳은 차례로 위스키를 파는 작은 바인 '무용소', 드립 커피와 떡을 파는 '카페 자하', 차를 파는 '에디션 덴마크', 이탈리아 요리를 파는 '효자동 두오모'이고 어린 동화 작가 전이수 군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담는다. 영화는 각각의 장소에서 주인과 대화하는 배우 신세경의 모습을 차분히 담는다. 그가 만나 대화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고, 가게마다 어떤 고유의 특성이 있다.
작은 바 '무용소'에는 과거의 물건들이 가득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맛이 깊어지는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여행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카페 자하'에서는 쉬지 않고 일해온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곧 영업을 종료한다는 그는 2년 동안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려와 잠시 쉼을 선택한다. 다음 방문지인 '에디션 덴마크'의 주인은 덴마크 남편과 한국 아내 국제 부부를 만난다. 그들은 느리고 평화로운 서촌의 분위기와 느리게 걸을 때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어린 동화 작가 전이수 군을 만난 배우 신세경은 어릴 때부터 달려온 자신과 비교하여 어린 나이에 일을 하게 된 전이수 군과 일의 의미와 가족, 그리고 외부인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결국에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효자동 두오모'의 사장님과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결정과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타인과 나누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서촌의 아름다움 풍경과 분위기 그리고 휴식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눈 이후, 결국 만나게 되는 건 휴식이라는 것이다. 배우 신세경은 앞만 보고 달려오다 이직을 하고 잠깐의 휴식을 택했다. 그것이 과연 잘한 선택이었는지를 영화 속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일하는 모습이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와 만나고 대화하면서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처음부터 그것은 이미 옳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바쁜 와중에 휴식을 결정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면 저 멀리 있는 문에서 더 멀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휴식을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휴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점도 많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 담긴 서촌 속 가게들은 대부분 아주 작은 가게들이다. 골목골목에 숨겨져 있는 그 가게들은 그곳을 느리게 걷던 이들에게 발견되고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선사한다. 서촌의 선물 같은 모습을 배우 신세경의 뒤를 따라 같이 걷는 느낌을 주는 영화는 마치 배우와 같이 그 길을 걷고 이야기하는 자리 옆에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배우 신세경과 함께 서촌을 산책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영화는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천천히 빨아들인다.
영화에는 극적인 순간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대화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느낌이 있다. 특히나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배우 신세경의 모습이나 마음속 이야기를 같이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잔잔하고 느린 서촌의 모습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모습일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은 현실적이지만 조금은 관객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감성적인 연출을 잘하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더 테이블>, <조제>, <아무도 없는 곳> 같은 영화들을 통해 감독이 가진 고유의 감성을 잘 느낄 수 있다. 그 감성을 그대로 다큐멘터리 영화 <어나더 레코드>에 담았다. 아름다운 서촌의 풍경과 분위기를 담는 한 편, 배우 신세경의 개인적인 고민과 모습을 서촌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래서 보는 내내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나더 레코드>는 OTT 서비스인 Seezn에 단독으로 공개되었다. Seezn 웹사이트나 앱을 다운로드 받아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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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인에 의해 드러나는 구찌 가문의 치부
가족은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직후부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온다. 서로 많은 교류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각자가 가진 특성이 있겠지만 일단 자신의 부모가 하는 일에 영향을 받는다. 부모가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경우, 그 분야에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 그리고 어떤 사업을 하는 기업가라면 기업 운영이나 그 기업이 속한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렇게 접한 정보들을 통해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결정한다. 가족과 비슷한 길을 가든,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하든 그것이 가족에게 받은 교육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일반적으로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부르는 사업들이 있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기업들이 대를 이어 가족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재벌이라고 불리는 그룹의 총수들은 부모를 이어 일종의 가업을 물려받는다. 그렇게 기업의 운영권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가족의 전통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축적된 부를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의미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방해하는 인물이나 요소들은 보이지 않게 제거되어간다. 일종의 가족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가족에 외부인이 새롭게 들어오거나 외부인이 가족의 일에 개입하려 할 때,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투쟁이 나타난다. 이런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의 관계를 깨지게 한다.
명품 기업 구찌 가문의 비극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했던 구찌 가문의 이야기를 담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구찌 가족들은 그 관계의 멀고 가까움과 관계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들의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에도 큰 영향을 받아왔다.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마우리찌오 구찌(아담 드라이버)는 사실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 그는 법률을 공부하고 있고 아버지 로돌포 구찌(제레미 아이언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티에서 만난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와 결혼을 한다. 마우리찌오는 가족을 등지면서까지 구찌 가문과 멀어지는 듯하지만 아내가 된 파트리치아에 의해 다시 본인의 가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마우리찌오가 다시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데 도움을 준 이는 삼촌인 알도 구찌(알 파치노)다. 구찌의 운영을 대부분 책임지고 있는 그는 자신의 아들인 파올로 구찌(자레드 레토)의 무능함에 실망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은 능력이 있어 보이는 마우리찌오와 파트리치아를 자신의 사업 영역 안으로 들여놓는다. 결혼 이후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마법은 조금씩 마우리찌오를 알도와 가깝게 만든다.
영화의 결과만 놓고 보다면 파트리치아는 악녀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초반 그의 모습은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의 추종자다. 파티에서 처음 마우리찌오를 만난 파트리치아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그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끌리는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은 순수해 보이고 구찌 가문이라는 거대한 부의 원천이 없더라도 빛날 것만 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구찌 가문의 가족들과 조금씩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구찌 가문의 영향력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구찌 가문을 바라보는 파트리치아
구찌 가문과 기업의 문제점을 보는 인물은 다름 아닌 파트리치아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그는 각 인물들이 가진 문제를 제대로 파고든다. 시아버지인 로돌포는 자신이 배우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이 만든 구찌의 스카프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파트리치아는 배우로서의 로돌포를 전혀 알지 못한다. 삼촌 알도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을 본다. 기업 구찌를 운영하는 알도의 비도덕적인 재무 문제를 발견해내고 알도를 경영권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조카인 파올로에게는 무능력을 보게 되고 그를 이용해 구찌 경영을 온전히 남편 마우리찌오가 차지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영화는 구찌 가족의 인물들이 가진 문제점을 하나씩 파고들어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보는 관객들이 어떤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라 게이 포든의 소설 '하우스 오브 구찌'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거장 리들리 스콧에 의해 흥미롭게 영상화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영화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이 각 인물들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파트리시아의 시선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마우리찌오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구찌 가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철저히 객관적인 외부자의 시선으로 영상에 담았다.
그래서 이 영화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차례차례 드러난다. 어떤 인물은 편법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고, 어떤 인물은 무능하고 또 다른 인물은 개인적인 욕망에 심취해 있다. 영화 초반 아주 순수하게 보였던 마우리찌오조차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보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영화 속 유일한 외부인이었던 며느리 파트리치아의 시선을 따라가며 하나씩 까발려진다. 그렇게 구찌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게 담겨있다.
레이디 가가의 훌륭한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뛰어난 연출이 만들어낸 수작
가문의 외부자인 파트리치아가 영화 속 악녀지만, 구찌 가문을 몰락시키는 인물들은 다름 아닌 구찌의 가족들이다. 서로 태어나면서 연결되고 영향을 주는 존재들인 가족은 어쩌면 각자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무수한 영향을 주고 각자의 장점들이 무엇인지를 서로 알게 해 주지만 구찌의 가족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에 심취되어 자신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다른 가족이 가진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칼들은 외부인 파트리치아에 의해 각자 자신의 심장으로 향하게 된다.
파트리치아를 연기한 가수 겸 배우 레이디 가가는 <스타 이즈 본>을 통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이번 <하우스 오브 구찌>를 통해 좀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여러 가지 패션과 머리스타일로 구찌 가문에 들어간 며느리로 완벽히 변신했다. 사랑에 빠진 순수한 연기부터 질투와 분노의 화신이 되는 연기까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그는 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마우리찌오를 연기한 배우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도 훌륭하며, 특히나 조카 파올로를 연기한 배우 자레드 레토의 열연이 돋보인다. 누군가 배우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면 그가 자레드 레토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할 것 같다.
영화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은 20년 전에 이 소설의 판권을 구입하여 여러 번 영화화 시도를 했다. 그동안 여러 감독과 배우들의 손에 들어갔지만 구찌 가문의 반대로 영화화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리들리 스콧 본인의 손으로 연출을 하게 되었다. 영화는 그 당시의 분위기를 영상으로 훌륭하게 담고, 그때와 어울리는 음악을 탁월하게 선택함으로써 몰입감을 더한다. 15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연출로 이야기의 끝까지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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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구찌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b8yYru53t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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