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8-22 12:19:01
8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베테랑2> 메인 포스터, 예고편 공개
“내가 죄 짓고 살지 말랬지”
황정민과 정해인의 진하고 강렬한 리얼 액션으로 가득한 <베테랑 2>의 메인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코미디 요소가 강했던 1편과 달리, 이번 영화는 더 어두운 하드보일드 성향이 강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베테랑2>는 추석을 앞둔 9월 13일 개봉 예정입니다.
줄거리
가족들도 못 챙기고 밤낮없이 범죄들과 싸우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과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 어느 날, 한 교수의 죽음이 이전에 발생했던 살인 사건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며 전국은 연쇄살인범으로 인해 떠들썩해진다. 강력범죄수사대는 서도철의 눈에 든 정의감 넘치는 막내 형사 '박선우' 를 투입한다. 그리고 사건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데...
<베테랑2> 에 새로 캐스팅된 정해인은 극중 온라인상 UFC 경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할 만큼 순간적인 판단 능력과 고도의 무술 실력을 갖춘 박선우 역을 맡았다고 밝혀지면서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8월 4째 주 씨네뉴스 함께해요!
AI로 고인 되살린 <에이리언: 로물루스> 논란
지난 8월 14일 개봉한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2년 전 별세한 배우를 인공지능(AI) 기술로 되살린 것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에서 ‘빌보’ 역으로 알려진 배우 이안 홈은 1979년 개봉한 <에이리언>에서 인조인간 ‘애쉬’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이번 신작에서 4년전 고인이 된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AI로 재탄생 시켜 일부 관객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파일럿> 400만 관객 돌파
조정석 주연의 <파일럿>이 4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가 파격 변신 이후 재취업에서 성공하며 벌어지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조정석은 감사 손편지를 통해 “<파일럿> 400만 관객 여러분 ! 너무 너무X100 감사합니다”라며 진심 어린 무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최민식 “티켓값 내려야 ” 발언에 다시 불붙은 영화 티켓값 논란
영화 티켓 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배우 최민식의 발언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민식은 지난 17일 MBC 대담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극장 티켓 값이 많이 올랐는데, 좀 내렸으면 좋겠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갑자기 확 올리면 나라도 안 간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일부는 찬성하는 반면, “배우 출연료도 내려야 한다”며 다른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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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색감과 촬영, 눈을 사로잡는 도둑 같은 영화
'이 영화 뭐지?' 예고편으로 내용을 알 수 없고, 포스터로는 더더욱 알기 힘들어서 '이 영화 정체가 도대체 무엇일까' 싶어 보게 된 영화였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기 때문에 흥미로움이 더해지긴 했지만 세간에 알려진 특별한 매력이나, 영화의 퀄리티 등에 대해서는 별 흥미를 가지지 못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갖고 있는 습관 중 하나가 볼만한 영화가 생기면 이전 사람들이 남겨놓은 리뷰를 먼저 본다는 점인데 사람들 사이에서도 극한의 호불호가 나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지루한 데다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팀 버튼의 기묘한 상상력과 샤갈의 색채감을 아우러놓은 환상의 명작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스 감독의 작품은 <개들의 섬>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사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던 터라 그냥 무작정 영화를 트는 것이 전부였다. 큰 기대 없이 영화를 틀고 난 뒤 100분 동안 마법같이 영화를 감상했다. 스토리는 빼더라도, 자꾸 보고 싶어 지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분명했다.
포스터만 보고 들어온다면 영화의 내용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로맨스나 드라마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이게 웬 걸, 범죄 추격 스릴러에 좀 더 가까운 영화였다. 물론, 스릴러라기 보단 미스터리 모험물에 좀 더 가깝지만 말이다. 그런데 영화 전반적으로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거의 전무하다고 이야기해도 무리가 없다. 미스터리 모험물인데 과정이 긴박하지 않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 역설적인 장르를 가능하게 만든다. 영화의 배경이나 공간 자체를 아주 비현실적으로 비틀어놓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개를 이어간다. 게다가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기보다,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하듯 흘러가고 각 지점마다 '막'을 만들어놓음으로써 마치 잘 짜인 연극을 감상하는 듯 한 기분을 들게 한다. 때문에 영화 중반부로 가는 데까지도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도통 쉽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알 수 없는 영화인 데다가 현실감도 떨어지는데 어떻게 이 영화가 사랑받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사랑받는 이유를 꼽자면 이 영화를 논할 때 가장 우선시되는 것. 바로 색감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바탕이 되는 분홍색과 더불어 연한 색감으로 도배된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 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타 영화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분홍색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오묘하고도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특정 장면들의 지점에서 색감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하거나, 연속되는 장면들 속 전환 지점에서 색감을 유지하거나, 탈락시킴으로써 극적인 전환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 속 메인이 된 '분홍색'은 사랑과 순수함을, 호텔의 유니폼인 '보라색'은 신비로움과 고급스러움을, '푸른색' 계열의 차가운 색깔은 살인이나 추격 등 스토리의 극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도움을 준다. 영화 배경의 전체적인 톤은 '노란빛' 사실은 베이지에 더 가까운 색으로 구성함으로써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관객의 눈을 자극 없이 편안하게 이끌고 간다. 가히 색으로 시작해 색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되지 않을 영화이다.
색감만큼이나 다채로운 건 바로 촬영 기법이다. 대칭 구도와 평면적 화면 활용을 통해 비주얼적인 매력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또한,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1인칭을 활용하거나, 줌, 트랜지션(화면 전환 효과)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지루할 수 있는 전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인물에 포커스를 두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데 전체적인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기보다, 인물의 표정과 대화를 통해 스토리를 전개함으로써 상세하고도 세밀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돋보인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점은 바로 화면 비율인데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대에 맞춰 환면 비율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1930년대에는 1.37:1, 60년대에는 2.35:1, 80년대에는 1.85:1로 구성함으로써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는 시대 전환에 기본적인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순서에 압박받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다만, 현대 사회 영화 비율에 비해 좌우가 좁기 때문에 다소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배경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샷이나, 여백을 많이 두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색의 대비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존재를 부여하고, 각종 소품들을 활용해 인물의 가치관과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은 기존 영화들도 자주 사용하던 연출 방법이다. 다만, 웨스 앤더슨 감독은 더 디테일하고 치밀하게 설계함으로써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영화 속으로 은연중에 빠져들게 만든다. 완벽한 미장센의 향연과 강박증을 의심케 하는 감독의 연출은 놀랍고도 소름이 돋는다. 대칭구조만 보더라도 철저하게 각이 잡혀있는 데다가, 소품과 도구 하나하나마다 배치 위치와 카메라와 맞춘 높이 등 섬세함이 돋보인다. 영화의 연출이나 구도가 가진 의미를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의식하지도 않은 채 홀린 듯이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하는 기법들은 영화가 가지는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색감이나 촬영만큼 스토리도 매혹적이긴 하다.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누명과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설정이 다소 진부하긴 하지만 이만큼 매력적인 클리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미스터리 모험물이라고 해서 으스스한 분위기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매료시키는 코미디 요소들도 영화 전반적으로 적절히 배치해놓음으로써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덜 한 편이다. 생각보다 놀랬던 점은 간혹 드러나는 장면 연출이 굉장히 원색적인데 손가락이나 목이 잘려 피가 튀거나, 성행위를 연상시키거나 하는 장면들이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 여러 번 등장한다. 지루한 전개인가 싶어 넋 놓고 있다가 당할 수 있다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초반에는 지루한 면이 있고, 중반부까지 흐름을 읽을 수 없는 다소 복잡한 불편함이 있지만,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속도감이 붙어 부담 없이 넘겨볼 수 있도록 스토리를 구성했다. 다만, 기승전결 중 전과 결 파트가 지나치게 허무한 감이 있다. 밀당없이 당기기만 하다가 영화가 끝나버린 기분이라 아쉽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미장센과 연출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호'의 평은 피한 듯하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지만 아마 '향수'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액자 속 액자식의 구성을 따라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스토리 또한 아마 '과거'를 이야기하며 전해져 오는 향수에서 오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한 제로 무스타파(토니 레볼로리 분)의 '내 생각에 그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졌네.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의 말처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향수는 결국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입을 거쳐오며 만들어진 이야기이고 그 안에 투과되는 진짜 삶은 현대에 존재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각함으로써 허상이 아닌 현실에 살아가기를 바란 게 아닐까 싶다. 때문에 영화 속, 향수의 허상을 벗어난 진짜 그리움을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은, 사랑했던 아가사(시얼샤 로넌 분)와의 실존하는 기억만을 추억할 수 있는 제로 무스타파뿐일 것이다.
클래식하고도 세련미가 넘치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오래간만에 눈이 즐거운 영화를 봤다. 앞서 말했지만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시선을 빼앗긴 채로 영화를 봤다. 다른 일을 하면서 영화를 보려고 해도 사람을 매혹시키는 장면들로 시간을 빼앗는 감각적인 영화이면서, 동시에 집중해서 보면 볼수록 뜻을 알 수 없는 호기심 가득한, 말 그대로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색감으로 시작했지만 영화 속 바니쉬 향수만큼이나 깊은 향을 남긴 영화. 여담이지만, 영상을 공부하는 나로선 이처럼 반가운 영화가 또 없다. 구도나 기법에 대해서 어떻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고 하는지,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짜낼 때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마지막으로 우스꽝스럽고 키치 한 감성 속에서도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영화였다. 부담 없이 보기엔 지루한 감이 있지만, 미스터리하면서도 몽환적인 극 전개를 좋아한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추천하게 될 것 같다.
사진 출처 : <The Grand Budapest Hotel>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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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 끝나지 않을 운명적 사랑에 대한 믿음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뻔하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늘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플레이 리스트에는 왜 예전에 즐겨보던 작품들뿐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저 재미있게 보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게 해주었던 로맨틱 코미디만의 몽글몽글함이 이제는 장르적 쇠퇴를 맞이한 것일까?
할리우드 또한 시대별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1930년대 계급 차이를 극복하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스크루 볼 코미디를 시작으로, 50~6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앞세운 관습적인 역할을 지나 90~2000년대 전문직 여성까지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점도 있는데,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업적 경력에도 언제나 실수를 남발하고 꼭 위기 상황에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며, 사회적 성공과 반대로 연애의 부재로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자 취향을 맞춰주는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며 언제나 파트너의 행동에 맞춘 쿨한 매력을 겸비한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평한 관계를 이상적으로 그려나갔으니 양산형 영화가 쏟아지는 흐름에 갈피를 잃고,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PC 요소들의 대두되며 더욱 괴리감이 생겼으리라.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치부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일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사랑과 운명을 믿고 싶다면 꼭 기억해 달라고 언급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뉴욕 타임스와 에스콰이어의 기자이자, 에디터로 활동했고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며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노라 에프론이다. 인간의 소통에서 비롯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들어 가는 두 사람의 운명적 이끌림을 통해 사랑의 힘을 전하며 관객의 감정적 동조를 일으킨다. 시대가 흐르며 여타 장르들과의 혼재를 통해 다양한 변주로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로맨스가 유행되었지만, 그때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판타지에서 만족감과 감동을 안긴다. 어쩌면 남녀 관계와 사랑에 대해 가벼워진 사회 분위기에 운명은 고리타분한 올드 스타일일지도 모르지만,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로맨스 코미디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즐거운 무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참 낭만적인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이끌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점에 대해 노라 에프론이 남긴 한마디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정확하게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지만, 우스갯소리를 덧붙여 정작 본인의 카피는 언제쯤 나올지 몰랐던 것 같다. 대표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 대부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할 남녀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설렘을 다루며 빠져들 수밖에 없는 멜로/로맨스를 선보였다. 특히, 말장난 섞인 가벼운 하위 장르로 여겨졌던 로맨틱 코미디에서 알면서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을 통한 하나의 형식적 법칙으로 정립하며 시대를 대변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파워우먼으로 꼽히게 된다.
대체로 뻔하고 명확한 형태로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과정에도 오히려 관객이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로 전환시키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매력을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통해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표현한다. 이 같은 전개는 고전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과도 같은 맥락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비틀며 시대상을 반영한 노라 에프론식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난다. 운명에 대한 믿음을 유쾌하면서도 절절한 고백으로 이어가며 아직도 그녀의 작품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도 될 근사한 낭만으로 가득 찬 사랑의 기억을 머물게 만든다. 현실에 존재할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를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추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①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년 발표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대화들이 즐비한 고전적이고 익숙한 스타일인 동시에 노라 에프론이라 각본가로서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정립한 첫 히트작이다. 두 사람이 이어지기까지 12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고, 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제2의 연인’ 속 결혼 전을 보는 듯한 전개를 보인다. 1977년 봄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졸업과 함께 직장이 있는 뉴욕으로 우연히 동행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라는 결론이 날 수 없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고 서로를 별종이라 칭하며 헤어진다. 몇 년 뒤, 각자의 이별과 이혼을 통보받은 시기에 운명처럼 재회하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은 늘 해리와 샐리 주변을 맴돌았고, 그저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라는 선을 긋고 다가가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스킨쉽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첨예하고 장황한 설명은 지칠 법도 한데, 결국 헤어지기 싫다는 애증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보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으로 즐거움을 준다.
재치 있는 각본과 별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로맨스는 아니지만,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따뜻하고 포근한 케미스트리는 설렘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견고히 하고, 사소한 단점 하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성장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오랜 친구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연인이 된다는 뻔한 전개와 뻔한 결말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 평범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가 5년 공백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노부부(연기자들) 이야기들이 들어간 부분은 이런 삶의 진리를 전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처음 만났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짧지도 길지도 않게 말해주며 각자의 사연들을 통해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에 진정성 있는 현실을 입힌다. 마치 해리와 샐리에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인생의 평범함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노라 에프론은 보편적인 삶 속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들과 운명적인 상황들로 극적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관객에게 영화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카츠 델리’ 식당에서 맥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슴’이라는 잊히지 않을 명장면은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당시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스탠 바이 미’로 명장 반열에 오른 로브 라이너의 창의적인 연출력과 ‘아리조나 유괴사건’, ‘빅’ 등의 촬영 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 등 독특한 세계관을 펼친 베리 소넨필드가 의기투합해 빛났던 재능꾼들의 젊은 시절이리라 생각된다.
②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뒤 1992년 ‘행복찾기’로 감독까지 데뷔한 그녀는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를 발표한다. 극 중 여주인공 애니가 매일 밤 보며 대사까지 외우는 1957년 ‘러브 어페어’에서 영감을 받아 쓴 각본을 바탕으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을 믿으시나요?’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풀어헤친다. 이후 ‘유브 갓 메일’에서도 빛나지만, 남녀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에 대한 설정에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감성을 품고 있다. 지금은 앱으로 간소화까지 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 수천 마일이 떨어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적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실의 빠져있는 아버지 샘을 위로하려는 아들 조나의 발칙한 사연으로 시작된 운명의 장난은 매일 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진심이 담긴 그의 행복한 추억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애니의 마음을 강타해 공감 어린 눈물을 흘리게 하며 결혼을 앞둔 약혼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운명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이별과 상처가 되는 순간이 교차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아도 이상하지 않지만, 해리와 샐리가 서로에 대해 고민한 많은 시간만큼 여기에서도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는 세 번의 장면들로 에프론은 운명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 같은 장치는 마지막 엠파이어 빌딩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으로 감독의 확신에 찬 답변으로 보인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바라보는 방식은 실제 마주하지 않기에 오롯이 배우들이 홀로 표현하는 감정선에 집중한 채 과거 50~60년대 로맨스 드라마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소통으로 인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애틋함을 더한다. 라디오라는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사연을 주고받고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느리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향수들이 불현듯 찾아온 운명이 보내는 신호를 믿고 싶은 마음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운명의 사랑에 대한 답변을 나타내는 듯하다. 1990년 ‘볼케이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을 보고 캐스팅한 것이겠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의 확신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연기는 마법과 같은 사랑을 향한 9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을 짙게 한다. 셀린 디온과 클리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When I Fall In Love’, 태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또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감성 한 스푼을 더해준다.
③ 1998년 <유브 갓 메일>
전작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애틋함에 안타까웠던 것인지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 컷에 담아 1998년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로 찾아온다.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독립서점처럼 보이는 길모퉁이 서점과 웹서핑 초기 시절의 이메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사랑스러운 상황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문학과 뉴욕을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진 뉴요커 조와 캐슬린이 우연히 채팅룸에서 만나 친분을 쌓지만, 현실에서는 앙숙인 대형 체인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과 길모퉁이 서점의 사장으로 빚어지는 갈등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담는다. 동생 델리아와 함께 집필한 이번 작품에서 자매의 문학적 소양 차이를 두 캐릭터에 녹여낸 듯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조지 버나드 쇼의 ‘캠벨 여사와의 서신 교환’, 영화 대부 등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급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향과 성격임을 남녀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작지만 예쁜 서점을 지키려는 감성적인 캐슬린과 따뜻한 마음에도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차갑게 비치는 조의 설정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쫄깃한 밀당을 더욱 마음 졸이게 한다.
익명에 숨긴 채 서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행동과 매번 울리는 ‘You've Got Mail!’의 알림은 그들이 이미 서로를 알고 미워하지만 깨닫지 못했다는 상황을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결말에 이르러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전환된다. 서로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들이 쌓여 그들이 마주한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감독의 운명론적 이야기는 컴퓨터를 켰을 때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던 ‘You've Got Mail’ 알림음과 ‘당신이길 바랐어요’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다시 한번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소소한 일상, 누구나 해보는 고민들, 사람들 간의 따뜻한 대화들이 담긴 섬세한 묘사들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질지 모르는 지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중간에 놓인 감독만의 감성을 품는다. 늦게 데뷔해 단숨에 최전성기에 오른 감독으로서 뉴욕을 향한 자신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가장 뉴욕다운 풍경으로 담아낸 실력,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더할 나위 없는 호흡, 꿈같은 사랑이 전하는 특유의 안락함은 이 작품을 최고는 아니더라도 명작으로 기억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운명과 뉴욕을 사랑한 뉴요커
우리가 사랑한 노라 에프론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통적으로 뉴욕이 배경에 꼭 들어간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로 운명을 믿는 마음을 담아낸다. 조금 지나간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일명 ‘자만추’라는 정해진 소개팅이나 맞선이 아닌 남녀 주인공 모두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연애를 추구한다. 지고지순한 순애보 끝에 다다른 일방적인 구애가 아닌 N, S로 분리된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말한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서도 일어날 수 있는 남녀의 스파크를 캐치해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믿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운명을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스스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내세우는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시나리오 데뷔작 ‘실크우드’에서는 진실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조 대표를, ‘제2의 연인’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상처를 빗대어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커리어 우먼을, 첫 연출 데뷔작 ‘행복찾기’(1992)에서는 판타지 속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을 기다리던 공주가 아닌 세상과 타협하기보단 자신에 대한 믿음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과 이에 얽힌 운명적 상대를 그린다. 보수적인 90년대의 분위기에서 억압되었던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행동의 제약을 깨부수며 신여성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가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맥 라이언의 등장이다. 초창기 두 작품의 시나리오로 연달아 만난 메릴 스트립도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2의 연인’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앞서 언급한 ‘행복찾기’에서 싱글맘 코미디언을 연기한 줄리 카브너 역시 큰 전환점을 만들지만, 노라 에프론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연달아 흥행한 세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아 완벽한 페르소나로 거듭나며 배우와 감독으로서 두 사람 모두가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시절 맥 라이언은 지금도 정석이라 불리는 숏단발컷을 유행시켰고 헐렁한 오버사이즈의 놈코어 룩으로 편안함과 러블리함, 커리어 우먼의 세련미를 동시에 추구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오죽했으면 ‘맥 라이언이 노라 에프론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 패러디가 생겼을 만큼 그저 귀엽기만 했던 한 여배우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열었다. 지금의 애인이 진정한 사랑일까라는 고민을 늘 품는 주인공에 어울리는 왠지 모를 나약함과 몽상적인 상상이 어색하지 않은 귀여움은 많은 이들을 판타지에만 존재할 것 같은 운명으로 초대했고 감독이 원하는 사랑은 인생이고, 인생은 판타지라는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고전 로맨스에 대한 적절하고 탁월한 활용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카사블랑카’와 우디 앨런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를 효과적으로 배치했으며, ‘유브 갓 메일’에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 리메이크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에서 보이는 허영심에 비친 비현실적인 요소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짜이지만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첫 작품 ‘실크우드’에서는 기자였던 과거 시절처럼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들었고, 이혼 문제를 다룬 ‘제2의 연인’에서는 사회적인 시선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토로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내 프레임을 씌우고 언제나 자신을 반영시킨 캐릭터를 통해 희망적 판타지의 결론을 통해 웃음과 설렘을 선사한 것이다. 남녀의 성격묘사에서 서로를 공격해 무너뜨리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내는 묘미는 이러한 경험적 요인들이 작용해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든다. 그리고 감독에 이르러 공통적으로 내세운 운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주인공의 만남에 마법 같은 느낌을 부여해 대중을 만족시키는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클래식 할리우드의 느낌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별은 영원히 반짝인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는 지났어도 한참 지났을 요즘이다. 주인공 커플들이 재미를 선사하려고 온갖 멜랑꼴리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로맨틱 홀리데이’, ‘500일의 썸머’, ‘비포 선라이즈’, ‘노트북’,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정확히 로맨틱 코미디로 한정 지었을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큰 성과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다시 불길을 살리려 하지만, 지금 영화 업계에서 슈퍼히어로물이나 액션 영화 등 속편, 스핀오프, 리부트라는 명명하에 흥행하면 좋다는 식으로 찍어내는 제작사의 방식도 현실적 어려움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볼만한 작품이 아니면 극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진 현실과 DM으로 고백과 이별을 전하는 세대들에게 있어 과거 로맨틱하고 희망적이며 사랑스러운 운명의 만남으로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며 감정을 이입시켰던 전형적인 로맨스 방식은 이제 꿈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이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감성과 레트로라는 문화를 이끌며 다양해진 OTT 서비스를 통해 고전 멜로/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를 접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 점에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 그러고. 난 믿고 있어’라는 명대사처럼 시대가 변하며 뻔한 로맨스라 여겨지는 지금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보는 영화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고 저장되며 로맨스 하면 TOP 10에 꼽히는 건 희망적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로맨스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첫사랑처럼 다가온 운명의 두근거림과 가슴 뛰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감성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와 세대의 취향은 시시각각 바뀌어 갈지 몰라도 최소한 낭만은 계속 이어지고,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또 다른 노라 에프론의 등장을 희망하며 사라지지 않을 로맨틱 코미디의 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시작될지 모를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칼럼식으로 써봤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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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소방관>이 개봉 2주 만에 1위를 탈환하며 예상외 선전을 펼쳐 화제입니다.
지난 주말인 13~15일, 개봉 첫 주말 관객 수(56만 명)보다 8만 7천여 명 증가한 65만 명을 불러들이며 1위를 기록했습니다. 누적 관객 수 170만 명을 달성한 <소방관>은 금주 내로 200만 명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 기부 공약을 밝혀 화제가 된 <소방관>은 손익분기점 달성 시, 약 3억 원을 국립소방병원에 기부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과연 손익분기점인 250만 명까지 달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모아나 2>와 <위키드>가 굳건하게 순위를 지키며 순항 중인 가운데 스파이더맨의 숙적 크레이븐의 이야기를 다룬 <크레이븐 더 헌터>가 <글래디에이터 Ⅱ>를 밀어내고 3위에 올랐습니다.
애런 존슨 주연의 <크레이븐 더 헌터>는 소니의 스파이더맨 빌런 유니버스의 마지막 작품으로 주목받았지만, 1,1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혹평을 받았던 소니의 <마담 웹>보다도 낮은 오프닝 스코어일 뿐만 아니라 1억 1,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감안하면 대규모 손실이 예상됩니다.
<크레이븐 더 헌터>는 죽음의 문턱에서 맹수의 초인적인 힘을 얻고 살아 돌아온 크레이븐이 무자비한 복수의 길을 택하며 거침없는 사냥을 펼치는 액션 블록버스터이며, 국내에서는 2025년에 개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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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뮬란, 뮬란 (2020) - 같은 제목, 다른 완성도
파씨 가문의 외동딸 파 뮬란은 어느 날, 훈족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인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뮬란은 아버지의 갑옷과 칼, 그리고 남장을 하여 대신 전장에 참가한다. 그런데 파씨 가문의 조상들이 수호신 무슈를 불러 뮬란과 동행하게 만들고 귀뚜라미 복동이까지 뮬란과 함께 하게 된다. 그렇게 뮬란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자인 것을 숨기고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과정을 그린 디즈니의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일단 확실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크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1시간 20분 동안 굉장히 몰입을 하면서 관람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매우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적 관점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결국 [뮬란]이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운명은 뿌리쳐라.'라고 본다. 작중에서 그저 신붓감으로 취급받았던 뮬란이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전장에 나가는 모습은 현대에서도 자존감이 낮은 탓에 쉽게 거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해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라딘]의 자파나 [라이온 킹]의 스카와는 다르게 큰 매력이 없는 빌런 산유와 다른 디즈니 영화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뮤지컬 넘버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자는 중반부까지는 잘 나오다가 후반부에는 아예 없다시피 해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파씨 가문의 외동딸 파 뮬란은 어느 날, 훈족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인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뮬란은 아버지의 갑옷과 칼, 그리고 남장을 하여 대신 전장에 참가한다. 그러나 뮬란의 곁에는 말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사조가 전부였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힘을 숨기며 생존해 간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과정을 그린 디즈니의 실사화 리메이크다.
일단 굉장히 실망하면서 봤다. 재미가 아예 없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장점을 찾기 힘든 망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영화가 매우 실망스러웠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작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뮬란의 설정부터가 영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뮬란이 중국 무협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를 써버린다... 심지어 뮬란이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지 않고 기 하나로 모든 걸 끝내버린다. 이렇다 보니 원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성장 스토리가 사라졌고, 개연성마저 증발한 망작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감초 역할을 해주었던 무슈와 복동이가 사라졌고, 액션신은 형편없고 연기도 똥이어서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물론 디즈니답게 비주얼과 최소한의 재미는 전달한다. 하지만 원작을 모욕하고, 완성도마저 형편없는 이 영화를 왜 봐줘야 할까? 그나마 [라이온 킹] 같은 재탕은 아니었다는 게 유일한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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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의 형태 - 절대 매꿔지지 않는 상처
본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줄거리
따분한 것은 질색인 아이 '이시다 쇼야’
어느 날, 쇼야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자신의 따분함을 가져가 줄 소녀 '니시미야 쇼코'가 전학을 오게 된다.
니시미야는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으로
쇼야의 수 많은 장난에도 웃으며 싱글벙글 웃으며 넘어간다.
하지만 쇼야의 심한 장난에 결국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쇼야는 외톨이 신세가 되고, 쇼코가 당한 그대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 사건 이후,
6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쇼야는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없는 하루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쇼코를 만나야겠다 다짐하며, 만나게 된다.
"나는 네가 정말 싫었다.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진…"
예고편
총 평
★★★★ 8.5/10.0
짧은 리뷰
당시 같은 해에 상영한 '너의 이름은.'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였지만,
진짜 원석은 나중에 발견되듯, 이 작품이 그러했다.
‘너의 이름은.’은 얕고 묵직한 한방이라면
목소리의 형태는 깊고 적절한 한방이다.
영화 '너의 이름은.’이 작화가 뛰어나고 동일본 대지진에 관련하여 작품을 이루어 냈다면,
이 작품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지만 다들 묵인하는 학교폭력이란 흔하다면 흔하지만 매우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흐릿한 분위기의 무거운 영화가 아닌, 잔잔한 듯한 분위기의 무거운 영화이다.
이 영화는 타 영화와 달리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를 표현할 때, 시청각적 변화를 주어서 과감한 연출도 시도하였고,
그러한 연출은 이 영화를 더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영화를 진행하는데에 초점을 쇼야와 쇼코 그리고 우에노 이렇게 세명한테만 맞춰서
나머지 인물들의 사건들은 전부 잘려나갔다.
원작을 본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것이라 셍각한다.
-애니메이션 이라는 장르의 한계성을 극복한 연출-
애니메이션 이라는 장르는 직접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보다 더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대부분 사용하는 구도와 촬영기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흔히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 사용하는 카메라 기법과 연출을 사용했습니다.
주로 캐릭터의 감정과 심상을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이 영화에선 몸짓과 행동, 주변사물과 다양한 촬영기법으로 표현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서 뮤지컬이나 연극에서나 주로 사용할 법한 방식을 채택한 것은 매우 이래적이며,
이정도로 준수하게 나온 것은 더 이래적입니다.
그러면서 위의 연출들이 부조화가 아닌 매우 딱 선을 지키는 절제를 잘 하는 연출이였습니다.
너무 투머치가 아닌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잘 사용해서 더 보기 좋았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연출 중 하나인데,
학교폭력 가해자 라는 인식이 찍힌 쇼야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끊은체 숨죽이고 지내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인물들의 얼굴에는 ‘X’ 표시가 되어있는데, 자신이 마음을 닫고 지낸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 정말 참신했다.
-무거운 주제를 끌고가는 잔잔한 전개-
학교폭력에 관한 영화를 몇개 뽑아보자면 한공주, 파수꾼 등이 있는데, 대부분 분위기가 암울하다.
사건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모습을 보이며, 배우들은 그러한 불안함을 연기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달리 '니시미야'는 화를 절대 내지 않는다.
이 부분을 현실에 대입해서 보면, 실제로 학교폭력을 당하는 주변을 보면,
대게 소심하거나 더 큰 트러블이 싫어서 속으로 앓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는 이런 모습을 너무 잘 표현했다.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느낌으로 전달 할 때, 미화하거나 너무 과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집어넣어서
영화를 어거지로 끌어갈 수 있는데,
전혀 그러지 않고 어린 아이에게 한걸음 한걸음 걷게 하는 듯 만든 전개는 정말 좋았다.
-뛰어난 더빙-
쇼코라는 캐릭터의 더빙은 정말 일품이였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말을 못해 끙끙대는 그런 느낌을 이렇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더빙은 손에 꼽을거라 생각했다.
말을 몇 마디 하는데, 어버버 하면서 말을 저는 모습은 진짜 인상적이였다.
그리고 쇼야의 연기도 일품이였는데,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옛날 친구이자 자신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찍힌 순간
가장 먼저 등을 돌린 친구를 보며, 다시 자기 자신을 추궁하는 모습을 하는 연기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주변 묘사-
진짜, 이 영화에서 감탄 한 것중 하나가 현실에 있을 법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학교폭력을 하는 쇼야 때문에 화가 나는게 아니라,
꼬리자르기 당해진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도 현실의 반응과 똑같기 때문에 더 화가나는 영화였다.
위선적인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리얼했다.
대게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학교폭력을 그저 골치아파 하며, 귀찮아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너무 잘 나타났다.
자신이 속한 반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볼 수 있는데,
학교폭력에 가담 했지만, 자신이 한 일이 걸리지 않은 아이가 오히려 역지사지의 태도로
처벌받은 아이를 먼저 따시키기 시작한다.
그게 '카와이'와 '우에노'라는 캐릭터에서 너무 잘 들어나는데,
카와이는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찬 아이이며, 후반에는 쇼야를 추궁하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라고 하며
반에서 쇼야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큰 소리로 퍼트려 골탕먹이려 들고
니시미야와 함께 있을 때는 가식과 함께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그러면서, 우에노가 과거에 한 짓은 직접적인 것이고 자신은 하지 않았다고 합리화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부분이 정말 현실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쉬운 상영시간-
원작을 2시간 안에 담는건 너무 무리였지만,
중요 비중의 캐릭터들의 분량과 핵심까지 다 잘라먹은 것은 좀 아쉬웠다.
원작 만화책은 7권의 분량인데, 그래서 주인공의 가족사와 같은
굵직하지만, 내용전개에 완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다 잘린 것이 아쉬웠다.
차라리 상중하로 나눠서 내거나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러닝타임을 조금만 더 늘려서, 각본 수정을 좀만 더 디테일하게 진행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아마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상도 충분히 노려볼만 했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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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펜하이머>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모든 것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독일 물리학자들이 우라늄의 원자핵을 쪼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를 비롯한 미국 물리학자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원자폭탄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국 정부 역시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로브스 대령'(맷 데이먼)을 책임자로 삼고 신무기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을 추진한다.
하지만 맨해튼 계획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로브스 대령은 오펜하이머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인 로스 앨러모스에 연구소를 짓고 가능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과거 공산주의에 경도됐던 오펜하이머 이력이 재조명되고, '원자폭탄의 아버지'는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공격에 직면한다.
크리스포터 놀란 필모의 정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기영화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쓴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스크린에 옮겨 미국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다뤘다. 영화는 특히 그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과정과 전후 수소폭탄 반대 운동을 펼친 뒷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오펜하이머>는 개봉 전부터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CG 없이 트리니티 실험의 핵폭발 장면을 재현했다고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1달 전에 개봉한 영화 <바비>와 '바벤하이머' 밈으로 얽혀 이슈였고, 해외에서는 <바비>와 함께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다. 워너 브라더스가 아닌 유니버설 픽처스가 처음으로 놀란 영화를 단독 배급한 점도 화제였다.
사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3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하는 작업은 어렵다. 원작 평전은 심지어 오펜하이머의 삶만 다루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은 들었을 사건과 정치인, 과학자의 이름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펜파이머>는 더욱 놀랍다. 놀란의 스타일, 기술, 직관, 통찰력이 한 데 모여 모순적인 물리학자의 일생을 긴장감 넘치게 재구성했기 때문. 달리 말해 <오펜하이머>는 영화감독 놀란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자폭탄 같은 영화
<오펜하이머>는 기본에 충실하다. 주인공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사실 그의 내면과 감정선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공산주의에 경도된 좌익 과학자.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미국의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지휘한 유능한 행정가. 자기 손으로 만든 신무기를 경계하는 야심 찬 정치인. 모순적인 세 인물이 한 사람이니 당연히 어색하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마치 원자폭탄처럼 재구성한 놀란의 각본은 그의 내면을 유려하게 보여준다. 핵분열물질의 원자핵에 중성자가 충돌하면 원자핵은 분열되고, 더 많은 중성자가 다른 원자핵과 충돌해 새 핵분열이 발생한다. 원자폭탄은 이 연쇄반응에서 생긴 에너지를 활용한다.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트리니티 핵실험이라는 목표까지 거침없이 질주한다. 관객의 시선을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 헌신하는 오펜하이머에게 집중시킨다. 그러고 나서는 트리니티 실험이라는 클라이맥스가 유발한 연쇄적인 폭발로 시선을 돌린다.
미국 정치권과 과학계는 수소폭탄 개발을 두고 갈등을 빚는다. 오펜하이머의 주변인도 아군과 적군으로 갈라져 계속해서 충돌한다. 오펜하이머는 소련의 스파이로 의심받아 공격당한다. 놀란이 처음 1인칭으로 작성했다는 각본은 이 지점에서 빛난다. 트리니티 실험 전까지는 맨해튼 계획이 주인공이었다면, 이제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이 주인공이 된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양심의 가책, 매카시즘과 스트로스에게 시달리는 고통 등 오펜하이머의 감정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원자폭타과 같은 구조는 절제미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한 직후, 영화는 순간적으로 완급을 조절한다. 원자폭탄이 터질 때 극장은 순간적으로 고요해진다.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할 무기를 개발했다는 기쁨에 심취하지 않는다. 인류가 다룰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힘을 손에 넣은 두려움이 정적 속 독백을 통해 전해진다. 그 덕분에 관객은 오펜하이머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다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강당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흥분한 사람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는 폭탄 폭발음과 오버랩된다. 이 장면은 원자폭탄으로 인한 흥분과 열광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그가 받은 충격과 죄책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단번에 납득시킨다. 원자폭탄 희생자 시신을 오펜하이머가 밟는 환상이 나오기도 전에, 관객은 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날 때, 그의 선택 중 이해되지 않는 결정이 없을 정도다.
양자역학의 인문학
<오펜하이머>는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펜하이머는 논란의 인물이었다. 그가 소련의 스파이가 아니었다고 미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복권한 게 불과 반년 전 일이다. 영화는 이 모순적인 물리학자에게 스스로를 변론할 기회를 준다. 동시에 관객이 스스로 그를 판단할 공간도 열어준다.
핵심은 컬러와 흑백의 전환이다. 오펜하이머의 시점에서 흘러가는 'Fission(핵분열)'이라는 제목의 파트는 컬러로, 스트로스가 중심이 되는 'Fusion(핵융합)'이라는 이름의 장면은 흑백으로 묘사된다. 원자폭탄의 원리인 '핵분열'은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 과정을 보여준다. 수소 폭탄의 원리인 '핵융합'은 그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다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연출은 마치 양자역학의 인문학적 해석 같아 보인다. 양자 역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관측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전자나 빛이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중첩되어 있는 두 가지 상태는 관측을 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한 가지 성질로 표현이 된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관점에서 주인공을 관측한다.
애국심이 투철한 미국인이지만 동시에 공산주의자이고,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지만 반핵 운동의 중심에 선 정치인이 있다. 그는 자신이 위치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영화는 그의 시점에서 그 모순점을 이해시키고, 타인의 시점에서 그 역설과 중첩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을 비춘다. 인간이 그 자체로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인지, 그렇기에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상기시킨다. 이는 제목에 걸맞은 접근법이다. 오펜하이머는 본래 양자 역학 연구자였으니까.
놀란의 <소셜 네트워크>
그래서일까? <오펜하이머>는 마치 놀란의 <소셜 네트워크> 같다. <소셜 네트워크> 역시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모아놨기 때문. 저커버그의 시점과 동업자였던 윙클보스 형제 및 왈도 세브린의 시점을 충돌시킨다. 두 영화가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법도 흡사하다. <소셜 네트워크>는 법원 조정 과정으로, <오펜하이머>는 청문회로 서로 다른 시점의 충돌을 보여준다.
<소셜 네트워크>가 받은 찬사를 생각하면, <오펜하이머>는 작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역량을 재증명하는 장이기도 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놀란의 통찰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므로. 그간 놀란은 캐릭터를 플롯의 장치와 도구로만 사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르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모순을 통찰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조연 캐릭터가 여전히 수단처럼 느껴지기는 해도 이번만큼은 놀란이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놀란의 트레이드 마크
그러면서도 놀란은 자기만의 스타일과 색채를 잃지 않았다. <덩케르크>처럼 <오펜하이머>도 시간대가 세 개다.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에서 맨해튼 계획까지, 또 그 이후로 이어지는 시간대가 주 재료다. 1954년 원자력 협회의 오펜하이머 청문회와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 청문회는 양념이다. 특히 두 시간대는 철저히 조각난 상태로 삽입된다. 주요 사건에 따라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 형태로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을 비트는 연출과 구조는 주제의식과 긴밀히 연관된다. 오펜하이머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 붙임으로써 과학자의 책임을 논할 공론장을 연다. 통상적으로 과학자는 신기술의 개발자로만 인식된다. 그들의 역할은 기술을 만드는 데서 그친다고 여겨진다. 오펜하이머도 그랬다. 그는 원자폭탄의 오남용과 악영향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건 과학자의 몫이 아니라고.
하지만 자기가 바꾼 새로운 세상을 목도한 뒤로 그는 달라진다. 과학자에서 행정가, 정치인으로 변한다. 새 기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앞장서야 한다고 확신한다.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즈(Thomas P. Hughes)의 표현대로 이제 그는 '시스템 건설자'(system builder)가 되려 한다. 그는 사회 구조와 관계망 안에서 신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원자력을 평화롭게 이용할 체계를 만들지 못했고, 수소폭탄의 개발도 막지 못했으며, 자기 자신의 삶도 지키지 못했다. 대통령을 설득할 만큼 신중하지 못했고, 앙심을 품은 정치인을 꺾을 만큼 영리하지 못했다. 마치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지만, 정작 자기 미래는 지키지 못한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처럼. 이렇게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로서, 기술자로서 성공했지만, 시스템 건설자가 되지 못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빛과 그림자를 가감 없이 들춘다.
SF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기 영화
이러한 맥락에서 <오펜하이머>는 외관과 달리 SF 영화 같은 면도 있다. 많은 SF 영화는 과학의 발달이 초래할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우려로 가득하다. 달리 말해 SF 영화는 과학에 근간을 둔 스펙터클을 통해 오히려 인간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는 통로나 다름없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SF 영화의 본질을 품고 있다. 영화는 만약 오펜하이머의 고뇌를 잊는다면, 그의 업적과 과오에서 현명한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손으로 전 세계를 초토시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설령 0에 가까운 확률이라 해도 인류가 세상의 파괴자가 되는 날이 멀지 않을 거라고.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정점은 멕시코에서 핵폭탄이 폭발한 순간이 아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킬리언 머피의 표정과 지구를 불바다로 만드는 핵 미사일이 교차되는 결말이 정점이다. 오펜하이머와 놀란이 입을 모아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경고를 가득 담고 있으니 뇌리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오펜하이머>는 테넷의 정신적 속편이자 프리퀄인 셈이다. <테넷>의 주된 플롯은 핵폭탄을 막는 미션이었고, 인류의 존속을 위한 현재와 미래의 전쟁이 시대적 배경이었으니까. 이는 SF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준 놀란스러운 착상이기도 하다.
모두가 좋아할 영화는 아니다
물론 <오펜하이머>는 호불호가 심하게 나뉠 영화다. 천 페이지 분량의 책을 영화화한 만큼 밀도가 높다. 책을 읽은 독자라면 놀란의 꼼꼼한 각본이 반갑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맨해튼 계획 이전의 오펜하이머의 개인사나 초기 생애에 관련한 내용이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도 낯선 영화다.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 대신 트리니티 실험을 기점으로 영화가 다시 시작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 친절한 영화도 아니다. 1930~50년대 미국 사회를 강타한 정치적, 국제적 이슈에 대한 배경 지식을 요한다. 갈 길이 바쁜 만큼 상세한 설명은 제공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기대에 비해 시각적 임팩트가 약하다. 블록버스터 영화다운 쾌감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그래도 배우 덕분에 진입장벽이 낮아지기는 한다. 우선 킬리언 머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놀란 사단 중 하나로만 알려졌던 그는 이제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증명했다. 명배우들의 향연도 인상적이다.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데인 드한, 라미 말렉, 플로네스 퓨는 앙상블을 이루며 머피 뒤를 단단히 받쳐준다.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니었다면 후반부는 힘이 빠져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몇몇 단점은 취향의 문제이지, 완성도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놀란이 의도한 방향성만 정확히 짚어 쫓아간다면 <오펜하이머>는 <인셉션>, <다크 나이트>, <덩케르크> 보다도 강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놀란이 그간 자기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준 스타일과 장점, 통찰력을 한데 모아 만든 폭탄 같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종합하면, 단언컨대, <오펜파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마스터피스다.
Outstanding 특출함
원자폭탄 섬광과 굉음으로 빚어낸 프로메테우스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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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배급사 [콘텐츠패밀리]와의 저작관 협의를 통해 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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