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3-09-15 20:12:18
[SICFF 데일리] 소심한 복수로 세탁하다
영화 '문승아 단편선' <빨래>
감독: 김혜진
배우: 문승아 外
러닝타임: 27분
가족사진을 찍는 날, 식구들 모두 흰 셔츠를 입기로 한다. 그런데 빨래 후, 혜수의 셔츠만 줄어들었다. 혜수는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집을 나선다.

혜수는 학교에서 가족사진을 찍어 오라는 가정통신문을 가져온다. 혜수네 가족은 세탁소를 운영한다. 혜수는 기대한다. 가정통신문을 덧댄 종이 아래 그녀의 가족사진은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오빠가 어릴 적 가족과 찍은 사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혜수는 성장하고 나서 옆에 붙어있는 사진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족이 운영하는 ‘백양세탁소’는 작지만, 단골손님도 챙기고, 배달도 다니며 부지런하게 운영하는 세탁소다. 워낙 바쁘게 지내다 보니, 가족들은 혜수에 관심을 쏟을 겨를이 없다. 혜수가 찾을 때마다 그녀의 부모님은 빨래 배달과 세탁 손질로 바쁘고, 오빠는 한창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그녀의 관심 밖에 있었다. 혜수는 가족들이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러던 중, 혜수는 자신이 가족사진 때 찍을 셔츠가 잘못 세탁되어 크기가 작아진 걸 목격한다. 혜수는 가족들을 추궁하지만, 가족들은 다들 서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망한 혜수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오른다. 바로, 가족들도 입을 셔츠를 작게 만들어 버리는 것. 혜수가 벌이는 작은 복수는 10대 초반이 가능한 귀여운 복수로 아이의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이후 사진관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작아진 셔츠를 불편해한다. 혜수는 자신이 한 작은 복수에 속으로 좋아하며 사진 촬영에 임한다. 불편한 걸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족들은 결국 꽉 끼는 셔츠를 벗고, 사진관에 대여할 수 있는 의상을 빌린다. 계획이 틀어진 혜수는 계속 셔츠를 입자고 주장하지만, 가족들은 투정으로 인식하고 그녀를 설득한다. 이내 혜수는 촬영 도중 사진관을 도망 나온다. 혜수가 원하는 것은 흰색 셔츠를 입고, 화목하게 찍는 가족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혜수를 비추는 클로즈업은 주로 옆얼굴이다. 옆얼굴은 혜수가 바라보는 피사체에 집중도를 높인다. 그녀가 갖고 있는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를 집중할 수 있다. 사진관에서 도망친 그녀는 집에서 빨래 바구니를 분풀이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애착 옷을 챙겨가지만, 이미 사진관은 문을 닫았고, 가족들은 사진관에서 대여한 옷을 입은 사진으로 정한 상태였다. 그녀가 입었던 셔츠를 마지막에 세탁기에 넣고 세탁하는 장면은 셔츠를 다시금 커지길 바라는 마음일까 아니면 점점 작아지며 완전히 사라지게 하고픈 마음일까 그렇지 않으면 오늘 있었던 기억을 지우고픈 마음일까.
상영일정: 9/15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9/13~9/20
Relative contents
-
- <그린 나이트>, 현실이 영화로 이행되는 과정
<그린 나이트>, 현실이 영화로 이행되는 과정
활짝 열린 사각의 창틀 너머를 관망하던 카메라가 그 배면에 잠들어 있는 주인공의 얼굴을 담기까지, <그린 나이트>의 도입부는 <이창>(알프레드 히치콕, 1954)의 그것과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두 영화의 카메라는 모두 누군가의 시점처럼 운용되다가 그 시점의 주체를 다른 차원의 것으로 전환시킨다. <이창>에서 건너편 아파트 내부의 은밀한 공간을 훑으며 관객의 ‘훔쳐보기’ 욕망을 자극하던 카메라는 돌연 휠체어에서 잠을 자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면서 해당 쇼트가 특정 인물의 시점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탄로한다. 이 쇼트는 다름 아닌 관객의 시점 쇼트였다. 그렇게 히치콕은 <이창>이 영화와 관계하는 관객의 관음증적 욕망을 다룬 메타 영화임을 드러낸다.
<그린 나이트>의 도입부에서 창틀 너머의 이름 모를 기사 부부와 가축들을 한동안 관조하는 쇼트는 마치 움직이는 그림을 감상하는 누군가의 시선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불현듯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까지만 해도 특정 인물의 뒷걸음질로 여겨졌던 쇼트는 후진의 움직임을 계속하면서 그 주체가 작중 인물이 아님을 밝힌다. 동시에 바깥의 세계를 투사하는 틀이 스크린 모양의 사각 창틀이라는 점을 넌지시 드러내며, 여자 친구의 물세례를 받고 번쩍 잠에서 깨어나는 주인공 가웨인의 모습을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다. 그렇게 카메라는 하나의 움직이는 그림(영화)처럼 표현된 예술 세계와 차가운 물의 성질을 즉각 몸으로 받아들이는 현실 세계를 연계하며 두 세계의 물리적 단절과 내적 긴밀함을 동시에 암시한다. 현실에서 예술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 세계를 흐릿하게 처리하며 온전한 현실로 돌아오는 카메라의 시점은 그런 점에서 감독 데이빗 로워리의 시점으로 읽힌다. 그리고 그 카메라가 투신하는 대상인 가웨인은 데이빗 로워리의 분신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린 나이트>에서 데이빗 로워리가 자신의 분신 가웨인을 경유하여 도달하려는 곳은 어디일까, 더 중요하게는 그곳에 가닿기까지의 지난한 여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가웨인과 녹색 기사, 현실과 영화
크리스마스 연회가 열리는 예배당에서 왕은 부패한 기사 가웨인에게 무용담을 들려 달라 요청한다. 처음에는 그저 친분을 쌓기 위함인 듯 보였던 이 요청은 이내 원탁의 기사들을 두고 “무용담 하나 없이 어울려선 안 된다.”라고 조언하는 왕비의 말을 통과하면서 “무용담 없이 왕위 계승은 꿈도 꾸지 말라.”라는 일종의 압박이자 명령으로 변모한다. 이로써 가웨인은 왕이 되기 위해 무용담이 필요한 현실적 자리에 머문다. 그는 방탕한 성적 유희로 얼룩져 있는 남자이고, 권력을 노리는 탐욕가이면서 한편으론 엄마와 여자 친구를 사랑하는, 남루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현실적 존재이다. 그런 그의 앞에, 즉 가웨인이라는 현실 앞에 나무 형상의 초현실적 존재 ‘녹색 기사’가 등장한다. 가웨인의 현실성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녹색 기사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녹색 기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 연회가 열리는 예배당 시퀀스의 포문을 여는 주체가 카메라라는 점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카메라는 아무도 없는 예배당 앞에 서서 수직의 각도로 눈발이 흩날리는 하늘을 잡은 채 예배당 입구로 들어선다. 입구에 다다른 카메라가 내부의 어둠 속으로 점차 들어갈 때, 계단식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 문틀로 인해 그 움직임은 마치 깊은 심연 속으로 하강하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어둠은 기준점이 되어 이전의 쇼트와 이후의 쇼트를 분리하면서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선언한다. 이에 조응하듯 곧이어 문이 열리고, 카메라에 붙잡힌 가웨인은 예배당 상층부에 뚫린 원형의 창에서 사선 아래 방향으로 내려오고 있는 푸르고 투명한 빛을 바라본다. 빛은 원탁의 중심부를 성스럽게 비추는데, 이 형상은 마치 스크린에 투영되는 영사기 렌즈의 광원처럼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원탁의 중심부는 그 빛이 가닿아 무대화된 스크린이다. 그리고 이 무대 위에 출연하는 녹색 기사는 스크린에서 퍼포먼스를 행하는 영화적 존재, 혹은 영화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녹색 기사가 자신과 겨뤄 승리한 자에게 본인이 당한 만큼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 똑같이 되갚아 준다는 황당무계한 목 베기 게임은 영화와 현실 간의 역학에 관한 메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가웨인은 이 게임에 참가하여 녹색 기사의 목을 내려치고, 일 년 뒤 그가 기거하는 녹색 예배당으로 여정을 떠난다. 이로써 남루한 ‘현실’이 성스러운 ‘영화’로 다가가는, 그 긴 이행의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네 가지 시험
여정을 떠난 가웨인은 전쟁으로 참혹하게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목도하고, 머지않아 정체불명의 소년병과 조우한다. 소년병은 가웨인에게 다가가 전쟁으로 두 친형을 잃은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가웨인은 그의 신세한탄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피폐해진 전장을 무감하게 지나치던 가웨인은 소년병이 녹색 예배당이 있는 북쪽 길을 안내하자 그제야 그에게 관심을 준다. 다만, 그것은 소년병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이 아니라 녹색 기사를 만나야 하는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의 산물이다. 결국 가웨인은 길을 알려준 소년병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지 않은 죄로 그의 무리에 포박당하고 소지품을 전부 빼앗긴다.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딘가 이상하다. 왜 소년병은 처음부터 강도 무리를 끌고 와 가웨인을 포박하지 않았을까. 만일 허허벌판이 아니라 우거진 숲에서 범행을 계획한 것이었다 해도 구태여 작은 친절을 바랄 필요가 있었을까. 또한 가웨인이 그것을 베풀지 않았다고 분노할 필요가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 장면은 일종의 시험처럼 느껴진다.
이 대목의 서두를 여는 자막 ‘작은 친절’을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연민’일 것이다. 가웨인은 전쟁에 희생된 자들과 그 포악함의 절대적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소년병을 보고도 전혀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만 혈안이었다. 그런 점에서 포박당한 가웨인을 카메라가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을 오가며 360도 회전하는 쇼트는 백골이 된 미래의 형상과 복원된 현재를 교차함으로써 연민의 정을 하사하지 않은 가웨인에게, 그러니까 연민이 거세된 현실에게 가하는 카메라의 협박이자 경고는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녹색 기사와 재회하는 시퀀스를 제외하고, 이 여정을 구성하는 네 개의 시퀀스는 곧 네 개의 시험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험들은 현실이 영화로 이행되는 과정에 필요한 덕목들에 대한 탐구이자 점검일 테다.
이후, 가웨인은 잠을 자기 위해 들어간 빈집에서 정령처럼 보이는 의문의 여자 위니프레드를 만난다. 그녀는 가웨인에게 연못에 빠진 자신의 머리를 건져와 달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탁을 한다. 그녀 목에 멀쩡히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머리가 허상이라는 얘기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녀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가웨인은 물을 수밖에 없다. “아가씨, 당신은 사람인가요? 정령인가요?” 달리 표현하면,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하나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하나요?” 위니프레드는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출제하고 있는 것이다(로워리는 전작 <고스트 스토리>에서 초현실적 존재인 ‘고스트’의 가시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실존을 믿어 달라 하소연한 적 있다). 다행히 가웨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로 결정한다. 그는 위니프레드의 부탁대로 물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두개골을 건져 올린다. 시험에 통과한 가웨인은 그 보상으로 소년병에게 약탈당했던 녹색 기사의 도끼를 돌려받는다.
여정의 세 번째 시퀀스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이다. 가웨인은 이 기이한 시퀀스에서 여우의 하울링을 따라하는 인간 형상의 거인족을 보게 된다. 이는 그간 거쳐 왔던, 문제가 주어지고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식의 시험 유형과는 사뭇 다르다. 이때 눈길을 끄는 건 거인족을 따라 묵묵히 길을 걷고 있는 가웨인의 뒤에서 느닷없이 180도로 몸체를 돌려 상하를 반전시키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더 흥미로운 건 카메라가 상하를 완전히 뒤바꾼 다음 점차 전진해 나갈 때, 조금씩 희미해지던 거인족의 형상이 마침내 완전히 사라진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화면이 180도 뒤집혔을 때 비로소 거인족이 지배하는 환상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카메라가 180도 회전하기 전의 화면은 온전한 환상인 것이다. 이와 연계하여 우리는 이 시퀀스의 도입부에서 가웨인이 환각의 버섯을 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환각의 버섯은 앞선 두 시퀀스에서 소년병과 위니프레드처럼 일종의 출제자 역할을 한다. 시험지를 받아든 가웨인은 환각을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검증받는다. 그러니 엉뚱하게 튀어나온 거인족들은 가웨인의 상상력이 빚어낸 환영이다.
공교롭게도 이 환영들은 영화의 어떤 존재보다 컴퓨터 그래픽의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이때 방점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화면에 기입되면서 생기는 생경함에 있다. <고스트 스토리>에서 로워리가 초월적 존재인 유령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하지 않은 건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구현했을 때 생기는 간극, 말하자면 그로 인해 촉발되는 생경함이라는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워리에게 중요한 건 디지털 기술 자체, 혹은 아날로그 자체가 아니라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이다. 정리하면 가웨인이 치르는 세 번째 시험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생경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한 역량 측정이다.
가웨인이 여정을 떠난 후 처음으로 마주한 대상은 기억 속의 여자 친구 에셀이다. 그는 에셀에게 받은 징표의 소리를 매개로 자신에게 청혼을 하는 그녀의 과거 모습과 대면한다. 그러나 가웨인은 수줍게 진심을 고백하는 그녀에게 어떠한 답도 건네지 못한다. 그런 그의 앞에 에셀과 똑같은 얼굴을 한 성주 부인이 나타나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이때 성주 부인과 에셀이 신분의 격차로 구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주 부인의 역할은 명료해 보인다. 네 번째 여정에서 가웨인은 사랑의 윤리에 관한 시험을 치른다. 이 어려운 싸움에서 가웨인은 에셀이 준 징표를 두고 사랑의 징표가 아니라고 말한 뒤 이를 성주 부인에게 헌납한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와 불온한 성적 관계를 맺는다. 가웨인은 사랑의 윤리에 관한 한 완벽한 낙제다.
다만, 이 장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성적 욕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진다는 점이다. 가웨인이 성주 부인에 의해 욕정이 해소되는 과정은 성주 부인으로부터 녹색 허리띠를 선물 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차고 있으면 누구에게도 공격받지 않고 영영 상처 입지 않는 녹색 허리띠는 죽음을 거스르려는 욕망이자 의지이다. 말하자면 현실은 욕망으로 팽창하지만 존재의 소멸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세계이다. 이때 죽음은 성주에 의해 사냥된 짐승의 이미지로 재현된다. 이 이미지는 가웨인이 성을 떠나기 전날 밤 자신이 사냥감으로 표현된 그림을 보는 장면에서 강하게 대두된다. 그는 그와 유사한 그림을 전에도 본 적 있는데, 그때 사냥감으로 채택된 대상은 여우였다. 그렇다면 가웨인과 여우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걸까.
여우는 가웨인이 두려움에 잠식될 때, 예컨대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황막한 숲속을 지날 때나 연못에서 위니프레드의 두개골을 건져 올렸을 때, 그리고 동굴 안에서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을 때, 녹색 예배당을 목전에 두었을 때 불현듯 등장한다. 말하자면 여우는 가웨인이 녹색 예배당에 당도하기 전까지의 모든 여정에 동참하며 네 번의 개별 시험과 별개의, 혹은 그 모두를 관통하는 시험을 내는 출제자다. 이 시험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 가능성이다. 성안에서 여우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성주의 말대로 집은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웨인이 성을 떠날 때, 성주가 그에게 여우를 선물하는 것은 그간 잡아두고 있던 그의 두려움을 다시 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필멸의 과정
마침내 녹색 기사 앞에 당도한 가웨인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나 아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벽히 극복하지 못한 가웨인은 녹색 기사가 휘두르는 도끼를 계속 피하면서, 그곳에서 도망쳐 집으로 귀환한 뒤의 미래를 상상 속에 그려본다. <그린 나이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집으로의 여정’ 몽타주 시퀀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간의 여정에서 끝내 체현하지 못한 덕목들, 예컨대 (전쟁 피해자에 대한) 연민, 사랑의 윤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 부문에서 고스란히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는 전쟁을 벌이며 국민을 희생시키고, 여자 친구 에셀을 가혹하게 배반하며, 전쟁통에 끝까지 성안에 머물면서 홀로 쓸쓸히 죽는다. 그런 점에서 이 몽타주 시퀀스는 필수 덕목들을 놓친 현실이 영화로 이행되었을 때의 끔찍한 결과를 상상 속에서 미리 상연해 보는 것이다. 잘못을 깨닫고 진실을 알게 된 현실만이 영화로 이행될 자격을 얻는다.
<그린 나이트>는 <고스트 스토리>와 다른 과정을 거쳐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는 영화다. <고스트 스토리>에서 응시와 시간성이라는 감각 기능을 탑재하며 영화 그 자체로 환유되던 고스트는 현실의 물질적 기반 위에 살아가는 아내 곁을 맴돌다가 그녀가 문설주 틈에 새겨 넣은 메시지(현실의 진실)를 발견하곤 돌연 소멸된다. 현실의 진실을 알게 된 영화는 그 순간 영화가 아니며 현실의 다른 버전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녹색 기사가 끝내 가웨인을 참수하는 것은 영화의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현실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닌 영화의 다른 버전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 앞에서 무릎 꿇고, 현실은 영화 앞에서 무릎 꿇으며 자신의 소멸을 받아들인다. 어느 쪽이든 두 세계는 필멸의 과정을 거쳐 독자화된다.
-
- [JEONJU IFF 데일리] 경계를 넘어, 지경을 넓히는
DIRECTOR. 이자벨라 브루네커
CAST. 야나 맥키논, 빌 케이플
SYNOPSIS. 늦여름.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 이가가 이상적인 행복을 꿈꾸며 공상에 잠기는 시기다. 그녀는 차를 몰고 스코틀랜드로 가기로 결심한다. 여행 중 이선이라는 서른 살의 영국 남자와 동행하게 되면서 이가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목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새로운 인연을 맺게 만드는 로드무비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을까. 2010년대에 <비포 선라이즈>를 보며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다. 얘들아 기차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면 위험해. 그리고 잔디밭에 누우면 쯔쯔가무시의 위험이 있단다… 하지만 애초에 내겐 그런 로맨스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차에서는 내가 예매한 자리에만 얌전히 앉아있을 것이며, 옆자리 사람들이 시끄러우면 조용히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이 차가운 시대에, 전주국제영화제에 도착한 자동차 로드무비 한 편. 영화 <슈거랜드>의 스토리라인은 자못 단순하다. 한 여자가 휴게소에 잠시 멈춰섰다가, 불을 빌리며 히치하이킹을 청하는 남자를 만난다. 내키지 않았지만 고민 끝에 여자는 남자를 태우고, 두 사람은 일련의 자잘한 사건들을 겪고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모르는 곳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의 전형이고, 이 영화 속 사건들은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슈거랜드>는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물론 <비포 선라이즈>를 보며 쯔쯔가무시를 우려하던 나의 마음은 <슈거랜드>를 보면서도 드러난다. 라이터 빌려주지 마! 모르는 남자 차에 태우지 마! 내릴 때 차키를 왜 두고 내리는 거야, 그 사람이 차 끌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다행히 여정은 계속된다. <비포 선라이즈>의 시대를 지나버린 관객의 우려를 이해한 듯, 주인공 두 사람도 조금씩 쭈뼛거리고 망설인다. 단지 그 작은 망설임을 조금씩 넘기고, 서로의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심심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 가게 된다.
경계하고 벽을 세우는 게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잊혔던 사실이, 그렇게 새삼스럽게 드러난다. 관계는 결국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쓰면서, 장벽이 낮아지면서 시작하는 거란 것. 그러다 보면 결국 상대를 버려두고 갈 수 없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의아해 한다. 친절이 사라지고, 그 냉기가 나의 숨통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답답한 세상.
그 시대는 에단(이라 불린 남성)의 입에서 “탈낭만주의” 시대라고 정리된다. 그 시대에도 여전히 진정한 사랑을 믿고 싶어하는 이가(Iga), 그리고 현실은 다르다고 말하는 에단(Ethan) 두 사람 모두 사실 본질은 비슷하다. 친절의 가치를 아직 믿고 싶어하는 서로를 알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서로를 “미쳤다”고 말하면서. 이런 시대에 사랑의 가치를 믿는다는 건 거의 종교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세속적인 풍경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작은 음악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노래”라며 벌떡 일어나 웃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같이 일어나 같은 동작으로 춤 출 때, 우스워질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때 그 음악이 선명해지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그런 용기가 없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용기, 서로의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망설임이 뒤섞이면서 그 안에서 무엇이 선명해지는지를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생은 우리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그때 설렘만큼 선명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간 내용이 커지고 많아질수록, 유리창처럼 깨져 서로를 찌르는 파편들도 커질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성향과 성격은 양면적으로 평가될 수 있기에.
사랑이라고 부르기에 아직 어린 감정이지만 힘이 세다. 잠시 내 경계를 잊게 하고, 그 모든 경계를 넘어서 다른 세계로 데려가 준다. 사랑은 그래서 위험하다. 둘이 넘어선 경계는 단순히 행정구역의 경계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에서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각자 뛰어넘고 싶은 삶의 경계와 고민을 가득 안고 있었다. 삶은 그런 곳이니까.
이 영화 속 날은 늘 흐리고 안개가 끼어 있다. 채도가 낮은 16mm 필름의 색감 안에서, 물기 어린 시각으로 우리는 두 사람의 세상을 본다. 삶은 쩌면 그토록 모호한, 미지의 세계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동차 한 대처럼 유유히 차곡차곡 나아간다. 가끔은 유리창도 깨지고, 가끔은 대화도 나누면서. 가본 적 없는 곳에도 거침없이 달려가면서.
그렇게 뛰어들었다가 돌아 나오면, 세상의 경계선은 한층 넓어져 있다. 그리고 나면 비로소, 이가의 앞에 해가 뜬다. 지난 시간을 딛고, 지금까지의 시간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힘. 푸르스름한 질감 너머 그 힘의 빛이 전해지는 영화였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04.29-05.09) 상영일정]
2025.05.02 11:0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209)
2025.05.05 14:3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527)
2025.05.08 21:3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837)
-
- [JEONJU IFF 데일리] 숲 속에 고립된 G7, 현대 정치의 초현실적 우화
감독 에번 존슨( Evan JOHNSON ) /게일런 존슨 (Galen JOHNSON)/ 가이 매딘(Guy MADDIN)
Canada, Germany, Hungary, United Kingdom, United States/ 2024/104min /DCP /Color/B&W /Fiction/15세 이상 관람가
시놉시스
<뜬소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 일곱 명이 G7 연례 정상회의에서 겪는 일을 그린다. 글로벌 위기에 대한 임시 성명서를 작성하려던 국가 정상들은 숲에서 길을 잃고 점점 커지는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리뷰
캐나다 영화계의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 가이 매딘과 존슨 형제(에반 존슨, 게일런 존슨)가 공동 연출한 영화 <뜬소문>(원제: Rumours)은 G7 정상회담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비틀어낸 블랙 코미디이자 정치 풍자극이다.
영화는 세계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정체불명의 세계적 위기에 대한 공동 성명을 작성하기 위해 한적한 곳에 모이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정상들은 짙은 안개와 함께 숲 속에 고립되고, 설상가상으로 정체불명의 위협(죽지 않는 늪지의 시체들, 거대한 뇌 등)과 마주하며 혼돈에 빠진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지도자들의 허영심, 무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이들은 길을 잃은 채 서로를 의심하고 기이한 상황에 휘말린다.
<뜬소문>은 가이 매딘의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고전 영화의 양식을 차용한 듯한 독특한 촬영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들은 정치인들의 공허한 수사와 위선적인 몸짓을 과장되고 희화화된 방식으로 포착하며, 현대 국제 정치의 부조리함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숲이라는 고립된 공간은 현실 정치의 밀실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지도자들의 내면 풍경을 시각화하는 무대로 기능한다.
케이트 블란쳇이 독일 총리 역을 맡아 카리스마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으며, 캐나다 배우 로이 뒤피는 자국의 총리 역으로 등장해 미묘한 캐나다적 유머와 풍자를 더한다. 찰스 댄스는 미국 대통령으로 분해 강대국 지도자의 오만함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은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이들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섬뜩한 상황 속에서 각 캐릭터의 불안과 욕망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정치 지도자들의 무력함과 소통 불능을 코미디와 호러를 넘나드는 장르적 실험을 통해 효과적으로 폭로한다. <뜬소문>이 보여주는 대담한 상상력과 정치 시스템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뜬소문>은 현시대 정치의 단면을 기괴하고도 유쾌하게 해부하는 문제작이다. 걷잡을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현실에 대한 서늘한 성찰을 유도한다.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영화를 찾는 관객이라면, 이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뜬소문'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상영 스케줄
2025. 05. 02 CGV 전주고사 3관 14:00 (상영코드 225)
2025. 05. 04 CGV 전주고사 3관 17:00 (상영코드 440)
2025. 05. 06 CGV 전주고사 3관 21:00 (상영코드 660)
-
- 우리도 34년으로 갈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쿵쿵 울리는 비트, 깜빡이는 조명과 함께 요란한 생일파티가 벌어지며 영화는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 날 잠에서 깨어 숙취에 시달리며 출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집이 아닌 집에 돌아가면 비키는 어제 입었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을 것이다. 둘 사이 대화는 없고, 다음 날과 또 그 다음 날도 이들은 계속 이 집에만 살고 음악만 듣고, 담배를 피우기만 할 것이다.
비키는 노동조차 클럽에서 하게 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그곳은 파티장이 되어 시끌벅적하다. 하오하오와 그녀는 서로를 사랑한다면서 서로에게 관심은 없다. 그래도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같은 집에 붙어 산다. 오늘과 내일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고 떠나 버리고, 밤 밖에 남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밤, 마시고 피우고 일어나면 또 밤이다. 비키는 멍해져 있다가 치밀어오르는 화를 마주하고, 점점 해가 뜰 때 일어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러나 쉽지 않다. 해가 뜨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밤에 번 돈을 생존에 다 써야 하고, 전날 마신 것을 게워 내야 하고, 훔친 물건을 물어내야 한다. 영화의 후반에 가서야 그녀는 말한다.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라고. 그러나 관객은 그녀가 당장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안다. 떠나는 것.
비키가 자유가 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90년대의 낭만, 음악, 술과 마약도 다 흰 눈에 덮여 사라진다. 그녀는 90년대를 떠나 겨울로 갔다. 그리고 무사히 2011년에 도착했다. <밀레니엄 맘보>가 낭만으로 남아 반짝일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거기에 도착하여 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서사시나 스펙터클이 아니라, 한 세대가 통과해 나온 터널처럼 보인다. 비키는 통과해 나왔지만, 돈도 음악도 뭣도 선택 못하는 하오하오는 낭만 속에 빠져 허덕이다 그 안에 영영 갇혔을지도 모른다. 혹은 몸만 2011년으로 옮겨와 회의주의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밀레니엄 맘보>의 색채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2024년의 관객이 결코 쥘 수 없는 멋진 낭만이다. 그리고 우리가 겨울로 나아가든, 24년도에 갇혀 있든 계속 달아오른 채 깜빡일 과거의 불빛이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
- 석가탄신일 연휴에 관람하기 좋은 세대별 취향 저격 영화 세 편!
가정의 달 5월이 벌써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벌써 마지막 연휴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석가탄신일을 시작으로 주말까지 대작들의 개봉하면서 극장가가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데요. 오늘은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이번 연휴에 보기 좋은 세대별 취향저격 영화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 패밀리에게 감동을! <도라에몽: 스탠바이미 2>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먼저 도라에몽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3D CG로 더욱 업그레이되어 돌아온 <도라에몽: 스탠바이미 2>는 할머니의 소원을 위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도라에몽과 진구의 시공초월 타임슬립 어드벤처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은 인기 에피소드 3가지를 각색한 것으로 더욱 탄탄하고 풍성한 스토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할머니의 추억], 진구가 태어난 날로 돌아가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내가 태어난 날], 어린 시절 향수를 그리워하는 [45년 후]까지 레전드로 손꼽히는 에피소드가 모두 담겨 부모님과 할머니를 떠올리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할 예정입니다.
2. 2030에게 짜릿한 액션을!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전 세계 최초 개봉하는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가장 가까웠던 제이콥이 사이퍼와 연합해 전 세계를 위기로 빠트리자 도미닉과 패밀리들이 컴백해 상상 그 이상의 작전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전 세계에서 50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린 <분노의 질주>는 벌써 9번째 시리즈이자 20주년을 맞아 역대급 액션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어 2030 청년 관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특히 압도적인 장르적 쾌감과 짜릿한 액션 스릴을 전할 것으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데요. 빈 디젤을 필두로 저신틴 린 감독과 오리지널 패밀리들이 화려하게 컴백하고, 여기에 미셸 로드리게즈, 조다나 브류스터 등 막강한 여성 캐릭터들의 조합과 한국계 배우 성강의 합류까지 더해져 압도적인 팀워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3. 3040에게 추억의 로코를!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바이블로 불리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입니다. 개봉 20주년을 맞아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서른두살 브리짓이 서로 정반대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마크와 다니엘 사이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르네 젤위거, 콜린 퍼스, 휴 그랜트의 전성기 시절을 만나볼 수 있어 이 시절을 추억하는 3040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코미디의 명가로 불리는 영국 제작사 '워킹 타이틀'과 <어바웃 타임> <러브 액츄얼리> 각본가 리차드 커티스의 합작으로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특히 주인공 '브리짓' 역의 르네 젤위거는 영국 여성들의 워너비 캐릭터 1위에 선정될 만큼 미워할 수 없는 러블리한 매력으로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켰으며, 모두가 꿈꾸는 이상형 콜린 퍼스와 휴 그랜트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그녀는 보는 것만으로도 달달한 대리 설렘을 전해줄 예정입니다.
가정의 달 5월, 극장가는 전 연령의 가족 관객 모두가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석가탄신일 연휴에 무엇을 할 지 고민되신다면, 오늘 소개해 드린 세 편의 영화들을 관람 리스트에 추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씨네랩 에디터 Jade.
-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답니다
안녕하세요. 할리우드 영화의 숲, 할리포레스트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영화를 누가 만들었는지 감독을 보지 않고 그냥 봤을 때 '아, 이거 이 사람이 만든 영화구나!'하고 떠오르는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할리우드에는 유독 그런 감독이 몇 명 있죠.
자신만의 영화 성향을 확립한 감독, 예를 들면 '팀 버튼', '리처드 링클레이터'같은 분들이 이런 케이스입니다.
▲ '기예르모 델 토로'의 주요 연출작 <판의 미로>(2006), <퍼시픽 림>(2013), <크림슨 피크>(2015)
하지만 그중 최고로 성향이 확실한 사람은 다름 아닌 '기예르모 델 토로'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판의 미로>(2006), <퍼시픽 림>(2013), <크림슨 피크>(2015) 등 그가 연출을 맡은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 언제나 '만화 같은 기괴함'을 살펴볼 수 있죠.
이런 '기예르모 델 토로'는 제가 언제나 주목하는 감독이었으며, <크림슨 피크>(2015) 이후 3년 만에 엄청난 걸작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전 '또, 어떤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만들려나?'싶었습니다.
그러다 CGV에서 '2018 아카데미 기획전'을 하는 소식을 접하고 2월 10일, 그러니까 개봉일(2월 22일)보다 12일이나 먼저 보고 왔습니다.
▲ '기예르모 델 토로'감독은 3년 만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시놉시스
1960년대 미국, 미 항공 우주센터에서 일하는 언어장애인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그러던 어느 날 남미에서 왔다는 괴물이 기계에 감금된 채 끌려온다. 그 후 엘라이자는 기묘한 그에게 조금씩 이끌리게 된다. 그들은 음악을 같이 들으며 교감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 이종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주제와 특징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시상식은 무엇일까요? 네,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입니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시상 식는 매년 2월 말쯤에 열리며, 시상식 전년도에 개봉한 영화들을 후보로 하죠. 그래서 일부러 배급사들은 '아카데미상 탈거 같은 영화'들을 일부러 12월 개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의 국내 개봉은 매년 2월~3월에 몰려있으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바로 이렇게 노린 영화였습니다. 아예 대놓고 '나 상 타려고 나온 영화예요'라고 외치는 상황이었죠.
▲ 대놓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노리고 나온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무려 아카데미 시상식의 13개 부문에 최종 후보를 올렸습니다. 단 1개만 후보에 올라도 대단한 건데 정말 엄청나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이런 13개 부문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부문
1. 작품상
2. 여우주연상
3. 여우조연상
4. 남우조연상
5. 감독상
6. 각본상
7. 편집상
8. 촬영상
9. 의상상
10. 미술상
11. 음악상
12. 음악믹싱상
13. 음악편집상
여기서 전 과연 이 영화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나름대로 심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굉장히 집중해서 봤죠. 그중 이 13개 부문에 대해서는 더더욱요.
▲ 과연 아카데미 시상 받을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눈을 부릅뜨고 모든 영화 속 요소를 지켜보았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기본적으로 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 즉 '괴물과 인간의 사랑'을 전개의 기반으로 합니다. 평범한 인간X인간같은 로맨스물이 아니죠.
보통 <스플라이스>(2010)나 <엑스 마키나>(2015)같이 이종족과 사랑을 하는 영화들을 보면, 이종족의 겉모습은 인간과 비슷해 보이나 그 내면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왕왕 존재합니다.
그런데 남미에서 왔다는 이 괴물(작중에서는 어떠한 명칭으로도 언급되지 않음)은 기괴하기보단 어딘가 친근해 보이게 생겼죠. 그리고 보면 볼수록 위와는 정반대로 주인공 엘라이자와 내면이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 보면 볼수록 공통점이 많은 엘라이자와 괴물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할 수는 없는 존재인 이 둘의 사랑은 영화 내내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봉숭아 물을 들이듯 서서히 깊게 물드는 사랑은, 누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아니랄까 봐 굉장히 매혹적인 색감과 1960년대 미국의 풍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노래와 음악으로 그 표현력이 극대화되죠.
▲ '샐리 호킨스'... 이분이 연기 잘하는 걸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요?
그중 백미는 주인공 엘라이자를 맡은 '샐리 호킨스'의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엄청난 연기력이었습니다. 특히 수화로 분노를 표현하는 장면에선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싶을 정도로 적잖이 놀랄 정도였죠.
작년 <내 사랑>(2017)과 최근 <패딩턴 2>(2018)에서 보던 모습만 생각하면, 그저 좀 마른 동네 아주머니 같은 모습이었는데, 섬세한 손동작에 과감한 노출까지... 역시 배우들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시대적 약자들로 조연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재치가 돋보입니다.
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주된 이야기인 로맨스를 떠받치는 몇 가지 부가적인 시대적 약자들로 조연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안정감을 더했습니다.
취급이 안 좋은 흑인 여성 청소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성 정체성을 숨기며 살고 있는 동성애자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미국-소련 간의 갈등의 상징 '리차드'(마이클 새넌)-'호프스테틀러'(마이클 스털버그)...
오늘날에도 흑인 여성과 동성애자는 대우가 그다지 좋지만은 못한데, 하물며 러시아 스파이가 판치는 50년 전 1960년대에는 어땠을까요? 이는 조연을 훌륭히 사용함으로써 관객이 쉽게 유추할 수 있게 유도하더군요.
'옥타비아 스펜서'는 작년 <히든 피겨스>(2017)에 이어 비슷한 포지션을 또 훌륭히 소화했고, '마이클 섀넌'은 <맨 오브 스틸>(2013)에서 보여준 강렬한 악역 연기 그리고 그 이상을 선보였습니다.
▲ 이런 부드럽고 깔끔한 편집도 참 오랜만에 보네요.
그리고 제가 제일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다름 아닌 '편집'입니다.
영화를 다양하게 보다 보면 전개가 커터 칼처럼 뚝뚝 끊기는 경우도 있고, 럭비공처럼 사방팔방 튀어 다니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마치 워터파크에서 슬라이드 타고 쭉~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네요. 정말 막힘없이 흘러갑니다.
단 한 번도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흘러가다 보니, 시계 한번 안 보고 스크린만 보다 보니 어느덧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더군요. 이렇게 부드럽고 깔끔한 편집은 참 오랜만에 보네요.
▲ 간간이 들어간 코미디 요소와 복선은 지루해지는 상황을 방지합니다.
덤으로 적절히 들어간 코미디 요소와 몇 번 정도 있었던 복선은 영화가 살짝 늘어질뻔하면 바로 팽팽하게 잡아당기죠.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해질 수 있던 구멍을 그야말로 완전히 봉쇄합니다.
특히 마지막 결말에 엘라이자와 괴물의 공통점에 대한 초반 복선을 회수하던데, 사실 엄청 간단한 걸 그제서야 눈치채서 뒤통수가 얼얼했네요. 전 아직 눈치가 많이 약한가 봅니다... ㅠㅠ
▲ 도저히 파고들 틈새가 없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종합적으로 빈틈을 찾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제가 흠집을 찾아보려고 돋보기를 들이댔으나 현미경을 요구하는 영화죠.
같은 멕시코 감독 출신의 <그래비티>(2013)-'알폰소 쿠아론', <버드맨>(2015)-'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에 이어, 이제는 '기예르모 델 토로'도 드디어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 미리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아카데미 시상식 다관왕을 축하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보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높았던 제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줬습니다.
아직 안본 다른 아카데미 후보작품들이 많아서 확답은 절대 못하지만 13개 부문 중 '감독상', '여우주연상', '편집상', '미술상', '음향편집' 이렇게 5개 정도는 충분히 수상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소한 다관왕을 할 테지요.
▲ 괴물도 저런 사랑을 하는데 난 왜 이렇게 외롭게 살고 있는지... 하...
추가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영화의 깊이가 심해처럼 깊다 보니 며칠 동안 여러 번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곳곳에 숨겨진 의미가 계속해서 해석되네요. 제 영화력은 한 번에 이해하기엔 아직 부족한 거 같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물은 정해진 모양이 없듯이 바로 사랑에도 정해진 모양이 없다는 거죠.
추신: 그러고 보니 이 리뷰 쓰는 날이 발렌타인데이군요.
괴물도 저런 사랑을 하는데 난 왜 이렇게 외롭게 살고 있는지... 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할리포레스트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리뷰 - 내 청춘을 꽃 피워 줘서 고마워
#꽃다발같은사랑을했다 #일본영화 #로맨스영화
여기 누구보다 잘 맞는 한 커플이 있습니다
그렇게 설레는 시간도 잠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아쉬움만 커져가는 연인들
이제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요?
가장 화사하던 날의 사랑 이야기
7월 14일 개봉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입니다
-
- 사건을 추적하던 앵커, 과거의 문제와 만나다!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심리 스릴러
?Rabbitgumi입니다!!
천우희 주연의 영화 앵커가 개봉했습니다.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고 한 모녀가 죽은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 앵커의 이야기인데요.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사회의 문제점과 연결되는 영화입니다.
특히나 직장 여성으로서 겪거나 느낄 수 있는 심리적인 두려움이 반영된 영화입니다.
장르적인 힘이 생각보다는 강하지 않고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던지는 메시지 만큼은 묵직한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구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
- 영화 <사운드 오브 데스> 메인 예고편
실험적인 음악과 소리를 연구하는 알렉시스.
폭력의 소리를 수집하는 그녀는 끊임없이 목마름을 느낀다.
어느 날, 행인의 우연한 죽음을 목격한 그녀,
죽음의 소리만이 자신의 쾌감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이후 죽음의 음악을 만들기 위한 살육을 시작한다.
노숙자, 레코드 샵 오너, 하프 연주자…
알렉시스는 죽음의 비트를 찍어 나가는데…
-
- 영화 <블링크 트와이스> 1차 예고편
좋은 시간 보내고 있나요? 아니라면 눈을 깜박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