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3-09-17 11:26:21
[SICFF 데일리] 눈보라를 이긴 따스한 사랑의 교감
영화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2022)
감독: 박재범
배역: 이윤지, 김서영, 강길우, 김예은, 이관목, 송철호, 이용녀 外
러닝타임: 69분
“북극성을 따라서 붉은 곰을 찾아가렴” 툰드라의 그리샤, 엄마를 살리려면 숲의 주인을 만나야 한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툰드라 배경에 스톱모션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3년 3개월이란 제작 기간인 만큼 스톱모션의 섬세함을 보인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평원 속 순록의 피를 마시는 장면과 오로라가 비추는 하늘을 구현한 장면은 툰드라 지역의 현실성을 보인다. 순록의 피를 마시는 장면이 자칫 아이들에게 잔인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툰드라 민족에게는 일상이고, 어린이들의 새로운 지식과 시야를 넓히게 만들 수 있다. 예이츠의 딸이자 장녀인 그리샤는 엄마가 갑작스레 원인 모를 병에 걸리고 무당으로부터 숲의 주인을 찾으라는 조언을 듣는다. 아버지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도시로 나가 현대의 약을 구하러 간다. 문명에 타협한 태도를 보이는 아버지와 달리 그리샤와 남동생 꼴랴는 숲의 주인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한편, 숲의 주인을 없애기 위해 떠나는 러시아 연방군 블라디미르도 숲의 주인은 찾기 시작한다. 마침내 만난 숲의 주인은 천년을 산 거대한 붉은 곰이었고, 천 년을 살아갈 수 있었던 비밀은 신비스러운 장소 바위 아래 조그맣게 자라는 월귤나무 열매의 힘 덕분이었다. 블라디미르로 인해 다친 숲의 주인을 그리샤가 도와주며 열매를 얻는다. ‘숲의 주인’이라는 점과 치유의 힘과 같은 민담이나 소설의 구상을 영화화로 만들어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좁게는 그리샤와 엄마와의 관계를 보이고, 넓게는 생물을 포용하는 자연을 엄마라고 빗대어 표현해 자연의 위대함을 선보인다. 어머니의 헌신과 어머니를 향한 따스한 사랑이 차가운 눈보라를 이겨낸다.
상영일정: 9/15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9/13~9/20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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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군분투
- 이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관람하지 않은 분들은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우리 모두에게 큰 보호막이 되어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는 엄마일 것이다. 출산 전 엄마의 자궁에서 10개월을 보내며 생명을 지원받고, 태어나서는 먹고 마시고 잠에 드는 그 모든 과정의 보살핌을 받는다. 태어난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부모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그때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전까지 엄마라는 큰 울타리가 아이가 자라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이다. 심지어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 전보다는 영향력이 줄어들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한 사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해주는 모든 보살핌은 일종의 봉사라고 할 수도 있을것이다.특별한 대가 없이 자신이 사랑으로 키운 그 아이를 향한 마음은 그것의 대가가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지속된다.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또 다른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어떤 경우에는 그 마음이 강해져 아이를 향한 집착이 되기도 하고, 그 집착이 지속되면 아이와 대립하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 그 대립은 커지고 서로에 대한 애증은 심화된다.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런>
영화 <런>은 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 클로이(키에라 엘런)와 함께 살고 있다. 당뇨병, 천식, 하반식 장애 등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딸을 돕기 위해 다이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클로이는 극 중에서 내년이면 대학교에 갈 나이가 된 상황이고 원하던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클로이에게 다이앤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자신을 보살피는 엄마에게 의지하면서 고마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클로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그래서 집 안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설과 계단을 편하게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영화 초반 집안에서 클로이와 다이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제로 장애가 있는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어떤 모습일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실 영화 초반 클로이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목적도 있지만, 영화의 중반 이후 집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집의 구성과 배치, 그리고 클로이의 생활 동선을 미리 알고 있는 관객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에 더욱 긴장하게 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엄마 다이앤의 출산 장면을 보여준다. 사산이 될 뻔한 아이를 겨우 살려내 인큐베이터에 넣었으나 그 아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스릴러 영화 장르를 많이 본 관객들이라면 그 아이의 생존 여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런>은 다이앤이 의료진들에게 아이가 살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장면이나, 현재 다이앤이 학부모 회의에 참석했을 때, 자신의 딸에 대한 의견을 낼 때 건조한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 등을 통해 후반부 다이앤의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에 대한 암시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딸
클로이가 엄마가 장을 봐 사 온 물건들을 뒤적거릴 때 처방받은 약통을 발견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긴장을 유발하기 시작한다. 그 약은 클로이가 아플 때 먹던 약이 아니다. 게다가 그 약통의 겉에는 엄마 다이앤의 이름이 쓰여있다. 작은 초록색 알약이 야기한 마음의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클로이가 계속 그것에 대해 추적하게 만든다. 엄마의 활동 일정과 동선을 알고 있는 그는 영리하게 엄마가 추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 약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쓴다.
사실 많은 관객들은 다이앤에게 동정과 위로를 주고 싶을 것이다. 장애아를 키웠고,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해할 정도로 그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했다. 그런데 엄마가 딸을 위해 했던 모든 행위들이 드러난 이후, 심지어 딸을 방안에 가두었을 때 관객들의 마음은 요동친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우리가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실제로는 흔히 생각하는 선한 존재가 아니었을 때, 집이라는 공간은 지옥이 된다.
장애를 가진 클로이가 집안에서 최선을 다해 엄마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은 꽤 긴장감이 있다. 그가 창문을 기어서 넘어가고 또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다른 방으로 탈출하는 모습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사실 클로이 입장에서 엄마를 벗어난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그간 받았던 모든 지원들을 포기해야 하며, 혼자 세상 밖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그 존재로부터 탈출을 결심한다.
독립 직전의 딸과 엄마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을 긴장감으로 표현한 영화
영화 <런>은 독립하기 직전의 딸과 엄마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20년간 자식 뒷바라지를 했던 엄마가 아이의 독립을 바라보며 기대감과 아쉬움을 한꺼번에 느끼고, 아이는 그저 독립된 생활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사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마의 입장에서 자식을 볼 때 그런 복잡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그런 복잡해진 엄마를 보는 아이는 그렇게 변한 엄마가 무섭고 두려워질 수도 있다. 자신의 자유로운 독립을 막는 존재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엄마와 딸 간의 애증의 시기를 아주 단순하고 짜임새 있는 스릴러 장르에 대입에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이앤 역할을 맡은 사라 폴슨은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나 넷플릭스 <래치드> 같은 시리즈에서 두각을 보였던 배우다. 그는 차갑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또 반면에 여리고 지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연기가 가능한데, 특히 차가운 악역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차가운 엄마 연기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어 영화의 긴장감을 높인다. 딸 클로이 역을 맡은 키에라 엘런은 독립을 원하는 딸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동하는 모든 장면은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스릴러 영화로 약간의 반전과 좁은 공간에서의 추격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abbitgumi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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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게 사랑이니까, 마미 (2014)
가족과 사랑, 이 두 가지 요소는 자비에 돌란의 영화들에서 늘 존재한다. 그의 페이지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사랑의 환희와 아픔을 맛보고, 혼란을 겪으며 성장한다. 그리고 이런 인물 곁에는 항상 그들의 가족이 맴돌고 있다. 돌란은 그 중 ‘엄마’라는,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단 하나뿐인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미>는 ‘엄마’의 전형적인 틀에서 다소 벗어난다. 다시 말해 자식을 향한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사랑을 다루지는 않는다. ADHD와 애착 장애가 있는, 다소 불안정한 스티브가 보호시설에서 나온 뒤 엄마 디안의 모험 같은 나날이 시작된다. 극의 초반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교통사고처럼, 그들의 하루하루는 예측할 수가 없다. 둘은 집 안의 물건이 부서지도록 살벌하게 싸우기도 하고, 행동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며 언쟁을 벌이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너무도 사랑한다. 디안은 다정함보다는 특유의 발랄함과 불같은 성격이 돋보이는 엄마로, 스티브와 치고받는 하루가 가장 평범한 날이다. 이들의 일상 속, 이웃집에 사는 카일라가 합류하게 되며 그들의 시간은 더욱더 다채로워진다.
디안, 스티브, 카일라는 모두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디안은 남편을 잃고 통제가 어려운 아들을 시설에 보낸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만 했다. 스티브는 아빠를 잃고 그 상처로 인해 급격히 행동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카일라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말을 더듬게 된다. 그의 방에 놓여있던 남자아이의 사진으로 보아 그의 아들과 관련된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이들은 각각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를 통해 그 결핍을 조금씩 채워간다.
<‘마미’만의 아이덴티티_색감(빛)과 화면 비율, 그리고 사운드트랙>
이들이 함께하는 순간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대범하고, 강렬한 색감들로 둘러싸여 있다. 눈부시게 쨍한 푸른 하늘과 디안의 화려한 옷들, 스티브를 둘러싼 노란빛들은 이들이 겪고 있는 상황들과 확연히 대비된다. 특히 스티브의 등장 장면은 그가 사랑스러운 아이임을 한눈에 보여준다.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보호시설에 도착한 디안에게, 인터폰을 통해 쏟아지는 험한 말들로 스티브의 충동적이고 거친 면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일종의 긴장감이 생기지만, 문을 열고 나오는 그는 예상 밖의 모습이다. 엄마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환한 미소를 가진 천진난만한 아이이다. 이때 유난히 디안과 스티브를 비추는 빛은 너무도 따스하다. 극 중 등장하는 옆광의 활용 또한 인상적인데, 인물보다는 뒷배경의 색이 돋보이며 불안정한 인물의 모습을 강조한다. 신문의 구인광고면을 보며 일자리를 찾는 디안과 홀로 남겨진 스티브를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감정을 대신해 준다.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면 비율도 인물이 처한 상황에 따라 확연히 차이를 둔다. 일반적인 화면비와는 다른 1:1의 비율을 유지하는데, 이로 인해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고 손과 눈빛 등의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이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줄곧 정사각형 비율을 유지하던 화면은 두 번 넓어진다. 한번은 세 인물의 행복한 순간, 다른 한 번은 엄마가 스티브의 미래를 상상하는 순간이다. 넓어진 화면을 통해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하지만, 곧바로 인물이 막막한 현실을 인식함에 따라 화면은 다시 닫힌다. 이 두 장면은 어쩌면 이들이 가지지 못할 평범하지만, 먼 꿈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영화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화면의 크기로 확실히 각인한다.
사운드트랙 또한 그중 일부이다. 돌란의 영화 속 노래들은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이 묻어나오는데, 이는 대사의 또 다른 연장선이기도 하다. <마미>에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곡은 의도된 배경음이 아닌 인물의 일상에서 나온다. 스티브가 CD 플레이어를 작동시키거나, 카일라가 차 안에서 듣는 것처럼 인물이 주체적으로 음악과 함께한다. 여러 노래가 있지만, 세 가지만 소개하겠다. 스티브의 첫 등장씬에서 나오는 Dido의 White Flag의 가사를 주목해 볼 수 있다. 항상 너를 사랑할 거고,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가사는 디안의 스티브를 향한 마음을 읽는 것만 같다. Ludovico Einaudi의 Experience라는 곡은 감독이 <마미>를 만들게 되는 첫 시작점이 되었다. 곡을 듣고 난 후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떠올렸던 돌란은 이 영감을 영화에 녹여냈다. 극 중 엄마 디안의 상상 장면에 쓰이는 노래에 맞게 화면은 잡을 수 없는 미래처럼 뿌옇다. 마지막, 밖으로 달려 나가는 스티브와 함께 엔딩 크레딧까지 이어지는 Lana Del Rey의 Born To Die는 제목에서부터 의미가 있다. 여기서 Die는 그의 엄마인 디안 다이 데프네의 미들 네임으로, 스티브의 엄마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을 대신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마미>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낸다.
<사랑과 구원은 별개에요>
영화에서 제시한 가상의 법안인 S14는 이렇게 말한다. ‘행동 문제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위험에 처할 경우, 법적 절차 없이 아이를 공공병원에 위탁할 수 있다.’ 이는 디안과 스티브의 삶에 화두를 던지는 부분이자, 엄마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이를 공공병원에 위탁하는 것, 과연 이 행동이 엄마로서의 잘못된 방식인지, 그렇다면 과연 보호자로서의 옳은 행동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과 구원은 별개에요.’ 스티브가 나아지지 않을 거라 여긴 보호시설 직원이 한 말이다. 이에 디안은 비관적인 사람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며 당당히 맞섰지만 현실의 무게는 버티기에 쉽지 않다. 결국 디안은 서로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고, 이들은 또다시 이별하게 된다. 여기서 그의 태도가 <마미>에서 말하고 싶은 바이다. 디안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스티브를 병원에 보낸 것이라고 하며, 그렇기에 자신은 늘 승자였다고 한다. 그의 말이 아이러니할 수도 있지만, 이는 절대적인 부모의 역할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관계에는 균열이 생겼지만, 이는 곧 회복될 것이란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감정과 꿈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돌란의 말처럼,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승리자이다. 어쩌면 사랑과 구원은 별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 또한 사랑의 다른 형태로써, 이들이 가장 잘하는 이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고, 그렇기에 희망을 품을 이유가 충분하다.
‘마미’는 어린 시절 아이가 엄마를 부를 때 주로 사용하는 말로 여겨진다. 영화의 제목을 보편적으로 엄마를 지칭하는 말인 ‘마더’가 아닌 ‘마미’로 표현한 것에는 분명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늘 엄마를 위해 살겠다는 스티브의 애정 어린 표현이자, 언제나 우리를 제일 사랑하는 그들에게 바치는 돌란의 존경 담긴 메세지가 아닐까. <마미>는 그렇게 결국 현실에서 구원해주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의 삶을 낭만적으로 말한다. 엄마와 아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필연적이다. 엄마는 스티브가 항상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이자, 우리에게도 그런 장소이다. 이들은 불안정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항상 서로에게 의지한다. 마지막 병원에서 달려 나가는 스티브 또한 디안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좀 더 나아질 것만 같은 앞으로의 나날들, 그 한 줄기 빛은 나의 엄마, 그리고 사랑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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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를 통해 한 발짝 나아가다
* <에놀라 홈즈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에놀라 홈즈 2 (2022)
감독: 해리 브래드비어
출연: 밀리 바비 브라운, 헬레나 본햄 카터, 헨리 카빌, 루이 파트리지, 데이빗 듈리스 등
장르: 추리, 드라마
상영시간: 129분
공개일: 2022.11.04
연대를 통해 한 발짝 나아가다
‘튜크스베리(루이 파트리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사라진 엄마 ‘유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를 찾으며 초짜 탐정으로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는 오빠를 따라 탐정 사무소를 설립한다. 하지만 미성년자에 여성이기까지 한 ‘에놀라’에게 사건을 맡기는 사람은 없었고, 탐정 사무소를 찾아와 오빠인 ‘셜록(헨리 카빌)’을 찾는 사람들만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파리만 날리던 탐정 사무소를 접으려던 찰나, 성냥 공장에 다니는 소녀 ‘베시’가 ‘에놀라’에게 언니의 실종 사건을 의뢰하면서 ‘에놀라’의 첫 탐정 업무가 시작된다. ‘에놀라’는 호기롭게 성냥 공장에 잠입하며 추리를 시작하지만, 생각보다 크고 위험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앞에 놓인 위기와 난제들을 차례차례 헤쳐 나간다.
<에놀라 홈즈> 1편은 ‘에놀라’가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어른들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모험 활극이 주된 이야기였다. 페미니즘적 색채도 담겨 있었지만 ‘유도리아’가 주도하는 여성 참정권 운동은 후반부에 살짝 드러나는 정도였고, ‘에놀라’의 서사를 통해 여성도 남성과 평등하게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원론적인 논리가 핵심이었다. 반면 속편은 성냥 공장에서 열악한 조건으로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당시 여성들이 처했던 사회적 문제와 결부 지어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논한다. 전편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힌 만큼 추리의 비중이 커지긴 했지만 결국 작품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연대를 통해 권리를 쟁취한 여성들의 사회운동에서 비롯되는 주제의식이다.
‘에놀라’와 ‘셜록’이 맡은 사건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1888년 여성 노동자 ‘세라 채프먼(Sarah Chapman)’이 주도했던 ‘매치걸 파업(Matchgirls’ Strike)’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낸다. 당시 런던에서 최대 규모의 성냥 공장이었던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에서는 ‘세라 채프먼'의 주도 하에 1,400명의 어린 여공들이 비인간적 노동 실태를 폭로하고 질병을 유발하는 백린 사용을 금지하도록 집단 파업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런던 노동위원회로부터 산업안전을 위한 조치를 약속 받았고, 1908년에 백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노동권 투쟁의 최전선에 있던 것은 권력의 최하위에 놓였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작은 불씨에 불과했던 이들도 연대를 통해 큰 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는 노동하지 않을 권리라는 노동기본권에 속한 개념마저 되새긴다. 물론 후반부에 주제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감정적으로 어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전편에 비해서는 페미니즘을 자연스럽게 풀어냈고, 추리물과 사회운동을 억지스럽지 않게 연결 지었다.
전편에서 신선한 장치들을 모두 끌어 썼기 때문에 속편은 상대적으로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4의 벽을 뚫는 ‘에놀라’, 19세기 영국의 전형성을 파괴한 여성 캐릭터들, 성별의 고정관념을 틀어버린 ‘에놀라’와 ‘튜크스베리’의 관계 등은 이미 전편에서도 등장했던 요소들이다. 대신 추리극이라는 정체성에 충실하며 액션 모험 활극 정도로 비춰졌던 전작의 부족한 장르적 정체성을 보완한다. 단순히 의뢰인 소녀의 언니를 찾고자 했던 사건이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 파업으로 이어지고, 대규모 횡령의 범인을 추적하던 ‘셜록’의 사건과도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캐릭터들을 의심하고, 복선을 해결해 나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기지와 명석함을 갖춘 ‘에놀라’가 점점 탐정의 면모를 갖춰 감에 따라 추리극으로서의 정체성도 짙어 지는 듯하다.
작품이 강조한 ‘연대’는 극중 등장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에놀라’와 오빠 ‘셜록’, 그리고 ‘튜크스베리’와 엄마 ‘유도리아’까지 연대를 통해 각자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끔 연출한다. 전편은 주인공인 ‘에놀라’의 능력과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 캐릭터들을 소모적으로 활용한 감이 있다. 하지만 본편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에놀라’가 ‘셜록’의 도움을 여러 차례 받고, ‘셜록’ 역시 ‘에놀라’를 통해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얻을 수 있는 안정감과 힘을 깨닫는다. ‘에놀라’에게 보호받는 존재로 그려졌던 ‘튜크스베리’는 비록 피투성이가 되긴 했지만 스스로 적과 맞서며 싸울 줄 아는 남자로 성장하고, ‘에놀라’와 상호보완을 이루는 연인이 된다. 잠깐의 등장만으로 임팩트를 남긴 ‘유도리아’는 여전히 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며 ‘에놀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그녀의 가르침이 언제나 해결책이 되어 준다. 결정적인 위기에서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우두커니 뒤편에 서서 ‘에놀라’의 성장을 바라봄으로써 모녀의 바람직한 연대 과정을 보여준다.
추리 영화의 서늘한 온도, 미스터리를 해결해 가는 촘촘한 연출을 기대했다면 어딘가 엉성하고 어수선해 보이는 <에놀라 홈즈>는 기대를 충족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에놀라 홈즈’다운 것이다. 만일 이 시리즈가 관객으로 하여금 충격적인 반전을 거듭 선사하고, 사건에만 집중하는 흐름을 보여주었다면 오히려 작품의 매력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로맨스와 어드벤처를 곁들인 하이틴 오락 영화의 색채를 풍기면서도 사건 추리를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이끌어내는 것이 곧 <에놀라 홈즈>의 정체성이다. (만일 3편도 제작될 예정이라면, 오빠의 동업 제안을 거절한 ‘에놀라’가 오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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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행복"의 도시
PROGRAM NOTE.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최신작 〈폴른 리브스〉는 감독의 프롤레타리아 3부작[〈천국의 그림자〉(1986) 〈아리엘〉(1988) 〈성냥공장 소녀〉(1989)]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전해주는 라디오 외에는 세상과 단절된 여자와 우울한 일상을 알코올로 달래는 자칭 터프가이 남자는 헬싱키의 밤 거리에서 만나 호감을 느낀다. 이들의 조심스러운 로맨스는 몇 번의 우연과 몇 번의 불운을 거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무미건조한 유머를 쉬이 납득하기 어렵더라도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순간이 있고, 삶에서 무수한 실패를 거듭해 온 주인공들의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 색다른 별미는 아니지만 진하게 끓여낸 김치찌개가 당기는 것처럼, 지난 40년간 인간의 외로움에 천착한 아키 카우리스마키 필모그래피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시네필이라면 브레송, 고다르, 자무쉬, 채플린 등 거장들에 대한 헌사를 발견하는 재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박가언/2023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POINT.
✔️ 꼭 운명적으로 로맨틱하지 않아도 아기자기 귀엽고 러블리할 수 있지. 인생 뭐 있나! 보고 나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로맨스 영화
✔️ 북유럽이랑 우리 정서 잘 안 맞지 않았나? 그런 줄 알았는데...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나와요
✔️ 80년대부터 쭉 영화 작업을 해온 감독이 은퇴 선언을 뒤엎으며 들고 온 작품. 꾸준히 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노련한 힘이 엿보여요
✔️ '영화'라는 세계에 대한 애정이 반짝반짝 묻어나는 작품
✔️ 202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 엄청 귀여운 연기천재 강아지가 나옵니다. 실제 감독이 키우는 개인데, 칸 영화제 출품작 중에서 가장 연기력이 훌륭한 개에게 수여되는 "팜 도그Palm Dog 상" 부문에서 심사위원상 수상작
✔️ 12월 20일 개봉! 연말에 따뜻하고 싱그러운 로맨스를 찾으신다면 추천해요
#"조용한 행복"의 도시
도시의 삶은 치열하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지울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이런 당연한 말 쓸 필요 있나? 이제는 용어조차 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N포 세대" 같은 단어들까지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삶을 헤엄치는 건 갈수록 녹록하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N포 세대"라는 용어에서 시의성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전에는 "N포"라는 표현 안에서 "포기"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더 이상 포기할 대상조차 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K-드라마의 자장 안에서 유구하게 사랑받은 로맨스라는 장르 또한, 이 치열한 도시의 삶 속에서 빛깔을 달리해 왔다. 물론 변화는 다면적이고 그 기저에도 수많은 것들이 깔려 있으므로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는 없고, 동일한 장르의 동일한 변화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예전에 나왔다면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평가 받았을 설정들이 로맨스와 쏙쏙 접목되는 게 너무나 익숙해진 지금, 빙의/회귀/환생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떠나서만 가능한 로맨스도 분명 존재한다. 지치고 초라한 현실을 잠시 떠났을 때 화려하게 열리는 세상이, 거기서만 로맨스에 이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는 분명히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우리에게 쑥 다가온다. 헬싱키의 "조용한 행복"을 담아서. 영화 속 두 인물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다면 한국 인터넷 세상의 선생님들께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너네가 지금 연애할 때니? 직업도 마땅치 않고, 그나마도 불안정하게 오락가락하는데. 심지어 상대는 이런 상황인데!
그러나 왜일까? 고요한 도시에서 그저 불을 켜고 끄면서 적당적당히 스쳐가는 하루하루 속, 크게 애틋하지도 대단하게 로맨틱하지도 않게 흘러가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보고 있노라면,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쉬고 공과금 낼 돈을 헤아려 보고 라디오에서는 전쟁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이런 일상의 편린까지 함께 보고 있노라면, 그래 인생 뭐 별 거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끝에 어쩐지 산뜻한 로맨스를 목격했다는 싱그러운 기분이 남는 것은 왜일까?
#정물, 음악, 그리고... 영화
영화가 보여주는 두 주인공의 현실은 역시나 녹록하지 않다. 어쩌면 당신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답답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마트 계산대에서 바코드 찍히는 소리와 함께 물건이 하나하나 빠져나가고, 바로 이어서 우리의 주인공 안사(알마 포위스티)가 매대에 물건을 채워넣는 장면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도시는 어쩌면 거대한 물건의 컨베이어 벨트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두 사람의 첫 일자리부터가 두 사람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안사가 일하는 마트에서는 폐기 물품 관련 원칙을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다. "오래된 건 치워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관리자에게 "저도 오래됐다"고 응수하며, 당당하게 손 잡고 걸어나오는 안사와 동료들은 지혜로운 일꾼이자, 마트라는 공간을 굴러가게끔 하는 실질적 힘이었다. 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곳들이 주제를 모르고, 의미를 상실한 원칙과 불합리한 조건을 들이댄다. 남자 주인공 훌라파(주시 바타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흡연 구역인 가스통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업무 시간에 술을 훌훌 들이켜는 이쪽의 잘못도 있지만... 노동법전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상황이 계속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를 "프롤레탈리아적"이라고 말한다. 엄밀히 따져서 주인공이 노동자인 것은 한국의 오피스 로맨스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남자> 혹은 <상속자들>처럼 주인공이 재벌급이거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다 매한가지라는 소리다. 그런데 왜 유독 "프롤레탈리아적"이라고 평가를 받을까? 노동자로서 주인공의 위치가 흔들려서? 그렇다 한들 켄 로치 영화 같은 작품과도 분명 결이 다르다.
나는 어쩐지 이 영화에 "프롤레탈리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은데, 주인공의 직업이야 필요에 따라 교사가 될 수도 있고 수영선수가 될 수도 있고...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프롤레탈리아'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남다른 투쟁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그냥 돈이 필요하니 일을 하고, 일하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화도 내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뿐이다.
내겐 오히려 두 사람의 삶에서 풍기는 냄새가 예술의 냄새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물론 일상은 쉬이 남루해지고, 노동은 너무 쉽게 소도구 취급을 받으며, 세상의 분쟁 소식은 여기저기 쏟아진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도 전쟁과 닮은 것들이 있다. 그안에서 아직은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운 마음조차 여러 차례 어긋나고 불발되기도 한다. 어쩌면 마음 편할 날 하루 없는 치열하고 차가운 도시의 삶이, 우리 현실의 전부인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기대, 눈빛, 그리움, 기다림, 사랑... 그런 말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일상에는 예술이 더해지고 분쟁의 소리는 아득하게 멀어진다.
정물 같은 방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분쟁 소식을 피해 음악으로 채널을 돌리는 여자. 꽁트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계속 비우는 남자. 누군가의 선곡 속에서 주고받은 눈빛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은 차츰 영화가 된다. 고전 영화처럼 음악이 대신 두 사람의 정서를 말하고, 그저 걷고 일하고 마시고 눕고 하는 일상의 행위들을 더없이 "영화스러운" 음악들이 감싼다. 그렇게 영화가 된다.
#시간이 가르치는 마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은 분명히 우리와 시간의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전쟁 소식이고, 안사가 일하러 간 공간에서는 급기야 2024년 달력까지 등장하지만, 영화의 소품이나 주인공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넉넉하게 쳐도 80년대 이전의 것들처럼 보인다. 낡은 라디오와 레터나이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치 아이폰과 갤럭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두 사람은 옛날옛적 핸드폰이나 집 전화를 갖고 있으며, 그나마도 엇갈린다.
아날로그적인 기다림을 통해, 두 사람의 로맨스에는 아릿한 감정이 더해진다. 수북하게 쌓인 담배 꽁초 같은 것, 도시에서 실제로 마주했다면 그저 치워야 할 쓰레기(이자 도시를 침수하게 만드는 악의 축)에 지나지 않을 것들조차 아련한 감각을 부여받는다. 마치 반죽을 숙성시키듯 감정 또한 재워 놓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간이 가르치는 마음이 있다. 81분이라는 산뜻한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와 함께 도시를 걸으며 영화에 푹 잠기다 보면, 영화라는 장르가 오랜 세월 우리 안에 어떻게 스며 있었는지 향기로운 찻물처럼 배어 나온다. 고전 영화의 아름다운 감각이 일상의 편린을 자박자박 밟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다르처럼, 브레송처럼, 채플린처럼.
81분 동안 내가 걸은 도시는 <라라랜드>의 대척점에 놓인 것 같은 건조한 도시였다. 꿈과 춤으로 황홀한 사랑과 유쾌한 사람들의 도시가 아닌, 일과 술로 건조한 사람들의 고요한 도시. 그러나 여기에도 사랑스러운 색채와 귀여운 대사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있다. 정물처럼 놓이고 꽁트처럼 가볍게 흘러가는 일상 위에도. 때로는 그런 일상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건조함이 생을 긍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만큼은 치열한 도시를 잊고, 다 아무렴 어때 하고 무던하게 하루를 맺고 싶어진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대를 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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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1시간을 가득 채운 배우의 힘
Information
1. 빨래 Laundry
Korea | 2020 | 27min | G
Director
김혜진 Kim Hea-Jin
Cast
문승아
Synopsis
가족사진을 찍는 날, 옷을 한 번에 넣고 돌리는 가족들의 습관 때문에 혜수의 와이셔츠만 줄어들게 된다. 무심한 가족들에게 혜수는 작은 복수를 결심한다.
2. 새벽 바다 노을 The Golden Hour
Korea | 2021 | 23min | G
Director
김영 Kim Young
Cast
문승아 유가은 김지환 최자인 최묘견 오윤수
Synopsis
노을은 엄마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 사촌 언니 새벽의 집에 놀러 가지만 어른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새벽의 팔찌에만 관심을 보이던 노을은 어른들 탓에 새벽이 상처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Review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는 어린이 배우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영화를 많이 선보인다. 그중 한 배우를 선정해 특별전을 기획했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이 배우 특별전: 문승아’이다. 그녀의 연기력을 엿볼 수 있는 2편의 장편과 2편의 단편으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는데 방문했던 9월 15일에는 단편인 빨래’와 ‘새벽 바다 노을’이 1시간 동안 연달아 상영되었다.
그녀가 바랐던 가족사진이란_영화 ‘빨래’
가족이 세탁소를 하는 혜수는 학교에서 가족사진을 찍어오라는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온다. 세탁소에 붙어있는 가족사진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 엄마, 아빠, 오빠가 찍은 사진뿐 사진관에서 제대로 찍은 사진은 없다. 가족사진을 찍어야 하는 숙제를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가족 모두가 흰 셔츠를 입고 화목하게 찍는 사진을 누구보다 기대한 그녀는 사진을 찍는 날만 기다린다. 가족사진을 찍는 날, 옷 구분 없이 세탁기에 한꺼번에 옷을 넣고 돌리는 가족의 무심함으로 그녀의 와이셔츠는 줄어들고 만다. 엄마와 아빠에게 물었지만, 세탁소 일로 바쁜 그들은 답변을 그르치기 바빴고 PC방에 있는 그녀의 오빠 또한 오히려 화를 내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들의 와이셔츠를 자신과 같이 줄여버리기로 귀여운 복수를 실행한다.
<빨래>는 27분의 러닝타임 내내 카메라는 혜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설렘, 작아진 와이셔츠로 인한 속상함, 그녀가 줄인 와이셔츠를 입고 불편해하는 가족의 모습에 대한 통쾌함 등 혜수가 느꼈을 감정들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영화는 담아낸다. 결국 가족들은 작아진 와이셔츠를 견디지 못하고 사진관에 마련된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에 혜수는 사진관을 뛰쳐나간다. 방황하던 그녀는 와이셔츠가 아닌 다른 옷을 가지고 사진관으로 가지만 이미 사진관은 문이 닫혀있었고 결국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그녀는 작아진 와이셔츠를 세탁기에 넣고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며 끝이 난다.
가족 모두가 와이셔츠를 입는 그런 단순함으로 인해 그녀가 그런 복수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 모두가 함께 같은 옷을 입고 웃는 모습으로 한 장의 추억을 남기는 것이 그녀가 바란 모두였을 텐데. 왜 그들은 그녀의 작은 마음을 몰라줬던 것일까? 이런 혜수의 속상함, 허탈함 등이 문수아 배우의 연기력으로 여실히 느껴져 더욱더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사진관에 마련된 가족사진을 보면 모두가 흰 셔츠를 입고 서로를 마주 보거나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소를 짓는다. 흰 셔츠가 주는 통합은 단순히 사진의 깔끔함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모두가 같은 색깔을 입음으로써 ‘가족’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다. 혜수의 엄마가, 아빠가, 그리고 오빠가 그녀의 이런 마음을 알았다면 이날이 혜수에게 평생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웃기에도 바쁜 그들을 울 게 만드는 것은_영화 ‘새벽 바다 노을’
사촌의 집으로 엄마와 할머니를 따라가는 노을은 그저 사촌 언니인 ‘새벽’에게 자신이 만든 팔찌를 줄 생각엔 마냥 기쁘다. 새벽을 만나 기쁜 노을이지만 새벽은 어딘가 불편한 내색을 보인다. 새벽과 집에서 놀고 싶었지만, 밖으로 나가서 놀자고 하는 그녀로 인해 새벽, 바다, 노을은 놀이터에서 함께 놀게 된다. 계속 밖에서 놀자는 새벽, 알고 보니 새벽의 새엄마와 할머니, 노을의 엄마가 싸우는 걸 지켜보는 것이, 그들의 고함을 듣는 것이 힘들었기에 그녀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새벽은 노을에게 노을이 갖고 싶어 했던 비즈 팔찌를 이용해 어른들의 싸움을 멈추고자 제안하고 노을은 고민 끝에 계획을 실행한다. 집으로 돌아와 싸우는 연극을 하는 새벽과 노을. 하지만 어른들의 언성은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노을은 결국 서럽게 울며 그녀의 엄마와 할머니는 새벽과 바다의 집을 나오게 된다.
새벽, 바다, 노을.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을 표현하기에 순수하게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비즈 팔찌를 만들고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한 장면들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이름이었다.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과 다르게 어른들을 서로를 비난하고 그들의 싸움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 한 체 서로를 향해 화살을 겨눈다. 새벽과 노을은 서로를 너무 좋아하고 함께 있음에 행복함을 느끼지만, 어른들의 논리 아래서 함께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되고 만다.
정말 놀랐던 점은 문승아 배우의 연기력이다. 어린 배우이지만 다작과 주인공을 여러번 했기에 기대를 많이 했었다. 아무리 중견배우여도 1시간 남짓의 러닝타임동안 자기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작품을 촬영한다면 어색함이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인데 그녀는 당당했다. 날것의 느낌을 주며 작품 속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드는 느낌을 받았다. 빨래와 새벽 바다 노을은 다른 장르이며 그녀가 맡은 캐릭터 또한 매우 다르다. 연달아 작품이 상영됐기에 어떤 식으로 보일지 매우 궁금했는데 전혀 다른 인물처럼 느껴졌으며 섬세하지만 강렬하고 거침없지만 당당한 그녀의 표현력에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자기 연기력에 자신감을 갖고 연기하는 배우만큼 훌륭한 배우는 없다고 본다.
SICFF
WE KID, 우리는 모두 어린이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건 바로 ‘어린이’가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기 때문이죠.”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SICFF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을 발견하고, 어른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를 바랍니다.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소개 일부 발췌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2023년 9월 13일부터 9월 20일까지 롯데시네마 은평, 은평문화예술회관, 은평한옥마을 등에서 진행됩니다.
*본 포스팅은 영화 전문 웹매거진 〈씨네랩〉의 프레스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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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석한 사막 위에 찍어낸, 묵직한 첫 발자국
듄 (DUNE, 2021)
개봉일 : 2021.10.20. (한국 기준)
감독 : 드니 빌뇌브
출연 :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삭, 제이슨 모모아, 조슈 브롤린, 하비에르 바르뎀, 젠데이아 콜먼, 스텔란 스카스가드
퍼석한 사막 위에 찍어낸, 묵직한 첫 발자국
<듄>이 개봉하기 전, 이런 카피가 정말 많이 보였다. “반지의 제왕을 이을 시리즈의 탄생”이라고. <반지의 제왕>을 이을 작품? 대체 어떤 세계관을 갖고, 어떤 영화를 만들어냈길래 이렇게 야심만만한 카피를 내놓을 수 있는 걸까?
애정 하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출연과 드니 빌뇌브 감독이 작품을 연출한다는 소식, 그리고 영화의 원작 소설 <듄>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의 오래된 뿌리이자 대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와 동시에 티모시 샬라메의 해변 스틸컷 한 장을 보는 순간 이 영화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비주얼의 영화가 나올지 쉽게 상상 되지 않았다.
<듄>이 개봉 전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며,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티켓 파워를 보여주는 바람에 아이맥스로 예매하기도 참 어려웠다. 꼭 큰 화면, 아이맥스로 보라는 말에 “이 영화의 1회차는 무조건 아이맥스다!”하고 뛰어들었는데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이 영화는 아이맥스 또는 돌비관에서 봐야 한다고 말이다.
여차여차 아주 어렵게 개봉 당일에 만난 <듄>은 말 그대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방대한 원작의 세계관의 아주 일부에 해당하는 분량이었지만 그럼에도 그토록 압도적일 수가 없었다.
이번에 개봉한 Part1에서는 묵직한 사건과 반전 같은 것 없이 꽤나 친절하게 세계관을 설명하고, 이제 막 주인공이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냈다. 오프닝을 이렇게 엄청나게 찍어버리면 다음 편은 어떤 영화가 될지, 벌써부터 심장이 떨린다.
긴 호흡으로 나뉘는 호불호
SF 시리즈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스타워즈>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을 기대할 수 있으나 두 작품은 결이 조금 다르다. 우선 주 배경이 되는 환경이 드넓은 우주와 삭막한 사막 행성으로 다소 차이가 있고, 스타워즈가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우주 활극이 주가 되는 느낌이라면, 듄은 삭막한 우주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위계질서와 지배욕. 그리고 두려움에 맞서 길을 찾는 주인공의 성장 담을 지켜보는 게 주가 되는 느낌이다. 물론 <듄>이라는 영화도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한 영화긴 하지만 말이다.
재빠르고 역동적인 SF를 선호하거나, <듄>에 그것을 기대했다면 영화가 주는 러닝타임의 압박감과 느긋함에 쉽게 눌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좀 많이 나뉘는 것 같다.
드니 빌뇌브 감독님의 전작을 보며 그의 영화는 호흡이 다소 긴 편이라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는데, <듄> 또한 드니 빌뇌브 감독 특유의 긴 호흡이 제대로 담긴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론 지루할 틈 없이 본, 마음을 뒤흔드는 대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호흡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1편이 깔끔히 마무리되는 걸 원했던 관객이라면 충분히 지루하다, 진행된 것 없이 이야기가 끊긴다. 같은 불호평을 이야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웅장한 세계관의 시작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목처럼 Part.1. 챠니의 대사처럼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뿐”이다. 영화를 통해 이 웅장한 세계관을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된다.
연료로 쓰이는 귀한 재료 스파이스와 명예, 부. 그리고 아라키스 행성을 두고 이어지는 아트레이데스, 하코덴 가문. 프레멘들의 대립 속에서 가문과 자신을 위해 두려움에 맞서야 하는 소년 폴의 성장과,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세계관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그리고 폴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며 그가 정말 운명을 바꿀 선택받은 자인지. 이 세계를 관통하는 답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Part.1을 보고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아졌다.
사실 <듄> Part.1이 개봉하기 전, 원작을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는데 1편의 두께에 압도되는 바람에 개봉 전에 원작을 읽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Part.1을 보고 나니 꼭 원작을 완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편이 나오기 전에 꼭 원작을 완독하리라!
드니 빌뇌브 감독님은 2편에선 더 발전된 액션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 언급했는데, Part.1에서 다소 아쉽게 느껴졌던 ‘액션의 부재’가 보완된, 시작 그 이상의 작품이라니. 기대감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영화는 최소 2-3편까지 찍어놓고 순차 개봉해야 하는, 그런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지.
작품 속 세계, 새로운 행성에 빠져들다.
퍼석한 사막의 모래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내 날카롭게 식어버리는 공기. 휘몰아치는 모래의 입체적인 질감과 모든 장면들에 역동적인 숨을 불어넣는 한스짐머의 음악들. <듄>은 시각과 청각을 완벽히 빼앗으며 영화 속 인물들이 서있는 10191년, 아라키스 행성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극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험, 새로운 세계와의 황홀한 만남이 이 영화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시리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역작이 될 것이며 티모시 샬라메의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이길 대표작이 될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마치 다니엘 레드클리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해리포터를 가장 먼저 떠올리듯, 시즌 2,3을 거친 후 티모시 샬라메하면 듄이 먼저 떠오를 때가 올 거라 생각한다.
SF 대작인 <스타워즈> 시리즈를 처음부터 제날짜에 맞춰 극장에서 관람한 세대들을 부러워했었는데, 나도 이제 같이 나이 먹어갈 SF 시리즈가 생겼다는 것에 벅찰 만큼 기쁜 순간이다. 나중에 “나는 듄 1편부터 개봉 당일 아이맥스로 봤다 이거야~” 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겠지?
듄 시놉시스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어떤 계시처럼 매일 꿈에서 아라키스 행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이라 불리는 아라키스는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로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다. 황제의 명령으로 폴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죽음이 기다리는 아라키스로 향하는데… 위대한 자는 부름에 응답한다, 두려움에 맞서라, 이것은 위대한 시작이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덴 가문
아라키스 행성을 오래 지배하던 하코덴 가문은 모래 위 스파이스를 쓸어 담으며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멘들을 억압한다. 프레멘들은 그들을 잔혹한 외지인이라 칭했으며, 하코덴 가문은 아라키스 행성이 가진 스파이스에 눈이 멀어 배려와 양심 따위는 멀리 집어던지고 탐욕스레 스파이스를 긁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계략을 세운 황제가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아라키스의 관리를 맡기게 된다. 소식을 들은 하코덴 가문은 우리가 다 일궈 논, 우리의 행성이라며 이를 갈다 제국과 협력해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공격한다.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덴은 사촌 사이지만 지향하는 바가 좀 다르다. 하코덴은 아라키스 행성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목적이고, 아트레이데스는 프레멘들과 협력해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인 것은 맞지만, 이익을 위해 협력을 부탁하는 것과 무조건적인 지배를 원하는 건 꽤 큰 차이가 있다.
하코덴 가문과 달리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프레멘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스파이스 수확기 안의 인부를 구하려 보호막 장치를 내버리는 결단을 내린다. 던컨은 프레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뛰어난 전사라 칭하기도 한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제국과 하코덴 가문이 원했던 지배와 피지배층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위치의 관계를 지향한다. 폴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프레멘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들의 마을로 합류한다.
Part1.에선 프레멘, 제국+하코넨 , 아트레이데스의 삼각구도였다면, 다음 시리즈는 프레멘+아트레이데스, 제국+하코넨(추가적인 대가문들?)의 구도가 되지 않을까?
레토 공작이 남긴 것
새로운 체계를 정비해 가던 중, 첩자와 하코덴 가문의 습격을 받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레토 공작은 하코덴 남작을 앞에 두고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말한다.
“나 여기 있노라. 여기 남겠노라.”
그는 아트레이데스의 인장 반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사막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폴과 어머니 제시카는 레토 공작이 남긴 반지를 보며 그의 죽음을 알게 된다. 기세를 몰아 하코덴 가문은 다시 아라키스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이제 하코덴 가문에게서 이 행성을 구할 희망은 이 두 사람뿐이다.
폴은 실제 전투 경험이 전무한 상태다. 그는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받았고, 필름을 통해 익힌 풍부한 생존 지식을 갖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사람을 찔러본 적 없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는 어린 소년이다.
하지만 폴은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아라키스 행성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내가 과연 선택받은 자일까?” 반문하고 있을 틈이 없다. 폴은 두려움에 맞서 아버지가 원했던 바른길을 찾고, 자신이 힘없는 어린애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아주 작은 사막 쥐 한 마리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 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고 있는데, 이 소년이라고 못할 것이 있겠는가.
“두려움은 소멸을 가져오는 작은 죽음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마음의 눈으로 그 길을 보리라.
그 길을 지나면 나만 남으리.”
프레멘 마을을 찾아 떠나는 길, 폴은 폭풍을 피하지 않고, 비행체의 방향을 바꿔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두려움을 피하기보단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야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제시카의 오래된 가르침을 직접 행하는 첫 순간이다.
“제 길은 사막에 있어요.”
폴은 가문의 반지를 끼고, 아버지가 원했던 이 행성의 힘을 찾기 위해 사막에 남기로 결정한다. 길이라곤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모래폭풍만이 불어오고 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엔 아버지가, 우리가 바라던 답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과연 폴은 하코덴 가문과 제국의 검은 속내를 쓸어내고, 닥쳐올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나의 편의와 이득을 위해 싸우고, 지배하고. 끝없는 이기심을 뿜어내는 존재들을 이겨내고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예리하게 변하는 폴의 눈빛에서 짙은 결연함이 느껴진다. 이 소년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뿐이다. “내가 선택받은 자가 맞을까?” 두려워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전에 두려움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두려움에 묻혀버린 진짜 나의 길과 답을 찾기 위해서.
친절히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꽤나 긴 시간을 할애한 파트다 보니 영화 자체의 긴장감이나 속도감이 강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나에겐 충분히 차고 넘치는 영화였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진심으로.. 다음 편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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