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9-17 22:28:23
[SICFF 데일리] 독립 사건을 독립 사건으로
영화 <벼랑 위의 남매>
SYNOPSIS.
여동생과 함께 산 정상으로 소를 몰아야 하는 소년.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 귀여운 남매가 어우러진 모험이야기
PROGRAM NOTE.
부모님이 마을에 간 사이 에브라힘과 그의 여동생 일마는 산에서 소들을 돌본다. 에브라힘이 다리를 다쳐 바위벽 위로 올라올 수 없게 되자 일마는 혼자서 모든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녀는 씩씩하게 임무를 수행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일마는 점점 불안해진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 어린 남매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더구나 남매가 심각한 상황에 빠질수록 남매의 대화는 코믹하게 흘러간다. 팽팽한 긴장감과 무해한 웃음을 오가며 보는 이를 쥐락펴락하는 연출과 남매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가 매력적이다. 귀여운 남매의 일화에 소박한 가족의 애정과 신뢰가 깊이 스며있는 영화. 가족관객에게 추천하고 싶다. (함유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 말을 증명하듯, 이 영화는 헬리캠으로 찍은 원경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 초원과 염소 소리, 황금빛 햇살까지 담아내면서. 그 안에 아이들은 그림의 일부처럼 존재한다. 엄마와 아들, 딸과 아빠, 뛰고 손을 씻고 아빠의 입맞춤을 받고, 풍경의 일부로.
가족이 사는 방식은 더없이 검박하고 단출하여 아름답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을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나누어 한다. 모처럼 마을로 나가는 부모님의 '쇼핑 리스트'도 네 식구가 나란히 앉아 적는다. 이제 막 철자를 배우고 있는 듯한 막둥이, 딸 일마(Ilma)가 알쏭달쏭 헷갈려 하며 글자를 써 가면서. 얼핏 퉁명스러운 것 같아도 아이들이 원하는 건 또 하나씩 다 사주는, 화목한 가정이다. 남매도 적당히 남매답게 투닥투닥하며 사이가 좋은 것이 귀엽기만 하다.
부모님이 마을로 먼 길을 떠난 날, 에브라힘(Ebrahim)과 일마 두 사람은 부모님이 남겨주신 미션을 차곡차곡 수행한다. 양을 돌볼 것, 도토리를 말려둘 생각이니 양이 먹지 않도록 주의할 것, 피스타치오 열매를 좀 따둘 것. 동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오빠 에브라힘에게는 "일마도 이제 다 커서 알 건 다 안다"는 말도 남겨둔다. 두 아이는 제법 능숙한 솜씨로 양을 친다. 둘러멘 가방 속 라디오에서는 '이란 국민 여러분' 어쩌고 하는 말이 흘러나오지만, 이들은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는 그냥 이 땅의 일부로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다 일마가 벌을 발견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벌이 있다는 건 꿀도 있다는 뜻. 아빠가 분명 가지 말라고 했던 절벽 가에 매달려 꿀을 확인한 에브라힘은, 갑자기 등이 간지러워 손을 놓치면서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발목을 다쳐 올라올 수 없는 에브라힘과, 그 위에서 엉엉 울기 시작한 일마, 두 사람의 하루는 뜻밖의 점입가경으로 갈수록 고달파진다. 이 영화는 두 남매가 절벽에서 보낸 하루를 꼬박 담은 영화다.

#전통, 기대거나 혹은 반하거나
두 아이는 일단 재난영화의 법칙을 어겼다. 가지 말라는 금기가 있는 곳에는 가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가버린 이상, 일이 벌어진 이상 두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 각자가 배운 내용을 들추어 보자.
나는 엄마에게 "길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혹시라도 (예를 들어 낯선 사람이 쫓아와 유괴의 위험이 있다던가 하는) 위험 상황에 처하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배웠다. 어느 가게를 들어가도 가게 주인과 부모님이 다 알음알음 아는 사이일 법한 작은 지역 사회였고, 20년쯤 전이니 지금과는 다른 가르침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이들이 했어야 하는 제1의 행동은, 에브라힘으로서는 가만히 있는 것, 일마가 달려가서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두 아이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어른들을 불러오겠다는 일마를, 에브라힘이 말린다. 사유는 여자 혼자 다니다가 낯선 사람을 마주쳤을 때 실추될 "명예". 10살도 채 되지 않은 일마, 가축을 돌볼 때는 너무 어려서 돌보기 귀찮은 동생으로 여겨지는 일마가 바깥에 나가면 여자로 인식되어야 하는 현실을 말한다.
그밖에도 두 아이가 내린 선택 중에는 전통에 기대느라 '오... 저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싶은 것들이 더 많이 있었다. 일마의 머리를 가리는 데 쓰는 스카프가 벼랑 아래로 내려가 에브라힘의 부어오른 발목을 감았다가, '혹시라도 낯선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 때문에 다시 벼랑 위로 올려보내는 순간도 그렇고. 자칼이 다가왔을 때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게 신발을 단단히 신는 대신 혹시나 하는 미신을 따르기 위해 신발을 거꾸로 신는 일마의 선택도 그렇고.
그러나 두 아이가 마음 기대는 곳 또한 전통이다. 불사조 깃털을 태우면 불사조가 도와주러 온다는 설화를 생각하며 불사조 깃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화 속 인물이 태우지 않은 깃털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 하는 오색찬란한 상상력은 아이들이 그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준다. 상태가 좋지 않아 나오다 끊겼다 하며 사건의 긴장감을 더하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서른 마리 새' 시무르 설화 또한 그렇다. 잠깐이지만 두 아이를 미소짓게 한 일마의 노래 또한 입에서 입으로 배운 방식일 것이다.
불사조의 깃털은 전설 속에서 사람을 구해준다고 하지만, 사실 에브라힘의 등을 간질인 것부터가 깃털이었다. 전통과 관습은 절대 일면만 가질 수 없다. 사람을 따스하게 감싸고 기댈 곳이 되어주는 면과 갑갑하게 옥죄는 면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병존할 수 있다.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하게
따뜻한 면과 갑갑한 면을 동시에 품은, 전통과 관습이라는 세계.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라왔다. 그래서 현명하고, 그래서 다정하며, 그래서 용감하다. 동시에 이따금씩, 그래서 비합리적이고, 그래서 무정해 보이고, 그래서 겁을 낸다.
그러나 전통이 가진 엄정한 면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충분히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하다. 에브라힘은 하늘의 기색과 양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날씨를 예측하고, 일마에게 적절한 대처 방법을 일러준다. 떨어지면서 입은 부상에 아프고 당황스럽지만, 일마가 너무 겁 먹지 않도록 소리도 지르지 않고, 선의의 거짓말도 적당히 섞는다. 일마 또한 오빠가 시킨 일을 충실히 하고, 시키지 않은 다정한 일까지 고사리 손으로 바지런히 한다. 자기들이 지쳐가는 와중에도 새끼 염소가 지쳐가고 있다며 불쌍히 여기고, 심지어 자칼까지도 안쓰러워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진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한 면이 가장 빛난 장면으라면, 나는 극악의 상황에서 일마를 달래던 에브라힘의 대사를 꼽고 싶다. 아빠 말대로 일마도 알 건 다 알 만큼 컸기에, 이 파국을 시간 순으로 배열한다면 가장 앞쪽에는 자신이 벌을 보고 오빠를 부른 일이 놓일 거라는 걸 안다. 아직 어린 일마에게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운, 패닉이 몇 번이나 찾아오는 상황 속에서도 일마는 엉엉 울면서 오빠에게 미안해 한다. 자기가 신에게 죄를 지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도 한다.
그런 일마를 에브라힘은 부드럽게 달랜다. "사랑해, 일마. 네가 뭘 잘못했어?" 더불어, 벌과 꿀을 발견한 것은 잘못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일마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과 함께. "마을 세 개를 다 합쳐도 네가 가장 용감해."
두 아이의 나이를 합쳐도 스물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서른이 넘은 내가 너무 배우고 싶어하지만 잘 되지 않는 것을, 에브라힘은 이미 알고 있다. 그건 바로 독립 사건을 독립 사건으로 보는 능력이다.
시간 상 앞에 놓였다고 해서 반드시 인과 관계인 것은 아니다. 그 합리적 사고 방식을, 에브라힘은 알고 있다. 전통이 이따금 그들에게 묻힌 비합리적이고 무정해 보이고 겁 나는 마음과 태도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기만의 힘으로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한 것이다.

#Somewhere between the rocks
영화를 보면서 '아동 보호'라는 말을 많이 떠올리긴 했다. 안온한 보호가 부재한 상황을 통해 아동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영화이기도 했으므로. 불사조의 깃털도 튼튼한 밧줄도 없는 아이들에게 목소리 높여 부를 호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묘하게 안심하게 하는, 그런 안전망이 모든 아이들에게 있길 바라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전망은 어른들이기 이전에 아이들 자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에브라힘을 절벽에서 끌어올려 줄, 그래서 에브라힘에게 내일을 선사할 힘은 어른들에게 있겠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에브라힘과 함께 이 바위 틈 어딘가에 걸려 있다는 생각.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Somewhere between the rocks 바위 사이 어딘가'인데, 거기야말로 불사조의 깃털 같은 미래가 깃들어 있다는 생각 말이다.
이유는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한 아이들의 면면 그 자체. 자기 나름대로 사투를 벌인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나서야, 에브라힘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부르고 일마는 멀리서 어른들을 모시고 달려온다. 비로소 문제의 해결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하루만큼 더 현명하고 다정하고 용감해진 아이들이, 이렇게 세상을 안전히 살아갈 방법을 또 하나 배운 아이들이 자라난다.
독립 사건을 독립 사건으로 볼 줄 아는 아이들의 시각으로 전통과 관습을 해석해 간다면, 전통와 관습이 사람을 옥죄는 면보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면이 더 강력하게 기능하지 않을까? 사실 여성이 머리카락을 스카프로 가리는 것과 여성(을 비롯한 가족)의 "명예 실추"는 각각 별도의 독립 사건이다. 여성이 혼자 걷다가 낯선 사람을 마주치는 것과, 그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것 또한 논리적인 인과 관계가 없다. 범죄가 일어난다면 범죄와 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가해자의 행위뿐일 테니까.
그러므로 에브라힘의, 그리고 그 에브라힘의 애정 어린 말로 위로를 받은 일마의 성장으로, 바위 틈 어딘가에 매달려 있는 미래는 점차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란에서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미래 또한. 모든 독립 사건이 독립 사건으로 존재하는, 지금보다 가뿐하고 산뜻한 미래를 꿈꿔 본다.
9월 15일 13:30-14:52 롯데시네마 은평 7관
9월 16일 10:00-11:22 롯데시네마 은평 3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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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키즈 크리에이티브 2
클린턴은 기숙사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10살인 어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크리켓 골든 트로피를 얻었던 만큼 크리켓을 잘했다. 기숙사에서 키가 큰 아이가 자신을 괴롭히고 비하하는데 클린턴은 자신의 화를 참으며 과거에 트로피를 손에 쥐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클린턴은 기숙사 학교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아이이다. 식당에 빌린 돈이 많아 갚지를 못해 밥도 못 먹고 선생님도 클린턴을 소외시키고 만다. 이런 극악의 상황에서 자신과 같은 전학생을 본다. 그 전학생도 말수가 적고 소외당하는 아이지만 클린턴은 그 애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기숙사에서 힘든 시간을 겪은 클린턴에게 기회는 있을까?
제인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 8살 어린이다. 하지만 그녀를 키우던 엄마가 우울증으로 인해 병원 치료를 받게 되어 할머니 집에 맡겨지게 되자 싫은 감정을 내보인다. 할머니는 그런 제인에게 양파 파이를 만들어주고 레시피도 공개하지만 싫증이 난 제인은 집 뒤뜰에 있는 숲에 가게 되고 길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눈을 뜨자 자신 앞에 보이는 건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고 거대한 몸집의 큰 거인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도망치려 하는데... 이 거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아의 소수 민족인 아제리 민족은 유목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성들과 아이들은 글자를 못 읽기에 학교에 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파샤의 딸인 귀네쉬는 글자를 읽고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귀네쉬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파샤의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을까?
어린이들이 미래의 중요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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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타고 내려오는 다정함
‘당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를 다루는 문제는 국내외 다양한 영화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년 개봉했던 재일조선인 박수남 감독님과 박마의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와 2019년 개봉한 강상우 감독님의 <김군>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데, 단순히 로맨스나 성장스토리에만 그치지 않고 과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화이트 버드>에서도 이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과거는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리고 ‘이후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의 경험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
<화이트 버드>에서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었던 줄리안은 새로운 지역으로 전학을 가고, 새로운 학교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의 할머니 사라는 그런 그에게 차 한잔을 권하며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을 구해주었던 줄리안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 형식적으로만 바라본다면 흔히 현재 줄리안과 사라가 사는 시점의 이야기인 외화와 어린시절 유대인 소녀 사라와 다리가 불편한 소년 줄리안의 이야기인 내화로 구성된 단순한 액자식 구성이지만, 더 나아가 이것은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한 세대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인 줄리안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를 기억하게 된다는 점에서 포스트 메모리의 관점으로,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맺는 상호적 관계의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사라는 어린 시절 유대인으로서 2차 세 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따돌림을 당하던 소년 줄리안의 도움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약자로 취급 받고, 차별 받던 줄리안의 작은 배려와 선의는 무너져가는 사라의 일상을 구하고, 두 소년 소녀는 어두운 상황 속 서로를 비춰주는 빛이 되어준다. 영화의 마지막, 사라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서로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성장을 통해 많은 것들이 잊혀도 일상 속 다정함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나치의 집권과 유대인 학살, 수용소로의 연행, 검문 등 두 소년 소녀의 성장과 러브 스토리 뒤로는 사라와 줄리안의 일상 곳곳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2차 세계 대전의 역사가 계속해서 등장하며 당대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마리안느 허쉬는 ‘메모리’ 대신 ‘포스트메모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후 세대들이 어떤 방식으로 트라우마적 사건과 역사에 접속하는 지에 집중하고, 이후 세대는 직접적 경험이 아닌 사진이나 부모가 들려주는 ‘잠자리 이야기(bedtime story)’를 통해 이러한 기억들과 간접적으로 매개 된다고 본다. <화이트 버드>를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줄리안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접하는 2차 세계 대전의 기억은 포스트메모리가 되고, 차 한잔과 함께 시작한 할머니의 유년시절 이야기와 사진은 과거 2차 세계대전의 기억과 줄리안을 잇는 매개체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라가 손자 줄리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줄리안이 변화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긍정적으로 변화 시키는 모습은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며 과거와 현재의 능동적인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사라의 유년 시절은 달라진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다정함’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통해 현재와 연결된다.
국적도, 세대도 다른 나 역시 <화이트 버드>를 통해 사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나의 삶과 유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줄리안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태도를 성찰 해 볼 수 있었 듯, <화이트 버드>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현재까지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들에 닿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사건은 종식되었지만, 동일한 사건이 아닐 뿐, 현재 세계 곳곳과 작은 일상 곳곳에서도 늘 크고 작은 분쟁과 권력의 남용, 무분별한 차별과 편 가르기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 속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건, 한 생명을 구하는 건 여전히 소년 줄리안이 사라에게 내밀었던 손처럼 작은 관심과 선의가 아닐까? <화이트 버드>는 사라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통해 작은 다정함과 선의의 위대함을 손자 줄리안을 넘어 관객들에게 까지 전한다.
* 위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의 자격으로 <화이트 버드>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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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액션도 미처 못 담은 회색지대의 삶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징역형을 감형하는 조건으로 CIA의 기밀 프로젝트인 '시에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코드네임 '식스(라이언 고슬링)'. 일명 '그레이 맨'이라 불리는 첩보 요원이 된 그는 여느 때처럼 방콕에서 타깃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기 직전 자신을 시에라 프로그램 참여자라고 밝힌 코드네임 '포(four)'로부터 메모리 카드를 건네받는다. 그 안에 CIA의 기밀 정보가 든 것을 알게 된 후 식스는 상관인 '카마이클(레게장 페이지)'에게 메모리 카드를 넘기는 대신 그 기밀을 파헤치기로 결정하고, 이에 카마이클은 전직 CIA 요원이자 소시오패스인 '로이드(크리스 에반스)'를 보내 그를 추적한다. 식스는 전직 상관인 '피츠(빌리 밥 손튼)'와 방콕에서 만난 요원 '대니(아나 데 아르마스)'의 도움을 받아 로이드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조금씩 숨겨진 진실에 가까워진다.
7월 13일에 극장에서 개봉했고, 22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인 영화 <그레이 맨>은 베스트셀러 시리즈인 마크 그리니의 '그레이맨' 시리즈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레드 노티스>와 함께 넷플릭스 역사상 최다 제작비인 2억 달러가 투입된 <그레이 맨>은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 에반스, 아나 데 아르마스, 레게장 페이지 등의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며 개봉과 공개 전부터 숱한 화제를 낳았다. 특히 <그레이 맨>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통해 비평과 흥행을 모두 잡은 루소 형제의 연출작이었기에 더욱 큰 기대를 모았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레이 맨>은 그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 화려한 액션 시퀀스와 오락성은 액션 영화를 다룰 줄 아는 루소 형제의 장점을 제대로 선사한 반면,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그들의 스토리텔링은 첩보영화로서의 독특함과 '그레이 맨'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레이 맨>은 시작부터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로 눈을 사로잡는다. 루소 형제가 만든 MCU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달리 액션의 퀄리티가 높기로 소문나 있었는데, 이번에도 거액이 투자된 게 단숨에 느껴질 정도로 그 솜씨를 발휘한다. 방콕에서 타깃인 '시에라 포'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식스는 고층 빌딩 한가운데서 미션을 이행하는데, 신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는 그 시작을 더 화려하게 꾸며준다. 뒤이어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사투와 폭발하는 건물, 프라하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트램을 배경으로 한 총격전까지 영화는 끊이지 않는 액션씬을 선보인다.
이처럼 스트리밍 작품이지만 극장에서 볼 충분한 이유가 되는 <그레이 맨>의 액션은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하나는 아날로그적이고 육체적 쾌감이 돋보이는 액션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클리셰를 역이용 한다는 점이다. 타깃을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대신 나이프와 주먹으로 직접 제압하면서 시작된 <그레이 맨>의 액션씬들은 가급적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맞부딪히는 형태의 액션을 고수하며, 마지막 대결도 주먹싸움으로 귀결된다. 이는 도시나 배경이 바뀔 때마다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타일리시한 도입 샷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일전에 루소 형제가 메가폰을 잡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MCU 내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히어로 대신 첩보 요원을 내세우면서 그 특징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루소 형제가 제작하고 그들과 협업했던 무술 감독 샘 하그레이브가 연출한 넷플릭스 작품인 <익스트랙션>이 국제적으로 확장된 듯한 느낌도 든다.
한편 대놓고 007을 언급하는 <그레이 맨>은 여러 클리셰의 방향성을 살짝 역이용하는 영리함으로 무장한다. 우선 카 체이싱이나 추격전처럼 액션 영화의 감초나 다름없는 액션 시퀀스는 배제시킨다. 대신 원거리 저격 대신 육탄전을 벌이는 초반부 방콕에서의 장면처럼 예상을 조금씩 벗어나는 길을 걷는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미로 속에서도 오히려 식스와 로이드를 정면으로 대결시켜 버리면서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낸다. 물론 한계점이 없지는 않다. 프라하 시내에서 펼쳐지는 액션이나 다수의 적이 기다리고 있는 적군의 본부에 소수 인원이 침투하는 장면 등은 루소 형제의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연상시킨다. 즉, 액션 시퀀스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액션을 통해 감정과 드라마까지도 전달하면서 기시감을 잊게 만드는 점에서 이들의 탁월함은 다시금 빛난다. 수류탄을 이용한 속임수를 한 번은 유머스럽게, 다른 한 번은 뭉클하게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첩보 영화로서의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클리셰의 역이용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냉전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냉전이 저물며 활력을 잃은 후 다양한 변주를 해 왔고, 새로운 클리셰들을 만들어 냈다. 소련으로 대변되는 외부의 적을 대신하기 위해 첩보 조직 내부에 적이 있다는 방식으로 새로운 적을 상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이슨 본처럼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주인공의 등장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왜 첩보 요원으로서 활동하는지, 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까지 국가의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지, 왜 국가의 이익이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이 왜 옳은지 혹은 잘못된 것인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는다. 첩보 영화의 대표주자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최신작인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복잡한 이론적 배경을 제치고 나면 <테넷> 역시 싸워야 하는 이유를 갈구하는 첩보영화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레이 맨>은 지금까지 많은 첩보물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뻔뻔해 보일 정도로 간단히 답하면서 클리셰를 반바퀴 비튼다. 영화는 스파이의 존재 의의와 목적, 그리고 정당성에 대해 깊이 고찰하지 않는다. 대신 손에 이미 피를 묻힌 이상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무의미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식스는 감옥에서 꺼내 주는 조건으로 합류한 시에라 프로젝트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피츠의 말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 수긍하고, 지금의 삶이라도 지속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모색한다. 사실 재소자 중에 가능성 있는 이들을 스파이로 활용한다는 콘셉트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클리셰다. 그런데 스파이가 될 재소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그레이 맨>은 다른 첩보물과 이질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대신 <그레이 맨> 속 인물들은 '어떻게?'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방콕에서의 첫 번째 임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식스는 코드네임 시에라 포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전혀 묻지 않는다. 그가 CIA에 위협이라는 최소한의 정보만 들은 채 미션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는 타깃 제거 방식을 두고서는 책임자인 카마이클과 충돌한다. 민간인과 어린아이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임무를 수행하라는 카마이클의 명령을 식스는 거부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어떻게'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그레이 맨'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재고될 수 있다. 영화 속 그레이 맨은 피츠가 만든 비밀 첩보 요원을 뜻한다. 그러나 회색은 흑과 백 사이에서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그레이 맨'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선이 불분명하고 이를 구분하려 하지도 않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들린다. 이는 식스가 포에게서 건네받은 메모리 카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자료에는 카마이클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로이드를 고용했고,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첩보 임무를 진행했다는 증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정보를 접한 인물들 중 CIA의 존재 이유나 임무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는 이는 없다. 그들은 그저 임무를 진행할 때 어느 수준까지 윤리적 기준을 지킬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이는 작중 식스와 로이드의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는 대립 구도인 이유다. 매사에 침착하고 냉정한 첩보 요원 식스와 기분파이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민간 청부업자 로이드는 얼핏 보기에 상극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학대에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아버지를 총으로 죽인 자신의 행동이 칭찬받을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식스의 모습에서는 왜 그가 '그레이 맨'인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애초에 도덕적 기준을 준수한 적이 없는 사이코패스인 로이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들의 마지막 대결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한 사투다.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의 경험을 동력 삼아 식스가 로이드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만 보더라도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문제는 삶의 근본적인 의미와 이유 대신 삶의 방식에 주목하는 <그레이 맨>의 스토리가 지닌 깊이를 루소 형제가 온전히 살려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어떤 방식의 삶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 고민한 바가 드러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작중 식스와 대니를 로이드와 카마이클로부터 구분 짓는 유일한 차이는 보편타당한 윤리적 선을 준수하는지 아닌지에 불과하다. 민간인과 어린 아이를 죽이지 않는 것,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사랑과 신뢰의 의미를 아는 것.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전제 위에서 행동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영화는 그 선을 넘는 사람은 부적절하고, 그렇지 않은 이는 적절하다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 결과 평면적인 '그레이 맨'들의 이야기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굳이 인물들의 과거사나 심리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아도 그들의 손쉽게 편 가르고 대립시켜 이야기를 전개할 최소한의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릭터들의 과거사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식스의 과거사는 운을 띄우는 감옥에서의 초반부, 중반부의 플래시 백 장면, 그리고 대니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진상까지 딱 세 대목에 불과하다. 로이드 역시 카마이클과 하버드 동창이었고, 소시오패스라서 CIA에서 퇴출되었다는 것 외에는 과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빈 공간은 끝없는 액션과 익숙한 관계성이 대신한다. 식스가 자신과 같은 처지인 포를 제거하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유사 가족인 식스와 클레어의 관계는 <레옹>을, 식스와 대니가 수십 명이 지키는 성을 공략하는 모습에서는 <존 윅>과 <윈터 솔져>가 보인다. 그래서 결코 간단할 수 없는 식스의 복잡한 내면, 다른 첩보 영화들과 비교되는 차별점은 깊은 우물 속으로 가라앉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는 대중성과 오락성을 위해 <그레이 맨>의 잠재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선택처럼 보인다.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깊이 고찰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순응하고, 대신 그 안에서 최선의 방식을 찾으려는 삶의 태도. 이러한 태도는 나날이 퍽퍽해지는 현실의 삶을 사는 많은 관객 혹은 시청자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모순된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의 본질적인 원인을 찾고 개선할 수단이 개개인에게는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요 인물들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면, 시청자들의 동병상련을 유도하고, 극의 몰입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이 흔히 보여주는 단점의 연장선이다. 창작자들의 자유와 재량을 최대한 보장하는 넷플릭스의 원칙은 창작자들의 단점을 극대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그레이 맨>이 정확히 그 사례에 해당한다. 루소 형제는 이미 전작들에서 오락성과 대중성을 위해 드라마적인 측면을 희생시킨 전적이 있다. <윈터 솔져>는 안전을 위한 자유의 통제라는 사회비판적 주제를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도로 풀어낸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빌 워>는 자유와 통제 사이에서 벌어진 상이한 정의관의 충돌을 두 주인공의 개인사와 감정적 충돌에 국한시키는 측면이 있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도 하나의 이어지는 작품으로 본다면, 생명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어벤져스의 철학과 극단적 공리주의자인 타노스의 신념 간의 논쟁에 대한 결론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대중성과 오락성에 집중하는 루소 형제의 작품이 세련되지만 항상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고, <그레이 맨>도 다르지 않다.
그나마 단순해질 수 있는 흐름에 화려한 액션만큼이나 변주를 주는 대목을 꼽자면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캐릭터들의 매력이다. 우선 크리스 에반스는 <나이브스 아웃>에서 보여준 양아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선보인다. 감정을 전혀 숨기기 못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광기 어린 인물인 로이드를 영화의 톤에 알맞게 표현해낸다. 그가 보여준 로이드의 매력은 정반대의 매력을 뽐내는 식스와의 조화 속에서 더욱 빛나기도 한다. 라이언 고슬링은 정적이고 여유로우면서도 한 끗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또 상당한 지략과 언변을 자랑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잠깐 동안 <드라이브>에 등장한 라이언 고슬링을 보는 듯한 인상도 준다. 이에 더해 <노타임 투 다이>에서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바 있는 아나 데 아르마스가 또 한 번 조력자로 등장한 점 역시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조차도 단순한 오락 영화 그 이상일 수 있었던 <그레이 맨>의 잠재력을 살리지는 못하며, 영화를 압축한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서 남는 아쉬움도 끝끝내 달래지 못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넷플릭스를 만나 극한으로 발현된 루소 형제의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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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진 한국 로맨스 영화 '달짝지근해: 7510' 스포일러 포함
달짝지근해: 7510
23.08.15 개봉
코미디, 12세 관람가
한국, 119분
감독: 이한
출연: 유해진, 김희선, 차인표 등
유해진 배우가 로맨스에 도전을!?
게다가 상대 배우가 김희선 님이다?
형은 이것까지 성공하면 진짜 다 한 거야...
라는 나영석 피디님의 말씀이 있으셨는데
로맨스 진짜 잘 어울리세요 ㅋㅋ
전체적인 분위기가 엽기적인 그녀 40대 버전 같더라구요
그나저나 제목이 왜 '달짝지근해:7510'일까 했는데
유해진 님 캐릭터 이름이 치호(75)고
김희선 님 캐릭터 이름이 일영(10)이었어요
근데 이름을 그렇게 지을 정도로 의미 있는 건간 모르겠더라구요
김희선 님 남편 이름은 이육구(269)던데 그냥 코믹 요소인가,,
아 근데 보고 있으면 카메오 라인업 진짜 대박이에요
일개 커플로 임시완, 고아성 님이 나오시고
개짧게 나왔다 죽는 역할로 정우성 님이 나오시고
코믹스러운 장면만 맡는 약국 직원이 염혜란 님이시고...
외에도 그냥 카메라에 비추는 얼굴마다 아는 얼굴이에요
아마 감독님의 필모가 대단하신 만큼......
다들 우정 출연을 해 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런 B급 코미디 영화는
사실 볼 때 기대하고 보는 마음이 크지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추석 시즌에 나왔으면 잘 팔렸겠다 싶은... 가족 영화랄까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웃기는 건 아니지만
사소한 말장난이 웃기고
무엇보다 유해진 님이 대사 치는 실력이 좋으시니까
평범한 대사도 웃기게 보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많이 본 듯한 구성이 아니라서 좋아요
보통 석호가 정말 죽일 만큼 나쁜 놈이라서
끝끝내 일영에게 나쁜 짓을 한다~ 가 마무리일 법한데
원랜 정말 착한 형이었고 마지막엔 회개도 했더라고요
병훈과 은숙도 처음엔 치호, 일영 커플을 방해하려 했지만
단 10초 만에 서로에게 반해 아름다운 커플이 되었고요
주인공을 크게 방해하는 인물이 없는 게 이 영화의 특징이에요
그냥 커플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OST가 나오는 방식이 굉장히 특이해요
치호와 일영의 옆에서 어느 커플이 프러포즈를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치호와 일영의 뒤로 라이브가 깔리고
와중에도 둘이 서로 고백하는 멘트를 엿듣느라
커플 둘이 힐끗거리는 게 웃음 포인트 ㅋㅋ
다만 아쉬웠던 점이 있냐 하면
은근한 범죄 미화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너한테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
그냥 너희 엄마한테 시비 걸 생각으로 찾아갔던 건데
네가 먼저 날 때리고 협박하고 (생략)"
이게 주거 침입을 한 사람의 대사입니다
심지어 길에서 일영의 미성년자 딸을 발견하고
그 뒤를 밟아 닫히는 문을 잡아 멋대로 들어간 건데요
실제로 혼자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는 중인데
대중 문화에서 이런 식으로 미화해 버린다면......
범죄자들에게 변명할 거리를 주는 것밖에 안 되지 않을까요?
또또 아쉬웠던 건 일영의 남편 등장이 허무했다는 것?
뭐 나쁜 놈이라 죽이고 싶다느니 뱀 사냥을 다닌다느니
겁이란 겁은 온통 줘 놓고서
자기가 잡았던 뱀한테 물려 교통사고를 내고 사망해요
등장한 지 약... 2분 만에......
그 남편 역할 맡으신 분이 정우성 배우님이신데
그냥,, 특별 출연 시키고 싶어서 어떻게든 끼워맞춘 느낌
아무래도 이런 장르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기 아깝잖아요
저는 쿠폰을 잘 잡아서 4,000원에 봤어요 ㅎㅎ,,,
VOD로 나왔을 때 봐도 늦지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특전 주는 것도 없어서 다들 잘 안 가시는 것 같더라고요
*스토리: 3/5점
*연출: 3/5점
*영상미: 2/5점
*연기: 5/5점
*OST: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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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한의 생존기
영화 폴 600미터 결말 줄거리 정보 | 한정된 공간에서의 극한의 공포감, 아찔한 생존 영화
영화관에서 볼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봤던 영화가,
이번에 쿠팡 OTT로 풀려서 호다다닥 보고 왔어요!
한정된 공간, 아찔한 고공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찔한 생존 영화를 다루고 있는
영화 폴 600미터는 기존과는 다른 스릴로 우리에게 긴장과 짜릿한 전율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아찔하며 손에 땀을 지게 만드는 스릴이 넘쳤던 영화 폴 600미터 리뷰 시작해 봅니다!
기본 정보
장르 : 재난, 액션, 스릴러, 드라마
감독 / 각본 : 스콧 만
출연진 : 그레이스 캐롤라인 커리, 버지니아 가드너, 제프리 딘 모건
개봉일 : 2022년 11월 16일
평점 : 7.96
스트리밍 : 쿠팡, 티빙, 웨이브, 왓챠
기획 의도
사상 최고 고공 서바이벌
지상에서 가장 높은 600m 타워
내려갈 단 하나의 길이 끊겼다!
핸드폰 먹통
식량 전무
잠들면 추락
한계 초과! 압도적 스릴!
지금껏 없었던 고소공포에 전율한다
여담
감독에 말에 따르면 오프닝을 제외한 모든 장면은 실제라고 합니다.
실제 B67 타워는 있지만, 그 타워에서 촬영한 것이 아닌 모하비 사막에 있는
600미터 높은 탑의 사막에서 촬영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상공에서 보이는 실제 뒷 배경을 사실 그대로 영화에 담아 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폴 600미터 결말을 살펴보자면
600미터 상공에 갇혀버린 두 친구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구조 요청을 보내보지만
매번 실패한 두 친구, 올라오면서 안테나에 떨어져 있는 식수를 구하기 위해 헌터가
힘들게 내려가지만, 이미 헌터는 추락해 있고 지금까지 환영을 본 베키.
마지막 희망으로 핸드폰으로 구조요청을 메시지를 보내 지상으로 추락시켜
다행히 구조요청 메시지가 전달되어 지상에서 아버지와 재회하는 베키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폴 600미터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긴장감과 간절함을 선사하여
중간의 반전미를 한 번 더 놀라게 해줬어요.
어찌 보면, 영화를 보는 순간 여길 왜 올라가고, 분명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걸 알지만,
그걸 다 인지하면서 올라가는 주인공, 주인공은 어떻게든 살아난다는
불변의 진리는 깨지지 않았지만 그 진리를 새롭게 잘 풀어낸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한줄평 : 들어가지 말라는 곳은 들어가지 마!, 올라가지 말라는 곳은 올라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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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영화는 현실이다
“제 누나, 로키타는 왜 체류증을 못 받나요?” 누나와 함께 살고 싶은 토리 취직을 해서 토리를 학교에 보내고 싶은 로키타 서로의 보호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토리와 로키타> 줄거리
감동 걸작이라니 내가 본 <토리와 로키타>는 충격적이고 잔인한 영화였다.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웠고, 중후반쯤 가서는 화면을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아마도 너무 현실적이고 토리와 로키타가 너무 어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의 끝이 예상이 갈 수밖에 없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보는 중에 두 손을 꼭 쥐며 차라리 개연성이고 뭐고 상관없으니 토리와 로키타가 마약왕이 되어서 행복하게 사는 결말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이 영화는 잔혹하고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벨기에에서 난민으로 분류되는 토리와 로키타는 그들의 삶을 좀 더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체류증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남매로 인정받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들의 관계는 피를 나눈 가족들보다 깊고 다정하다. 하지만 이런 그들을 모르는, 아니 알아도 모른 채 해야 하는 사회는 결국 로키타가 원하던 것을 주지 않는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돌파구를 찾아내며 설령 그 돌파구가 위험하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면 이들의 삶은 이미 사회에게 내쫓긴 법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토리를 위하는 로키타와 로키타를 위하는 토리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이런 서로에 대한 다정함이 오히려 그들의 삶을 구렁텅이로 집어넣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토리와 로키타 앞에 단단히 벽을 세운 사회는 이런 다정한 관계조차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혹독하다. 생활의 전반을 책임지는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지 못한 난민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평범하지 못하고 생존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그들은 마약 운반과 같은 불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으며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 못한다. 심지어 여성으로서 로키타는 수치스러운 일과 더불어 성적 착취까지 당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영화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내가 영화를 보며 느꼈던 공포를 어떤 이들은 실제로 매일 매 순간에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받았던 충격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느껴야 하는 것이었고, 이 충격은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비판과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자명했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다른 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의 다른 세상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다른 삶을 생각하게 하고 기존 의견을 바꾸도록 하는 거죠. 사람들은 영화로 다른 위치에 놓인 사람들을 바라보고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게 영화의 역할 아닐까요?” -장피에르
한겨레 기사 <‘벨기에의 거장’ 다르덴 형제 “영화는 약자 편에 서야 한다”>
“영화가 착취당하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도 없고, 프로파간다(선동·선전)가 돼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약자 편에 서야 합니다.” -뤼크
한겨레 기사 <‘벨기에의 거장’ 다르덴 형제 “영화는 약자 편에 서야 한다”>
인터뷰에서 감독들이 했던 말처럼 영화는 다른 이의 삶을 보여주고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결말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생각했다. 로키타가 만약 불법 체류증을 무사히 얻었다면 그들이 꿈꾸던 안정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단정했다. 왜냐면 불법으로 얻은 자격은 또 그들에게 족쇄가 되어 또 다른 착취를 불러왔을 테니까. 현실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떻게 끝이 나던 행복한 결말일 수 없다. 이 영화가 다시 쓰였을 때 좀 더 행복한 결말을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러니까 세상의 수많은 토리와 로키타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토리와 로키타>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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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청소년 성장드라마 / 너의 색 / 사람의 색을 보는 아이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너의 색" 후기입니다.
*볼만한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과 함께, 그리고 다 끝나고 1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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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듄: 드리프터> 티저 예고편
최강의 질주 액션!
생존을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우주를 수호하는 제미니 부대는 그레이 리더의 지휘 아래 에레보스 우주 전투에 뛰어든다.
간단한 보호 작전인 줄로만 알았던 미션은 어마어마한 대전투로 드러나고 설상가상,
제미니 부대는 모두 전멸하고 '아들러' 와 '헤이즐'의 함선은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함선과 희박한 산소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는 어둠의 그림자가 숨통을 조여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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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탈옥풍운> 메인 예고편
제한 시간 단 10분, 완벽한 계획
두 명의 보스 세력이 지배하는 극악무도한 교도소에
억울한 누명을 쓴 건축사가 신참으로 입소한다
양쪽 보스의 표적이 되어 매일 구타를 당하는 신참에게
아픈 엄마를 둔 고참이 탈옥을 제안한다
제한 시간은 10분, 빈틈없는 감시망을 돌파하기 위해
완벽한 계획과 도구를 하나씩 준비하는데…
목숨을 건 탈옥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