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9-19 21:01:23
[SICFF 데일리] 머리카락에 녹아 있는 기억
영화 <빵떡 소녀와 나>
SYNOPSIS.
애착 인형 이름은 제프 브리지스, 애정하는 밴드는 플리트우드 맥. 감수성 넘치는 베니와 똘똘한 사촌 돈의 특별한 우정
PROGRAM NOTE.
때는 1990년, 록밴드와 인형을 사랑하는 원주민 혈통 소년 베니는 어느 여름날 부모님에 의해 난생 처음 도시를 떠나 애리조나 원주민 보호구역 내 양떼 목장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애로운 외할머니, 빵떡 소녀라는 별명의 사촌 돈과 자유로운 영혼 루시 이모, 마초맨 삼촌 마빈을 만나게 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성인이 된 베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도시 소년 베니의 시선 아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조조래빗>을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 영화는 이제껏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원주민들이 중심이 된 가족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묘사한다. 록밴드와 TV의 시대였던 90년 미국의 멜랑콜리한 활기, 촌철살인의 유머가 넘치는 미국 인디펜던트 영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최은영)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적이 있다. 머리카락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는다고. 프로그램에서는 국과수에서 머리카락을 분석하는 실험을 해 보였는데, 오랫동안 종사한 직업은 물론 최근 바다를 다녀왔다는 사실까지 맞출 수 있었다. 어딘가 오래 묻혀 있다 ‘미라’ 상태로 나온, 한때 살아있던 사람의 몸에서도 머리카락은 비교적 오래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몸이 발견될 때마다 뉴스 기사들은 하나 같이 “상태 양호”하다고 했다. 이런 머리카락을 통해 DNA를 분석하면 또 그 몸이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가 주렁주렁 올라올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파편적으로나마 알게 된 이후로, 가끔 머리카락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머리카락 하나는 평소라면 그냥 방바닥에서 증식을 하는지 의심될 만큼 치워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현장에서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감고 말리고 빗고 넘기는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히 여길 무엇일 것이다.
<빵떡 소녀와 나>를 보고서는, 그게 그토록 애틋하고 찡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고른 영화였다. Frybread를 빵떡이라고 번역할 귀여운 생각은 누가 했을까. 유난히 잘 붓곤 하는 얼굴을 스스로 빵떡이라고 종종 말하긴 해도 그게 표준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어엿하게 영화 제목으로 들어가 있는 걸 보니 기특하기까지(?) 했다. 기특한 우리 탄수화물과 탄수화물의 조합 같으니.
귀여운 제목에 귀여운 스틸컷을 보고 골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옥수수죽처럼 슴슴하고 든든한, 어쩐지 따스하고 구수한 내음이 나는 영화였다.

1990년 미국. 키치하게 반짝거리는 도시 한 가운데서 베니가 열중하는 것은 헤드셋으로 쏟아지는 밴드 음악과 손에 쥐어지는 크기의 인형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액션 피규어') 두 개다. 인형 두 개로 베니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긴장 일촉즉발의 갈등 상황이다. 외부로 표현되지 않는 소리들이 베니 안에서 왕왕 울릴 때, 부모님 손에 의해 여름방학 동안 할머니댁 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된다. 베니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럴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심각한 표정의 부모님의 긴장과 갈등이 이미 베니의 손 끝 인형에까지 묻어나고 있으니까.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도달한 할머니 댁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초원 한 가운데 있다. 지금은 다 집을 떠난 이모 삼촌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여전히 벽에 붙어 있는 곳.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할머니와 나바호족 말을 할 줄 모르는 베니, 그리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삼촌. 그 사이로 빵떡이가 등장한다. 모두가 빵떡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름은 '새벽Dawn'인 소녀가.

영화는 실제로 방학 동안 할머니댁에 맡겨진 아이들의 일상처럼, 슴슴한 모험의 맛으로 가득 차 있다. 분명 애들한테 물어보면 "심심해 죽겠어!"라고 대답하겠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가장 소중한 추억이 거기 다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그런 날들. 아이들에게 호의적이고 다정한 태도를 보이며 아이들 마음을 풀어주는 이모가 있는가 하면, 있는 상처 없는 상처 박박 긁어 결국 갈등을 표면화하고 마는 삼촌도 있다. 그들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점 쓸쓸해지는 풍경이, 그곳을 지키는 마지막 사람들 같은 스산한 기분이, 함께 올라온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동네의 마지막 젊은이 같은 기분이 든달까. 내가 한국인이라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지, 저들에게는 잃어가는 원주민 문화의 흔적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영어 배우기를 거부한, 나바호족 문화를 꼿꼿하게 지키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양탄자를 만들어서 기념품 가게에 팔지만, 양탄자에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만은 할머니 곁에 모조리 남아있을 것만 같다. 양탄자 무늬의 의미와 거기 담긴 상징들, 나바호족에게는 '진실보다 중요한' 상징들을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이유식처럼 떠 먹인다. 할머니의 자장 안에서 나바호족의 문화는 보드랍고 편안하게 풀어진다. 비록 어른이 되면서 (영화에서는 서술되지 않는) 여러 원주민으로서의 어려움 속에서 제각각의 길을 가는 이모삼촌 삶의 궤적은 쓸쓸한 감정을 불러오지만, 아기의 '첫 웃음'을 축하하며 첫 웃음 잔치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이 영화 속 가족은 아주 애틋하거나 아주 냉담하지 않은, 그래서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임에도 어쩐지 더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볼 때쯤이면 할머니 댁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이 영화에서 가족들은 많은 순간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손주들의 머리를 정성껏 감겨 주고, 머리를 묶어 주고, 어루만져 주는 할머니의 사랑. 머리카락은 기억이라는 말은 DNA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나바호족의 상징에서도 진실이다. 가끔은 사실보다 상징이 더 진실을 닮아 있는 세상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지혜가 고요히 빛난다.
사실은 서로 다 알고 있던, 녹록지 않은 가족사를 이고 '빵떡 소녀와 나'는 앞으로도 성장해 갈 것이다. 아이라 해서 모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기억을 간직하듯, 가족 안에서 켜켜이 쌓이고 흐른 일들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떠먹여준, 고요하게 빛나는 지혜와 상징이 촛불처럼 아이들의 삶을 밝혀주지 않을까. 나도 촛불 하나를 들고 영화관 밖으로 나서는 듯한 마음이다. 어쩐지 창포 향이 날 것 같은 기분.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렇게 우리네 이야기 같아도 되나? 아마 그게 영화의 힘이겠지. 이 기억 또한 내 머리카락에 남을 것을 안다.
9월 17일 20:00-21:29 롯데시네마 은평 7관
9월 18일 19:30-20:59 롯데시네마 은평 6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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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2021)
개봉일 : 2021.11.18. (한국 기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국내에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가장 유명한 감독, 웨스 앤더슨. <개들의 섬> 이후 3년 만에 공개된 그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껏 봐왔던 그의 작품 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공개된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 일러스트와 여러 스틸컷들을 보자마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호텔과 색감이 자연스럽게 연관되어 떠올랐고, 이 영화는 ‘가장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아주 행복할 만큼 착-맞아떨어졌다.
이 두 작품은 외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웨스 앤더슨 감독이 담아낸 작품 속 메시지 또한 서로 닮아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구스타브와 제로의 우정, 오랜 시간 한 장소를 지켜낸 그들의 인생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작품이라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매거진인 ‘프렌치 디스패치’를 운영했던 편집장 아서와 매거진에 글을 기고한 작가들. 즉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글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존중하며 오랜 시간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주간지를 만들어온 편집장 아서와 저명한 필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발행을 앞두고 시작된다. ‘내가 죽으면 매거진도 발행을 중지한다.’라는 아서의 유언을 따라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매거진 또한 죽음(마지막 발행)을 준비하게 된다. 오래 이어져온 길고 긴 매거진의 역사가 끝나는 기념적인 마지막 발행본에 어떤 특종을 실을 것인가. 편집장실에 모인 저널리스트들은 각자의 특종을 이야기하며 고민한다.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
‘웨스 앤더슨스럽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을 전부 다 보지 않고 아주 일부만 봤다 하더라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확 체감이 될 것이다. 이전까진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두 가지만 추천한다면 <로얄 테넌바움>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이야기했는데,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고 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그만큼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스러움’의 끝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감각이 엿보이는 색감과 이야기의 구성과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과 매력 또한 이 영화의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가득 충전한다. 웨스 앤더슨 사단이라고도 불리는 빌 머레이, 애드리언 브로디, 오웬 윌슨, 틸다 스윈튼 배우와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색감에 완벽하게 물든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제프리 라이트 배우 등. 훌륭한 배우들이 웨스 앤더슨 감독이 그린 아름다운 세계를 가득 채운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매거진의 특성을 알맞게 살린 영화로, 각각의 주제를 가진 4개의 챕터로 이뤄진 옴니버스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저널리스트들이 준비한 에세이와 3가지 특종. 그리고 쇠락과 사망에 대한 챕터까지.
사건들 사이에 연관성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을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부분이 더 큰 장점으로 와닿았다. 필진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색다른 세상 이야기를 보며 여러 세계를 한곳에서 만나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모든 이야기가 매력적이었고, 하나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아.. 저런 미학적 세계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내 시간을 저 세계에 넣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세계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1회차 관람이 아닌 다회 관람을 추천한다. 1회차 관람 때는 초반부에 와르르 쏟아지는 정보량과 수많은 인물들, 눈을 깜빡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요소들로 가득찬 화면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그제서야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무심하게 ‘No Crying’ 던지던 아서 편집장의 작은 행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며 영화의 엔딩을 더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영화에 담긴 색감과 미술 장치들, 컷의 구성, 캐릭터들의 디테일 등을 눈에 담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영감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언제 멈추든 상관없이 모든 순간이 작품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시놉시스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가상의 도시 블라제 다양한 사건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지막 발행본에 실을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신을 매료시킬 마지막 기사가 지금 공개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도시의 성쇠, 희로애락. 모든 것을 함께 한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는 아서의 편집장 부임과 함께 '피크닉' 대신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이 매거진은 아서와 함께 탄생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마지막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여러 이야기를 담은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시작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성장과 함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모아 한곳에 엮어낸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훑어보는 도시 여행기를 시작으로 정신 병동에 갇힌 천재 예술가의 비밀, 이 도시에 오랜 시간 이어져온 공화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겁 없이 커다란 게임을 시작한 청년들의 도전기, 아주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경찰서장의 아들 납치 사건,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도록 매거진을 만들어준 훌륭한 저널리스트 아서의 일대기까지.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은 아서와 이 도시의 일대기이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다.
알고 보면 다정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르는 필진들
세 편의 특종과 부록에 해당하는 도시 에세이 한편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착착 줄 맞춰 지나가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해당 호를 준비하며 필진들의 글을 읽는 아서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무심한 표정으로 'No Crying'을 강조하던 아서의 모습을 보면 다정함 같은 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만큼 따스한 마음을 가진 편집장이 또 없다. 그리고 필진들도 자연스레 아서의 말을 따른다.
아서는 원고의 양이 예상을 훌쩍 웃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고를 쳐내는 대신, 매거진 인쇄에 들어갈 용지의 부수를 늘리는 선택을 하고, 마감을 앞둔 채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 작가를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말없이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크레멘츠 옆에 쌓인 몇 장의 바삭한 토스트, 조심스레 들리던 아서의 노크 소리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의자. 손짓을 한 번 한 후 불편한 기색 없이 타자기를 두드리는 크레멘츠. 다른 기자가 제안한 수정사항은 바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아서의 한마디는 바로 수긍하는 세저랙. 낯선 도시의 차가운 창살 안으로 건네진 입사 지원서와 한 권의 책. 매거진의 발행 중지와 함께 문제없을 만큼 챙겨주라는 보너스에 대한 언급까지. 편견 없이 따뜻한 편집장의 시선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스며있다.
글과 함께한 일생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친구 같은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를 지탱했던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매거진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함께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랐던 훌륭한 작가들. 아서의 죽음을 확인하고 한곳에 모인 작가들은 마지막 기사로 편집장의 부고문을 쓰기로 결정한다. 매거진이 만들어지기 전 그의 삶부터 프렌치 디스패치의 탄생과 편집장으로서의 행보까지. 각자가 보고 느껴온 아서의 이야기가 편집장실 안에 가득 차고, 탁탁-경쾌한 타자기의 소리와 함께 부고문이 조금씩 완성된다.
아서는 평생을 글을 읽고, 모으며 작가들과 함께 살아왔다. 글과 사람을 사랑하던 저널리스트의 죽음은 또 한편의 글이 되어 프렌치 디스패치에 실린다. 아서의 일대기는 발행이 중지된 매거진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를 사랑하던 작가들이 써낸 글 속에서 말이다.
부고문이 실린 마지막 발행본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프렌치 디스패치가 발행되는 저 가상의 도시에 살아봤다면 참 즐거웠을 텐데,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는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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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탄 앞에 선, 젊은 예술가의 초상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8년 동안 ‘슈퍼비아’의 대본·작곡 작업을 이어온 뮤지컬 작가 지망생 조너선 라슨은 늘 자신감에 넘친다. 재능과 패기를 가진 그는 자신의 미래가 밝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1990년, 서른을 앞둔 그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과연 ‘슈퍼비아’를 완성할 수 있을까? ‘슈퍼비아’ 제작자를 구할 수 있을까? ‘슈퍼비아’가 공연된다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의 질문이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때마다 견고했던 조너선의 자신감에 조금씩 균열이 난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마치 폭탄의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진다. 조너선은 과연 똑딱똑딱(tick, tick) 타이머가 도는 폭탄이 터지기(boom!) 전까지 자기 확신을 지켜내고 ‘슈퍼비아’를 완성할 수 있을까?
〈틱, 틱... 붐!〉은 동명의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로, 뮤지컬 ‘렌트’ 등을 만든 실존 인물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서른이라는 숫자다. 서른. 별다른 의미가 없는, 그저 수많은 아라비아 숫자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 숫자가 나이에 적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서른이라는 나이는 청춘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문턱으로 여겨지곤 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장래성은 보장되는지 등이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예술가라면 기준이 조금 달라진다. 그에겐 여전히 돈과 장래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을 경유하는 명예‧자기만족의 부산물로서만 그렇다. 돈을 목표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예술을 하는데 돈이 따라오면 좋은 일이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이다.
조너선이 이토록 초조한 건 이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에겐 자부심이 있었다. 언젠가 수많은 사람이 열광할,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는 자부심 말이다. 그는 그 자부심으로 20대를 지나왔다. 문제는 최종 평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차일피일 미뤄왔던 냉정한 평가에 스스로를 내던질 때가 다가왔다는 것. 그리고 아직 자신이 덜 준비된 것만 같다는 것. 조너선은 미래의 제작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워크숍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아직 뮤지컬의 마지막 노래를 작곡하지 못했다. 함께 꿈을 좇던 친구는 배고픈 무명 생활에 질려 마케팅 회사에 취직해 승승장구하는 중이고, 마찬가지로 예술계에 종사하던 여자 친구도 새로운 직장을 찾아 멀리 떠나겠다고 한다. 왜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연달아 벌어진단 말인가! 조너선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드디어 대망의 워크숍 날. 기적적으로 영감이 떠올라 작곡은 어찌어찌 마무리했다. 영향력 있는 비평가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워크숍에 참석했다. 지난 괴로움이 ‘대작’을 만드는 과정의 필연적 고난으로 여겨질 참이다. 워크숍을 마친 조너선은 잔뜩 부푼 기대를 품고 전화기 앞에서 대기한다. 에이전트를 통해 여러 영향력 있는 제작자들이 연락해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머 달린 폭탄은 끝내 조너선의 품에서 폭발해버린다. 조너선은 아무런 제안을 받지 못한다. 그의 에이전트가 말한다. “다음 작품을 써. 그게 작가야. 언젠가 하나 터질 때까지.” 모든 것을 새로 다시 시작하라는 말. 이 한마디가 자신의 20대를 평가하는 말이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패닉이다. 조너선은 다시 텅 빈 악보를 마주해야만 한다. 가늠할 수 없는 조너선의 큰 좌절감이 화면을 뚫고 전달되는 듯하다.
다행히 현실의 조너선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틱, 틱... 붐!’도 호평을 받았고, ‘렌트’는 초대박을 터뜨려 ‘뮤지컬의 정의를 바꿔놓았다’고 평가될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다만 허망한 건, 그가 ‘렌트’ 초연 전날 밤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예술을 향한 그의 애타는 갈망과 이토록 허무한 비극적 삶. 조너선이 이를 미리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극적인’ 요소는 조금 덜하더라도 그가 더 오랫동안 살아 자신의 성취를 만끽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영화 〈틱, 틱... 붐!〉은 잔혹한 현실을 거슬러 폭탄 앞에 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다른 결말로 채색되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가 부디 하늘에서라도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렌트’의 성공을 만끽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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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시리즈를 잇는 진짜 속편!
살다 보면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일들을 다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비밀이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각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다르다. 그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가족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거나 곤란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소한 비밀들은 때때로 시간이 지나고 다른 가족에게 털어놓기도 하지만 큰 비밀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묻어두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그 비밀을 간직하는 데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만 알고 있는 무언가를 말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에 큰 그늘이 늘 자리하게 되면서 어떤 이들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혼자 지내기도 한다. 그렇게 멀어진 거리는 가족 간의 관계 또한 멀어지게 만들고 서로에 대한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남은 가족들은 그 위험에서 벗어나겠지만 그 위험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외로움과 싸우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비밀로 인한 위험이 비로소 세상 밖에 공개되었을 때 남은 가족들은 그제야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비밀을 지키다 생을 마감한 노인과 그 가족의 이야기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그 비밀을 끝까지 지키다 생을 마감한 노인과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 노인의 이름은 이곤 스팽글러(해롤드 레미스)다. 영화 초반에는 그가 유령과 벌이는 사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고 그가 죽음을 맞이한 허름한 시골집에 그의 딸과 손주들이 들어온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들은 그들의 가족인 이곤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손주들은 할아버지의 이름조차 모르고, 딸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족을 버리고 갔다는 원망을 토해낸다.
이번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손주들인 피비(맥케나 그레이스)와 트레버(핀 울프 하드)다. 특히 피비는 할아버지와 비슷한 스타일의 안경을 쓰고 과학적인 지식과 실험에 관심이 많다. 그는 허름한 할아버지의 집에서 그가 남긴 이상한 기계들을 찾고 유령의 존재에 대해 연구했던 할아버지의 숨겨진 방을 찾아낸다. 그리고 마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과 갑자기 나타나는 유령들에 대해 처음 눈치를 채는 인물이다. 즉, 이 영화 안에서 피비는 그 누구보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그가 남긴 유산과 미스터리를 앞장서서 찾아가게 된다.
이곤의 딸인 켈리(캐리 쿤)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느 순간 갑자기 시골로 사라져 연락도 없이 지냈던 자신의 아버지는 켈리의 마음속에 가족을 버린 사람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버지의 마지막 집으로 오긴 했지만 그곳에서조차 그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라는 존재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더 급한 것은 경제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자신의 자녀들과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일이다.
할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는 손녀 피비
켈리는 과거 조금은 이상한 괴짜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피비에게서 본다. 피비는 과학적인 호기심과 지식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그것을 활용하여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유령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할아버지가 남긴 기계들을 이용해 그 유령들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오빠인 트레버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유령 사냥을 시작한다. 그가 유령에 대한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할아버지가 남긴 비밀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것과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피비는 할아버지와 그의 딸 켈리 사이의 오해를 푸는 일종의 메신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피비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1984년과 1990년에 개봉했던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진짜 속편이다. 그러니까 2016년에 나왔던 여성판 <고스트 버스터즈>보다는 좀 더 정통성이 있는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시리즈가 조금은 괴상하고 톡톡 튀는 유머를 보여줬다면 이번 영화는 그렇게 톡톡 튀는 유머의 맛은 줄어들고 가족에 대한 드라마가 좀 더 보강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시리즈가 가직 매력을 일부 가져오고는 있지만 기존의 매력을 조금 줄이고 다른 매력으로 채워 넣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인 피비를 제외하면 오빠 트레버나 다른 친구들, 그루버슨 선생님(폴 러드) 같은 인물들은 특별한 능력이나 역할 없이 기능적으로 필요해 넣은 캐릭터들로 보인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중심인물로 부각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해결하고 진행시키게 되는 건 피비뿐이다. 특히 이번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고스트 버스터즈> 1편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편에 등장했던 악령과 괴물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해결방법 또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벌어지는 유령과의 대결이나 물리치는 장면들에서 새로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기존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하는 영화
이 영화는 기존 시리즈 팬들을 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연령을 낮추면서 새로운 팬들을 위한 장치들도 넣었지만 이 영화에 더 환호할 층은 바로 과거의 팬들이다. 기존 시리즈에 등장했던 고스트 버스터즈 카, 유령 잡는 기계들을 비롯하여 영화의 후반부에는 과거 시리즈의 고스트 버스터즈 팀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영화 정보에 업데이트된 배우 명단 중, 빌 머레이, 댄 아크로이드, 어니 허드슨 같은 기존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유령을 잡는 모습을 본 과거 팬들은 이 영화에 환호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강화된 드라마를 통해 가족의 화해를 그리지만 기존 팀원들과 이곤의 재회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존의 시리즈보다 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곤 스펭글러 역을 맡았던 배우 해롤드 레미스는 201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과거 원작 시리즈의 각본을 썼고, 다른 여러 영화들에 각본을 썼다. 또한 영화 <사랑의 블랙홀> 같은 인기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배우 해롤드 레미스에 대한 작별인사를 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를 위한 여러 따뜻한 장면들이 영화 후반부에 담겼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제이슨 라이트만은 과거 원작 시리즈의 감독인 이반 라이트만의 아들이다. 사실 제이슨 라이트만은 이런 류의 오락영화를 만든 경험이 많지 않다. <툴리>나 <인디에어> 같은 잔잔한 드라마를 연출하는데 더 재능이 있었던 감독이지만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원작 시리즈에 비해 톡톡 튀는 매력은 부족하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드라마는 조금 보강되었다. 여러 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과거 팬들을 위한 영화로는 손색이 없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 리뷰>
https://youtu.be/gTeB_1hLG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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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폰소 쿠아론의 사적이고 아름다운 세계
내 가슴 한켠에 저 불빛 같은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승희,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빛을 뿜어내는 텔레비전 한 대가 있는 헌책방’ 부분,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에서 (문학동네 시인선 030)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의 초반에는 모교 MIT에 강의하러 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가상현실을 이용한 심리 치료에 관한 연구를 시연하는 대목이 있다. 홀로그램처럼 그려지는 이야기는 바로 어린 자신과 부모님의 대화 장면이다. 이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처럼 정말로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토니’의 기억에 의존해 그 조각들을 모아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다루는 이야기의 층위와 진폭 모두 다르지만, 만약 작중 ‘토니’가 돌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뛰어난 영화감독이었다면 바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2018)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지 않을까.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자신의 유년에 대한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현재 자신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 과거의 누군가(‘리보’)에게 바치는 헌사다.
"I believe that human beings are born first and given passports later. I'm really thankful for my journey. And It's a journey I didn't design."
알폰소 쿠아론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기예르모 델 토로 등과 함께 멕시코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이다. 영어덜트 인기 소설 원작 영화부터 시작해 내밀한 자전을 담은 흑백의 넷플릭스 영화, 곧 지금 말할 <로마>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넘길 필모그래피 없는 작품들을 내내 선보여왔다. "새로운 세계와 도전에 언제나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는 그의 영화는 영화 만들기를 언제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최근 국내 개봉한 정이삭(Lee Isaac Chung) 감독의 영화 <미나리>(2020)를 보면서 처음 떠올린 영화는 윤가은의 <우리집>이나 윤단비의 <남매의 여름밤> 같은 작품들이었지만, 곱씹을수록 <미나리>는 그 작품의 성격상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유사한 면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나리>에 대해 쓴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https://brunch.co.kr/@cosmos-j/1217알폰소 쿠아론은 <그래비티>(2013) 작업을 마무리한 뒤 "좀더 단순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한다. "수년간 쌓인 자원과 도구, 테크닉이 있으니 드디어 고향에 돌아가 모국어로 영화를 찍을 때가 왔다"라고 생각했다고. 잠깐 언급한 <미나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굳이 영화가 될 만한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미나리>와 <로마> 모두 감독 자신의 유년을 기반으로 한, 특히나 더 사적인 출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아닌, 잘 드러나지 않는 조력자이거나 거의 조명되지 않는 주변인이었을 사람들. 실제로, '이런 이야기'는 그동안 영화가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 듀나 역시 이런 언급을 한 적 있다.
“신들과 괴물들이 지배하는 이 거대한 세계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자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긴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겠습니까.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 대부분은 아주 지루한 삶을 살았고 그 삶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될 만한 특별한 개성도 없었습니다. 이런 개성이란 대부분 다양한 문화적 자극을 주는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생물학적인 존재만으로서 인간은 그렇게까지 재미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듀나,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그러나 주변인이었을 사람들을 주변적 시선에서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는 만들어낸다. 그의 카메라는 나서지 않고 관찰자에 머무를 줄 안다.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는 순간. 이해관계와 효율, 힘의 논리가 남기는 어떤 상흔들.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살아있음의 에너지. 공간과 소리, 시간의 상호 작용. 삶과 세계 사이의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도 읽히고 싶다.
<로마>는 땅에서 시작해 하늘로 끝나는 영화이며, 사적이면서 공적인 영화고, 훗날 예술가로 성장한 한 사람이 자신의 지난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의 관계에 대하여 사려 깊고 섬세한 시선과 태도를 유지하는 영화다. 먼저 땅과 하늘에 대해 써야겠다.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기까지 약 3분. 부감으로 체크무늬의 바닥 타일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바닥을 물이 훑고 지나가고 세제 거품이 일렁이는 그 순간에 가만히 머문다. 바닥의 물이 거울처럼 비추는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간다. 이후 <로마>는 내내 순간에 천천히 머무르고 신비로운 배경처럼 파도, 우박, 비행기 같은 것들이 기억의 일부인 듯 프레임을 이룬다. <로마>의 땅과 하늘은 곧 주인공 ‘클레오’(얄리사 아파리시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이거나 그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 자체다. 첫 장면의 바닥은 ‘클레오’가 청소하는 바닥이다.
이제 사적이면서 공적인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1970년대 멕시코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르더라도 영화의 관객은 얼마든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로마>는 그것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 없다. 다만 ‘클레오’가 보고 듣고 겪는 만큼만을 정보로서 허용한다. 굳이 <로마>가 멕시코인 여성 가정부를 주인공으로 어떤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한 사람, 한 가정의 낮과 밤을 따라가며 그(들)의 행적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시대를, 그 시대의 공기를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음을 적고 싶은 것이다. 사적인 이유. ‘클레오’ 한 사람의 이야기인 동시에 알폰소 쿠아론의 기억 속 ‘리보’의 이야기이므로 사적이다. 공적인 이유. 임신한 아이의 아빠인 ‘페르민’이 떠난 후 남겨진 ‘클레오’와, ‘클레오’의 고용주인 ‘안토니오’가 개인의 성취 혹은 이기를 위해 떠난 후 남겨진 그의 아내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두 여성의 이야기가 평행선 혹은 그림자처럼 놓인다는 점에서 공적이다. 그러나 <로마>는 섣불리 ‘인종과 성별, 계급을 초월한 이야기’ 같은 것이 되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거나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등의 가족처럼 보이는 일상에도 ‘가정부’와 ‘사모님’의 위치 차이는 존재하며 가사노동의 공간이 아닌 주거의 공간 역시 구분돼 있다.
“실제 우리 가족의 물건으로 방을 채웠다. 할머니 집에 있던 오래된 의자는 물론 다이닝룸과 아침을 먹던 공간, 응접실까지 원래 집에 있던 가구를 많이 채워넣었다. 극중 소피아의 초상화로 나오는 그림은 사실 우리 어머니의 초상화다. 아이들 방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은 실제로 사용하던 것 혹은 영화를 위해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보라스라는 반려견은 가족이 기르던 강아지와 종은 물론 이름까지 똑같다.”
- 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의 주 공간이 되는 집은 알폰소 쿠아론이 실제 살았던 동네의 근처이며, 가구와 소품들은 최대한 기억에 의존해 비슷하게 재현했다고 한다. 앞서 사적이면서 공적이라고 한 점은 자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도 이어지는데, 결국은 자신의 유년이 어땠는지 자체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키워주어 훗날 지금의 자신으로 만들어준 사람의 삶을 화자이자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 외 각본, 편집, 촬영까지 담당한 <로마>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사건이나 갈등이 아니라 가장 지나치기 쉬운 일상,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한켠에서 빨래나 설거지, 청소 등의 보이지 않는 일을 감내한 사람의 조용하고 고단한 하루들에 있다.
“앞으로 변화들이 좀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일 거야.”
-소피아, 클레오와 아이들에게
‘소피아’는 ‘클레오’에게 “우리는 널 정말 많이 사랑해.”라고도 말한다. 파도와 햇살을 끌어안고 서로의 모래 묻은 어깨와 등을 감싼 채 <로마>의 가족은 가만히 눈을 감고 사랑을 말한다. 이 순간 살아있음을 온 몸과 마음으로 끌어안고 만끽한 자의 모습으로. ‘나’의 삶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전해지고 쌓여온 누군가의 가까운 도움과 보살핌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에만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받을 때에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물론, 유년 혹은 유아기에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며 <로마>는 그것을 알고 있다. <로마>는 자신의 오늘이 타인의 과거로부터 비롯했음을 성찰하고,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그 타인의 일상에 빛을 전하는 사람이 만든 아름다운 영화다.
롱테이크와 패닝 숏으로 대표되는 미학적 스타일, 인물과 풍경을 담아내는 사실주의적 접근, 그리고 간결해 보이는 각본 안에 담긴 깊은 사유까지. 이미 경지에 이른 알폰소 쿠아론의 다음 영화를 믿고 기다려도 되겠다는 어떤 확신을 <로마>는 준다. 나를 살아있게 다른 이들의 지난 삶을 기억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현재 애플TV의 시리즈 <Ascension>을 연출, 제작에 앞서 기획 중에 있으며, 아들 조나스 쿠아론과 함께 <A Boy and His Shoe> 각본도 집필할 예정.)
알폰소 쿠아론은 그렇게 “이 영화가 당신을 씻어내리도록 그냥 허락하세요”라고 권고한다. 동시에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개인의 삶 바깥에는 언제나 거대한 세계가 초연히 운동하고 있음을 말한다.-김혜리 기자, <씨네21>에서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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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되면 생기는 또 하나의 마음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미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이야기해왔다. 예를 들어,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아버지 물고기 말린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누비며 아들 니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부모로서의 사랑과 헌신을 그린다. <라이온 킹>에서는 무파사가 어린 심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심바 역시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하며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배운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이야기는 보편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그래서 어쩌면 이 주제는 새롭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드림웍스 스튜디오가 3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영화 <와일드 로봇>은 이 보편적인 이야기의 중심에 로봇을 배치해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로봇은 감정이 없고, 단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향한 사랑을 느끼는 마음도, 따뜻함도, 고민도 없는 존재다. 이 로봇이 부모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감정이 생기고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따뜻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로봇이라는 존재를 통해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감정] 로봇 로즈의 무감정
로즈(목소리: 루피타 뇽오)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 로봇으로, 처음 등장할 때는 감정이 전혀 없는 기계적 존재로 묘사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로즈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할 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동물들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주려 하지만, 동물들은 그를 경계하고 거부한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끊임없이 거절당하지만, 그에게서는 실망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명령을 따라 행동할 뿐인 로즈의 모습은 기계적으로 느껴지며, 감정이 결여된 그의 행동은 차갑게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로즈는 부모를 잃은 아기 새의 알을 발견하고 그것을 돌보게 된다. 하지만 그때도 로즈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단지 알을 보호하고 새끼 새를 키우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의 행동에는 사랑이나 애정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며, 로즈는 자신이 왜 아기 새를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입력된 지시와 학습된 내용을 바탕으로 행동할 뿐이다. 이 모습은 마치 우리가 부모가 되기 전, 아이에 대한 감정이 없는 상태와도 비슷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상태에서 로즈는 그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로즈의 무감정은 영화 초반부에서 관객들에게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이 왜 아기 새를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기계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이 무감정의 상태는 로즈가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관객들은 무감정의 로즈가 어떻게 변해갈지, 그리고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지켜보게 된다.
[두 번째 감정] 아기 새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
아기 새 브라이트 빌(목소리: 키트 코너)은 로즈에게서 깨어난 뒤, 그를 엄마로 인식하게 된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 새의 입장에서 로즈는 세상의 전부였고,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게 된다. 브라이트 빌은 로즈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며 얼굴을 맞대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애정을 표현한다. 이런 아기 새의 행동은 로즈를 당황하게 만들고, 로즈는 왜 브라이트 빌이 자신을 따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로즈에게는 애정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브라이트 빌과 로즈 사이에는 추억이 쌓이기 시작한다. 브라이트 빌은 로즈에게 의지하며 성장하고, 로즈는 그런 브라이트 빌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한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비로소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에게 따라오는 존재로만 여겼던 브라이트 빌이지만, 이제는 그의 존재가 로즈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어간다. 브라이트 빌의 따뜻한 마음은 로즈를 변화시키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로즈에게 새로운 감정을 심어준다.
브라이트 빌과 로즈의 관계는 단순히 로봇과 아기 새의 관계를 넘어선다. 그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로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은 로즈에게 감정을 가르쳐주고, 로즈는 그 감정을 통해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배우게 된다. 이는 단순히 로봇과 새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감정] 부모의 사랑
시간이 지나며 로즈는 브라이트 빌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브라이트 빌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나는 법을 알려주면서 점점 더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브라이트 빌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로즈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느끼고, 그가 다칠까 걱정하며 지켜본다. 하지만 브라이트 빌이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로즈는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순간, 로즈는 자신이 브라이트 빌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깨닫는다.
영화는 로봇인 로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과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로즈는 이제 단순히 입력된 명령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브라이트 빌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부모가 되었다. 로봇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하나의 시스템이 추가된 것처럼 표현하며, 그 감정이 어떻게 로즈의 행동과 사고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로즈에게 생긴 이 새로운 감정은 기억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으며,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이 이야기는 부모의 사랑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로즈는 로봇으로서 감정이 없는 존재였지만, 브라이트 빌을 돌보며 사랑을 배우고, 부모로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성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모든 부모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와일드 로봇>에서 로즈는 단순히 브라이트 빌을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단지 프로그램된 임무로서 브라이트 빌을 돌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로 변해간다. 브라이트 빌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로즈는 자신의 몸을 던져 그를 보호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의 안전을 지킨다. 로봇으로서의 본래 목적을 넘어, 로즈는 이제 브라이트 빌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된 부모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자신의 신체를 소모하면서까지 브라이트 빌을 보호하려 한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편안함과 안정을 포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시간을, 에너지를,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욕구까지도 희생하게 된다. 로즈가 보여주는 이러한 희생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희생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완성하게 된다. 이 영화는 로즈의 희생을 통해 부모가 되면서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마음, 즉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랑을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특별한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영화 <와일드 로봇>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돌보며 다른 동물들과 함께 아이를 키워낸다. 이는 아이를 키울 때 부모뿐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처럼, 이 영화에서는 숲속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브라이트 빌의 성장과 독립을 위해 힘을 모은다. 그들은 브라이트 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돕는다. 이러한 공동체적 지원은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며, 영화는 이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로즈의 변화 과정은 우리가 부모가 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아이를 향한 마음, 조바심, 그리고 그 모든 행동들은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감정이 없던 로즈가 브라이트 빌과 함께하면서 점차 감정을 배우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며,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며,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크리스 샌더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로봇과 동물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들 간의 관계를 매우 따뜻하게 그려냈다. 루피타 뇽오와 키트 코너, 페드로 파스칼 등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훌륭하여 캐릭터들에게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 영화는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30주년 기념작으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관람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장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이 영화는 많은 가족들에게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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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살과 13살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5월은 푸르른 나무들이 싹을 틔우는 계절이고, 12월은 잎을 거두고 추위를 견디는 계절입니다. 영어권에서는 'May-December'가 5월과 12월의 간극처럼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커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영화 <메이 디셈버>는 관용어를 사용해 제목에서부터 영화의 소재를 내걸고 시작하는 작품입니다. 5월의 남자와 12월의 여자, 그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의 사랑은 정말 '사랑'일까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메이 디셈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메이 디셈버>는 2024년 3월 13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메이 디셈버
May December
Summary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충격적인 로맨스의 주인공들인 ‘그레이시’와 그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영화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게 된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가 캐릭터 연구를 위해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다. 부부의 일상과 사랑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엘리자베스의 시선과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잇따른 질문들이 세 사람 사이에 균열을 가져오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나탈리 포트만, 줄리안 무어, 찰스 멜튼
강렬한 스캔들을 둘러싼 세 인물
: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갇힌 사람
이 영화의 'May-December' 커플은 60살이 다 된 아내 '그레이시'와 36살 남편 '조'입니다. 23년 전, 유부녀였던 '그레이시'는 자신이 일하던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자 아들의 친구였던 13살 '조'의 아이를 가집니다. 감옥에서 아이를 출산한 '그레이시'와 '조'의 이야기는 뉴스 1면을 장식하는 희대의 스캔들이 되었죠. 강렬한 그들의 사랑은 이십여 년이 지나 영화화가 결정됐고, 연기 인생의 또 다른 한 획을 그을 작품을 찾던 배우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 역을 맡습니다. <메이 디셈버>는 'May-December' 커플의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엘리자베스'가 부부의 집을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영화는 세 인물을 가까이에서, 또 멀리서 바라볼 수 있도록 시점을 조금씩 바꿔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이십 년 전의 스캔들을 중심에 둔 세 사람을 각각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갇힌 사람으로 정의하죠.
말하는 사람은 과거의 스캔들을 '엘리자베스'에게 들려주는 '그레이스'입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레이스'에게는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36살 유부녀가 13살 소년과 사랑을 나눠 아이를 가졌는데도, 아들 친구와 바람이 났는데도, 심지어 아들의 생일 전날에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는데도요. 손자와 자식이 같은 날 졸업하는 진 광경의 자리에도 당당하게 '엘리자베스'를 부릅니다. '그레이스'는 진실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더 중요시하는 인물로 비칩니다. 그래서 언제나 태연하고 뻔뻔할 수 있었죠. 그는 자신이 순진한 사람이길 원하고, '엘리자베스'가 자신들의 사랑을 완벽한 사랑으로 보길 원하며, '조'가 영원히 이 관계를 사랑으로 보길 원합니다.
듣는 사람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부부를 취재하는 '엘리자베스'입니다. 그는 '그레이시'와 '조' 사이에 자리 잡은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빌미로 부부의 과거를 헤집고, 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죠. 그런데 단순히 취재라고 포장하기에 '엘리자베스'의 취재 여정은 다소 기만적입니다. '그레이시'와 '조'의 딸이 있는 자리에서 "배역을 선택할 때는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에 매력을 느낀다"라고 말하거나, 13살에 '그레이시'를 유혹한 '조'의 매력을 가늠하기 위해 그와 잠자리를 갖는 것도 마다하지 않죠. 어느새 진실 찾기는 핑계가 되고, '엘리자베스'의 눈빛에는 야심만이 이글거립니다.
갇힌 사람은 스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어린 남편 '조'입니다. 영화 초반부의 '조'는 공동체의 기억 속에 남은 강렬한 이야기와는 달리 더없이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상 '조'는 그때 그 이야기 속에서 조금도 크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죠. "네가 나를 꼬신 거야", "나는 순진해"라는 '그레이시'의 함정에 빠져 죄책감과 부도덕함을 느끼고, 속죄와 책임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신이 원한 삶이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나비의 알을 주워다가 성체로 키워 날려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감정의 배출구였습니다. 이러한 삶을 평화로운 일상으로 여겨왔던 '조'에게 '엘리자베스'의 등장은 균열이었습니다. 진실을 찾는 '엘리자베스'로 인해 마음속 물음표가 떠오른 '조'는 외면해 왔던 진실에 향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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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모호한 회색의 스펙트럼
영화를 만든 토드 헤인즈 감독은 <메이 디셈버>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거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인물의 공통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 '자기 자신'이라는 진실을 대하는 방식 말입니다. 세 인물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진실을 바라보길 거부합니다. '그레이시'는 원하는 대로만 말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렸고, '엘리자베스'는 남의 이야기를 파헤침으로써 자기 자신을 덮었으며, '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숨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이 있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기꺼이 들여다보려 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그랬듯이, 함부로 직시하죠. 이렇듯 세 인물의 도덕성과 옳고 그름에 관해 끝없이 생각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이런 생각에 가닿습니다. 극 중에서 나오는 '도덕의 회색지대'라는 말처럼, 바로 그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모호한 회색의 스펙트럼이 곧 인간의 본질이구나.
<메이 디셈버>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이 인간의 모호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샘솟는 질문들도 모두 비슷한 철학적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 36살 여인은 정말 13살 소년을 사랑했을까?
- 13살 소년은 정말 36살 여인을 사랑했을까?
- 13살 소년을 사랑한 36살 여인의 잘못은 무엇일까?
-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 도덕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 타인의 진실을 향한 '엘리자베스'의 열망은 인간으로서의 도덕인가, 배우로서의 야심인가?
- '엘리자베스'의 선을 넘는 야심과 '그레이시'의 순진한 가면 중 어느 것이 더 부도덕한가?
질문의 답을 고민하다 보면 머릿속은 계속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정확한 답 하나 없이 모호함만이 두둥실 떠다닙니다. '누가 옳은가?', '누가 그른가?', '옳은 사람이 있긴 한가?',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아, 하지만 복잡하고 모호한 인간처럼 흥미로운 것이 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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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디셈버>는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맛을 크게 살렸습니다. 가히 연기 대결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는데요. 줄리안 무어의 '그레이시'를 완벽하게 내재화해 연기하는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 돋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조'를 사랑의 감옥에 가두는 '그레이시'의 순진한 얼굴을 그려낸 줄리안 무어의 얼굴은 또 어떻습니까. 여기에 이 작품으로 연기상 21관왕을 휩쓴 찰스 맨튼의 활약도 빼놓으면 섭섭하지요. <리버데일>의 반가운 얼굴을 다시 만나 기뻤습니다. 쉽지 않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에게 손바닥에 불나도록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One-Liner5월과 12월, 알과 나비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으나, 인간만은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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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더 데드」 넷플릭스 제작비 1,000억원의 좀비영화ㅣ새벽의 저주 결말포함 영화리뷰ㅣ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컷ㅣ넷플릭스 오리지널ㅣ건데ㅣ
? "아미 오브 더 데드(2021, 넷플릭스Netflix)" 예고편 분석
"새벽의 저주(2004)"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 정보
장르: 액션, 공포, 범죄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잭 스나이더, 조비 해롤드, 셰이 해튼
제작: 웨슬리 콜러, 데보라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
출연: 데이브 바티스타, 엘라 퍼넬 외
촬영: 잭 스나이더
음악: 정키 XL
촬영 기간: 2019년 7월 15일 ~ 2019년 10월 20일
제작사: 미국 국기 스톤 쿼리
배급사: 넷플릭스
공개일: 넷플릭스 2021년 5월 21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2시간 11분
제작비: 9,000만 달러
독점 스트리밍: 넷플릭스 N아이콘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첫 장편 영화 촬영 감독 데뷔작
- 새벽의 저주 정보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제임스 건, 조지 로메로
출연: 사라 폴리, 빙 레임스, 케빈 지거스 등
장르: 공포, 스릴러, 액션- 조지 A. 로메로의 1978년작 동명 좀비 영화 리메이크작
- 시체들의 새벽
#아미오브더데드 #새벽의저주 #넷플릭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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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캐시트럭 후기 / “제이슨 스타뎀” 2년만에 컴백 / 아들을 잃은 마피아 아버지의 복수 / 믿고 보는 “가이 리치” 감독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캐시트럭”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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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적> 메인 예고편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
오늘부로 청와대에 딱 54번째 편지를 보낸 ‘준경’(박정민)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는 것이다.
기차역은 어림없다는 원칙주의 기관사 아버지 ‘태윤’(이성민)의 반대에도
누나 ‘보경’(이수경)과 마을에 남는 걸 고집하며 왕복 5시간 통학길을 오가는 ‘준경’.
그의 엉뚱함 속 비범함을 단번에 알아본 자칭 뮤즈 ‘라희’(임윤아)와 함께
설득력 있는 편지쓰기를 위한 맞춤법 수업,
유명세를 얻기 위한 장학퀴즈 테스트,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 응시까지!
오로지 기차역을 짓기 위한 ‘준경’만의 노력은 계속되는데...!
포기란 없다
기차가 서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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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4차 예고편 - 끝의 시작 편
“시작은 막차였다”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친 스물한 살 대학생 ’무기’와 ‘키누’는
첫차를 기다리며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좋아하는 책부터 영화, 신고 있는 신발까지 모든 게 꼭 닮은 두 사람은
수줍은 고백과 함께 연애를 시작하고 매일매일 행복한 시간을 쌓아간다.
“내 인생의 목표는 너와의 현상 유지야!”
하지만 대학 졸업과 함께 취업 준비에 나선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 소원해지고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 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