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3-12-25 16:51:15
<레벨 문> | 차라리 스타워즈 스핀오프였다면...
넷플릭스 <레벨 문: 파트 1 불의 아이>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변방 행성 벨트의 한 농촌에 마더월드의 군대 임페리움을 이끄는 '노블'(에드 스크레인) 제독이 나타난다. 그는 촌장을 때려죽인 후 다시 돌아올 때까지 군대를 먹일 식량을 준비하라고 협박한 뒤 떠난다. 농촌 주민들이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자, 과거 마더월드의 장교였던 자기 신분을 숨긴 채 지내던 '코라'(소피아 부텔라)가 마침내 목소리를 낸다. 어차피 노블 제독이 우리를 모두 죽일 테니, 그전에 그들과 싸울 준비를 하자고.
이에 친구 '군나르'(미힐 하위스만)와 함께 노블 제독에 맞설 전사를 찾아 나선 코라. 그녀는 항구 도시에서 만난 '카이'(찰리 허냄)의 도움을 받아 은하계 각지에 흩어진 숨은 전사들을 발견한다. 노예가 된 왕자 '타라크'(스타즈 네어), 갓을 쓴 검사 '네메시스'(배두나), 임페리움에 반기를 든 전설적인 장군 '타이투스'(자이먼 혼수), 저항군의 리더 '다리안 블러드엑스'(레이 피셔)까지.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나선다. 마더월드의 폭정에 맞서 벨트를 구할 영웅들과 함께.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 <레벨 문>
<스타워즈>. 스페이스 오페라의 고전. 첫 등장 이후 40년이 지나도 인기를 유지 중인 미국의 신화. 사실 <스타워즈> 이야기는 명성에 비해 그다지 참신하지 않다. 좋게 말하면 왕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클리셰로 가득하다. 조지 루카스가 조지프 캠벨의 연구를 차용한 결과물이기 때문. 캠벨은 여러 신화가 공유하는 모티브를 정리했고, 그 내용은 루크 스카이워커와 다스 베이더의 서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신 <스타워즈>는 다른 영역에서 독자적인 매력을 구축했다. 이야기는 평범해도,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관은 특별했다. 다양한 행성과 생명체, 제다이와 시스의 갈등, 현실세계로 역수입된 광선검 결투, 임페리얼급 스타 디스트로이어와 X-윙 같은 전투기, 여러 외피의 드로이드까지. 익숙한 이야기를 따라가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은하계를 탐험할 수 있는 게 <스타워즈>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는 넷플릭스의 <스타워즈>를 꿈꾼 잭 스나이더 감독 신작 <레벨 문: 파트 1 불의 아이>의 실수이기도 하다. 본래 스나이더가 <스타워즈> 스핀오프로 기획한 <레벨 문>. 이 프로젝트는 디즈니의 루카스필름 인수 후 취소됐고, 넷플릭스에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이상하다. <레벨 문>은 더 이상 <스타워즈> 세계관에 속하지 않는데, 여전히 <스타워즈>를 답습한다. 그 결과 <레벨 문>은 <스타워즈>의 강점 대신 약점만 노출하고 말았다.

첫 번째 실수: <스타워즈>의 세계를 답습하다
할리우드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가 <스타워즈>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유사한 세계관 속에서 참신한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가? 가렛 에드워즈의 <크리에이터>는 전자라 할 수 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감독인 그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근간인 '프런티어 정신'과 '오리엔탈리즘'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그렸다.
<레벨 문>은 후자다. 이름과 외양만 다를 뿐,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이어받았다. 마더월드와 은하 제국은 전 우주를 억압하는 군국주의 권력이다.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찬탈한 섭정 벨리사리우스는 황제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사이보그인 노블 제독은 다스 베이더의 변형이다. 그들의 관계도 유사하다. 황제가 다스 베이더를 겁박하고 이용했듯이, 섭정 역시 노블 제독을 장기짝으로 다룬다.
주인공 삼인방인 코라, 군나르, 카이는 루크, 레아, 한 솔로 삼총사를 연상케 한다. 루크와 레아의 성별과 신분을 맞바꾸고, 한 솔로를 더 비열하게 만든 게 전부다. 마더월드에 대항하는 저항군과 은하 제국에 맞서는 반란 연합은 규모도, 위상도, 역할도 유사하다. 일반 함선으로는 맞설 수 없는 함선 '킹스 게이즈'의 존재 역시 <스타워즈> 속 스타 디스트로이어의 대체재나 다름없다.
문제는 <스타워즈>의 본래 장점도 세계관이라는 것. 달리 말해 <스타워즈>가 40년이 넘도록 쌓아 올린 세계관을 답습한다면, 그 작품은 결코 <스타워즈>로부터 차별화될 수 없다. 실제로 <레벨 문>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스타워즈>와의 비교를 끝끝내 피하지 못한다. 왜 이 영화가 <스타워즈>가 아닌 다른 제목을 달고 제작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두 번째 실수: 또 다른 고전을 답습하다
그렇다면 <레벨 문>은 스토리텔링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스타워즈>의 도식적인 이야기와 확연히 다른, 참신하고 치밀한 이야기로 관객을 매료해야 했다. <레벨 문>은 그러지 못했다. <스타워즈>라는 클래식에 또 다른 고전, <7인의 사무라이>를 더했다. 자연히 <레벨 문>의 러닝타임 148분은 모두가 이미 알고, 예측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로 가득 차 버렸다.
물론 잭 스나이더의 의도는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연출작은 한 가지 경향성이 있다. '에픽'을 좋아한다는 것. 그는 자기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인물의 투쟁을 웅장하고 장엄한 서사시로 그려내는 데 관심이 많다. <300>,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왓치맨>, <저스티스 리그> 모두 마찬가지다. 바로 여기서 <스타워즈>를 배경으로 <7인의 사무라이>를 보여주려 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사실 명작이라는 점과 별개로 <7인의 사무라이>는 스케일이 큰 영화가 아니었다. 한 농촌을 배경으로 도적 떼와 사무라이 7명이 싸우는 이야기였다. 잭 스나이더는 이 이야기를 서사시로 바꾸려 한다. 자유의 투사들이 정의롭지 않고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우주적 대서사시를 꿈꾼 셈이다. 그래서 그는 스타워즈를 빼닮은 세계관을 더해 도적 떼를 마더월드로, 7인의 사무라이도 마더월드에 복수하려는 영웅들로 바꿨다.
문제는 잭 스나이더의 큰 그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선악을 딱 잘라 나눈 이분법적인 구도는 이제 소구력이 없다. 당장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도 은하 제국을 퍼스트 오더로, 반란 연합을 저항군로 변형했다가 발전한 게 없다는 비판을 못 피했다. 파시즘, 공산주의 같은 거악과 싸우는 시대가 아닌 상황에서 이분법적 구도는 구시대적이니까. 근래 히어로 영화, 첩보 영화가 괜히 선악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 게 아니다.

세 번째 실수: 허점이 많은 플롯
큰 그림의 매력이 부족한 가운데, <7인의 사무라이>를 차용한 플롯도 안일하다. 벨트의 한 농촌을 구하기 위해 전사를 모으는 게 주된 내용이지만, 정작 코라가 조력자를 모으는 과정이 빈약하게 제시된다. 일례로 코라가 무슨 수로 타이투스 장군과 블러드엑스 남매를 찾을 것인지 그 계획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항구 도시 술집에서 타이투스 장군을 아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 이상의 비전을 못 보여준다.
대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카이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주선도 카이에게 빌리고, 티라크와 네메시스라는 전사도 카이에게서 추천받고, 벨트로 돌아가는 항로도 카이가 정한다. 즉, 마더 월드의 폭정에 저항하는 투사로서도, 섭정의 양녀이자 엘리트 군인으로서도 코라는 걸맞은 능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니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연속성도 부족한 코라의 여정에는 재미가 붙지 않는다.
각 캐릭터의 매력도 못 살렸다.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각 인물을 소개하고 그들이 한 팀이 되는 과정만 잘 보여줘도 <레벨 문>은 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레벨 문>은 그저 캐릭터를 나열할 뿐이다. 그들의 전사, 능력, 심경 변화, 팀에 합류하기로 한 동기 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노블 제독의 입을 빌려 그들의 프로필을 하나하나 읊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코라와 군나르가 그들을 한 명씩 만나는 내용은 그저 다음 시리즈를 위한 발판 같아 보인다.

마지막 실수: 본연의 장점마저 잃었다
물론 잭 스나이더를 위한 변명이 있기는 하다. 그의 장점은 본래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분량 제한이 없는 스트리밍 환경에서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아미 오브 데드>도 개연성이나 완급 조절 문제를 못 피했을 정도다. 대신 비주얼과 액션 연출은 특출 난 장점이었다. 그가 기획한 DCEU의 비주얼은 만화책을 찢고 나왔다는 평을 받았고, <300>과 <맨 오브 스틸>의 액션은 다른 블록버스터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레벨 문>에서는 잭 스나이더 본연의 장점을 찾기 어렵다. 비교적 저예산으로 스페이스 오페라에 걸맞은 비주얼을 보여주기는 했다. 렌즈 플레어 효과를 적극 활용한 총격씬과 폭발씬은 시선을 사로잡을만하다. 그러나 몇몇 장면에서는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한 티를 숨기지 못했고, 잭 스나이더의 특징인 슬로 모션도 남발돼 몰입도를 저해한다.
또 합을 맞춘 티가 많이 나는 액션씬도 기대 이하다. 코라가 마더월드 군인들과 싸우는 초반부, 네메시스가 광선검 비슷한 검을 든 채 거미 괴물과 맞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슬로 모션을 남발한 결과 생동감도 살지 않는다. 그나마 타라크가 배누를 길들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지만, 진부함을 피하지는 못했다.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가 히포그리프를, <아바타>에서 제이크가 이크란과 교감하는 장면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스타워즈> 스핀오프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스타워즈>의 일부라면 익숙하거나 진부한 설정도 '<스타워즈>니까'라는 이유로 용인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로그 원>이나 디즈니+ 드라마 <안도르>처럼 호평을 받았을 수도 있다. 제다이와 시스의 대결, 광선검 액션을 반복하는 대신 색다른 이야기를 보여준 것만은 확실하니까.
애초에 기획과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스타워즈> 자체가 서부극에 근간을 뒀고, 조지 루카스도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흔적이 많기 때문. 그러니 '초심에 가까워진 시리즈' 같은 식의 평가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스타워즈>가 아니면서 <스타워즈>를 닮으려 애쓰고 있으니, 모두 무의미한 가정일 뿐이다.
종합하면, <레벨 문>은 넷플릭스의 <스타워즈>라는 야심만 있을 뿐, 야심을 실현할 방법론은 볼 수 없는 영화다. 잭 스나이더에게 과제를 잔뜩 안겨준 듯 보이기까지 한다. 언뜻 흥미로워 보이는 아이디어의 스케일만 키우는 대신,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 근본적 쇄신이 먼저라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 그래야 잭 스나이더와 넷플릭스가 각각 삼부작으로 계획한 <아미 오브 데드>와 <레벨 문> 시리즈도 안정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 테니.

Dreadful 끔찍한
<스타워즈>를 기대해도, 잭 스나이더를 기대해도 실망스러운 2시간 반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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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추석 영화 3파전 승자는? 두구두구두구!!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주말 관객수 80만명을
넘어서고 누적 관객 수 100만명을 넘어서면서 1위에올라섰습니다.강동원의 두 번째 퇴마 이야기와 그 뒤를 잇는 실화 바탕의 마라토너 이야기까지 극장을 달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같이 알아보아요 ✍.
[국내 박스오피스]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개봉 5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추석 연휴를 겨냥해 나온 한국 영화 3편 가운데 가장 먼저 누적 관객수 100만명을 돌파하고 1위에 올라섰으며그 뒤로 <1947 보스톤> <거미집>이 각각 2위, 3위에 올랐습니다. ‘천박사’가 높은 예매율을 유지하고 있어 남은 연휴에도 1위를 지킬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전 세계가 사랑하는 파라마운트 인기 TV시리즈 ‘퍼피 구조대’의 두 번째 극장판 <퍼피 구조대: 더 마이티 무비>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퍼피 구조대'는 지난 2013년 첫 방영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기 TV 시리즈로 다양한 직업과 능력을 가진 각기 다른 강아지 캐릭터들이 등장해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해내는 히어로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는 오는 10월 6일 개봉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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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 사쿠라, 어디까지 봤어?
“연기하지 않고, 그저 살아내는 배우”
안도 사쿠라 좋아하시는 분 🕺🏻🕺🏻🕺🏻🕺🏻🕺🏻
<백엔의 사랑>으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어느 가족>으로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의 극찬을 받은 그녀는
늘 작품 속 인물 그 자체로 존재하며 과장됨 없이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배우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배우인데요,
그런 안도 사쿠라가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의 신작 <도라>에 출연합니다!
한국 영화에서의 안도 사쿠라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씨네픽지기의 사심 가득 담긴 안도 사쿠라의필모그래피 저장해두고 함께 기다려볼까요?
❶ <가족의 나라>, 양영희
❷ <백엔의 사랑>, 타케 마사하루
❸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❹ <한 남자>, 이시카와 케이
❺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❻ <브러쉬 업 라이프>, 드라마, 바카리즈무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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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안에서 즐기는 봄! 넷플릭스 로맨스 영화 5
방 안에서 즐기는 봄! 넷플릭스 로맨스 영화 5
봄,봄,봄 봄이 왔어요~ 이번 봄은 유독 실감이 안나는 계절인 것 같아요 :(
하지만 저희에겐 집에서 봄을 대신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좋은 매체가 있어요 !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내 방에서 봄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영화!
씨네랩이 여러분들을 위해 따스한 봄같은 넷플릭스 로맨스 영화 5편을 가져왔으니 함께 즐겨보아요!
1. 러브 앳 Love at Second Sight (2019) - 위고 젤랭
" #어느 날, 눈 떠보니 평행세계!
아내 ‘올리비아’와 다투고 만취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 ‘라파엘’은 평소와 다름을 느낀다. 같은 듯 다른 세상. 베스트셀러 스타 작가로서의 삶은 간데없고 중학교 선생님이라고!
베프 ‘펠릭스’는 탁구광이 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아내 ‘올리비아’는 자신을 아예 모른 채 유명 피아니스트로 살고 있다.
#이 사랑을 기억하니?
평행세계로 오게 된 원인이 운명적 사랑이었던
올리비아’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라파엘’은 다시 그녀의 사랑을 얻으면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다가가지만 그녀 곁엔 모든 게 완벽한 ‘마크’가 버티고 있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 ‘펠릭스’의 도움으로그녀의 마음을 공략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과연, 그들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프랑스 영화 <러브 앳>은 평행세계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로맨스 영화입니다. '익숙함의 속아 소중함을 잃지말자'라는 명언을 담고있는 영화이기도 하죠. 추가로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기에 눈이 즐거운 영화입니다. 여행을 못가 아쉬운 마음을 <러브 앳>으로 달래보는 건 어떨까요?
2. 너의 결혼식 on your wedding day (2019) - 이석근
" 고3 여름, 전학생 ‘승희’(박보영)를 보고 첫눈에 반한 ‘우연’(김영광).
승희를 졸졸 쫓아다닌 끝에 마침내 공식커플로 거듭나려던 그때!
잘 지내라는 전화 한 통만 남긴 채 승희는 사라져버리고,
우연의 첫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1년 뒤, 승희의 흔적을 쫓아 끈질긴 노력으로 같은 대학에 합격한 우연.
그런데 그의 앞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그녀의 남.자.친.구!
예술로 빗나가는 타이밍 속
다사다난한 그들의 첫사랑 연대기는 계속된다!"
첫 사랑이야기 <너의 결혼식>은 박보영, 김영광 배우가 주연을 맡아 완벽한 로맨스 케미를 보여준 영화입니다. 고등학생, 대학생, 취준생, 사회 초년생 등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감정선을 잘 담아내, 다양한 연령의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입니다.
3. 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1995) - 콘도 요시후미
" 중학교 3학년 시즈쿠는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소녀이다. 여름방학, 매번 도서카드에서 먼저 책을 빌려간 세이지란 이름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어느 날 아버지의 도시락을 전해주러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혼자 탄 고양이를 보게 된다. 신기하게 여긴 시즈쿠는 고양이를 따라가다 골동품가게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주인 할아버지와 손자를 보게 된다. 그 손자는 다름 아닌 아마사와 세이지, 사춘기의 두 사람은 점차 서로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된다. 시즈쿠는 바이올린 장인을 자신의 장래로 확실히 정한 세이지를 보면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 후 이탈리아 연수를 간 세이지가 돌아 올 때까지 작가가 되고자 도전해 보기로 하고 소설을 쓰게 된다."
영화 <귀를 기울이면>은 누구나 좋아하는 '지브리'사의 애니메이션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극찬한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귀를 기울이면>은 스토리 뿐만 아니라 ost도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했죠.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이 영화에서 만들어낸 설정으로 제작된 영화 <고양이의 보은>도 추천드립니다.
4. 클래식 The Classic (2003) - 곽재용
"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이 들려온다!! 1968년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 삼촌댁에 간 준하(조승우)는 그곳에서 성주희(손예진)를 만나, 한눈에 그녀에게 매료된다. 그런 주희가 자신에게만 은밀하게 '귀신 나오는 집'에 동행해줄 것을 부탁해온다. 흔쾌히 수락한 준하는 흥분된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주희와의 약속 장소에 나간다. 그런데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 배가 떠내려가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이 일로 주희는 집안 어른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수원으로 보내진다. 작별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주희를 향한 준하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게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준하는 친구 태수에게 연애편지의 대필을 부탁받는데, 상대가 주희란 사실에 깜짝 놀란다. 하지만 태수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태수의 이름으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주희에게 편지를 쓴다. 운명이 던져준 또 한번의 인연 편지를 대신 써주며 사랑이 깊어간 엄마와 자신의 묘하게도 닮은 첫사랑. 이 우연의 일치에 내심 의아해하는 지혜는 상민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만 간다. 하지만 이미 친구의 연인이 되어버린 그를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데..."
영화의 제목처럼 클래식한 영화 <클래식>은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특히 영화 ost와 극 중 상민과 주희의 옷으로 비를 피하는 장면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장면이죠. 고전적인 한국 로맨스 영화가 보고싶은 날엔, <클래식> 추천드립니다.
5. 파도가 지나간 자리 The Light Between Oceans (2016) - 데릭 시엔프랜스
"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톰’(마이클 패스벤더)은 전쟁의 상처로 사람들을 피해 외딴 섬의 등대지기로 자원한다.
그곳에서 만난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마음을 열고 오직 둘만의 섬에서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사랑으로 얻게 된 생명을 2번이나 잃게 되고 상심에 빠진다. 슬픔으로 가득했던 어느 날, 파도에 떠내려온 보트 안에서 남자의 시신과 울고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완벽한 가정을 이룬다.
그러나 수년 후 친엄마 ‘한나’(레이첼 와이즈)의 존재를 알게 되고,
가혹한 운명에 놓인 세 사람 앞에는 뜻하지 않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는데..."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M.L 스테드먼의 <바다 사이 등대> 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제 7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도 공식 초청을 받아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입니다. 극 중 톰과 아지벨 역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이 영화 이후 실제 부부가 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여운있는 로맨스 작품을 찾는다면, <파도가 지나간 자리> 추천드립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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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을 괴롭게 하는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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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어?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한국인에게 밥이 가지는 어마무시한 메타포를,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는 알지 못할 것이다.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는 다 알지만, 외국인의 눈에 이 먹보들은 불가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2010년에 발매된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라는 노래는 이별 후에도 밥만 잘 먹더라는 스토리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힘들어 죽겠어도 '밥만 잘 먹으면' 괜찮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러니까 먹는 걸로 장난치면 뒈지게 혼나는 거다. 가정교육의 또다른 이름은 밥상머리 교육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클럽 제로>는 한국인들이 유전적으로 가진 어떤 버튼을 딸깍 누른다.
다행히도 영화를 볼 때 나는 공복이었다. 종일 먹은 거라고는 베이글 하나뿐이었는데, 정말이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술을 좀 마셨다. 영화 때문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 할머니랑 같이 보면 난리 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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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엘리트 학교에 영양교사로 온 노백이 아이들을 굶기는 이야기.
노백은 학부모 회의에서 추천받아 부임했다. '웹사이트'에서 추천했다는 걸로 보아, '안아키' 한의사와 비슷하다. '의식적으로 먹기'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게 음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극단적 논리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식사의 정치학
예시카 감독은 <클럽 제로>를 '통제'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렇다. 밥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어도 무방하다. 이를테면 옷을 통제한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날씨와 옷은 상관 없다고 시작하여 점퍼를 벗는다. 그리고 상의를 벗는다. 다음으로는 하의를 벗는다. 사실 인간은 옷 같은 건 필요 없는 존재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줄 안다. 옷이란 자본주의의 폐해이며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통재의 소재가 '밥'인 것은 먹는 행위가 가장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원초적이어서 끔찍하고, 원초적이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양태를 통제할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보호자가 필요한 이유는 수십만 개가 되겠으나 그중 보호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아이를 '먹이는' 행위이다. 그러니 수많은 아동학대 중 밥 굶겼다는 항목에 공분한다. 먹이는 자와 얻어 먹는 자에게는 역학관계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밥을 굶길 수 있는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보다 우위를 점한다. 노백의 클래스에 모인 학생들이 점점 노백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학생들의 식사를 통제할 수 있게 된 노백은 완전히 그들 위에 군림한다. 마치 사이비 종교 같다. 실제 영화에서 노백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사이비와 다름 없다. 정체불명의 '어머니'를 찾으며 계시를 내려 달라 애원하고, 명상하고, 마음 어쩌고를 찾는 것까지. 사이비 교주가 사이비 신도들을 꾀는 방법과 유사하다. 사이비 신도들이 절대적 믿음을 갖는 순간, 교주가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권력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이다. 사이비 종교를 다룬 무수한 콘텐츠들에서 발견되는 맥락과 같다.
접근 방식도 비슷하다. 각자의 약점과 결핍을 파고든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부모 같은 자애로운 사랑을, 특히 부모가 동생만 데리고 떠난 아이에게는 '너만이 내 특별한 아이'라는 환상을 심어 준다. 가난한 싱글맘을 가진 아이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자극하며, 체중 관리를 하는 아이에게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한다.
문제되는 지점은 이들이 청소년이라는 사실이다. 교장 선생에게도 노백은 '의식적으로 먹기'를 설파하지만, 식사량을 줄이던 교장 선생은 '처음에는 좋았지만 힘들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다르다. 맹목적인 믿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논리적으로 격파하지 못한다. 종국에는 다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노백의 말만 따른다.
미성년자-그중에서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프로아나'라는 용어가 있다. '아노렉시아(Anorexia)'를 찬성(Pro)한다는 이상한 용어인데, 이들에게도 별 희한한 '믿음'이 있다. 뼈만 보일 만큼 빼빼해지면 모두가 자기를 사랑할 거라는. 프로아나를 지향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정상 체중이다. 밥에도 미쳤지만 외모 강박에도 미쳐버린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쪽에서는 먹방이 난리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프로아나가 난리다.
사실 제3자의 눈에는 이들이 빼빼마른 몸이 아니라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것이 훤히 보인다. 맹목적인 믿음에 빠진 그들만 모를 뿐이다. 사랑에도 정치가 있으니, 권력은 당연히 사랑을 주는 자에게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만큼. 부모와 자식간에도, 연인간에도. 노백의 학생들은 노백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단식에 이른다. 부모나 친구로부터 생긴 구멍을 노백이 채워주므로.
노백이 처음에 주장한 '의식적으로 먹기'도 적당히 하면 중요하다. 식사를 통제하고, 의식적으로 액상과당과 탄수화물을 줄이고, 생활을 통제하고, 핸드폰 적게 하고. 우리는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입에 음식을 집어 넣는가. 입이 심심하니까.
노백의 학생들도 초반에는 몸이 가벼워지고, 능률이 오르고 일시적으로 당뇨가 호전되는 경험을 한다.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성인이라면 '적당히'를 안다. 이 정도 통제하면 되겠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통제가 극단으로 치닫는 까닭은 아마도 구멍 때문일 것이다. '결핍' 말이다.
내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면 내 구멍을 찾아야 한다. 외로움인지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사랑인지. 프로아나 여학생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에 사랑을 받기 전까지는 몸이 걸레짝이 되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노백의 수업은 통제와 가스라이팅을 하려면 반드시 구멍이 있는 자를 찾아야 한다는, 그리고 그 구멍을 집요하게 파야 한다는 이상한 교훈을 안겨 준다.
밥 잘 챙겨 먹자. 맛있는 거 '의식적으로' 먹고,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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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제로(Club Zero)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상영시간: 110분
주의: 역겨운 장면 있음. 저는 비위 약해서 눈 감고 봄.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대받아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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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고뇌와 성장
*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2022)
감독: 라이언 쿠글러
출연: 레티티아 라이트, 루피타 뇽오, 다나이 구리라, 안젤라 바셋, 윈스턴 듀크 등
장르: 액션, SF, 드라마
상영시간: 161분
개봉일: 2022.11.09
‘바스트 신이시여, 시간이 없어요.’
‘트찰라’의 병세가 악화되자 와칸다는 비상 국면을 맞이한다.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는 하나 뿐인 오빠를 살리고자 애쓰지만 엄마 ‘라몬다(안젤라 바셋)’는 ‘트찰라’가 선조들의 곁으로 떠났다는 말을 슬픔과 함께 전한다. 와칸다 국민들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가족을 잃은 ‘슈리’와 ‘라몬다’는 슬픔에 젖는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라몬다’가 여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강한 통치자를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외부에서는 와칸다의 자원을 호시탐탐 노린다. 미국 정부는 비브라늄 채굴선을 보내 이를 탐하지만 탈로칸의 공격으로 제지 당하고, 이를 계기로 탈로칸의 국왕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는 비브라늄을 지키기 위해 와칸다에게 협력을 강요한다. ‘슈리’는 정부의 비브라늄 탐지기를 만든 ‘리리 윌리엄스(도미니크 손)’를 찾아 상황을 해결해 보려 하지만 탈로칸과의 오해가 불거지면서 와칸다는 다시 한 번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채드윅 보즈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블랙팬서’는 시리즈의 중심이 되어야 할 주인공을 잃었다. ‘채드윅 보즈먼’은 후속작 출연을 앞두고 있었지만 병세가 악화 되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제작진은 급히 각본을 전부 수정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주연 없이 조연들로만 구성된 작품으로 보일 가능성이 컸다. ‘슈리’와 ‘오코예’ 정도를 제외하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캐릭터가 많지 않고,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등장하는 ‘아이언 하트’나 ‘네이머’는 아직 서사조차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블랙팬서’라는 타이틀을 걸고 가는 작품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블랙팬서’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그의 빈 자리를 느낄 새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선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죽음과 함께 시리즈에서 퇴장한 ‘채드윅 보즈먼’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속편이다. <블랙 위도우>나 <호크 아이> 같은 최근의 MCU 작품들이 전임자의 노고를 기리기는 커녕 세대교체만을 부각하면서 골수 팬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왔는데, 본작만큼은 전임자의 흔적을 빠르게 지우려 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트찰라’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슬픔의 감정을 끌고 간다. ‘트찰라’의 크나큰 존재감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 셈이다. 누군가는 오프닝 시퀀스의 장례식 장면 이후 정적이 나올 때 그에 대한 추모를 마칠 수도 있고, 혹자는 ‘라몬다’가 ‘트찰라’의 상복을 태울 때, 그도 아니라면 모든 고뇌와 성장의 과정을 끝마친 후에 비로소 오빠를 보내줄 수 있게 된 ‘슈리’처럼 영화의 마지막까지 상실감을 끌어안은 채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극중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추모를 마치고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관객도 자유롭게 각자의 속도에 따라 천천히 그의 존재를 떠올리기도 하고, 추억 속으로 떠나 보내게 만든다. 중간중간 갑작스레 등장하는 개그 신들이 억지스럽게 흐름을 깨는 경향이 있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이 작품 전반을 감싸고 있어 ‘트찰라’에게 바치는 헌정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다.
‘트찰라’가 와칸다의 통치자로서 어깨에 지고 있던 무게는 ‘슈리’와 ‘라몬다’, ‘오코예’, ‘나키아’ 등 그의 곁을 지키던 여성 캐릭터들에게 자연스레 배분되었다. 여왕으로서 위기의 와칸다를 통치하게 된 ‘라몬다’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중으로 등장하며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연기해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다. 특히 국제 회의장에서 강경한 연설로 모두를 압도하는 장면과 ‘슈리’를 지키지 못한 ‘오코예’에게 울분을 터뜨리는 감정 연기는 압권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슈리’가 납치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오코예’의 눈물 또한 인상적이다. 우리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당시 핑거 스냅으로 ‘트찰라’가 사라지던 순간 눈앞에서 주군을 잃은 ‘오코예’의 처참한 표정을 기억한다. ‘폐하’를 연신 외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오코예’는 이제 ‘슈리’마저 보호하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에 왕실을 수호하는 장군으로서 자괴감과 패배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작품의 핵심이 되는 캐릭터는 ‘트찰라’의 유일한 여동생 ‘슈리’다. ‘슈리’는 오빠가 살아있을 때만 하더라도 장난기와 유쾌함이 가득한 영락 없는 십 대 소녀였고, 어린 천재 과학자로서 전장의 뒤편에서 와칸다의 기술을 책임 지는 존재였다. 자신의 기술로 오빠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끝내 살려내지 못했고, 아들의 상복을 태우며 슬픔을 털어내고자 했던 엄마와 달리 상실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놓인 ‘슈리’는 더욱 벼랑 끝으로 몰린다. 미국 정부로부터 비브라늄을 지키기 위해 협력을 요구하는 ‘네이머’의 압박, 자신 때문에 쫓기는 신세에 처한 ‘리리 윌리엄스’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결국 탈로칸이 와칸다를 치는 바람에 벌어진 어머니의 참극까지. 심해에 숨겨진 탈로칸의 아름다운 광경을 본 뒤로 탈로칸에 대한 마음이 우호적으로 변하던 찰나 눈앞에서 ‘라몬다’를 수장시킨 ‘네이머’에게 극한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네이머’에 의해 각성한 ‘슈리’의 행보는 여러 편에 걸쳐 ‘트찰라’가 보여주었던 성장 서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폭탄 테러로 아버지를 잃고 ‘버키’를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며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던 ‘트찰라’의 모습은 어머니를 잃은 울분으로 탈로칸과의 전쟁을 단행하는 ‘슈리’의 거침없는 태도는 굉장히 비슷하다. ‘네이머’를 쓰러뜨리기 위해 인공 허브를 만들어 스스로 ‘블랙팬서’가 되는 ‘슈리’는 의식을 통해 어머니나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눈앞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에릭 킬몽거’였다. 복수심에 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에릭 킬몽거’처럼 ‘슈리’ 역시 ‘네이머’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에 ‘블랙팬서’가 되었기에 그의 모습에서 한때 오빠의 자리를 위협했던 자가 비춰졌다는 방증이었다. 처음부터 좋은 통치자가 되고자 했던 ‘트찰라’와 달리 ‘슈리’는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하지만 끝내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며 오빠와 같은 선택을 내린다. ‘블랙팬서’가 되고자 했던 목적은 ‘트찰라’와 달랐으나 결과적으로 동일한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에서 남매의 성장 서사는 닮았으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슈리’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 놓이지만 고뇌 끝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감정적인 극복을 이뤄내는 과정을 그리며 그의 성장사를 심도 있게 표현했다.
‘트찰라’의 빈 자리가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단지 그의 공백만으로 작품이 아쉬운 것은 아니다. 2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비해 액션의 비중이 부족하고, 액션 연출 스케일이 작고 미흡한 부분이 많다. 탈로칸과 와칸다의 전쟁이라는 소재만으로 충분히 스릴감 넘치는 장면을 그릴 만도 한데, 역대 마블 영화 중 손꼽힐 정도로 전투신의 재미가 떨어진다. 특히 해상에서 펼쳐지는 후반부 액션신은 근접샷 위주로 구성된 탓인지 긴장감이 떨어지고, 감탄을 자아낼 만한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내년에 공개될 마블의 드라마 ‘아이언하트’를 위한 끼워팔기가 의심되는 ‘리리 윌리엄스’의 등장도 뜬금없기만 하다. 억지스럽게 등장 명분을 만들기는 했지만 ‘아이언하트’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작품이 진행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리리 윌리엄스’가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개그신은 특히 엄숙한 분위기를 끌고 가던 작품의 흐름을 해치기만 했다. 제2의 ‘아이언맨’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중요한 캐릭터이지만 액션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뚜렷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훌륭한 치고 빠지기를 보여주었던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데뷔전과 크게 비교가 되었다.
이야기 외적으로는 분명 단점들이 존재하지만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담긴 스토리만큼은 훌륭하다. ‘트찰라’는 떠났지만 그럼에도 와칸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직 남아있다. 탈로칸과 와칸다의 전쟁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자. 마야 문명을 대표하는 ‘탈로칸’과 아프리카 문명에서 비롯된 ‘와칸다’의 뿌리에는 분명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의 핍박이 존재한다. ‘네이머’는 어머니의 터전을 빼앗은 서구 세력을, 와칸다의 여왕 ‘라몬다’는 비브라늄을 강탈해 더 강한 무기를 만들 생각 밖에 없는 미국 정부를 증오한다. 즉, 와칸다와 탈로칸은 같은 적을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선량한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을 치른 것은 같은 상대에 맞서 협력해야 할 와칸다와 탈로칸이다. 이는 서양의 강대국이 약소국을 멋대로 휘젓는 사이 소수자 문명 내에서 각종 분쟁이 벌어지는 역사와 크게 닮았다. 피해를 준 대상은 따로 있지만, 다치고 피를 흘리는 것은 결국 약자들이다. ‘네이머’와 ‘탈로칸’의 등장은 단순히 ‘와칸다’의 반동 인물로서 존재하기 위함이 아닌 서구 문명 사이에 끼인 소수자 문명의 국가들이 불필요한 싸움으로 고통받았다는 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오락적인 면모는 줄어들었을 지 몰라도 마블은 ‘블랙팬서’ 시리즈를 통해 ‘트찰라’를 추모하는 것은 물론 연작이 진행되어야 할 당위성을 메시지를 통해 전파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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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해한 코미디 속에 담긴 인생 이야기
포스터만으로도 싱그러움이 묻어나서 기대를 했던 영화 《팜 스프링스》. 게다가 2021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2021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베스트 코미디상을 받은데다가 훌루 스트리밍 오프닝 기록을 경신했다고 하니 기대를 안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0 선댄스 영화제 역사상 최고가로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5%를 기록했다는 데 안볼 수가 없었다. 결론은 기대를 했던만큼 재밌었고 정말 여름을 저격한 매력적이고도 무해한 코미디였다.
영화 《팜 스프링스》 시놉시스
“오늘은 어제고, 내일도 오늘이에요…”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팜 스프링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한끗 차이
매일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나일스에게 하루하루는 고통이고 지루할 뿐이다. 처음에는 결혼식장이기에 예쁘게 수트를 입고 가지만 100만번째 반복되는 같은 하루다 보니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슬리퍼를 질질끌며 추레하게 결혼식장에 등장하곤 한다. 그런 지옥 같은 삶에서 의도치 않게 나일스는 세라를 끌어들인다. 그렇게 같은 하루를 같이 반복하게 되면서 세라라는 존재는 나일스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물해준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그렇게 못했다가 다른 사람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안색이 저렇게나 바뀔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장면들이었다. 이러한 장면들에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이 반복을 함께 해줄 수 있는 동반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큰 의미를 준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고, 고독한 존재이지만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재화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
도전적인 세라의 이야기
집안에서는 사고뭉치로 낙인 찍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그녀지만 세라는 사실 굉장히 주체적이고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여성이었다. 자신 역시 그렇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가 타임루프에 갇히면서 그 사실을 깨닫고 각성한다.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위기 상황에 안주하는 부류가 있고 극복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부류가 있다면 나일스는 전자 세라는 후자에 가깝다. 나일스 역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자신의 능력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포기한 채로 타임루프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세라는 처음 이 상황을 즐기다가 이제 다시 돌아갈 때라며 수없이 많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렇게 양자물리학에 통달한 그녀는 폭탄을 활용하면 이 타임루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위험하지만 시도를 감행하려고 한다. 이 과정 속에서도 나일스와 반복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타임루프에 갇혀도 좋다는 나일스와 사랑하는 사람과 매번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무모하더라도 타임루프를 벗어나야겠다는 세라. 이러한 세라가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코미디 작품이었지만 굉장히 존경스러운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었다.
무해한 웃음덩어리들
지극히 자조적인 웃음이나 무엇가를 자극해서 인위적으로 웃게 만드는 코미디가 아니라 영화 《팜 스프링스》는 정말 무해한, 보고 나면 너무나도 청량한 코미디였다. 아무리 웃기더라도 조금은 불편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개인적인 기준에서 《팜 스프링스》는 정말 모든 유머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웃음만 전달하는 작품이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미래인지에 대해 무겁지 않게 물어보고 있어서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래서 웃다가 울다가 정말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영화를 감상했다. 특히, 자극적인 장면들을 많이 만들지 않고 해피엔딩의 장면에서는 그 어느 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두 주인공들을 보여주다가 생뚱맞은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주인공들이 타임루프에서 탈출한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이처럼 주제나 장면들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며 자극성을 높이기 보다는 타임루프에 갇힌 주인공들처럼 모든 장면을 평범하면서도 같은 하루의 모습으로 보여주면서 약간의 변주들을 주고 있어서 더욱 무해하게 감상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유머러스한 작품을 찾는다면 그건 바로 《팜 스프링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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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박영광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낮은목소리 의 박영광 감독님 본격 탐구! ?♀️ #하이스트레인저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낮은 목소리]의 박영광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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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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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공식 예고편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자 애나. 애나에겐 매일이 똑같다. 와인에 취해 하릴없이 창문 밖의 삶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 그런 그년의 삶에도 드디어 볕 들 날이 찾아오는 걸까? 길 건녀편에 잘 생긴 남자가 귀여운 딸과 함께 이사를 왔다. 그러나 애나의 희망은 잔혹한 살인 사건을 목격하면서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마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는 살인사건. 애나는 과연 무엇을 목격한 걸까? <그 여자의 집 건너 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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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까치발> 메인 예고편
까치발로 걸음마를 시작한 딸 ‘지후’
엄마 ‘우정’은 의사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듣는다!
“아이가 뇌성마비일 수 있어요”
크면서 자연스레 없어질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6살이 된 지금까지도 ‘지후’는 까치발로 걷는데…
엄마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은 딸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