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to2023-09-26 19:22:02
식탁에 둘러앉아 새해를 맞는 과거
<커밍 홈 어케인> 리뷰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고기를 정성스레 펼치는 칼질로 영화는 시작한다. <커밍 홈 어게인>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은 조심스러운 돌봄의 손길이다. 1997년 쓰인 에세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꼭 문장을 가만가만 읽을 때처럼 소리 없이 앉아 주인공이 누비는 집안을 둘러본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가시화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지금, <커밍 홈 어게인>은 그렇지 못했던 시대의 이야기에 늦은 보상을 하기라도 하듯 영화관에 나타났다. 주인공이 아침 일과를 마치고 식탁 앞에 앉자 카메라는 돌연 뒤를 돌아본다. 혼자 사는 남자인 줄로만 알았던 창래는 순식간에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하는 아들로서 소개된다.
영화는 제목처럼 집으로 다시, 또 다시 돌아간다. 고기를 손질하고, 야채를 손질하고, 비닐로 꼼꼼히 누르는 손길 사이사이로 그는 어머니가 아프지 않았던 과거를 자꾸만 회상한다. 이건 이렇게 해야지, 저건 저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다정한 말투와 언제나 편을 들어주는 눈길은 거두지 않는다. 아픈 어머니가 이것저것 혼자 하겠다는 고집을 부리게 되자 그 손길은 창래가 어머니에게 해주는 돌봄의 손길로 변하고, 카메라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근심과 한숨을 지켜본다.
창래는 결국 어머니와 어떻게 이별할지 정하지 못한다. 새해 전 날,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해보려 애쓰지만 아버지는 그대로 가부장적이고, 누나는 ‘아픈 엄마’라는 존재에 상심하기만 하고, 엄마는 한 술도 제대로 뜨지도 못한다. 영화는 폭발하고 상실하는 그조차 계속 쳐다보기만 한다.
<커밍 홈 어게인>은 삶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경험과 감정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배우가 연기할 시간을 충분하다 남겨 두는 숏들이 꾸밈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영화는 그렇게 집을 떠난다. 이민자 가족이 새 삶을 꾸리고 자라났던 집. 한편 영화의 길고 긴 숏들은 그 자체로 집 안에 들어온 유령처럼 가만히 앉아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심히 담아내면 아름다웠을지도 몰랐을 장면들은 원작인 에세이를 아무 각색없이 영상화한 듯 건조하게 담아내는 바람에 관객에게 와닿지 않는다. 영화의 막바지에 폭발해 큰 소리를 내는 창래의 모습은 설정을 잘못한 캐릭터처럼 보일 만큼 갑작스럽다. 한국인 이민자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다는 특별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연민으로 막을 내리는 이야기는 영화가 관객을 떠나고 있다는 감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어머니의 반찬으로만 기억되는 과거는 눈물겹게 감동적일지언정 미래로 가지고 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관객은 집을 지키던 카메라 유령의 느릿한 걸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밖에 없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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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이 만든 관계의 변수들
우리는 무심코 상상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당장 떠날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떨지. 생각은 여기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온갖 곳을 들렀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이런 우연은 내게 벌어질 수 없다고. 어쩌면 영화 <우연과 상상>에서 하는 이야기의 출발점도 이와 비슷해 보인다. 초점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게 조금 다를지언정. 이를 테면 오랫동안 보지 못한 옛 친구와의 재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나의 주변인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 된 상황 말이다.
상상했던 대로만 일이 벌어지면 자신의 예측 범위 안에서 결말까지 맺어지리라는 착각이 든다. 그러나 여기, 또 다른 변수가 존재한다. 우연. 우연히 만나거나 우연히 실수하거나 우연히 알아차리거나. 문득 이 우연과 상상을 적재적소에 쓴 넷플릭스 드라마가 떠오른다. <굿 플레이스>. 그 어떤 경우의 수를 만들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연히 벌어지는 일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일종의 진리 같은 교훈을 내세우던 드라마였다. 이번 영화는 그보단 교훈적인 메시지를 덜하다고 느꼈다. 그저 일어나는 일을 관망하듯 보여주는 연출 때문인지도 모른다.
옴니버스로 연결된 세 영화를 이제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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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세 작품의 전개 방식은 모두 대화였다. 눈에 띄는 건 대부분 두 사람의 대화였다는 점이다. 잠시 세 사람이 맞닥뜨리는 장면도 있기는 했다. 1막에서 벌어진 일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알고 한 사람은 모르는 삼자대면이었으니까.
어느 길거리. 그곳에서 주인공 메이코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 촬영에 임한다. 이때 카메라는 한 사람을 유독 보여준다. 메이코의 절친이면서 스타일리스트인 츠구미. 그렇다. 이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촬영을 마친 둘은 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대화 주제는 츠구미가 최근에 우연히 만난 남자.
츠구미는 그의 이름을 메이코에게 말하는 대신 애칭 같은 호칭을, 첫 만남에 가진 느낌을, 자신의 연애관을 들뜬 눈으로 조잘거린다. 종종 진지한 눈빛을 제외하고 츠구미는 내내 웃기만 했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얼굴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메이코의 눈은 오묘하다. 츠구미와 눈을 맞출 땐 마주 웃지만, 츠구미가 말하느라 메이코에게 집중하지 못할 때 혹은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적을 때 혼자 골몰한 표정을 짓는다.
관객 입장에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연애담,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어떤 남자의 연애담을 듣는 게 썩 흥미롭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컷 전환도 얼마 없고, 그마저도 어둡고 꽉 막힌 공간 안에서 벌어진다. 이때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바깥의 풍경과 빛, 마냥 좋아하는 츠구미와 이상하게 음침한 츠구미의 대조가 새로운 몰입을 불러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말이 밝혀진다. 그런데 아주 명확히, 원인에서부터 결과까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의 대화로 관객은 추측할 뿐이다. 예전에 메이코와 남자가 만나는 사이였고, 메이코가 바람을 피웠고, 남자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불쑥 찾아온 메이코를 뿌리 치려 하지만 메이코의 이런저런 말에 결국 시인한다. 여전히 메이코를 사랑한다면서.
이 대목은 <결혼 이야기>의 격렬한 싸움 씬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표현의 폭이 그들만큼 크지 않았으나, 사무실을 맴돌며 계속 위치를 바꾸는 메이코와 그에 맞추어 움직이는 남자의 모습이 연출적으로 닮았다고 느꼈다.
파국으로 치달을 듯한 이야기는 의외의 끝을 맞이한다.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세 사람. 메이코가 남자와의 관계를 다 밝히고, 츠구미에게 상처를 주고, 그래서 친구를 잃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이건 다 메이코의 상상이자 예측이었다. 현실로 돌아온 메이코는 무난한 선택을 한다. 두 사람을 응원하며 자리를 비켜주기로.
이때 1막의 제목을 다시 본다. 마법 혹은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보통 사랑은 마법 같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랑보다 더 불확실한 것이 있을까. 보이지 않는 마음에 이름을 붙이고 가장 좋은 것이라 명한다고 한들 끝에 다다를수록 질척이고 지저분하다. 끝을 기점으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해도 잘 모르겠는 것이다. 나의 상상과 상대의 상태가 같을지. 이번엔 다를지. 알 수 없기에, 메이코는 알 수 있는 것을 택했다.
2막. 문은 열어둔 채로
가장 불쾌한 감상이 남은 2막이다.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오는 동기인 사사키와 파트너를 맺으며 결핍을 채우려 한다. 이미 결혼한 데다가 아이까지 있는 나오이기에 옳은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사사키도 이 사실을 알고 대놓고 약점으로 부리진 않지만, 학교에서 누구 하고도 가까이 지내지 못하는 나오의 쓸쓸한 마음을 이용하려 든다.
바로 자신의 앞 길을 막은 세가와 교수의 명성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일. 정확히는 사사키가 그토록 피해자 행세를 할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교수들이 그러하듯 편의를 봐줄 거라는 생각으로 학점을 이수할 최소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융통성이나 동정심 있는 사람에게 통했을 부탁은 누군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 문을 활짝 열어두는 세가와 교수에겐 말짱 도루묵이다.
사사키의 머릿속에서 나온 방법은 나오를 이용 해서 세가와 교수가 성적으로 문란하고 더럽고 옳지 않은 사람임을 녹음본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사사키의 부탁대로 나오는 담당 교수인 세가와를 찾아 가 그의 신간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책 구절이 참 좋다며 몇 페이지를 천천히 낭독하며, 나오는 문을 스리슬쩍 닫는다.
그런 나오에게 다가온 세가와 교수는 문을 다시 열고 남은 문장을 마저 듣는다. 사사키의 계획이 모두 어그러진 것 같을 때, 나오는 자신이 하려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밝힌다. 세가와 교수는 그에 분노를 표하지 않고 오히려 흥분한다. 낭독하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소장하고 싶었다며. 나오는 이상한 조건을 건다. 책 전체를 낭독해서 이메일로 보내는 대신 그걸 들으며 자위를 해달라고.
둘만의 비밀처럼 끝날 것 같던 일은 나오의 실수로 끝이 난다. 아이의 말에 대답을 해주며 이메일 수신인을 적다가 학교 관리인의 계정으로 잘못 보낸 것이다. 어찌어찌 사사키의 바람대로 세가와는 어그러졌다. 나오까지 수렁텅이에 들어간 건 예상 못했겠지만, 그건 사사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둘. 사사키는 버젓이 잘 살고, 결혼까지 앞둔 상태다. 나오는 모든 것을 잃고 그저 피곤한 하루를 버틸 뿐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만 보일 수 있는 치기일까. 혹은 불륜의 굴레인가. 나오는 사사키에게 입을 맞추고 버스를 내린다. 이제 대학생 때와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나오의 복수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3막. 다시 한번
꼭 다시 보고 싶은 사람과 우연히 만나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3막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던 나츠코는 건너편에서 올라가던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 다급하게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그를 뒤쫓는다. 20년 만에 만난 동창생, 아야를 놓치지 않으려고.
손을 꼭 맞잡은 둘은 부산스레 대화를 잇는다.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느라 도쿄에 들린 나츠코와 가정을 꾸린 아야. 아야의 초대로 둘은 아야의 집에서 대화를 마저 하기로 한다. 고등학교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무언가를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던 나츠코. 그러다 속마음을 드러낸다. 자신이 아야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20년. 이미 늦을 대로 늦은 시기인 만큼 애처로움이 가중될 것 같을 때에 사실이 밝혀진다. 아야는 아야가 아니다. 그러니까,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둘이 나온 고등학교도 다르고, 아야의 본명도 아야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고 서로 아는 사이로 착각한 것이다. 얼마나 보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똑 닮았다고, 그 사람이라고, 나츠코는 확신에 찼을까.
어정쩡한 기류는 아야의 아들이 들어오면서 뚝 끊긴다. 이제 가보겠다는 나츠코와 역까지 바래다주겠다는 아야. 엄마 나갔다 오겠다는 말에도 아들은 아무 대꾸 없다. 가정 내에서 별 다른 애정을 주고받지 못하는 아야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마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나츠코를 보고도 별 말 못 하고 받아준 건 그 때문 아니었을까.
둘은 다시, 그들이 처음 만난 지하철역까지 간다. 나츠코는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내려가고, 아야는 육교에서 뒤돌아 걷는다. 둘 중 한 사람이 용기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 그득해질 무렵, 나츠코가 처음에 그러했듯 등 돌려 걷는 아야에게 뛰어간다. 이미 놓친 인연이 있으니까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거다. 둘은 다음을 기약하며 그렇게, 안녕을 고한다.
원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 건 아니었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학생 시절 추억으로 존재하게 내버려 두고, 지금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인연을 찾는 게 좋다고 느꼈다. 추억은 추억일 때 가장 아름답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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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이야기가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들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분 부분 공감 가는 상황은 어느 막이든 있었다. 살아가는 것도 비슷하다. 오늘 하루가 마냥 좋진 않아도 좋다고 꼽을 점은 늘 있으니까.
*씨네랩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 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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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을 사냥하고 싶었던 <늑대사냥>
과거에 교통사고가 나는 모습을 앞에서 본 적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택시가 사람 한 명을 쳤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잠깐 넘어지는 선에서 끝난 교통사고. 큰일이 아니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기억은 나에게 굉장히 크게 남아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잔인한 거 잘 못 본다. 잔인한 걸 잘 못 보지만 스릴러 장르는 취향에 맞는 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타입이라고 설명하기로 한다. 타란티노와 크로넌버그가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 취향저격 300%인 <큐어>와 <추격자>도 수위 묘사가 있는데 아무튼 이런 장르는 박진감이 있으니 좋아한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그러면 이 영화도 완전 취향저격이어야 할 텐데? <아수라>도 나쁘지 않았던 나는 이 영화가 내 시간을 사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필리핀으로 배를 타고 이동해서 한 영화를 만났다. <늑대사냥>이다.
아수라장 5분 전
어느 날의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배 안이다. 강력범죄자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는 프런티어 타이탄. 온갖 나쁜 놈들은 죄다 모아놨기 때문에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살인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범죄는 다 저질렀던 범죄자들이지만 이송 과정은 나름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잡무에 시달리는 형사들. 투정을 내뱉는 부하들을 다독이며 석우는 항해를 시작하고자 한다. 카메라는 지상으로 옮겨간다. 아마 해안 쪽을 담당하는 경찰의 한 부서로 보인다. 모니터로 해안 상황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 갑자기 어떤 남자가 들이닥친다. 대웅과 일당들은 경찰 인원들을 내쫓고 경비단에 자리를 잡는다. 대웅의 일당들 역시 같은 경찰인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다시 배 안으로 옮겨간다. 여전히 어수선한 배. 범죄자들을 수송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얼른 작전이 마무리됐으면 하는 마음은 어린 형사 다연도 마찬가지다. 다연은 형사가 직업이라지만 이 남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의사 경호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다. 그런데 경호에게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 수상한 기색은 경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상한 눈빛을 교환하는 남자들이 있다. 폭풍전야 속에 있는 배. 배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이상한 눈빛을 교환한 남자들이 배의 사람들을 죽이고 죄수들의 탈옥을 도운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배. 죄수들은 한국으로 향하는 항로를 뒤엎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과연 그들의 계획이 성사될 수 있을까?
하드보일드
우리나라가 확실히 잔인한 장르가 발달한 나라는 아니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까지 잔인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많은 분들의 취향과도 이어진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우리나라 시네필들한테나 익숙하지 일반 대중들은 사실 잘 모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외화 수입이 발달했긴 했지만 한국에서 로컬화를 시켜서 표현하긴 좀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화라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가 도달한 성취, 또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폭력에 대한 수위다. 영화는 하루 온종일 내내 피 튀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이런 건 기본이다. 심지어 팔다리 뜯는 게 꽤나 자주 나온다. 팔과 다리가 몸을 관통하기도 하고 목을 조르다 못해 손가락으로 찌르기까지 한다. 이런 취향이 있으신 분들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느낄 만큼 수위가 굉장히 세다. 이렇게 수위를 세게 설정하면 장르적으로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건 후반부 장르 비틀기와도 관련이 있다. 이 장르와 높은 수위는 확실히 시너지가 있다.
또 예고편에서도 잠깐 모습을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담당 배우가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도 한데, 바로 이 영화는 장르가 중반부를 넘어서 한번 뒤바뀐다(또 이 장르 변화가 영화 엔딩이랑 크게 관련이 없기도 하다). 그러니까 영화 구성이 1부/2부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전반부/후반부에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기는 한다. 1부는 스릴러물이다. 범죄자들이 합심해서 경찰들을 죽이고 탈옥을 도모하는 게 영화의 중심 내용이다. 2부는 호러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해 배 승객들이 생존게임을 펼친다는 것이 주요 서사다. 1부 범죄/스릴러물에서 빌런 종두가 강력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이며 시각적으로 압도한다. 또 뭔가 찝찝한 화면 색감이나 배 안을 구현한 미술까지 나름 장르적인 특색을 잘 갖췄다고 볼 수 있다. 2부 호러물에서는 '초대받지 않은 그것'의 연출이 좋았다. 동선이나 액션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중후반부 영화를 이끄는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당 배우가 연기력으로는 검증받은 사람이기도 하고 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승객들의 리액션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2부 자체로도 몰입하기 좋다. 또 극후반부 액션도 잘 뽑았다. 후반부 액션 연출은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의아한 선택
1, 2부 각각의 완성도 자체는 좋았다. 두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린 부분이 러닝타임 곳곳에 보인다. 이거까진 좋았다. 그런데, 사실 이 장르 변동이 영화에 플러스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전후반부의 구분선 때문에 러닝타임을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전반부. 경찰을 살해하고 탈옥을 도모하는 죄수들의 이야기다. 후반부. 예상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배 안이 혼란 속에 빠진다. 이 두 가지를 기준선으로 잘라 중심인물로 다르게 설정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반부는 서인국 캐릭터가, 후반부는 성동일 캐릭터가 이끈다. 제목이 두 번 들어가는 건 이 구분선을 더 선명하게 해 준다. 가장 처음에 '늑대사냥'이 제시되는 부분이나 후반부에 제목이 왜 '늑대'가 들어갔는지를 보면 이는 극이 두 번으로 나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1,2부가 딱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가령 <헤어질 결심>을 보자. 이 영화 역시 1,2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래의 남편 기도서의 살인사건이 1부, 사기꾼 임호신의 피살사건이 2부다. 두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주요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1부의 로맨스를 2부에 감정적으로 터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박찬욱, 정서경 두 사람이 극을 위해 필수적으로 설정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홍콩 영화 중 명작으로 꼽히는 <중경삼림>은 그냥 옴니버스 영화다. 애매모호하게 떡밥을 해소한 게 아니라 양조위, 왕페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와 금성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가 공간만 같지 아예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이런 설정도 이해할 수 있다. 애초부터 감독이 그걸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이 1,2부 구성이 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영화 자체가 1-2부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1부에서 뿌린 일부 떡밥이 2부에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인물도 비슷하고 주요한 사건까지 공유한다. 그럼 <헤어질 결심>처럼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장점으로 발휘되면 좋았겠지만 이 형식이 영화의 오히려 단점이 되어버렸다. 2부가 있기 때문에 1부가 의미 없이 느껴진다. 2부에서 불청객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마무리될 건데 1부에서 범죄자들이 경찰은 왜 죽이고 탈옥 계획은 왜 잡아?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 이는 반대로도 작용한다. 1부의 범죄자들의 탈출기를 주요 서사로 잡아도 이 영화는 큰 문제가 없다. 그냥 시놉시스만 생각해도 편하다. '범죄자들이 힘을 합쳐 잔혹하게 경찰을 죽이고 탈출하는 범죄/스릴러물'이라 생각하면 살짝 뻔하기는 해도 이야기에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중요한 이야기가 전반부랑 큰 관련이 없으니 앞의 서사가 '왜 넣었지?'라는 의문점만 든다.
이는 이 영화의 폭력 수위와도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주요한 원동력은 폭력적인 에너지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굉장히 강한 수위로 영화는 내내 기를 빨아놓는다. 그런데 전반부에서 맡았던 피비린내가 비슷한 템포로 후반부까지 이어지니 아무래도 극을 보는 게 지루할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온 에너지를 분출하며 러닝타임을 봤는데 후반부에 들어서고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전개되면 다 예상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 계속 이런 톤이었으니까 앞으로 저렇게 되겠네' 그렇게 예상한 것이 정확히 이루어지고, 이내 곧 맞는다. 사람이 죽는 걸 고민을 많이 했을 영화다. 애초에 감독은 이런 지점을 장점으로 염두하고 만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부분만 생각하고 형식과 이야기 구성이 산만하니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세상을 설득시키기가 어려웠다.
꼼꼼하지 않은 디테일
이렇게 영화 내내 겉돌다 보니 자잘 자잘한 아쉬움도 크게 다가온다. 첫 번째는 퀴어 캐릭터 활용법이다. 이 영화에는 퀴어 캐릭터가 나온다. 이 퀴어 캐릭터의 첫 번째 등장은 전화를 받으며 뭔가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이거 사실 이럴 이유가 없다. 굳이 그 상황에서 그 성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지시하는 장면만 나와도 극 전개에는 아무 무리가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에서 퀴어라는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냥 이 사람만 퀴어로 설정된 것 빼곤 아무런 특징을 잡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 간단하다. 자극적이니까. 이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넣고 싶으면 그 인물의 그 행동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영화 전반적으로 과한 폭력 수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은 더 탄력을 받는다. 이 연출 방식은 사실 굉장히 불쾌했다. 서사에서 1도 중요하지 않고 자극적으로만 쓰기 위해서 넣었다. 이게 소수자의 입장인 퀴어를 활용해서 그런 연출 방식을 쓴 건데 그냥 동성애 혐오같이 느껴졌다. 쓸데없이 자극적인 느낌?
또 영화 전반적으로 사운드 편집은 굉장히 아쉽다. 아마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아도 충분할 것이다. 간단하다. 내내 귀가 아프다. 그 전부터 귀가 아프지만 특히 '그것'이 등장하고 나서가 더 아팠다. 물론 영화 안에서 '그것'의 존재감이 강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이 귀 따가움의 변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의 존재감으로 고통받아야 할 건 극 중 인물들이지 관객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서도 꼼꼼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나도 기대가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아는 부분이 있다. 솔직히 여기서 좀 기대했다. 극 전개의 핵심이 있을까 봐. 근데 그런 것 없다. 승객들의 대응은 굉장히 단순하다. 이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다 예상 가능하고 서스펜스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극후반부 하이라이트가 되는 액션신이 있고 나서 진주 인공과 관련된 어떤 설정이 있다. 이거, 좀 많이 이상하다. 극에서 내내 제시됐던 큰 설정이랑 안 맞는다. 이게 전형적인 이야기와는 벗어나긴 했는데 그걸 위해서 기본적인 토대까지 흔들어버린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 전체가 극 전체적으로 장르의 특성을 따르기보다는 '클리셰를 부순 신선함'을 추구한 티가 난다. 그런데 그것도 기본적인 완성도가 보장이 되어야 유효타로 작동하는 지점이다.
그래도 장점은 있어
뭐 그렇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영화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있다. 성동일, 서인국, 정소민, '그것'을 맡은 배우, 그리고 극후 반부의 액션신이다. 일단 성동일 배우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많이들 아는 배우다. 또 <아빠 어디 가>나 <슛돌이> 시리즈에서 입담이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성동일 배우의 진지한 연기를 한번 보고 싶었다. 초중반부까지는 베테랑의 클래스를 보여주지만 중반부에선 뭔가 매가리가 없었다. 그리고 후반부는 이 배우의 모든 경험치가 다 드러난다. 후반부 극을 마무리 짓는 카리스마로는 손색이 없었다. 또 서인국 배우는 처음 보는 악역 연기였는데 꽤 잘했다. 이 사람이 욕을 하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 부분도 무리가 없었다. 또 배우가 비주얼을 어떻게 구현하나? 도 영화에서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좀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문신을 그냥 좌시하지 않고 톤, 표정, 제스처로 시너지를 내는 좋은 연기가 돋보였다. 이 인물의 행보는 극에서 중요하다. 이 들쭉날쭉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좋은 연기였다. 또 정소민 배우는 존재감이 돋보였다. 비율이 은근히 좋으시던데 이런 배우였나? 싶었다.
또 극후반부의 액션신은 정말 대단하다. 두 배우의 합이 엄청났다. 그렇게 잔인하지도 않은데 이 두 사람의 전투신이 러닝타임 내내 전개되는 고어함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두 배우가 액션을 하는 건 그렇게 자주 봤던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 하나만큼은 탄탄하게 구성해서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성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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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갔을까? 엄마 이전의 나 자신으로 살던 삶은.
‘나 자신’으로만 살던 내가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불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단한 수식어가 붙은 삶을 살게 되었다. 엄마인 나와, 직업인 나라는 2인분의 인생. 한 사람이 갖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사회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수행하기에 녹록지 않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엄마라는 역할과 나 자신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가, 하나를 포기하던가. 후자로 마음이 저울이 기울게 되는 순간, 엄마가 된 이상 엄마라는 단어를 지울 수는 없으니, 나 자신은 사라지고 엄마가 남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 된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우리는 그렇게 엄마로 살아가게 된다.
버나뎃은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천재건축가이다.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그 시절 건축계에서 독보적인 아이콘이 되었지만, 유망한 프로그래머인 남편 ‘엘진’을 따라 LA에서 시애틀로 이사를 온다. 네 번의 유산을 겪고, 어렵게 낳은 딸은 심장이 약한 상태로 태어나, 출생 후 여러번의 수술을 받게 된다. 버나뎃은 자신을 지우고 딸 ‘비’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건축계를 떠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 딸이 어느새 중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을 넘어 사회불안장애라 칭해도 될 만큼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 인 탓에 도움이 필요한 일은 온라인 비서 만줄라에게 의지하고 자발적으로 고립된 삶을 택하고 있으면서도 딸에겐 한없이 다정한 엄마 버나뎃.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지만, 딸 ‘비’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며 가족이 함께 떠나는 남극 여행을 소원으로 말하자 어쩔 수 없이 남극행 티켓을 끊는다. 남극여행을 어떻게 가야 하나 두려움과 피하고 싶은 마음들이 겹겹이 쌓여 예민함을 표출하는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오랜만에 친구이자 동료인 폴을 만나, 남편이나 딸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데, 폴은 그녀에게 간단한 처방을 내린다. ‘너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해. 그러지 못하면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야. 다시 일을 시작하고 뭐라도 만들어.’
버나뎃은 폴과의 대화 이 후 피하고 싶었던 남극여행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 아주 다른 공간인 남극을 여행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FBI가 찾아온다. 버나뎃이 의지하고 있는 만줄라, 그러니까 온라인 비서시스템이 러시아 범죄조직의 위장회사이며, 이들은 버나뎃으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이들 부부의 재산을 뺏으려 하고 있다.FBI와 심리치료사가 집으로 들이닥쳐, 버나뎃이 지내고 있던 조용한 일상을 뒤흔들고 버나뎃은 떠나버린다. 문제가 생기자 건축계에서 떠나버렸듯, 또 문제를 두고 도망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엘진’ 과 엄마를 찾아가고 싶은 ‘비’
예정되어 있던 남극으로 항하는 버나뎃은 생각보다 사람들과 부딪힐 일은 적었고, 밤이 없는 세계, 사람도 거의 없는 대자연에서 버나뎃은 자유를 느끼고,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열망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차단했던 20년을 지나온 뒤, 마치 스위치를 켠 것 처럼 아이와 남편이 없는 환경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마음만을 따라간다.
이웃을 상대하기도 싫고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은 너무 싫지만, 가족에게는 따듯한 사람. 집안에 싹튼 새싹을 위해 능숙하게 카펫을 찢는 사람. 버나뎃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었을까?
버나뎃의 주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 유튜브 영상같은 타인의 이야기만 듣고 주인공의 마음을 직접 듣지 않는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한 행동이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세상. 빠르게 변화하고, 정해진 길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하고 싶은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삶은 계속 따분해지는데, 그것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 이라고 폴에게 울먹이며 말하던 버나뎃을 떠올린다. 버나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로 사느라 꺼내지 못한 열망을 품고 얼마나 끙끙 거리고 있었을까?
버나뎃처럼 화려했던 과거가 아니더라도 모든 엄마들에겐 엄마가 되기 전의 자기자신으로 살던 인생이 있었다. 그 삶은 지금 어디 갔을까? 지금 나자신은 사라지고, 엄마와 아내 딸과 며느리의 역할만 남아 있는 것 처럼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버나뎃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따분한 삶을 재미있고 가치있게 만들수 있는 것은 나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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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종말 직전 드러나는 사회의 모순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은 정치와 관련이 있다. 정치적인 결정은 무언가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고, 그 사회 구성원이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려고 애쓴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그 많은 정치인들 중 자신과 사회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누구일지 투표를 통해 선택한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선출되지 않았더라도 정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 그래서 정치는 우리 삶에서 완전히 떼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발전을 막기도 한다. 인류가 그동안 겪었던 전쟁은 바로 정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정치에 관심을 두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선택을 한다. 정치라는 것이 언제나 조용하고 안정적으로 흘러가지는 못한다. 수많은 경쟁이 벌어지고, 다양한 분야에 그 정치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 영역에서조차 정치적 영향력은 힘을 뻗고 있다. 과학 연구의 방향성이나 연구 인력의 숫자 등이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주 탐사 같은 영역은 온전히 정치적인 상황과 결정으로 인한 예산 투자가 없다면 진행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지구 충돌 혜성을 발견한 두 과학자 그리고 정치인
영화 <돈 룩 업>은 지구에 곧 충돌할 혜성을 발견하게 된 두 과학자가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과정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영화 초반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박사 과정 제자 케이트(제니퍼 로렌스)가 혜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여느 재난 영화의 장면과 다를 바 없다. 기존 재난 영화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건 그들이 관련 보고를 하기 위해 백악관에 간 이후 벌어진다. 여기엔 나사의 테디 박사(롭 모건)도 동행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만난다.
민디, 케이트, 테디 이렇게 세 과학자가 처음 대면하는 정치인은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하루 이상을 기다리게 되는데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먼저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혜성의 지구 충돌을 전달했을 때, 그는 정치적으로 그 사안을 언제 공개하고 이용할지를 계산하기 바쁘다. 인류 멸망이라는 엄청난 재난 상황 앞에서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과학자들의 말을 온전히 과학적 발견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 안에 정치적인 의도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언론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유명 방송사도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정치인들이 잘 받아주지 않자 다음 해결 방법으로 매스컴을 택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백악관이 그 사실을 무시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을 방송에 출연시키지만 그들 역시 과학자들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심지어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 즉 천문학자들과 반대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천문학자들의 저의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방송사 간부들 조차 그 과학자들이 아주 순수한 학문적 발견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소비되어 버리는 과학자들
방송사에서 과학자들을 소비하는 방식도 이 영화에 잘 나와있다. 잭(타일러 페리)과 브리(케이트 블란쳇)는 아주 가벼운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인류 종말이라는 상황을 심각하게 이야기하지만 진행자인 잭과 브리는 그것을 별일 아닌 것처럼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그리고 화를 내는 케이트와 침착하게 대응한 민디 박사를 비교하면서 케이트는 SNS에 이상한 마녀 이미지로 떠돌게 만들고, 민디 박사는 전문가로 떠받든다. 그러니까 같이 혜성을 발견한 두 사람조차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각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민디 박사와, 케이트, 테디 박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정치적인 판단을 벗어나려 애쓴다. 자신은 순수하게 과학적 발견을 했고, 그것이 곧 지구 종말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한낱 정치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진다. 대중들은 현재 정부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한쪽은 과학자의 의견을 믿지 않고, 다른 한쪽은 과학자의 의견을 믿는다. 영화에서는 그 의견 대립을 ‘돈룩업(위를 쳐다보지 마)’과 ‘룩업(위를 쳐다봐)’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종의 정치적인 해쉬태그 대립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세 과학자는 끊임없이 그들의 방법으로 종말을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외친다. 우리 사회에서 지구적 환경 재난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사회단체나 과학자들의 의견이 떠오르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알고 있지만 당연히 그 안에 정치적인 문제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과학적인 사실 만으로는 대중을 움직일 수 없고, 그것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정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지지나 행동은 요원하다. 반대의 의견은 사회연결망을 통해 확산되고 더 굳게 믿어진다.
영화 속 정치인들은 그들의 프로파간다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영웅을 이용한다. 베네딕트(론 펄만)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핵미사일을 발사할 때 참여시킴으로써 대통령 본인과 집권당의 정치적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면서 이 사안을 더욱더 정치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이런 정치인의 의도된 행동을 매스컴은 라이브로 중계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확산시킨다. 여기서 영웅은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위해 전혀 엉뚱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든다.
현실 속의 모습이 잘 드러난 블랙코미디
영화 <돈 룩 업>은 관객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비슷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집권하고 있는 여당에 대입해도, 그 대척점에 있는 야당에 대입해서 해석해도 충분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라는 것이 진행되는 프로세스와 그것으로 대중들이 받는 영향이 이 영화에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에서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생각해보면, 대중의 입장에서 어떤 정치인들의 말이 맞을지, 과학자의 말에 정치적인 성향은 들어가 있지 않을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만약 정말 종말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면 그것의 진위를 파악하는데 한참 걸리거나, 아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아픈 부분일 수 있다. 결국 모든 활동에 대한 판단은 무언가를 보고 자기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사회적 정쟁과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세 과학자가 처한 상황은 꽤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처음엔 안절부절못하다가 이성을 찾는 과학자 민디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주 순수한 모습과 자신만만한 모습을 오가며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 그가 지구 종말을 외치는 장면은 압권이다. 혜성을 처음 발견한 박사과정 학생 케이트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는 전혀 정치적인 색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방송에서 짜증을 부렸던 것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역할을 잘 연기했다. 그런 답답함과 분노가 제니퍼 로렌스의 뾰로통한 얼굴에 잘 드러나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빅쇼트>나 <바이스> 같이 사회적인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그가 각본까지 도맡아 하면서 꽤 맛깔스럽고 재치 넘치는 대사와 상황을 통해 정치적으로 벌어지는 부조리와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돈 룩 업>에서도 현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그것을 보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화에서 보이는 웃픈 상황들이 허구라는 측면에서는 안도감이 들지만, 그것이 현실과 아주 가깝다는 사실에서는 불안감이 들게 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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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룩 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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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의 밤이 이제 그만 멈출 수 있도록
아침이 밝기 전에 겨울 노래를 다 익혀야 해요.
도돌이표 사이 반복해 흐르던 불면의 밤이 이제 그만 멈출 수 있도록.길상호, '겨울의 노래', 『우리의 죄는 야옹』
늦은 밤, 누군가의 집 앞에서 서성이는 한 여자. 들어갈까 말까,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서기를 반복. 결국 문을 두드린다. 어떤 남자의 집이다. 이웃에 살지만 데면데면하고 서로 잘 알지는 못하는 사이인 두 사람. 집 안을 흘끗거리는 여자를 보고 남자는 어색하게 집 안으로 안내한다. 뜸을 들이며 머뭇거리던 여자가 본론을 꺼낸다.
"괜찮으시면 언제 제 집에 오셔서 같이 주무실래요?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냥, 침대에 함께 누워서 잠들 때까지 얘기하면서 밤을 보내자는 거죠.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생각해보겠다고 한 남자는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여자의 집에 전화를 건다. “어제 이야기한 것 말인데, 좋아요.”, “언제가 좋을까요?”, “내일 밤?” 2014년 작고한 켄트 하루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2017)은 위와 같이 시작된다. ‘애디’(제인 폰다)는 남편과, ‘루이스’(로버트 레드포드)는 아내와 각각 사별한 뒤다. 두 사람은 70대고, 혼자 살고 있다. 이를테면 동네 커피숍에서 또래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고, 정원을 손질하는 등 소일하며 살던 두 사람은 서로가 수십 년을 이웃하며 한 동네에 살았다는 것에 놀라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밤에 우리 영혼은>은 흔하게 떠올릴 법한, 황혼의 로맨스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혼자라는 삶에서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 없는, 누구나의 보편적인 외로움에 대한 영화에 가깝다. 타인과 함께 있지 않아서 찾아오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의 적막을 견디기 어려울 때 생기는 외로움. 처음에 ‘루이스’는 동네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 쓰여 ‘애디’의 집 뒷문으로 출입하지만 ‘애디’는 그가 앞문으로 들어오길 원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고독감은 누군가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자신으로부터 생기는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애디’는 용기를 낸 것이다. 비슷한 취향이나 세계관을 가진 타인과 나누는 대화가 일정 부분 해소해줄 수 있을 외로움을 인정하면서.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이렇게 좋을 자격이 내게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그가 말했다. 어머, 당신도 행복할 자격 있어요. 그렇게 안 믿어요? 지난 두어 달, 그리된 것 같아요. 이유는 뭔지 몰라도요. 이게 얼마나 지속될지 여전히 회의적인 거죠? 모든 것은 변하니까요.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김재성 옮김, 뮤진트리, 2016, 111쪽.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라는, 박연준 시인이 프리다 칼로에 대해 쓴 책 제목을 떠올린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있다는 느낌. 자동차 소리나 밖을 지나는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 홀로 불 켜진 편의점과, 영업 마감 시간을 앞두고 드문드문 손님이 앉아 있는 작은 술집. 밤은 조용한 시간이어서 다른 사람보다는 혼자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는 시간이다.
‘손만 잡고 자는’ 영화 속 두 사람을 보면서, ‘함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누군가의 존재를 막연하게 떠올린다. 혼자인 낮에는 커피숍에 앉아 책 한 권을 낀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점원을 흘끗 관찰하기도 하지만 혼자인 밤에는 반겨주는 이 없는 집에 들어가 어둠과 적막을 뚫고 침실이나 서재로 향한다. 음악을 틀어두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에 몰입하는 건 혼자임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
이 글 역시 새벽에 쓰고 있다. 몇 명일지 모를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글보다 몇 명인지 아는 특정 소수에게 닿는 글이 더 쓰고 싶은 글이라고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바로 지금과 같은 마음 때문이다. 스스로를 지금 당장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한 외로운 사람이라 의식하지는 않는다. 실은, 혼자서 꽤 시간을 오래 잘 보내는 편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 글이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이라 생각하면,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말 걸기’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괴롭거나 외롭지 않게 된다. 외로운 영혼들이 서로에게 용기를 내서 건네는 대화로 혼자의 두 밤을 두 사람의 한 밤으로 채워가는 <밤에 우리 영혼은>의 이야기는 대단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적적한 밤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빛을 밝히는 작고 은은한 독서용 램프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 글을 하루 일과를 끝마친 밤에 읽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하자면, 물리적 거리와 시간을 넘어 생면부지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된다. 밤에 우리 영화는요, 하고 말을 걸듯이.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포스터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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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깔나는 배우들의 깔끔한 타임루프, 팜 스프링스
팜 스프링스
감독 맥스 바바코우
출연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 시몬스
※개봉 전 시사회로 본 작품이기 때문에 개인 평점만 기록했습니다.
※시사회는 영화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네이버 평점 : 개봉 전
왓챠 평점 : 개봉 전
개인 평점 : ★★★☆ (3.5 / 5)
>> 미국식 코미디를 즐긴다면 의외로 5점도 가능...!
팜 스프링스 리뷰 3줄 요약
1. 메인 장르는 코미디도 로맨스도 아닌 타임루프물
2. 미국식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즐겁게 볼 수 있다. (미국 시트콤과 결이 비슷하다 생각)
3. 엔딩 크레딧 나오기 전 약간의 뒷이야기가 나온다. 그것 외에 쿠키 영상은 없다.
<팜 스프링스> 포스터 [출처: 씨네랩 제공]
- 코미디만 만들어온 신인 감독의 나름 성공적인 첫 장편 데뷔작
<팜 스프링스>의 감독 맥스 바바코우는 지금까지 1편의 다큐멘터리, 2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는데 모두 장르에 코미디가 들어갔다.
한마디로 요즘 찾아보기 힘든 코미디에 진심인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팜 스프링스>는 그런 그의 첫 장편 코미디이면서 처음으로 영화제에서 상까지 수상한 나름 성공적인 데뷔작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면 살짝 뻔할 수도 있는 클리셰적인 유머 코드의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배우들이 잘 살린 것도 있지만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배치하여 억지로 웃기려 든다는 위화감은 들지 않는다.
이것만 하더라도 가벼운 영화지만 꽤나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감독의 유머 코드는 영화의 전반적인 재미 수준을 꾸준히 끌고 가서 영화를 보면서 텐션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줘서 좋았다.
<팜 스프링스> 스틸 컷 이미지 [출처: 씨네랩 제공] / <브루클린 나인 나인> 포스터 [출처: FOX 공식 홈페이지]
<팜 스프링스> 스틸 컷 이미지 [출처: 씨네랩 제공] / 메레디스 하그너 [출처: 다음 영화]
- 약간은 낯선 주연 배우들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앤디 샘버그는 미드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알 수도 있지만 영화에 자주 나오는 배우는 아니다. 최신 필모를 보면 대부분 애니메이션 주연 목소리 역을 맡고 있으니 어찌보면 목소리는 익숙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앤디 샘버그가 국내에서 알려진 건 넷플릭스 유명 시트콤 브루클린 나인 나인에서 주연 제이크 페랄타 역을 맡으면서다. 시즌 1부터 골든 글로브에서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현재 시즌 8까지 나온 인기 시트콤이다.
SNL 크루로 데뷔해서 콩트를 쓰고 직접 연기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시트콤에서 인기를 얻었으니 코미디 쪽으로는 누구보다 전문적인 배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나이가 43살인데 생각보다 동안인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 상대역인 크리스틴 밀리오티와는 무려 13살이나 차이가 난다!
심지어 극 초반 커플로 나오는 메레디스 하그너와는 15살 차이… 영화 볼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놀랐다.
영화를 보면 감독의 유머 코드 인지 앤디 샘버그의 평소 개그 스타일을 살린 건지 병맛 코드의 개그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그 외에도 19세 관람가 수준까진 아니지만 어른용 유머도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는 편이라 가족끼리 보는 건 추천하지는 않는다.
<팜 스프링스> 스틸 컷 이미지 [출처: 씨네랩 제공]
앤디 샘버그와 함께 주연을 맡은 크리스틴 밀리오티 역시 시트콤으로 이름을 알린 이력이 있다. 국내에는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유명 시트콤이다. 이 외에도 그녀는 뛰어난 노래 실력의 소유자로 다양한 뮤지컬과 연극에 출연하였고 뮤지컬 원스로 그래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듯 주연배우들이 탄탄한 이력과 다양한 무대 경험이 있어서인지 주연배우 간의 티키타카가 매우 자연스럽다.
특히 조연으로 출연한 J.K. 시몬스는 그 특유의 광기를 보여주며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뽐낸다.
- 깔끔한 타임 루프 활용 (a.k.a. 치트키)
앞서 소개했듯이 <팜 스프링스>는 타임 루프에 꽤나 중점을 둔 로코 영화이다.
주인공 나일스는 기억이 까마득할 만큼 타임루프에서 살아온 인물이며 이미 그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여기서 나일스가 타임 루프에 걸리게 된 사연이나, 타임 루프가 생긴 원인 등은 영화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도 하고 딱히 설명 없이도 영화 흐름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영화 속 톡톡 튀는 매력을 풍기는 장면들은 모두 타임 루프라는 설정과 함께하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감독과 작가가 영화의 설정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생각보다 일찍부터 기획되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처음 영화를 기획할 당시에는 직접적으로 비교될만한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뿐이었지만 나일스 역으로 앤디 샘버그를 캐스팅하고 각본을 수정하는 사이 많은 타임 루프 영화가 개봉했다. <해피데스데이 시리즈>라던가 넷플릭스 시리즈 <러시안 인형처럼>등으로 실제로 이러한 것을 보면서 그들 역시 꽤 당황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모두 대본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이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팜 스프링스>가 개봉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극 중 사라 역을 맡은 크리스틴 밀리오티는 장르가 타임 루프인 만큼 양자 물리학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서 이를 설명하는 장면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장면은 편집되었다고....
밀리오티에겐 안타까웠을 일이지만 영화 전반적으로는 물리학적인 상황보다 극 중 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연출하는데 집중하면서 오히려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팜 스프링스 메인 예고편
<팜 스프링스> 메인 예고편 [출처: 다음 영화]
※아래 내용부터는 본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포 방지용 춤추는 나일스 짤 / 눈빛 교환 중인 로이 역의 J.K. 시몬스 <팜 스프링스> 스틸 컷 이미지 [출처: 씨네랩 제공]
- 붉은 여왕의 법칙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
- 붉은 여왕 -
<거울 나라의 앨리스> 중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법칙으로 붉은 여왕이 사는 세상에서 등장한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가만히 있기 위해서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며,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법칙이다.
흔히 진화론과 관련되어 사용되긴 하지만 이 법칙을 처음 들었던 건 창업 교앙이었기 때문에 기업과 관련된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업의 목적이 현상 유지가 되는 순간 경쟁 업체는 모두 발전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도태된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이 법칙을 이야기한 이유는 <팜 스프링스>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극 중 주인공인 나일스는 타임루프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무한하게 반복되는 삶을 받아들인 인물이다.
하지만 새롭게 루프에 들어온 사라는 끊임없이 행동하는 인물이다.
사라가 탈출하기 위해 시도한 것들은 나일스가 대부분 해보았거나 너무 터무니없어서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방법들이었다. 사라 역시 무수히 실패했고 반복되는 삶에서 적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정적으로 그녀는 루프를 꼭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깨닫게 되는 장면을 계기로 그녀는 루프에 대해 한 단계 더 깊이 고민했고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탈출 방법을 찾아낸다.
나일스가 도태되어 버린 이유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죽어라 뛰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루프에 갇혔었다.
루프 탈출을 앞두고 갈리는 둘의 입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이 갇혀있는 세상은 어찌 보면 움직이지 않는 세계이다.
따라서 붉은 여왕의 세계처럼 뛰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무리가 없다.
루프 밖의 세상은 치열하게 일을 하고 삶을 보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계이다.
여기서 나일스는 발전이 없을지라도 루프 안에 남기를 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라는 실수를 바로잡고 더 나은 삶의 모습을 만들고자 주저없이 나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 모습을 보며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는 붉은 여왕의 세계와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과연 나라면? 루프에 갇혔을 때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출할 수 있는 루프라면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영원한 방학이 있으면 스스로 개학식을 열 수 있는 의지가 나에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 보면 금세 일주일이고 일 년이고 지나가는 게 아닐까?
아마 세상은 흘러가지 않더라고 즐길 거리가 많을 것이고 너무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다 보면 오히려 루프 밖을 견뎌낼 체력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고 나오면 루프를 나와서도 힘들어질 때마다 루프 속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나도 어쩌면 나일스처럼 그렇게 안빈낙도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성격상 멈춰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할 것이고 후회는 금방 까먹을 테니 잠깐의 여행처럼 갔다가 올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잡담이 길었지만 영화 자체는 나름의 메시지도 분명했고 피식피식 웃기는 장면도 많았고 특히 소위 골 때리는 장면이 많아서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마침 네이버 영화에 특별 예고편으로 올라와 있어서 첨부했다.
두 캐릭터의 매력이 잘 나타난 favorite 장면 <팜 스프링스> 특별 예고편 [출처: 네이버 영화]
네이버에는 다이나믹 듀오 장면으로 올라와 있던데 다이나믹한 듀오의 장면이라 그렇게 이름 붙인 건지 다른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손가락이 검열당하긴 했지만 모두가 알아볼 거라고 생각한다.
지나가듯 펍 안의 사람들이 나왔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한 번씩은 개그 요소로 쓰이니 그런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개그 소재로 안 쓰인 등장인물이 없다.... (새삼 놀라는 중)
다시 한번 정말 코미디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보면 개인 평점을 4점으로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강력한 개봉 기대작들이 모두 지나가고 (마블이라던가... 디즈니라던가... 거기가 거기지만...)
타임 루프를 메인으로 약간의 코미디만 가미된 깔끔한 영화를 찾고 있다면! 주저없이 추천할 수 있는 영화 <팜 스프링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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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주 최신 개봉영화(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매트릭스 리저렉션, 드라이브 마이 카, 신데렐라2 마법에 걸린 왕자, 호두까기 인형)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2월 3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킹스맨퍼스트에이전트 #매트릭스리저렉션 #드라이브마이카 #신데렐라2마법에걸린왕자 #호두까기인형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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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동명원작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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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른 영화 "그것:두 번째 이야기"의 개연성 논란#그것2리뷰 #그것2 #영화그것두번째이야기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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