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하수영'(전도연). 하지만 그녀는 연인이자 상관인 '임석용'(이정재)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는다. 뒤로 몰래 관리하던 마약 밀 조직이 검거됐고, 그녀 이름이 담긴 녹취 파일이 검찰에게 넘어갔다는 것. 이에 그녀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현금 7억과 자기 아파트를 보장하겠다는 '앤디'(지창욱)의 제안을 받아들여 감옥에 간다.
2년이 지나 마침내 출소한 하수영. 하지만 그녀는 교도소 앞에 생전 처음 보는 '정윤선'(임지연)만 자기를 마중 나오자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임석용의 부사수였던 '신동호'(김준한)와 과거 자기가 관리하던 조폭 '조 사장'(정만식)을 찾아가 사건의 전말을 들은 후 하수영은 결심한다. 약속을 어긴 앤디, 그리고 앤디의 뒷배인 '그레이스'(전혜진)와 전면전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약속받은 보상을 받아내겠다고.
약속을 깬 대가가 없다
흔히 장르를 관객과의 약속이라고 한다. 스토리텔링과 미장센, 연출 등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변하지 않는 선이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이 약속은 상업영화에서 중요하다. 관객이 특정 장르에 특정 재미와 쾌감을 기대하는 한, 장르 영화는 이를 충족할 때 흥행하기 때문. 전투기 시퀀스로 중무장해 액션 블록버스터의 자격을 뽐낸 <탑건: 매버릭>과 슈퍼히어로 영화답지 못한 서사, 빌런, 액션을 보여준 <더 마블스>의 차이가 그 방증이다.
물론 모든 영화가 언제나 장르의 관습을 따르지는 않는다. 과감하게 규칙을 깨부수기도 한다. 그런 작품은 종종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대중적이지 않은 내용의 전기 영화였다. 그러나 오펜하이머의 인생을 두 개의 시간선으로 나눈 후 교차하는 과감한 시도로 관객과 비평가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다만 도전과 위험은 한 쌍이다. 규칙을 파괴하고도 대중을 매료하려면 그 관습을 깬 이유와 효과를 명확히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오승욱 감독의 신작 <리볼버>는 이 리스크를 간과했다. 익숙한 한국 누아르 영화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여러 노력으로 가득하지만, 그 시도가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을 가시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리볼버>는 고이 숨겨 놓은 진의를 보여주기도 전에 관객으로부터 외면받고 말았다.
단순하지만 기대한 맛도 아니다
사실 <리볼버>는 복잡하지 않다. 등장인물은 많지만, 이야기는 간단하다. 전직 경찰이 약속받은 돈을 찾아다니는 게 전부다. 한국형 누아르 요소도 많아서 익숙하다. 기업처럼 보이는 거대 범죄 조직은 마약 사업을 하고, 부패 경찰은 그들 뒤를 봐주면서 이득을 챙긴다. 그 덕분에 몰입도 쉽다. 하수영이 출소한 직후와 그녀가 감옥에 간 2년 전 전말이 드러나는 초반까지는 한국 영화에서 볼 법한 폭발적인 복수극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초반부를 지나자마자 오승욱 감독은 예상을 뒤엎는 결정을 내린다. 자극적이고 빠른 전개 대신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먹싸움이나 총격전 대신 그저 대화가 이어진다. 그렇다고 각 캐릭터의 사연이나 전사를 넋두리하지도 않는다. 창문 같은 오브제나 절 같은 배경을 강조하면서 각 인물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춘다. 절제된 폭력 속에서 돈이라는 목적을 바라보는 이들의 선택을 천천히 감상하도록 유도한다.
이 특징은 한 작품을 연상시킨다. 박훈정 감독이 넷플릭스로 공개한 <낙원의 밤>이다. 복잡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누아르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지 않는 템포와 분위기로 담아냈기 때문. 약간의 허술함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이 펼치는 블랙 코미디, 그리고 차가운 영상미로 공간적 배경의 힘을 극대화하는 연출 역시도 공통점이다.
대화가 유독 많은 이유
특히 <리볼버>에는 유달리 마주 보고 대화하는 장면이 많다. 그 장면들만 모아 봐도 이 작품이 어떻게 규칙을 깨려 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사실 누아르 영화에서 가장 쉽고 흔한 대화법은 무력과 폭력이다. 총이나 칼로 협박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면 죽이겠다고 경고하는 식이다.
<리볼버>는 다르다. 총이 있지만, 쓰지 않는다. 하수영은 계속해서 대화로 정보를 찾는다. 약점을 쥐고 협박할 수 있는 상대에게도, 과거에 안 좋은 인연이었던 사람에게도 가급적 힘을 쓰지 않는다. 만악의 근원이자 출소하면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깬 앤디와도 평화롭게 일을 끝내려 한다. 피 섞인 술을 마시면서까지. 이 대목에서 이미 <리볼버>는 기존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겠다고 암시한 듯하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통해 주어진 정보는 많지 않다. 하수영, 정윤선, 신동호, 앤디 등이 주고받는 대화는 말맛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지만, 그와 동시에 항상 물음표를 남긴다. 겉보기에는 명료한 지시 아래로 진짜 속내와 욕망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줄 타는 정윤선이 의외로 하수영을 진심으로 돕고, 앤디에게 의외로 아픔이 있고, 신동호가 아닌 척하면서 진짜로 하수영을 좋아했듯이.
이처럼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 헷갈릴 때, 힌트가 슬며시 드러난다. 바로 공간이다. <리볼버>는 화종사라는 절에서 모든 사건이 갈무리된다. 이때 화종사에는 여러 함의가 동시에 깃든다. 하수영에게는 그녀가 찾고 있던 모든 것이 숨겨져 있던 장소다.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등장하기 전까지는 스쳐 지나가는 복선에 불과했지만, 이 절은 극 중 모든 인물의 욕망과 개인사가 한데 모이는 접점이다.
유달리 절이 눈에 들어올 때
그 공간이 하필이면 '절'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클라이맥스는 화종사를 배경으로 한 소동극이다. 그런데 구조가 묘하다. 누군가의 선의, 악의, 그리고 욕망이 뒤엉킨 코미디다. 그 끝에서 각 인물은 마땅한 보상 혹은 대가를 받는다. 하수영에게는 옛 연인의 진심과 돈이, 정유선에게는 위기를 무릅쓴 선의의 보상이 주어진다. 다른 이들은 하수영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기 위한 계략을 되돌려 받는다.
이 시퀀스를 보다 보면 한 단어가 뇌리에 떠오른다. 바로 '업(業)'이다. 불교에서 업은 미래에 일어날 일의 원인이 되는 행동과 그 인과를 뜻한다. 한 사람이 경험한 기쁨 혹은 슬픔은 업의 원리에 따라 결과로써, 필연적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즉, 자기가 행한 행위가 선한지 악한지 여부에 따라 미래의 운명도 결정된 셈이다. 선의를 베푼 자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의 운명이 극명히 엇갈린 클라이맥스를 함축하기에 제이다.
모든 사건의 원점이 밝혀지는 순간에도 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레이스와 하수영은 화종사 마당에서 처음 대면한다. 그 순간 왜 그레이스가 앤디를 통제하지 못했는지, 왜 사고는 앤디가 치고 그레이스는 뒤치다꺼리하기 바빴는지 이유가 드러난다. 그들이 남매가 아닌 모자 관계라는 업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 <리볼버>에서 유달리 자연광을 활용한 촬영법과 화종사의 영상미가 눈에 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영화 제목이 '리볼버'여야만 하는 이유와도 이어진다. 하수영은 가급적 총을 쓰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에는 리볼버로 사람들을 죽이고 만다. 업의 관점에서 보면 죄를 짓지 않으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보상을 갈구하지만, 끝내 다시 업을 쌓은 셈이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순간 하수영의 표정은 홀가분함 대신 씁쓸함과 처연으로 가득하다. 마치 리볼버의 탄실처럼 돌고 도는 그 순환 고리를 온몸으로 느낀 것처럼.
메뉴판과 달라서 실망스러운 맛
문제는 상술한 해석이나 메시지가 설령 <리볼버>의 실제 의도였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쉽사리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장르적 클리셰를 재해석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독보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일을 보여주지도 못한 애매한 결과물인 셈이다. 일례로 <리볼버>는 임석용 자살 사건의 진실을 황정미, 그레이스, 신내림, 화종사 등 몇 단어로 압축하며 제 발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포기해 버린다.
캐릭터도 문제다. 뭔가 있어 보이는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들은 매력이 없다. 별다른 서사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 팜므파탈 같던 정윤선은 남이 시킨 일을 처리하기 바쁘다. 현직 경찰인 신동호는 자기가 부패 경찰인 것도, 구애를 거절한 하수영에게 원한을 품은 것도 숨기지 않는다. 치밀한 사이코패스 같던 앤디도 애정 결핍일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인물들의 서사를 뒤섞어도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클라이맥스인 화종사 시퀀스는 모든 문제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의도대로라면 이 장면은 블랙코미디여야 했다. 그러나 각 인물의 동기도, 서사도 명확히 보이지 않다 보니 그들의 욕망과 선택이 업보로 되돌아온다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애매한 시퀀스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강렬한 액션이 등장하지도 않다 보니 장르적인 관점에서는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다만 <리볼버>을 위한 변명이 한 가지 남아있기는 하다. 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개봉일과 플랫폼을 잘못 선택한 책임도 적지 않기 때문. 의도나 메시지, 연출만 보더라도 이 작품이 여름 시장에 통하는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OTT에서 공개하거나, 1달 먼저 개봉한 <탈주>와 개봉일을 맞바꾸는 게 더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리볼버>의 완성도가 받쳐 줬다면 이 모든 악조건도 어렵지 않게 넘겼겠지만.
Acceptable 무난함
액션과 스릴 대신 대화와 미장센으로 장전한 누아르. 지루하거나 묘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