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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지2025-03-16 18:36:49

제 노력으로 잘 죽을 수 있는 걸까요?

영화 <숨> 리뷰

*씨네랩으로 초청받아 <숨>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윤재호 감독의 영화 <숨>은 죽음에 관한 영화다. 

장례지도사, 노인, 유품정리사 등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가까운 인물들의 일상과 인터뷰가 주를 이룬다.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가까운 인물이라는 앞 문장을 쓰다가 단단히 모순이라고 느꼈다.

살아있는 한, 죽음이 가깝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 싶어졌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죽는다.

당연한 명제는 사는 게 바빠질수록 새삼스러워진다.

인간이 죽음을 얼마나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유품정리사가 인터뷰하는 대목이었다. 

 

 

정리를 한다는 건 남길 것과 버릴 것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고

버릴 것들은 쓰레기봉투에 담겨 분리배출 해야 한다.

유품정리사가 망자의 버릴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더니

동네 주민들이 귀신이라도 나오면 어떡할 거냐며 쓰레기 배출을 탐탁지 않아 했단다.

역시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구나.

 

그 인터뷰를 듣다가 떠오른 풍경이 하나 있다.

프라하에 살던 시절, 집 앞 골목 창가에 한 남자의 명패와 사진이 등장했다.

사진 근처엔 몇 다발의 꽃과 고인이 살아 생전 좋아했던 주전부리가 놓였다.

누군가가 때마다 밝히는 촛불도 세워져 있었다.

 

 

그 집에 살던 이가 사망한 모양이었는데 누구도 그 풍경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 앞에서 좋은 곳으로 가셨길 기도하게 되었다.

먼 길 떠나는 이웃 주민의 자동차 번호판을 응시하는 느낌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례지도사는 말한다.

개인의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 그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고.

골목을 지키던 남자의 영정과

쓰레기 배출을 꺼리던 이웃주민들의 태도가 겹쳤다.

 

한편, 영화를 보며 내가 죽는다는 사실에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깊게 몰입한 순간도 있었다.

 

 

죽음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중년 부부는

좋은 죽음과 추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추하게 죽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에 공감하지만

추하게 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개인의 노력 여하로 추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걸까.

추한 죽음을 맞은 이들을 대신해서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영화 <숨>은 72분 동안 다양한 각도에서 죽음을 얘기한다.

상영시간이 짧은 만큼, 파편 같은 이야기들이 정신없기도 했지만

파쇄된 종이를 하나하나 맞춰보니 그 단어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부웅 떠올랐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어떻게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가

영화 자체에서 무릎을 '탁' 칠만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의 명물 천문시계처럼

오만한 인간에게 매시 정각에 삶과 죽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아,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니

한 스님의 법명 앞에 고인을 나타내는 연고 고자가 적혀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도

영화 속 산자는 현재 망자가 되어있다는 점이 영화의 연장선 같았다.

 

작성자 . 장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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