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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2023-10-08 22:14:05

[BIFF 데일리] 인생을 도둑 맞지 않을 그녀들을 위해

영화 <신부납치> 리뷰

신부 납치

 

Director

Mirlan ABDYKALYKOV 미를란 압디칼리코프

 

Cast

Akak BERDIBEKOVA, Elchibek SHAMENOV, Mairambek ERKEGULOV

 

Program note

우무트는 간호 조무사로 일하면서 정식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건실하고 밝은 청년으로 어머니와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산다. 에게멘은 고철을 훔쳐 생계를 이어가는데, 늙은 아버지와 둘이 사는 집에 누이들이 와서 살림을 대신 준다. 이들은 날마다 에게멘에게 결혼할 것을 종용하는데, 그에게는 숨겨둔 애인 메예림이 있다. 메예림은 납치당해 결혼했다가 딸을 데리고 이혼한 처지로, 에게멘은 가족들에게 메예림을 떳떳이 소개하지 못한다. 여전히 키르기스스탄에 만연한 신부 납치의 악습을 고발하는 영화는, 충격적인 수많은 실화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시종 건조한 시선으로 인물들과 사건을 관찰자의 위치에서 따라간다. 묵직하게 서사를 쌓아가는 힘과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도 길을 잃지 않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영화의 강점이다.(박선영)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막처럼 황량한 마을, 낮은 집과 단출한 살림, 단조로운 일상, 키르기스스탄의 작은 마을 특별한 사건이라고는 없는 담담한 일상이 화면에 펼쳐진다. 채도가 낮은 겨울 풍경에 사람들은 말이 없고, 생활의 소리가 화면을 꽉 채운다.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기름에 빵을 튀기는 소리, 그리고 영화스럽다 할 만한 아름다운 장면이나 연출 보다는 일상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대화들이 TV 다큐멘터리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소개된다.  그렇게 영화는 키르기스스탄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현실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간다.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우무트는 간호조무사로 면접을 보고, 취업을 준비 하고 있다. 혹시 취업이 되지 않는 다면 조금 더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미래를 착실히 준비한다. 마침내 취업이 결정 되고, ‘나도 이제는 집안에 보탬이 될게라고 말하는 20대 여성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스스로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꾸려가며, 키워준 부모에게도 보답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 이 마을의 한쪽엔 평범한 얼굴 뒤에, 우무트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 에게맨은 주인공이 저렇게까지 대사가 없어도 되나 싶을 만큼 말이 없다. 조용한 그의 성격과는 다르게 과감하게 고철을 훔치고, 나무 전신주를 훔쳐 장작으로 팔고, 공장의 기계의 엔진을 훔쳐 팔아 돈을 번다. 그의 애인은 신부 납치를 당했다가 이혼하고 딸과 함께 둘이 살고 있다. 에게맨은 그녀와 섹스는 하지만, 월세를 못 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상황은 모른 척 한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의 살림 역시 모른척 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누나들이 와서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다.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를 하는 것. 모두 누나들의 몫이다. 그는 말이 없을 뿐 아니라, 미래도 없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애착도 없는 것 같다.  물건을 훔쳐 오늘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 고철을 훔쳐 파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없고, 가족이나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도 없는 모습이다.

 

함께 고철을 훔치는 친구의 아내는 폐타이어와 쓰레기를 태워 사우나를 운영한다. 매연으로 이웃의 신고를 받지만, 조사를 나온 관공서 직원에게 돈을 주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 한다. 분명히 법이 있을 텐데불법이 불법이 아닌 것 같은 곳.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친구의 아늑하고 풍요로운 그 집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친구의 아내와 친구는 에게맨의 신붓감으로 누구를 납치하면 좋을지 쇼핑 목록을 읊듯이 한명 한명 입에 올린다. 가슴이 커서 괜찮은 사람, 나이가 많아서 별로인 사람, 키가 작아서 별로인 사람. 평가는 원색적이고 가볍다. 마치 오늘 어디 가서 고철을 훔칠 것인가 결정하듯 쉽게 납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에게맨은 이제까지 인생에 대한 모든 판단을 유보하며 살아온 태도 그대로 이 납치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좋다 싫다 말없이 주변인의 결정으로 자신의 인생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 ! 라고 말할 용기도 없고, 결혼하지 않고 지금의 살림을 꾸려갈 책임도 없고 남이 결정해 준 대로 그냥 두고 보고만 있다.  

 

이 납치가 실제 실행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여자들, 누나들이다. 본인들 대신에 집안일을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단 한사람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은 아버지다. 신부의 허락을 구하고 결혼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자신의 의견은 제시했지만 사실 아버지 역시 아무 것도 행동하지 않는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동생이 결혼하지 못해 살림을 하고 있는 누나들은 더 큰 목소리를 내고 납치를 위해 할머니를 모셔 전통 의식을 치르고, 에게맨의 친구들은 우무트를 납치해 온다.

 

대낮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아는 사람에게 납치를 당해 자신과 같은 성별의 여자 여러 명에게 둘러 싸여 제압을 당하고, 성폭행을 당하기까지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보여주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미칠 것 같은 괴로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우리도 다 이렇게 결혼했어. 살면 정들어. 행복을 거부하면 저주 받아. 부모를 욕되게 할 생각이야? 네가 지금 도망치면 명예를 잃는 거야. 와 같은 누나들의 말은 키르기스스탄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폭력과 성폭행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관습이며,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사회의 인식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명예를 잃었으니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정말이지 믿을 수 없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내 온 우무트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고, 결혼 해서 그 집에 들어가 사는 게 최선이라고 말하는 엄마를 떠나며, 일어난 일에 대해 경찰에 진술서를 쓴다. 울면서 또박또박. 나를 강간했다. 라고 쓰고는 현실을 박차고 미래로 나아간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이 마지막 장면을 열린 결말로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그녀의 운명이 비극적인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조금 더 우무트의 강함을 믿고 싶다.

 

우무트는 고철이 아니다.  에게맨과 친구는 고철을 훔치듯 그녀를 훔쳤을 지 몰라도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도둑 맞지 않을 것이다비극적인 운명의 상처를 보듬고어떻게든 나를 세워 이 삶을 치열하게 꾸려가길.  그렇게 되길. 온 마음을 다해 키르기스스탄의 우무트를 응원하고 싶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2023.10.4-13)상영시간표]

10617:00 영화의전달 시네마테크

10712:2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

101217: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10

 

작성자 . 클로저

출처 . https://brunch.co.kr/@deerpd/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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