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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정2023-10-10 19:40:37

[BIFF 데일리] 투박한 울림으로 기억하기

영화 <1923년 9월> 리뷰

Director] 모리 다츠야

Cast] 이우라 아라타, 다나카 레나, 나가야마 에이타, 히가시데 마사히로, 코무 아이, 토요하라 코스케, 에모토 아키라 외

Program note]

1923년 9월에 어떤 일이 있었나? 영화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뒤 발생한 비극을 들여다본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일본 군경과 무장한 일본인이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일본 감독이 이런 소재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부터 눈길을 끈다. 1923년 9월, 가난한 15명의 일본 행상단이 후쿠다 마을에 도착한다. 의약품과 일상용품을 팔며 떠돌아다니는 그들은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생소한 지방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조선인으로 오해를 받는다. 일본에서도 잘 안 알려진 후쿠다 마을 사건의 시작이다. 조선인 학살과 마찬가지로 후쿠다 마을 사건도 잊혀진 역사이다. 감독은 “99년이 지난 지금 이 비극적 사건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고 말했고, 프로듀서는 “우리는 망각하게 놔두어서는 안된다. 알아가고, 기억하고, 소통하는 것은 항상 항거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제작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남동철)

 

 

아주 어릴 때, 지금으로선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소설집을 읽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집이었고, 그 중에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뒤뜰로 데려가 꽃잎으로 한글을 써 보내는 아련한 장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끔찍한 이야기도 있었다. 관동대지진 이후 미쳐버린 것 같은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15엔 50전’을 발음해 보게 시킨 다음,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것이다. 그 소설집에서 죽창에 찔러 죽은 사람은 말을 더듬는 일본인 아이였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소설집에서 기억나는 장면이라곤 딱 그 두 장면뿐이다.

 

의도치 않은 조기 교육(?)으로, ‘후쿠다 마을 사건’이 낯설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국민을 위협하는 가짜 뉴스를 뿌리고,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가짜 뉴스의 뒤를 따라가던 끝에, 자국민을 위해 휘두른 무기는 자국민을 죽이고 만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촌극으로 코웃음 치며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국민을 죽인 것이 “실수”였다면, 자국민이 아닌 자들을 죽인 것은 괜찮은가? 우물에 독을 풀었고 살인과 강간을 일삼는다는 거짓말을 뿌려 가며 조선인을 죽이려 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역사는 언제나 “피는 피로, 폭력은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주지시킨다. 극중에서도 몇 번이나 대사로 강조하지만, 사람들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식의 루머를 받아들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조선인들이 너무 많은 괴롭힘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논조이다. 그렇다면 괴롭히지 않으면 될 텐데, 가해자의 손에서 뻗쳐 간 폭력은 다시 가해자에게 불안으로 돌아간다. 쌍방의 폭력이 아닌 일방의 폭력이어서, 그 불안은 또 다시 피해자의 피를 흘린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식민 지배는 전쟁보다 참혹하다.

 

그게 1923년의 일이었다. 관동대지진 이후 너무 많은 조선인이 죽고, 후쿠다 마을 사건처럼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죽고, 말도 안되는 참극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그 난리를 막아 보겠다고 내린 칙령들은 1925년 치안 유지법이라는 탈을 쓴다. 다시 조선인을 옥죄는 법이었다. 그 난리통에서 배운 게 아무 것도 없는 이들은 그 후로도 2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생명을 수탈한다.

 

 

어느덧 관동대지진은 100년 전의 일이 되었고, 많이 잊혔다. 관동대지진 이후 있었던 어떤 일들이 그 후로도, 어쩌면 지금까지도 폭력의 굴레를 덧쓰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작품의 존재는 소중하다. 특히나 일본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 1919년의 병천, 제암리 같은 지명이 대사로 똑똑히 들리는 순간은 놀라웠다. 병천은 아우내 장터, 즉 1919년 유관순 열사가 있던 곳이자 3.1운동을 상징하는 곳이며, 제암리는 그 이후 일본군이 보복성으로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이다.

 

일본 국적을 가진 이가 전쟁범죄를 똑똑히 언급하는 일이 얼마나 드문지 잘 알고 있기에, 그 순간은 놀라웠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구분하기 위해 발음이 미묘한 ‘15엔 50전’ 또한 영화에 또렷하게 언급되며, 일본에서 어렵게 살아가다 살해되는 조선인 캐릭터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뱉는 대사는 분연히 외치는 자신의 이름 세 글자였다. 이런 영화는 앞으로도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없이 인간적이라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던 듯하나, 젠더 의식 이래도 되나 싶은 장면들이 있었고,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서이기는 하나 “좋은” 일본인의 비율이 현실 대비 매우 높아, 보는 조선인 입장에서 기분이 미묘해진다. 게다가 “좋은” 일본인은 하나 같이 장신의 배우들이 맡아서, 사진을 ‘포토샵’ 처리해 프로파간다에 이용하던 일제가 생각나 또 기분이 기묘하다. 그러나 아쉽다는 말만으로 지나치기엔, 이런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아주 정교하게 연출되고 적절하게 배치된 아름다운 문장이어서 마음에 오래 남는 대사들이 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든지,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같은 대사들 말이다. 반면, 투박하게 놓여서 적나라하게 외치는 소리이기에 외면할 수 없는 대사들도 있다. 이 영화의 대사들이 그렇다. 당시의 일본 시민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한 국가는 무엇인가? 그게 무엇이며, 그걸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은가? 그 사람이 조선인이면 괜찮은 것인가? 무의미하고 잔혹했던 몰살은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투박한 대사들은 100년 후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나라를 빼앗기고 언어를 짓눌리고 목숨마저 죽창에 찔려 버린 어떤 사람들의 나라에서 그 울림을 목격하는 기분은 정말로 기묘했다. 이 영화가 던진 울림 이상의 작품들을 더 보고 싶어진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2023.10.04-13) 상영시간표]

10월 06일 20:00 CGV 센텀시티 3관 (097)

10월 09일 09:00 영화의전당 소극장 (289)

10월 11일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475)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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