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0-29 20:47:18
8톤 트럭 순애보와 인류애 사이
영화 <킴스 비디오> 리뷰
이 영화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비디오 세대의 순정 어린 추억 회상 영화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비디오 가게' 뭐 그런 느낌 아니겠어?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이 영화는 전혀 달랐다. 그래 비디오의 추억이 맞긴 맞는데... 아련한 세피아빛 회고가 아니라... 아찔한 레트로 원색으로 얼레벌레 굴러가는 미친 이야기가... 이건 그냥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이었다.

<2023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노트>
OVERVIEW
영화는 지금은 사라진 킴스비디오가 갖고 있던 방대한 비디오 컬렉션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이비드 레드몬을 따라간다. 킴스비디오는 55,000편이 넘는 인기 영화와 희귀 영화를 갖춘 뉴욕의 상징적인 비디오 대여점이었다. 영화의 형식과 트로프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감독의 추적은 기이하고 집착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이 추적은 시칠리아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감독은 지역 정치의 거미줄에 걸려든다. 이 추적은 그를 한국으로도 데려간다. 그는 컬렉션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수수께끼의 인물 김용만 대표를 쫓는다.
REVIEW
킴스비디오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 뉴욕 영화광들의 성지로 군림했던 비디오 대여점이다. 특히 이스트빌리지 세인트 마크스 플레이스의 본점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55,000종의 희귀 예술영화와 언더그라운드 영화 비디오, DVD를 25만 회원들에게 대여하는 곳이었다. 우리에게 더욱 와닿는 점은 이곳의 창립자가 한국 이민자인 김용만 사장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대여 업체의 성장 등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던 킴스비디오는 모든 컬렉션을 한꺼번에 받아줄 기관을 수소문했는데, 여러 대학의 제의를 뿌리치고 놀랍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살레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큐멘터리 <킴스비디오>는 그 뒤로 10여 년이 흐른 뒤 살레미를 찾아가 이 컬렉션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아가 감독들은 그 컬렉션을 되찾아 올 방법을 강구하고 이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진정한 ‘시네필의 윤리학’을 보여준다. 스스로 시네필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절대 놓쳐선 안 될 영화. (문석)

사업과 예술의 경계는 어디일까. 예술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과 달리, 그 경계는 아주 모호하고 많은 경우 겹쳐져 있다. 사업체인 동시에 언더그라운드 예술영화 수집과 공유의 장이었던 '킴스 비디오' 또한 그렇다. 여기서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다가 감독이 된'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야기가 나왔고, 로버트 드 니로나 짐 자무쉬가 단골이었으며, 또 다른 단골 코엔 형제는 600달러에 달하는 연체금을 미납했다. 이렇게 킴스 비디오에는 무수한 영화와 영화인과 이야기가 겹겹이 쌓였다. 그 결과, 폐업을 앞둔 킴스 비디오의 물건들은 처리가 아닌 보관의 대상이었다.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보관을 맡겨도 될 만큼 거대한 컬렉션은, 뜻밖에도 사업체가 있던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의 소도시로 들어간다.

'천만영화'들만 가득한 컬렉션이었다면 어찌저찌 대안을 찾을 수 있을 테니, 이토록 안타깝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킴스 비디오는 학생이 만든 단편영화나 세계 곳곳의 독립영화, 흥행은 고사하고 개봉조차 불투명한 영화들로 컬렉션을 이루어낸 곳이었다. 영화사에 다시 없을 유일무이한 보석 같은 곳. 이탈리아의 소도시에서도 그런 명성을 고려하여 컬렉션을 받아 보관하겠다고 제의한 것이었을 테고, 실제로 킴스 비디오를 다루겠다고 찾아오는 다큐멘터리스트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킴스 비디오의 사장, '용만 킴'은 그 모든 제안을 거절해 왔다. 그러면 대체 이 영화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가?

이 영화의 감독인 두 다큐멘터리스트, 데이비드 레드먼과 애슐리 세이빈 감독은 대뜸 촬영을 시작하고도 3년이나 지난 후에, 용만 킴 사장을 찾아가 촬영 영상을 보여주며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서 그만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을 뜻이 보였다는 용만 킴 사장은 둘의 촬영을 허락하지만, 아무리 사업가와 영화인으로서 잔뼈가 굵은 그였어도, 과연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본 모든 이야기를 예측했을까?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이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큰 사전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느꼈던 기분 좋은 경악을 망치지 않기 위해, 영화 내용을 구구절절 나열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이 영화를 전주국제영화제가 아닌 서울의 작은 상영관에서 보았음에도, 영화가 끝나자마자 어쩐지 영화제 현장에서처럼 박수를 뻑뻑 치고 싶었다는 것. 일행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 "영화에 미쳤거나 영화를 핑계로 미친 사람들의 거의 미친 이야기"라는 말에 고개가 아프도록 끄덕거렸다는 것.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을 보면서 입이 벌어지고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용만 킴 사장님은 "고다르가 도왔다면 할 말이 없다"며, "고다르라면 옳은 일을 했을 테니까 나는 동의한다"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음... 저쪽도 만만치 않은 8톤 트럭이구만... 저 정도 해야 시네필 하는 거구만... (그 와중에 그 대사가 너무 멋있어서 어디 좀 새겨놓고 싶었다.)

무언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순수하게 미쳐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지만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자신은 없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미쳐있는' 상태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미쳐만 있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요구하는 것도 많으니까. 이런 세상에서 무엇 하나만을 깊이 바라보는 순애보는 얼마나 귀한가. 현실에서는 너무 쉽게 해지고 깨지고 닳는 그 마음이, 어느 정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빚어내는 이런 작품을 보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나는 그냥 잊히고 싶다. 그냥 루저니까." 라는 인터뷰를 남기고 영화계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던 용만 킴 사장님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의 환호를 한 몸에 받았으며, 이제 영화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고 계시고, 국내 개봉을 기점으로 관객들도 만났다. 그치 이쪽도 8톤 트럭인데 영화계를 떠날 수는 없지... 싶으면서도, 이런 영화 후일담마저 너무나 즐겁고 유쾌한 것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나는 이런 8톤 트럭 순애보 이야기가 왜 이리 좋은걸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 '빠꾸 없는' 애정에는 감히 다른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들 틈새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킴스 비디오 컬렉션이 이탈리아 살레미에 도착한 이후로 방치된 시간을 되짚어보고, 비디오를 '구출' 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충분히 '빌런'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의 구조'에 따라 빌런을 설정하는 단순한 방법을 취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단지 비디오를 구출해야겠다는 그 강렬한 애정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 안에서 '빌런'들도 정겹게 녹아들고,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을 제법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어딘가에 고도로 집중된 애정은 인류애와 구분하기 어렵다. 얼핏 수렴과 발산으로 정반대처럼 느껴지는 그 애정의 방향성들은, 결과적으로 비슷하게 둥근 모양으로 그려진다. 둥글게 둥글게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를 그리는 모양으로.
바로 그 이유로, 영화의 유령이 숱하게 등장하는 이 영화, 영화와 시네필에 대해 아주 깊고 진득하게 말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나는 어쩐지 영화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온 인류ㅡ특히 나와 잘 맞지 않고, 내 기준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들ㅡ에 대해 조금 더 푸근한 마음을 품고 나왔다.

한편 숙제 같은 마음도 남았다. 이 영화의 "방식"을 (여러 가지 사유로) 따를 수 없는 다음 세대의 시네필들은, 어떻게 영화를 구출해낼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으로 지금 당면한 숙제들을 바라본다. 쉽게 부정할 수 없는 한국 영화 위기론, 지원금을 굳이 거절해 가며 철거를 (지금 이 순간에도) 강행하려 하는 아카데미 극장, 절반으로 삭감되어 버린 영화제 지원 예산...
<빅이슈>와의 인터뷰에서 용만 킴은 킴스 비디오의 철학이 "나무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맞게 하기 위해서는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상업 영화로 돈을 벌되 그 뿌리는 언더그라운드, 독립영화 지원에 있다."였다고 밝히며, 한국 영화가 앞으로 더 발전하고 성공하려면 정책적으로 독립영화를 계속 지원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킴스 비디오>의 감독들은 과거의 영화를 구출해 냈는데, 이제 다음 시대의 시네필인 우리는 미래의 영화를 구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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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과 환상 사이
캐스팅과 뮤지컬이라는 장르만을 놓고 볼 때 <아네트>는 레오 카락스가 만드는 상업영화처럼 보인다. 예술영화에도 얼굴을 비추지만 이제는 상업영화 배우에 더 가까워 보이는 아담 드라이버와 특히 헐리웃에서 영어 연기를 할 때 상업영화 출연 빈도가 높은 마리옹 꼬띠아르는 <아네트>가 일반 관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잘 알려진 배우들과 노래가 함께 하는데도 <아네트>는 상업영화라고 보기에는 난해한 구석이 있는데 특히 액자구성과 무대와 현실을 오가는 영화의 형식에서 더욱 난해함이 두드러진다. 영화가 시작할 때 레오 카락스는 직접 등장해서 이제 시작하자고 속삭인다. 그리고 영화의 캐스트가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제 시작할까요(May we start?)라고 노래하는 장면은 <라라랜드>를 연상시킬 정도지만 오프닝에 비해 영화가 조금도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은 시작한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알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등장인물이 소개되면 관객은 제목이기도 한 아네트가 언제 등장하는지를 기다리느라 더욱 혼란에 빠진다. 서사를 시작하는 건 아네트가 아닌 안(마리옹 꼬띠아르 분)과 헨리(아담 드라이버 분)이고 아네트는 이들 사이에 태어난 딸인데 무대 소품처럼 보이는 인형으로 등장하는 신이 훨씬 더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왜 레오 카락스 감독이 이런 난해한 구성을 취했는가다. 연극과 영화를 오가는 건 아네트 뿐만이 아니라 안이 헨리와 싸우는 장소인 배에서도 나타나는 연출이다. 흥미로운 건 안과 헨리 모두 무대가 주된 삶의 터전인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오페라 가수로 등장하는 안은 무대에서 유사 죽음을 수도 없이 경험하고 관객을 구원한다. 코미디언인 헨리는 무대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바로 부활하며 관객에게도 죽음을 선사한다. 이는 안과 헨리가 나누는 대화에서 두드러지는데, 오늘 무대가 어땠냐는 질문에 헨리는 '죽여줬어(I killed them)'라고 대답하는 반면 안은 '관객을 구원했어(I saved them)'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결혼해 부부가 된 이들은 정 반대의 노선을 걷는다. 관객에게 죽음을 선사하던 헨리는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무대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안은 점점 더 잘나가는 오페라 가수로 자리매김한다. 헨리는 그 이유를 자신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라 단정짓지만 관객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냉정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즉 무대라는 극중 장치는 영화의 형식을 서사에 그대로 반영하면서 헨리의 사고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인기없는 코미디언이 되고 공연이 취소된 헨리는 태어난 아네트를 키우며 점점 현실을 잃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를 보다가 아이 위에 앉는 장면이 대표적인데(babysitting을 이용한 언어유희) 이 장면은 관객에게도 현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해 보인다(실제라면 아네트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 또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모습을 잠깐이나마 보여주는데 공연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헨리의 전 연인들이 헨리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는 장면이 그것이다. 안은 차에서 잠들었다가 이 뉴스를 보게 되는데 뉴스가 끝나고 안은 잠에서 깨어난다. 이 장면 또한 관객에게도 혼란을 불러일으키는데 헨리와 안의 환상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장면들이 암시하는 것은 안과 헨리가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태어난 아네트와 힘든 육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승승장구하는 안에 대한 헨리의 열등감과 질투다. 공연이 취소되기 전 헨리가 야유를 받았던 공연의 내용은 자신이 안을 죽였다는 것이다. 극중극에서 헨리의 살해 방법은 놀랍게도 간지럼 태우기인데 관객은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정말 헨리가 안을 그 때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아내를 죽여 스스로의 부활을 꾀했던 헨리는 도리어 그 공연으로 야유를 받고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고, 이는 이후 서사의 복선으로 활용된다.
아네트가 태어나기 전에는 무대에서 퇴장하면 편안한 집에서 휴식을 취했던 이들은 아네트가 태어나고 부부관계가 불안정해지자 불안정을 상징하는 태풍이 부는 배로 무대를 옮겨간다. 이 배는 앞서 말한 연극의 공간이다. 누가 봐도 배경은 태풍이 치는 바다를 스크린으로 띄운 것이며 흔들리는 배와 쏟아지는 물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 장면 이후부터 안 없이 살아남은 헨리가 목격하는 것들은 대부분 현실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아네트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 아네트는 여전히 목각인형이기에 불쾌한 골짜기와 같은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는데 아네트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아네트의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움직이는 입술을 목각인형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취한 방식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아네트의 노래가 헨리의 환상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잠시나마 헨리의 환상인 것처럼 보이던 아네트의 노래는 안을 사랑했던 지휘자가 이를 함께 듣고 놀라는 장면과 더불어 전세계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리면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노래하는 아네트가 헨리의 환상이라면 아네트의 노래를 듣고 놀라는 지휘자와 관객 또한 헨리의 환상이 된다. 아네트는 극이 끝날 때까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는데 이는 헨리의 생각 자체가 착각일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헨리가 자신의 무대를 잃은 것이 안과 아네트 때문이라는 착각은 안이 죽은 이후에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헨리뿐이다. 기실 헨리의 무대는 안과 결혼하기 전에도 그닥 재미있지 않았다. 이를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처럼 헨리는 무대에서 자신이 안을 사랑하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안이 자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매 무대마다 새로운 농담을 생각해내어 관객을 '웃겨 죽여야' 하는 헨리와는 달리 안은 같은 무대를 여러번 반복한다. 죽여야 하는 상대가 자신뿐이고, 무대에서 스스로 낙하함으로써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안과는 달리 헨리는 매일 죽여야 하는 상대가 바뀌는 데다 그 수도 많다. 심지어 무대에서 자신이 죽는 시늉을 하더라도 관객이 반드시 웃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헨리가 진행하는 코미디쇼의 질이 낮아진 것은 헨리 자신의 문제도 있지만 코미디쇼라는 형식에 그 원인이 있다. 하지만 무대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 자신마저 죽었던 헨리는 이제 무대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영화의 형식이 연극과 현실을 오가는 것은 헨리의 이런 정신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헨리는 분명히 배에서 안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그 자신조차도 정말 그랬는지 헷갈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가 극이 끝났음을 인정하고 아네트를 현실로 받아들일 때 그 현실은 파도처럼 한꺼번에 덮쳐온다. 아네트를 월드투어로 혹사시키는 것이 아동학대라는 것을 받아들인 헨리는 최후의 공연을 기획하고 그 곳에서 공연자로서의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네트가 목각인형이 아닌 현실의 아이가 되어 헨리에게 노래할 때 헨리는 가장 현실적인 공간에서 아네트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제 현실을 받아들인 헨리 앞에서 환상 속을 헤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네트다. 헨리는 아네트에게 널 사랑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지만 아네트는 헨리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아네트와 헤어질 때 헨리는 마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다시 목각인형이 된 아네트를 목격하는데 이는 이 모든 것이 헨리의 환상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아이지만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던 아네트는 존재했던 것인가? 아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헨리가 죽인 이들은 왜 죽었는가? 결국 <아네트>는 자신의 쇠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환상을 헤맨 코미디언의 최후인 셈이다.
헨리는 자신의 코미디쇼에서 자기 자신에게 끝도 없이 묻지만 결코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되뇌인다. 왜 헨리는 코미디언이 되었는가? 서사 전체에서 보듯이 헨리는 코미디에 소질이 없다. <아네트>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결국 애꿎은 이들을 희생시키고서야 현실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이 <아네트>인 이유는 아네트야말로 헨리가 만들어낸 환상의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정말 존재했는지조차 영화가 마무리될 때까지 불분명한 아네트는 헨리와 안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 이유는 자신을 환상으로 만들어낸 헨리가 자신을 없애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뮤지컬의 선율을 기반으로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호연을 볼 수 있는 <아네트>는 현실에 기반한 위험한 환상을 조금은 기괴하게, 하지만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해당 글은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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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 마지막으로 내가 진실을 말해줄게, 너희들은 더럽게 못생겼어."
<핸섬가이즈> 명대사
좌석 판매율 9.8%로 시작해 30%까지 올라간 <핸섬가이즈는> 전체 좌석 판매율 1위 등극과 함께
주말 관객 수가 계속 증가하며 이례적인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핸섬가이즈>는 누적관객수 45만 여명을 기록하며 3위, <하이재킹>이 100만을 넘기며 2위,
<인사이드 아웃 2>가 560만 명을 넘기며 1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북미박스오피스에서도 <인사이드 아웃 2>가 1위에 올랐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이 개봉 첫 주 5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2위
<호라이즌: 아메리칸 사가 챕터 1>가 <배드 보이스: 라이드 오어 다이>를 밀어내며 3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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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극' 하면 음악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
아이돌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의 노래 'UNFORGIVEN'을 아시나요? 이 노래는 유명한 서부 영화 음악을 샘플링하여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노랫말과 비트 아래에 익숙한 멜로디가 깔려 있음을 눈치챌 수 있죠. 강렬한 휘파람 소리로 시작하는 원곡은 한 번 들으면 모두가 알만한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영화음악입니다.
원곡을 만든 이탈리아의 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는 설령 영화는 알지 못해도 모두 한 번쯤 들어보았을 영화음악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들어 내며, '영화음악의 창시자'라고 칭송받은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그리고 영화에 숨결을 불어 넣는 음악을 만들었던 그가, 이제 영화가 되었습니다.
"오, 이 음악은!", "앗, 이건?"하며 놀라는 사이에 15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마치 15분처럼 훌쩍 흐릅니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영화음악을 사랑한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돌비 프리미어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2023년 7월 5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The Glance of Music, Ennio
의사를 꿈꾸던 어린 엔니오 모리꼬네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트럼펫을 연주하며 순수음악을 만들다가 우연히 영화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였죠. 탄탄한 음악적 재능과 노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전을 거침없이 시도한 그는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영화음악가로 거듭났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에는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도 많지만, 소음으로 들릴 법한 음향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당시는 신경에 거슬리는 음향을 음악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엔니오 모리꼬네는 뛰어난 음악성으로 고정관념을 뒤집는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죠. 그야말로 천재적인 음악가인 셈입니다. 의사를 꿈꿨던 엔니오 모리꼬네를 음악의 길로 인도한 그의 아버지의 선구안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위대한 음악가 한 명을 만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도전과 개성을 꼽을 수 있을 만큼, 엔니오 모리꼬네는 오리지널리티가 뛰어난 음악가였습니다. 그러나 영화음악가로서 그는 감독에 따라, 영화에 따라 음악의 색을 바꿀 줄 아는 카멜레온 같은 음악가이기도 했죠.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에는 생전 그와 함께 작업했던 유명한 영화감독들이 줄지어 등장해 각각의 케미스트리를 뽐내는데요. 서부극, 치정, 스릴러, 로맨스까지 각양각색 장르의 향연 속에서도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한결같이 그 영화의 한 끗이 되어줍니다. 그래서인지 그와 함께 작업한 영화계 인사들은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에 출연해 하나같이 엔니오 모리꼬네가 만든 음악을 흥얼거리며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한 끗을 찾았는데, 저라도 기쁘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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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그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한 주제를 가진 음악을 만들어 냈던 엔니오 모리꼬네. 폭력적인 장면에 강렬한 음악을 더하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관점의 음악을 갖다 붙이는 식이었습니다. 영화가 단순한 시청각 자료를 넘어 관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그의 음악이 촉매제가 되어준 셈이죠. 장면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능력은 영화음악가로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엔니오 모리꼬네와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음악이 삽입된 영화를 번갈아 보여주며 그의 음악 인생을 톺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요. 삽입된 자료들이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하나의 ‘영화’로 느껴졌던 건 단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덕분이었습니다. 과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없이 그 모든 영화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의 음악이 빠진 영화는 말 그대로 푸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돼버리니까요. 서부극 세대가 아닌 저도 '서부극' 하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과 함께 말을 타며 총을 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던 이유, 그것이 바로 영화음악의 힘이었습니다.
이제껏 영화를 감상하면서 영화음악을 너무 등한시한 건 아닌가 많이 반성했습니다. 영화의 3요소는 분명 내러티브, 영상, 그리고 음향인데 말이에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영화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질 낮은 음악이라고 평가받던 영화음악을 이러한 경지로 끌어올린 것 역시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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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음악과 함께 흘러가는 한 사람의 인생사를 그리는 작품입니다. 누군가의 인생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어디 있을까요? 세상에는 특별하지 않은 인생은 없기에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는 특별한 영화적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참 재밌게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을 관전하면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천재였습니다. 피아노를 두드리지 않고도 책상에 앉아 종이와 연필만으로 머릿속 악상을 음악으로 그려 낼 줄 아는 사람이었죠. '저런 사람이 바로 천재구나. 나는 절대 천재가 될 수 없겠다.' 범주는 다르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에는 배울 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정규 앨범이 덜 팔린다고 좌절하기보다는 오히려 음악적 아이디어를 실험할 좋은 기회로 여기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일상에서도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발굴해 내는 창의적인 음악인이었고, 영화음악도 곡 자체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마인드로 음악을 만드는 자긍심 있는 영화음악가이기도 했죠. 태생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허탈함을 허물어 버리는 위대한 창작가를 향한 존경심이 피어올랐습니다. '재능', '천재'라는 단어가 오히려 그를 가두는 족쇄처럼 느껴졌다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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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 속에 녹여낸 주제들은 서두에서 소개했듯이 오늘날에도 수많은 음악가가 그들만의 버전으로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극 중에는 그의 음악을 두고 "Reference constantly"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정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창작자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요?
많은 사람이 베토벤, 모차르트에 견주는 희대의 천재라고 칭송하는데도 신인 감독들과 작업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진정한 '마에스트로',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를 보는 동안 경험했던 전율의 순간들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이번 주엔 나 홀로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 주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Summary
전 세계가 사랑하는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그가 직접 들려주는 명작 탄생 비하인드. 그리고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이야기하는 그에 대한 모든 것.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엔니오 모리꼬네,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한스 짐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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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영화 '파묘'와 '핸섬가이즈'가 제57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각각 심사위원 특별상과 관객상을 수상했습니다.
1968년에 시작된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Sitges -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of Catalonia)는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에 위치한 시체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영화제입니다.
영화제는 주로 판타지, 호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선보이며, 벨기에의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포르투갈의 판타스포르토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스틱 영화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영화 '파묘'는 2024년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오컬트 장르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으로, 시체스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글로벌 화제작으로 떠올랐습니다.
독특한 오컬트 코미디 영화 '핸섬가이즈'는 관객상을 받으며 집행위원장인 앙헬 살라 코르비(Angel SALA CORBÍ)에게 “기발하고 유쾌한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 원작에 악령 설정을 더한 다양한 장르의 조화와 결합이 뛰어나다”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번 수상을 통해 두 한국 영화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 영화의 저력을 입증하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영화 지원 예산 복구 촉구 기자회견 개최
지난 16일 영화인들이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제 지원 예산 복구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영화제가 창작자와 관객을 잇는 중요한 플랫폼임을 강조하며, 2024년 지원 영화제가 40개에서 10개로 축소된 것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특히 50주년을 맞았지만, 내년도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 존폐 위기에 처한 서울독립영화제의 예산 복원을 위한 서명 운동 결과도 함께 발표되었습니다. 연명을 시작한 9월26일부터 10월15일까지 175개 단체, 개인 7564명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감독 맡은 그레타 거윅, 넷플릭스와 갈등 빚어
영화 <나니아 연대기> 연출을 앞두고 있는 그레타 거윅 감독과 제작사인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으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레타 거윅은 해당 시리즈가 넷플릭스 스트리밍에만 제한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극장 개봉을 넷플릭스 측에 요청했지만, 넷플릭스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그가 해당 프로젝트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프란시스 코폴라의 대작 <메갈로폴리스> 틱톡에서 화제
프란시스 코폴라의 1천800억 원 대작 <메갈로폴리스 Megalopolis>가 흥행 참패를 겪으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틱톡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아담 드라이버의 대사 “Go back to the club”이 특히 인기를 끌며 열렬한 팬층을 형성했습니다.
비평가들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틱톡 사용자들은 이 영화를 반복 시청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곧 Z세대의 새로운 컬트 무비로 자리 잡게 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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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이로운 생生의 의지로 창조해낸 ‘페르시아어’
6★/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유럽, 나치의 호송차 한 대에 유대인 여럿이 타 있다. 호송차 안에서 옆에 앉은 유대인 남자와 대화를 나누던 ‘질’은 남자의 간절한 요청에 자신의 샌드위치 반쪽과 그가 가진 페르시아어 책을 교환한다. 나치에게 잡혀가는 와중에 책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는 하지만 초판본이라 귀한 책이라는 남자의 말과 그가 너무 배고파 보인다는 점이 질의 마음을 약하게 했다. 이때만 해도, 질은 샌드위치 반쪽과 교환한 페르시아어 책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호송차가 한적한 숲속 어딘가에 멈춰 선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가방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넓은 구덩이 앞에 일렬로 세운다.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처리하듯 총을 쏜다. 그렇게 무리의 절반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다. 이제는 질의 차례다. 질은 총을 맞기도 전에 쓰러지는 척 연기하지만 나치 병사는 그런 질을 가소로워하며 겁박한다. 바로 그때, 질의 목숨을 보전케 한 거짓말이 시작된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나는 페르시아인이다.” 품속의 페르시아어 책이 그 근거다.
페르시아어 책이 질을 살릴 수 있었던 건 독일군 대위 코흐의 꿈 때문이다. 병사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코흐는 전쟁이 끝나면 테헤란에서 식당을 열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래서 늘 페르시아어를 배우기를 원했고, 병사들에게 페르시아인을 데려오면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고 제안해둔 상태였다.
이제 위험한 동행이 시작된다. 코흐도, 질을 코흐에게 데려온 나치 병사도 질이 진짜 페르시아인인지 의심한다. 독일군 부대에 페르시아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진위를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구석이 보인다면 바로 목숨을 잃거나 끔찍한 노역을 견뎌야 한다. 질은 코흐에게 하루에 네 개씩 가상의 페르시아어 단어를 알려주며 임기응변으로 버텨나간다. 코흐뿐만 아니라 질도 이 모든 걸 기억하고 외워야 한다. 이전 페르시아어 수업을 완벽하게 기억해야 의심받지 않고 더 안정적으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흐와 병사들의 의심이 시도 때도 없는 시험으로 이어져 질은 포기하기 직전까지 몰린다. 임기응변만으로 도저히 이 상황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절망감에 빠진 것이다. 그런 질에게 페르시아어책에 이은 두 번째 구원이 찾아온다. 조금씩 질을 신뢰하기 시작한 코흐가 그에게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명단을 정리하는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질은 유대인들의 이름에서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들어낼 규칙을 찾는다. ‘마르크스(Marx)’라는 이름에서 ‘M’을 빼고 ‘아르크스(arx)’라는 단어를 창조하는 식이다.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 명단이 질의 생명을 구하는 아이러니로 이어지는 것이다.
코흐와 질의 불안한 동행은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사실 코흐 역시 유대인일지도 모르는 페르시아인을 끼고돈다는 부대 내 소문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있는데, 코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이를 감내하면서까지 질을 감싼다. 수용소 상황이 변해 질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하거나 여러 위기에 처할 때도 코흐가 질을 구해준다.
어느덧 수천 개의 단어를 암기한 코흐가 ‘페르시아어’로 시를 지어 질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있다. 질은 더 나아가 이제는 대화 연습이 필요할 때라며 과감하게 가상의 페르시아 단어로 짤막한 대화를 시도한다.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사람은 꿈과 우정을 키우고 다른 한 사람은 생명을 연장한다. 질이 죽은 유대인의 명단으로 목숨을 구하는 첫 번째 아이러니에 이은 지독한 역설이다.
인간의 삶이 거짓 위에서 어디까지 지탱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건 이 영화를 보는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종전 후 테헤란으로 향하는 입국 심사에서 마침내 진실을 알고 폭발하는 코흐와 가짜 페르시아 단어를 만들면서 기억해둔 포로 명단을 연합군에게 알려주는 질의 모습은 거짓 위에 구축된 삶을 단순한 선악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보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영화가 재현하는 둘 사이의 긴장감의 크기가 한껏 더 증폭되기도 한다. 다소 전형적인 구석이 있는 영화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페르시아어 수업〉은 간절한 생의 의지에서 비롯한 거대하고 처절한 아이러니를 맛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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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디스토피아 스릴러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의 현실 이야기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일찌감치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고 다수의 수상을 한 작품이다. 대표적으로는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초청과 제4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스 부문에 초청되어 많은 영화관계자들에게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2022 캐나다 스크린 어워즈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다시 한번 그 위엄을 달성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미국 할리우드, 아카데미 수상 출신 감독인 <조조 래빗>, <토르: 라그나로크> 등을 연출하고 최근에는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의 연출을 맡게 된 '타이타 와이티티' 가 총괄 프로듀서로 작품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또한 작품을 연출한 감독은 '켈리 라이카트', '제인 캠피온' 등에 이어 차세대 여성 감독으로 촉망받는 '다니스 고렛'이다. 이미 이 작품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7회 수상을 했다고 하니,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한 것이 아닐까! 작품의 흥행요소에서 프로덕션의 힘과 제작진의 라인업 또한 영향을 미치는만큼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로 작용할 듯 하다.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서기 2043년 독재국가 '에머슨'의 인간병기로 길러지는 딸 '와시즈'를 되찾기위한 엄마 '니스카'의 사투를 그린 디스토피아 스릴러이다. 영화 초반 황량하고 외딴 숲에서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는 '니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와 '와시즈'(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숲을 나섰다가 사고로 인해서 와시즈는 발을 다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떼로 지어다니는 마치 벌과 같은 모양새의 드론(독재국가의 CCTV, 감시자 역할을 한다)들의 습격을 받으면서 숲 속을 벗어나 도심부의 마을로 향하게 된다. 니스카의 오랜 친구 '로베트라'의 도움을 받아 친구의 집에 머무르게 되지만, 와시즈의 상처는 점차 깊어만가고 치료제를 구할 수 없는 니스카의 절망은 깊어만간다.
결국 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니스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딸은 독재국가 '에머슨'에 끌려가게 된다. 독재국가 '에머슨'은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미성년자들을 강제소집하는 무자비한 국가이다. 그리고 미성년자들은 '아카데미'에 들어가 군사교육을 받게되고 인간병기로 세뇌당하고 길러지게 된다.
딸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절망감에 빠져 삶을 살아가는 니스카는 우연히 숲의 소유지를 지키며 독재국가에 대항하던 한 무리의 캐나다 북부의 토착민 '크리족'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니스카가 예언 속의 구원자라 믿는 부족이다. 그리고 니스카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아카데미에 있는 딸을 구하기 위한 계획을 결심하게 된다.
영화는 서기 2043년, 전쟁으로 황폐화된 세상을 배경으로한 디스토피아를 내세우고 있다. 먼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시대속에는 여전히 자신들의 거주지,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토착민(원주민) 크리족들이 있다. 실제로 영화를 연출한 감독 '다니스 고렛'은 캐나다 토착민 크리족의 혼혈이며 제작에 참여한 '타이타 와이티티' 또한 뉴질랜드 원주민인 아버지를 둔 혼혈인이다. 여기서 느낀점은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배경은 수십년이 지난 미래이지만 감독은 원주민, 토착민들이 자신들의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싶은 점이다.
독재국가 '에머슨'은 원주민을 내쫓고 몰아세운 역사 속의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유할 수 있고, 그들의 감시자가 되는 수많은 드론들은 결국은 원주민을 감시하는 수많은 제국주의 사람들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 시대의 미래가 되는 미성년자(아이들)를 착취하고 그들에게 획일화된 군사교육과 정신교육을 주입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라는 일종의 애국강령을 날마다 반복하게 하여 외우게 하는 등의 모습은 물론 영화 속에서는 독재국가의 인간병기로 길러내기 위한 군사교육의 일환이지만 일찌감치 토착민 아이들의 역사를 배제하고 새로운 제국주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우리 역사 속의 식민지 침략자, 제국주의 모습들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영화 속의 크리족과 그들이 구원자라고 믿는 니스카와 힘을 합쳐 독재국가 '에머슨'에 대항하고 아카데미의 딸과 입소된 모든 아이들을 구출해낸다. 이는 한 어머니의 딸을 구해내는 동시에 미래시대 주역인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이고 또한 토착민들의 삶은 지켜내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디스토피아 배경 속에 일어나는 화려한 액션과 CG가 있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캐릭터의 드라마와 세심한 감정선들이 주는 영화적 희열과 긴장, 스릴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SF 디스토피아 영화로 추천드리고 싶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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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쳤다! 그 시대 야만족을 그냥 진짜같이 표현한 영화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에취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llwey01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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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예고편
블랙의 메시아 그리고 블랙의 유다...
혁명가를 죽여도 혁명은 죽지 않는다FBI 국장 J. 에드거 후버는 미국 내 반체제적인 정치 세력을 감시하고 와해시키는 대 파괴자 정보활동을 설립하고 급부상하는 흑인 민권 지도자들을 ‘블랙 메시아’로 규정해 무력화시킨다. 1968년 FBI는 흑표당 일리노이주 지부장으로서 투쟁을 이끄는 20살의 대학생 프레드 햄프턴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대중 정치 선동가로 지목해 그를 감시하기 위한 정보원을 잠입시키기로 한다. 한편, FBI 요원을 사칭해 차를 절도하다 체포된 윌리엄 오닐은 FBI 요원 미첼에게 7년 간 감옥에서 썩을 것인지 아니면 흑표당에 잠입해 햄프턴을 감시할 것인지 제안 받는다. 조직에 들어간 오닐은 미첼 요원의 영향력에 강하게 끌리면서도, 흑표당이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사회적 불평등을 경험하면서 햄프턴의 메시지에도 동화되기 시작한다. 지부 보안 책임자의 자리까지 오르고 햄프턴과 가까워질수록 용기 있는 일과 자기 목숨 부지하는 일 사이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1969년 12월 4일, 운명적인 배신과 비극적인 선택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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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메인 예고편
“늦었지만 이제는 해야할 일을 하려고 합니다”
반성 없는 세상을 향해, 그의 복수가 시작된다!1980년 5월의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던 ‘오채근’(안성기)은
소중한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광주 출신의 ‘진희’(윤유선)를 만나며 더욱 결심을 굳히게 된 그는
당시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기준’(박근형)에게 접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