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옥2025-02-20 20:04:09
공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미소
영화 <소공녀> 비평
담뱃값과 위스키 가격, 월세가 오른다. 통념상의 보통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무얼 먼저 포기할까? 질문한다는 것이 우스울 지경이다. 당연히 술과 담배를 포기하려고 할 테니까. 그런데 월세를 포기한다. ‘집을 포기한다’라는 개념의 등장이다. 미소(이솜 분)는 술, 담배와 집 중에서 집을 포기한다. 미소에게 술과 담배는 어떤 존재인 것일까? <소공녀>는 어쩌면 이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안고 결말로 향한다.
이 영화에는 이미 많은 추측과 해석이 뒤따랐다. 그래도 내가 이 영화에 생각을 덧붙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의미 환기와 영화에 대한 재조명일 것이고, 둘째는 단순한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얻은 감상 덕이겠다. 아직 <소공녀>를 관람하지 않은 독자라면 관람하기를 추천하고, 관람했던 독자라면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감상해 보기를 권하기 위해서다. 영화를 감상하길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 영화가 좋기 때문이기만은 아니다. 영화가 좋고 나쁜지를 떠나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추천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
<소공녀>의 영문 제목은 ‘Microhabitat’다. 매우 작은 크기의 거주 공간이라고 직역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그런 제목을 갖게 됐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소공녀는 주인공인 미소를 의미하고, 미소는 번듯한 집이 하나 없어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도는 여성이기 때문에 영제가 그런 것일까. 혹은 미소와 한때 밴드 생활을 즐겼던 인물들이 각자 사회로 떠난 일 때문일까.
Microhabitat는 누구의 처지에 대한 것인가
미소는 오르는 담뱃값과 위스키값, 월세 중에서 월세를 내지 않기로 결심한다. 임대료를 절약해 여유 자금을 만들고 조금의 저축을 하기 위해서다. 원래 살던 월세방이 그리 대단한 공간은 아니었다. 외풍이 심한 탓에 남자 친구와 관계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서울이라는 넓은 도시에서 아주 작은 방이었지만, 그 방에서 가구조차 거의 두지 않고 살아가는 미소가 ‘Microhabitat’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미소’라는 이름이 그런 서식지의 개념에서 사용되는 표현임을 감안하면 재미있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 받겠다며 미소의 집에 찾아왔을 때 바깥으로 기어 나오던 바퀴벌레의 모습에서 미소를 어렴풋이 연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바퀴벌레와 미소의 연관성에 대해서 주목해 볼 수도 있다. 어디서든 잘 살아가기로 유명한 바퀴벌레는 미소에게 닥친 시련,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미소는 월세를 내지 않기로 결심했고, 거처를 계속 옮겨 다니지만, 나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강인하게 살아가기를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미소가 영제에 걸맞은 처지의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다. 미소는 그 작은 방에서 벗어나게 됐고, 이제 미소는 서울이라는 하나의 도시 공간, 더 나아가 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공간에서 어디에 가든 자신의 거처로 인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미소에게 집은 없고, 월세에 대한 걱정은 없어졌다. 언젠간 다시 내게 될 임대료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도 되고, 잘하는 일인 청소 일을 하면서 한두 푼 돈을 벌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그럼 어떤 이들이 ‘Microhabitat’에서 살아가는 처지인 것인가.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과거 미소와 함께 밴드 활동을 하던 ‘친구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작은 공간이더라도 ‘내어주는’ 일
미소는 옛날 친구들에게 찾아간다. 한 친구는 대기업에 취직했고, 한 친구는 시집을 갔다. 또 다른 한 명도 결혼했으나 이혼을 앞두게 됐고, 미소보다 나이가 많은 한 선배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살고 있다. 마치 단계별 시련을 겪는 판타지 이야기처럼 전개되는 양상이 은근한 재미를 준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소의 친구들이 밴드에서 흩어지고 제 삶을 살게 된다는 점이다. 문영(강진아 분)은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여전히 역량을 키워 경력을 쌓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점심시간에는 남몰래 숨어 수액을 맞는 신세다. 많은 직원이 있는 회사에서 좁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수액을 맞아야만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어쩌면 매우 ‘미소’적으로 느껴진다.
현정(김국희 분)은 시집을 가 시부모를 모시며 독박 집안일을 맡는 인물이다. 좁은 집에서 식사 준비부터 뒷정리를 도맡아야 하지만 음식 실력은 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짠하면서도 재미있는 캐릭터다. 그런 현정 또한 과거 밴드에서 연주하던 키보드를 보관해 둔 작은 방에서 숨을 돌린다. 미소와 함께 과거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 또한 ‘미소’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외에도 넓은 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 이혼을 맞닥뜨리게 된 대용(이성욱 분)이 작은 방에만 틀어박혀 술만 마시고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미소’적임이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록이(최덕문 분)가 집이라는 공간에 미소를 가두고 결혼을 강제하고자 했던 역‘미소’적임이 나타나기도 한다.
피날레는 부유한 남편을 만나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정미(김재화 분)다. 그녀의 삶은 무척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정미는 그 넓은 공간에서 자신의 ‘심적’ 공간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불리는 장면 또한, 정미가 매우 적은 심적 공간을 미소가 침범해 온다는 심리적 불안감에 그 불안함과 분노를 토해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미소는 어떤 존재인가. 집도 없으면서 술과 담배는 끊지 못하는 한심하기에 짝이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위로 한마디와 지금과 상황은 다르지만 아름답고 빛났던 과거를 돌아보게 해주는 기회를 주는 낭만적 존재인가. 그렇다면 ‘Microhabitat’는 누구의 처지를 말하는 것인가. 미소는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자신에게 그 한계를 만들려 하니 형편없이 비싼 월세에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이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 공간에서 벗어난 미소가 영화의 종반부에서도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집 없이 떠돌아다니기를 선택한 것은,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진정 ‘Microhabitat’는 미소의 과거 밴드 동료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미소는 그들에게 ‘살아갈 여지’를 조금이라도 제공해 주는, 그런 ‘미소서식환경’을 오히려 그들에게 확보해 주는 것이 미소라는 인물일 것이다.
그리고 미소 저널리즘
<소공녀>는 일종의 한국의 민낯을 드러내는 저널리즘적 영화다. 작품 내에 여러 풍자적 코드가 숨어있을뿐더러, 그 사실들을 소박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어떻게 보면 미소와 그 주변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적으로 그려낸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물론 일부 우스꽝스러운 연출과 촬영 기법이 사용되기도 한다)다.
한국 사회 기저에 있는 불편한 요소들을 잘 짚어내 영화에 녹이려 했던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그것이 잘 녹아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노코멘트. 몇몇 장면에서는 불필요하게 사회적 상황이나 이미지의 차용이 있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미소 저널리즘’의 가치는 꽤 충분하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많은 사람의 삶을 몰아넣는지를,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좇지 못하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을 여유를 지워내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을 사회구조적 면으로 낱낱이 파헤치기보다, 좀 더 은유해 내고 주변인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대인적 문제점들의 ‘현실적 비판’을 보여준다.
영화가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감독들은 그 방법들을 선택하고자 한다. 메시지가 없는 영화가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메시지가 없으면 속이 빈 강정과 같은 영화가 되기 때문이겠다. 그러나 너무 그래야만 한다는 압박에 빠질 필요도 없다. 좋은 가치를 담고자 하는 마음은 관객이 당연히 이해하겠지만, 그걸 잘못 담아내는 순간 자비는 현존할 수 없다. 남지 않은 대중의 자비와 날카로운 평단의 칼날의 앞에서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 수 있는 감독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도 고개를 치켜들고자 했던 <소공녀>를 높이 산다. 조금은 삐뚤빼뚤했겠지만, 그래도 빼입어 대중의 앞에 서려는 인디 영화의 그 시도를 우리는 높이 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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