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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2024-03-07 12:04:43

나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고 있어.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리뷰

 

얼마전 일하는 엄마들과 밥을 먹다가 육아와 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엄마들이 사회생활을 한참 하던 때, 그러니까 불과 10년전만 해도 육아휴직이라는게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디 여자애가 서울로 학교를 가냐는외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외할머니집에서 걸어서 10분거리의 대학교를 가야 했다. 불과 25년전이었는데 외할머니는 아들이 아닌 가시나를 대학에 보내는 것도 못마땅해 하셨다. 아주아주 보수적인 지역의 보수적인 어른이었지만, 엄마와 아빠가 강력히 주장해서 대학을 보낸 것이다.

 

여자도 전문직을 해야해.’ 결혼해서도 원가족인 외할머니의 투병생활을 돌보고, 남동생들을 케어하며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지만, 내 딸만은 그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는 엄마의 결연한 의지 덕에 나는 외할머니가 그렇게 싫어 하셨던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는 직업인 PD가 될 수 있었다. 꽤나 진취적인 직업군에 속하지만, 그래도 여자 PD가 육아휴직을 하고 다시 복직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된 것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2000년 초에 결혼 한 여자선배들을 떠올려 보면 결혼과 출산으로 일을 그만 둔 선배가 더 많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온 선배가 나보다 한살 많은 선배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엄청난 변화 속에 놓여 있는 중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의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 씬에 직접 출연한다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엔 전체 학생의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밖에 없었고, 심지어 여자 화장실도 없었다고 한다. 수석졸업을 하고 두아이 까지 키웠지만, 로펌에서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고 (거절하는 이유도 가지 가지다. 애나 돌봐야지 일은 언제 할거냐. 이미 작년에 여자를 뽑았다. 회사의 다른 여자들이 질투할거다? 등등 )그녀는 로펌 대신 결국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1970년대에 남성보육자와 관련된 한 사건을 접하고 이것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할때. 긴즈버그는 남편과 딸의 지지에 힘입어, 성별을 근거로 한 (On The basis of Sex (원제)) 178건의 합법적 차별을 무너뜨릴 재판을 시작하게 된다.

 

 

 

 

“백 년 동안 계속 져 왔다고 해도 이기려고 노력하는 걸 멈출 이유는 없죠.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서 딸 제인이 엄마 루스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그러고 보면 인종차별만큼이나, 성별에 근거한 차별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의의도 정당하고, 의뢰인도 정당하지만, 여성들을 한세기 넘게 같은 논쟁에서 져왔다는 루스에게 딸 제인이 하는 저 말이 이 영화를 다 말해주는 것 같았다.

 

둘이 함께 택시를 기다릴 때 성추행 발언을 하는 남자들을 향해

“엄마, 남자들이 여자에게 저런식으로 말하게 두면 안돼.” 라고 시원하게 욕을 하는 딸을 보며,

 

“넌 자유롭고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여성이야. 20년 전엔 이렇게 행동하지도 못했어.시대가 이미 변했어.“ 하고 말하는 엄마 루스.

 

 

 

차별이 차별인 줄도 모르고 지나왔던 시대를 지나, 우리 자녀들의 열망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는 조항을 다시 검토하여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던 법정씬에서는 여지 없이 또 울컥했다. 실패하고 절망하더라도 결국엔 변화한다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나는 어쩌면 이런 변화의 역사에 살아있는 증인일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자라며 차별을 받았지만, 그걸 깨려는 엄마, 이모와 같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고, 이제 딸을 낳고 엄마가 되고 또 나의 일을 하는 이 시간 속에서, 내 딸을 위해 나 역시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싸움을 계속 해오고 있는 중이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작은 행동이 모여 세상을 바꾼 다는 것을 이미 겪었으니까. 승리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나아가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작성자 . 클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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