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072025-09-23 12:40:15
[30th BIFF 데일리] 코리안 아메리카 영화의 오묘한 맛
영화 <결혼 피로연> 리뷰
감독 앤드루 안(Andrew Ahn)
출연진 보웬 양(Bowen Yang), 릴리 글래드스톤(Lily Gladstone), 켈리 마리트란(Kelly Marie Tran), 한기찬(Gi-Chan han), 윤여정(Yuh-Jung Youn)
시놉시스
학생 비자 만료를 앞두고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유학생 민에게는, 결혼을 두려워하는 남자 친구 크리스가 있다. 크리스의 오랜 친구 안젤라는, 값비싼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자 친구 리와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 앞에 놓인 골치 아픈 문제들을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결혼 피로연>은 1993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이안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로맨틱 코미디다. 시대적 배경이 달라진 만큼, 보수적인 사회적 규범보다는 가족, 연인, 친구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와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작 각본가 제임스 샤무스가 앤드루 안 감독과 함께 각색한 대본은 보웬 양, 릴리 글래드스톤, 켈리 마리 트란, 한기찬, 윤여정, 조안 첸 등 호화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로 더욱 빛난다. (박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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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안 감독은 장편 데뷔작 <스파나잇>(2016)으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했고, <드라이브어웨이>(2019)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파이어 아일랜드>(2022)로 에미상 후보에도 오른 주목받는 감독이다. 이번 신작 <결혼 피로연> 역시 2025 선댄스영화제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
처음에는 윤여정 배우의 출연 소식으로 관심을 가졌다. <미나리>(2020) 이후로 국제 무대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며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그녀의 다음 스탭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특히 자신의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미국에서 동성혼을 하여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실제 경험과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수많은 상영작 중에 이 영화를 고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반 상영관에서는 대형 배급사가 유통하는 상업영화의 상영관 독점이 펼쳐지지만 영화제에서는 감독의 시선이 녹아든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일관적으로 재미가 우선시되는 상업영화와 달리 영화제의 영화들은 다양한 가치를 담고 있다. 문제는 감독의 세상이 이해되지 않거나 취향이 아닐 경우 굉장히 지루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제에서는 영화를 하루종일 보게 되는데 지치지 않으려면 분위기를 환기해 줄 경쾌한 영화가 필요하다. <결혼 피로연>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 ‘이거다!’라는 느낌이 왔다.
영화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절묘하게 섞인 오묘한 맛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앤드루 안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러닝타임 내내 마치 퀴어퍼레이드를 보는 것처럼 퀴어적인 요소가 가득했고 ‘이것이 바로 LGBT+ 영화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매운 맛의 하트스토퍼 같은 영화’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일단 등장인물 모두가 퀴어친화적이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화해한다.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이 전해진다. 결국 서로를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런 작품들이다.
‘매운맛’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한국 문화권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자를 위해 가짜 결혼을 하거나 절친 사이 실수로 생긴 아이를 함께 키운다니! 한국이라면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갔겠지만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민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메리카 마인드를 가진 한국인이다. 처음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아무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손자의 가짜 연인 행세를 단번에 눈치채고 ‘너 게이잖아’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유전자를 닮은 것이 분명하다.
황당해 보이는 사건들이 이어져도 ‘아메리카 영화’라는 이유로 하나 둘 이해를 하다보면 어느새 스며든다. 마치 민의 할머니가 가짜 결혼식 대신 민의 진짜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한국이라면 동성애를 숨기는 일이 당연하지만 미국에서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일이 자연스럽다. 오히려 가짜 결혼식을 진행하는 민의 할머니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기자회견에서 윤여정 배우가 “한국은 너무 보수적인 나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너무나도 미국스러운 영화에 스며든 한국 문화를 보고 있으면 그 말이 더욱 크게 와닿는다. 그래서 특히 한국인들이 봤으면 하는 영화다.
이렇게 유쾌하고 따뜻한 LGBTQ+ 영화가 나오다니 즐겁다. 22일 상영을 끝으로 부국제에서는 볼 수 없지만 오는 24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상영 일정]
2025.09.18. 20:00 CGV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042)
2025.09.20. 09:30 영화의전당 중극장 (상영코드 165)
2025.09.22. 17:00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 (상영코드 399)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9월 17일 ~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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