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까2023-11-22 23:39:01
헌신, 희생, 그러나 우정
영화 <아워 프렌드>
<아워 프렌드>는 사랑, 우정, 이별, 죽음이라는 주제를 일상적 배경에서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말이죠, 사실 아주 뻔한 이야기를 예상했어요. 당연히 눈물이 약간 나겠고, 심금을 울리려고 꽤 노력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 예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어디에선가 있을 법하면서도 어디에서도 없을 것 같은 이야기였고, 사랑, 우정, 이별, 죽음이라는 흔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함부로 쓰지 않는 세심한 영화였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아워 프렌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아워 프렌드>는 2023년 11월 22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아워 프렌드
Our Friend
<아워 프렌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 '니콜'과 그의 남편 '매튜', 그리고 그들의 곁에 함께하는 친구 '데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작품은 에스콰이어 매거진에 실린 'The Friend'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기반으로 하는 실화 영화입니다. 극 중에서처럼 남편 '매튜'가 직접 에세이를 썼죠.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이른바 ‘신파’라고 부르는 감성 팔이 영화의 대표적인 소재거리입니다. 그런 영화에서는 다 죽어가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없던 힘을 짜내어 십여 분이 넘도록 마지막 인사를 나누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두고 감정의 요동을 겪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구태여 클로즈업으로 강조하거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사람의 모습 뒤에 더 슬픈 음악을 깔곤 하죠. 그러나 <아워 프렌드>는 조금 다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과 주변인들의 모습에서 억지로 슬픔을 짜내기보다는 죽음의 그늘에서 그들이 겪는 우여곡절을 찬찬히 짚어가는 데 집중합니다.
이를 위해 영화는 '니콜'이 암 선고를 받는 시점을 중심으로 시간 순서를 이리저리 뒤섞는 플롯을 사용합니다. 퍼즐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퍼즐 조각을 맨 처음부터 하나씩 순서대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재미가 없을 테지요. <아워 프렌드>의 플롯도 이와 비슷합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이야기 조각을 차례대로 배열하지 않고, 이곳저곳의 퍼즐을 조금씩 채워가는 방식을 취하죠. 그렇게 세 사람이 어떻게 우정을 쌓았고, '데인'이 왜 ‘니콜'과 '매튜' 가족 곁에 머물렀는지를 알게 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제시하는 시간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모으다가, 이윽고 ‘세 사람의 우정’이라는 그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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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트로를 포함한 몇몇 장면에서 인물들을 근거리에서 포착했다가 조금씩 원거리로 이동해 관조하는 촬영 방식을 택합니다. 가까이에서 촬영할 때와 멀리서 촬영할 때 관객이 화면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는 면에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저는 그의 명언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 진실을 알 수 없다'는 말로 해석하곤 합니다.
멀리서 보면 '니콜'과 '매튜' 가족, 그리고 '데인'의 관계는 단순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암에 걸린 친구에게 과하리 만치 헌신하는 연민 많은 친구. 친구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호구 같은 친구. 하지만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어떨까요?
'데인'은 자신을 깎아내리고 낮추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니콜'은 그런 '데인'의 진짜 가치를 알아봐 준 유일한 친구였죠. '데인'은 바보 같이 우직하고, 우스꽝스러운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하며, 실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언제나 마음을 쓰는 사람입니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한참을 망설이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사는 곳을 떠나는 결정쯤이야 가뿐하게 내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남들에게 '데인'은 그저 별난 놈이었을지 몰라도, '니콜'은 그런 그를 프루트 루프(Fruit Loop, 어리석고 이상한 사람을 부르는 말)라는 사랑스러운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니콜' 덕분에 만나게 된 '매튜' 역시 '데인'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매튜'는 '데인'이 삶의 끝자락에 서 있을 때 그를 외로움의 늪에서 꺼내준 동아줄이었거든요.
그럼,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니콜'과 '매튜' 가족을 위해 사는 곳, 직장, 애인을 떠나 1년이 넘는 뒷바라지를 자처한 '데인'의 행동은 과연 지나친 헌신과 희생일까, 진정한 우정일까?
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서로의 이야기를 쭉 지켜봐 온 ‘니콜', '매튜', 그리고 '데인'뿐일 것입니다. 극 중 어느 과거 회상 장면에서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는 '니콜'을 두고, 그녀의 오랜 친구 '샬럿'이 이런 말을 합니다. "I have stories." 너의 지나간 시간들을 아는 친구는 나뿐이라는 의미의 말이었는데요. 이 대사는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대입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 역시 단편만 봐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죠.
그렇지만 이 영화가 세 사람의 지나간 시간들을 지근거리에서 천천히 알아갈 수 있도록 했으니, 이를 핑계 삼아 감히 저 질문에 답을 해보고 싶습니다. ‘데인’의 행동은 분명한 헌신과 희생이었으나, 명백한 우정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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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하고 만든 영화에는 끄떡없지만, ‘울지 않아도 돼.’ 하고 만든 영화에 하릴없이 무너지시는 분들 계신가요? 그렇게 저는 <아워 프렌드>의 내용을 곱씹을 때마다 눈물을 쏟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아워 프렌드>는 마음 한구석이라도 따뜻하게 데우고 싶은 추운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꺼내볼 따뜻함과 애틋함을 가진 영화로 제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올 겨울 이 영화와 함께 따뜻한 우정의 온기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Summary
두 딸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니콜'과 '매튜' 부부. 어느 날, '니콜'이 말기암 선고를 받고 '매튜'는 점점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져 내리던 중 두 사람의 오랜 절친인 '데인'이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가브리엘라 코우퍼스웨이트
출연: 다코타 존슨, 케이시 애플렉, 제이슨 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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