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3-11-24 19:26:39
애도를 위한 애도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더 중심을 두고, 의미를 찾아내길 추천한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Show Me the Way to the Station, 2019
일본 | 드라마 | 126분
감독: 하시모토 나오키
애도를 위한 애도,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다분히 감정적이다. 관객에게 집요하게 잊고 있던 이별을 떠올리게 하고 상실에 허우적대던 과거를 다시 경험하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어왔던 슬픔과 아픔을 꺼내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원했던 것처럼 묻게 한다. 이미 알고 있지만, 어렴풋이 다들 짐작하고 그러려니 하던 '역'의 존재를 아이와 같은 입장에서 되묻는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대체 그 역은 어디 있는 걸까?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여기서 우린 사야카가 말하는 '역'의 존재를 이미 잘 알고 있다. 가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절대 갈 수 없고 찾을 수도 없는 장소, 산 사람들은 결코 밟을 수 없는 영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야카의 옆에 서서 묻는 거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그럴 수 없는 아이러니함,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당연한 명제 때문이다.
그를 영영 잊어버릴까 봐 절절한 그리움과 괴로움조차 함부로 놓을 수 없는 그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우린 그 행위와 시선, 모든 마음의 조각들을 엮어 시간의 길을 만들고 이를 '애도'라 부른다.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장면 곳곳에 감정의 활력을 불어넣지만,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사실 언어(음성)가 제거된 무성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대사보다 인물의 행동으로 사건을 강렬하게 그리는 방식이 이 작품만의 남다른 표현 방식이다. 감독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음성언어보단 인물들의 손짓과 눈빛으로 차근차근 전개하면서, 상실과 그리움을 화면 가득 채워 넣는다. 섬세한 몸의 언어와 절제되어있지만 풍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연출 방식으로 관객의 공감과 감동 포인트를 쉽게 점령한다. 이 지점엔 반드시 영화의 스토리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두 명확하게 이해했다는 전제조건이 필수인데, 이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철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사야카가 전철이 지나간 뒤 철로에 난 길을 건너는 장면까지 단 3분.
이 짧은 장면엔 길을 걷는 내내 허공에 팔을 뻗은 사야카의 모습이 전부다. 그러나 우린 아이를 통해 영화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눈치챈다. 아이는 아직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며, 이별로 인해 극심한 슬픔을 겪고 있다. 결국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누군가를 잃은 이별'을 겪어내는, 인물의 애도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루는 사야카에게 언제나 멋진 선물을 해준 존재다. 자신과 같은 외로움을 가진 반려견이었고, 하나뿐인 친구였으며 늘 곁에 있는 가족이었다. 말 그대로 루는 사야카에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사야카는 단호하게 말한다.
"루는 절대 죽지 않았어!"라고. 심장병으로 죽은 반려견을 잊지 못해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는 사야카의 현재는, 루와 함께 했던 과거의 추억과 끊임없이 교차된다. 계속 반복되는 과거 회상으로 우린 루가 사야카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확실하게 인지하고, 점점 더 사야카가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사야카는 다시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이는 이미 부모에게 강아지가 최대 10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준비된 이별과 그렇지 못한 이별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보이는 행위의 준비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마음의 준비. 사야카는 루가 자신이 체험학습을 갔을 때 갑작스럽게 떠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루의 죽음은 사야카에겐 정말 먼 미래였으니까. 결국 환경적, 시간적 요인에 의한 죽음이란 불길하지만 예정된 조짐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아이는 결코 루를 떠나보낼 마음이 없다. 인간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자연재해와 다를 바 없는 상황에 놓인 사야카에게 애도란 그저 '어른들의 거짓말', '부정' 그 자체였다.

오래 살면 살수록 인간은 타인의 죽음에 익숙해지고 무뎌진다는 말을 나무라듯,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어린아이의 상실과 노인의 상실을 구분 짓지 않는다. 후세는 오래전 사야카 또래, 어린 아들(고이치로)을 사고로 잃었고, 사야카의 할아버지는 아내를 떠나보냈다. 두 사람 모두 사야카와 같은 준비된 이별이 아니었다. 사야카는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고통이 후세와 할아버지가 느끼는 고통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들 역시 강하게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돌연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갑자기 돌변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슬픔과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야카는 그들을 보며 조금씩 자신을 둘러싼 상실을 풀어낸다.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후세에게 루와 함께 한 이야기를 하며 과거를 추억하고, 반대로 자연스럽게 후세에게 그의 죽은 아들에 대해 듣는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마당에서 박꽃을 심었던 때를 회상하는 할아버지의 옆에 앉아 조용히 그의 손등에 손을 포개며 그를 위로하고, 또 할아버지에게 위로받는다.
서글프기만 했던 어린아이가 위로받고, 반대로 타인을 위로하는 장면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고통을 이겨내는 가슴 벅찬 장면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이 따뜻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을 한 스푼의 환상과 버무리며 이야기의 몰입감을 높이고, 주제를 더 빛나게 한다. 길고 은은하게 퍼지던 루를 향한 사야카의 진심은, 고이치로와 캐치볼을 하는 후세의 기다렸던 웃음으로 인해 묵직한 파동을 만든다. 그리하여, 사야카가 후세를 보며 "무언가 굉장히 소중한 걸 본 것 같았다."라고 말한 대사는 모든 이의 마음에 돌고 돌아 끝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만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애도를 위한 방식으로 '함께'하는 애도를 선택했다.
사야카는 후세와 함께 루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를 그대로 '공석'으로 둘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한다. 둘은 슬픔과 두려움은 나누고 따뜻한 온기로 마음을 채우며, 알 수 없는 곳으로 영영 떠밀려가지 않도록 서로를 붙잡는다. 홀로 남겨진다는 불안과 다가올 외로움에 맞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떠나는 이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 그리하여 남겨진 자에게 주어진 삶을 씩씩하고 담담히 살아가는 일.. 사야카는 사라지는 것이 결코 떠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다시 미소를 되찾는다. 아이는 기억하기 시작하면서, 영원의 의미를 깨닫는다. 루는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 영원을 말이다.
애도는 반드시 애도로 작별해야 한다.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어두웠던 방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그 방이 자신의 마음속에 늘 존재한다는 걸 깨닫고 언제든 들어가 울고 웃을 수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후세가 말한 역은 누구나 찾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영화는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사야카에게 직접 끊어진 기찻길을 발견하게 했다. 그리고 모르는 척 사야카와 루의 비밀 장소를 우리에게 노출했다. 나만의 비밀 장소를 선정하는 건 애도를 향한 첫 번째 걸음이 분명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사야카는 전철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작별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덧붙으면, 아름다운 작별이 된다.
고맙게도 후세도, 할아버지도, 사야카도 모두 아름다운 작별을 했다.

우린 기억하는 일을 지겨워하지 않기에 늘 자신이 정한 중심을 잃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한 뒤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던 사야카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어른의 목소리로 변한 걸 눈치챈다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아이였던 사야카가 어른이 되어 '나의 중심, 루'를 추억하는 이야기였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과거로 내일을 말하는 법을 잘 아는, 능숙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론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귀를 쫑긋거리기보다 눈을 더 크게 뜨고 사야카를 바라보길 추천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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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주>, 지난한 합일의 과정
<동주>, 지난한 합일의 과정
윤동주가 원래 계획했던 첫 시집의 제목은 ‘병원’이었다. 실제 윤동주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 시에서 화자는 병원 뒤뜰에 누운 한 여자의 슬픔에 다가가기 위해 그녀가 누웠던 자리에 똑같이 누워본다. 두 명의 인물과 하나의 자리, 그리고 동일한 행위. 이는 독립된 두 인물이 단일한 상태와 감정으로 합일되는 초월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윤동주가 보기에 인간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최선의 길은 사력을 다해 타인의 마음에 가닿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동주>는 언뜻 보기에 모든 영역에서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인물―윤동주와 송몽규의 전기를 대조적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인물이 하나로 포개지는 합일의 과정을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은 인물 설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 전반의 형식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예컨대, 내레이션과 이미지가 결합하는 방식, 그리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화법은 두 가지 개별적 요소가 하나의 형식으로 모이는 양태를 띤다. 말하자면 영화가, <병원>에서 여자의 자리에 다가가 그녀와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윤동주 특유의 공감의 방식에 철저히 복무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동주>는 윤동주의 인간관계론을 영화라는 예술 매체를 통해 직접 이행하려는 시도다.
내레이션과 플래시백의 쓸모
윤동주와 송몽규에게 닥친 가장 큰 시련 중 하나는 창씨개명을 하는 것이다. 윤동주가 자신의 이름이 ‘히라누마 도주’로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참담한 심경을 담은 시 ‘참회록’이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윤동주가 자기 내면을 반성하며 깊은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사이 화면에서는 윤동주와 같은 지분으로 송몽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두 인물이 일본으로 가는 길을 담고 있는 참회록 장면에서 화자는 윤동주임에도 불구하고 송몽규는 그의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심지어 송몽규에게 윤동주와 똑같이 단독 쇼트가 배분되기까지 한다. 이는 윤동주가 자신의 치욕스러운 내면뿐 아니라 송몽규의 혼곤한 내면까지 대리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영화적 전술의 극단은 동주가 자신의 첫 번째 시집의 일본어 번역을 마쳤다는 쿠미의 전화를 받는 사이 송몽규가 혁명을 위해 친구들과 회의를 하러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벌어진다. 이때 윤동주는 송몽규의 부름을 받지 못해 홀로 집에 남게 되고, 그 심란한 마음을 대변하듯 ‘쉽게 쓰여진 시’를 쓰기 시작한다. 내레이션으로 시가 낭독되는 사이, 화면에서는 시를 쓰는 윤동주의 모습과 혁명을 도모하는 송몽규의 모습이 교차된다. 조국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동일시하는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한 번의 합일의 과정이 더해진다. 송몽규가 일본 경찰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윤동주에게 같이 떠나자고 제안할 때, 윤동주는 쿠미가 번역한 시집을 받기 위해 그 제안을 한시적으로 거절한다. 그때 쓸쓸히 길거리를 걷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는 송몽규의 모습과 윤동주의 처절한 자기 고백에 해당하는 ‘자화상’의 낭독이 아름답게 결부된다. 이때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는 자화상의 주체는 오히려 윤동주보다 더 많은 시간 화면에 등장하는 송몽규처럼 보인다. 이 대목부터 윤동주와 송몽규는 더 이상 구분하기 어려운 하나의 인물처럼 비친다.
윤동주와 송몽규 사이의 동일시 작업은 과거 회상의 서사가 현재의 신문 장면으로 모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여기서 윤동주와 송몽규는 ‘병원’에서 화자와 여자의 관계처럼 서로 같은 공간, 같은 위치에서 동일한 인물에게 신문을 받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니까 영화는 그 지난한 합일의 과정을 통과하며 마침내 신문 장면에 이르러 두 인물을 하나의 인물로 포개어 놓는 것이다. 윤동주의 저항시를 사랑한 송몽규와 일제에 맞선 송몽규의 용맹한 행동력을 존경한 윤동주의 마음은 이 장면에서 확실히 겹쳐진다. 그렇게 두 인물은 정반대의 맥락에서 조국을 걱정하는 애국자라는 동일한 정체성으로 수렴된다. 어쩌면 둘은 애초에 하나의 인물에 잠재된 두 가지 자아를 표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윤동주의 것으로 독점된 듯 보였던 과거 회상 장면들이 실제 윤동주의 것인지 모호해진다. 이 모호함은 영화 전반에 걸친 과거 회상 장면들이 특정인의 시점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강화된다. 여기에는 윤동주의 경험과 그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혼재되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윤동주만의 경험과 송몽규만의 경험이 뒤섞여 있다. 이를 두고 윤동주가 송몽규에 대한 부재한 기억을 상상을 통해 보충했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 의문은 위에 언급한 바 있는, 같은 공간에서 두 인물이 신문 당하는 현재 장면에 이르러 해소된다. 영화는 윤동주의 기억처럼 보였던 과거 회상 장면이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라 같은 곳에서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송몽규의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넌지시 암시한다.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서사 구조는 윤동주와 송몽규 각자의 기억을 하나의 유연한 서사로 통합시키며 그들의 합일을 기리는 영화적 장치인 셈이다. 한마디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심정으로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일제에 저항하는 유사 동일인이라고.
합일의 불가능성
‘병원’에서 윤동주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성취했는지에 대해선 쓰지 않았다. 과연 온전한 합일이란 가능한 걸까. 사실상 하나의 인물로 비치는 윤동주와 송몽규는 신문 장면의 막바지에 결정적인 차이를 남긴다. 둘은 독립운동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하라는 일본 경찰의 요구를 두고 해당 서류에 서명해야 하는 처지에 직면한다. 이때 윤동주는 행동하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시인이 되고자 한 과거가 부끄러워 서명하지 않고, 송몽규는 독립 투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서류에 서명한다.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두 인물 사이의 합일 과정을 묘사하는 데 힘썼던 영화는 이 대목에 이르러 완벽한 합일이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이 불가능이 그저 합일의 비극적 해체에 머물지 않고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무력감 앞에서 그 고통에 가닿기 위해 영화가 최선의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요컨대 <동주>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흑백 화면의 정교함과 절절한 시의 낭독, 배우들의 호연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합일의 불가능을 알고서도 기어이 그것에 도달하고자 했던 영화의 숭고함에서 비롯된다. <동주>는 아름다운 실패를 통해 인간 정신의 긍정적 가치를 역설하는 숭고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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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EO'의 삶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어렵다. 쉽지 않은 영화다.
동물의 삶을 이해 한다는 게 쉬울 리가 없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당나귀 EO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극은 불친절 하기 그지 없다. 큰 설명없이 함축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일이 빈번하다. 게다가 EO가 계속해서 만나는 상황들 또한 마음 편하게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영화다. 몇몇 장면은 몸서리 치도록 슬펐고, EO의 여정들은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생각이 많아 졌다.
<당나귀 EO>는 단 한 순간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회색 당나귀 EO 의 인간 세상 여행기다. 세상의 전부였던 서커스단으로부터 구조된 뒤 폴란드와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에서 평화로운 농장, 훌리건으로 가득한 축구장 공포의 소시지 공장, 쇠락 직전의 저택. 다양한 공간으로 이어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유럽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19 번째 장편영화 <당나귀 EO>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로베르 브레송의 걸작 <당나귀 발타자르>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거장다운 면모가 돋보이는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비주얼과 사운드, 그리고 환경과 동물권 문제에 대한 날카롭고 진중한 메시지로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사운드트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제 70 회 멜버른국제영화제, 제 46 회 홍콩국제영화제, 제 47 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 66 회 BFI 런던영화제, 제 60 회 뉴욕영화제 등 내로라하는 영화제에서 무려 21 관왕 및 55 회 노미네이션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뉴욕타임스, 카이에 뒤 시네마, BBC, 타임, 사이트 앤 사운드, 인디와이어 등 저명한 매체로부터 연달아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어 “잊을 수 없을 기이한 대서사시”(NPR), “미래에 고전으로 기록될 작품”(Cinemacy), “84 세 거장 감독의 최고작”(Ty Burr's Watch List) 등 극찬을 받으며 단숨에 놓쳐서는 안 될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이 영화는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영화. 동물보호단체의 시위로 서커스단의 동물은 자유를 찾는 것 같지만, 곧 다른 인간의 보호 혹은 쓸모로 옮겨질 뿐이다. 가학적인 ‘서커스단’에서 유일하게 EO에게 애정어린 손길을 건넸던 ‘카산드라’와의 헤어짐 이 후, 모델로 활동하며 아름답게 꾸미고 보살핌을 받는 말들 사이에서 짐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해야하는 당나귀는 차별 받는 대상이 된다. EO는 곧 우당당탕 사고를 치고 또 ‘누군가’에 의해 옮겨지며 호감을 가졌던 말과 또 다시 헤어지게 된다. 이 후 옮겨가게 된 농장에서는 EO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육장안에서 밖만 보고 서 있다. 감정을 주고 받는 누군가와의 헤어짐으로 상실감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EO의 생일 날 밤, 작은 당근머핀에 초를 붙여 “네 모든 꿈이 이러지길 바라. 행복해야 해.” 하고 말하며 찾아온 카산드라가 떠나가는 순간. EO는 서글픈 울음을 길게 내 뱉고, 마침내 농장문을 박차고 스스로 나아간다. 인간의 세상에 홀로 걸어 나와 EO가 만나는 세상은 잔혹하다.
숲에서 늑대가 총에 맞아 죽고, 물고기들은 어항에 갇혀 있다. 여우는 모피를 위해 작은 케이지에 갇혀 있다가 죽임을 당한다. EO를 살라미용이라며 차에 실어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축구팀의 마스코트가 되어 원치 않은 추앙을 받기도 하고, 반대편에 의해 울분을 토해 낼 도구로 쓰여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저렇게 힘든데 안락사를 하는게 낫지 않냐는 사람과 치료하는 곳이니 치료를 할 뿐이라는 수의사도 있다.
스스로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나온 EO는 동물이기에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일과, 동물이니까 저질러 버릴 수 있는 행동의 작은 간극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며 나아간다. EO의 행동과 그리하여 마침내 결정하는 선택의 과정은 처연하고 슬프다. EO가 내내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사랑' 마음을 기댈 곳이 없는 EO는 살아갈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 지 몰랐던 것은 아닐까.
내가 옳다고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시련을 줄 수 있고, 사랑을 준다고 하는 행동이 사랑을 받는 상대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EO의 삶을 보며 생각한다. 타인에 의해 주어진 삶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나아가는 삶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착취 당한다고 말하는 그 삶엔 안온함과 사랑이 있고, 자유로워진 삶에는 불특정다수에 의한 폭력과 불안과 외로움만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이 맞다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동물과 자신의 삶은 관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보았으면 좋겠다. 당나귀 EO의 삶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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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날 우리> - '첫사랑을 완성하는 마침표‘
여름날 우리 (你的婚礼, My Love, 2021)
개봉일 : 2021.08.25 (한국 기준)
감독 : 한톈
출연 : 허광한, 장약남
'첫사랑을 완성하는 마침표‘
2018년에 개봉한 박보영, 김영광 배우 주연작 <너의 결혼식>의 중국 리메이크판 영화 <여름날 우리>. 많은 관객들이 답답하고도 애타는 현실 청춘 로맨스의 정석이라 이야기했던 <너의 결혼식>의 리메이크 작이라는 정보와 소지섭 배우의 투자, <상견니>로 온갖 사랑의 기억을 조작했던 허광한 배우의 출연 소식으로 화제를 모은 <여름날 우리>가 <너의 결혼식> 개봉 3주년이 지난 2021년 여름, 한국에서 개봉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원작인 <너의 결혼식>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이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름날 우리>를 보고 나서도 똑같이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름답고 찬란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소중한 첫사랑의 추억. 그 추억이 아무리 빛나고 애탄다고 한들, 내가 붙잡을 수 없다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국은 보내줘야 한다.
원작 <나의 결혼식>과 리메이크작 <여름날 우리>는 인생을 바꿔 놓은 첫사랑과, 우리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오랜 시간, 그리고 오래된 청춘의 추억을 보내주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른 건 걱정하지 않고 마치 사랑에 눈이 먼 사람처럼 달려온 행복했던 날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사랑의 부드러운 위로와 사랑 앞에서 초라하게 무너졌던 순간들. 그리고 결국은 놓아줘야 했던 마지막까지. 인생에 한 번뿐 이기에 더욱 지키고 싶었고, 잊고 싶지 않았던 그를 보내주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한다.
가슴이 미어질 만큼 미안했고, 그래서 더 고마웠던 나를 만들어준 ‘첫사랑’. 사실 내 첫사랑은 이토록 싱그럽고 아프고 아름답진 않았지만,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있다 보면 괜히 내 첫사랑도 웅장하고 아름답게 포장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의 첫사랑은 이럴 수도 있구나.. 괜히 부럽기도 하고 말이다. 조금 지질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만약 나의 약혼자가 이들과 같은 청춘, 첫사랑의 기억을 가졌다면 질투 나서 결혼을 못 할 수도 있겠다-싶을 만큼 이들의 이야기는 빛이 난다.
단일 감정이 아닌 행복, 슬픔, 죄책감, 고마움, 설렘, 믿음, 애정 같은 여러 빛깔의 감정이 한곳에 모여 만들어진 ‘사랑’이라는 감정. 그것은 나의 실수를 뼈저리게 후회하는 순간에도, 뜻대로 되지 않고 끝없이 엇갈리는 상황을 맞이한 순간에도 ‘그를 만난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의 청춘, 나의 죄책감, 나의 아픔을 모두 담은 나의 첫사랑.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가진 것 없는 맨몸인 걸 알면서도 용감하게 그 감정에 뛰어들 수 있었던 싱그러운 젊은 날의 후회 없는 사랑의 끝맺음을 담은 <여름날 우리>. 맞춤양복 대신 소녀의 그림이 담긴 셔츠를 입는 장면, 불꽃놀이 장면 등 원작과 같은 듯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변화된 장면들과 비 오는 날 땡땡이 치던 날의 추억, 두 사람이 벤치에서 이별을 말하던 순간처럼 원작의 장면이 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을 각각 비교하고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작을 아꼈던 관객이라면 <여름날 우리>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약간은 오글거리고 뻔하기도 하고, 끝없이 애타는 순간도 있지만, 청춘 로맨스물의 매력은 이런 순간들에서 오는 게 아니던가.
여름날 우리 시놉시스
처음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기분 너에게 풍덩 빠져버렸던 17살의 여름. 너를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21살의 여름. 그리고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오직 눈앞의 수영장과 싸움에만 시선을 던지던 단순한 소년의 세상에 한 소녀가 향긋한 바람을 몰고 온다. 수영장(yóuyǒngchí)와 비슷한 발음의 이름을 가진 소녀 ‘요우 용츠’. 그녀는 수영장에 꽂혀있던 소년 저우 샤오치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고 그의 청춘의 중심이 된다. 구제불능이었던 저우 샤오치는 요우 용츠를 위해 무모한 경기를 치르기도 하고 그녀에게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모든 힘을 짜내 공부를 한다. 저우 샤오치가 수영부 주장 샤크와 내기를 걸 때, 요우 용츠는 저우 샤오치가 지지 않을 거라며 믿음을 보여주고 요우 용츠가 보낸 믿음과 그녀의 존재는 저우 샤오치의 발전 원동력이 된다.
“풋사랑은 그렇다. 느닷없이 시작되고 또 그렇게 끝난다.”
소년의 사랑은 소녀와 함께 비를 맞던 날 더욱 깊어지고, 또다시 비가 내리던 날 갑자기 끝난다. 깨져버린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요우 용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맞이한 첫 번째 이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요우 용츠는 이미 다른 인연을 만났고, 현실은 저우 샤오치가 꿈꿨던 모습과 달랐다. 저우 샤오치의 시선은 여전히 요우 용츠를 향해 있지만 요우 용츠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매번 미묘하게 엇갈린다. 베프라고는 말하지만 왠지 특별한 이유 없이는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은 애매모호한 사이. 첫사랑이긴 하지만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 버린 듯한 사이. 항상 그를 생각했지만 맞지 않았던 타이밍의 반복. 두 사람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맴돌던 두 사람의 사이가 진전이 되는 계기는 슬프게도 ‘상처’때문이었다. 저우 샤오치는 요우 용츠를 구하려다 어깨 부상을 입게 되고, 저우 샤오치를 간호하던 요우 용츠는 사랑과 그 위에 얹어지는 죄책감의 무게를 함께 받아들인다.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저우 샤오치의 사고를 계기로 한걸음 나아가게 된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사랑했고, 사랑을 통해 행복을 얻는다. 하지만 그 밑에 깔려있던 상대를 향한 죄책감과 ‘어쩌면’이라는 후회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연인을 향한 죄책감과 후회는 사랑 밑에 숨어 사랑을 의미 없이 지속시키기도 하고 현실과 힘을 합쳐 끝내 사랑을 부숴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저우 샤오치는 “내가 그 트레이너보다 더 잘할걸요”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거절했던 체육관 전단지를 손에 한가득 쥐고 있다. 저우 샤오치의 서포트를 통해 용기를 얻은 요우 용츠는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지만 저우 샤오치는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는다. 두 사람의 세계는 그렇게 나뉘어버린다. 저우 샤오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너를 위해서”가 “너 때문에”로 변하기 시작하자 화살은 연인 요우 용츠에게로 향한다. 우리 둘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미래는 결국 현실이 되지 못했고 두 사람은 후회 주변을 맴돌다 사랑을 끝낸다. 이제 사랑이 아닌 나를 위해 살자는 다짐을 나누면서.
“우리 15년 뒤에 뭐 하고 있을까?”
꼬치집 앞에서 함께 15년 뒤를 그리던 소년과 소녀는 어느덧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어른이 됐다. 잊을 수 없는 첫사랑과 청춘의 기억을 뒤로 미뤄두고 현재를 찾은 어른 말이다.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32살의 나와 너. 첫사랑인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17살의 나와 우리. 하지만 이제는 살며시 내려놔야 할 추억들. 많이 행복했기에 그만큼 아팠고 서툰 마음에 저질렀던 실수들이 후회로 남은 불완전한 사랑이었지만 그 어떤 사랑도 대신할 수 없는 ‘첫사랑’이 가진 향으로 가득했던 소중했던 우리의 어린 여름날. 두 사람은 쉼 없이 바라보고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후회보단 고마움으로 가득한 첫사랑과 오랜만에 시선을 맞추며 지나간 우리의 사랑을 정리한다. 항상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조금씩 어긋나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이젠 상대가 아닌 온전히 ‘나의 앞에 펼쳐진 길’로 향하는 순간이다.
소녀는 어느덧 입고 싶었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되었고 소년은 소녀의 손을 담백하게 맞잡고 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남자가 되었다. 첫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죄책감만으론 지킬 수 없었던 사랑을 마무리 짓고, 서로를 등지고 걸어나가는 두 사람 뒷모습이 무겁기보단 홀가분해 보인다. 미련 없을 만큼 열심히 사랑했기에 이별의 순간마저 빛났던, 영원히 기억될 단 하나의 첫사랑이란 이야기에 마침표가 찍힌다. 더 이상 더해질 수도 지워질 수도 없는 찬란한 첫사랑은 이렇게 완성된다.
“내가 없어도 기억하길. 이 순간은”
두 사람은 결국 완전한 이별을 맞이한다. 당장은 그가 아련하게 떠오를지 몰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를 잊어갈지도 모른다. 함께한 시간인 15년 정도가 더 지나고 나면 그의 얼굴, 목소리와 특징들을 잊고 그저 ‘첫사랑’이라는 존재로만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첫사랑에 빠진 그때의 나,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첫사랑의 존재와 그에게 빠져있던 행복한 순간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든 완벽하지 않았든 ‘첫사랑’이란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단어니까.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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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듄' 리뷰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주로 영화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세계관에서 파생되는 생각을 쓰겠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SF 영화에서 던지는 주제의식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일까? 21세기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듄은 이런 생각들이 자유롭게 떠올랐던 영화였다. 나는 정확하게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를 신뢰하는 이유는 경계 없는 사유의 여지를 만들어두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에서도 내가 생각했던 부분의 이유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온다면 영상화를 굉장히 잘 해낸 것이라 생각한다. 실물로 구현해낸다고 했을 때 원작에 구체적으로 묘사된 내용을 표현하는 것보다 구현하기 어려운 건 저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나 통념, 구조를 시각화하는 일이다.
이게 말이 쉽지 단지 몇 마디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인물들의 대사나 자막 몇 개로 설득할 수는 없다. 극 중에 등장하는 사건-대화-도구를 종합해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 사고방식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면 관객들은 그 세계에 몰입한다. 스크린이라는 벽을 넘어서 주인공의 여정에 함께하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드니 빌뇌브 감독은 긴 호흡으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길다는 특징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이야기 자체를 까다롭게 고르지 않는 편이라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주변에선 몰입이 아예 어려웠다고 말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내가 이 영화에 재미를 붙이고 몰입할 수 있었던 근거는 영화에서 묘사하는 사회 구조에 있었다. 영화에는 제국과 공작, 남작과 같은 작위가 등장하며 향신료와 '상호 간의 계약'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지점이 영화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키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봉건제 구조를 SF 배경으로 옮겨놓았다. 귀족 집안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역학 관계의 현실감이 굉장히 핍진했다. 현실 세계의 역사를 상징으로 치환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더욱 명확해질 거 같지만, 이런 이유로 배경은 익숙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저 봉건적 구조의 작동 원리를 안다면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가주인 레토 공작의 행동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봉건제는 계약을 통해 형성되는 주종 관계다. 유럽의 봉건제는 아시아의 봉건제와는 다르기에 레토 공작의 행동도 그런 배경을 염두하고 보면 이해가 쉽다. 그가 함정임을 알면서도 임무를 수행했던 이유는 충성과는 거리가 멀다. 아들인 폴의 생모인 레이디 제시카와의 관계도 그렇다. 그녀는 레토 공작의 연인이지만 부인은 아니다. 정략혼인은 봉건적인 정치 체제 아래에서 동맹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니까 레토 공작은 부인의 자리를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은 머나먼 미래지만 그 사회를 이루는 구조는 고전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생각해보면 SF를 다루는 다양한 문학이나 영상 작품들을 보면 꼭 '은하 제국'이 등장한다. 각 행성마다 지적 생명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 은하계를 다스리는 제국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다. SF 세계 속의 정치 체계가 전제군주정이라는 점은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만약 행성 간 여행이나 이동이 자유로워지는 시점이 오게 된다면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의 규모도 달라질 것이다. 행성 단위로 주거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에 차이가 발생할 것이고 국가라는 단위의 인식 체계 또한 바뀔지 모른다. 혹시 모르지 그때가 되면 한국 사람이라는 설명보다 '지구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자유로운 이동의 수준에 따라 수많은 시스템이 바뀐다. 성간 이동의 연료가 되는 스파이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 이 장대한 서사시는 그래서 매혹적이다. 이권을 중심으로 인물 간의 당위와 목적이 명확하게 엿보인다. 저 스파이스의 유통권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렇기에 유통시켜야만 한다 '스파이스는 흘러야 한다'. 성간 이동이 어려워지면 궁극적으로는 저 체제를 유지하는 게 어려울 테니까. 그만큼 귀중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명확하게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자원의 생산부터 정제, 활용까지의 과정이 막히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정, 공화정은 행성 규모의 생명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듄을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은하영웅전설'도 생각이 나고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도 생각이 났다. 은하영웅전설을 통해서는 카리스마를 지닌 걸출한 한 인물에 집중해서 정치 체제를 고찰해볼 수 있고 크루세이더 킹즈를 통해서는 가문의 존속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알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그런 작품들이 떠올랐다. 이 시리즈 자체가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이번 편은 주인공인 폴의 기원을 다루고 있지만 앞으로 나올 내용에는 정치적인 내용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주 사극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근사한 영화였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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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올해 좋았던 영화들
어느덧 2021년도 곧 끝나가네요. 올해도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했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OTT로 공개된 영화들도 많은 것 같아요. 후반기 들어 꽤 많은 영화들이 극장 개봉을 했었지만 대부분 큰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이 볼 기회는 더욱 줄어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인디 영화들은 더욱 상영관이 줄어들어 한정된 관객을 제외하고는 뻗어나가지는 못한 것 같아요. 올해는 어떤 영화들을 재미있게 봤을까 하고 살펴보니 생각보다 아주 좋게 본 영화가 없더라고요. 물론 정말 재미있다 싶은 영화들은 있었는데, ‘우와’라고 감탄할만한 영화를 만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로는 더욱더 그런 느낌이 강한 것 같습니다. 아래 2021년에 제가 좋게 본 영화들은 저 나름대로 좋게 본 영화들이에요. 아마 다른 분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2021년도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아래는 좋게 본 순서대로는 아닙니다. ㄱㄴㄷ 순서대로 나열했어요.
<듄>
SF 원작 소설을 화면으로 옮긴 드니 빌뇌브 버전의 <듄>은 사실 일반 영화의 기승전결에 맞지 않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구성하기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그러니까 이번 <듄>1편은 그야말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직전까지만 담겨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나 화면, 음악이 그 행성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죠. 이런 SF 분위기를 제가 참 좋아합니다. 이야기보다는 그 외적인 요소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영화입니다. 반면에 원작 소설을 전혀 모르거나 이 세계관을 전혀 모른다면 이 영화를 좋게 보기는 쉽지 않죠. 앞으로 3부작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 편에는 이야기가 잘 정리가 되었을지 기대가 됩니다.
<모가디슈>
올해 제가 본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더 실감 나게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 상황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죠.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가슴 졸이며 보기도 했어요. 또한 신파나 감동 코드가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고 담백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무엇보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벌어지는 카체이싱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미나리>
아카데미 수상으로 관심을 받았던 <미나리>도 참 따뜻한 영화였습니다. 미국 이민자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겪는 시행착오나 감정적 어려움을 잘 표현한 영화죠. 특히나 영어가 서투른 외할머니와 한국말이 서투른 외손주들의 관계에서 많은 관객들이 동질감과 따뜻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개울가에서 부르는 미나리 송도 인상적이었죠.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좋고요.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그냥 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예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사실 마블 영화인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기존 마블의 팬들은 많이들 실망하셨던 영화예요. 하지만 저에게는 꽤 괜찮은 영화로 기억됩니다. 할리우드 식으로 가공되긴 했지만 과거 중국 무협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격투 장면들이 꽤 들어가 있었거든요. 적어도 저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양조위와 장멍얼이 연기했던 웬우와 샤링의 러브스토리가 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가 되겠죠. 무척 사랑스럽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러브스토리입니다. 양조위가 이런 분위기의 대부분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죠. 앞으로 <샹치> 시리즈가 어떤 식으로 마블 유니버스에서 전개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국 무협 스타일(여전히 CG떡칠이긴 하지만…)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느낌의 액션이 이 유니버스에 포함되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소울>
죽은 이후의 영혼과 사후 세계의 모습을 이렇게 독창적으로 그린 영화나 애니가 있었을까요? 삶과 그 안에 각자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담겼어요. 올해 초에 이 영화를 보고 독특한 화면에 꽤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신의 꿈에 몰입하는 영혼에 대한 표현이나 진정한 꿈을 이루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어요. 귀여운 영혼 22가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 영화를 올해 빠트려선 안 되겠죠. 연말 내내 화제작이었고, 지금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저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개봉한 이 영화에서 제가 가진 추억과 뭉클한 감정을 완전히 끌어올릴 수 있었죠. 무엇보다 나이 들었지만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앤드류 가필드와 토비 맥과이어가 나올 때 소리를 지르며 박수도 치더라고요. 현재 마블은 팬심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를 아주 잘 아는 제작사인 것 같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2>
이 영화의 전편도 무척 좋아합니다.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주는 긴장감이 정말 대단하죠. 한 가족의 이야기로 출발한 이 세계관의 두 번째 시리즈 역시 가족에 집중합니다. 이번에는 생존+성장이 이 테마가 되죠. 소리가 나면 나타나는 괴수의 무서움도 여전하고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 방법을 찾으려는 주인공의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죠. 아마도 세 번째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정말 괴수를 물리치는 이야기만 남은 것이죠.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넷플릭스에 공개가 되었죠. 네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누구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영화의 해석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서부극이지만 총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하죠.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나 훌륭해서 정말 몰입하면서 봤던 영화였습니다.
<페어웰>
이 영화도 미국 이민자의 영화죠. 한국에서는 <미나리>에 가려졌지만 중국계 이민 가족의 이야기예요. 할머니가 곧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이 정작 할머니인 본인에게는 곧 죽는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벌어지는 일이죠. 손녀가 할머니에게 알리려고 고민하는 과정이 담겨있어요. 여기에 미국 이민을 간 사람을 중국 본토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담겨있죠. 결말까지 다 보고 나면 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입니다. 주연 배우인 아콰피나가 코믹한 연기도 잘하지만 잔잔한 마음이 담긴 연기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예요.
<피어스트리트 파트1>
마지막으로 저는 이 영화를 뽑고 싶었습니다. 올해도 몇몇 공포영화들이 나왔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피어스트리트> 시리즈는 다른 영화들에 피해 관심을 못 받았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가 예전보다 인기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피가 튀기고 약간은 엉성해 보이는 듯한 이야기 전개가 크게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유행하던 미국 슬래셔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파트 1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파트 2와 3으로 가면서 조금 산으로 이야기가 흐르기는 하지만 파트 1은 꽤 재미있는 공포 영화였던 것 같아요. 범인이 누군지, 저주를 푸는 과정을 찾아내는 것도 흥미롭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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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우리 곁에 돌아온다! <노예 12년> X <더 스파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우리 곁에 돌아온다!
" <노예 12년> X <더 스파이>
국내에서는 영국 드라마 <셜록>, <닥터 스트레인지> 등을 통해 많은 팬들에게 잘 알려진 매력적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올 4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 곁에 돌아온다. 그동안 독특한 역할들을 통해 넘치는 존재감을 발산한 그가 이번엔 어떤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지 함께 알아보자.
■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는 영화, <노예 12년>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첫 번째는 제 86회 아카데미와 제 71회 골든 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하며 오는 4월 22일에 재개봉을 확정한 영화 <노예 12년>이다. <노예 12년>은 자유인 '솔로몬'과 노예 '플랫'이라는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12년간의 실화를 그린 대서사극이다. 배우 브래드 피트에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트로피를 안겨주며 세계적인 프로듀서로 인정받게 만든 경이로운 작품이며, 오스카에서만 3관왕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포함한 전 세계 243관왕을 기록하며 세계 영화계의 역사를 다시 쓴 바 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치웨텔 에지오포, 마이클 패스벤더, 브래드 피트와 함께 <옥자>의 폴 다노, <런>의 사라 폴슨, <블랙 팬서>의 루피타 뇽까지 최정상급 배우들이 출연하며 영화의 감동을 더한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날마다 높아져가는 지금, <노예 12년>은 미국의 노예 역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 스마트한 첩보 스릴러, <더 스파이>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두번째는 1960년대 핵전쟁 위기를 막은 위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웰메이드 첩보 영화 <더 스파이>다. <더 스파이>는 1960년, CIA와 MI6의 스파이로 고용된 영국 사업가 '그레빌 윈'이 소련 정보원으로부터 핵전쟁 위기를 막을 중대 기밀을 압수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작전에 뛰어든 역사적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제 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시기의 첩보전을 그린 만큼 생생한 스릴감을 선사할 예정이며, 1960년대의 시대상과 '첩보영화'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매력적인 스토리가 만나 탄생한 새로운 볼거리가 기대감을 자아낸다. 특히 탐정, 천재 수학자, 마법사 등 독특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낸 드라마틱한 연기 변신의 귀재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번엔 어떤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줄지 이목이 집중된다.
같은 배우의 색다른 모습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새로움을 안겨준다.
조용하고 잔잔한 일상에 조금은 나른하게 느껴지는 올 봄, <노예 12년>과 <더 스파이>를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활력과 에너지를 얻어보는 건 어떨까?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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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당신이 여름에 보면 좋을 영화
** 영화 우리집의 스포일러가 담긴 콘텐츠입니다.
대사로 알아보는 영화 두 번째 이야기는, 작년 여름에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입니다.
영화 우리집은 아래 링크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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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풀, 원더우먼, 홉스 너네 모여서 뭐하니?
넷플릭스에 레드 노티스가 공개 되었어요!
라이언 레이놀즈, 갤 가돗과 드웨인 존슨이 주연을 맡아서 꽤 기대를 받았던 영화였는데요.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나 평범하고 예측가능한 액션 영화였습니다.
특히나 세 캐릭터 모두 그걸 맡은 배우들의 다른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하는 캐스팅이어서,
영화를 보다 보면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운 영화 레드 노티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제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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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자백> 스페셜 티저 예고편
소지섭, 모든 증거가 그를 향한다 ! 밀실 살인 사건 용의자 '소지섭’ 100% 승률 변호사 '김윤진' 무죄 입증을 위해 사건을 재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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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를 깨우는 바람> 예고편
“우리는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여성이 삶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빼면, 처음 보는 사람들마저 대뜸 그 여성의 비참한 미래를 예언한다. 여성의 삶은 '아내'나 '엄마'로 마무리 되어야만 해피엔딩이라는 낡은 믿음은 2020년이 된 지금도 건재하다.
2020년이 된 지금, 많은 여성들이 낡은 관습을 버리고, 자신만의 세상을 향한 비행을 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비혼의 길을 걷고 잇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선택지가 둘이 되어 자유가 확장되고 그리하여 여성들의 일상이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