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2-10 18:50:14
너의 자리는 어디인가
영화 <조이랜드> 리뷰 (사임 사디크 감독)
PROGRAM NOTE.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뭄타즈는 섬세한 남편 하이더르, 가족 내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는 시아버지 아만, 큰형 내외 및 그들의 네 딸과 함께 산다. 몇 년째 전업주부로 살던 하이더르는 카리스마 있는 트랜스젠더 뮤지션 비바의 백댄서로 취직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뭄타즈는 전업주부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하이더르는 첫 만남부터 강렬했던 비바에게 이끌리고, 뭄타즈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답답함을 느낀다. 자아가 확고한 뭄타즈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비바 뿐 아니라 흔들리는 성적 정체성을 가진 하이더르와 시아버지 아만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종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억압되고 착취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사임 사디크 감독의 데뷔작 <조이랜드>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박선영/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POINT.
✔️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을 비롯, 각종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이 눈여겨본 영화
✔️ 파키스탄이라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낯선 나라 영화인데, 어디서 <헤어질 결심> 냄새가 나요 킁킁
✔️ 파키스탄 출신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프로듀서로 참여. 말랄라는 여성 교육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 낸 인물이니만큼, 여성을 보는 시각에 대한 우려를 접어도 좋아요
✔️ 보고 난 직후는 물론, 보고 난 이후에도 며칠씩 여운이 계속되는 영화
✔️ 믿고 보는 '슈아픽쳐스' PICK! <행복한 라짜로>, <말없는 소녀> 같은 수작을 우리와 연결해준 곳이에요
✔️ 12월 13일 개봉!
영화 <조이랜드>는 거대한 하나의 일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연로하여 휠체어를 탄 아버지, 큰아들 '살림'과 아내 '누치', 둘째 아들 '하이더르'와 아내 '뭄타즈'. 그리고 살림과 누치 사이 아이들까지. 한 마당을 공유하며 사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옛날 마당 깊은 집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이내 일가족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가 그 마당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곳에 살았다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들의 땅 '라호르'는 파키스탄에서 둘째 가라면 아쉬울 만큼 유서 깊은 도시다. 다양한 왕조의 수도였던 곳, 한때 세계에서 손꼽히는 주요 도시이기도 했던 곳, 그러나 1940년대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되던 시절 무수한 피가 흘렀던 곳. 차이가 차별이 되어 사람을 죽였던 곳. 그 모든 이야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갔을 텐데, 이제 더 이상 차이가 차별이 되는 일은 없을까?
#"단일한" 파키스탄 사람이에요
일가족의 고요한 마당에서도 차별은 넘쳐 흐른다. 딸 넷을 낳았지만 아들이 아니라서 실망하는 것도, "아들"이니 응당 염소 하나쯤은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들에게 일자리가 생겼으니 자신의 커리어를 착착 쌓아 가던 며느리는 이제 전업 주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그 아들의 일자리가 "에로틱한 공연"을 하는 극장이라는 사실은 이웃들에게 좀 비밀로 해두는 것도.
게다가 이런 차별은 절대 "단일한" 기준을 가질 수 없다. 차별은 양날의 칼이므로, 힘을 쥔 쪽에도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차별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약자지만, 힘을 쥔 남성들이 만든 차별의 굴레가 어떤 남성들에게는 '맨박스'가 되듯이. 다만 힘을 쥔 쪽은 규칙을 이리저리 변용하면서 상처를 피할 길을 도모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차별은 이중 삼중의 잣대를 번복하여 만들어내고, 하나 둘 잣대가 늘어나다 보면 어느새 삐죽삐죽한 창살처럼 우리를 가둔다. 그 창살 안에서 버틸 재간이 없는 사람들이 튀어나올 때, "공동체를 지킨다"는 명목의 제재가 가해진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잣대들은 사실 공동체의 모두를 찌르고 있다. 힘을 쥔 쪽이라는 것도 결국 상대적 개념일 뿐이니까.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사실 모두 그 창살 바깥에 더 잘 어울리는 인물들이다. "전통적인 남성성"과 잘 어울리지 않는 하이더르, 트랜스젠더 비바, 전업주부의 삶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뭄타즈, 받아들였지만 그런 뭄타즈를 이해하는 누치, 심지어 전통의 적극적인 수호자처럼 보였던 아버지나 이웃집 파야즈 부인조차도...
단일하지 않은 차별의 기준들은 각자의 비밀들을 만들어내고, 그 비밀은 거울이 깨지듯 방사형으로 퍼진다. 그 자리의 어느 누가 과연 행복했을까?
마치 "애빌린의 역설" 같다. 집단의 구성원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방향의 결정임에도, 모두가 자신의 의사와 상반되는 결정을 하게 되는. 전통이라는 미명을 덮고 있는 것 중 이런 애빌린의 역설이 얼마나 많을까.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고
영화에는 많은 공간이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하나 매우 인상 깊다. 어느 장소 하나 일면적이기만 한 곳이 없다. 마당과 집안 깊은 곳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는, 이 영화에 뭄타즈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유독 그 대비를 극명히 보여주었던 집. 사회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성별 역할을 내려놓는 공간이었던 극장. 모든 남성 관객들이 스스로에게만 유하게 적용되는 잣대의 틈으로"에로틱한 공연"을 보는 곳인 동시에, 비바에게는 반대로 그 모든 잣대의 창살을 내던지고 나와서 춤을 춘 장소였던 극장. 이름부터 기쁨을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의 공간'으로 상징되는 놀이공원 조이랜드. 누치와 뭄타즈가 잠시 일상의 고통을 잊고 소소한 일탈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정도의 일탈밖에 할 수 없는 삶의 무게와 거기서조차 존재하는 차별의 비릿한 시선을 느끼게도 하는 공간.
가장 역설적인 공간은 바다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조악한 조명밖에 없는 방에서 바다의 흔적으로 들고 온 조개 껍데기 하나 덜렁 들고 있지만, 비바는 바다를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평생 라호르에서만 살아온 하이더르 또한, 가보지 못했지만 사실 언제든 마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 반면 카라치에 친척 집이 있어 언제든 해변에 가볼 수 있었음에도 옷이 젖는다는 이유로 발목밖에는 담가보지 못한 뭄타즈.
비바와 하이더르, 뭄타즈. 바다에 대한 이 세 사람의 기억과 접근성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만은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마치 <헤어질 결심>에서 "난 인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난 바다가 좋아요." 말했던 서래처럼, 이들 또한 인자한 사람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것.
이 영화가 "트랜스젠더와의 불륜 이야기"로 뭉뚱그리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비바가 '팜므 파탈'적인 매력으로 일가족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도 아니며 (진짜 아니다), 한 기혼 남성과 결혼 외부자 두 사람이 히히덕거리며 기혼 여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진짜 아니다). 어쩐지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생각났던 <헤어질 결심>이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듯이.
이 영화는 단지 그 세 사람 모두가 눌려 있던 구조를 보여준다. 그 거대한 구조 아래 세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 보여주고, 이들이 각각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두껍게 덮인 애빌린의 역설을 걷어내고 끝내 규칙에서 이탈하는 인간들의 자리가 어디인지 묻는다. 아름다운 인물들의 설렜던 마음을 손가락처럼 들어, 그 지점을 슬프게 가리킨다.
#뭄타즈의 이름
이 영화의 인물들이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설레지만 슬픈" 인물이었지만, 내 눈에 가장 밟힌 인물은 뭄타즈이다. 나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성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르므로. 파키스탄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나로서는, '뭄타즈'라는 이름을 살면서 딱 두 번째 들었다.
처음으로 들은 이름 또한 현실에서 마주한 인물은 아닌데, 무굴 제국 황제 샤 자한의 아내였던 뭄타즈 마할이다. 샤 자한이 태어날 때만 해도 무굴 제국의 수도가 라호르였으니, 아주 인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비록 그가 사망한 곳이자, 죽은 아내를 기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건축 사업을 벌인 곳은 라호르가 아닌 아그라였지만. 그 미친 사랑의 결과물이 타지마할이다. 뭄타즈 마할의 무덤.
샤 자한은 뭄타즈를 몹시 "총애"하여, 전쟁터에도 데리고 다녔다 한다.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짓기 위해 어마어마한 공력을 쏟아붓는다.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일일이 대리석을 파고 돌을 박아 넣었으며, 이탈리아처럼 먼 곳에서 수입해온 자재도 있었다. 똑같은 모양의 검은색 건물을 하나 더 지어 두 건물의 그림자가 포개지게 만들고 싶었다는데, 나라가 휘청일 정도의 건축을 보다 못한 아들 손에 끌어내려지며 이 미친 사랑의 공작이 불발되고 만다.
듣다 보면 늘 양가 감정이 드는 이야기이다. 그 나라 백성이었다면 그따위 무덤 보기도 싫었을 것 같고, 그 모든 이야기가 옛 전설처럼 고여 버린 지금으로서는 아무튼 그 도시를 먹고살게 해 주는 랜드마크가 되었으니. 그러나 그 뭄타즈 마할의 이름과 포개지는, <조이랜드> 속 뭄타즈를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샤 자한이 뭄타즈를 무척 사랑했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지만 (누차 강조하지만 "미친" 사랑이다.) 그 사랑이 뭄타즈를 행복하게 했을지는 잘 모르겠기에. 말랄라 같은 프로듀서가 있었다면, 14명의 아이를 낳으며 전쟁터를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다면. 시대 정신조차 달랐던 때이니 뭄타즈가 무엇을 원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뭄타즈가 어떤 삶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면,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수백 년 전에 무덤에 갇힌 뭄타즈 마할도, 뭄타즈를 비롯해 각자의 창살에 갇혀 있던 이 영화 속 인물들도, 이 인물들이 표사하는 파키스탄 사회도, 그런 자유로운 선택지의 세상에 갑자기 짠 놓일 수는 없다. 그런 "조이랜드"는 우리에게 없다. 너무 아름답지만 멀고 아득한, 우리의 조이랜드.
그래서 이 영화가 마지막까지 쟁쟁 외친 소리가 며칠씩 여운으로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보지 못한, 가보지 못할 조이랜드가 아득하게 슬퍼서. 말랄라가 어떤 마음으로 프로듀싱에 참여했는지, 어쩐지 조금 알 것도 같은 기분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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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깊은 울림 전할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
2021년, 깊은 울림 전할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마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빼어난 영상미를 통해 흑백의 조화로움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생동감을 가져다 줄 예정이다.
감독과 배우들의 최강 케미도 눈길을 끈다. 먼저 영화 <자산어보>는 역사 속 인물을 재종명해 온 믿고 보는 시대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의 신작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섬세한 연출력을 통해 현시대의 관객들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정통 사극 <사도>부터, 평생을 함께 할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청년 시절을 담아낸 <동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념을 따랐던 독립투사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강렬한 삶을 그려낸 <박열>까지.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 역사 속 인물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현시대까지 관통하는 가치를 찾아내 관객들에게 울림을 전하던 그가 올해 또 한편의 시대극 영화 <자산어보>로 돌아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또한 영화 <불한당>에서 섹시한 미중년의 모습으로 연기 변신에 성공해 연기력과 팬심 모두를 훔친 배우 설경구와, 드라마 <미생>의 '석율'부터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수현'까지 어떤 역할이든 찰떡같이 소화하는 팔색조 배우 변요한의 조합은 또 한 번의 환상적인 연기 케미를 기대하게 만든다. 새로운 역할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연을 보여주는 두 배우를 필두로 이정은, 민도희, 차순배, 강기영이 합류하며 빈틈없는 연기력으로 서사극의 깊은 울림을 완성시킬 예정이다.
자산어보>는 “섬 안에 덕순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다. (…) 결국 나는 그를 초청하고 함께 숙식하면서 함께 궁리한 뒤, 그 결과물을 차례 지워 책을 완성하고서 이를 ‘자산어보’라고 이름을 지었다”(출처: 정약전 및 이청, 정명현 역, 『자산어보』)란 어류학서 [자산어보]의 서문에서 출발했다. 조선시대의 학자 ‘정약전’이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왜 쓰게 되었는지, 어떻게 유학자가 그토록 상세하게 자연을 책으로 기록할 수 있었는지에 집중한 이준익 감독은 자연스레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란 인물을 발견하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제작된 <자산어보>는 신분도 가치관도 다른 이질적인 관계의 ‘정약전’과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서로의 스승과 벗이 돼 참된 삶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그려낼 예정이다.
또한, 이준익 감독은 “정치사나 전쟁사와 같이 보통의 사극 영화가 다루는 거시적 관점이 아닌, 그 안의 ‘개인’을 조명하는 미시적 관점의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라며 영화를 기획하게 된 의도를 밝히며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한다. 뿐만 아니라, 흑산도의 포구와 초가집, 생생한 바다 생물 등 디테일이 살아 있는 흑백 미장센은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아름다움을 담아내며, 풍성한 볼거리까지 갖춘 영화 <자산어보>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대단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소박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가슴 깊숙이 남길 바란다”라고 전한 이준익 감독의 바람처럼, ‘사람’을 향한 감독의 애정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된 영화 <자산어보>는 조선시대 흑산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시대의 관객들에게도 따뜻하고도 강력한 울림을 전할 것이다.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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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프링 블라썸(2020)> 리뷰
- 얼마 전 극장에서 영화 <스프링 블라썸>의 예고를 보았다. 내 흥미를 자극한 건 트레일러 속 짧게 스쳐 지나간 안무 영상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을 대사로써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몸짓이라는 은유를 사용한 것이 제법 전위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던 것이다. <사랑은 부엉부엉(2016)> 등에서 보여준 프랑스 영화 다운 참신함에 대한 기대감도 물론 있었겠지만.일단 영화 외적인 것을 짤막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수잔 랭동 감독의 데뷔작이다. 하지만 그저 감독이라고 부르고 넘어가기엔 찝찝하다. 만일 <스프링 블라썸>이 하나의 음악이었다면, 수잔 랭동은 원 맨 밴드라는 말을 들었을 테니. 그는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 주연배우를 맡았고, 각본을 쓴 사람이기도 하며, 엔딩 크레딧곡마저 직접 불렀다. 그야말로 영화계의 루키다. 다만 영화 각본을 쓰기 시작한 것이 15살이며 자전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 다시 말하자면, <스프링 블라썸>은 결과적으로 첫사랑의 시작과 끝을 다루면서도 첫사랑을 회고하는 데에서 나오는 쌉싸름함이나 약간의 안타까움이 누락되어 있으며, 주인공 수잔(수잔 랭동)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묘사는 퍽 서툴다. 그래서인지 <스프링 블라썸>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라이트한 버전에 가까워보인다.※ 스포일러 주의<스프링 블라썸>이 포착하고자 한 것은 삶의 한 순간이다. 따분한 일상이 급작스레 반짝이게 되는 어떤 순간. 이야기는 학교와 집, 관심사가 맞지 않는 주변인과 같은 일상에 질린 주인공 수잔의 눈에 우연히 연극 배우 라파엘(아르노 발로아)이 들어오는 순간 시작된다. 라파엘이 일하는 극장이 수잔이 좋아하는 하교길에 있다보니 둘의 동선은 거듭 겹친다. 자꾸만 시야에 들어오는 알 수 없는 남자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수잔은 점차 그의 영역에 자신을 들여보내고, 안면을 트며,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간다.두 사람의 관심사는 꽤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수잔과 라파엘이 가장 크게 공통점을 느낀 부분은 권태로움이다. 다만, 수잔과 라파엘의 권태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언정 속사정이 꽤 다르다. 작품이 재현하는 수잔의 권태는 기실 수잔이라는 인물의 자아/독특함을 부각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예컨대 수잔의 대사, "나는 또래 남자애들이 따분해요"는, 기실, 자신의 특별함을 인지하는 상대의 부재에서 비롯된 불만이다. 그가 말하는 '남자애들'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또래 전체를 뜻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그는 여자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파티에서 어울리지 못하며, 수업 시간 중 수준 낮은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큰 애정을 베풀지 않는다. 즉 수잔이 겪는 일상의 무료함은 평균적인 또래 집단과 수잔 본인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영화는 해석한다.반면 라파엘이 겪는 권태로움은 일종의 번아웃으로 보인다. 같은 배역이 반복됨으로써 작품을 계속하고픈 열정이 희미해진 시간만이 지속되고 있다. 넌덜머리가 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오페라 아리아곡과 같은 작은 요소에 기대어 일상을 이어나간다. 이런 순간 만난 사람이 바로 수잔이다.수잔 랭동 감독은 <스프링 블라썸>을 찍는 동안, '러브 스토리 자체보다 사랑에 빠지는 감정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명확하게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는 모습을 끊김없이 그리기보단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두 사람의 흔들리는 감정을 충실하게 묘사한다. 속절없이 라파엘에게로 향하는 수잔의 시선이나, 잠들지 못하는 새벽 따위의, 사랑에 휩싸인 선명한 순간을 꾸밈없이 모아둔 것 같단 생각마저 든다.하지만 동시에, 영화의 두 주인공은 (첫)사랑의 열병에 빠져 일상의 리듬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토록 지난한 일상이었음에도 그것을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으며 특별한 순간을 공유한다. 두 사람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플라토닉적 관계에 기초한 둘의 감정은 일상을 조금쯤 살 만한 것으로 변화시킨다. 이렇듯 기존의 로맨스와 다른 문법을 사용하기 때문일까. 감독은 두 사람의 교감을 무용 시퀀스를 차용하여 표현하였다. 트레일러에서 보았던 장면이었음에도 영화를 통해서 만난 카페 씬은 두 사람의 감정을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로 재단하기엔 너무 얕지 않은지, 인간이 맺는 무수한 관계를 고작 몇 개의 단어로 가두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 만큼 훌륭했다.영화의 모든 장면은 놀라우리만큼 감각적이었으나 이외 부분에 있어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자전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수잔을 제외한 주변인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담겨 영화의 설득력이 반감된다는 점이나, 또래 집단과 수잔의 다름을 표현하는 데에 보다 적절한 소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첫사랑으로 인해 생기는 주인공의 변화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면모가 있어 수잔의 스탠스가 흔들릴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조금의 고민과 주저함이 없었던 점이 퍽 아쉬웠다. 사랑은 일상을 반짝이게 수놓기도 하지만, 수놓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니까. 수잔이 경험한 변화를 한 두 발짝 물러나 깊이 있게 묘사했다면 보다 좋았을 듯 하다.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수잔 랭동을 알게 된 건 분명 큰 기쁨이었다. 그가 펼쳐보일 또다른 시네마를 기대해본다. 그때 즈음엔 <스프링 블라썸>이 내게도 첫사랑처럼 남을 지도 모른다. 어설퍼보이더라도 훗날 돌이켜보았을 때엔 결코 지울 수 없는 역사로 남고야 마는 첫사랑처럼.★★*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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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피 - 이렇게 만들어 회자되는 것도 나름의 능력이라면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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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참으로 좋은 기관이다.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시설과 여러 전시까지. 작년 8월에는 "풍문으로 들었소: '컬트적'인 한국영화" 기획전을 온라인으로 진행하였다. (필자같이)소수의 열광적인 팬들을 지니고 있는 영화들을 KMDb VOD로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기간 동안 여러 영화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박수치기도 했다. 이렇게 본 영화 중 하나인 "하피"를 소개해볼까 한다. 라호범 감독의 대뷔작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영화인 하피는 이정현, 김래원, 김꽃지 주연이라는 지금 기준으로도 괜찮은 라인업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국 공포 영화 역사상 역대급 괴작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과연 어떤 작품이길래 괴작이라는 얻기 힘든 칭호를 받은 걸까.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영화 정말로 이상하다. 진심으로 말이다. 이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살면서 본 영화들중에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역대급이다. 농구를 하는데 폭발음이 들리고, 단추가 굴러가는데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리는 등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효과음들이 관객들을 반겨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영화의 진짜 별미(?)는 나레이션이다. 누가 봐도 놀라는 표정을 짓고있는데 "~은 지금 놀랐다" 라던가, 쇠사슬로 목을 조이는 장면에서는 "이 쇠사슬은 사실 플라스틱이다. 노약자나 임산부는 놀랄 필요는 없지만 굳이 이 영화처럼 연기할 필요는 없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좀 몰입된다 싶을 때 감흥을 깨버리고 헛웃음이 나오게 한다. 또한 나레이션 뿐만 아니라 영화의 등장인물들도 나레이션을 한다. 작중에서 실제 칼이 아닌 가짜 칼로 공격을 해서 역공 당했을 때 정지컷과 함께 모형칼이었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아 맞다!" 하는 등장인물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정지컷과 같은 연출들도 남발되어서 시각적 요소들도 난잡하기 짝이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설명만 들으면 흔히 말하는 졸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를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단순히 졸작이 아닌, 괴작의 범주에 들어가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어이없는 요소(나레이션, 편집, 효과음 등)들은 대부분 후반 작업에서 추가되는 요소들이다. 즉, 감독이 다 의도하고 이러한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것인데, 그렇기에 이 영화가 괴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라호범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게되었는데, 인터뷰에 따르면 공포물에 코믹 요소를 가미해 새로운 도전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시도를 대뷔작부터 내세우는 것과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가지는 태도는 감독으로 용기있다고 평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단순히 악영향만을 끼쳐 영화 관람을 중단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이 없어서 계속 보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20년이 지나도 회자되고 특별전까지 열려서 상영(비록 온라인 상영이긴 하지만)되는 것도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공포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어이 없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이런 시도를 대뷔작부터 해서 확실하게 실패한 때문인지, 라호범 감독의 작품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의 발칙한 상상력이 더욱 궁금해지는 하루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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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 기억 조작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첫사랑 기억 조작을 하는 달달한, 또 씁쓸하기도 한
첫사랑 영화, 총 일곱 편을 추천드릴까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첫사랑 기억 조작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순정
ⓒ 네이버 영화
synopsis
라디오 생방송 도중 DJ에게 도착한 편지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첫사랑과 다섯 친구들의
우정을 담은 감성 드라마
cine pick!
첫사랑의 순수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배우들이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이다. 올드팝부터 90년대 가요까지 삽입하여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감성의 깊이를 더하였다.
그해 여름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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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 수진은 윤교수의 첫사랑 정인을 찾아 앙숙인 김피디와 취재길에 나선다.
수내리에 도착해 정인의 행방을 찾던 그들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윤교수와 정인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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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하는 감성적이고 몰입감이 넘치는 영화이다. 두 배우의 눈빛 연기가 돋보이며,
영상미가 좋으며 여운이 오래 가는 영화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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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 커징텅과 그의 친구들은 션자이를 좋아한다. 소심한 커징텅과 달리 친구들은 션자이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커징텅의 고백에 션자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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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영화의 대명사으로 불리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계속 회자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청량하면서도 아련한 감성과 함께 공감을 이끌어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 이야기!!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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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같은 외모의 소년 타케오는 린코에게 첫눈에 반한다. 차마 좋아한다는 고백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친구 스나카와와 함께 매일 린코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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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청춘 스타들이 나오며 관객들의 기대를 모았던 영화 <내 이야기!!>는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를 인기를 끈 작품이다. 원작을 잘 살려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나의 소녀시대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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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화와 결혼하는 것이 꿈인 평범한 고등학생 린전신은 뜻밖의 사건 때문에 학교를 주름잡는
불량학생 쉬타이위와 얽힌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서로의 연애 성공을 위해 비밀스러운 동맹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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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색감과 연출이 뛰어나 청춘 그 자체를 담아낸 영화 <나의 소녀시대>. 첫사랑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OST가 그 감성을 더하면서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이다.
여름날 우리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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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우 용츠’(장약남)에게 풍덩 빠져버린 ‘저우 샤오치’(허광한)가 그녀에게 닿기까지 수많은 여름을
그린 첫사랑 소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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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현실적인 연기로 허광한 배우와 장약남 배우의 케미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20세기 소녀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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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도착한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1999년의 기억, 17세 소녀 ‘보라’가 절친 ‘연두’의 첫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사랑의 큐피트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첫사랑 관찰 로맨스
cine pick!
방우리 감독이 한국형 청춘물을 보고 싶어 만든 <20세기 소녀>는 한국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해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 순위에서는 5위를 차지했다. 공개 전부터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따뜻하고 채도 높은 색감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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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가 뭘 하는지 보라
-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들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내면은 진정으로 선하다고 믿어". 이 말들은 우리에게 '모종의 영감'을 주는데, 그건 그 말들이 우리 귀에 좋게 들린다는 뜻이다. 이 말들은 살해된 소녀들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이는 걸 용납하는 우리 문명의 타락에 대해 용서받은 기분이 되게 해준다. 그리고 만약 그 말들이 살해된 소녀에게서 나왔다면, 글쎄, 그렇다면 그 말들은 틀림없이 진실일 테니 우리는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게 틀림없다. 살해된 유대인이 내려주는 그런 은총과 사면이라는 선물이야말로(정확히 기독교 사상의 핵심에 자리 잡은 선물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안네의 은신처에서, 그가 쓴 글에서, 그가 남긴 '유산'에서 너무도 간절히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죄 없는 죽은 소녀가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었다고 믿는 것이 다음과 같은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운 일이다. 안네가 '내면이 진정으로 선한' 사람들에 관해 쓴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이었다. 그 문장을 쓰고 3주 뒤, 그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어떤 사람들이 살아 있는 유대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보여주는 사실이 여기 있다. 그 사람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이 사실은 안네 프랑크의 글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되풀이해 말할 가치가 있다. 그의 일기를 읽는 독자들은 작가가 집단 학살에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것이 그의 일기가 집단 학살에 관해 쓴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런 작품이었다면 그 일기는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우리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생생하고 자세하게 연대기순으로 정리해 쓴 글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 기록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안네의 일기가 얻은 명성 같은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 그런 무언가에 가까이 갔던 기록들은 오직 은폐라는 똑같은 규칙, 자신을 박해한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예의 바른 피해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규칙을 준수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었다.이디시어판은 <나이트>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자들에 대한 그리고 제목이 암시하듯 무관심으로(혹은 적극적인 혐오로) 그런 살해를 가능하게 했던 세상 전체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위젤은 후에 프랑스인이자 가톨릭 신자이며 노벨 상 수상자였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도움을 받아 '나이트 La Nuit’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프랑스어판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젊은 생존자의 분노를 신학적 고뇌로 전환한 작품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속한 사회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떤 독자가 듣고 싶어하겠는가? 신을 비난하는 것이 낫다. 이런 접근법은 위젤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세월이 흐른 뒤에 이 책이 미국이 베푸는 호의의 전형인 오프라 북클럽 선정작이 되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접근법도 일본의 십 대 소녀들이 안네의 일기를 읽었듯 이 책을 읽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되려면 위젠은 많은 것을, 훨씬 더 많은 것을 은폐해야 했을 것이다.<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주의: 참사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
현시점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라기엔 너무 참여-미디어 아트의 영역으로 나아가 버린 것도 같다. 대부분의 글로벌 관객들에겐 영화보다도 먼저 사회적 책무를 인지하고 유의하는 행동주의 예술가의 수상 소감 영상이 전해져왔다.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오스카에서 유대계 정체성(Jewishness)과 홀로코스트를 또다른 전쟁/학살을 위해 오용하지 말 것을 촉구한 후, 곧장 전세계 시오니스트의 돌을 맞는다. 그 자신 역시 유대계이면서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정면으로 반대한 그가 손을 덜덜 떨며 준비해온 ‘선언’을 수행할 때 우리는 일종의 경외를 느낀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가 선 곳에 가장 먼저 균열을 내며 우리 인간의 자격을 되묻는 모습. 그렇듯 순교를 불사한 지성인의 결기는 어떤 이에게나 강렬한 전율로 다가오니까.
한편 미디어 아트로서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흥미로운데, 우선 이 영화가 전시하는 풍광은 오프닝부터 경박하리만큼 경쾌하고 그늘 없다. 르누아르의 사랑 넘치는 가족 연작을 떠올리게 할 만큼 밝은 햇볕 속, 떼죽음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며 안전한 부귀를 누리는 가족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는 ‘건전한 수용소 미관 조성’을 위해 라일락 관목을 꺾지 말라고 엄숙하게 공지 방송을 하고, 아이들은 곧 도살될 유대인들처럼 아버지 루돌프의 눈을 가리고 그를 정원으로 데려가 깜짝 생일 파티를 선물한다. 어머니 헤트비히가 정성껏 돌보는 아름다운 정원과 윤기 나는 검은 개와 건강한 5남매까지, 완벽한 소품을 둔 듯 잘 가꿔진 이 삶이 평범할수록 도리어 벽 너머의 - 어쩌면 이미 삶이 아닐 - 삶(들)에 대한 암시가 숨을 죄여온다.
헤트비히를 포함한 장병 부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잔머리 하나는 대단한’ 유대계 희생자들을 비웃고, 그들로부터 갈취한 밍크 코트와 보석들을 두르고 힘을 과시하지만 이 과시는 절대 노골적이거나 공개적이지 않다. 다른 부인의 거대한 코트를 두고 다른 여자들과 “여제 같다”며 부러워하고 비꼬았던 헤트비히는 강아지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은 문 안에서 제게 떨어진 코트를 몰래 입어보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값비싸고 보드라운 코트는 헤트비히가 평소에 입던 평범한 원피스에 비해 너무나 어울리지 않고 어딘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또 헤트비히는 코트 주머니 안에서 나온 립스틱 - 그러니까 이것이 원래는 살아 있었던 누군가의 소유임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끔찍한 소품 -을 발라봤다가 이내 쓱쓱 문질러 지워버린다.
이 은근함, 이 비밀스러움은 회스 부부를 포함한 독일인 전범 가족들이 그 시점 도달한 삶이 절대 처음부터 그들 소유가 아니었단 사실을 제시한다. 그들이 부유했었고 똑똑했던 유대인들을 멸시하거나, 장모가 과거의 유대인 고용주를 떠올리고 “그 여자도 지금 저기 있으려나?” 상상하며 어딘지 고소해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이전에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을 갖고 있었던 이들에 대한 질시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상위 계층을 ‘몰아냄’으로써 계급 이동에 성공한 하위 계층의 승리감, 도취감 내지는 자족과 뿌듯함이 이들의 얼굴에 부드럽게 퍼져있는 것이다.
“그이는 저보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라며 수줍은 듯 의기양양한 듯 말하는 헤트비히, ‘불합리한’ 전출에 항의하다가 결국 “이런 ‘희생’을 감수하는 게 삶이란다”라고 애마에게 말하는 루돌프. 우습고 불쾌한 기분이 정점을 찍는 것은 부부가 강가에 서서 발령 소식에 대해 논의하는 씬에서다.
난 죽어도 여기 안 떠나.우리가 열일곱 살 때부터 꿈꿔온 삶이잖아.총통도 그렇게 연설하셨잖아.동쪽으로 가서 보금자리를 찾으라고.즉 헤트비히와 루돌프는 “그동안 꿈꿔왔던 삶”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들여왔으며 그 삶을 ‘부당하게’ 뺏기지 않기 위해 더한 노력도 불사할 거란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 노력이란 건 물론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탈취하고 강간하는 일에 일조하거나 “태우고, 식히고, 비우고, 채우고”의 반복을 직접 설계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루돌프의 ‘일’은 사람을 분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일정하게 먼 거리에 고정된 다중 시점의 카메라를 통해서만 그려지고 있는데, 헤트비히가 일궈온 꽃밭과 온실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손만 까딱하면 네 명의 하녀들이 벌벌 떨며 궂은 일을 대신해주고 전시 중에도 케이크와 비싼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벽 뒤에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게 죽든 나머지 가족들이 알게 뭐란 말인가.
“초콜릿 같은 거 있으면 꼭 챙겨줘”라며 남편에게 당부하는 씬을 통해 공범임을 입증한 헤트비히의 몸과 움직임은 ‘어쩔 수 없이’ 루돌프의 그것에 비해 비인간성의 일상화에 더 깊게 일조한다. 루돌프는 수용소장이고 헤트비히는 그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사람을 죽이고 처리하는 효율적 프로세스를 직접 설계하는 자고 헤트비히는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 그럼으로써 당시에 침묵하거나 적극 가담한 일반적인 독일인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루돌프가 참석한 나치 장교들의 회의보다도 헤트비히의 신경질적 짜증이 극 전반에 긴장감 도는 중력을 더한다. 그는 결코 상냥하거나 일관된 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 기분이 상하면 “너 하나쯤 재로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라며 하녀를 위협하는 여주인이다. 무의식적인 듯해서 더 공포스러운 무시. 힘을 제대로 다루는 법도 모르고 뒤따르는 책임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갑자기 쥐어진 타인의 생사여탈권. 성실한 군인이고 좋은 아버지였던 루돌프가 창녀를 사는 위선이나, 헤트비히가 남편보다 집을 선택하는 자기중심성은 그래서 놀랍지도 기이하지도 않다.
상실 없는 상실과 공포 없는 공포, 무게감 없는 무게를 전달하는 작품을 ‘보며’ 관객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는지를 계속 의식하게 된다. 벽 뒤에서 무언가 가동되는 소리. 간헐적인 총소리와 희미한 통곡과 비명 소리. 게르만 아기의 울음과 유대인 아기의 울음은 기묘하게 뒤섞이고 개들은 담장 안팎에서 하울링을 주고받는다. 헤트비히의 어머니처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이 모든 불길한 소리를 못 견뎌 말없이 떠나버릴 정도지만, 내부인들은 백색소음 정도로 치부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우리 눈에 푹푹 박혀오는 풀꽃의 선명한 빛깔, 새빨갛고 예쁜 수영복과 희디흰 게르만족 피부의 조화, 맑은 강물 앞 단란한 가족이 노니는 풍경이란 얼마나 아름답게 다가왔을 것인가.
눈과 귀의 기이한 간격을 최대한으로 유지하며, 눈을 극적으로 속이고, 클로즈업 없는 원경으로 눈이 해석하는 정보값을 어긋나게 하길 의도하던 영화는 돌연 마지막 5분간 오류 없이 명확한 장면을 송출하니, 바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관을 열심히 쓸고 닦는 현대의 풍경이다. 80년의 간극을 뛰어넘게 해줄 통로는 암전 속 빛이 새어 들어오는 좁은 바늘구멍이다. 이는 원시적인 카메라를 즉각 은유한다.
루돌프 회스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돌연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찍는 카메라를 직시하고, 블랙박스가 ‘보여준’ 미래를 감지한다. 이 응시는 영적이고 마술적이다. 루돌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역시 루돌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그날 밤 자기 공적을 치하하는 파티에서마저 ‘이 사람들을 가스로 몰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전화 너머 헤트비히에게 즐거이 말한다. 즉 그는 ”당신은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필사의 합리화로도 보호받지 못할 괴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붙잡혀 구타로 앙갚음당하고 결국 교수형을 당할 자신의 운명을, 악인 하나를 징벌하는 것으론 복구되지 않을 수십만의 생명을, 시원하게 토해내지도 못할 만큼 무거운 죄악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짊어진다.
드문 고요 속 루돌프는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간다. 아우슈비츠의 집에서 온 방 불을 끄고 문을 잠그며 침실로 올라갈 때와 같은 속도로.
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의 우릴 반성하고 직면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그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뭘 하는지 보라'.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걸 보여줍니다.조나단 글레이저
그때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과, 지금 여기에서 내 눈앞이 아닌 곳에서 담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고 말할 사람들. 어쩌면 이미 늦어버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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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 돌리지 말고 이 고통을 응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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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은 짧지만, 임신중지로 인한 고통의 시간은 길다. 쾌락은 둘 사이의 일이지만, 임신중지는 여성의 몫이다. 임신중지가 법으로 금지된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책 《사건L’événement》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레벤느망〉은, 대학 졸업 시험을 앞둔 대학생 ‘안’이 겪는 임신중지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다.
임신중지를 선택한 안이 겪는 철저한 고립을 좇는 이 영화에서 가장 화가 났던 두 장면이 있다. 첫째는 도움을 청한 동료 남학생이 ‘임신했으니 안전하다’며 관계를 요구하는 장면이다(원작에서는 남자가 아니 에르노의 ‘도덕성을 알아보려고’ 그런 제안을 했다고 핑계를 대는 나온다). 둘째는 임신중지를 도울 것처럼 굴었던 의사가 사실은 임신중지에 반하는 자신의 신념에 기반해 거짓으로 유산방지제를 처방하는 장면이었다. 임신중지를 기대하고 허벅지에 주사를 찔러 넣었던 안이 느꼈을 박탈감과 분노에 함께 몸을 떨었다. 이 두 장면은 편견과 ‘불법’이 서로를 강화하며 증폭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이 어처구니없는 폭력을 개인이 감당해야만 하는 부당함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임신중지의 순간 안이 느끼는 고통을 비추는 영화의 방식이다. 안은 뜨개질바늘을 사용해 혼자서 한 번, ‘불법’ 시술소에서 두 번 임신중지를 시도한다. 영화는 이 고통의 순간을 비껴가지 않는다. 안의 거친 호흡과 고통스러운 신음, 날카로운 시술 도구가 안의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으로써 ‘불법’이라는 추상적 규범이 초래하는 위험과 이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수치심을 고발한다. 얼굴이 찌푸려지고 몸이 움츠러들더라도 안의 고통을 마주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우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고통스러운 장면을 응시함으로써 그녀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으로 전이되는 순간을 느껴야 한다. 이것이 안의 고통을 타자화하지 않기 위해 영화가 선택한 방식이다. 안의 고통을 수동적 응시의 객체로 놔두지 않고 관객을 그 고통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써 〈레벤느망〉의 적나라한 임신중지 시술 장면을 독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2019년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이 나왔으나 여전히 대체입법이 되지 않고 있다. 국가의 무능과 낙태 반대론자의 집요함이 합쳐진 결과다. 누군가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어떻게든 사회적 대책이 도출된다. 코로나 시국의 자영업자가 좋은 예다. 때문에 3년이 다 되어가는 낙태죄 입법 공백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아직 임신중지로 인한 여성의 고통이 우리 모두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 이런 의미에서 〈레벤느망〉의 개봉은 시의적절하다. 〈레벤느망〉이 보여주고 느끼게 해준 ‘고통으로 매개된 정동의 공동체’가 임신중지를 “여자만 걸리는 병”, “집에 있는 여자로 만드는 병”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로 만드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
*원작에는 아래의 구절이 나온다. 이를 통해 영화가 아니 에르노가 품은 문제의식을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시각화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소설들이 임신 중절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 일이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까지는 세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스스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과 이제 더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 사이는 생략되었다. (…) 실용적인 정보들을 찾을 수 있길 바랐건만 기사들은 ‘불법 중절 시술’의 뒷얘기들만 언급했고, 그런 사실들에는 관심 없었다.”(아니 에르노, 《사건》,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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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만에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다녀왔습니다 l 해물은 싫지만 이 짬뽕은 좋아요ㅣ선우정아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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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랜만에 제 이야기겸... 영화제 이야기겸....
무엇보다... 현생에 지친 모두를 위해 제가 힐링 받았던 순간들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영상을 보시고 다들 조금이라도 마음에 여유를 느끼셨으면 좋겠군요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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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워스> 메인 예고편
9·11 테러 피해자 보상 기금 운영을 맡게 된 협상 전문 변호사 ‘켄’(마이클 키튼)은
주어진 시간 안에 피해자들을 설득해 보상 기금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진심의 협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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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임크라임> 30초 예고편
다세대촌에 살고 힙합을 좋아하는 소년 ‘송주’, 가수 이센스는 그의 영웅이다.
아파트 부촌에 살고 있는 반 친구 ‘주연’과 함께 둘은 힙합팀 ‘라임크라임’을 결성한다.
두 소년은 힙합 성지 ‘밀림’의 무대에 오를 꿈을 꾸며
함께 랩을 하기 위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 차이가 둘의 길을 갈라놓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