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까2023-12-20 23:38:28
무표정에 감정을 담을 수 있다면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고전영화 같으면서도 현대영화 같고, 무성극 같으면서도 만담 같고, 동화 같으면서도 풍자극 같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같으면서도 스탠드업 코미디 같은, 아주 우스운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우습다는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쓰이지만,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우습다'는 웃고 싶은 느낌이 있거나 실없어서 웃음을 살만한 것을 말합니다. 자꾸만 웃고 싶은 느낌이 들고, 실없는 웃음이 툭툭 튀어나오는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이 영화의 알다가도 모를 우스운 매력을 소개합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사랑은 낙엽을 타고>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2023년 12월 20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
Fallen Leaves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다루는 영화는 대부분 뜨겁고 열렬한 사랑, 그야말로 열애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금 다릅니다. 두 주인공 ‘안나’와 ‘홀라파’는 바싹 마른 낙엽처럼 건조하게 사랑에 빠지죠. 분명 달콤한 로맨스이긴 한데,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초콜릿의 단맛이 아니라 한참 씹어야 단맛이 배어 나오는 자일리톨껌 같은 단맛을 준달까요. 그래서 처음엔 영화의 이런 무미함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씹다 보면 하염없이 씹을 수 있는 게 껌인 것처럼 이 영화도 그렇더군요. 낯선 감각도 잠시, 조금씩 간간한 맛에 익숙해지더니 이 영화가 흥미로워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난 술꾼은 싫어요."라는 '안사'의 단언에 "난 잔소리꾼은 싫어요."라는 말로 냅다 받아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을 홀라당 끊어 버리는 '홀라파'도 웃기고, 술을 끊었다는 그의 말에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당장 나에게 오라는 '안사'도 웃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결같은 무표정으로 설렘, 외로움, 아쉬움, 반가움, 슬픔, 사랑의 말을 내뱉는 영화 속 인물들이 어찌나 웃기던지!
시사를 앞두고 페카 메초(Pekka Metso) 주한핀란드대사는 무대인사에서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도가 높은 나라인 핀란드의 '조용한 행복'을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됩니다.
’조용한 행복‘이라.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정말 조금도 와닿지 않던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조용한 행복‘이라는 단어 옆에 끄적여둔 물음표가 어느새 느낌표로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죠. 광대가 아파질 때까지 박장대소하게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어느샌가 피식피식 웃고 마는 나를 발견하는 ‘조용한 로맨스 코미디’ 영화, 그것이 바로 <사랑은 낙엽을 타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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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낙엽을 타고>에는 핀란드식 낙관주의도 인상적으로 묘사됩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표현하는 핀란드식 낙관주의는 고도로 발전한 비관주의입니다. ‘모든 것이 덧없는 인생이니 쓸데없는 일에 마음 쓰지 말자’는 듯한 사람들이 태도가 외려 낙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뭐든 개의치 않는 이 사람들은 할 말을 참는 법이 없습니다. 마트에서 일하는 ‘안사’가 폐기 식품을 챙겼다는 이유로 가방 검사를 당하자, 동료 직원들은 이 일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비꼬아대며 단체로 사직을 선언합니다. 차를 사야 해서 노후된 기계를 못 바꿔준다는 사장에게 직원 ‘홀라파'는 면허부터 따라며 잽을 날립니다. 호감이 있는 상대방이 면전에 대고 “돈 없어서 식사도 못 하셨죠?"라는 말을 해도 개의치 않고, 애써 건넨 전화번호를 잃어버렸대도 역시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극 중에는 노동자인 두 주인공이 부적절한 대우를 받으며 일자리를 잃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안사'는 폐기 식품을 버리지 않고 챙겨서 해고당하고, '홀라파'는 노후된 기계에 의해 산업재해를 입었으나 개인의 문제로 트집이 잡혀 해고당하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전기세를 낼 돈이 없으면 집안의 모든 전기제품의 플러그를 다 뽑아버리면 되고, 일자리를 잃었으면 공사판에서 막노동하면 그만이거든요. ‘안사'는 그다음 직장에서도 사장의 마약 거래로 인해 급여를 받지 못하고 또다시 일자리를 잃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분은 나쁘지만 뭐 어쩌겠냐는 얼굴입니다.
만약 우리나라 코미디였다면 이를 어떤 식으로 그렸을지 상상해 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갑질'을 참고 분노를 삭이는 모습, 할 말 다하는 사람에게 '프로불편러', '요즘 MZ'라며 프레이밍 하는 모습 등이 쉽게 떠오릅니다.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풍자하려다가 오히려 노동 계급을 비하해버렸던 미디어 속 모습들도 머릿속을 스치네요. 가볍게 넘어가도 되는 사사로운 일들은 구태여 연연해하고, 반대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회 문제는 지나치게 가벼운 마음으로 치부해 버렸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웬만한 것은 개의치 않고 가볍게 넘겨버리는 인물들 덕분에 이 영화에는 불필요한 갈등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상영 시간이 고작 1시간 20분일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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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영화 속에는 독특한 설정들이 눈에 띕니다. 달력은 2024년을 가리키고 있으면서 인터넷을 쓰려면 인터넷 카페에 가야 한다든지, 그러면서도 웹 사이트는 인터넷 카페가 성행하던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크롬(Chrome)이라든지, 성냥으로 담뱃불을 켜야 하는 시대인데 버스정류장의 광고판에는 버젓이 스마트폰이 그려져 있다든지 하는 모순들 말이죠. 다른 영화였으면 옥에 티가 있다고 할 텐데, 이 영화에서는 여러 시대를 조합해 버리는 재미난 연출들을 발견하는 것마저도 재미를 자아내는 요소입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여러 시상식과 매체에서 올해의 영화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수상내역이 영화의 가치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어떤 영화를 봐야할 지 모르겠을 때 영화를 선택할 구실 정도는 되어주죠. 1시간 20분의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이니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관람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가슴 속이 조용한 행복과 핀란드식 낙관주의로 충만해지는 색다른 경험을 해보실 수 있을 겁니다.
Summary
2024년, 헬싱키의 외로운 두 영혼 안사와 홀라파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나 눈길을 주고받는다. 서로의 이름도, 주소도 알지 못한 채 유일하게 받아 적은 전화번호마저 잃어버린다. 운명이 이들을 갈라놓으려 할 때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출연: 알마 포위스티, 주시 바타넨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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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 다가온 위험을 경고하다.
보이스 (On the Line, 2021)
개봉일 : 2021.09.15
감독 : 김선, 김곡
출연 : 변요한, 김무열, 김희원, 박명훈, 이주영, 조재윤, 이규성
일상에 다가온 위험을 경고하다.
보이스피싱. 목소리를 통해 사람을 낚아 올리는, 목소리로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사기 행각. 내가 어릴 땐 어색한 한국말 또는 낯선 사투리. 누가 봐도 수상한 번호로 택배 박스를 뒤져 찾아낸 우리 집 강아지 이름 같은 것을 이야기하며 납치범 행세를 하는 것. 어르신들이 주로 당하는 것. 같은 게 보이스피싱이었고 실제로 그때 받았던 피싱 전화들은 대부분이 어색하고 우스운 수준이었다. 한때는 이 어설픈 사기 행각을 소재로 삼은 개그 프로를 보며 함께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는데, 요즘은 보이스피싱도 무서울 만큼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린다.
피해 금액도 눈덩이 커지듯 불어나고, 피싱 조직의 몸집은 제어할 수없이 커져가고 있으며 그 수법 또한 교묘하고 그럴싸하다고 한다. <보이스>는 간절하게 취업을 바란 면접자들, 가족을 아끼고 걱정하는 사람들 등.. 선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피와 생명 같은 돈을 털어내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 그들의 악랄함과 광기를 선명하게 잡아낸다.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 같은 건 범죄자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얼마의 돈을 입금 받고, 오늘 수익 전광판에 얼마의 금액이 찍히는지. 내가 벌어갈 돈은 얼마인지. 이들 눈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숫자만 보일뿐. 사람이 돈 앞에서 얼마나 악랄하고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아주 잘 봤다.
<씨네 21 1323호>에서 김성훈 기자님이 이들의 모습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월가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표현한 글을 봤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표현을 바로 이해됐다. 월가에 비해 주변이 더 지저분하고 수시로 불법적 돈 세탁을 해댄다는 것만 다를 뿐. 돈 앞에서 뿜어내는 광기와 짐승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 정말 닮았다. 특히 어쨌든 약육강식의 세계고 어차피 누군가의 피를 빤다면 즐겁게 빨아야 한다고 외치는 피싱 조직의 간부 곽프로를 보며 “미친놈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만큼 김무열 배우님의 연기가 정말 훌륭했다.)
영화를 보기 전, 건설 현장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단체 커다란 보이스피싱 사건이 일어났다는 시놉시스를 읽었을 땐 “어떻게 건설 현장에서 단체 사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지?”궁금했다. 보이스피싱을 겪어본 적도, 주변에서 당했다는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어 보이스피싱의 세계가 이렇게 커다랗고 조직적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스>는 마치 개미굴처럼 깊고 은밀한 보이스피싱의 세계를 만천하에 공개하며 아직 실감해 본 적 없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준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세밀하게 팀을 나눠 운영한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언제 어디서 걸려도 금방 꼬리를 잘라낼 수 있도록 말이다. 콜센터, 대본, 돈세탁 담당, 입금과 동시에 여러 갈래로 쪼개져 돈을 쓸어 담는 조직원들. 착착 맞아떨어져가는 이들의 빌어먹을 호흡에 피해자들의 피 같은 돈은 손쓸 틈 없이 빠져나간다.
주인공 서준의 아내 미연도 맥없이 이들의 수법에 당하고 마는데, 그는 지지부진한 수사 진행과 지저분한 범죄자들의 욕망 앞에서 죽어가는 동료들과 아내를 위해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심부에 잠입한다. 그리고 상상했던 것 이상의 커다란 악과 이기심을 마주하게 된다. 무기도, 지원해 줄 인원도 없이 홀로 조직의 본거지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서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초능력이나 화려한 무기가 없을 뿐이지 이야말로 진정한 히어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초반부에 휘몰아친 사건들로 높아진 긴장감이 한두 번쯤 느슨해지는 순간이 있는 것과 약간은 애매하게 느껴졌던 액션신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꽤 괜찮았다. 망설임 없이 터트리고 뛰어드는 서준의 행동과 숨김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악역 곽프로. 체계적으로 쌓아올린 범죄 조직의 리얼리티. 그리고 시원하게 뻗어있는 결말로 향하는 길까지. 이번 연휴, 큰 고민 걱정 없이 범죄, 액션 장르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보이스>를 추천한다.
보이스 시놉시스
부산 건설 현장 직원들을 상대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보이스피싱 전화로 인해 딸의 병원비부터 아파트 중도금까지, 당일 현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같은 돈을 잃게 된다. 현장 작업 반장인 전직 형사 서준(변요한)은 가족과 동료들의 돈 30억을 되찾기 위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중국에 위치한 본거지 콜센터 잠입에 성공한 서준, 개인정보확보, 기획실 대본 입고, 인출책 섭외, 환전소 작업, 대규모 콜센터까지!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스케일에 놀라고, 그곳에서 피해자들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기획실 총책 곽프로(김무열)를 드디어 마주한다. 그리고 그가 300억 규모의 새로운 총력전을 기획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상상이상으로 치밀하게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실체! 끝까지 쫓아 반드시 되찾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누군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피해자들의 돈과 희망을 빼앗아가는 범죄 ‘보이스피싱’. 미연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 서준이 행여나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휩쓸려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되고 만다. 몰아치는 범죄자들의 연락과 그럴싸하게 연출되는 상황에 피해자들은 의심 없이 돈을 입금한다.
“선배님 가족이 당해도 가만히 있을 겁니까?”
길거리에 흘려진 셀 수 없이 많은 개인 정보를 노리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들. 피해자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경찰들은 중심부를 잡아야 한다며 언제 올지 모르는 시기를 노리고만 있다. 피해자이자 이 사건을 해결하는 히로인인 서준은 진행되지 않는 수사에 지쳐 직접 그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서준은 아수라장이 된 박실장의 사무실에서 사람들의 USB를 챙겨 나오고,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위해 슬쩍 전화선을 뽑는다. 그는 누구보다 정의심이 뛰어난 인물이다. 나와 내 아내의 복수를 넘어 불특정 다수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이 히어로가 따로 없다.
서준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전, 커다란 마약 범죄 조직들을 소탕한 이력이 있는 팀의 에이스였다. 그는 마약 국내 유통책을 잡으려다 금뱃지 아들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형사직을 박탈당한다. 아마 영화에서 보여준 서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서준은 유통책이 명망 있는 집안의 아들임을 알고도 잡지 않았을까 싶다. 서준은 옷을 뺏긴 이유마저 넘치게 정의롭다.
“보이스피싱은 공감이란 말이야.”
콜센터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서준은 드디어 김현수 변호사라며 아내를 속였던 곽프로를 만나게 된다. 3층 기획실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그는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눈물을 보며 웃는다.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에 당했음을 알고 주저앉아 우는 모습과 곽프로가 웃고 있는 모습이 함께 재생되는 장면을 보며 마치 내가, 내 가족이 당하기라도 한 듯 울화통이 치밀었다.
곽프로는 서준에겐 복수를 꿈꾸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상관들의 뒤통수를 치려 준비하고 있는 가장 교활한 인물이다. 곽프로는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색이라 여겨지는 흰색의 옷을 위아래로 갖춰 입는다. 순수한 색의 옷과 그 위에 튄 핏자국이 더럽고 악랄한 인물의 본체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만든다.
보이스피싱을 벌이는 콜센터 안은 마치 악마들이 모여있는 지옥 같다. 곽프로는 돈 없이 살아갈 바깥세상은 지옥, 헬 조선이라 말하지만 그보다 더 지독한 지옥이 바로 이곳에 있다. 돈 앞에서 이성을 잃고 날뛰는 사람들, 양심과 인류애 따위는 저 멀리로 던져버린 채 욕망으로 번뜩이는 그들의 눈빛, 그리고 같은 피해자임에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71번 여깄다!”고 소리치던 46번의 모습. 특히 46번의 이 모습은 46번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서준의 눈빛이 우스워질 만큼 비열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새로운 콜센터 직원들이 오면 가장 먼저 각자가 갖고 있던 물건과 이름을 빼앗고 새로운 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힌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걸려있던 인생과 양심 같은 것을 모두 내려놓고 죄책감 없이 사기행각을 벌인다. 이들은 나에겐 돈이 절실하다는 상황을 방패 삼아 피해자들의 생을 사정없이 찔러댄다.
콜센터가 발각되고 조직원들이 검거된 상황에서 46번은 끝까지 콜센터에 남은 정보들을 끌어모아 새로운 한 판을 제안한다. 여전히 보이스피싱 조직의 꼬리 자르기만 반복하고 뿌리뽑지못 하고 있는 현 상황이 훅 와닿는 결말이었다.
사실 <보이스>는 크게 기대하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 동시에 개봉하는 <기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고, 최초의 보이스피싱 영화라는 신선한 소재에 눈길이 가긴 했지만 개봉 전 공개된 평점이 예상외로 낮아서 기대감을 낮추고 관람했다. 기대감이 낮아서 그랬는진 몰라도 결로적으론 꽤 괜찮았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력을 제외하면 캐릭터 자체가 크게 입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점과 후반부의 다소 긴장감을 느슨하게 풀어버리는 느낌의 격투신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알지 못했던 보이스피싱의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일상에 드리워진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선사하는데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보이스피싱 백신 영화’라는 말이 정말 찰떡처럼 어울리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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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의 부활. 다시 한번 요동칠 준비를 마친 전반부
지옥 시즌2 (Hellbound 2, 2024)
뱀의 부활. 다시 한번 요동칠 준비를 마친 전반부
개봉일 : 2024.10.25. (NETFLIX 공개 예정)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 연상호
출연 : 김현주, 김성철, 김신록, 임성재, 문소리, 문근영
개인적인 평점 : 3.5 / 5
*본 리뷰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지옥 시즌 2> 1-3회의 내용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옥 시즌 1>은 지옥사자의 심판이라는 초자연적인 재해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리즈였다. 20년 전 고지를 받은 정진수 회장은 자신이 느낀 절망, 두려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그대로 선사하기 위해 재해와 공포를 엮은 거짓 교리를 전파하는 새진리회를 조직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두려움 앞에 바짝 엎드리고 순응하거나, 또는 저항하기도 하며 각자의 지옥을 살아간다.
시즌 1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지옥 시즌 2>는 앞서 쌓아둔 세계관에 누름돌을 올려 만든 더욱 밀도감 있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세상엔 어느 때보다 다양한 믿음과 종교 단체들이 넘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모두 공포가 팽배한 지옥을 살고 있다. 이런 불안한 세상 속에서 되살아난 정진수는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던 뱀처럼 간악한 혀를 뽐내며 다시 세력을 확보하려 한다. 그리고 정진수가 없는 사이에 세력을 늘린 화살촉,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새진리회. 이들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소도까지. 각자의 교리를 주장하는 여러 단체들이 동시에 충돌하기 시작하며 세상은 전에 없던 혼란으로 빠져든다.
1-3편만 감상한 시점이라 ‘지옥 시즌 2는 이렇다’라는 결론을 내리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이 시점에서도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거 칼을 갈고 나왔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눈에 띄었던 건 김성철 배우의 설득력, 이전보다 커진 스케일과 액션이다.
앞서 누군가 연기했던 인물을 이어가야 한다는 큰 부담감을 지고 나온 김성철 배우는 초장부터 눈을 번뜩이며 극 전반에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내리찍는다. 그리고 연한 눈물 자국과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오묘한 설득력을 싣고는 천천히 극을 장악해간다. 김성철 배우의 연기를 보고도 그가 정진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비교적 일상적인 공간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즌 1에 비해 시즌 2는 화살촉 집회 현장, 소도의 새로운 본부 같은 비일상적이고 재밌는 공간들을 공개하며 세계관에 대한 상상력을 더욱 활짝 열어준다. 그리고 각 단체들이 세력을 키운 만큼 이들이 부딪히는 액션신 또한 이전보다 훨씬 본격적이고 역동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상호 감독의 최근작인 <기생수: 더 그레이>를 보며 액션 연출이 훅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지옥 시즌 2>에서도 그 느낌을 한 번 더 받았다. 액션이 주가 되는 시리즈는 아니라 큰 액션신을 반복해서 보여주진 않지만 시선을 끌기엔 충분한 정도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有
신의 영역에서 사람의 영역으로
다시 한번 판을 뒤집을 정진수의 부활시즌 1이 지옥사자의 심판이라는 신의 영역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면 시즌 2는 사람의 영역 안에서 신의 힘을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이들의 싸움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지옥사자의 심판’이라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누가 더 먼저 상대의 입을 막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는지. 이런 능력이 더 중요해진 세상이다. 각 단체들은 심판과 공포를 자기 입맛에 맞춰 해석하고 이용하며 새로운 교리를 주장한다. 송소현, 배영재의 죽음은 아름다운 부모의 희생이 아닌 신에게 몸을 내던진 속죄 행위로 해석되고 죽어 마땅했던 죄인은 단숨에 단체를 대표할 캐릭터로 세탁된다.
세상에 가득 찬 모순은 모두를 지옥으로 이끈다. 개인이 개인의 죄를 묻고 진실을 모르는 자가 진실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올바른 길을 지키려던 단체인 소도 내부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고 정진수 회장을 뿌리로 둔 두 단체 새진리회, 화살촉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한다.
아비규환이 된 세상, 구불구불한 뱀 같은 산길의 끝에서 정진수가 부활한다. 화살촉에 빠진 아내가 죽은 후 소도의 일원이 된 천세형은 3달 동안 정진수를 기다리다 마침내 그를 마주한다. 부활 후 산길을 헤매던 정진수는 천세형의 차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 아래서 그의 절을 받는다. 마치 신성한 존재가 탄생한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 이때 천세형은 정진수를 속이기 위해 절을 했지만 전반부가 끝나갈 때쯤엔 정진수의 혀에 속아 진심으로 그를 자신의 신으로 받들게 된다.
전 시즌에서 유일하게 신과 동일한 위치에서 추앙받던 정진수가 부활했다는 건 이 평범한 사람들의 싸움판을 한 번에 뒤집을만한 사건이 생겼다는 뜻이다.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도 여유롭게 “어쩌면 지금이 이 세상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지.”라고 말하던 그의 머릿속에 어떤 계획이 들어있을지, 그의 계획이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과연 이 기대감을 충족시킬만한 설득력 있는 후반부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빵빵하게 들어간 바람을 훅 빼버리는 난장판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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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각과 확신, 그 사이에서 <퍼스널 쇼퍼>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 2016
프랑스 / 미스터리 외 / 105분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착각과 확신, 그 사이에서 <퍼스널 쇼퍼>
주인공 모린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저마다 뽐내기 좋은 취향과 유일무이한 개성조차 없는 인간이란 얘기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녀에겐 '단단하고 확실한 나만의 가치관'이 없다.
모린은 이란성쌍둥이 형제, 루이스와 같은 영매지만 오빠와 정반대의 삶을 선택했다. 루이스는 자신이 영매란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였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바보 같은 행위라 여기지 않았다. 내세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죽은 자들의 메시지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인생관은 모린보다 뚜렷했으며 무엇보다 미래를 꿈꿀 줄 알았다. 그는 내일을 생각하며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남들처럼', 또 '보통으로서의 개인'처럼.
내가 개인이고, 네가 개인이며, 동시에 우리까지도 '개인'이 될 수 있는.
그리하여 익숙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남들. '사람들이 다 똑같지 뭐' 할 때의 그 사람들 같은.
루이스는 영매(남들과는 다른 인식을 가진 개체)였으나,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단지 사는 방식과 추구하는 사고가 바로 옆에 사는 이웃과 구분됐을 뿐이다. 누구든 그런 것처럼.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반면, 모린에게 영매는 삶에 혼란과 혼동만 불러올 뿐 특별한 힘이 아니었으며, 중요한 가치는 더더욱 아니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평범한 인간, 루이스가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죽기 전까지 모린은 갖고 있던 이력(영매)을 내세우긴커녕 보통 사람인척 살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일상을 보냈지만, 그녀는 사실 홀로 다른 가면을 쓴 '진짜 타자'였다. 어렵지 않게 무리에 소속되고, 일하다가도, 혼자가 될 때면 홀린 듯 스스로를 타자화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배 한 척처럼, 숨 막히는 공허와 고독의 파도에 삶을 맡겼다. 그리곤 당연하게 삶에 관한 질문들을 모른 척 흘러 보냈다. 모린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어떻게 되는 내버려 둔 것이다. 루이스는 그런 모린의 실체를 사람들에게서 숨겨주고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린 채로, 배에 구멍이 난 채로 그녀가 침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루이스 덕이었다.
루이스가 모린을 보호했다는 것이 아니라, 모린이 루이스의 존재를 자신의 편의대로 '등대'로 정했다는 뜻이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굳이 만들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린의 등대엔 불빛이 없었다. 암흑 속에서 꼭 죽은 것처럼 빛 없이 선 등대만 있었을 뿐이다. 현실에서 그 등대의 가치가 곤두박질칠 때마다, 그녀는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안정'이라 여겼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란 근본적인 물음보다 이미 벌어진 사태를 관망하는 걸 택했다. 그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모린은 자신을 아는 일을 묻어두는 것으로 삶의 고통을 피해 가려했다. 그리고 그건 루이스가 정말 죽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나'를 아는 것만큼 괴롭고 힘든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과거를 어떻게 기록하고, 내일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골치 아픈 일은 뒤로 미뤄두는 일, 모린은 가장 중요한 나를 확립하는 일을 딱 그 정도로 여겼다.
영매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부터 그녀에겐 어려운 문제였다. 모린은 루이스와 달랐으니까.
결과적으로 '살아있는 루이스'는 그의 의사와 별개로 모린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문젠 '모린의 루이스'가 의사의 언어 그대로 '예외적인 사례'(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사례란 말은 모린의 일상을 마구잡이로 흔들어놓는다.
잔잔했던 수면 위로 떨어지는 돌 하나. '예외'적인 '사례'.
마치 신이 이미 결정한 일에 딴지를 걸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되면, 다음은 쉽다.
예외에 희망을 붙이는 거다. 이 작업이 편해질수록 마음의 안정은 빨리 찾아오게 되어있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나 '예외를 획득한 생'은 '사'를 피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린 이 착각을 불안해하면서도 굳게 믿음으로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가진 불안과 안정의 저울이니까.
물론 이미 깊은 자기 비관에 빠져있던 모린에겐 통하지 않는다. 희망을 품겠다는 선택지조차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심장기형'은 의사가 말한 '예외'에 꼭 맞는 결괏값이다. 루이스의 죽음이 예외적인 사례가 된 순간, 모린의 삶 역시 예외적인 죽음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6개월 후에 보자는 의사의 말에 자조적인 눈빛으로 "글쎄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라 대답한다. 내일 죽을 확률이 이미 나왔는데 어떻게 죽지 않을 희망을, 아니 아직은 죽지 않을 희망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쉽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도, 모린의 희망은 찬란한 빛이 제거된 흑백이었다. 모린은 자기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어른인 동시에 루이스의 죽음으로 분열되어버린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분열된 자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스스로를 거부하는 일이었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먼저 죽은 사람이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했어요."
죽은 오빠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파리에서 키라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모린. 하루에 몇 번이고 기차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키라의 취향에 꼭 맞는 옷과 신발, 액세서리를 구한다. 일이지만, 틈만 나면 반납해야 할 옷을 갖겠다 통보하고, 유명 연예인답게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키라 때문에 모린은 견딜 수 없는 피곤과 빠져나올 수 없는 억압에 허덕인다. 그나마 그녀를 숨 쉬게 하는 건 루이스의 집에서 오빠의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다.
모린은 오빠의 영혼을 느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직접 영혼의 신호를 포착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만족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루이스에게 더 확실한, 더 강력한 신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유령에게 자신을 어필하란 기이하고도 이상한 모린의 요구. 그녀에게 오빠와의 약속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영매로서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오빠가 정말 옳았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모린의 진심이 결정적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침묵하는 영혼에 소리를 지르는 그때, 루이스의 집엔 불안해진 자신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모린, 자신의 울부짖음만 울려 퍼진다.
모린의 거짓말엔 이유가 있다. 그녀가 (분명 원하지 않았지만) 그제야 자신의 눈앞에 있던 검은 장막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눈을 뜬 순간 모린은 자신이 봐왔던 등대가 빛을 내뿜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내 세계에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확인한 모린은 자신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그녀는 누구인가?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모린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욕망을 해방하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그녀는 키라가 입을 옷을 자신이 먼저 입으며 금기를 깨트린다. 고용주의 옷을 입으면서 자신의 직업적 능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모린. 묘한 쾌락과 심리적 떨림을 느낀 그녀는 점점 더 과감해진다.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키라의 옷과 신발을 탐한다. 익명이 보낸 문자가 모린의 고삐를 푼 결정적 계기로 이용된다. 마침내 그녀는 키라의 집에 들어가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사적인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용한다. 그러나 모린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루이스의 신호를 부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키라가 누리는 모든 것을 누려도 모린은 불안해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별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안정감 때문이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루이스와의 이상적인 이별을 원한다. 그러나 모린에겐 오로지 아무것도 드러낼 수 없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모린만 존재한다. 모린은 스스로를 '모린'이라 말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런 와중에 삶의 목적이 확고했던 루이스와 같은 결말을 맞아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었다.
모린은 언제든 예외적인 사례로 치부될 수 있는 현실에서 차라리 내가 아닌 '완벽한 타자'가 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키라의 퍼스널 쇼퍼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그녀는 매번 실패한다.
하지만 모린은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고된 일상에도 틈틈이 심령 주의와 영매에 관한 정보를 찾고 습득한다. 자신이 영매이면서, 영매를 공부하는 아이러니라니.. 이는 모린이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믿고 써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시 루이스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다"는 말과 다르게 모린은 루이스의 집에서 오빠가 아닌 다른 영혼을 마주하자 도주한다. 공포에 휩싸인 채 자신이 영매란 사실에 섬뜩함을 느끼며 도망친다. 루이스의 신호를 정말 받고 싶으면서도, 그 메시지가 정말 루이스의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도 역시 같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뭐 하나 확실한 믿음을 가져본 적 없는 모린에게 충분한 만족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결국 모린은 영매의 입으로 사후세계를 의심하며 금기를 또다시 어긴다. 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문자에 더욱 주도권을 뺏긴 채 질질 끌려다닌다.(그러나 모린은 그것을 위험하다 인식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으나, 매번 흑백 프레임에 들어가 죽음과 죽은 자가 보내는 신호에 몰두한다.
"금기 없이는 욕망도 없지."
그녀는 사실 첫 번째 금기를 깨기 전까지 무엇이 금기이고 욕망인지 소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침대에서 누운 순간, 그녀는 달라졌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자, 자신을 휘감고 있는 불안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위한다. 모린에게 자위는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제일 효과적인 도구로서, 허덕이는 정신을 대신하는 신체의 유일한 방식이었고,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타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애도만 하는 거 싫어.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이젠 내 삶을 찾고 싶어."
루이스의 연인이었던 라라는 새로 생긴 남자 친구의 존재를 모린에게 밝히며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모린의 남자 친구 역시 전과 다른 태도를 취한다.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는 모린을 응원하고 위로했던 그는 단호하게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모린을 현실로 데려올, 루이스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찾고 싶다는 라라의 고백에 모린은 묘한 낯섦과 해결되지 못한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이를 비난하자 않는다. 라라의 걱정과 달리 모린에게 중요한 건 루이스의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모린은 애도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게 목표였다. 루이스가 평안을 찾길 바란다는 그녀의 속삭임은 자신을 위한 반복된 주문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라라의 남자 친구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라 당부한다. 라라의 남자 친구는 모린이 자신과 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일 뿐이다. 정작 모린은 루이스에게 느꼈던 역량의 차이를 고백하며 자신이 부단히 오빠를 따라가려 노력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끝내 오빠와 같은 속도로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던 결말까지.
모린은 자신이 벅찰 정도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시간을 넘어 죽음에 돌진해버린, 나와 같은 심장기형을 갖고 있던 존재로 루이스를 기억한다. 따라서 "이제 그만 벗어나야죠." 란 말속에, '벗어나야 하는 것'은 루이스를 향한 감정들이 아니라 모린, 자신이 망가트린 마음인 셈이다.
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끝없던 모린의 고뇌와 방황은 키라의 죽음으로 멈춘다. 자신을 흔들어놓던 익명의 존재가 키라를 죽인 내연남이었다는 사실에 모린은 곧장 남자 친구가 있는 오만으로 떠난다. 지금까지 자신이 원했던 욕망을 채우는 행위는 이제 더는 어떠한 효과도 얻을 수 없었으며, 사실적으로 그 효력 또한 모린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지 못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내가 아닌 존재였고, 확신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건 피를 흘리며 싸늘하게 죽은 키라의 시신과 키라를 죽인 내연남의 도주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명백한 사실로 무장한 진짜였다.
오만에 도착한 모린. 현실로 복귀한 그녀에게도 드디어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는 걸까?
타인이 되고 싶은 욕망은 사라졌을까? 이젠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전부 확신할 수 없다.
모린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고 있었고, <퍼스널 쇼퍼>는 그녀의 언어를 분석해 진위를 가리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택했다.
마지막 남은 질문의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정말 루이스는 모린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걸까?
"루이스 너야?"
마침내 오만의 한 고택에서 루이스로 추정되는 영혼과 모린은 교감한다. 그녀는 루이스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영혼에게 계속해서 질문한다. 긍정을 의미하는 "쿵!" 소리에 힘입어 영혼의 주인이 루이스라고 확신하는 모린. 그러나 그녀는 또다시 질문하는 실수를 범한다. 같은 질문을 또 하고 또 하면서 스스로에게 의심을 주입하는 걸 멈추지 못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린 자동차처럼 그녀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듯 군다. 결국 영혼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침묵.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믿지 말아야 할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모린은 결국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아니면 그저 내 상상인 건가?"
"쿵!"출처: 영화 <퍼스널 쇼퍼> 스틸컷 (다음)
모린의 인생은 온통 흑백이며, 그 안엔 대답 대신 물음이 가득하다.
우린 대답을 찾는 걸 더 선호한다. 대답을 갈구하는 일은 질문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린 의문과 의문이 만든 모호함과 괴이함으로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정답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영화는 루이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모린의 물음표가 꼿꼿하게 세워질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아무도 모르게 방향을 뒤집는다. 모린이 틈만 나면 찾아봤던 심령 주의 다큐나, 영매 작가의 전시회, 빅토르 위고의 작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손수 조각난 이야기를 삽입해 관객이 착각과 확신 사이에서 길을 잃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우린 루이스가 모린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지, 정말 모린의 신호에 응답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부 모린의 착각일 수도 있다. 모린의 뒤로 둥둥 떠다니던 유리컵을 든 영혼이 루이스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확신할 수 없기에 확신할 수 있는다는 것이다. 답을 요구하지 않고, 먼저 질문하는 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이자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이다.
<퍼스널 쇼퍼>가 모린을 나무라지도 답답해하지도 않는 건, 물음을 가진 것 역시 그녀이고, 의심을 멈추지 못하는 것 역시 그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품은 물음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 방식이 또 물음표로 이어지더라도 그것은 '생'의 문제이기에 '사'가 관여할 수 없다.
<퍼스널 쇼퍼>는 믿음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여 모린의 마지막 질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난 그게 불편했으나 고마웠다.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영화는 질문하는 것이다"라고.
질문하는 것. 그의 말이 맞다. 영화는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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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다양한 별들이 섞여 아름다운 은하가 되는 것처럼
요새 유튜브에서 우주 관련 영상들을 보는 재미에 빠져서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선정한 우주에 관련된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기대하면서 선택한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우주라 하면 과학의 첨단이라고 생각을 해서 크게 감동을 받거나 감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햇었는데, 엄청난 문학적 비유에 놀라고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시놉시스
토비는 엄마와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러 슬로베니아에 온다. 그러나 토비는 아빠 그리고 친구들과 떨어져 보내는 여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이 토비를 괴롭히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그때, 토비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녀 티아샤를 만난다. 티아샤는 토비를 은퇴한 장님 천문학자 헤르만에게 데려간다.
* 해당 내용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공식홈페이지 소개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주로 풀어내다
Space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와 우주라는 의미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중첩해서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주의 별을 매개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굉장히 잘 풀어내고 있어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별과 은하에 관심이 많은 토비는 엄마와 함께 여름휴가를 엄마의 고향 슬로베니아로 오게 되고 그곳에서 시력을 잃은 천문학자 헤르만을 만나게 된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괴팍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토비는 그와 함께 별을 관측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 헤르만과 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별과 비유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데 굉장히 문학적이어서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캐나다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냐고 물어보자 토비는 자신 자신의 빛이 그 아이에게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토비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지만 아직 그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음을 표현하고 있었고, 피부색이 달라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던 토비를 향해 헤르만은 별은 절대 혼자 있을 수 없다면서 큰 은하 속에 위치한 별의 태생을 알려주면서 토비 역시 혼자라고 생각할지라도 결국에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처럼 굉장히 문학적으로 우주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어서, 과학 그 자체로 생각했던 우주에 대해서 이렇게나 감성적일 수가 있구나 깨달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섞임에 대하여
영화 <우리 사이의우주>의 주인공 토비는 백인과 흑인 사이의 혼혈인이다. 인종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은연 중에 그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차별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드물었던 흑인은 토비가 오자 친구들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굴뚝청소부라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꼭 흑인과 백인이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로 바라보고 있다기 보다는 한 집단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확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토비의 엄마는 인종적으로 보자면 백인이었지만 그녀의 예술적인 감성으로 인해 고향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렇게 예술을 한다고 떠나 캐나다에 정착했지만 그곳에서도 낯선 느낌은 지울 수 없었고, 휴가차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의 느낌을 계속 받는다.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엄마와 인종적으로 차별을 받는 토비의 모습을 보면서 ‘블렌딩(섞임)’의 필요성에 대해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영화 속에서는 펜케익을 만드는 토비가 등장하는데, 일반적으로 하나의 반죽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토비는 흰색 반죽과 갈색 반죽을 따로 만들고 후라이팬 위에서 섞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요리사로 성공한 아빠의 레시피라고 소개한다. 백인과 흑인 혼혈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블랜딩을 통해 성공한 레시피로 인정받았듯이 자신 역시 그 존재를 인정받길 바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더불어 마크라메 공예가인 토비의 엄마 역시 다양한 실을 엮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블렌딩(섞임)이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만큼 사람들 사이에서도 중요함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우주가 감성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만족스럽게 봤던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전달하고 있었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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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일어날 일 따위는없다
이 영화를 보긴했는데, 리뷰를 쓸까 말까 고민했던 이유는 내가 이 영화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영화가 던진 떡밥에 대한 글은 충분히 많으니까, 이 글은 그저 어려운 영화 좀 봤다고 누군가가 주절주절 떠드는 것을 글로 옮겨온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영화의 시작은 미국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한 남자를 구하는 임무를 맡고, 임무 수행 중 밀고를 한 사람에 의해 임무가 발각되고, 고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모든 고문들을 견뎌낸 남주는 테넷 작전에 합류하게 되고, 그 때,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닐을 소개받는다. 두 사람은 미래를 보는 기계를 가졌다는 한 남자, 사토르의 행방을 찾고, 그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능력을 이용해 세상을 멸망하게 하려는 계획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과연 그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악당 사토르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을까?
영웅과 조력자 포맷
이 영화는 세상을 지켜내는 영웅 남주와 인버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닐의 버디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두 캐릭터의 차이점이 있다면, 남주는 임무수행에 있어서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본인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본인의 행동이 인버전된 상황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까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면 불가능해보여도 정면돌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 반해, 닐은 인버전에 대한 지식이 해박(물리학 박사랬나)하기 때문에 현재에 행한 일들이 인버전된 상황에서 어떻게 작용해 현재에 어떤 결론을 도달하게 할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둘의 관계는 흡사 유비와 제갈공량 혹은 아이언맨과 자비스 정도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토리 포맷에서 조력자들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통계적으로 확률이 높은 선택을 리더에게 제시하지만 리더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선택, 위험 가능성이 높은 선택들을 하고, 결론적으로 그 선택들을 성공시켰을 때, 비로소 그 리더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남주는 현재에서 가장 불리했던 상황(인버전에 대한 지식 전무, 사토르에 대한 정보 전무, 사토르의 계획과 그를 잡으려고 하는 단체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지식 전무)에서 시작했지만 닐과 그 외 수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위험한 선택들을 했음에도 그 선택들을 모두 성공시켜 다가올 미래에 테넷 작전의 주도자가 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미래의 남주가 과거의 남주에게 닐을 보내서 테넷 작전을 성공시키는 데에 그를 잘 인도하도록 명령한 것을 암시하는 대사가 마지막에 나온다.
"내 우정은 여기서 끝이지만 자네의 우정은 이제 시작이야"
이 대사는 닐이 주인공과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주인공에 의해 인버전되어 과거로 온. 인물이 아닐까 예상해 볼 수 있는 대사였다. 닐은 미래에서 과거로 온 사람이기 때문에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주인공이 사토르 일당과 최후의 싸움을 하던 그 상황에 주인공의 눈을 사로잡은 가방고리는 그 상황 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닐의 가방 고리임이 밝혀지며, 닐이 작전 도중 인버전해서 주인공을 도왔고, 끝까지 주인공을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유도해서 최종적인 작전 성공의 키를 쥐고 있던 캐릭터였음을 증명해냈다.
"무지가 우리의 무기야."라고 믿었던 그의 대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한 닐의 대사 중에
"또다른 과거를 구하러 가야지."는 닐에게 있어서 이 여정의 끝이 주인공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닐과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인도에서의 첫 만남 씬이 되겠구나 예상해볼 수 있게 한다.
테넷과 비슷하지만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포맷의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일본 영화 중에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장르가 로맨스인만큼 테넷과는 연관없는 영화같아 보이지만 이 영화의 여주인공도 테넷의 관점에서 보면, 인버전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이 과거에서 미래로 향해 가는 사람일 때, 여주인공은 미래에서 과거로 향해가는 시점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를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비교하자면, 테넷에서 닐의 역할이 일본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같고, 일본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테넷 속 주인공과 같은 시간 차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일본 영화에서는 이런 시간 차원의 뒤바뀜이 애절한 사랑의 기폭제가 되지만 테넷에서는 악당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일본 영화에서 인물들의 시간 차원이 뒤바뀌는 설정은 일반적인 러브 스토리 포맷에 시간 차원만 비틀었는데도 주인공들 사이의 사랑의 애절함의 크기가 커지는 효과를 보여주고, 테넷의 경우는 일반적인 어벤져스 영화같이 영웅이 악당이 해치우는 스토리 포맷에 시간 차원이 자유자재로 뒤바뀌게 만드는 설정은 영화의 결말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버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인물들도 각기 다른 차원에 시간에 살고 있고, 그 시간 차원을 필요에 따라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뇌피셜)
이미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 뿐이야.
영화 속 주인공은 인버전하는 능력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캣을 이용해 미래를 바꾸려고 하는 사토르의 계략에 당한다. 그 결과, 캣은 중상을 입고, 작전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다. 그러면서 닐과 했던 대화 중에서 닐은 "이미 일어난 일이 일어난 것이다."라며,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주인공은 이미 일어날 일도 과거를 어떻게 바꾸냐에 따라서 충분히 바뀔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닐의 주장은 시간을 뒤바꿔서 과거-미래 순이 아니라 미래-과거 순으로 시간이 바뀌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똑같은 결말이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반면, 주인공은 인버전되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바뀔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 중에서 주인공의 말이 이긴 것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이 영화는 결국 테넷 작전을 주도한 최종보스는 주인공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우리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끊임없이 그에게 반론을 제시하며, 그의 행동을 제어하려고 한 닐의 행동이 있었지만 아마 닐은 그에게 위험하다고 말려도 자신의 뜻대로 강행했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렇게 해야 테넷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 테니, 어차피 발생할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발버둥쳐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결국 주인공의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더 다지고, 그게 과거를 바꾸는 것에 박차를 가하도록 묘하게 자극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주인공이 테넷 작전의 주도자였다면, 닐은 이 테넷 작전이 무사히 마칠 수 있게 중도를 지키며, 성공을 향해 항로를 조종하는 항해사, 설계자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결국 이 영화가 어려운 과학적 개념들까지 동원해 가며 말하고자 했던 바는 아마도 발생할 일은 발생할 거다라는 운명론 같은 건 믿지 말고, 당신이 지금 현재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미래는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운명의 개척자가 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인버전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 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를 충실히 살아놔야 한다는 미션을 안고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가진 정답이 아닐까. 그러니 모두들 하루하루 너무 우울하지도 않고, 적당히 행복하게, 그리고 하루를 알차게 보내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이 쌓여 마일리지가 되면 그 마일리지들이 쌓여 다른 내일을 만들 거라고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으니, 혹시라도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고치려는 노력을 한다든지 새로이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배워보는 것도 내일을 변화시키는 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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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 2> 만큼 재미있고 <헤어질 결심>처럼 진하게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유명 아나운서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작가님 준비 많이 해오셨어요? 1시간 녹화가 20분이 걸렸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진짜 영잘알이세요." 내가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그냥 무식하게 시간만 보냈던 것뿐인데요." 대답하자 휴대전화에 카톡 몇 개가 온다. 어느 날에 어떤 영화가 개봉한다는 누군가의 말이다. 어? '어느 날'에 개봉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별 것 아니겠거니 싶어서 그냥 넘어간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켜 조회수를 확인해본다. 정말 감사하게도 2만이 찍힌다. 언제부턴가 바라왔던 순간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그게 몇 개월째 내내 반복되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프로그램 담당 작가가 나에게 말을 했다. "작가님! 출연료는 다음 주에 입금될 거예요. 금액은 얼마입니다!" 엥? 출연료가 '얼마'라고? 무슨 소리야? 내가 대답한다. "그 얼마가 어느 정도 될까요?" 작가가 대답한다. "그 금액은..."
라는 꿈을 꾸었다. 그럴 리가 없지. 가끔 언제까지 이 글을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몇몇 분들의 의견에 편승해서 쓰는 글이 아닌, 내 생각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표현하는 그런 일이다. 나 자신이 '이 정도면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지' 싶은 것들은 이미 얻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저 멀리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자서 그런 꿈을 꿨던 걸까? 어느 멀티버스 중 하나에는 내가 작가로 명성을 많이 얻은 세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면 내 안에 있는 어떤 문제들은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우리)에게 알파버스의 웨이먼드가 느닷없이 나타나 "아니야"라고 답한다. 준비물은 없다. 단지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받아들일 태도만 있으면 된다. 올해 개봉작 중 또 다른 마스터피스가 등장했다. 에블린과 함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멀티버스 속으로 떠나보자.
빈 세탁기처럼 돌아가는 일상
분명히 해야 할 일이 벌어야 할 돈 말고 뭐가 있었는데 말이다.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에블린은 일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홍콩에서 태어난 에블린. 첫사랑이었던 웨이먼드의 설득에 넘어가 타지 생활 중이었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패만 지속했던 그녀.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지금 현재다. 짜증이 나는 오늘. 남편 웨이먼드는 착할지 몰라도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딸 조이는 틱틱대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 공공은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에블린과 함께 살고 있다. 쌓여가는 빨래물처럼 풀지 못했던 마음속 응어리가 점점 더 높아져간다. 이런 에블린의 일상은 점점 더 그녀를 괴롭하는 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날. 평소처럼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남편 웨이먼드는 타향살이를 시작한 보람도 없이 갑자기 이혼 서류를 들이밀었다. 딸 조이는 여자친구를 데려와 가족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일상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런 에블린을 딱히 봐주지는 않았다. 국세청은 에블린의 세탁소에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영수증 속에 쌓여있는 에블린. 영업정지와 생계유지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하다. 이 빈 차를 타고 국세청이 아니라 다른 우주로 날아가면 좋으련만. 세상은 야속하게도 에블린의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한숨이 가득한 얼굴. 에블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편 웨이먼드와 같이 있었던 에블린. 멍하니 있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남편 웨이먼드의 눈빛이 변한다. "여보. 잘 들어. 지금 당신은 위험해. 난 다른 우주에서 왔어.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적어 준 쪽지대로 해."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안 그래도 나사가 좀 빠져 있는 것 같은 웨이먼드. 마침내 미쳐버린 것인가? 에블린은 어리둥절한다. 금세 에블린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는 웨이먼드. 갑자기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우주 속의 에블린. 에블린은 당황한다. 웨이먼드는 이내 자기를 소개한다. 자기는 다른 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이며, 지금 세계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을 전한다.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이어폰을 꽂고 겪었던 경험 때문에 안 믿기도 어렵다. 이 색다른 경험 덕에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 앞에서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에블린. 에블린은 디어드리 앞에서 웨이먼드가 전한 지시사항을 수행한다. 지시사항은 그냥 헛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에블린. 그 다른 차원에서 에블린과 웨이먼드는 조우한다.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세상이 왜 위기에 처했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조부 투파키가 멀티버스를 싸돌아다니며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운명의 조부 투파키는 온갖 세계의 에블린을 살해하고 있었다. 꿈꾸는 소리가 아니다. 에블린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전부 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조부 투파키를 제지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강력하고 빠르게
이 영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엄청 정신없다. 일단 핵심 키워드가 너무 많다. 가장 우선은 코미디. 두 번째는 액션. 세 번째는 가족 드라마. 네 번째는 오마주. 다섯 번째는 멀티버스 구현이다. 키워드만 다섯 가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반부까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가 운명에 관한 작품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화는 이런 키워드를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사정없이 다 때려 박는다. 이렇기 때문에 아마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정신없다’라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정보를 쑤셔놓는 것은 도박이다. 일례로 <프렌치 디스패치>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대사가 쉴 틈 없이 쏟아지지만 감독 웨스 앤더슨은 이런저런 설정을 무리 없이 이해한다. 특유의 섬세한 미장센을 중심으로 대사를 받아들여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측면도 있다. 바로 <외계+인> 1부다. 현재의 MCU는 많은 영화들로 이뤄져 있다. 글쓴이는 다른 글에서 최동훈 감독이 마블의 영화들이 쌓아놓은 빌드업을 너무 쉽게 바라본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냈다. 이를 보여주듯 너무 많은 떡밥이 있는 <외계+인>. 산만한 줄거리 때문에 호평보단 혹평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전자다. 이 영화가 이해가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많은 요소들은 단적으로만 휙 쓰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영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쓰이고, 또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산발적으로 와다다 쏟아지긴 해도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대신 중반부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집중할 필요는 있다. 영화에서 원형의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 원형의 에너지가 어떤 이유로 중요한가?라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때 설명이 후반부에 반복되긴 하지만 대충 보면 중반부에서 이를 놓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분들이 무언가를 마시지 않은 채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 그럼 영화의 재미가 급전직하하는 단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가 섬세한 방식으로 영화의 이해를 도운 것과 유사하게 이 영화는 광기의 에너지로 관객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강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는 다방면으로 강점을 가진 영화다. 일단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쾌감이 엄청나다. 이 쾌감 중 하나는 액션이다. 전체적으로 액션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인물은 주연 양자경이다. 우선 양자경이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는 역할을 많이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상영작들을 찾아봤을 때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도 있다. 바로 <와호장룡>이다. 장첸, 주윤발, 장쯔이, 양자경이 출연한 이 영화. 웅장한 맨몸액션이 많은 이들에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이 시절의 홍콩영화를 재현하듯 화려한 맨몸액션을 선보인다. 일단 양자경의 액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극에서 일대 다수의 연기를 펼치는 부분이 있다. 템포가 굉장히 빠르고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수직적 운동능력을 선명하게 잘 드러낸다. 이는 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에블린의 액션 신에서 싸움을 잘하는 에블린이 되는 계기가 있다. 영화는 이 에블린이 왜 쿵후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잠깐 보여주고 이를 편집술로 보여준다. 이는 편집 능력과 시너지가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구체적으로 상대방과의 액션 주고받기와 이 능력이 구현되기 위한 전제가 엇나가듯이 편집되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를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지식 안에서 멀티버스란 것은 없다. 심지어 이 멀티버스의 묘사가 이 영화처럼 이뤄진다면 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글쓴이는 이를 관객들에게 경제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액션을 삽입했다고 생각한다. 상황 자체를 많이 만들어서 그 룰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럼 이야기에 통일성이 생긴다. 이런 토대의 튼튼함은 영화의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이해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에블린의 액션은 단적으로 시각적인 쾌감만을 전하려고 제시되지 않았다.
또 웨이먼드 역을 맡은 조너던 키 콴의 액션 연기도 굉장하다. 이 웨이먼드 캐릭터가 맡은 역할의 액션 신은 비교적 초반부에 나온다. 어떤 행동을 하고 전투를 시작하는 웨이먼드. 이때 매고 있던 가방을 휘리릭 흔들며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엥? 이거 어디서 봤는데? 갑자기 성룡이 생각난다. 역시 이 웨이먼드의 액션신에서 무언가를 오마주하고 있다. 바로 성룡의 쌍절곤 액션이다. 이는 그냥 얻어걸린 효과가 아닌 듯하다. 배우 조너던 키 쿠안이 성룡을 닮기도 했다. 또 원래 주인공을 양자경이 아닌 성룡을 계획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액션은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액션 시퀀스이기도 하다. 가방 끈을 쌍절곤 쓰듯이 두들겨 패는 웨이먼드. 극초반부에 유약한 모습만 제시됐던 이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런 액션 신이 대비되는 느낌이 있다. 이는 앞에서 쓴 문단과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효과를 낸다. 이 역시 멀티버스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 측면에서도 기능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다 보면 이런 멀티버스를 통한 액션신이 웨이먼드라는 인물의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연출이 멀티버스라는 모티브를 단순히 설정으로만 쓴 게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지게 설정했다. 똑똑한 연출의 힘이었다. 아, 이 두 주인공을 빼고 다른 액션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다. 이 인물들의 액션도 잘 뽑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 웃긴다. 이런 생각을 하는게 정말 또라이같다.
타율 높은 코미디
또 이 영화는 정말 웃긴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코미디로서 사용했던 소재는 두 가지다. 멀티버스를 통해 다중우주를 보여줬던 시각화와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다. 우선 이 영화가 장르적인 특성이 아닌 선에서 뽑을 수 있는 강점은 설득력이라고 생각한다. 에블린이 각각의 우주 속에 한 명씩은 있을 테니 각자가 온갖 직업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직업인으로서의 광경 묘사에 있어서 구체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 꼼꼼함 묘사가 ‘각종 직업의 에블린’에서 굉장히 강력한 코미디가 작동한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글을 쓰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글을 쓰는 특징 중 하나를 뽑아 영화에서 어떤 원동력으로 사용한다. 또 그림을 그리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왜 멀티버스의 에블린이 필요한지를 빼먹지 않았다. 영화의 설정을 단단히 하는 연출이 코미디 소스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직업인으로서의 에블린을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 때 절대 잊히지 않는 시퀀스가 있다. 바로 어떤 영화를 차용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이고, 어떤 식으로 차용했는지를 쓰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 영화의 리뷰를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 왠지 직무유기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멀티버스 중에서 우리가 아는 인간의 물리법칙 외의 것도 있다. 이 부분 역시 골 때리게 잘 설정했다. 쓸데없이 상상력이 고퀄리티라서 놀랐다.
그리고 아마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가 됐을 키워드 ‘전환’이다. 영화의 메인 세계관은 주인공 에블린이 이끄는 시간대다. 그럼 다중우주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코미디 요소를 하나씩 추가한다. 제일 첫 번째 전환 방식은 적당히 상식 선에서 상황에 안 맞는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생각하는 수위를 전부 뛰어넘는다. 단 하나 빼고 전부 예상외로 흘러갔다(그리고 이 ‘예상대로 간 코미디’도 정말 웃긴다). 당연히 이렇게 전형성을 탈피한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 말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소재가 뭐였는지는 쓰기 어렵다. 단지 분명한 것은 하나하나 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관객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난 배우들이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웃겼을까? 자기들도 엄청 웃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저비용 고효율의 코미디 요소로 사용하는 전환이지만 이것도 단지 웃기려고만 넣은 것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이 작품에서 전환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글쓴이 포함) 보통 세상 사람들을 판단하는 게 쉽다. 왜 저 사람은 저러고 있을까? 에 대해서 각자의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만 살고 있기 때문에 단면적인 모습만 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 판단의 오류를 꼬집는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신선하다고 느낄 관객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다양성에 관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설정이 있다. 바로 딸 조이의 퀴어 설정이다. 다양성은 우리 문화예술 매체에서 참 피곤한 소재다. 이른바 PC라고 불리는 이 것은 들어가기만 하면 왓챠피디아에서 투기장이 열린다. 피곤하다. 혹자는 ‘PC 묻었네’라고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억지로 이런 코드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극의 흐름을 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멀티버스 안의 수많은 세상이 있다고 해보자. 거기에는 아시아 인이라는 인종이 아예 없다. 무조건 백인만 있는 우주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화양연화>를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헤어질 결심> 역시 마찬가지다. <공조 : 인터내셔날>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매체의 다양성에만 국한 짓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웨이먼드 역을 맡은 키 호이 콴이라는 배우는 경력이 중간에 끊겼었다. 유년시절 아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 사람은 아시아인 역 빼고는 아무것도 맡을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끊겼었다. 할리우드라는 큰 판에 단지 인종이라는 이유로 주류에 끼지 못한다는 것, 아니 낄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많이 불공평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PC’라는 것이 무조건 예술을 해친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단지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사람도 인간일 뿐인데. 역시 이런 측면에서도 이 사람들이 이런 대우를 받으라는 법은 없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이 PC라는 ‘정치적 올바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소수자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선 끝난다면 우리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우주를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살아온 인생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더 많이 써왔으면 어땠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어땠을까. 막연한 질문은 끝이 없다. 이 질문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연다. 삶의 관문에서 막힐 때마다 이 지점으로 돌아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때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되묻는다. 세상에. 내 운명이란 왜 이따위란 말인가. 지긋지긋한 멍청함 덕에 나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뱉는다. 이 한숨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왠지 잔소리를 하고 싶어 진다. 에블린처럼.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잊히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지금 현재의 우리도 각자가 생각했던 어느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글쓴이만 해도 그렇다.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어렸을 때의 내가 바라왔던 모습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다. ‘그러면 안 됐는데’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 동안 후회하며 보냈다. 막상 이 글을 쓴다고 해서 그런 미련이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다. 그 선택을 했던 평행세계의 나도 맞이해야 할 필연적인 사건이 있다는 것을. 단지 그 일을 그렇게 보냈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가능성이란 그런 것이다. 더 이상 꿈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어떤 선택을 하든 ‘통계적인 필연성’에 앞서 지금 없는 것에 가능성을 갖고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 아무 의미 없는 인형 눈알도, 세탁소에 찌들어 보내는 일상도, 밝게 웃는 딸의 웃음도 우리가 어떤 것을 꿈꿀 수 있는 개연성이 된다는 말과 함께 전한다.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 지금의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풀어야 하는 미스터리의 연속인 걸 너무 잘 아니까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 아니겠어?
메버릭의 박력을 멀티버스로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와 래퍼런스를 때려박은 이 영화. 앞에서도 썼듯 '이걸 다 머릿속에 주워 담아야 영화가 이해되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력이 어마어마하다. 일단 초반부 세탁소 시퀀스부터 BGM이 들어간다.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알파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만나 이어폰을 꽂아주기까지 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바로 액션 삽입하고. 액션 중간에 코미디 요소도 있다. 다 짬뽕처럼 다 넣는다. 그 대신 이야기 전반적으로 멀티버스의 인물들마다 갖는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사실 간단하다. 후반부에 주인공 중 어떤 인물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올해 5월에 <탑건 : 메버릭>이 개봉했다.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때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가 톰 크루즈를 위시로 한 힘찬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비행기로 활주로를 활공하는 듯한 갈등 구성이 영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졌던 주요 연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탑건 : 메버릭>만큼의 박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가 나오면, 바로 그다음 정반대의 무언가가 나온다. 또 그 정반대를 대칭 찍고 완벽히 반대 측면에 있는 무언가가 나온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화장법이나 의상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본 적 없는 헤어스타일을 따라와서 보여준다. 그런 이상한 코디법을 받쳐주는 미장센까지 영화는 소재 하나하나가 신선하기 때문에 딸려오는 힘찬 에너지로 2시간 20분 내로 질주한다. 이 영화가 상영관을 얼마만큼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탑건 : 메버릭>보다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볼 수 있는 뭉클함, 코미디 요소로만 국한 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탑건 : 메버릭>이 이뤘던 성취를 더 크게 돌며 이뤘다고 생각한다. 색다른 경험이다. 분명 스포일러를 없이 쓰는 것 같은데 쓸 내용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말 <아바타 : 물의 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극장가의 허리케인이 되어 많은 관객을 흡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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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액션 / 역시 퓨리오사 / 안야 테일러 조이의 강렬한 카리스마 / 아역 배우의 독기어린 눈빛 연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으로 엔드크레딧 전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영상이 잠시 나옵니다.
엔드크레딧 후에는 있나 싶은 허무한 영상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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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림걸즈> 컴백 예고편
브로드웨이 사상 가장 화려한 쇼 | 그대, 화려하게 꿈꾸어라! | 재능, 열정, 그리고 필요한 마지막 하나
디트로이트 출신의 여성 트리오 디나(비욘세 놀즈), 에피(제니퍼 허드슨), 로렐(애니카 노니 로즈). 꿈과 재능, 열정까지 가진 그녀들이지만 오디션에 실패하는 등 화려한 스타의 길은 멀기만 하다. 그런 그녀들은 쇼 비즈니스 계의 성공을 꿈꾸는 야심찬 매니저 커티스와 절호의 만남을 갖게 된다. 그는 그녀들이 가지지 못한 성공의 카드를 쥐고 그녀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제 그녀들은 최고의 인기가수인 제임스 ‘썬더’ 얼리의 백보컬로 투입, 기회와 경험을 쌓아 가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으로 다가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커티스는 팀을 변모시키기 위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음악 스타일 뿐만 아니라 리더인 에피 대신 뛰어난 외모를 가진 디나를 리드싱어로 교체하려는 것. 이에 에피는 반발하고 팀은 위기에 봉착하지만, 디나는 그렇게 찾아온 기회가 싫지는 않다. 이제, 더 드림즈의 운명는 어떻게 될까? 그녀들은 계속 노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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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달짝지근해 : 7510> 티저 예고편
올여름에 엄청난 거 온다..! IT'S YOU해진의 첫 코믹로맨스? 이런 달짝지근함은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