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2024-01-02 15:07:01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
영화 <클레오의 세계>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일년쯤 지났을까? 다정한 누나였던 첫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어.” 순간 나는 얼어버렸다.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은 둘째의 임신이후 각오한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게다가 둘째의 탄생이 후 첫째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동생을 꽤나 예뻐하고 잘 돌본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어느날 툭 내던진 한마디에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 행동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울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이 작은 아이는 일년이 넘는 동안 어떤 감정으로 동생을 대해 왔던 걸까? 나는 우선 말없이 꼬옥 안아주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를 보며, 내가 자주 눈물이 났던 것은, 클레오의 모습에서 나의 첫째아이를 보았기 때문일 것 이다.
클레오는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여섯살 여자아이다. 엄마가 아장아장 걸을 때쯤 세상을 떠나 아빠와 살고 있는 클레오는 서아프리카 카보베르데에서 온 보모 글로리아의 보살핌과 돌봄을 받고 있다. 엄마의 부재를 모두 채워주고 있는 사람. 클레오가 유치원에서 나와,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 글로리아를 보고 활짝 웃으며 글로리아를 반긴다. 둘은 다른 엄마와 딸처럼 함께 병원을 가고, 밥을 먹고, 웃고, 떠들고, 목욕을 한다. 클레오에겐 아마도 글로리아가 엄마같은 존재일 것이다. 온 세상의 전부.
어느 날, 글로리아에게 카보베르데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오고, 안전하고 따듯해 보였던 둘만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슬픔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아이를 챙기는 글로리아의 모습에서 글로리아의 세상의 많은 부분에도 클레오가 차지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글로리아는 클레오가 모르는 글로리아의 세상 카보베르데로 돌아가야 하고, 클레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글로리아가 떠나는 날 , 인사 대신 숨어서 지켜 보며 우는 클레오를 보며, 내가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서로를 위해 슬픔의 감정을 눌러 담은 클레오와 글로리아.
글로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 클레오는 마음이 텅 비어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글로리아가 클레오의 아빠에게 부탁한 대로 카보베르데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 곳은 클레오가 몰랐던 글로리아의 세계가 있다. 임신중인 딸 페르난다와 프랑스에서 클레오를 돌보는 동안 할머니 손에 자란 아들 세자르가 있다.
클레오가 도착한 순간 위태롭게 클레오를 지켜 보는 글로리아의 아들 세자르, 클레오는 상관없이 글로리아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어하지만, 페르난다가 출산을 하여 갓난아이가 태어나 글로리아가 손주를 돌보는 일에 마음을 쓰자, 클레오는 또 다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아기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클레오의 세계는 조금씩 무너지고, 클레오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마도)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집밖으로 내 달려 절벽의 바다로 뛰어든 순간 , 클레오는 어쩌면 다른 세계로 알을 깨고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클레오가 ‘아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느꼈다. 영화의 처음 창문 밖으로 숨어 울던 클레오에게, 질투와 분노 부정적인 감정들 까지 표현하게 되어서, 더 꽉 안아 줄 수 있구나.
이제 둘은 깊이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새롭게 쌓고 있는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고 한발 물러서 지켜봐주어야 하는 때 임을 알아간다. 공항에서 클레오를 떠나 보내며 우는 글로리아를 보며, 이 영화는 클레오의 성장기이며, 글로리아의 성장기이며, 이는 돌봄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품에 안고 있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영원처럼 사랑했고 또 멀리 스스로 설 수 있게 떠나보내야 하는 그런 관계는 보모와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이도 마찬가지니까. 두 아이를 육아하며, 이리 저리 흔들거리는 나에게 돌봄을 하는 사람이란, 그렇게 한 사람의 세계를 이루어 만들도록 돕고 지켜보며 또 응원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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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실패한 아들'의 분노
7★/10★
갈비, 잡채, 각종 전, 김치…… 정성스레 요리한 맛깔스러운 요리가 하나둘 식탁에 오른다. 창래와 누나가 종일 요리한 음식이다. 가족들이 격식 있는 옷을 갖춰 입고 식탁에 앉아 있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창래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다. 한 해 마지막 날의 저녁 식사, 그리고 어쩌면 영영 마지막일지 모를 가족의 저녁 식사가 시작된다. 엄마는 감동한 표정으로 음식을 둘러보고는 창래가 가위로 잘게 자른 갈비를 입에 넣는다. 그러나 바로 뱉어낸다. 위암 투병과 항암 치료로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엄마는 자식들이 준비한 음식을 넘기지 못한다. 창래는 자책한다. 갈비를 이렇게 달게 요리해서는 안 됐다고, 이건 실패한 요리라고. 엄마가 그런 창래를 나무란다. 그렇지 않다고, 정말 잘 만든 요리라고. 그러나 엄마는 끝내 아무것도 삼키지 못한다. 창래가 옳다. 그의 요리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죽임이 임박한, 극도의 고통을 겪는 엄마 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엄마와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까. 창래는 간병을 위해 뉴욕의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라면 하나 끓이지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를 위해 요리하고, 병간호하고, 청소하고, 갈라지고 떨어진 거실의 내벽을 새로 칠한다. 창래는 어린 시절 엄마가 수없이 해줬던 요리를 떠올린다. 부엌에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엄마가 종종 차근히 설명해주었던 레시피를 천천히 복기한다.
엄마는 한국에서 실력 있는 농구선수였다. 아빠를 만나 결혼한 후에는 그를 따라 미국으로 왔다. 창래가 엄마의 삶이 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자 엄마는 부드럽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자신에게는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다. 아빠와 달리 엄마의 영어는 서툴다. 영어가 그녀의 모국어가 아님이 단번에 드러나는 발음이다. 그래서 엄마는 종종 창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를테면 카드사에 전화해 대금이 잘못 청구되었다고 묻는 일 같은 것들. 창래는 엄마가 이 문제를 회피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더 연습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다고, 어쩌면 게으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엄마는 그 말에 북받친 듯 눈물을 보이고, 창래는 뒤돌아선 엄마에게 용서를 구한다.
같은 이민자지만 엄마와 아빠/누나/창래의 세계는 다르다. 학자인 아빠는 엄마가 겪는 문제를 겪지 않는다. 창래와 그의 누나 역시 엄마의 집요한 노력으로 아빠의 세계에 진입했다. 엄마는 자식들이 자신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상승’한 데에 크게 만족한다. 그러나 동시에 양가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죽을 걸 알았어도 아들을 기숙 학교에 보냈을까? 그 시기가 아들과 함께할 마지막 시간임을 알았더라도? 창래를 향한 엄마의 모순적 애착이 창래를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아빠의 세계에 진입했으나 엄마와 그녀의 세계가 소외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창래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 대한 아빠의 무지로부터 그녀를 옹호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창래의 귀환은 실패했다. 어머니는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창래는 엄마의 세계로 회귀하지 못한다. 실패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coming home again)’이 ‘엄마에게 돌아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데서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창래에게 엄마/집은 그가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는 고정된 장소다. 그러나 실재하는 엄마/집은 창래의 기대와는 다르다. 엄마와 그녀가 꾸리는 공간인 집은 그녀의 상황과 욕망에 따라 매 순간 재구성되는, 생동하는 무언가다. 창래의 성공을 기뻐하는 동시에 그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 데 아쉬움을 느끼는 엄마의 모순적 애착이 보여주듯, 엄마의 욕망과 기대는 창래(그리고 다른 가족 구성원)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이되어왔다. 그녀의 욕망과 기대가 투영된 집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창래가 돌아가고자 하는 장소의 좌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창래가 자꾸 미끄러지는 이유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엄마 요리의 맛과 자신이 직접 요리한 음식의 맛이 다르다는 데 분노하며 책상을 내리친다. 저녁 식사를 망친 후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나서는 엄마를 꽉 끌어안는데, 엄마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창래의 거친 포옹은 엄마에게 고통만 준다. 창래의 괴로움은 진짜다. 엄마를 향한 그의 마음도 진짜다. 문제는 창래의 진심이 젠더화된 가족의 의미망을 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엄마가 자기 말은 안 들어도 네 말은 듣지 않느냐는 누나의 말이 알려주듯, 창래는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수혜자다. 창래와 엄마가 오랫동안 기대온 이 관계망의 문법이 창래의 진심을 가로막는다. ‘엄마-아들’의 기존 관계망에서 아들은 엄마를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할 때 발생하는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창래에게서,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개인에게 새기는 비참함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창래는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려는 ‘좋은 아들’이지만, 가부장적 가족주의 앞에서 번번이 가로막히는 ‘무능한 아들’이기도 하다.
엄마가 죽은 뒤, 창래는 그녀가 쓰던 물건을 무심하고 거칠게 쓰레기통에 담는다. 그는 여전히 분노한 상태다. 창래는 왜 엄마/집으로 돌아오려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는지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조차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다.
우리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아무리 애절한 진심이라도 그 진심이 전달되는 구조적 통로에 문제가 있다면 상대에게 가 닿지 못한다. 창래의 의도하지 않은 무능은 ‘효도’와 ‘돌봄’ 어딘가에 내재한 공허함을 보인다. 이 공허함을 직시하지 않고 ‘진심’만을 강조하는 한, 우리는 끝없이 실패할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커밍 홈 어게인〉은 한국계 미국 작가인 이창래가 《뉴요커》에 기고한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합니다. 아래는 에세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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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5주차 개봉작, 공개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3월 다섯번째 주도 잘 지내고 계시나요?
벌써 3월의 마지막 주가 다가와 많이 아쉬운데요.
그래도 좋은 작품과 함께 3월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은 설렙니다!
그럼 3월 다섯번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비우스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04분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사
배우: 자레드 레토, 아드리아 아르호나 등
개봉: 2022.03.30
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
줄거리
희귀혈액병을 앓고 있는 생화학자 '모비우스'는 동료인 '마르틴'과 함께 치료제 개발에 몰두한다.
흡혈 박쥐를 연구하던 중 마침내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모비우스’는
새 생명과 강력한 힘을 얻게 되지만, 동시에 흡혈을 하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던 중 ‘모비우스’의 친구 ‘마일로’(맷 스미스)도 ‘모비우스’와 같은 힘을 얻게 되는데…
관전포인트
<모비우스>는 마블 원작 코믹스에서 스파이더맨과 맞선 '마이클 모비우스' 박사를 주인공으로
한 첫 번째 실사 영화이자, 첫 번째 안티 히어로 영화이다.
개봉 당일, 예매율 50.5%를 넘었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얼마나 많은 기대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DC 캐릭터를 연기하던 '자레드 레토'가 마블의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배니싱: 미제사건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프랑스 | 88분
감독: 드니 데르쿠르
배우: 유연서, 올가 쿠릴렌코, 예지원
개봉: 2022.03.30
배급: (주)스튜디오산타클로스,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줄거리
어느 날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을 맡은 형사 ‘진호’는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국제 법의학자 ‘알리스’를 찾아 자문을 구한다. 알리스와 진호는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장기밀매 조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국제적인 범죄 조직의 정체와 마주하게 되고 충격적이고 처참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관전포인트
<배니싱: 미제사건>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에 초청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올 로케이션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외로 유명한 배우 유연석, 올가 쿠릴렌코, 예지원, 최무성, 박소이, 아누팜 트리파티 등이
모두 이 영화에 출연하는 최고의 글로벌 프로젝트이다.
B컷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한국 | 93분
감독: 김진영
배우: 김동완, 전세현, 김병옥 등
개봉: 2022.03.30
배급: TCO(주)더콘텐츠온
줄거리
어느날, 한때 최고의 여배우였던 ‘민영’은 ‘승현’에게 망가진 핸드폰 수리를 맡기고,
그 폰 안에서 찾아낸 ‘민영’의 B컷에는 그의 남편이자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인 ‘태산’의 충격적인 진실이 들어있다.
관전포인트
<B컷>의 김진영 감독은 "현실과 밀착되어 있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영화 속 내용에 더욱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객분들이 김동완 배우의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으로 더욱더 영화에 몰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문나이트
출처: Rotten Tomatoes
개요: SF | 한국 | 6부작
감독: 모하메드 디아브
배우: 오스카 아이삭, 에단 호크 등
공개: 2022.03.30
스트리밍: 디즈니플러스
줄거리
불면증에 시달리며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에 빠진 '스티븐'은 매일 악몽 같은 삶을 이어간다.
어느 날, 달의 신 '콘슈'의 임무를 수행하는 전직 용병 '마크 스펙터'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신의 힘을 이어받은 초월적 히어로 '문나이트'로 거듭나게 된다.
관전포인트
오스카 아이작이 맡은 문나이트는 다중인격자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마블 작품과 달리 어두움과 처절함이 강조됐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타미 페이의 눈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26분
감독: 마이클 쇼월터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 앤드류 가필드 등
공개: 2022.03.30
스트리밍: 디즈니플러스
줄거리
'타미 페이의 눈'은 70, 80년대에 남편 짐 베이커(앤드류 가필드)와 세계적인 종교 방송망과 테마파크를 세운
TV 전도사 타미 페이 베이커(제시카 채스테인)의 흥망성쇠와 구원을 다룬다.
관전포인트
최근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과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영화이다. <타미 페이의 눈>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실제 스토리와 비교하면서 보면 재밌을 것 같다.
몸 값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한국 | 14분
감독: 이충현
배우: 이주영, 박형수 등
공개: 2022.03.30
스트리밍: 왓챠
줄거리
처녀를 원하는 중년남자가 여고생과 모텔 방에 들어가 화대를 놓고 흥정을 한다. 처녀가 아니란 이유로 가격을 깎자는 남자. 여고생은 어이가 없지만 남자의 요구를 들어준다.
관전포인트
티빙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는 드라마 <몸 값>의 원작인 이충현 감독의 영화 <몸 값>. 최초 공개 당시 화제를 모았지만, 정식 서비스가 없어 다시 볼 수 없었던 영화였다. 왓챠에 공개된다는 글이 올라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패러렐 마더스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멜로 | 스페인 | 123분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밀레나 스밋, 로시 드 팔마 등
개봉: 2022.03.31
배급: (주)스튜디오디에이치엘
줄거리
홀로 출산을 준비 중인 사진작가 야니스는 같은 병실에서 어린 산모 아나를 만난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을 낳은 두 사람은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눈다.
야니스는 아나와 자신의 딸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진실을 알리지 못한 채 아나와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가는데…관전포인트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페넬로페 크루즈, 두 사람은 총 8번째 협업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협업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는데요.
<패러렐 마더스>는 두 여성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겨져 있는 영화이다.
극장판 시그널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21분
감독: 하시모토 하지메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 키타무라 카즈키, 키치세 미치코 등
개봉: 2022.03.31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줄거리
‘사에구사 켄토’가 속한 장기 미제 사건팀은 계획된 범죄임을 의심하고 수사하던 중
2009년에 동일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도심을 뒤흔든 연쇄 테러 사건과의 전쟁에 맞선 과거와 현재의 공조 수사가 시작된다!
관전포인트
영화 <극장판 시그널>은 일본 드라마 '시그널'에서 이어지는 스토리이다. <영화> 초반에 드라마 속 스토리를 설명을 해주기는 하지만, 미리 보고 간다면 영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 BTS 정국이 작곡에 참여한 'Film Out'도 들을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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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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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푸른 뱀의 해! 영화로 뱀의 기운 얻어가세요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뱀의 기운을 잔뜩 얻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들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특히 <우리 함께 아웃백으로! Back to the Outback>는 푸른 뱀이 주인공인 만큼 놓쳐서는 안되겠죠?
그럼 2025년을 버텨낼 힘찬 기운을 온몸으로 맞으러 가볼까요?
우리 함께 아웃백으로!
Back to the Outback
배드 가이즈
The Bad Guys
쿵푸 팬더
Kung Fu Panda
정글북
The Jungle Book
주토피아 2
Zootopia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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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드 헤인즈의 <메이 디셈버>
본 글은 씨네랩을 통한 시사회 관람 후 리뷰를 요청받아 쓴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6년 여교사가 당시 만 13세 남학생과 성관계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여교사는 2급 아동 강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개월 후 조기 석방되었다. 하지만 다시 남학생을 만나 관계를 가진 것이 적발되었고 최종적으로 7년 징역을 살았다. 더욱 충격(?) 적인 것은 여교사는 남학생과의 사이에서 딸 2명을 낳았다. 복역 중 첫째 딸을 낳고 가석방되었고, 두 번째 복역 중 둘째 딸을 낳았다. 출소 후 여교사와 남학생은 결혼하며 다시 한번 유명해졌다. 2017년 그들은 이혼을 했고, 2020년 여교사는 암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남학생과 두 딸이 곁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토드 헤인즈의 신작 <메이 디셈버>는 위에 언급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아무래도 토드 헤인즈는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해외의 경우 아동 성범죄는 아주 심각한 범죄로 취급된다. 특히나 최근의 국내 경향으로는 이 영화가 개봉조차 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개봉을 하는 것은 토드 헤인즈라는 명성과 스타 배우들의 출연이지 않을까. 여하간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아동 성범죄라는 소재는 무시할 수 없는 소재인 건 분명하다.
우선 토드 헤인즈라는 감독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감독은 아니라는 걸 밝혀야겠다. 기억도 잘 나진 않지만 <파 프롬 헤븐>, <캐롤>로 이어진 멜로드라마 감독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그 사이사이엔 다른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경력이 있지만 난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의 연장으로 <메이 디셈버>를 읽었다. 즉, 멜로드라마로 이 영화를 접근한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더 이상의 멜로 드라마가 가능한가.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어원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글라스 서크로 상징되는 그 멜로드라마가 2024년에 가능하냐는 문제다. 멜로드라마는 아주 단순한 구성을 취한다. 남녀가 사랑하지만 어떠한 장애물이 그 사랑을 막는다. 더글라스 서크의 걸작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에서는 계급과 나이가 주인공들의 사랑을 가로막았다. 아주 오래전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이 사랑을 가로막았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사랑을 가로막을 게 없어서 죽을 병에 걸린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물론 간혹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같은 장애라는 요소나 혹은 <건축학개론>에서는 이 장르적 요소를 훌륭하게 지역 정치학으로 엮는 경우도 있다. 토드 헤인즈는 <메이 디셈버>에서 그들의 사랑을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으로 진행시키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둘의 나이차는 무려 23살이니까. 하지만 토드 헤인즈는 멜로드라마 장르 공식으로 이 영화를 풀어가진 않는다.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 사건의 여교사 그레이시라기보단 그들에게 접근한 엘리자베스다. 그레이시와 조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그 영화에서 그레이시 역을 맡은 게 바로 엘리자베스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연기할 실제 인물 그레이시를 관찰하기 위해 접근한다. 극중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연기할 인물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인물을 고른다는 말을 한다. 게다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더 흥미롭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엘리자베스는 상당히 거만하다. 즉, 영화는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는 당연히 뒤따르는 문제가 생긴다. 엘리자베스와 관객을 동일선상에 놓고 영화를 진행해야 하는가라는 물음. 관객들이 엘리자베스를 계속 쫓아가며 그녀가 얻는 사실과 힌트들로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게 할 것인가. 흔히 플롯을 구성할 때 아주 많이 쓰이는 방법이지만 토드 헤인즈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법적으로 그레이시는 아동 성범죄자다. 바꿔서 이야기해 보자. 그레이시는 스물세 살 연하 남자를 서른여섯에 만났다. 그리고 섹스를 했다. 당신은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건 첨예한 문제다. 미성년자가 아니어도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심지어 할리우드 감독들과 배우들의 연인들을 이해하는 것도 힘든 사람들이 많다. 더군다나 미성년자다. 그것도 만 13세.
아마 단순히 나이차를 두고 그 연인들을 이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할 수 있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 내면을 깊게 들어가서 이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질문에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건 사기꾼이거나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인간일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타인을 이해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토드 헤인즈는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이해하기 위해 그레이시와 주변 인물들을 만나는 동선을 따라가는 방향과 관객들이 그레이시와 조를 따라가는 하나의 방향으로 총 두 개의 방향성으로 진행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방향성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먼저 엘리자베스 쪽을 살펴보자. 엘리자베스가 등장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는 똥과 함께 등장한다. 혹은 엘리자베스는 똥을 들고 등장한다. 여하간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를 이해하는 쪽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시를 연기하려고 하는 점은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태도는 어떻게 보면 오만하다. 자신이 흥미로운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의 전 남편과 변호사 등을 만나면서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떠올려본다. 중요한 장면으로 그레이시가 조와 처음으로 섹스한 곳에 가서 자위를 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메리의 학교에 가서 연기에 대한 강의를 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는데 그 강의에서 엘리자베스는 연기와 실제가 뒤섞이는 그런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기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다. 물론 토드 헤인즈는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연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엘리자베스는 배우로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장면을 보면서 엘리자베스의 결과는 결코 좋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엘리자베스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엘리자베스 본인을 당시 그레이시의 상황에 놓는 것에 불과하다. 즉, 그레이시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이야기다. 인간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영화의 의견에 공감한다. 하지만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엘리자베스란 인간은 자신의 배역을 위해 남의 남자랑 섹스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건 엘리자베스란 인간에 대한 일부의 이해다.
그런 다음 엘리자베스는 카메라와 정면으로 대응한다. 이 장면은 나탈리 포트만의 아주 인상적인 연기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딘가 부족한 연기라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어딘가 부족한 연기를 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건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아니라 토드 헤인즈의 연출이다. 영화가 이끌고 온 서사와 카메라의 위치가 지금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절대적으로 관객들이 따라갈 수 없는 연기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본인이 찾던 결론에 도달한다. 그레이시가 어렸을 때 오빠들에게 성추행을 당해서 비뚤어진 성관념이 생겼다는 정보를 듣는다. 그는 그레이시를 이해할 핵심적인 단서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사건이 인간 인생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프로이트에게 배웠다. 최근 들어 프로이트의 이론을 반박하거나 프로이트는 사장된 인물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책을 보거나 의견을 들으면 결국 다시 프로이트 이론 안에서 그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본다. 프로이트의 일부 이론이 틀리거나 부정당할 수는 있지만 결국 다시 프로이트라는 점은 아직까지 분명하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은 토드 헤인즈가 함정을 파두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성추행의 결과로 그레이시가 조와 섹스를 했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훗날 그레이시는 엘리자베스에게 그런 일은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비웃는다.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영화를 찍는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연기하는 그레이시는 마치 삼류 연기자가 연기하는 에로 영화 같은 느낌이 풍긴다. 심지어 사실관계조차 알지 못한 채로 영화를 촬영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를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무의식이 있다는 걸 밝혀냈으며 인간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부분을 밝혀낸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업적은 엄청난 것이지만. 하지만 분명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무엇이 인간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고, 무엇의 항목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이제 그레이시와 조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그레이시와 조는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고 소시지가 없다는 사실에 그레이시는 충격을 받는다. 이때 심각한 음악은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느껴진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장면은 조가 자려고 누워있는 그레이시 옆에 누웠을 때 그레이시가 냄새난다고 씻고 오라고 이야기한다. 극장에서 이 장면이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단순히 웃기는 장면은 아니다. 이 전 장면이 조가 TV를 통해 세수를 하는 여자가 나오는 광고를 보았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그 장면과 이 장면은 같이 연결해야 한다. 조는 왜 깨끗하게 세수하는 여자를 그렇게 유심히 바라보는 것일까. 그리고 그레이시가 씻으라고 말할 때 왜 상반신에 물만 살짝 묻히고는 마는 걸까.
조의 그런 심리에 대해 알 턱이 없지만 추론해 볼 수는 있다. 조와 그레이시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더럽다이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조는 자신이 더럽지 않다는 걸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더럽지 않기 때문에 씻을 필요가 없는 건 아닐까? 물론 이는 추론이다.
내가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한 가지는 영화가 시작하고 난 다음 그레이시와 조가 마주치는 장면이다. 부엌에서 둘이 마주쳤을 때 쇼트의 배열이 약간은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확신했던 것은 그레이시와 조의 대화를 샷 리액션 샷으로 이어붙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 그리고 조와 그의 아들이 식사하는 장면에서 정확하게 엿볼 수 있다. 그레이시는 정면에 가까운 위치에 카메라가 위치하지만 조를 보여줄 때는 아들의 정면 가까운 곳에 카메라가 위치한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그레이시와 조가 이야기를 해도 둘의 시선을 일치시키지 않는다.
영화가 그 시선을 일치시키는 장면은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전 남편을 만났을 때나 변호사를 만났을 때 완전히 일치시킨다. 또한 조가 지붕에서 아들과 함께 대마를 피우는 장면에서 시선은 일치한다. 시선을 일치시키는 문제는 보편적인 영화에서는 아주 익숙한 문법이지만 이러한 문법 자체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감독들이 있다. 이 영화도 그런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조는 아들과 대화를 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의 주변 인물들과 대화를 한다. 하지만 그레이시와 조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둘의 시선이 일치하는 부분은 영화 후반부에서 조가 그레이시에게 자신이 너무 어리지 않았냐고 물을 때다. 조가 대화를 시도하자 카메라는 둘의 시선을 일치시킨다. 하지만 이내 그레이시는 대화를 거부하면서 장면은 끝난다.
그레이시는 딸 메리의 졸업식에 입을 드레스를 고르는데 영향을 주고, 자신에게 케이크를 주문하지 않게 된 이웃이 생기자 오열한다. 이따금 이유 없이 울기도 한다. 우리는 그레이시와 조 사이에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 문제가 명확하게 어떤 건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레이시는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앞부분 소시지가 없을 때의 음악과 딸 메리의 의상을 고르는 장면을 보면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레이시의 문제가 명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몇몇 부분으로 그녀를 추론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버지와 굉장히 서먹하다. 아버지를 만나서 줄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보면 그 또한 추론할 수 있지만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린 알 수가 없다.
관객들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와 조를 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실제로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시의 전 남편 대화를 살펴보면 전 남편이 당시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건 그의 입을 통해 증언되기 때문이다. 변호사 또한 마찬가지다. 변호사는 그레이시를 보고 범죄자라고 일갈하며 그레이시는 당시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한다. 그렇다. 그레이시는 조와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 별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레이시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리가 없다.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 상태를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그레이시의 말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그레이시를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 그레이시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우리의 상식이 잘못되었거나 그레이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상식이 잘못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즉 36살의 여교사가 13살의 남학생을 사랑하고 그래서 섹스했다는 걸 믿지 않는다. 그녀가 아이를 낳았고, 복역 후 그와 결혼을 했으며 이후로도 같이 살았다는 사실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나탈리 포트만의 독백 연기도 아니고 마지막 장면의 엘리자베스의 오만함도 아니다. 조가 지붕에서 아들과 함께 대마를 피우는 장면이 왜 잊히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만 13살의 아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감정이 타인에 의해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가 되면서, 자신의 사랑이 범죄 행위가 되며 정상적인 성장을 밟지 못한 것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버지가 되어서야 자신의 10대를 다시 새롭게 경험하는 그 순간이 인상적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장면은 조와 엘리자베스의 섹스다. 이 장면을 설명해야만 한다. 이 영화 속에서 그레이시는 어떤 변화도 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일하게 변화하는 건 조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나타나고 나서 조는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아니 심경의 변화를 알아차렸다고 하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조는 처음으로 그레이시에게 자신이 너무 어렸던 거 아니냐고 묻는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을 부인하는 그레이시의 행동과는 다르게 조는 그 손가락질에 대해 그레이시와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조는 10대 때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하는 중이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고민하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자베스와 섹스를 한다. 엘리자베스는 명백하게 자신의 역할을 위한 섹스다. 그러니까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레이시의 입장에서 조를 품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영화는 마치 성기 삽입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연출했다.
하지만 조의 입장은 약간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엘리자베스와 섹스를 했다. 이 또한 추론일 뿐이지만 천천히 다시 한번 살펴보자. 엘리자베스는 지금 서른여섯의 그레이시를 연기하는 입장이다. 즉 당시의 그레이시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조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만 13세 이후의 삶을 다시 겪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생활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당시의 편지를 꺼내보고 딸의 졸업식을 준비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조는 당시의 그레이시와의 섹스를 다시 해본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물론 추론이다. 여기에는 이 영화의 인서트로 계속 등장하는 나비와 애벌레를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다. 영화가 시작하면 나비가 나온다.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인서트에서는 애벌레가 등장한다. 생각해 보면 순서가 뒤집혀야 맞는 거 아닌가. 그러므로 이미 나비가 된 조가 다시 애벌레부터 시작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변호사를 만나는 장면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밖은 부드러운 빛이 내리쬐고 안은 어두컴컴하다. 바깥은 녹음이 드리워진 공간이다. 이는 마치 인상주의 화풍처럼 느껴진다. 인상주의가 등장했을 때 누구나 아는 것처럼 그리다 만 그림이거나 혹은 그림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작자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비판이 쏟아졌었다. 미술사 고전기에 원근법이라는 개념과 현실의 모방이라는 아주 중대한 부분은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였다. 세상의 비밀을 파헤친 것만 같았지만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이어 인상주의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의 인상들을 그리면서 회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나는 이 점이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이해하는 태도가 결국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결론에 다다르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도 있었을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멜로드라마의 감독 답게 토드 헤인즈는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탁월하게 연출했다. 특히 그레이시가 엘리자베스에게 화장해 주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장면은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시 모두 옆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의 눈빛을 정확하게 볼 수는 없다. 이는 분명 엘리자베스의 독백 장면과 대비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에게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느낀다. 반면 그레이시는 엘리자베스에게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느낌은 약하다. 즉 이 장면은 분명한 디렉팅이 들어간 것 같다. 이 순간 마치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에게 입을 맞출 거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충동의 감정에 솔직했다면 어쩌면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 뭔가를 얻지 않았을까. 물론 난 엘리자베스를 모르지만 말이다.
2024년 03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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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누군가는 지금을 낭만이라고 할 지도 모르지
낭만의 도시, 파리
파리를 향한 사람들의 동경과 사랑은 대단하다. 고풍스러운 샹젤리제 거리, 화려한 치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베르사유 궁전, 세계 최고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에펠탑은 말이 더 필요할까.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 파리는 예로부터 수많은 예술가들이 교류하던 문화의 장이었고 그 자체로 상징적인 낭만이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본격적으로 파리의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고스란히 조명한다.
주인공 길은 낭만파다. 잘 나가는 할리우드의 상업 작가임에도 소설을 쓰겠다며 때때로 약혼자의 속을 썩이는 남자. 그의 소설 속 과거의 골동품을 파는 노스탤지어 샵이 등장하듯, 그 역시 파리의 낭만을 사랑하고 과거의 황금기를 동경하는 남자다.
파리의 황금기는 1920년대였으며 현재의 파리는 그때만 못하다는 것. 그는 살아보지 않았던 그 시절의 황금기를 동경하고 또 열망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파리는 그 아름다웠던 과거보다 칙칙하고 낭만이 꺼진 도시다.
그랬던 그에게 자정마다 마법 같은 시간이 펼쳐진다. 그를 마중 나온 의문의 차가 그를 1920년대의 파리로 이끈 것. 그곳에서 자신이 동경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직접 조우하게 된다.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등등.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이 그의 앞에 나타나고, 길은 어린 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관광지로서의 유물을 넘어 그가 열망하던 파리의 시간이 눈앞에 재현된 것이다.
길이 찬양하던 대로 1920년대의 파리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밤길을 비추는 특유의 따뜻한 노란 조명, 그리고 한 자리에 모인 시대를 풍미하는 예술가들, 때맞춰 흘러나오는 콜 포터의 재즈까지. 그는 점차 현재의 파리보다도 1920년대의 파리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덧없는 우리의 황금기
1920년대, 피카소의 연인이자 많은 예술가의 뮤즈였던 아드리아나에게 끌리는 길. 그가 약혼자 이네즈와 아드리아나 사이에 느끼는 혼란스러운 두 감정은 동시에 자신의 현재와 아름다운 과거 사이에의 혼란이기도 하다. 현재의 파리도 아름답지만, 길에게 있어 1920년대의 파리는 그야말로 가슴 떨리는 환상의 시대였기에.
그러나 아득한 과거를 향한 환상은 비단 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길이 그토록 바라는 1920년대에 살아 숨쉬는 아드리아나. 그러나 그녀는 그녀 자신이 살아가는 1920년의 현재보다도 고갱, 드가 등 화가가 활동하던 1890년대의 파리를 갈망한다.
극 중 이네즈의 친구 폴은 ‘과거에 대한 향수는 고통스러운 현재에 대한 부정’이라고 말하며 이상적인 과거를 동경하는 길의 태도를 ‘황금시대의 오류’라는 개념으로 꼬집는다. 즉 현재의 고통은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재는 불완전하며, 과거는 완결된 이야기이니까. 되돌아보면 그 시기가 아름다웠던 것만 같고, 그것이 끝나버렸다는 아쉬움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지난 날들을 그리워하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더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현재가 지닌 가치는 가려져 불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길과 아드리아나는 또 한 번 자정의 시간 여행을 통해 1890년대의 파리로 넘어 가지만 이들의 선택은 극명하게 갈린다. 그 시기가 파리의 가장 빛나는 때라고 여기던 아드리아나는 과거에 남고, 그 모습을 본 길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멈추고 현재에 충실하기로 마음먹는다. 길은 1920년대를,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를, 그리고 1890년대의 사람들은 르네상스를 동경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황금기를 향한 동경. 과거는 때로 과거라는 이유만으로, 완결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자정을 넘어 새로운 아침으로
할리우드 상업 작가로는 소위 ‘잘 나가는’ 축에 속하는 길이지만, 그는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던 소설을 처음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우려와 창작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어쩌면 쉬운 길을 두고 고집을 부리다 완성한 소설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을 테다. 남에게 평가를 맡기지 않던 길이지만, 그의 우상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글에 대한 평가를 구한다. 헤밍웨이는 이미 완결된 그의 일생 속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갖춘 저자이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아직 소설 한 편 제대로 완성하지 않는 자신은 그저 보잘것없는 소설 지망생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과거의 위상이란 때로는 훌륭한 스승이면서도 현재의 위상을 저평가하는 독이 된다. 과거를 향한 동경의 연쇄를 끊고 빠져나온 길. 완결된 과거의 환상에 젖어 머무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기로 택한 그에게는 이전과는 달라진 현재가 기다리고 있다.
파리의 낭만과 영광은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양한 흐름으로 이어져가고 있다. 약혼자와의 비틀린 관계를 정리한 길은 비 오는 파리 거리 한가운데서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이다. 현재는 언제나 미완의 상태에서 이어지는 선택의 연속이다. 어쩌면 완성된 길의 소설은 잘 풀리지 않아 뼈아픈 실패를 맛볼지도 모른다. 생각과 달리 파리에서의 생활은 편치 않을지도 모르고, 새로운 인연과는 또 다른 불화로 다툴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미학은 그 불확실성을 뚫고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변화와 새로움에 있다. 켜켜이 쌓아 올린 현재는 또다시 누군가가 그리워할 그 시절의 황금기로 완결될 테니.
결국 우리 모두가 각자 경험하지 않은 아름다운 과거에 대해 동경하고 또 열망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나의 현재도 누군가의 황금기일 수 있음을. 그러니 살아가는 현재를 있는 그대로 만끽하고 나아가자. <미드나잇 인 파리>는 과거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낭만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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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욱한 안갯속을 부유하는 눅진한 에로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구소산 정상에서 추락한 남성의 사망 사건을 담당한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인 '서래(탕웨이)'를 만난 후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중국인이라서 말이 서툴기는 하나,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하는 등 서래가 남편의 사망 소식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단순한 유가족이 아닌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서래. 그러나 해준은 사건 당일 서래의 알리바이를 파악하고, 잠복수사를 통해 그녀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그녀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잠정적으로 판단한 후 그녀에게 더욱 빠져든다. 반면에 해준의 관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서래는 그를 이용하는지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인지 좀처럼 속을 알려 주지 않는다. 이렇게 진심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두 남녀의 관계는 조금씩 불이 붙는다. 서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보통 직선적이고 직설적이라는 인상을 남기곤 했다. 그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인 복수심은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복수가 주제가 아니어도 다르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장편 작품인 <아가씨>는 그녀들의 사랑을 가슴에 날아와 꽂히듯 강렬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선사한 영화 <헤어질 결심>은 다르다.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만 봐도 그렇다. 제목만 놓고 보면 도통 헤어지겠다는 것이지, 헤어진 것인지, 헤어지는 중인 전지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할 수 없다. 영화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녹색인지 파란색인지 알 수 없는 드레스만큼이나, 바다에 핸드폰을 던지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사진만큼이나, 영화는 눅진하고 갑갑한 안갯속을 헤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불륜 멜로는 해준과 서래 사이의 에로스를 맞춰나가는 묘미로 가득하다.
<헤어질 결심>은 모호하다. 영화의 장르와 구조부터 그렇다. 얼핏 보기에는 스릴러 혹은 범죄 영화이나, 정작 서래의 신분이 유가족이 아닌 용의자로 바뀌는 순간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진한 멜로로 급변한다.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누아르 영화와 진한 멜로드라마 사이에서 줄을 타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해준과 서래의 대화는 취조이면서 동시에 소개팅처럼도 보인다. 서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해 정보를 알려주고, 서로에게 한 발짝씩 더 나아간다.
서래를 감시하는 해준의 시선도 그렇다. 그는 그녀가 남편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그녀를 감시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지켜보는 것은 범죄 용의점이 아니다. 그는 그녀가 슬퍼하거나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걱정하고, 홀로 드라마를 보다가 잠드는 상황을 동정하며, 그녀가 간병인으로서 할머니를 극진히 간병하는 모습에 빠져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관음적인 시선이고, 또 한편으로는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겨누는 듯 보이기도 한다. 서래 역시 범죄 용의자를 현장에서 체포하는 해준을 보면서 그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마음을 연다. 취조실에서 고급 초밥을 함께 나눠먹는 둘의 모습에서는 형사와 용의자 간의 관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의 다른 장치들도 둘의 관계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는다.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중국인인 서래는 기본적인 한국어만 구사하기에 일상어가 아닌 '유일한'과 같은 어휘는 '단일한'이라고 말하며, '붕괴'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는 단어로 의사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늘 중국어로 말하고, 그들은 진정으로 소통이 필요할 때 스마트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성 화자인 서래의 말이 번역기를 거치면 부자연스러운 남성의 목소리로 변환되듯, 그들의 소통도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취조실 안에서 카메라는 그들을 서로 다른 공간에 가둔다.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라 해도 꼭 한 명을 창문에 반사시키거나 모니터 안의 모습으로 등장시키면서 둘 사이의 연속성을 깬다. 이러한 어긋남은 서래가 범죄 혐의를 벗기 위해 해준을 이용하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지, 또 후자라면 그들의 사랑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두고 의심을 거듭하게 만든다.
이러한 모호함은 1막 이후 2막에서도 유지된다. 녹색과 파란색을 오가는 서래의 드레스와 도시를 감싼 안개는 여전히 사랑하는지, 이별한 건지, 단념한 건지 알 수 없는 두 남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정훈희의 노래 '안개'도 분위기를 고조한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라는 가사는 상대방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또 막상 벗어나자니 그렇게 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안개에 빗대고 있다. 덕분에 안개가 자욱한 도시에서 펼쳐지는 형사와 용의자이자 동시에 남자와 여자인 둘의 눅진한 이야기는 좀처럼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결심>이 멜로드라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헷갈리게 만들면서도 박찬욱 감독다운 방식으로 관객을 그들의 눅진한 멜로 속에 초대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 중심에는 에로스가 있다. 사실 폭력성 외에 박찬욱 감독을 대표하는 특징이라면 전작인 <아가씨>에서 보듯이 섹슈얼리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헤어질 결심>에서는 성애적 요소가 명시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상하게도 야하게 보이는 대목들은 적잖이 있다. 서래의 DNA를 채취하는 장면부터 그녀가 양치하고 흡연하고 손에 붙 밴드를 입으로 부는 장면들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계속해서 서래의 입에 주목한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면 입과 관련된 성은 성애의 첫 단계(구강기)를 의미한다. 이를 고려하면 해준과 서래가 에로스적 관계로 얽혀 들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에로스적 욕동은 다른 방식으로도 표출된다. 해준과 서래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에게 부족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모습에서도 입은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서래의 집을 감시하는 해준은 그녀가 좀처럼 밥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매 저녁을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는 그녀를 걱정하는 해준. 이에 그는 취조실에서 비싼 초밥을 사주고, 중국식 볶음밥을 요리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한다. 한편 해준은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서래를 감시할 때 그는 승용차 안에 누워 있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을 잔다. 또 관계가 진전되어가면서 서래는 해준의 수면을 도와주며, 해준이 잠들 때까지 자신과 호흡을 일치시키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이때 영화는 아이스크림과 초밥을 먹는 서래의 입,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두 사람의 입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러한 두 사람의 에로스적 관계는 왜 이들이 제각기 붕괴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에로스적 욕동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적 질서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할 수 있고, 개개인도 에로스를 탐닉하면 본인이 문명과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면에서 에로스적 욕동은 인간에게 내재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인 타나토스(죽음)적 욕동과 쌍을 이루기도 한다. 해준은 서래가 남편 사체 사진을 보겠다고 말할 때 동질감을 품고, 그래서 그녀에 대한 수사는 유리하게 진행된다. 이는 죽은 자(남편)의 시선으로 망자의 아내와 사랑에 빠질 이를 응시하는 카메라 시점이 독특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해준과 서래의 사랑이 그들을 의무로 규정된 사회적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창구이자, 동시에 깊어질수록 그들을 파괴하는 부메랑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해준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와 의무적으로 섹스를 하던 중 서래를 떠올린다. 애정 없는 관계에 갇혀 있는 자신을 구해낼 방법을 찾는 데 성공한다. 또 그녀의 도움을 받아 오랜 기간 추적하던 범인을 잡는 데 성공하면서 경찰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데도 성공한다. 한편 서래에게도 해준과의 사랑이 진전되는 것은 자신의 이니셜을 그녀에게 새겨놓을 정도로 소유욕이 강했던 남편과의 강압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그들의 욕구는 커질수록 그들에게 또 다른 압력을 강한다. 프시케를 곤경에 빠뜨리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화살에 찔려버린 에로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 서래를 사랑한 해준은 경찰로서 하면 안 될 실수를 범하고, 성실한 경찰인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범죄자인 그녀의 죄를 밝히면 안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서래도 마찬가지다. 해준이 자신을 포기하려 하자 오히려 더 사랑에 빠져버린 그녀는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그를 쫓을 정도로, 경찰인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헤어질 결심>은 내용이나 연출적 특징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영화이고, 그래서 여운이 짙은 작품이기도 하다. 서래의 범죄는 용서받지 못하며, 범죄와 얽힌 에로스적 관계는 해준과 서래 모두를 마지막까지 위협해 온다. 그러자 그들은 자의와 타의가 혼재된 채로 불륜이라는 범주 안에 머무르기를 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과 사회적 관계를 보호하며, 결국 이는 강렬한 신파로 향한다. 많은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이 사랑의 타이밍은 언제나 엇갈리기 마련이고, 상대를 소유하려 하기보다는 놓아줄 때 진정으로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신을 떠났고 이제 내가 당신을 사랑하려 하니 당신이 나를 떠나네”라는 대사에 온전히 담겨 있다.
심지어 <헤어질 결심>의 신파는 뻔하지만 식상하지 않다. 1부와 2부, 산과 바다로 나뉘는 영화의 구성 덕분이다. 영화는 두 개로 쪼개져서 해준의 서래에 대한 사랑과 서래의 해준에 대한 사랑을 각기 맛보게 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사랑의 엇갈림마저도 하나의 영화적 장치로 활용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앞부분에서는 서래의 살인사건을 미결로 놔두어야 하는 해준의 사랑을, 뒷부분에서는 자신의 살인 사건을 미결로 만들어야 하는 서래의 사랑을 풀어낸다. 두 개의 미결 사건은 하나의 영화가 되어 그들의 관계를, 엇갈리고 빗나간 사랑까지도 서사적 완결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대조적인 장소나 소재는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구소산 정상에서는 남편을 떠밀어 살해하지만 호미산에서는 해준을 뒤에서 안아주는 서래. 서래가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는 증거를 담은 핸드폰을 건네는 해준과 그 핸드폰 대신 본인을 바다에 던져 증거를 인멸하는 서래. 그래서 <헤어질 결심>의 신파는 오히려 매력적이다.
단지 138분이라는 적지 않은 러닝타임에서 기인한 느슨함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영화는 1막과 2막으로 나누어지는데, 사실 분기점에서 영화는 이미 절정에 다다르는 듯 느껴진다. 자신의 본심과 진실을 깨달은 해준이 '사랑한다'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그 어떤 말보다 격렬한 사랑 고백을 한 순간 영화는 거의 끝에 도달한 듯 보인다. 1막에 꽤나 긴 분량이 주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그 결과 산을 테마로 한 1막이 끝나고 바다를 테마로 하는 2막이 다시 시작될 때, 후일담처럼 느껴지는 2막에서 이야기가 다시 한번 절정에 이르기 전까지 영화의 템포는 다소 느슨해지는 인상이 남는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이 밝힌 대로, 그리고 전작인 <아가씨>처럼 1막을 '산', 2막을 '바다'라고 자막으로 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다만 영화 자체가 안개에 싸인 듯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짜인 모호한 멜로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아쉬움조차도 <헤어질 결심>의 질감과 감정선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듯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내로남불이라는 명제에 담긴 감정을 완벽에 가깝게 영화적으로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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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캐스팅에도 아쉬움을 남긴 원더랜드 / 눈과 귀가 즐거운 / 로맨틱 드라마 / 탕웨이 박보검 연기는 굿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원더랜드"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 전 재미난 쿠키영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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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2022년 1월 1주 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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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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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적이 출소한 사실을 알게 된 서부의 무법자(조너선 메이저스).
기다림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그가 흩어진 무리를 다시 모아 적(이드리스 엘바)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처절한 복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