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2025-05-05 21:12:45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 불러도 좋을까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를 보고
<콩트가 시작된다>라는 작품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이른 나이에 꿈을 이룬 자들의 이야기가 범람할 때, 이 작품은 누군가 보기에 ‘실패자’라고 불릴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당시 내 삶도 ‘실패자’의 삶에 가까웠다. 괜찮은 대학을 나와 주변인들이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소식이 왕왕 들릴 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그 일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실제로 목표에 도달할 뻔한 순간들이 쌓이며, ’조금만 더‘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그 시간에 이 작품을 만난 건 운명적인 일이었다.
<콩트가 시작된다>는 ’맥베스‘라는 이름으로 콩트 트리오 활동을 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다. 10년을 활동해도 무명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 ’딱 10년만 해보자‘라는 약속에 따라, 정해진 이별의 수순을 밟는 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콩트에 대한 사랑과 미련은 이들의 발목을 붙잡지만, 현실을 마주하며 콩트를 관둔다. 결국 이 작품은 예견된 ’실패‘의 서사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동시에 꿈과의 이별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는 것, 무언가를 충분히 사랑했다면 그 시간은 빛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작품이다.
2022년 매회 웃음과 눈물을 가져다 준 첫 감상의 기억이 생생하다. 작품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금세 두 번째 감상을 했던 기억 또한 남아있다. 이들의 시간은 작품 속에 완결되어 남았지만, 나의 시간은 계속 흐르기만 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실패‘와 ’방황‘의 고통들을 마주하며, 이 작품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작품을 다시 찾자 더이상 서비스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조차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작품과도 ‘이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마치 갓 서른이 된 나를 반기는 것처럼 다시 찾아왔다. 그 시절의 꿈과 이별 아닌 이별을 하고, 또다른 선택의 분기점에 놓인 나에게 다시 돌아온 <콩트가 시작된다>. 또다시 무심결에 재생 버튼을 눌렀고, 순식간에 재감상을 마쳤다.
감동은 여전했으나, 3년이 지난 지금의 감상은 조금은 달라졌다. 사랑이 만드는 미련으로 인한 갈등에도 맥베스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를,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슌타는 말한다. ”앞으로는 맥베스 졸업을 향하는 헤어짐이 슬프지만 찬란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예견된 이별에도 이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해산을 앞두고 팬이 된 나카하마의 모습도 조금은 달리보였다. 이전에도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는 나카하마의 대사였다. 전 직장에서 큰 상처를 받은 나카하마는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지금도 열심히 하는게 무서워서 대충 할 수 있는 건 대충 하고 있어요. 열심히 하다가 상처받는 게 무서워서 ... 그래도 쓸쓸해요.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억누르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쪽을 선택한 적도 없었으니까”. 작품의 가장 핵심 인물인 하루토는 나카하마가 먼저 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선배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쩌면 나카하마는 열정과 이별을 먼저 경험한 선배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의 작년이 겹쳐 보였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조금은 다른 길을 선택했고, 마냥 무력한 시간을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이 홀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하루토는 은연 중에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는 인물이다. 준페이처럼 물려받을 가게가 있는 것도, 슌타처럼 과거의 성공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 그는 끝없이 방황한다. 콩트로서 성공하지 못한 자신을 낮추기도 한다. 그러나 슌타는 콩트로 성공하지는 못했더라도, 우리를 응원해주는 이들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나카하마도 마찬가지다. 갓 팬이 되어 맥베스의 해산의 순간까지를 함께 한 나카하마는 그들의 콩트를 통해 다시금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 하루토는 나카하마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우리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힘을 낼 수 있어”. 이들은 절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온 마음 바쳐 사랑해본 사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으며, 이들은 맥베스로서의 활동은 졸업했으나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른이 된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어쩌면 포기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지 모른다. 맥베스처럼 미치도록 사랑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살아내며,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우습게도 주변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새로운 선택을 해보려 한다. 과거에 선택했던 꿈도 그렇다. 나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더 사랑하는 것을 찾았기에, 나는 포기가 아니라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 꿈이 어떤 결말에 이를지는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꿈을 꾸는 나의 삶은 반짝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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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TI_INFJ 영화인들 모아보기
내일 놀래? / infj : 생각해볼게 (놀 의향 / 생각해볼의향 없음)
웃으면서 거절 잘하는 인프제. 친한 지인들은 안다는 인프제의 영혼리스 리액션..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은 정말 따숩답니다(?) 친구들의 고민 들어주기 장인, 도어슬램 장인, 혼자있기 장인.
알다가도 모를 인프제! mbti infj라고 밝혀진 영화인들 같이 만나보아요
✅ 친구들에게 내 성격 알려주기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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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극장판으로 개봉예정인 <유미의 세포들>
4월 1주차 개봉예정작 시작합니다!
댓글부대
Troll Factory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한국 | 93분
감독: 김다희
출연: -
개봉: 2024.04.03.
배급: CJ CGV, 롯데컬처웍스(주)롯데시네마
시놉시스
“사랑이의 마음이 나를 웃음 짓게 했고 불안이의 걱정이 나를 나아가게 했어” 오랜 꿈이던 작가가 되기 위해 퇴사 후 공모전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유미. 완벽한 글쓰기 일정을 만드는 ‘스케줄 세포’부터 글감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작가 세포’와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린고비 세포’까지 모두가 유미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유미의 ‘불안 세포’를 점점 자라나게 하고 바비와의 흔들리는 관계로 흑화한 ‘사랑 세포’까지 세포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며 세포 마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는데…
CINE PICK!
네이버 웹툰과 드라마로 인기를 끈 ‘유미의 세포들’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합니다. 원작의 드라마판의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로커스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고, 당시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김다희 감독이 본작을 연출했습니다.
비키퍼
The Beekeeper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모험, SF | 스페인, 프랑스 | 115분
감독: 애덤 윈가드
출연: 댄 스티브슨스, 레베카 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개봉: 2024.03.27.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시놉시스
법 위에 있는 비밀 기관 '비키퍼' 그곳의 전설로 남은 탑티어 에이전트 '애덤 클레이'는 기관의 눈을 피해 자취를 감추고 양봉가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 보이스 피싱 조직으로부터 유일한 친구 '엘로이즈'를 잃게 된 그는 피의 복수를 위해 잠재웠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전 세계가 열광할 NEW 킬링 액션 유니버스가 시작된다!
CINE PICK!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각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퓨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2024년 작품으로 전세계 박스오피스 7주 연속 1위를 석권하며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비밀기관 비키퍼 요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설정으로 ‘인간병기’의 모습을 선사하며 짜릿한 액션을 보여준다 합니다.
오멘: 저주의 시작
The First Omen
ⓒ 네이버영화
개요: 공포 | 미국, 이탈리아 | 119분
감독: 아르카샤 스티븐슨
출연: 넬 타이거프리, 타우픽 바롬, 소냐 브라가, 랄프 이네슨, 빌 나이 등
개봉: 2024.04.03.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수녀가 되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된 ‘마거릿’(넬 타이거 프리).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그때, 믿음을 뒤흔드는 어둠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서서히 조여오는 끔찍한 공포가 마침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 6월 6일 6시 사탄의 아이가 태어나고, 믿음이 향하는 곳이 뒤바뀐다!
CINE PICK!
<오멘>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오멘: 저주의 시작>은 ‘666’이라는 숫자로 대표되는 악마의 자식, 데미안이 탄생한 과정을 다룰 예정이라고합니다. 미드 <왕좌의 게임>으로 주목을 받은 넬 타이거 프리와 영국의 명배우 빌 나이가 주연을 맡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키메라
LA CHIMERA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이탈리아 | 132분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
출연: 조쉬 오코너, 알바 로르와처, 이사벨라 로셀리니, 캐롤 두아르테
개봉: 2024.04.03.
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시놉시스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도굴꾼 이야기 도굴꾼 아르투에겐 땅속 유물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부의 꿈에 도취된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잃어버린 연인, 베니아미나를 찾아 헤맨다.
CINE PICK!
제 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행복한 라짜로> 영화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감독은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여성 감독으로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본인만의 창의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입니다. .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cin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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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집요하게 파헤친다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제목을 따라간다는 말을 입증하듯이, '파묘'는 집요하게 파헤친다. 중반 이후에 살짝 휘청이기도 했지만, 끝까지 완주하면서 관객들이 갈구했던 새로운 그림과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요소가 잘 버무려진 '험한 것'의 맛이 강력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잇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영화다. 어렸을 적 100년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본 감독의 기억에서 출발해 파묘, 동양 무속 신앙 소재가 가미됐고, 여기에 미스터리한 사건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조화롭게 엮였다.
장재현 감독의 연출작인 만큼, 오컬트 장르는 맞다. 전작들과 비교한다면, 복잡한 서사로 구성된 '사바하'보다는 비교적 이해 난이도가 쉽고 정통 오컬트 요소가 강했던 '검은 사제들'보다는 장르가 복합적이다. 중간에 위치해 있지만, '파묘' 역시 섬뜩한 기운을 내뿜는 건 매한가지다.
영화가 초반부 관객들의 몰입도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건 '믿음'의 힘이 컸다. 조상묘를 잘 쓰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믿음, 조상묘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후손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을 잘 이용하면서 땅과의 연관성을 기이하고 괴이하게 풀어낸다. 이장과 살풀이로 땅에 은 것들을 위로하는데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한다.
악지 중의 악지에 묻혀있던 조상님의 원혼의 모습이 슬쩍슬쩍 비침과 동시에 자신의 후손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은 확실히 소름 끼친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점프 스케어를 쓰지 않아도 장재현 감독이 심어준 장치들은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날뛰는 원혼을 막기 위해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당 화림(김고은), 화림의 제자 봉길(이도현)의 팀플레이도 꽤나 쫀쫀했다.
중반부에서 끝내도 될 법했지만, '파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더 파헤치러 나아간다. 친일파 조상님이 묻혔던 악지에 또 다른 '험한 것'이 숨겨진 것을 감지하면서 영화의 스토리는 가족사에서 한반도의 과거사로 확장한다.
그러면서 '파묘'는 오컬트에서 퇴마물로 변화하는데 이 지점에서 보는 이에 따라 재미의 호불호가 갈린다. 험한 것의 정체가 일본 귀신 '오니'로 밝혀지면서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한마디가 비로소 이어지는데, 이때부터 지나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달되면서 요동치던 심장이 안정화(?)되어간다. 괴기한 오니의 비주얼도 생각만큼 무섭지 않아 위압감이 떨어진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었지만, '파묘'의 단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빙의한 듯한 연기 차력쇼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대배우' 최민식은 40년 경력 풍수사 그 자체였다. 흙을 맛보고, 땅을 바라보며 숨 쉬는 것만으로도 스크린을 압도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장의사 영근 역을 맡은 유해진은 관객들의 시선에 가까운 캐릭터를 맡았고 동시에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특유의 존재감으로 환기시킨다.
매우 인상 깊었던 건 김고은이 분한 화림이다. 무당으로 변신해 범접불가의 포스를 뿜어내는가 하면, 신명 나는 대살굿 연기를 선보이며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또 보는 내내 '멋쁨'의 매력까지 뽐내니 새로운 인생캐릭터를 만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묘'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도현 또한 훌륭했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파격적인 비주얼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선배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연기력으로 한 축을 이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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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
느껴야만 하는 합당한 감정이 왠지 좀처럼 터져 나오지 않고 몸속 어딘가 꼭 박혀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어딘가 있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 난 느끼지 못해도 내 몸 어딘가는 그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는다.
전달받은 곳은 고장이 나 삐그덕거린다. 발광하기도 하고 일부로 날 괴롭힌다. 그렇게 화가 나고 아픔을 느끼면 마음이 놓인다.
살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반복한다.
아내를 만나고 장인어른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산다. 그러나 자기가 빠져 있는 일이 아니면 게으르고 무심하다.
물이 새는 냉장고에도, 그리고 아내에게 마저도.
아내를 무심히 여기고 놓치고 살던 그는 아내가 떠나고도 마치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슬프지가 않다. 그렇지만 왠지 삐그덕 거린다. 어딘가에서 위급상황을 외친다. 매미나방이 심장을 갉아먹었다.
문제점을 찾기 위해 분해를 시작했다. 모든 걸 부수고 나면 조금 나아졌다. 전과 다른 충동적인 삶을 산다. 파멸, 파괴 그것만이 흥미롭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주는 관심. 조금 무심할 수도 있지 바쁘고 힘들면 그럴 수 있지.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날 아직도 뜨겁게 사랑한다는 관심. 그게 없이는 사랑이 아닌 걸까?
"전에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해요. 어쩌면 보긴 봤는데 무심하게 본 거겠죠."
오랫동안 아프던 마음이 사소한 위로 한 마디에 행동 하나에 싹 낫는 일이 있다.
어떤 정신질환 약과 치료보다 강한 게 누군가 날 사랑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그게 무엇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미루고 놓친다. 꼭 잃고 나면 그제야 깨닫고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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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뛰어든 전쟁터
그라운드 제로로부터/From Ground Zero
가자의 영화감독들(Various Directors)/France, Jordan, Palestine, Qatar, United Arab
Emirates/2024/114min/DCP/Color/B&W/Multigenre Short-film Collection/12세 이상 관람가/Korean Premiere/'프론트라인' 섹션
시놉시스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는 팔레스타인 영화감독 스물두 명이 전쟁 중인 가자 지구에서 그들 각자의 삶을 포착한 이야기의 모음집이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픽션의 혼합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인간 정신의 굳건함을 강력하게 증언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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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었으면서 왜 카메라를 겁내냐.”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이 촬영한 영상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빵과 대지를 위하여〉(2019)에 나온 대사다. 이 영화에서,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은 지속적으로 현장을 기록하려는 활동가들의 카메라를 빼앗으려 시도하는데, 위 대사는 그 군인을 향한 인권 활동가의 일갈이다.
‘총’이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다른 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무기는 때때로 총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총은 물리적 상해를 입히는 데는 유용하지만 담론, 감정, 정동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는 별다른 힘을 갖지 못한다. 〈빵과 대지를 위하여〉, 그리고 그와 닮은 〈그라운드 제로로부터〉가 필사적인 투쟁의 일환일 수 있는 이유다. 이들은 총이 없는 자들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격렬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영화를 통해 전쟁에 개입한다.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추락시키고 짓밟는지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각자의 방식으로 이 ‘두 번째’ 전쟁에 참전해야만 한다. ‘총’으로 상징되는 첫 번째 전쟁에서 승산이 없는 팔레스타인은 담론, 감정, 정동의 전투에서만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는 스물두 명의 팔레스타인 영화감독이 가자 지구에서 포착한 것들을 다큐멘터리, 픽션, 애니메이션, 실험 영화 등의 형태로 만들 것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다. 화자/감독의 성별, 직업, 지위, 세대가 다양하다. 다양한 장르, 그리고 화자의 다양한 정체성은 가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일이 인간의 존엄에 어떤 중대한 위기를 촉발했는지를 보다 폭넓게 가늠하게 해준다. 각자의 감독이 포착한 가장 첨예한 문제들이 또 다른 감독의 문제의식과 만나 더 커다랗게 구체화되는 것이다.
영화에는 ‘그라운드 제로’, 즉 타격 원점에서 출발하는 푸티지 영상이 많다. ‘국제 뉴스’ 정도로 소비되는 피상적 전쟁 경험을 넘어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직접’ 목격하게 해주고 피억압자들이 느끼는 것들을 ‘함께’ 느끼게끔 해준다. 땔감이 없어 슬레이트로 불을 피우는 열혈 영화인은 보글보글 끓는 음식 아래에서 이글거리는 불빛을 보며 어떤 절망감에 휩싸일까? 설거지를 한 물로 아이를 씻기고, 그 물로 빨래를 한 후, 다시 화장실 변기용 물로 쓰는 사람은 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점점 새카매지는 물을 보며 어떤 굴욕감에 휘말릴까? 폭격 후 산산조각 날 경우를 대비해 아이의 팔다리에 큰 글씨로 이름을 써주는 부모가 느끼는 비참과 공포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 사랑하는 가족, 연인이 파묻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무력감은 그들 내면을 얼마나 깊은 곳에서부터 파괴할까? 끝없이 길게 늘어선 난민 캠프에서, 이 모든 인간들의 개별성과 삶의 활기는 얼마나 근본적으로 부정당하고 있는가? 이 모든 절망과 비참, 울분,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답변을 내놓는가?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황폐화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고발하는 〈빵과 대지를 위하여〉,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를 비롯해 작년에 개봉해 마찬가지로 러시아군에 의해 초토화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모습을 담아낸 〈마리우폴에서의 20일〉까지. 우리 시대의 반전 영화라 할 이들은 총 대신 카메라로 가장 첨예하고 현실에 착근한 방식으로 전쟁과 전쟁에서 출발하는 탄압을 멈출 것을 촉구한다. 두 번째 전쟁은 모두가 ‘참전’ 가능하다.
상영 스케줄
2025.05.01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17:00(상영코드: 160)
2025.05.05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10:00(상영코드: 519)
2025.05.09 CGV 전주고사 3관 14:00(상영코드: 906)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2025.04.30 ~ 05.09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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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기록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일까, <저항의 기록>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또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저항의 기록>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영화의 정의’에 관해 묻는 것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즉 문서화와 기록화에 중점을 둔 장르의 영화들은 여전히 국내에서 명확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기록할 것인가. 제작자의 관점이 개입된, 설득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실을 활용할 것인가. 그 질문 위에서 저마다의 필름을 찍어냈던 수많은 다큐멘터리 상영작의 감독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답을 내린다. <저항의 기록> 또한 그렇다.
저항의 기록
Resistance Reels
Cast
감독: 알레한드로 알바라도 호다르, 콘차 바르케로 아르테스
시놉시스
페르난도 루이스 베르가의 유일한 연출작 <로시오>(1980)는 민주주의 초창기 법적 검열의 대상이 된 후 많은 이들에게 저주를 받은 다큐멘터리다. 베르가는 그 이후 다른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고, 우리는 이 실현되지 못한 영화들이 저항의 몸짓으로서 현재에서 생명을 얻기를 꿈꾼다.
<저항의 기록>은 파편화에 그쳤을까
이 영화는 베르가 감독이 끝내지 못한, 기획 단계에서 머무르다 피지 못한 이야기들을 그 뒷선에 선 감독들이 피워내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가장 큰 의미 관계의 대립으로 보이는 것은 저항과 그 반대에 선 이들이다. 이 영화의 제목과도 같다. 베르가 감독이 만들었던 <로시오>를 비롯해 기획 단계에서 그쳐 버린 모든 이야기는 어쩌면 그 저항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 관한 기록을 이 영화가 신중히 담아 정리한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다큐멘터리의 정의,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관한 의문은 바로 <저항의 기록>이 가지는 특징에 있다. <저항의 기록>이 러닝타임 동안 보여주는 모습은 어쩌면 파편화에 가깝다. 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잡동사니처럼 흩어져 있던 서류철들을 정리함에 꽂아 정리한 것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관객들의 부정적인 평이 있었다.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고, 설득하는 힘이 부족하며 이야기가 파편화되어 있다”라는 것이 중론으로 보인다.
짚어볼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영화는 베르가 감독이 구상 단계에 그쳤던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후발주자 격인 감독들이 ‘구현’하는 과정이다. 다큐멘터리의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영화가 담아내야 할 이야기가 대단히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품이 가지는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베르가 감독의 일생도 짚어야 할 것이고, 탄압에 관한 베르가 감독의 시선이 담긴 영화를 구현해내고 그것을 보여주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제목을 <저항의 기록>이라고 정해둔 것은 아닐까. 일일이 영화 내에서 마치 ‘챕터’의 개념처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닐뿐더러 모든 이야기를 통해 관객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애초에 제작 과정에서 염두에 뒀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기록에 그 무게를 두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 영화가 지니는 의의 또한 작품의 제목에서 미루어볼 수 있지 않을까. 저항한 이들을 기록하는 게 중점이었던 것은 아닐까. 베르가 감독과 감독이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구현된 다큐멘터리 속에서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모두 저항한 이들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한 이들이다. 챕터들마다 등장하는 이슈들, 그리고 인터뷰이들이 저항했던 모든 것은 면담과 사실 기록으로 구체화된다. 베르가 감독이 해내지 못했겠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을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이 전한 평가 중 ‘번잡스러움’에 관한 지적은 그럴듯하다. 충분히 그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별개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아 전하는 것은 큰 부담이 따른다. 말 그대로 번잡스러워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독들은 그 부담을 짊어지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번잡스럽더라도, 베르가 감독이 하고자 했던 것을 이렇게나마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미처 정리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서류 정리함에 정갈하게 꽂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는 일종의 애도에 관한 개념으로 확장된다.
기록에서 애도까지의 확장
저항을 기록하는 것은 애도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저항의 역사는 뿌리 깊다. 민주화를 위한 항쟁과 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수차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쓰러졌다. 국가 권력이 행한 국가 폭력에 의해서다. 그렇다면 그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는 것은, 그 과거가 있었다는 그 사실을 영상화하는 것은 일종의 애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항의 기록>은 ‘애도하는 기록’인 셈이다.
이는 또한 베르가 감독을 애도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베르가가 일생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탄압받으며 구차한 삶을 살다 끝내 생을 마감한 것은 일종의 저항이었다. 그런 베르가의 미완성된 작품들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만으로,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저항이며 애도가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저항의 기록>은 가치를 지닌다. 저항하는 이들을 담아내고, 저항의 순간들을 기록해냈으며 그와 동시에 애도해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또 세계 각지에서 시간의 흐름에 묻혀 그 생명을 잃었던 저항의 순간들이 되살아나기에 이른다.
다큐멘터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단순히 사실들을 기록하고 나열하는 것은 진정으로 가치가 없는 것일까. 다큐멘터리는 모호한 존재다. 영화의 영역과 저널리즘의 영역까지 모두 아우르게 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다른 극영화처럼 영화로서 그 가치를 더 무겁게 지닌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저널리즘적 가치를 더욱 가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저널리즘은 그 사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데에 주목한다면, 그 가치가 가장 중시된다면 <저항의 기록>은 그 자체로 가치 있을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저항의 기록들은 이제 베르가의 손아귀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만났다. 호다르, 아르테스 감독은 그 기록들에 마침내 생명을 주었다. 그 생명이 관객들 앞에서, 어떤 힘을 가지게 될지는 관람하는 관객들의 손에 달렸다. 평가의 여지는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설득력인가, 사실에 관한 기록인가.
상영 일정
2025. 05. 01(목) CGV전주고사 7관 21:30
2025. 05. 04(일) CGV전주고사 7관 14:30
2025. 05. 06(화) CGV전주고사 7관 14:30
전주국제영화제는 4월 30일~5월 9일 동안 개최됩니다.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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