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2025-05-05 21:12:45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 불러도 좋을까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를 보고
<콩트가 시작된다>라는 작품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이른 나이에 꿈을 이룬 자들의 이야기가 범람할 때, 이 작품은 누군가 보기에 ‘실패자’라고 불릴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당시 내 삶도 ‘실패자’의 삶에 가까웠다. 괜찮은 대학을 나와 주변인들이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소식이 왕왕 들릴 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그 일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실제로 목표에 도달할 뻔한 순간들이 쌓이며, ’조금만 더‘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그 시간에 이 작품을 만난 건 운명적인 일이었다.
<콩트가 시작된다>는 ’맥베스‘라는 이름으로 콩트 트리오 활동을 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다. 10년을 활동해도 무명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 ’딱 10년만 해보자‘라는 약속에 따라, 정해진 이별의 수순을 밟는 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콩트에 대한 사랑과 미련은 이들의 발목을 붙잡지만, 현실을 마주하며 콩트를 관둔다. 결국 이 작품은 예견된 ’실패‘의 서사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동시에 꿈과의 이별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는 것, 무언가를 충분히 사랑했다면 그 시간은 빛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작품이다.
2022년 매회 웃음과 눈물을 가져다 준 첫 감상의 기억이 생생하다. 작품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금세 두 번째 감상을 했던 기억 또한 남아있다. 이들의 시간은 작품 속에 완결되어 남았지만, 나의 시간은 계속 흐르기만 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실패‘와 ’방황‘의 고통들을 마주하며, 이 작품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작품을 다시 찾자 더이상 서비스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조차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작품과도 ‘이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마치 갓 서른이 된 나를 반기는 것처럼 다시 찾아왔다. 그 시절의 꿈과 이별 아닌 이별을 하고, 또다른 선택의 분기점에 놓인 나에게 다시 돌아온 <콩트가 시작된다>. 또다시 무심결에 재생 버튼을 눌렀고, 순식간에 재감상을 마쳤다.
감동은 여전했으나, 3년이 지난 지금의 감상은 조금은 달라졌다. 사랑이 만드는 미련으로 인한 갈등에도 맥베스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를,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슌타는 말한다. ”앞으로는 맥베스 졸업을 향하는 헤어짐이 슬프지만 찬란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예견된 이별에도 이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해산을 앞두고 팬이 된 나카하마의 모습도 조금은 달리보였다. 이전에도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는 나카하마의 대사였다. 전 직장에서 큰 상처를 받은 나카하마는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지금도 열심히 하는게 무서워서 대충 할 수 있는 건 대충 하고 있어요. 열심히 하다가 상처받는 게 무서워서 ... 그래도 쓸쓸해요.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억누르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쪽을 선택한 적도 없었으니까”. 작품의 가장 핵심 인물인 하루토는 나카하마가 먼저 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선배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쩌면 나카하마는 열정과 이별을 먼저 경험한 선배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의 작년이 겹쳐 보였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조금은 다른 길을 선택했고, 마냥 무력한 시간을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이 홀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하루토는 은연 중에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는 인물이다. 준페이처럼 물려받을 가게가 있는 것도, 슌타처럼 과거의 성공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 그는 끝없이 방황한다. 콩트로서 성공하지 못한 자신을 낮추기도 한다. 그러나 슌타는 콩트로 성공하지는 못했더라도, 우리를 응원해주는 이들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나카하마도 마찬가지다. 갓 팬이 되어 맥베스의 해산의 순간까지를 함께 한 나카하마는 그들의 콩트를 통해 다시금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 하루토는 나카하마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우리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힘을 낼 수 있어”. 이들은 절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온 마음 바쳐 사랑해본 사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으며, 이들은 맥베스로서의 활동은 졸업했으나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른이 된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어쩌면 포기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지 모른다. 맥베스처럼 미치도록 사랑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살아내며,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우습게도 주변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새로운 선택을 해보려 한다. 과거에 선택했던 꿈도 그렇다. 나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더 사랑하는 것을 찾았기에, 나는 포기가 아니라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 꿈이 어떤 결말에 이를지는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꿈을 꾸는 나의 삶은 반짝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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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리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놉시스를 보고 재밌어보여서 보기 시작한 영화 <동네사람들>. 마동석의 통쾌한 액션과 추리를 기대했지만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영화 <동네사람들> 시놉시스
여고생이 사라졌지만 너무나 평온한 시골의 한적한 마을, 기간제 교사로 새로 부임 온 외지 출신 체육교사 기철은 동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다. 실종된 여고생의 유일한 친구 유진만이 친구가 납치된 거라 확신하여 사건을 쫓고, 의도치 않게 유진과 함께 사라진 소녀를 찾기 위해 나선 기철은 누군가에 의해 그녀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가 침묵하는 사라진 소녀,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그녀를 찾아야만 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동네사람들>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마동석표 액션
범죄도시, 신과함께 등 전작에서 봐왔던 마동석 배우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대부분 할리우드에서 볼 듯한 체격에 기술보다는 남다른 체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스타일의 액션을 많이 보였다. 그래서 마동석 배우가 이번 영화 <동네사람들> 속에서 다른 액션을 선보일 것이라고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남다른 피지컬로 헐크처럼 쓸어버리는 액션을 선보일 수 있는 남자 배우는 마동석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액션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영화 <동네사람들>의 연출이 잘못한 것 같다. 하나도 통쾌하지 않다. 액션을 선보이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지루할 수 있을까. 전작에서 그의 액션 역시 영화 <동네사람들>의 액션처럼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액션이었지만 엄청난 희열감과 통쾌함을 주었다. 하지만 영화 <동네사람들>은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은 액션 영화였다. 좋은 배우를 가져다가 나쁘게 써먹은 예로 영화 <동네사람들>이 한동안 거론되지 않을까 싶다.
범접할 수 없는 악인의 부재
어쩌면 마동석표 액션이 큰 통쾌함을 주지 못한 이유에는 악한 상대가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악인의 힘이 크면 클수록 마동석의 액션은 더욱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악역을 하는 캐릭터는 기존 범죄물의 악인들과 비교해봤을 때 유약한 면이 많이 부각됐다. 대표되는 악인이 미술선생님과 그 아버지다. 미술선생님 김지성은 몰카를 달아 여학생들을 훔쳐보고 여학생들을 유인해 집까지 끌어들이지만 그렇다고 살인까지 계획을 하진 않는다. 어쩌다 보니 여학생을 기절시켰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살인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미술선생님은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자라다보니 측은한 느낌마저 자아내다보니 악인이라는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액션의 통쾌함이 반감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주제가 무엇인가?
영화 <동네사람들>을 다 보고 나서 이 작품을 보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나? 하고 혼란스러웠다. 화끈한 범죄 오락 액션이었다면 보는 동안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고, 액션, 스릴러, 추리였다면 적어도 추리하는 데 머리를 쓰면서 그 에너지를 소비라도 했을텐데 이 작품은 약간 3초 스포식으로 머리 속에서 다음 내용을 넌지시 알아서 알려주다보니 흘러가는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회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즘 극심하고 있는 몰카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어서 영화의 방향이 모호한 상태에서 끝나다 보니 끝나고 얻은 깨달음은 ‘아! 끌리지 않는 영화는 시간이 남더라도 보지 말아야겠다’였다.
영화 <동네사람들>은 마동석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나쁘지 않지만 작품 자체는 추천하진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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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th BIFF 데일리] “여성 청소년의 다양한 선택을 보여주고 싶었다"
Director
YOO Jaein 유재인
Cast
Subin SIM 심수빈
Jiwon LEE 이지원
Sun JANG 장선
Program Note
보통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생 윤지는 담임선생 종성과 비밀 연애를 하다 임신까지 했다. 종성은 연락이 닿지 않고 며칠째 학교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종성의 아내 민영이 남편을 찾겠다고 학교로 들이닥치고 실종 신고까지 한 상태다. 아이를 원치 않던 종성과 다르게 출산해 자신에게도 가족이라는 게 생기길 바랐던 윤지는 이제 아이를 지우기만 하면, 종성이 돌아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불법적으로 약을 구하고, 동물병원을 찾고, 임신 중지를 시도한다. 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온한 여정에 룸메이트 경선이 동행한다. <지우러 가는 길>이 직면한 상황은 심각하고 과격하고 충격적일 만하다. 단지 세속의 세계에서 말하는 사안의 중차대함이나 이후 진행될 일련의 예측할 수 있는 파장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에 골몰할 마음이 없다는 게 이 영화의 진정한 야심이다. 비밀과 거짓말 사이로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윤지는 한층 당돌하게 욕망을 행동으로 하나씩 옮기고 보기 좋게 깨진다. 인물들은 자신이 믿었거나, 믿고 싶었거나, 믿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실은 얼마나 매정한가를 정확히 목격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순수하고 낭만적인 학원물이나 윤리극이 아니라 야멸찬 통속의 세계 앞에서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마구 흔들리는 격정과 격랑의 드라마이다. 이 난장 속에서도 유머라는 숨구멍, 우정과 동행이라는 출구를 잃지 않고 마침내 자기식의 결론에 이르는 소녀들이 있다 .그것을 감당하는 영화의 뚝심이 신통하다. (정지혜)
20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지우러 가는 길>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우러 가는 길>은 고등학생 윤지가 담임 선생과 비밀 연애를 하다 임신하게 된 후, 임신 중지를 시도하며 겪게 되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유재인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이다.
유재인 감독은 “청소년의 임신, 출산, 임신 중단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책임을 질 것인지 묻고 싶었다”며 “현실을 어둡고 진지하게 그리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주인공 윤지 역의 배우 심수빈은 “윤지의 마음에 공감을 많이 했다”고 말하며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며 사회 문제에 대해 알게 됐고 이 영화가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지의 룸메이트 경선 역의 배우 이지원은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경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며, “경선이 마냥 착한 마음으로 윤지의 여정에 동참했다기 보다는, 윤지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선의 입체적인 면모에 중점을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유재인 감독은 ‘지우러 가는 길’이라는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밝혔다. “임신 중지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각자가 가진 상처를 내려놓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각자 다양한 선택을 하는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관객과의 대화 도중 인상깊었던 반응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생각했던 것 보다 관객분들이 많이 웃어주셨다”며, “어두운 소재를 재미있게 표현한 것에는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진지한 상황에서도 엉뚱하고 재미있는 포인트에 관심을 가지는 성격이 드러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첫 장편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되어 이미 큰 성과를 이뤘다”며, “이번 작품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일들을 열린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며 소회를 밝혔다.
[상영 일정]
2025.09.19. 15:50 영화의 전당 하늘연 극장 (상영코드 079)
2025.09.20. 20:00 영화의 전당 소극장 (상영코드 172)
2025.09.24. 17: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 (상영코드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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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은 아니지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를 좀 더 깊게 감상하려면, 이 영화를 두 계보의 연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구파도의 필모그래피다. 그는 청춘의 질감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그가 각본을 쓴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는, 첫사랑의 경험을 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하 로코물) 특유의 장르적 문법과 결합한 영화다. 한편, B급 괴수물 〈몬몬몬 몬스터〉는 전혀 다른 느낌의 청춘물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로코물 주인공과는 정반대에 있는 ‘왕따’ 학생으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상처만 받은 청춘이다. 요컨대, 구파도는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혹은 가장 참혹한 순간을 (로코물이든 괴수물이든) 장르적으로 풀어내는 데 재능이 보여온 감독이다.
구파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계보는 장르 영화의 문법, 그중에서도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 보다 집중했을 때 드러난다.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프렝키 첸 감독의 〈나의 소녀시대〉, 〈장난스런 키스〉 등은 국내에서 꽤 관심을 받은 영화들이다.
대만 로코물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로코물이 더 이상 주류 장르가 아니라는 상황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로코물의 ‘위기’는 로코물의 주 소비층이었던 2030 여성이 페미니즘 의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성애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묘사하는 로코물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로코물이 소소한 화제는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만 로코물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주류가 될 순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소비층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로서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로코물의 시대적 위기와 이를 돌파해내는 방식은 영화 내부의 표현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여름날 우리〉를 비롯한 대만 로코물뿐만 아니라 한국의 로코물(〈피끓는 청춘〉, 〈너의 결혼식〉 등) 역시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로코물은 아니지만 화제를 모았던 대만 멜로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국의 〈건축학 개론〉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다루는 이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 과거인 이유는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 대만에서는 90년대 초반에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사람들의 관심은 ‘체제’, ‘정의’와 같은 거창한 것들에서 일상으로 옮겨왔다. 사랑은 일상의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하게끔 해주는 최상의 소재다. 즉, 퍽퍽한 삶을 영위하기 바빠 사랑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시대적 조건과 맞물려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소비함으로써, 과거의 아름다움을 척박한 현재로 연장시키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 영화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로 돌아와 보자. 이 영화는 귀신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두 계보(청춘 영화‧로코물)의 연장에 있다. 하지만 결이 조금 다른 지점도 있다. 이 영화는 대만 로코물의 문법을 ‘위반’한다. 기존 대만 로코물은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의 연출로 사랑을 판타지‘처럼’ 그려낸 데 반해,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함으로써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성취를 스스로 허물어버린다. 사람들이 대만 로코물에 기대하는 건 이제 더는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현실’에서 펼친다는 점인데, 영화의 무대를 아예 판타지로 바꿔버림으로써 대만 로코물 특유의 ‘비현실적 현실감’이 사라진 것이다. 사랑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있을 때는 성취 가능한 것처럼 보여 몰입할 수 있지만, 아예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면 오히려 공허한 현실을 환기해버리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컨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패착은 판타지‘같은’ 영화를 바라던 관객에게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했다는 데 있다. 저승세계의 시각적 구현과 저승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다 보니 대만 로코물의 기본이 훼손된 것이다. 이 영화는 ‘창조적 파괴’라기에는 저승세계의 비주얼과 역할이 어딘가 밋밋하고,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서도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싶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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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위의 또 다른 얼굴, <폭스 헌트>에서 만난 냉혹한 카리스마
지난주 개봉한 영화 <폭스 헌트(Fox Hunt)> 시사회에
씨네랩 소속 크리에이터로 참석했습니다.
폭스헌트는 중국의 실제 국제 범죄인 송환 작전 ‘폭스헌트’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양조위의 파격적인 변신과 파리를 무대로 한 국제 액션이 돋보인 영화입니다.
양조위 배우는 뉴진스 Cool With You 뮤비에 출연하여 화제가 된 바가 있는데요.
<중경삼림> , <화양연화> 등의 명작들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서는
해당 뮤비 속 양조위 배우가 더 익숙하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양조위의 새로운 면모를 보고 싶으신 분,
스케일 있는 범죄 액션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줄거리]
중국을 뒤흔든 초대형 금융사기 사건.
수만 명의 피해자, 수십억 위안의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이이첸 이 있습니다.
7년 동안 그는 해외에서 완벽한 신분을 만들어낸 채
파리의 화려한 무대 위에서 여전히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세련된 사업가이자 자선가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기와 조작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제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잡기 위해 꾸려진 국제 수사팀이 파리로 향하면서 판이 뒤집히기 시작합니다.
팀장 예준 은 “국경 너머 정의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신념 하나로 다이이첸의 뒤를 쫓고
이 도시는 곧 범죄자와 수사팀이 벌이는 거대한 체스판으로 변해갑니다.
화려한 파리의 거리, 호텔, 미술관까지
어디가 무대가 될지 알 수 없는 숨막히는 추격전.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다이이첸의 또 다른 비밀.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드디어 마주하게 됩니다.
정의가 승리할까, 아니면 탐욕이 또다시 국경을 넘어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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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3일, 전국 극장에서 <폭스 헌트>를 만나보세요
[감상포인트]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건 양조위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연기 변신이었습니다.
여기에 국제 스릴러다운 압도적인 스케일과, 실제 중국의 ‘폭스헌트 작전’에서 착안한 리얼리티가 더해져
제게 있어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인상 깊은 감상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색감과 조명, 시각적인 상징화]
영화 포토 및 무비클립을 보면 전체적으로 저채도의 딥 톤이 깔려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블루·그레이·브라운 계열의 어둡고 차분한 색조가
범죄 스릴러 장르에 맞게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하며
대신 현실적 긴장감을 강조합니다.
영화 전반의 비주얼 톤은 “국제 무대에서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과 동시에,
범죄자의 화려한 가면 뒤에 감춰진 어두운 진실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영화의 큰 매력 중 하나는 파리 로케이션의 힘입니다.
파리의 유명한 장소들이 등장하며 추격전과 액션 장면의 스케일을 배가시킵니다.
자연광과 인공광의 대비도 인상 깊었는데요.
낮의 자연광은 도망자 삶의 불안정함을, 네온사인과 같은 밤의 인공광은
도시 속 은폐와 범죄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개인적인 총평과 함께 영화 리뷰를 끝마치겠습니다.
영화의 리듬감이 템포가 늘어지는 부분도 있었으나, 양조위의 존재감이
그 모든 것을 상쇄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탐욕에 사로잡힌 범죄자와 끝까지 정의를 추구하는
수사팀의 대비는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이번 <폭스 헌트> 시사회는 단순히 영화 감상을 넘어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현장 분위기를 공유하고 작품의 깊이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추후 좋은 작품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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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를 알 수 없어 무척이나 갸륵했던 동물계의 추상적 방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다. 이런 고백은 미술이나 관련 전시회를 조금이라도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들어봄직한 말이겠지만 필자는 유독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멀리서 보았을 때와 가까이서 보았을 때의 느낌이 무척이나 다르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보았을 때엔 고흐 특유의 거칠고 당찬 붓질과 캔버스 위로 올려진 굳은 유화의 강직함이 상이한 주제와 의미를 가진 그림도 사납고 무서우리만큼 강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그림에서 스스로를 달리 아웃시켜 들여다보면 그 모든 야수성이 하나씩 퍼즐 조각처럼 맞춰져 어느새 본인이 마땅히 채워야 할 곳들로 이동해 하나의 모양을 이루고, 주제와 맞지 않을 것 같던 그 흔적들이 비로소 의미가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하게 한다. 고흐의 그림은 셰익스피어의 명언 '가까이서 보면 희극, 멀리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어쩌면 담아낸 것일까, 3d도 4d도 아닌 그저 평면의 무언가를 입체적으로 와닿게 해 감정마저 입체적으로 변모시킨다.
어떤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형태와 신체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한 근육의 운동을 너무 잘 담아내서 호평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이마저 극으로 향하게 되면 실사 영화 <라이온 킹>과 같은 평을 받긴 하지만 말이다. 또 어떤 영화는 구체화에서 벗어나 추상의 영역에 출사표를 던져 그 어려운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우린 그 모두를 애니메이션이라 칭하고, 그 둘 중 무엇이 더 애니메이션답다고 평할 수 없다. 둘은 방법적 차이지 수준 적 차이가 아니다.
영화 <플로우>가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즈니 픽사를 제치고 수상했다는 사실은 자본적으로나 규모의 측면에서나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관점, 추상과 구체의 관점에서도 이 수상의 의미를 더욱 치켜세우고 싶다. 드러내는 것만이 더 이상 장사가 아니다. 순전히 본인의 의도를 본인만의 그릇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영화이고 예술임을 아카데미 시상식이 전 세계를 상대로 공표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인간의 흔적만이 남은 지구의 어딘가, 물에 비친 고양이의 눈동자를 담아내며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엔 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사를 배우가 하는 말 따위를 포함한 개념이라 한다면 영화 속 주인공인 고양이와 강아지,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의 울음소리가 대사만을 구성할 뿐이다. 또 영화는 그 동물들을 표현할 적에 털 하나하나를 세밀히 표현하다 거나 동물 근육의 움직임을 면밀히 담아내지 않는다. 주인공 동물들의 묘사마저도 타 대형 영화사, 애니메이션 사들에 비해선 디테일 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 점이 영화 관람 자체에 문제가 되었거나 불편함으로 남았었다면 본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었겠지만 전혀 그런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디테일 하지 않고, 세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 배경이나 전반적인 동물들의 움직임, 각 동물별 본능적 움직임에서 나오는 귀여움을 즐길 수 있었고, 특히 고양이의 눈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왜 주인공 동물들 중 하필 고양이가 주연을 맡고 있고, 이야기는 왜 고양이의 모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영화는 어째서 관객의 눈을 고양이의 눈으로 집중시킨 것일까.
영화 속 동물들, 그 중 고양이는 물을 통해 비치는 자신과 하늘을 자주 바라본다. 이는 영화가 시작한 직후부터 출발해 영화의 막이 내려질 때까지 꽤 빈번히 등장하는 샷이다. 그러다 물에 빠지기도 하고, 멍하다 새에 잡히기도 하며,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비치는 거. 신기할 따름일까, 고양이뿐만 아니라 반짝거리는 것들을 수집하는 컬렉터 여우원숭이도 고조선의 청동거울처럼 생긴 인간의 거울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행동의 이유를 알 순 없다. 대사가 존재하지도 않고, 그들의 행동을 해설해 주는 보이스오버마저 등장하지 않으며 오직 들려오는 건 동물들의 울음소리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집중되는 건 그들의 행동과 눈동자 그리고 고양이의 존재이다.
영화 속 고양이는 다소 겁이 많고, 굉장히 고상한 고양이처럼 보인다. 현실의 많은 길거리 고양이들이나 주인 고양이들도 비슷한 특성을 띄겠지만 영화 속 고양이는 유독 그런 것 같다. 동물들의 방주에 삼삼오오 예측하지 못했던 불청객들이 찾아올 때마다 항상 고양이는 몸을 곤두세워 뒤집은 U자형으로 그들을 경계한다. 또 새로운 일들을 맞이할 때마다, 물에 빠질 때마다 그 크고 귀여운 고양이의 동공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영화는 설득의 예술이고, 별 다른 대사가 없는 영화일 수록 특별한 장치나 요소로서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데, 영화 <플로우>는 고양이의 심정을 움직임과 눈동자를 통해 설득했고, 이는 필자의 입장에선 성공이었다고 판단된다.
영화 속 세상마저 추상적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고양이와 그 친구들이 타고 있는 배 도한 원초적으로 인간의 것임을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어째서인지 인간 문명이 모두 멸망했고, 그 멸망으로 인해 어떠한 세계로 변했는지 등의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해일이 일어나 숲이 모두 가라앉는 사건과 몇 일 사이에 해수면이 모두 가라앉게 된 그 이유마저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그 점이 관객의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해 저절로 생각하게 한다. 영화 <플로우>를 보고 있으면 '저건 어쩌다 저랬을까?' '저 집은 왜 존재하고, 집 안 속 고양이 그림들이 가득한데, 주인공 고양이는 그 집의 고양이였던 것일까?'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영화는 설득의 예술이면서 동시에 소통의 예술이다. 일방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만을 보따리 채 싸 들고 관객에게 하나씩 던져내는 게 아니라 관객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이미 제작된 영화를 마치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몰입시키는 것이 영화의 참맛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 있어 영화 <플로우>는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라 생각한다.
그럼 영화는 어째서 인간의 세계를 보여준 것일까. 인간의 것을 전혀 보여주지 않아도 이야기의 흐름이 결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인간의 흔적과 그들이 남기고 간 유적들이 단순히 동물들의 항해를 더욱 빛내기 위한 배경으로만 삼지 않았다 생각한다. 어쩌면 영화 속 세계엔 해수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이 꽤 빈번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 해일의 전조 증상이었던 순록의 무리 이동이 영화의 종반부에 반복된다. 과연 그런 세상이었다면 인간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영화 속 동물들이 모두 하나같이 서로를 배려하고, 위험에 처한 서로를 도우려 하며, 다른 종이더라도 물심양면으로 구조했던 건 아니다. 동물들의 본능이 작용해서인지, 서로를 돕다가도 본능에 이끌려 행동하는 강아지 무리를 볼 수 있고, 소유욕이 강한 여우원숭이는 본인의 소유물이 바다에 떠내려가자 뱀잡이수리와 싸우려 했다. 그렇지만 놀라운 건 우리 관객이 끝까지 따라갔던 그 친구들은 원했든, 원치 않았든 벌어진 그 모험 속에서 종이 다른 우정의 싹을 틔워내 함께 살아남으려 애썼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초반부와 종반부가 대칭을 이루게 되는 물에 비치는 동물들의 모습 샷엔 고양이 한 마리에서 고양이와 그 친구들로 변할 수 있었다. 영화는 동물들의 우정 연대기를 비추면서 지속해서 인간의 흔적들을 함께 담아내는데 이 또한 관객이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 여지를 남겨둔다. 인간 또한 하나의 동물에 불과한데, 그 동물은 어쩌다 사라지게 되었고,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능은 무엇이길래 개, 고양이, 원숭이 살아남는 세계에서 사라지게 된 것일까 하는 질문 등을 자신에게 던지게 한다.
영화 속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아무래도 친구 무리 중 뱀잡이수리가 하늘로 떠나게 되는 장면이 아닐까. 본 장면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에 대한 표현법 때문이다. 현재 살아있는 우리는 각자의 죽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죽음에 이른 순간 무엇이 보이는지 살아있기에 알 방법이 없다. 영화는 한 동물의 죽음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또 다른 동물의 시선을 빌려 담아냈고, 이 점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이다. 사실 영화 <플로우>의 카메라 시선은 굉장히 다각적이지만 하나의 시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그건 바로 고양이의 시선이며 프레임 속 비치는 세상은 모두 고양이의 시선에서 비친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그 '비침'이라는 관념을 꾸준히 상기시키기 위해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 장면을 계속해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날개를 다친 새는 도저히 올라오기 힘들어 보이는 수상한 둔덕 어딘가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향했고, 그곳엔 친구 뱀잡이수리가 있었다. 내리던 빗방울이 영화 <나우유씨미2> 속 장면처럼 하늘로 올라갔고 고양이와 뱀잡이수리까지 함께 몸이 공중으로 뛰어졌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빛이 어두운 하늘을 감쌌고, 뱀잡이수리는 함께 떠올려진 고양이를 발로 밀어 다시 땅으로 착지하게 했다. 고양이를 지키려다 동족들에게 꺾여버린 그의 날개는 상처를 모르는 듯 빛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시전했고, 항상 엉거주춤하게 하늘을 날던 뱀잡이수리는 마치 하늘을 덮듯 멋지게 날아가 버린다. 이 장면이 과연 인간의 시선이었을 경우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영화는 관객의 상상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해당 영화 속 주인공들의 상상까지 빌려 영화를 풍부하게 한다.
재밌는 건 이 모든 점들이 영화를 재미나게 관람한 필자의 상상이라는 점이다. 감독의 이야기나 인터뷰를 아직 보지 못한 필자의 상상력이 이토록 풍부할 수 있었던 데엔 영화가 그만큼 여지를 많이 남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불친절하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영화 <플로우>는 추상적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갸륵하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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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 미씽 발렌타인 / 消失的情人節, 2020
피아노만으로 소개되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청설2009>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넷플릭스"에 공개된 <나의 Ex2018>는 "대만 영화"가 무엇을 잘하는지를 보여준 영화들입니다.
마치, 버블티에 담아있는 "타피오카 펄"처럼 관객들의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데, "대만 로코"만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국내 성적을 기대했는데, 영화는 첫 주 박스오피스 6위에 그쳤으며 누적 관객은 5,588명(01.19 기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들려오는 평가가 좋았음에도 그게 성적으로 반영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이런 이유에는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이 "메가박스"만에서 상영하는 제한적인 부분이나 유달리, 신작들이 많았다는 점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해 들은 것들이며, 직접 느낀 것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직접 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빠르기에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과연, 영화는 들려온 것처럼 재밌었는지?' -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는 모든 것이 빠른 여자, "샤오치"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와 "밸런타인데이"에 데이트를 한다는 것에 기대하지만, 정작 "밸런타인데이"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신발에는 모래가 가득하며 피부는 어딜 갔는지 빨갛게 익어버렸고요.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난 후, 매일 우체국에 편지를 보내는 남자 "타이"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샤오치"는 잃어버린 밸런타인데이에 "타이"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 의심하는데...
1.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보이는 이야기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는 119분으로 많은 분량을 가진 영화로 관람 전부터 부담스러울 겁니다.
웃고 즐기자는 분량과는 거리가 꽤 되니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할지 또 그것을 잘 알아먹을지도 걱정이 들 겁니다.
하지만 <마이 미씽 발렌타인>는 이런 예상과는 다르게, 가벼우면서도 즐거운 느낌으로 전개되는데요.
무엇보다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를 "샤오치"와 "타이"라는 두 캐릭터로 나눠 각각 전개하며, "샤오치"의 이야기가 앞서 언급한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하루를 바라보는 두 캐릭터의 차이
먼저, "샤오치"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앞서 언급하듯이 재밌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그녀가 "밸런타인데이"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과정 없이 통보되기 때문인데요.
<부부의 품격>이나 <펜트하우스>와 같이 "막장"을 다룬 작품들이 이를 활용하는 이유에는 "막장"에는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정 이상의 설명이 쌓이면, 이를 해소하듯이 터지는 것이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막장"은 이런 과정보다 결과부터 발표하고 과정을 쌓아올리는데요.
그런 점에서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샤오치"이야기는 그녀가 "밸런타인데이"가 사라진 이후 과정이 주되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외에도 깨방정을 떠는 그녀의 모습도 가벼운 분위기의 해당 이야기에 어울리기까지 하니 더더욱 첫인상이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2. 똑같은 구성?, 아니 조금 달라요.
그렇다면,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후반전 "타이"이야기는 어떤 느낌일까요?
앞서 "샤오치"와 비슷한 구성이나 후자에 속한 만큼 앞선 이야기를 활용하며, 첫 관람인데도 N회차하는 느낌을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앞서 바라본 "샤오치"의 이야기도 새삼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앞에서 소개하듯이 "샤오치"는 "타이"가 아닌 "류원썬"이라는 남자와 연애를 하는데, 앞선 이야기에서는 이 캐릭터는 완벽한 남자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타이"의 이야기에서는 이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는데요.
이로 인해, 인상이 달라지니 이를 막으려는 "타이"의 모습은 "샤오치"의 깨방정과 다르지만 웃음을 만들어내는 똑같은 결과로 치닫습니다.
후반전, 인저리 타임도 추가해서...
이렇게 본다면, 영화는 다른 캐릭터로 이야기를 북붙한 것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나 "타이"의 이야기에는 "샤오치"가 궁금했던 잃어버린 밸런타인데이의 질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이를 자신만의 비유들을 섞어낸 소재들과 함께 소개하여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오는데요.
그러면서, 내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왔던 <마이 미씽 발렌타인>이 처음으로 분위기가 촥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영화는 "사진"과 "편지"로 "타이"가 "샤오치"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3. 시간을 맞춰나가는 노력!
포스터에서도 있듯이 "샤오치"는 뭐든지 빠른 여자, "타이"는 뭐든지 느린 남자로 서로가 맞질 않습니다.
여기에 "샤오치"에게는 썸남까지 생겼으니 "타이"로서는 더 이상 그녀와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타이"가 선택한 "사진"과 "편지"는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연인에게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의 발걸음이 맞지 않아 누구는 앞서고 뒤처지는 모습이고 춤으로는 서로의 발을 밟아 고통만 더하니 정상적인 관계로 볼 수 없는데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타이"가 선택한 "사진"과 "편지"는 과거에 있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과는 다르게 정적이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로 다른 보폭을 가진 두 캐릭터의 간격은 더 벌어지고 말테니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타이"와 "샤오치"가 서로 시간이 맞지 않겠지만 "사진"과 "편지"는 시간에 구애받는 물건들입니다.
이를 기록하고, 바라봄으로써 두 캐릭터는 비로소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니까요.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단연, 가장 큰 쾌감은 서로 달랐던 두 캐릭터의 시간이 차차 맞아들어가는 점입니다.
4. 결국, 당할 수밖에 없는 엔딩
그도 그럴 것이 두 캐릭터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춰진 것이 보입니다.
앞에서도 소개하듯이 "샤오치"는 모든 것이 빠른 여자로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나 영화를 보면서 웃는 것으로 일반인에 비해 빠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우편물을 보내는 과정에서 "타이"보다 빠르게 잔돈을 거스르는 것으로 시간이 맞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타이"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고요.
서로의 시간을 맞추며...
역시 앞에서 소개하듯이 모든 것이 느린 "타이"는 남들보다 느린 반응들과 버스를 운전하는 것으로 자기가 주도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이들은 각자의 이야기에 자신에게 익숙한 시간을 보여줄 뿐 "샤오치"는 "타이", "타이"는 "샤오치"에게 맞춰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엔딩에 비로소, 이들의 시간이 맞는 장면이야말로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에 보기 꺼려 하는 관객들은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영화가 "시간"을 다루었기에 그럴듯한 이론을 바탕에 촘촘한 설정까지 있어 어려운 영화로 인식될 테니까요.
하지만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본 관객들은 그런 딱딱한 영화가 아님을 알 겁니다.
그렇기에 두 주인공의 시간대가 맞물린다는 마지막 장면도 옳고 그르냐를 떠나 살짝, 눈감아줘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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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결산 - 리뷰는 못 했지만 추천하는 독립영화 7작품 l 상 1편 ( #로그인벨지움 #빛과철 #혼자사는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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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따뜻한 연말 보내고 계신가요!
또 1년이 이렇게 지나가네요...! 어느덧 유튜브를 시작한지도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올해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죠!
시기가 많이 아쉽긴 하지만, 더 많은 작품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이번 연말결산 영상에서는 제가 리뷰는 못했지만 극장에서 보고 추천드리는 작품들을 준비해보았는데요!
영상이 조금 길어서 3작품, 4작품 나누어서 올릴게요 :)
그럼 내일도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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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_#3] 철학과 영화 사이 (with. 정태완 감독)
🎙️ Episode 3. 촬영감독 정태완 00:00 자기소개 06:27 철학과 이야기 14:59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 18:18 [날 좋은 날]이야기 19:47 홍상수 감독을 오마주한 [날 좋은 날] 23:20 다시 [날 좋은 날] 이야기 28:13 ‘공감’에 관한 이야기 34:11 영화를 계속해서 연출하지 못한 이유 36:50 종교에 관하여 41:59 촬영 감독으로서의 정태완 43:11 [풀 메탈 브레인] 이야기 & XR 이야기1 45:22 [풀 메탈 브레인]의 연출적인 이야기 47:23 한예종과 XR 이야기2 53:09 앞으로 계획 57:18 마무리 & 쑥스러움에 관한 이야기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는 단편 영화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 정태완 📍instagram @xowanc 📍사이트 https://j30n9.myportfolio.com/work ◾️ 따옴표 필름 📍 instagram @ddaompyo.film 📍 YouTube @ddaompyofilm 📍 ddaompyofil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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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야 한 편의 대서사시가 될 모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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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괴물> 메인 예고편
"괴물이거든요"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제 76회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사카모토 유지 각본, ?故사카모토 류이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