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01-26 11:01:31
나의 올드 오크 | 노장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당부
<나의 올드 오크>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정부에서 허가한 시리아 난민들이 영국 북동쪽 폐광촌에 집단 이주를 한다. 마을 주민들은 난민을 전혀 환영하지 않는다. 탄광이 문을 닫은 후 경제 침체가 이어지고, 빈 집이 늘어나고, 부동산이 헐값에 팔려 나가며 분위기가 어둡기 때문. 자연히 난민과 주민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데이브 터너)는 사진작가를 꿈꾸는 '야라'(에블라 마리)를 만난다. TJ는 야라의 고장 난 카메라를 고쳐주고, 야라는 TJ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우정을 싹틔우기 시작한다. 그 사이 '올드 오크’ 앞 길거리에는 어느덧 훈풍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켄 로치 그 자체인 은퇴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켄 로치 감독.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그가 거장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성과부터 압도적이다. 칸 영화제에만 14회 초청받았고, 황금종려상 2번과 심사위원상 3번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 철학은 호불호가 나뉘기도 한다. 미학적으로 독특하고 새로운 연출을 선보이기보다는 정치적 이슈에 지나치게 천착한다는 지적도 때때로 받기 때문.
1997년 '키노' 기사만 봐도 그의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싸우는 작가주의에 대하여' 인터뷰에서 그는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 중 하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과거에 대한 민중의 생각을 조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은퇴작 <나의 올드 오크>에서도 켄 로치는 자기 신념을 또 한 번 스크린 위에 그려냈다. 잉글랜드 북부 폐광촌 주민의 아픔과 이민 및 난민 문제를 함께 다룬다. 실패한 과거를 반추해 새 미래를 만들자고 손을 내민다. 켄 로치의 이 제안은 거부하기 어렵다. 영화의 휴머니즘이 다소 나이브하고, 감상적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거. 러닝타임 113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마법을 켄 로치가 부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야라의 사진이 달라진 이유
<나의 올드 오크>는 여러 장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전쟁을 피해 시리아에서 잉글랜드까지 건너온 소녀 '야라'. 사진작가를 꿈꾸는 야라는 잉글랜드의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프닝 시퀀스는 그녀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고, 배우들의 대사와 주변 소음을 사진에 더했다. 카메라에 담긴 거리와 사람은 적대적이고, 배타적이다. 왜 허락 없이 사진을 찍냐고 항의하며 그녀의 카메라를 빼앗아 렌즈를 부술 정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진은 정반대다. 동네 주민들은 한 데 모여 그간 야라가 찍은 사진을 같이 감상한다.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도 판이하다. 야라를 경계하던 눈길은 없다. 체육대회에서도, 미용실에서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잡고, 미소 짓는다. 그녀의 사진을 대하는 태도도 따뜻하고 친절하다. 멋진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고 말할 정도다. 야라는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나 다름없다.
이런 변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리는 없는 법. 영화 시작과 끝의 분위기가 상이한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그 까닭을 설명하는 일은 TJ의 몫이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왜 어두웠는지, 왜 길거리에서 적대적이었는지, 또 그들의 마음이 바뀐 계기는 뭔지... TJ는 목격자, 증인, 당사자로서 그들의 입장을 담담히 대변한다. 그 중심에는 영국 북부의 가슴 아픈 현대사가 위치한다.
아픈 과거가 낳은 현재의 갈등
야라가 도착한 마을은 음울하다. 탄광이 폐쇄된 이후로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는 마을. 마을 집값은 나날이 떨어지고, 외국계 기업이 부동산을 싹쓸이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커진다. 시리아 난민에게는 정착을 도와줄 기부금과 물품이 전달되지만, 가난한 마을 어린이들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없다. 주민들은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TJ의 술집 '올드 오크'에서 회포를 풀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나 난민이 점점 늘어나자 올드 오크도 선택의 기로에 선다. TJ의 친구 찰리는 술집 안쪽 빈 공간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과거 광부들의 파업을 기록한 사진만 걸린 채 안 쓰이고 있으니, 주민들이 난민들을 성토하고 대책을 세우는 공론장으로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한편 TJ와 새로 친구가 도니 야라도 같은 공간을 쓸 수 있냐고 물어온다. 주민과 난민 가리지 않고 함께 밥을 먹으며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면서.
TJ는 누구의 편도 쉽게 들지 못한다. 야라와 난민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찰리와 주민들의 아픈 과거를 마음속 깊이 공유하기 때문. 한 때 삶의 의욕을 잃었던 TJ는 우연히 자기 목숨을 구해준 강아지에게 '마라(Marra)'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Marra'는 광부들이 사용하던,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의 깊은 관계를 뜻하는 단어다. 이처럼 강아지 이름만 봐도 TJ가 광부였던 아버지와 마을의 과거를 못 떠나보냈음을 알 수 있다.
증오를 빌려 희망을 전하다
하지만 마라의 죽음을 목격한 후에 TJ는 달라진다. 마라는 시리아 난민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에게 공격당해 죽었다. 마라를 잃어 슬픔에 빠진 그의 옆에는 야라와 그녀의 어머니가 있다. 그들은 J를 진심으로 위로한다. 야라는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아끼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을 공유한다. TJ가 야라의 카메라를 고쳐주며 그녀의 꿈을 응원했듯이, 야라도 TJ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에 힘입어 TJ는 술집 안쪽 공간을 주민과 난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곳에서 과거 광부들이 파업할 때처럼 무료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추억을 쌓는다. 그렇게 시리아 난민들은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야라의 카메라를 고쳐준 TJ의 선의와 올드 오크의 공간을 개방하자던 야라의 제안이 바꾼 풍경이다. 이처럼 <나의 올드 오크>는 사회적 이슈를 환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솟아나는 인간애에 주목한다.
<나의 올드 오크>가 난민 증오의 양상을 생생히 표현하기에 TJ의 변화와 선택은 더 감동적이다. 영화는 잉글랜드 북부 사람들의 설움이 증오로 이어지는 과정을 비춘다. 찰리가 대표적이다. 찰리는 TJ의 절친이다. 그의 약혼식에서 TJ가 축하 연설을 했을 정도다. 그랬던 그가 올드 오크를 테러한다. 자신과 지역 주민이 아닌 난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이에 더해 온라인상에서도 TJ에 대한 비난이 이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TJ의 일침은 유달리 귀에 잘 꽂힌다. 그는 찰리에게 말한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 약자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이 대사에서는 아픔을 증오로 배설하는 대신, 포용과 배려로 승화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켄 로치는 마지막까지 시민 공동체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뜻하거나 감상적이거나
다만 비판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소재의 심각성에 비해 영화의 태도가 다소 편의적인 인상이 남기 때문. <나의 올드 오크>는 일견 중립적이다. 지역 주민들의 소외감을 먼저 보여준 뒤, 그 반대편에서 난민에 대한 경계심과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과정을 대조한다.
그런데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은 다소 감상적이다. 극 중 주민들의 반발은 광산이 닫힌 이후 마을과 주민을 도외시한 영국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한 데 뭉쳐서 튀어나오는 분노에 가깝다. 그런데 영화는 그들의 절규를 전혀 다른 윤리적, 도덕적 차원으로 끌어들이며 논점을 흐리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영화는 야라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에 그녀를 위로하는 사람들과 찰리와 뜻을 같이하는 주민을 대조한다. 이에 더해 영국과 유럽 내에서 발생하는 난민 범죄는 일절 보여주지 않는 반면, 찰리와 친구들의 범죄는 자세히 묘사한다. 자연히 전자는 선, 후자는 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주민들의 분노 역시 막연한 증오와 혐오로 치환돼 인식되기 쉽다.
즉, <나의 올드 오크>는 사회적 갈등의 본질을 더 치열하게 추적하는 대신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한다. 또 감정적으로 원만하게, 봉합하는 데서 그친다. 그렇기에 인본주의적이고 따뜻한 결말도 시각에 따라서는 교묘하게 논의의 장을 뒤트는 시도처럼 보일 수 있다.
지극히 품격 있는 퇴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 로치의 비범한 필모그래피의 끝을 장식하기에는 이보다 적절한 마무리를 떠올리기 어렵기도 하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명성에 비해 아쉬운 지점도 존재하지만, 작품 전반에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기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기 때문.
특히 "당신이 민중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들의 현재를 재조정할 수 있고 현재를 조정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끝까지 견지하는 노장의 용기와 미덕을 마지막으로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기회이기에 <나의 올드 오크>는 분명 특별하다.
Acceptable 무난함
거장의 따뜻한 희망과 노장의 마지막 바람이 부디 헛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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