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4-01-28 23:23:27
실화 못지않게 울림 전하는 추적극
영화 '시민덕희' 리뷰
실화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지만, 이에 못지않게 울림과 희망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이것이 '시민덕희'가 극장을 찾아온 관객들을 사로잡는 방식이다.
영화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 덕희(라미란)에게 사기 친 조직원 '손대리' 재민(공명)의 구조 요청이 오면서 벌어지는 추적극이다. 실제 지난 2016년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총책을 잡는 데 큰 공을 세운 화성 거주 시민 김성자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했다.
보이스피싱에게 당한 피해자가 총책을 잡기 위해 중국으로 직접 건너간다는 로그라은 영화 '보이스'와 비슷하다. '보이스'에 비해 허를 찌르는 두뇌플레이나 계획, 화려한 액션은 존재하지 않고, 감탄을 자아내는 반전도 없다.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가 간간이 나오긴 하나, 코미디물도 아니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 예상 가능한 스토리이긴 하나, 모두가 기대하는 사이다가 후반부에 적절하게 터져 나와 속이 뻥 뚫린다. 또한 보이스피싱 피해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희망과 울림을 선물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원 재민과 피해자인 덕희가 공조하는 과정이 꽤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재민이 각성하고 덕희와 본격 공조를 펼치는 부분부터 이야기에 탄력이 붙는다. 물론 그까지 도달하는 동안 살짝 지루한 감이 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은 믿고 보는 배우들의 합이 좋다는 것이다. 먼저 메인롤을 맡은 라미란은 직장을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소시민이자 동시에 사기당한 돈을 찾기 위해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으려고 발 벗고 나서는 덕희의 모습을 강점인 생활 연기로 살리며 존재감을 자랑했다.
라미란을 중심으로 염혜란, 장윤주, 안은진 등 생활 연기에 일가견 있는 배우들이 한 팀을 이뤄 케미를 발산하니 볼 맛이 났다. 특히 염혜란은 덕희를 돕는 조력자이자 직장 동료인 봉림 역을 맡으면서 다시 한번 착붙 연기력을 펼치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외 사기 쳤지만 짠내 나고 구해주고 싶은 공명의 짠함과 확신의 빌런으로 섬뜩함을 드러낸 이무생의 활약도 인상 깊었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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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짱 두둑한 개미들이 코끼리에게 덤비다
게임스탑으로 따라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어딘가에 사는 애널리스트 키스 길(폴 다노)다. 그냥 직장 다니는 소시민인 키스 길.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 큰돈 만지기는 글렀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희망을 놓지 않는 키스 길. 부인(쉐일린 우들리) 캐럴라인과 ‘게임스탑’이라는 주식에 투자했고 대박을 노리고 있다. 이런 키스 길의 투자방식이 그냥 무작정 얻어걸려라는 아니다. 나름 치밀한 분석을 통해서 게임 스탑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모름지기 돈은 혼자 버는 게 맞긴 하나, 혼자서는 외롭다. 레딧 유저들과 함께 인터넷 방송을 하는 키스 길. 수많은 개미들이 키스 길에게 설득되고 이는 곧 코끼리 같은 부자들과 대립하는 결과와도 이어진다. 여러 사건들이 미국 경제들을 훑고 지나갔지만 개미들은 당하기만 했다. 과연 이번엔 개미들이 이길 수 있을까?
나름 친절해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장점 중 하나는 ‘경제(특히 주식) 용어를 잘 몰라도 이해하기가 쉽네!’라는 점이다. 어떤 이유에서? 바로 영화의 핵심을 드러내는 방식 때문이다. 감독은 이 핵심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캐릭터 개성 살리기’를 선택했다. 글쓴이가 상영관에서 나와 가장 먼저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한 것은 인물들이다. 주인공이 한 명만 있지 않다. 그 주인공들을 A팀과 B팀으로 나누는데, 인물들을 각기 다르게 설정했다. 이 인물들의 속사정은 다 다르다. 누구는 성소수자고, 누구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고, 누구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다. 심지어 세 바운더리에서 직업도 다 다르다. 한 사람은 평범한 대학생인데 어떤 인물은 간호사고 또 다른 캐릭터는 그냥 게임스탑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인물들의 속사정이 판이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각기 튀는 캐릭터들에 개성도 부여한다. 주인공 키스 길은 또 다르고, 게임스탑 아르바이트생은 또 어떻고, 간호사는 어떻고 하는 식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반복을 통한 강조만 했을까? 아니다. 이 영화는 인물마다 다른 말 맛(?)을 부여하며 코미디까지 살렸다. 글쓴이가 이 글을 쓰면서 영화를 기억하다 보니 모든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 이유가 인물마다 다른 웃음 포인트를 살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인물들을 A팀과 B팀으로 나뉘어 대비를 강조한다. 그 경계를 나누는 기준은 ‘게임스탑 주식 투자자’라는 점이다. 다른 인물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엮이면 그 정서가 절실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 연출이, 그러니까 인물마다 개성을 살리는 방식이 영화에서 장점으로 발현된 것은 흥미롭다. 개미 투자자들이 똘똘 뭉치는 유대감을 캐릭터의 힘으로 살리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뭉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지 유추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정말 비판하고 싶었던 대상의 속성과도 어울리는 감이 있다. 이 대상의 특성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그림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이야기의 구조로 형상화한 감독의 솜씨가 놀랍다. 또 직접적으로 대사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여기까지 가는 과정을 영화가 잘 짰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알면 좋은 것
이 영화를 이해할 때 ‘공매도’와 ‘게임스탑’, ‘레딧’과 ‘로빈후드’가 무엇인지는 알 필요가 있다.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면 ‘레딧’은 외국인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다. 특정한 소재가 있다. 가령 ‘아시안 컵 한국 대표팀’이라는 소재가 있다고 쳐보자. 그럼 그쪽에 관심 있는 유저들이 모여서 끼리끼리 대화를 나누는 곳인데, 인터넷 커뮤니티의 속성 상 저속한 표현이 많다. 특히 주식같이 금전적인 문제가 달려 있으면 더 그렇다. ‘게임스탑’과 ‘로빈후드’는 2021년 미국에 실존했던 기업체 이름이다. 게임스탑은 ‘스팀’의 오프라인 형태라고 보면 쉽다. 콘솔/PC게임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파는 곳이다. 중고 게임을 파는 경우도 몇 있다. ‘로빈후드’는 주식 거래 어플이다. ‘~증권’ 어플을 미국인들이 쓴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런 업체 이름 말고 더 중요한 것은 ‘헤지펀드’와 ‘공매도’라는 개념이다. 헤지펀드는 개인 투자자들이 높은 목표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 자본 그 자체를 말한다. 보통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며 큰 손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매도’는 돈을 빌려 매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격이 올라가는 걸 예상해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하고 그만큼 팔아 중간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헤지펀드’는 누구고 ‘공매도’를 이루거나 하는 행위가 누구에서 오는지를 본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의 향기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팬데믹 묘사다. 이 전염병 사태를 거치며 여러 변화가 있었다. 어떤 점에서는 백신이라는 것이 유달리 중요했던 때가 있고, 오프라인 매장이 경제상황에 치명타를 가한 적도 있다. 영화는 이를 철저하게 묘사하며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강한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또 주인공 키스 길의 직업이나 ‘영상으로 기록이 남는다’는 점을 묘사하기 위해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언어의 모습이 바뀌기도 했는데, 이는 번역가의 힘이다. 가령 이 영화에서 인터넷 방송과 관련된 용어는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키스 길이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밈을 번역하는 입장에서 일일이 다 살리는 것이 단순히 언어를 저기서 이걸로 바꾸는 것 말고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연히 다 조사해야 그 맥락이 살기 때문이다. 황석희 씨의 열일이 영화의 입체감을 살리는 장점이 됐다.
정상적인 연기는 오랜만이야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폴 다노는 외유내강의 캐릭터를 깔끔하게 소화했다. 폴 다노가 <파벨만스>나 <루비 스팍스> 같은 역할도 곧잘 했지만 <더 배트맨>이나 <데어 윌 비 블러드> <프리즈너스> 같은 센 연기도 잘 소화했다. 이 <덤 머니>에서의 키스 길은 두 종류의 캐릭터에서 <파벨만스> 쪽에 가까운 연기를 한다. 이 인물은 유약한 그냥 직장인 같아 보이지만 마음 안에 굉장히 강한 구석이 있는데, 어떤 대사를 중심으로 이 내면을 형상화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캐릭터를 마냥 센 템포로 해석하지 않은 역량이 돋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인물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키스 길의 감정선이 더 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보였다. 뭐 실존 인물이 이렇게 무덤덤한 인물(?)이라면 할 말 없지만.
순수 재미는 떨어질지도
이 영화에 대해 아쉽다고 느끼는 점은 장르적인 재미다. 이런 비슷한 소재와 주제로 <빅 쇼트>라는 걸출한 작품이 있어서? 아니다. 플롯에서 여러모로 긴장감이 느껴질 만한 장면이 많은데 왠지 모르게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잔잔한 느낌? 영화 자막으로 센 수위의 밈들이 나오고 큰돈이 걸렸는데도 영화 전체적으로 플롯을 이끄는 방식이 조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폴 다노나 세스 로건, 쉐일린 우들리의 카리스마와 연기가 주는 감정이입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느낌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불호여론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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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 리뷰
감독] 윌 베처, 리처드 펠런
출연] 저스틴 플레쳐, 아멜리아 비테일
시놉시스] 먼 우주에서 길을 잃고 지구에 오게 된 꼬마 외계인 ‘룰라’! 우연히 양떼목장의 비글비글 사고뭉치들 ‘숀’과 친구들을 만난다. 달콤한 젤리와 초콜릿이 가득한 지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룰라’를 위해 집을 찾아 주기로 하는 ‘숀’과 친구들! 우주에 가기 위해 ‘룰라’가 잃어버린 UFO를 찾아 나서고 한편 수상한 비밀요원 ‘에이전트 레드’ 일당이 ‘룰라’를 추적한다. 과연, ‘룰라’는 무사히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스포일러 유의#
대사가 없는 영화는 20년 만에 처음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가 애니메이션 작품이라는 것만 알고 방문한터라 당연히 대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단한 착각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5분이 지나도록 효과음, bgm이 다 나오는데 대사가 없어서 친구와 함께 ‘왜 말들은 안해,,, 대사가 없는건가? 말이 없음 어떻게 내용을 이해하나~’라고 얘기를 나눌 정도였다. 너무 어른의 사고방식이었다. 대사가 한마디도 없고, 심지어 등장 캐릭터들이 다 동물이어서 표정이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았지만 엄청난 내용전달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텔레파시를 통해 대본을 내 머리 속에 주입시키는 느낌이었달까? 영화의 모든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 이 경험이 20년만에 처음 느끼는 새로운 경험이어서 신선했다.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대부분의 시청각자료에서는 ‘음성’이 가장 많은 정보를 주곤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본이 8할은 먹고들어간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는 히히히히, 룰라룰라, 메헤헤헤 온갖 의성어만 난무할 뿐 대사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 캐릭터들의 몸짓, 발짓을 통해 그리고 주어진 상황들을 통해서 각 캐릭터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관계를 파악한다. 게다가 이를 어린이와 어른이라는 서로 다른 세대를 동시에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 표현이 어려웠을텐데 이 작품은 아이와 어른의 공감을 모두 이끌어냈다. 정말 룰라 우주선이 망가지고,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없어졌을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눈물이 다 날 뻔했다. 대사 한마디 없이도 이렇게 집중해서 본 작품은 정말 오랜만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관계의 변화를 그리다
영화 속 외계인 룰라는 우주 저멀리 다른 행성에서 엄마와 아빠가 자고 있던 사이 우주왕복선 키를 만지작 거리다가 지구에 불시착한다. 이미 여기서부터 사고뭉치라는 가장 느낌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피자의 맛있는 냄새에 홀려서 숀을 만나게 되고, 숀가 양들과 함께 재밌게 지내다가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우주선을 찾으러 길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숀은 양들 내에서 사고뭉치였지만 자신보다 레벨이 다른 사고뭉치를 만나면서 룰라의 보호자가 되어 문제가 되는 상황들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하고, 집으로 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렇게 처음 불시착한 장소를 찾아낸 룰라와 숀. 하지만 그곳을 기어코 찾아낸 양치기 개 비처. 그들의 앞에 레드요원들이 등장해 우주왕복선을 통째로 기지로 옮겨버린다.
숀과 비처는 항상 앙숙같은 관계였지만 일단 이 기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합심을 하고 룰라와 숀, 비처는 무사히 기지를 찰출해 룰라의 고향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룰라 앞에서는 의젓했던 숀이 비처가 등장하면서 비처가 조작기를 이리저리 누르는 사이 배가 고프다며 스위치를 누르다가 결국 다시 우주선의 방향이 바뀌고, 지구로 불시착하게 된다. 그 충격으로 우주선은 그만 불타고 만다. 룰라의 엄마와 아빠가 담긴 사진도 날아가고, 우주선도 다 타버리고, 룰라의 능력마저 제대로 못쓰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룰라는 좌절하고, 숀은 이 상황이 꼭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 양들의 도움을 받아 룰라의 집으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파마겟돈의 연극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 숀과 룰라, 그리고 비치와 양들은 힘을 모아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송신기를 위로 올려보내고, 레드요원의 방해에도 결국 송신에 송공하면서 룰라의 엄마아빠가 룰라를 구하러 지구로 날아오는데 성공한다. 룰라는 지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간다.
숀과 룰라, 그리고 비처의 관계를 보면서 어린아이들의 관계에서 항상 고정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보였다. 한없이 철이 없을 것 같던 숀도 자신보다 미성숙한 룰라에게는 어른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비처가 나타나면 다시 천방지축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학교를 전학가거나, 이사를 가는 등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할 때도, 그 이동을 지켜보는 경우도 생길텐데 한 곳에서 좋은 친구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자연스러운 이별의 모습도 담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 숀더쉽 더 무비 : 꼬마 외계인 룰라!는 여름의 끝자락, 야외에서 잠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상영시간표>
2024. 9. 7.(토) 20:00 롯데몰 9층 잔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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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뮬란, 뮬란 (2020) - 같은 제목, 다른 완성도
파씨 가문의 외동딸 파 뮬란은 어느 날, 훈족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인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뮬란은 아버지의 갑옷과 칼, 그리고 남장을 하여 대신 전장에 참가한다. 그런데 파씨 가문의 조상들이 수호신 무슈를 불러 뮬란과 동행하게 만들고 귀뚜라미 복동이까지 뮬란과 함께 하게 된다. 그렇게 뮬란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자인 것을 숨기고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과정을 그린 디즈니의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일단 확실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크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1시간 20분 동안 굉장히 몰입을 하면서 관람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매우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적 관점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결국 [뮬란]이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운명은 뿌리쳐라.'라고 본다. 작중에서 그저 신붓감으로 취급받았던 뮬란이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전장에 나가는 모습은 현대에서도 자존감이 낮은 탓에 쉽게 거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해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라딘]의 자파나 [라이온 킹]의 스카와는 다르게 큰 매력이 없는 빌런 산유와 다른 디즈니 영화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뮤지컬 넘버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자는 중반부까지는 잘 나오다가 후반부에는 아예 없다시피 해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파씨 가문의 외동딸 파 뮬란은 어느 날, 훈족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인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뮬란은 아버지의 갑옷과 칼, 그리고 남장을 하여 대신 전장에 참가한다. 그러나 뮬란의 곁에는 말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사조가 전부였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힘을 숨기며 생존해 간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과정을 그린 디즈니의 실사화 리메이크다.
일단 굉장히 실망하면서 봤다. 재미가 아예 없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장점을 찾기 힘든 망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영화가 매우 실망스러웠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작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뮬란의 설정부터가 영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뮬란이 중국 무협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를 써버린다... 심지어 뮬란이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지 않고 기 하나로 모든 걸 끝내버린다. 이렇다 보니 원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성장 스토리가 사라졌고, 개연성마저 증발한 망작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감초 역할을 해주었던 무슈와 복동이가 사라졌고, 액션신은 형편없고 연기도 똥이어서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물론 디즈니답게 비주얼과 최소한의 재미는 전달한다. 하지만 원작을 모욕하고, 완성도마저 형편없는 이 영화를 왜 봐줘야 할까? 그나마 [라이온 킹] 같은 재탕은 아니었다는 게 유일한 장점.
* 본 콘텐츠는 네이버블로거 콩까기의 종이씹기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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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구분과 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에 대한 노래
구분과 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에 대한 노래
오버 더 레인보우 섹션 영화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2021' 리뷰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출연] Ansel Elgort, Rachel Zegler
시놉시스] 1957년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사이드. 산후안 힐 지역의 허물어져 가는 공동주택과 언제 들이칠지 모르는 철거 장비의 위협을 배경으로 두 라이벌 갱단, 터프한 리프의 제트들과 베르나도의 푸에르토리코계 사크들이 우위를 놓고 겨룬다. 승자독식의 패권 다툼을 두고 열린 학교 댄스 행사에서 제트의 싸움꾼 토니와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 사이에 로맨스가 싹트자 살벌한 영역 전쟁의 기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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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기다리다며 본 광고에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1’이 등장했다. 사람들의 굉장한 에너지와 힘찬 넘버, 그리고 다양한 색감들을 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번에 뮤지컬 영화에서 자신의 끼를 펼쳤구나 하며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나질 않아서 보지 못한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던 영화였다.
화려한 색감 속 가치를 부여하다개인적으로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화려함’ 때문이다. 이러한 화려함을 영화로 그대로 옮겨와 무대의 한계상 보여줄 수 없었던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공간을 이동하고 의상들에 변화를 주면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의 색감을 굉장히 다채롭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 다채로움 속에서도 일정한 규칙이 엿보였는데, 기존 맨해튼에서 살던 백인 그룹에서는 무채색과 주로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면, 푸에르토리코계 사람들은 정렬적인 빨간색과 노란색을 위주로 그들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외형적인 생김새도 물론 차이가 바로 드러났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색감을 통해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자유로움 속에 내재된 차가움을 표현하는 파란색은 결국 미국이 자유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 속에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색 그 자체로 열정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빨간색은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며 새로운 이 맨해튼에서의 핍박을 이겨내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여주인공 마리아가 토니와 함께 도망치려는 그날 밤 마리아는 파란색 옷을 입고 토니 앞에 등장하는데, 결국 이 미국이라는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외부인이 스스로의 색을 버리고 미국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미국의 실정을 넌지시 비춰주고 있었다.
맨해튼에 드리운 구분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자치령이다. 명목상 국가원수는 미국 대통령이지만 직접 뽑은 지사가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섬이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그들이 살던 곳을 벗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있었고, 맨해튼에 정착하면서 백인과의 갈등이 생긴다.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며 영역을 넓혀나가는 푸에르토리코인들을 보면서 점차 밀려나는 백인들은 반감을 품고,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자신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어떻게 해서든 쫓아내려는 백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한데 어우러지는 공존은 이뤄지지 못하고, 푸에르토리코인은 푸에르토리코인끼리! 라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이 신념 때문에 토니와 마리아는 쉽게 사랑을 할 수 없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제트파와 샤크파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구분을 하고 있을까? 나와 너, 우리와 그들과 같이 끊임없이 우리라는 집단을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와 다른 이들을 좋게는 신기한 눈으로, 나쁘게는 경멸의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결국 우리들 스스로 화를 입히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분노는 분노만 낳을 뿐
자신의 눈앞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토니를 본 마리아의 내면에는 분노만이 남게 된다. 치노가 쏜 총을 빼앗아들며 치노를 향해서 그리고 제트파와 샤크파를 향해 모두 총을 겨눈다. 결국 서로를 구분하고 영역을 차지하려는 것이 모두에게 화를 입힌 것이다. 결국 피를 보고 나서야 두 갱단은 반성과 화해의 모습을 보인다. 토니를 함께 들고 카페로 옮기면서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제트파와 샤크파에 상관없이 말이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속담이 있긴 하지만 과연 이러한 복수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끝이 날 수 있는 것일까. 분명 누군가가 먼저 시작을 한 싸움이었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복수를 주고받다 보면 이 악순환 속에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중요해지지 않고, 되갚음만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더욱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분노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노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다시금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방지책을 세우는 것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비극적인 결말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제천국제영화제에서의 시작 영화로 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1’. 티저 영상으로 접했을 때는 그저 신나는 뮤지컬 영화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속에는 구분과 분노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구분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운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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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13 13:00
메가박스 제천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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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곳적 복수 신화를 지금 소환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기 895년, 해외 정복을 마치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온 '아우반디르(에단 호크)' 왕은 왕비 '구드룬(니콜 키드먼)'과 어린 암레스 왕자와 재회한다. 그러나 막 성인식을 치른 아들에게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해주기도 전에 그는 동생 '푤니르(클라에스 방)'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는다. 푤니르는 구드룬 왕비와 왕국을 차지하고, 암레스는 바다 건너로 도망간다. 이후 세월이 흘러 바이킹의 일원이 된 '암레스(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왕국을 잃은 푤니르가 망명지인 아이슬란드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노예로 신분을 위장한 그는 노예선에서 만난 마녀 '올가(안야 테일러 조이)'의 도움을 받아 푤니르의 땅으로 들어가고,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한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신작 <노스맨>은 바이킹 왕자 암레스의 사랑과 복수를 노래하는 영화로, 중세 시대극이자 근래 할리우드에서 보기 힘들었던 에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피비린내 나는 10세기 북유럽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그린 나이트>처럼 상징적이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신화적 영웅의 비현실적 여정을 압도적인 분위기와 미장센으로 녹여낸다. 주술사가 이끄는 암레스의 성인식이나 피 튀기는 바이킹의 전투 장면은 거칠고 잔혹하다. 폭풍이 몰아치는 북대서양의 거친 바다부터 아이슬란드의 화산에 이르는 웅장하면서도 잔인한 자연의 풍광이 더해지면 그 시대의 야만성이 눈앞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절단 장면은 '이 정도로 잔인할 필요가 있나?'라는 의문을 자아낸다.
하지만 강렬한 영상에서 눈을 돌려 주인공 암레스의 여정에 빠져들다 보면 그 의문은 자연히 답을 찾는다. 특히 중세 스칸디나비아 전설 속 영웅인 암레스 왕자가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햄릿의 원형이라는 점, 하지만 암레스와 햄릿의 이야기가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그 답은 더욱 명확해진다. 덴마크의 왕자인 햄릿은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에게 복수하려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다 풀어내지도 못한 채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에 휘말린다. 혼란 속에서 그는 미친 듯 보이는 현실과 미쳐 가는 자아를 화해시키지 못하고, 복수마저도 온전히 끝내지 못한 채 죽는다.
햄릿의 복수는 허망하다. 복수심이 도리어 파국을 가져온다는 것을 복수가 결코 건강한 선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사실 복수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작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장 <일리아스>만 해도 그렇다. 친구를 죽인 헥토르를 향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아버지를 만난 후 그의 용기와 부성애에 감동한 아킬레우스를 비추며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분노에 가득 찬 야수였던 아킬레우스가 복수심을 버리고 사랑, 희생, 용기를 아는 고결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비록 그 끝은 조금 달라도 햄릿과 아킬레우스는 모두 복수의 무용함을 이야기한다.
<노스맨>과 암레스는 다르다. 영화는 햄릿, 아킬레우스와는 달리 복수의 완성을 통해 생명력을 되찾고 한 명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암레스를 보여준다. 복수와 삼촌의 죽음을 다짐하며 바다를 건넌 간 암레스는 바이킹의 배를 탄 채로 다시 등장한다. 배에서 내려 한 마을을 공격하는 바이킹들 사이에서 암레스는 다른 바이킹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저 사람을 죽이는 데 몰두한다. 적군을 죽이고 그 몸을 입으로 물어뜯으며 울부짖는 그의 모습에서는 목적 없이 배회하는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가 보일 뿐이다.
그러나 마녀의 환시를 보고, 자신이 복수를 완수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들은 후 그는 새롭게 태어난다. 삼촌의 땅인 아이슬란드로 향하기 위해 인간 대우도 받지 못하는 노예로 위장한 암레스는 가장 낮은 계급이지만 오히려 가장 살아있어 보인다. 집을 나가 떠돌던 외로운 늑대는 이제 무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눈이 이글거린다. 복수를 통해 암레스의 인생이 죽음에서 삶으로 전환되는 이야기는 영화의 결말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용암이 치솟는 화산에서 삼촌을 죽임으로써 마침내 꿈꾸던 복수를 하는 데 성공한 암레스. 그는 삼촌과의 결투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클로즈업되는 그의 표정은 환희와 평화로 가득하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지켰고, 아버지와 자신의 왕통을 이을 아이들도 남겼으면, 응어리 진 분노도 온전히 터뜨린 후 해소하여 온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다른 인물들의 서사 역시 복수의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 보인다. 당장 푤니르만 하더라도 그는 단순히 복수의 목표물이 아니다. 왕의 배다른 동생이자 사생아인 그는 자신의 삶을 무시한 이복형에게 복수한 인물로, 비록 영지를 잃어버리기는 하지만 가족들과 따뜻한 삶을 영위한다. 그래서 암레스에게 가족을 한 명씩 잃어가는 그의 모습에서는 간악함보다는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진다. 그의 어머니인 구드룬 왕비가 마찬가지다. 삼촌 푤니르에 인해 강제로 결혼하여 비극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는 알고 보니 푤니르를 추동한 만악의 근원으로 밝혀진다. 그녀는 노예로 팔려와 강제로 결혼하고 후사를 낳아야 했기에 증오 가득 찬 결혼 생활을 끊기 위한 복수를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구드룬은 분노하는 암레스 앞에서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고 지금의 삶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일갈한다.
이에 더해 올가와의 관계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신화 속 여성은 남성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여성과의 사랑을 통해 남성은 상처를 치유하고 질적으로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는 반면, 여성은 분기점 외의 특별한 역할을 맡지 못한 채 해피 엔딩 속에서 존재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 <노스맨>은 다르다. 암레스는 올가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복수를 함에 있어서 적잖은 도움도 받고, 또 서로의 목숨도 구해준다. 하지만 올가는 암레스의 운명에 종속되지 않는다. 암레스는 사랑을 통해 복수심을 잊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대신 목숨을 걸고 복수하는 늑대로 남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사랑은 쌍둥이를 잉태한 채 그 관계가 끊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암레스는 온전히 마음의 평화를 얻을 기회를 잡고, 올가는 노예에서 벗어나 위대한 왕통을 이어갈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 이처럼 <노스맨> 속 복수는 단지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싸움이 아니라 바람직하고 정당하며 옳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물론 혹자는 <노스맨>의 복수극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햄릿과 암레스가 복수에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를 제외하면 이 영화의 각본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는 2시간을 넘는 137분의 러닝타임 동안 느린 템포로 진행되기에 꽤나 지루한 인상이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멋지게 복수하는 쾌락을 선사한다는 특징은 고전 중의 고전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특출 난 게 아닐 수 있다.
이에 더해 신화 원전의 분위기를 재현하는데만 집중한 것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일례로 작년에 개봉한 <오필리아>는 햄릿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햄릿의 아내인 오필리아를 전면에 내세워 햄릿의 비극을 여성의 시선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바 있다. 그에 반해 죽음과 폭력, 예언과 마법으로 가득한 <노스맨>의 세계는 굳이 이 신화를 지금 이 시점에 만나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남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레스의 세계를 잘 살펴보면 <노스맨>에 숨겨진 시의성이 그 모습을 찬찬히 드러낸다. 화산을 배경으로 암레스는 복수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싸우다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지막 결투에 임한다. 바이킹에게 정당한 복수를 위해 싸우다가 죽는 것은 그들의 천국인 발할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 속에 가득한 울분을 온전히 표출하면, 전장에서 죽은 후 발할라에 들어가 라그나로크가 올 때 오딘의 옆에서 함께 싸우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즉, 이 세계는 복수를 긍정하며, 오히려 되갚아주지 못하는 이들이 손해를 본다는 믿음이 지배적인 세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스맨>의 현대적 맥락을 볼 수 있다. 지금의 사회는 외관만 다를 뿐 암레스의 세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SNS 상에서 오가는 설전, 리벤지 포르노의 등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모습까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 모든 현상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과거의 수많은 전쟁과 갈등의 변주일 따름이다. 범죄자들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엄벌주의에 대한 갈망 역시 국가나 사법 제도가 복수를 대신한다는 믿음이 약해졌음을 방증한다. 암레스처럼 직접 당한 만큼 돌려주고 정의를 바로잡는 복수의 욕구가 나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충실한 재현 같아 보이는 <노스맨>의 접근법은 결코 과하지 않다. 태곳적 복수 신화를 성공적을 소환하는 심장 박동을 닮은 북소리와 극한의 현실 고증을 통해 신화에 설득력을 더하는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암레스의 세계와 그의 행적이 가능한 사실적으로, 그리고 실감 나게 느껴질수록 관객 역시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커져가지만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욕망을 분출하는 공간을 경험할 수 있으므로.
암레스가 발할라에 들어가는 결말이 대표적이다. 화산에서 죽어가는 그의 앞에 하늘이 열리고, 발키리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내려와 그를 발할라로 이끄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환상이다. 하지만 이는 복수를 통해 평화를 찾은 암레스의 심정을 그 어떤 방식보다도 훌륭하게 반영하는 연출이기도 하다. 성인식부터 전설 속의 검을 얻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복수에 미친 그가 다양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나치게 재현적이고 현대적 맥락에서는 동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노스맨>에서는 원형적인 복수 신화를 통해 현대 사회를 반추하게 만드는, 단순한 영화적 재현 이상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A(Acceptable, 무난함)
태곳적 복수 신화를 재소환하는 현대의 야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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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 리뷰>
- 작가주의라는 말은 어떤 예술 작품에 적용되든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웨스 앤더슨과 팀 버튼처럼, 대중적으로 성공한 감독 덕분에 그 허들이 많이 낮춰졌다는 종종 든다. 특히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은 감독의 취향이 짙게 묻어나는 영화임에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가. 한국에만 초점을 맞추더라도 말이다. 아트버스터 마케팅은 너무나 훌륭했으며, 개봉 후 거의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수많은 아이템은 여전히 세련되었다는 평가를 들으며 시장에서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어쨌든, 유명하고 익숙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에도 그는 <개들의 섬(2018)>,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와 같이 다양한 영화를 찍었는데, 오늘 내가 찾은 그의 작품은 단편 영화인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이다.<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이하 헨리 슈거 이야기)>는 로알드 달의 동명 작품을 기반으로 한다. 웨스 앤더슨이 <판타스틱 Mr. 폭스(2009)> 에서 이미 같은 작가의 작품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형식으로 영화화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엔 어떤 시도를 하였을지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원작 도서는 일곱 개의 단편이 수록된 옴니버스 형식의 도서이므로 감독이 얼마큼 대범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갔을지, 그리고 이 이야기를 선택한 까닭이 무엇일지 여러모로 흥미가 생겨, 넷플릭스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트를 눌렀다.※ 스포일러 주의결론부터 이야기하자. <헨리 슈거 이야기>는 앤더슨 감독의 스타일의 총집합과 다름없었고, 원작의 일곱 이야기를 한 편으로 집약하겠다는 욕심을 버려 깔끔하기까지 했다. 스타일리시하되 담백하여 유쾌하면서도, 감독 특유의 미학에 곰곰이 미장센을 곱씹게 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터다. 또한 재미있는 건, 원작이 청소년을 위한 동화였기에 시놉시스와 교훈은 퍽 직설적이지만, 원작 자체가 액자형 구조를 취하고 있어 잠시라도 화면에서 시선을 돌렸다간 이해를 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자면, 원작의 플롯만 간단히 훑어도 앤더슨 감독이 이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유를 단 번에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헨리 슈거(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상속받은 유산만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영국의 귀족으로, 일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취미로 도박을 하는 남자다. 그런데 그런 그가 우연히 한 권의 노트를 마주한다. 그곳엔 눈 없이도 볼 수 있는 자, '임다드 칸'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신비로운 이야기에 매혹당한 헨리는 같은 능력을 갖고 싶단 욕심에 책에 쓰인 방법과 동일한 수련을 3여 년 간 계속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초능력에 가까운 투시 능력을 획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 후, 헨리는 이전처럼 도박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문제가 한 가지 생겼다. 어떤 도박에서든 자신의 승리가 확실시되니 흥미가 사라지다 못해 오히려 슬픔을 느끼게 된 것.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수행을 통해 헨리의 인생관이 완전히 달라졌을 가능성 또한 있으리라고. 이렇듯 허망함을 느낀 헨리는 우연한 기회로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되고, 선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헨리의 부친과 헨리의 회계사였던, 그리고 헨리 슈거 사후 윈스터 슈거 LLC의 대표가 된 존 윈스턴(데브 파텔)은 한 명의 작가, 즉 로알드 달(레이프 파인즈)에게 헨리 슈거의 전기를 부탁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로알드 달의 원작이자 이 영화이다.자, 시놉시스만 보아도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어째서 이 감독이 해당 이야기를 영화화시켰는지 깨달을 것이다. 그는 액자 구조를 근사하게 활용하는 아티스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만 보더라도, 그가 과거 속에서 과거를 찾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지 않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감독은 다양한 시대를 화면비를 바꾸어감으로써 제시했었다. <헨리 슈거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객은 가장 먼저 헨리 슈거의 전기를 적게 된 작가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헨리 슈거의 이야기를 꺼내고, 헨리 슈거는 자신이 발견한 노트를 펼치며 임다드 칸(벤 킹슬리)과 의사 차터지(데브 파텔)와 의사 마셜(리처드 아이오아디)을 제시한다. 독특한 점은 한 액자마다 내레이션을 하는 인물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초반엔 작가(랄프 파인즈)가 자신을 소개하며 상황을 해설하고, 그다음 프레임으로 넘어간 후엔 헨리 슈거 본인이, 그리고 그 이후엔 의사 차터지가 그 역할을 자처한다. 이따금은 ‘그가 말했다’와 같은 짧은 해설까지 구겨 넣듯 덧붙여야 하기에 우스꽝스럽기까지도 한데, 이는 대다수의 감독이 추구하는 사실주의적 관점을 웨스 앤더슨이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장치였다.이밖에도, 카메라 워킹에 있어선 어느 때보다 평면성이 도드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본래도 웨스 앤더슨은 카메라를 통해 각 신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현실을 모방하고자 노력하는 감독은 아니었다. 그는 수평, 수직적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동화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힘썼고 스크린 속 이야기와 관객 사이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러한 그의 성향은 <헨리 슈거 이야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직선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무대 장치를 적극 활용한 연극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헨리 슈거 이야기>의 초반, 앤더슨 감독은 달리 아웃을 사용하여 로알드 달과 그의 집, 내부와 외관을 표현한다. 또한 작가의 공간에서 헨리 슈거의 집으로 장면이 전환될법한 순간에도 카메라는 건물이 절단되어 그 속내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양 당연스레 수평으로 이동하기만 한다.하지만 내러티브에 큰 공헌을 한 웨스 앤더슨 특유의 프레이밍 장치나 카메라의 움직임보다도 관객이 영화의 한 장면, 단 한 장의 스틸컷만 보아도 웨스 앤더슨의 작품임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결정적인 단서는 그의 독특한 색감과 구도일 것이다. 이번 <헨리 슈거 이야기>에서도 그의 특징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미 유명하기 짝이 없는, 인공적이기까지 한 대칭구성 혹은 평면구성은 <헨리 슈거 이야기>에서도 여전하다. 또한 감각적인 색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영화의 컬러 팔레트는 대체적으로 <문라이즈 킹덤(2012)>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었으나, 헨리 슈거의 새빨간 잠옷에선 <로열 테넌바움(2001)>을 연상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러한 모든 특징을 종합하다 보면, 언제나처럼 동일한 상상에 맞닥뜨리게 된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러니까 한 편의 영화에 액자식 구성이나 평면적인 화면, 카메라 워킹, 연출과 색감, 상징 등이 담기는 순간, 영화는 한 권의 3D 동화책으로 변하는 것만 같다는 상상 말이다.그래서일까. 이번 <헨리 슈거 이야기>에서 내게 유난히 인상 깊게 남았던 대사는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는 헨리 슈거의 독백이었다(이게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허구였다면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엔딩을 만들어 내야 했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고 독특한 엔딩을. (...) 하지만 이것은 팩트다. 사실이 아닌 것은 헨리 슈거라는 이름뿐이다.). 팩트이기에 드라마틱한 엔딩이 없다는 그의 고백은 영화라는 양식과 웨스 앤더슨의 손길에 닿는 순간 무엇보다도 현실성이 없는 양식으로 묘사되고 있기에 이 모든 구성이 거대한 아이러니처럼 느껴졌다. 특별히 비극적이지도 않지만, 대단히 유머러스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위트 있는 영화라고 느껴진 까닭은 어쩌면 그곳에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헨리 슈거 이야기>는 어떤 계절 혹은 어떤 날씨에, 문득 떠올라 다시금 찾고 싶어지는 영화가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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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비우스 리뷰 - 베놈2의 단점을 답습하다 (스포일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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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합니다]
1. 베놈, 모비우스는 마블의 작품이지만 MCU와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는 독자적인 소니 스파이더 유니버스를 구축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01:25 ~ 01:27 01:53 ~ 02:02
2. 제가 러프하게 마블의 작품이라고 한 부분이 디테일한 부분에서 부족했던 것을 말씀드리며 다음번엔 조금더 검토를 하고 영상 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상 시청에 불편함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분명 영화 모비어스에도 장점은 있었습니다. 정말 박쥐처럼 공간을 인식하는 시각적인 효과도 인상적이었고, 액션씬 중간중간에 나오는 슬로 모션도 기억에 꽤나 남았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흔히 말하는 겉멋 가득한 무의미한 연출들은 아쉬웠고, 샹치 텐 링즈의 전설에 이은 갑작스러운 에너지파 결말은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습니다.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아쉬운 이야기를 들었던 블랙위도우, 베놈 2, 샹치, 이터널스로 인해 식어가던 마블에 대한 애정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다시금 살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모비우스가 그 불씨를 다시 꺼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쉬움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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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트래커> 예고편
한계를 넘어선 액션이 시작된다!
이탈리아에서 갱단의 납치로 아내와 딸을 잃은 하칸슨. 10년 후 이탈리아 형사로부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곧장 이탈리아로 떠난다. 하지만 그에게 연락했던 형사는 이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같은 시기에 그 도시의 형사로 새로 발령받은 안토니오는 이 사건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하칸슨과 함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갱단으로 침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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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늑대들> 예고편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들의 전쟁
야쿠자, 고려인 마피아의 잔인한 핏빛 폭력
늑대들의 먹이가 되는 여인들
연쇄 살인마를 쫓는 형사와 갱들
늑대들의 피로 물든 하드보일드 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