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5-27 11:54:18
유치한데... 재밌어... 당신의 길티플레져 영화는?
길티플레져
❣️Cinelab Curation❣️
여러분의 길티플레져 영화는 무엇인가요?
유치하지만.. 심장이 울리는 그런 영화요!
절대 안 볼 것 같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끌려 어느새 엔딩크레딧을 보게 되었던 영화들이 있지 않나요?
제게는 어릴 때 봤던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그랬는데요!
너무 유치해서 입을 틀어막고 보다가,
나중에 시리즈 마지막 편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너무 섭섭했던 거 있죠?😅
오늘은 이런 유치하고도 사랑스러운 영화들을 모아보았는데요🤍
여러분의 길티플레져 영화도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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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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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들의 새벽 - 피와 살을 갈망하는 시체들과 돈과 물질을 갈망하는 우리는 뭐가 다를까
작년에 이 영화가 심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다. 좀비 영화의 바이블이라 해도 될 이 영화가 정식 수입되다니! 그동안 한국에서는 개봉도 못하고 VHS랑 DVD로만 소개되었는데, VHS는 90년대 중반에 이블 헌터라는 듣도보도 못한 제목으로 수입되었고, DVD는 영화 길이가 업체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사실상 제대로 소개된 것은 작년 개봉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영화가 정식 개봉인지 꼼수 개봉인지 아는 과정까지도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영화로운 일상을 위한 신작전 때 시체들의 새벽이 있었는데, 필자는 처음에는 그게 조지 A. 로메로의 영화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근데 나중에 보니 아뿔싸. 속된말로 함정 카드에 걸린것 이었다. 제목도 원제는 "데이 오브 더 데드: 블러드라인"이라는 딴 판의 영화. 게다가 잘 만든 영화도 아닌 VOD로 적합한 수준 낮은 영화라니. 하지만 1월에 피터팬픽처스 측에서 조지 A.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을 심의 받은 것이 있어 필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대는 헛된 기대가 아니었다. 꼼수 개봉도 아닌 일반적인 상영관에서 정식 개봉이라니! 좀비 매니아인 필자로선 기뻐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보고나니, 부산행, 28일 후를 다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좀비 영화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 중 두번째 작품인 시체들의 새벽은 전작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보다 더 진보한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대표적으로 컬러로 넘어와 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것이고, 더욱 깊어진 사회 비판과 풍자일 것이다. 이 영화를 단순한 좀비 영화, 공포 영화로 보는 것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본 것이다. 영화에서는 좀비와 인간을 동일시 하는 연출이나 대사가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좀비들이 계속 쇼핑몰로 들어올려고 하자 스티븐이 저것들이 왜 들어올려고 하는 거냐니까 피터가 이렇게 말한다. "저들이 노리는 건 우리가 아니다. 이 공간 자체다." 후에 폭주족들이 습격할 때도 말한다. "저들이 노리는 건 우리가 아니다. 이 공간이다." 그리고 이런 장면도 있다. 폭주족들이 귀금속으로 치창한 좀비에게 달려들어 귀금속과 치장품들을 떼가는 장면.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인데, 피와 살을 탐하는 좀비들과 돈과 물질을 노리는 현대 사회의 우리들은 과연 뭐가 다른 것일까. 좀비들이 내장과 시체를 들고 걸어다니며 배회하는 장면은, 쇼핑몰에서 살 것들을 들고 걸어다니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우리는 이미 모두 시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시체. 살아있지만 죽은 존재들 말이다. 이 영화를 본다면 왜 평론가들이 고평가하지 않는 좀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역사상 명작에 들어가는 지 알 것이다. 일부러 안 보고 버티다가 스크린으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는 것은 필자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이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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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과 용기 사이, 지금의 나를 만든 그때의 ‘사소한 것’들
▷한줄소감 : 침묵과 용기 사이, 지금의 나를 만든 그때의 ‘사소한 것’들
▷영화/책 :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 Claire Keegan, 2023.11월
결정적인 순간에야 본 모습을 드러내는 나의 본성의 근원은 무엇일까?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을 용기,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최근 영화로 개봉된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그 기억들을 소환해내고 있다.
1985년 실업과 빈곤으로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 뉴로스에서
석탄 배달업으로 아내, 딸 다섯 가족을 이끌고 있는 빌 펄롱(컬리언 머피 역),
무엇보다도 딸들이 각자 자신의 재능을 찾아 성장해 나가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족과 함께 케이크를 만들고 산타클로스에게 보낼 카드를 쓰는 일상이 행복하기만 하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어린 시절을 헤쳐 나온 그였기에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기 스스로를 그저 운이 좋을 뿐이라 생각한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우린 참 운이 좋지?" 어느 날 밤 펄롱이 침대에 누워 아일린에게 말했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그렇지." (p20)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p22)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p24)
그렇다고 하루하루 지치고 힘든 일을 버텨내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 일을 하고 저녁 늦게서야 식탁에 앉아 가족을 대하는 반복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p44)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을 다 잡아준 것은 그 옛날 어머니조차 일찍 돌아가시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가 되었을 때,
자신을 돌봐 주었던 집 주인 미시스 윌슨 아주머니의 따뜻한 격려 때문이었다.
미시즈 윌슨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미시즈 윌슨이 말했다.
그날 종일, 그 뒤로도 얼마간 펄롱은 키가 한 뼘은 자란 기분으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 다녔다.(p37)
그런 영향인지 빌 펄롱은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사람이다.
사업체 직원들의 일상을 돌본다든지, 동네 사람들 중 어려운 집에 장작을 몰래 가져다 놓는다든지,
지나가다 친구 아들을 보고는 주머니에서 동전 몇 푼이라도 꺼내 준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강 건너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창고에 갇혀 있던 어린 소녀 세라를 발견한다.
수녀원장은 친구들끼리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둘러댄다.
오히려 그 사실이 외부에 발설되지 않도록 무언의 압박을 보낸다.
딸들이 다니려고 하는 세인트마거릿 여학교의 운영자이기도 한 수녀원이기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수녀원장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현찰이 든 봉투를 내밀었을 때 그냥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p99)
자괴감에 빠져 있는 그를 바라보는 아내 아일린이나, 수녀원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던 음식점 주인 미스즈 케호는 그저 모른척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 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p57)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말했듯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교단은 다르지만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하고도 원수 되는거야.”(p105~106)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날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깎고, 아내에게 줄 구두를 찾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
펄롱의 하루는 지금 무언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었다.(p113)
결국 그는 다시 수녀원으로 가서 창고에 갇혀 있던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지역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수녀원이었기에 자신의 사업체와 가족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이 떠올라 두려웠지만
더 이상 물러서지 말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p119)
빌 펄롱에게 이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순간 어려웠던 시절, 집주인 미시즈 윌슨 아주머니와 같은 집 일꾼이었던 네드의 보살핌의 손길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의 자신을 이루게 한 것은 그분들의 배려, 친절, 격려들 때문이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때로는 사소한 것(Small Things)들로.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p120)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p120)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p121)
지금 주인공 빌 펄롱에게 침묵에 맞설 '용기'를 불러일으킨 것은 어릴 적 자신을 일으켜 세웠던 '사랑'과 '보살핌'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뿌려진 씨앗이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열매를 맺은 것이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는 그것들은 결코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다.
소녀를 구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그 첫 발걸음은 사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를 나되게한 '사소함'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 무수히 많은 사랑의 손길이 떠오른다.
내가 살아갈 '용기'는 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따스한 불빛이 반짝거리며 떠오르는 것 같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막달레나 세탁소’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와 정부 지원하에 1922년부터 1998년에 이르기까지
70여 년 동안 3만 명 이상의 젊은 여성들을 감금, 강제 노역과 착취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곳이다.
2013년에 이르러서야 정부는 진상조사를 마치고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ries)’ 또는 ‘막달레나 수용소(Magdalene asylums)’는
타락한 여성 교화라는 명분하에 1344년경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아일랜드에서는 1767년부터 10여 개 시설에 약 1만 명의 여성이 수용되었고, 잉글랜드는 1758년 이후 300개 이상의 세탁소가 운영되었으며,
1800년 미국 필라델피아, 1848년 캐나다 토론토, 1852년 스웨덴, 1890년 호주에서 운영되었다.
노동 착취와 인권유린의 현장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최후의 막달레나 세탁소가 1996년에 이르서야 폐쇄되었다.
각 나라의 막달레나 세탁소 / ①아일랜드(1767년), ②잉글랜드(1758년), ③미국(1800년), ④캐나다(1848년), ⑤스웨덴(1852년), ⑥호주(1890년)
20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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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네뜨> - ‘아이의 눈으로 들여다본 상실의 쓰라림’
뽀네뜨 (Ponette)
개봉일 : 1997.11.08 (한국 기준)
감독 : 자크 도일론
출연 : 빅토와르 띠비솔, 자비에 보브와, 클레르 노보, 마리 뜨랭띠냥
아이의 눈으로 들여다본 상실의 쓰라림
잔인한 말이지만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우리는 아무리 혼자가 좋다고 말하더라도 살면서 적어도 한두명쯤은 마음을 다 내어줄만큼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언젠가는 그를 잃는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누구나 겪을 수 있기에 무엇보다 두렵고, 또 그만큼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바로 이 ‘상실의 고통’이다. 지금껏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와 이별하는 아픔을 담은 영화를 수없이 봤지만 이 영화처럼 조용하게, 낮은 시선으로 상처를 건들이는 영화는 없었다.
<뽀네뜨>는 작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상실의 아픔을 담아낸 영화다. 어린 뽀네뜨와 엄마는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하게 된다. 뽀네뜨는 팔 한쪽에 깁스를 했고 엄마는 사고의 충격으로 인해 생긴 머리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뽀네뜨의 아빠는 아내를 잃은 충격을 수습할 틈도 없이 아이를 안고 친척집으로 향한다. 아빠로서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출장을 가야했기때문이다. 엄마의 빈자리엔 ‘사랑하는 이가 언제든 떠날수 있다’는 불안감이 자리했고 뽀네뜨와 아빠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절대 죽지 않기로”.
아빠가 출장을 떠나고 어린 뽀네뜨는 엄마의 부재를 느끼면서도 이전과 같이 일상을 살아간다. 친척들과 함께,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하지만 상실의 아픔은 갑작스러운 순간에 툭툭 아이의 마음을 건들인다. 아이가 눈물을 터트릴때, 친구들 사이에서 잠시 웃음을 보일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홀로남아 부활의 주문을 외칠때. 모든 순간이 아팠고, 아이에게 한아름 희망이 주어졌을때 나는 비로소 조금 웃을 수 있었다.
뽀네뜨 시놉시스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뽀네뜨는 단지 왼쪽 팔만 조금 다쳤을 뿐인데, 차를 몰던 엄마는 너무 크게 다쳐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네 살짜리 뽀네뜨로서는 죽음을, 그리고 엄마를 영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회사일로 출장가는 아빠는 뽀네뜨를 고모에게 맡기지만, 엄마잃은 슬픔에 빠진 뽀네뜨는 사촌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혼자 방안에 쳐박혀 인형과 대화만 나눈다. 꿈속에서 엄마와 만나던 뽀네뜨에게 어느날부터인가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다. 낙담하고 있는 뽀네뜨에게 고모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엄마도 분명 예수님처럼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그때부터 뽀네뜨는 밖에 나가 엄마 오기만을 기다린다. 아빠나 고모가 아무리 달래고 알아듣도록 타일러도, 뽀네뜨는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낮엔 여기서, 밤엔 엄마랑. 난 밤이 좋아.
며칠전만해도 함께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오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어린 뽀네뜨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아빠의 대답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있다고 대답하면서도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엄마의 빈자리는 뽀네뜨에게 커다란 아픔으로 자리잡는다.
일때문에 뽀네뜨를 친척집에 맡겨야만했던 아빠는 애써 슬픔을 억누르며 먼저 떠난 아내를 탓해보지만 어린 딸은 빈틈없이 엄마의 존재를 감싸 안는다. 뽀네뜨는 낮엔 또래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엄마를 만난다고 말한다. 사촌 마티아스와 델핀, 아빠는 뽀네뜨의 말을 믿어주지 않지만 뽀네뜨는 고집을 꺾지않는다.
뽀네뜨가 계속해서 고집을 부린 이유는 그저 '엄마를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부활할때 사용했다는 주문 '타리타쿰!'을 외치고, 엄마를 기다리는것만이 뽀네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뽀네뜨는 엄마가 묻힌 무덤가에서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나쁜 마음씨의 아이가 엄마를 욕하고, 누군가 엄마의 부재를 강하게 각인시켜도 울지 않고 맞서던 뽀네뜨가 엄마의 옆에선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마치 꿈, 기적처럼 엄마가 뽀네뜨의 앞에 나타난다.
엄마가 행복을 배우랬어. 난 행복을 배울거야.
뽀네뜨는 엄마가 챙겨준 붉은 니트를 입고, 엄마 대신 요요떼를 안고, 연약한 손목에 아빠의 시계를 감는다. 그리고 행복을 찾을것이라 다짐한다. 엄마의 따뜻한 사랑 한주먹 아빠의 흔들림 없는 사랑 한주먹은 뽀네뜨를 단단히 감싸줄것이다. 다친 팔의 상처가 나을때까지 튼튼하게 감싸주는 깁스처럼 말이다.
뽀네뜨가 언제나 곁을 지키고 있는 엄마의 존재를 느끼며, 가끔 공기중을 떠다니는 엄마와의 추억을 붙잡을 수 있길. 엄마의 존재가 상실의 흉터가 아닌 사랑의 흔적으로 남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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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쓴 이야기의 여정
올해 초에 출판 편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편집 실무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책의 무엇을 구매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다른 것보다도 관점이 선명해서 흥미로웠다. 저마다 쉽게 대답할 수는 있지만 정답을 가늠하기란 어려운 그런 문제였다. 읽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니 책의 내용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책을 다 읽고 그 책을 팔면 기억이 사라지는가? 책이 더 이상 우리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우린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여타의 상품이라면 그럴 수 없다. 라면 한 봉지, 러닝머신, 양키캔들이나 책가방까지도 수중에서 사라지면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팔더라도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뭐 유별난 차이인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 얇고 세밀한 틈이 책의 지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작물이다. 저작권이 발생하는 저작물. 사상이나 감정, 아이디어와 같은 메시지를 일정한 표현 형식에 담으면 저작권이 발생한다. 그러니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정한 형태로 그 생각을 담아내야 한다. 저작물은 작가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책은 저자의 생각과 인격을 담아낸 저작물이다 보니 이를 편집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미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함께 책을 만들어간다는 마음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책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문장을 바꿔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전하고자 하는 말뜻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꼭 작가 혼자만의 힘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집자의 시선에서 비로소 더 정확해질 수 있으니까. 책을 만든다는 건 그런 점에서 파트너십이 필요한 일이다.
기묘한 협업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루시와 해리스의 관계만 한 상황이 또 있을까. 루시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냈던 신간은 혹독한 평가를 들었고 경영난에 회사를 팔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까지 몰려있다. 다시금 좋은 작가를 찾아 신간을 만들어 반등의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마침 발견한 작가가 해리스 쇼였다. 아버지 대에 이미 계약금을 지불했고, 계약에 따라 책을 한 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 한 권만 내고 50년째 신간 소식이 없었지만 유일한 기회기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다만 계약 조건이 있었다. 작가가 제출한 초고를 편집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책을 홍보해야 한다.
편집은 불가, 북투어는 가능. 인물들의 이유가 부딪히면서 상황은 흥미롭게 흘러간다. 아내와 사별한 후로 세상에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은 냉소적인 작가 해리스와의 북투어 과정은 험난했다.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그의 입장에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압류되어 빼앗길 위치에 놓인 집과 50년 전의 계약이었다. 노작가의 귀환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해리스는 그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을 뿐인 루시의 실력을 의심하고, 루시는 해리스의 상태를 못 미더워한다. 여하튼 신간은 나왔으니 어떻게든 책은 팔려야 한다.
그동안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을 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유독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건 '이건 일이니까 그냥 받아들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공동의 목표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의견을 아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두 사람의 전사가 밝혀지는 과정은 그래서인지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다. 서로를 신뢰하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여정이 성실하게 묘사되니까. 신뢰라는 것이 그렇다. 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눈에 번해야 믿는다.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신뢰에는 샛길이 없다. 빠르게 가로지를 방법도 없다. 관계에는 정독만이 존재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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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
넷플릭스 오리지널 <퀸메이커> 리뷰감독] 오진석, 문지영
출연] 김희애, 문소리, 류수영, 서이숙, 이경영, 진경
시놉시스]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던 황도희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스포일러 유의#
이토록 여성을 강조하는 정치물이 있었던가
퀸메이커를 보는 내내 상당히 이질감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여성’에 대한 강조였다. 과연 현실 정치판에서 여성에 대한 공약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선거가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만큼 현실 정치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앞세운다기 보다는 보통의 인권을 주력하고, 당장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개발 및 유치와 같은 경제 중심의 정책이 앞세우곤 한다. 하지만 퀸메이커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공약 설명이나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의 1분 발표 시간에는 여성을 위한 서울시라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부분이 기존 정치물과 상당히 달랐던 요소였다.
기존 정치물에서는 남성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정경유착을 주로 보여주면서 현실과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을 보며 관객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면, 퀸메이커에서는 현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정치의 주요한 쟁점이 되면서 오히려 시청자들이 이렇게까지 쟁점화되고 전면에 나올 수 있는 요소들이 왜 현실에서는 부각되지 않는 것일까? 그저 편을 가르고 서로를 비난하는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황도희의 복수는 왜 시작되었을까은성그룹의 전략기획실장 황도희. 그녀는 여론을 주무르는 이미지 메이킹 전략의 귀재다. 기업의 골치 아픈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면서 오너 일가의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충성을 바쳐왔던 은성그룹을 배신하고, 그들의 적이었던 오경숙 인권변호사를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 캠프의 단장을 도맡는다. 황도희는 그간 오너 일가의 수많은 범죄행위들을 무마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었던 적이 없진 않았으나 한이슬의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왜일까?
그 동일한 궁금증을 은성그룹의 사위 백재민 상무도 황도희에게 물어본다. 이제까지 수많은 리스크들을 처리해왔으면서 왜 갑자기 이젠 못하겠다고 하는지. 자신 역시 활도희 당신이 지켜야하는 오너그룹의 일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작품을 보는 내내 활도희가 왜 은성그룹을 돌아섰는지, 이제껏 이보다 더한 일들도 해온 그녀가 이 일로 돌아설만큼 정말 큰 일이고,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백상무라는 캐릭터를 통해 짚고 넘어가주고 있었다.
백상무는 어찌보면 오너일가로 편입된 사람이다. 본인도 그것을 느꼈기에 항상 황도희와 개인적으로 술을 마실 때면 자신은 황도희와 같은 입장이고 상황이라며 우리는 이 은성그룹 안에서 유일한 동지와도 같다는 표현을 자주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은성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실질적인 힘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의 은성그룹의 사위라면서 저지른 성폭행을 무마해달라고 황도희에게 노골적으로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저지른 살해 행위에 대해 거짓으로 황도희에게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황도희에게 들키게 되고, 황도희는 이런 백상무에게 윤리적인 경멸과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배신감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은성그룹 일가에게서는 느끼지 않았던 배신감이 기폭제가 되었고, 성폭행이라는 같은 여성으로서의 모멸감이 작용하여 백상무에 대한 복수심으로 은성을 떠나 오경숙에게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를 희망하며
전략가 황도희를 잃은 은성그룹은 사위의 과오를 덮고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전설적인 킹메이커로 유명한 칼 윤을 섭외해 온다. 그 과정에서 아주 다양한 음모와 범죄행위가 발생하는데, 황도희는 이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고 만다. 그저 백재민 상무를 시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은성그룹을 망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복수로 확장된다.
아내 은채령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백재민은 회사 주변의 여성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이용했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더 높은 자리에 앉혀주면서 그에 대한 보답을 했다. 국지연은 이러한 관계에 만족하면서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무기로 백재민을 잡고자 하지만 권력에 눈이 먼 백재민은 국지연을 살해하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 불륜과 혼외자는 너무나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지연을 자살로 위장하려 하지만 이를 알아챈 황도희와 오경숙은 결국 국지연을 살려내며 백재민의 추악한 모습을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만천하에 알린다.
어쩌면 드라마기에 짜릿한 권선징악으로 끝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이었다면 권력과 자본을 가진 백재민과 같은 캐릭터가 국지연이라는 인물을 자살로 위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퀸메이커는 계속해서 백재민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선택할 때마다 그 모든 행위를 하나씩 하나씩 벗겨나가면서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론을 통해서 우리 사회 속에서도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희망을 넌지시 심어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퀸메이커는 남성이 강조되었던 기존 정치물과 달리 캐릭터와 소재 모두 여성을 내세우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 정치와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준 웰메이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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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욕망과 불화하는 가부장제
8★/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이더르의 형수는 아들을 낳기 위해 네 번의 임신을 했으나 막 태어난 넷째 역시 딸이다. 아버지는 하이더르가 남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염소 도축을 지시하지만 하이더르는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메이크업 일을 하는 아내 뭄타즈와 달리 하이더르는 몇 년째 백수 상태여서 아버지와 형은 그를 은근히 무시한다. 가부장제가 살아 숨쉬는 그의 가족에서 가사노동을 돕고 조카들을 돌보는 하이더르는 번듯하지 못한 존재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취업 자리를 제안한다. MTF 트랜스젠더 댄서 비바의 백댄서 일이다. 안 그래도 남성성을 의심받고 조롱당하는 하이더르는 춤을, 심지어 트랜스젠더 뒤에서 출 수는 없다고 거절하지만 그러기에는 보수가 너무 크다. 가족 내 낮은 지위를 단번에 보상해줄 만큼 큰돈 앞에서 하이더르는 결국 댄서 일을 수락한다. 하이더르가 일자리를 얻자마자 아버지와 형은 뭄타즈의 경제 활동을 금지한다. 얼마 후 뭄타즈는 남자아이를 임신한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낳고 가사노동을 하는 가부장제의 질서가 복원된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부장제가 재확립되었음에도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역설이 생긴다. 하이더르는 열정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댄서 비바에게 매혹되고, 그가 댄서로서 큰 인기를 얻는 데 공헌하자 비바 역시 하이더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집에만 머물며 답답함을 느끼는 뭄타즈 역시 새로운 욕망에 눈을 뜬다. 밤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며 자위하는 남자를 몰래 훔쳐보며, 그 역시 자위를 시작한다. 하이더르와 비바의 일상과 친밀성은 아버지와 형이 구획한 질서와 조화하지 못하고 은밀한 곳에서 조금씩 그 궤적을 넓혀나간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가부장적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아버지는 행복할까? 아버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배우자가 죽은 옆집 여자와 서로에게 이끌린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고, 심지어 같이 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옆집 여자의 아들은 그런 짓은 집안의 수치라며 극렬히 반대하고,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피던 아버지도 자못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옆집 여자에게 더는 자신을 방문하지 말라고 선언한다. 당연히 진심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진심보다 체면과 규범이 더 중요할 뿐이다.
도대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가부장제의 덕을 보는 자는 누구일까? 하이더르의 형 정도인 듯 보인다. 직장이 있고, 자식이 있으며, 육체적 힘도 아직 상실하지 않은 나이의 장남. 그렇다고 그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는 딸만 넷이기에, 하이더르와 뭄타즈 부부가 아들을 낳는다면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대의를 상실할 것이다. 즉, 가부장제가 공고한 이 가족에서는 아직 천진한 아이들을 빼고는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
하이더르와 뭄타즈는 끝내 자살한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늘 행복할 자격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가부장제를 더 이상 온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뭄타즈는 아들을 품은 채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맞는다. 억지로 직장을 그만두고, 집 안에서도 감시당하는 자신에게 미래는 없음을 감각한 뒤의 선택이다. 하이더르도 마찬가지다. 비바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것이 실은 남몰래 숨겨둔 자신의 게이 욕망의 어긋난 발현이었음을, 즉 비수술 트랜스젠더인 비바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자기 욕망을 표출한 것이었음을 깨달은 하이더르에게도 미래는 없다. 가부장제하에서 퀴어 정체성이 불우하게 교차하는 장면이다. 더불어, 서로를 아꼈던 하이더르와 뭄타즈가 결혼 전 나눴던 짤막한 대화, 즉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집안 어른들끼리 결정한 결혼을 두고 두 사람이 가족 몰래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대화가 끝내 두 사람의 자살로 귀결된다는 것은 가부장제가 조그마한 숨구멍을 뚫어놓는 정도로는 견디기 어려운 체제임을 폭로하기도 한다. 누구도 온전히 행복할 수 없지만 누구나 그 권위를 인정하는 가부장제의 동시대적 곤경과 그로 인한 파국이 밀도 높은 드라마로 형상화된 〈조이랜드〉를 향한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유수 영화제의 호평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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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8? ?영화 제작사가 궁금하다고?!?
?씨나병의 영화정보 #8? ⠀ ?여덟 번째 주제? ⠀ ?영화 제작사가 궁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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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종착역> 30초 예고편
사진 동아리 '빛나리' 부원인 시연, 연우, 소정, 송희는
'세상의 끝'을 찍어 오라는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신창역으로 향한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친구들은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는 여정에 점점 지쳐가고,
낯선 곳에서 14살 첫 여름방학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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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쿠라우> 티저 예고편
미지의 땅 ‘바쿠라우’.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 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총격으로 구멍 뚫린 물 수송 차량,
하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
마을 곳곳에서 시신까지 발견되며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는데…
이곳에 절대 발 들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