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2-04 20:42:16
등이 꼿꼿한 사람
영화 <플랜75> 리뷰
SYNOPSIS.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플랜 75'의 세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POINT.
✔️ 초고령화 사회, 인간성을 잃어가는 듯 느껴지는 뉴스가 쏟아지는 지금, 볼 가치가 있는 영화
✔️ 주인공 ‘미치’ 역의 배우 ‘바이쇼 치에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소피 성우이기도 합니다. 극중에도 언급될 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 ‘미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 난 이게 미치 씨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눈여겨본 단편 감독의, 첫 장편 작품. 봉준호처럼 현실 인식이 서늘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처럼 풀어가지만, 그보다 단단하고 무게중심이 낮은 느낌입니다. 차기작이 벌써 기대됩니다.
✔️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주목받은 작품
✔️ 2월 7일 개봉
오래 전 누군가에게 들은 적 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그러니까 처음 5-10분은 그 영화를 이끌어가는 내용이자, 나중에 돌아보면 그 부분만 봐도 영화를 다 본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적극 동의하는 동시에 소름이 끼칠 것이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가 되는 ‘플랜75’ 정책은 결국 오프닝 시퀀스에 나온 사건을 아주 천천히, 공적인 탈을 쓰고, 풀어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권리인가? 이 질문은 결국 존엄사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논쟁이 언제나 편치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존엄’을 지킬 선택이겠지만,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죽음을 선택할’ 자리까지 떠밀린 사람들에게 마지막 버튼을 눌러 주는 것이거나, 의료라는 흰 베일을 뒤집어쓴 살인이 훨씬 많으리라는 기분 나쁜 예상 때문이었다.
유독 인물들의 뒷모습을 많이 담아낸 이 영화 속에서, 나는 마치 서래를 본 해준처럼 생각했다. 미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난 그게 미치 씨에 대해서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꼿꼿한 등처럼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이다. 꼼꼼하게 일하고, 퇴근해서 장 본 식재료를 정리하고, 베란다에 걸어 두었던 옷을 다시 들여놓는 사람. 퀴즈 쇼에 도전하고 상품을 노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도 그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정갈한 식사를 한다. 호기로운 도전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마음 같은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정하고 알뜰한 일상.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미치의 일상을 보지 않는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예산 들어갈 곳’을 줄이기 위해 7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존엄사 신청을 받는 국가에게, 미치는 그저 75세를 넘은 노인일 뿐이다. 국가가 국민을 죽이는 방법으로 명맥을 유지하다니. 누군가의 미래를 짓밟아서 도달하는 곳을 우리가 감히 미래라 불러도 될까.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미래는 무엇인가. 영화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좋은 영화가 으레 그렇듯, 무거운 질문에 답안이 될 수 있을 여러 가지를 그저 보여준다.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부유하지는 않아도 자기 일과 머리 누울 집이 있던 미치에게서, 국가는 그의 세상을 하나씩 잘라내고 몰아낸다. 죽음이 아니면 선택할 수 없는 자리까지 사람을 몰아세우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노인의 가난을 단지 그의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책 <가난의 문법>이 생각났다. 나아가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의 상관관계를 떠올리며, 노인 자살률이 OECD 압도적 1위라는 한국의 통계치 또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연 그러한 죽음은 ‘자’살인가? 미치를 끊임없이 몰아간 끝에, 라바콘 불빛이 경고등처럼 온통 붉게 번쩍거리는 어느 밤. 온통 빛이 번쩍번쩍하지만 온기는 없는 밤이 마치 이 사회 같았다.
온기 없이 휘황찬란한 세상에서, 미치는 계속해서 꼿꼿하게 걷고, 정갈하게 먹고, 조용히 배려하며, 더없이 예의 바른 언어를 구사한다. 그 중에서도 “신세(お世話)”라는 단어는 세 번 이상 쓴다. 이 단어는 사전에 “도와줌, 보살핌; 폐, 신세, 귀찮은 일”로 등장하데, 도움을 받으면서 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한 마음을 담을 때 쓴다. 꽃다발을 받으며 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의 의미로, 플랜75 상담원과의 첫 통화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통화에서 “마지막까지 신세 지게 되네요”로 차차 등장한다.
기초 일본어 회화에서 배우는 문장인데, 퇴직하면서 마지막으로 사물함을 깨끗이 닦고 감사 인사를 남기는 미치의 성격상 자연스러운 문장인데, 유독 귀에 툭 걸렸다. 생각해 보면 이 영화 속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단어들은 죄다 귀에 툭툭 걸렸다. 스스로에 대한 낮춤말이 존댓말 못지않게 발달한 일본어에서는 과히 이상할 게 없는 표현들인데, 왜 그 겸양의 표현들이 마음에 걸렸을까. 공적인 탈을 쓰고 무례한 죽음이 판을 치는 세상에 끝내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건 아닌지.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장애인에게도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문장만큼이나, 노인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말 또한 당연한 소리다. 너무 당연해서 흰소리처럼 느껴져야 하는, 힘주어 말할 필요 없는 문장이어야 한다. 당연히 노인은 ‘우리’와 ‘그들’로 나뉘는 개념이 아니어야 하며, 사람이니까 당연히 다르지 않다. 그 모습이 무너진 세상을 표현하면서도, 오히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인간의 면면을 비춘다.
미치와 직장 친구들의 대화,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보면 젊은 직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 영화 속 젊은이들과 노인들은 여러 차례 같은 자리에 선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 기차 차단봉 앞에 잠시 서는 것은 미치도 히로무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플랜75로 사망한 노인들의 짐을 정리하고 물건을 털어 보는 마리아와 동료의 모습에서는, 누구라도 아우슈비츠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서로, 그리고 현실의 어떤 면과 끊임없이 공명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르냐고.
비슷한 스토리라인을 담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에서 주인공 프레드가 남겼던 말, “너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게다”는 문장이 그렇게 이 영화에서도 우리에게 파고든다. 플랜75는 노인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하지만, 히로무와 요코를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는 더 큰 내상을 입히고 있음이 영화에 절절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 속 ‘플랜75’가 지향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성과로 들이미는 것은 “경제적 파급 효과”다. 그건 정말 좋은 것일까? 어쩌면 그건 군더더기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부가 가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밭에서 “농작물 가격을 잘 쳐주지 않다” 수확할수록 손해가 나서 농작물을 갈아엎는데, 마트에서는 너무 비싸서 못 사먹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면, 이 ‘부가’된 것은 가치일까 군더더기일까. 그 군더더기를 만들기 위해 진짜 중요한 가치들을 버린다면, 그걸 어떻게 부가 가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팔을 베고 식탁에 엎드린 미치가 이내 응시하는 어둠. 낮잠에서 깨어난 마리아가 같은 자세로 팔을 베고 응시하는 어둠. 그 시선 끝에, 절대 자구책이 될 수 없는 군더더기가 구더기처럼 우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등에 이야기를 매달고
친구에게 몇 번씩 걸어도 도저히 가 닿지 않던 미치의 전화는, 역설적으로 플랜75 상담원과 연결되면서 그제야 전화기의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비록 마음 주고받는 일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상담에 타이머로 시간 제한을 걸고 있고, 우리가 아는 가치들에 붙었던 이름(예컨대 “용기”)을 뒤죽박죽 섞어 쓰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연결이지만… 그 연결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귀여운 하이파이브가 있고, 멜론 소다 아니 크림 소다의 추억이 있고, 지나간 시간이 한 결씩 곱게 펼쳐지고 겹쳐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역할로 단단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모든 등장인물을 품었던 바에쇼 치에코의 목소리로, 꼿꼿한 등으로 해주는 이야기들은 어쩐지 자꾸만 더 듣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히로무 삼촌의, 어쩐지 지친 듯한 등과 방에 놓인 물건들의 이야기도… 어쩐지 더 듣고 싶어서 슬퍼지는 기분이었다.
영화가 마지막에 가까워 갈수록, 어쩐지 나는 “생은 존엄이구나”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화 속 ‘플랜75’ 광고에서는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는 순간은 선택할 수 있다”고 호기로운 광고를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깨달음을 준다. 태어남을 선택할 수 없었듯, 죽음도 선택할 수 없는 자리에 남겨두어야 맞겠구나.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을 만큼 두려운 것이지만, 그것이 생의 본질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당신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도 궁금하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말마따나, 계속해서 흑백의 명확한 답을 요구하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아주 복잡하고... 중요한 이야기들은 회색 지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플랜75' 식이 아닌 답을 찾아내려면, 이 영화가 던진 무거운 질문에 우리 각자의 답을 하나하나 꽃다발처럼 풍성하게 엮어내는 편이 좋을 테니까. 내가 이 영화에서 엿본 것은, 정말 너무 무거워서 좀처럼 쓰고 싶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생의 존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삶이 바닥을 쳐도 생은 존엄하다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삶의 어느 순간, 결기 어린 눈빛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때가 있을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식의 부드럽고 달콤한 말로 로맨스 영화처럼 혹은 청춘 영화처럼 갈무리할 수 없는 엔딩이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꼿꼿한 등으로 서서, 나의 노래를 한 소절 부르고 또 발걸음을 옮기면 그저 그뿐이다. 이 생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꼿꼿한 등에 이야기와 노래를 매달고 걷는 것뿐이다. 여전히, 저는 그게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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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면 팔수록 현혹되는 씻김굿!
(이 글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 몸이 아팠다. 마치 134분동안 신비롭고도 무서운 기운이 한데 몰아치는 가운데, 신명나는 굿판을 체험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파묘>는 여러모로 에너지가 상당한 작품이다. 한국형 오컬트의 길을 더 확장한 장재현 감독은 물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게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는 일명 ‘묘벤져스’ 배우들은 그 에너지를 한 데 모아 도깨비불처럼 관객을 끝까지 현혹시킨다. 후반부 새로운 이야기가 다소 생경스러움을 줄지언정 이 굿판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할 정도. 뭐가 나온다 한들,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감독의 뚝심은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한다.
실력 있는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미국행 비행길에 오른다. 기이한 병이 장손에게 대물림되는 집안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 대번 조상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낸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거액의 의뢰엔 의심과 위험이 따르는 법. 묫자리를 본 상덕은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를 보고 이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파묘를 시작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생기는 기이한 이들이 벌어지고, 결국 이들은 험한 것들과의 전면전을 치른다.
<파묘>는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 <사바하>의 장점을 고르게 가져간다. 서울 명동에서 펼쳐지는 엑소시즘, 기독교과 불교, 사이비 종교의 만남 등 이질적인 것을 붙였을 때 느껴지는 신비로움과 그로테스크함이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특히 풍수와 의례, 무속신앙과 국가를 넘은 초자연적 현상이 함께 맞물리며, 악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과 작품 전반에 깔린 기묘한 매력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검은 사제들> 보다 이야기 층을 두텁게 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 <사바하>보단 더 쉽고 직관적으로 가져가려는 감독의 의도가 담기며 그 장점이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부터 크게 전후반(전반부는 불교 후반부는 사이비 종교)을 나누어 이야기의 전복을 꾀했는데, <파묘>에서도 그 방식을 이어간다. 영화는 첩장(관이 두 개)된 묘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전반부는 파묘 이후 악의 기운을 가진 혼령의 비밀과 이를 없애려는 묘벤져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의뢰자 집안의 진실이 숨겨진 채로 행해지는 화림의 대살굿과 파묘, 이장 과정은 이후 괴이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을 계속 부여하며 이야기를 주시하게 만든다. 감독은 이 분위기를 계속 가져가기 위해 최대한 숨겨진 진실의 빗장을 서서히 풀어가고 혼령의 모습을 절제하면서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취한다. 빛과 어둠의 대비와 교차 편집을 통한 극적 긴장감도 유지해 나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두 번째 파묘 이후 이야기는 오컬트에서 어드벤처 크리처물로 장르의 변화를, 개인에서 민족으로 대상의 변화를 꾀한다. 기존 관보다 더 깊숙하게 박혀 있는 관의 봉인이 풀려 ‘험한 것’이 나오며 비로서 이 묘가 왜 생겼는지를, 산 주위에 왜 여우들(여우 음양사)이 있었는지, 그 관이 가로가 아닌 세로로 묻혔는지(쇠말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다. 그리고 묘벤져스는 쇠말뚝과 같은 관 속의 험한 것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또 한 번 대결을 치른다.
이야기와 장르가 전복되는 후반부는 다소 당황스럽다. 일단 악의 실체가 보이는 순간, 전반부에 고조되었던 쫀쫀한 긴장감은 풀려 버린다. 장르 선택에 따른 이 결과치에 악령을 퇴치하기 위한 목적이 애국주의로 모이면서 생기는 낯간지러움이 더해진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이 생경한 이야기는 그 목적을 이해하면 달리 보인다. ‘과거의 것을 들춰서 잘못된 것을 꺼내 없앤다’는 게 실제 ‘파묘’를 하는 목적이자 필요성이다. 위험 부담을 안고도 감독이 뚝심 있게 후반부 이야기를 밀고 나간 건, 개인에서 민족, 더 나아가 우리의 땅으로 대상을 확장하며 그동안 감춰져 곪아 터진 상처와 고통, 아픔의 근원을 꺼내 없애는 의미를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숨겨진 진실(혹은 이름)을 찾으며 개인과 사회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마주하게 하고, 결국 이 과정을 통해 얻는 작은 희망을 그린 전작들을 미뤄봤을 때 이번 이야기는 일본 제국주의라는 우리 민족의 어둡고 공포스러운 존재를 심연에서 끌어올려, 상처를 치유하고 두려움을 몰아내는 씻김굿처럼 보인다. 이에 걸맞게 영화는 음양오행이란 가장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섭리로 ‘험한 것’에 대항한다. 장르 전환에 따른 낯설음을 바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영화가 품은 의미는 물론, 이야기 확장성을 위해 일정한 방향으로 ‘파묘’하는 감독의 뚝심은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다.
관객이 끝내 설득당하는 건 배우들의 호연도 영향을 미친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 각 역할에 맞게 그 선을 지키며 공조하는 연기가 돋보인다. 극중 각 영역 전문가라는 특성에 맡게 이어달리기처럼 그 순서가 되면 곧바로 바통을 전하듯 이들의 협업은 마지막까지 극적긴장감을 올린다. 특히 초반 대살굿으로 가장 확실한 인장을 찍는 김고은은 물론, 땅파먹고 산 경험을 토대로 일본의 ‘험한 것’ 을 향해 일격을 가하는 최민식, 이들과 함께 자신의 역량을 100% 표출하는 유해진, 이도현의 연기 등 이들의 앙상블은 영화에 힘을 더한다.
<파묘>에서 다룬 이야기가 어떻든간에 장재현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오컬트 장르를 길을 열어가고 있다. 후반부 봉길의 병실에서 먹을 것을 놓고, 그에게 깃든 ‘험한 것’을 불러내기 위해 구라액션을 펼치는 화림과 동료 무당인 광심(김선영), 자혜(김지안) 장면은 우리만의 엑소시즘을 멋스럽게 변형한 장면이다. 이뿐인가? 다수의 장면에서 이런 감독의 한국적인 오컬트 요소와 장면을 만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런 말을 전했다. “진보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을 하고 나아가야 했다. 이 영화가 그 결과물이다.” 감독님이여~ 그 마음 변하지 말고 한 길 우직하게 열심히 파묘하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본 이후에는 꼭 소금 사시 뿌리시길. 국내산 천일염으로. 그것도 씨알 굵은놈으로다가!
사진 출처: 쇼박스
평점: 4.0 /5.0
한줄평: 파면 팔수록 현혹되는 씻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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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성보다는 감독의 고집이 더 중요했다
90년생들은 알 것이다. 정도에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지브리와 해리포터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그런 추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브리의 신작이 나온다는 사실은 설레이게 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브리의 최근작들이 조금 주춤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신작들도 거의 10년은 된 작품이니 새로운 지브리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들 하던데 그 팬심 하나로 영화를 보러 갔다. 보고나니 느껴지던 것은 영화가 정말 관객의 눈치를 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이 어떤 것을 보여줘야 좋아할까를 고민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예술혼과 철학을 담는 데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관객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일념이 보여서 좋았다.
1. 인류애가 사라진 전쟁의 시기, 선택에 갈림길에 선 주인공
이 영화의 중요한 화두는 죽음이다.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고, 죽음을 목도한 이들도 있고, 죽음을 방관한 이들도 있다. 전쟁의 시기에 들어서면, 여러가지의 방식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생겨난다.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마히토는 어느 날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괴기한 새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어떤 환상의 세계로 인도된다. 그 세계는 새 생명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태초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 같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 세계인 것은 확실한데, 그 곳에서 마히토는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의 젊은 나날을 보게 된다. 미래에 화재로 죽게되는 그녀는 태초에 세계에서 불을 다루는 것을 보니 그녀의 삶에서 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매개체인 것 같다. 이런 세계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운명은 어쩌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결국 만나게 되는 어떤 매개체는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삶에서는 그것이 글인 것 같은데, 글 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은 직업으로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먹고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아무말 대잔치 글을 써내고 있는 것을 보면 철자와는 뗄 수 없는 걸까 생각한다. 아니, 그냥 이과적 머리가 없는 인간의 변명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운명은 결국 정해져 있는 걸까 싶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현재의 집중해야 한다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니 어떻게 할 수 없으나 현재, 미래는 결국 한 인간의 선택으로 결정되는데, 현재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나의 미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거지같은 과거에 얽매여 있을 것인지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마히토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과거에 매여 있었다면 어머니를 죽였던 전쟁의 광기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축할 수 있는, 자신만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그 세계에 남아 있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히토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거지같은 현실이라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을 도피해 새로운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 보다는 현실에 부딪혀 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이해했다.
2. 다소 허무한 결말
영화가 전체적으로 친절하진 않다. 결말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마히토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등등 모험을끝내고 돌아온 그의 모습을 끝으로 뒷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아 엥? 스럽긴 하다. 뭐, 돌아오고 바로 끝나는 게 어딨어 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니 약간 구운몽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걸까. 꿈에서 깨어난 마히토의 삶은 관객이 알아서 상상하라는 뜻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마히토는 그 곳에서의 경험들을 점점 잊어갈 것이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해 결국 그의 인생의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어머니의 죽음을 덜 떠올리게 될 것이고 새엄마와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 생활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마치 불로 인해 죽게 되었어도 '널 낳았던 멋진 일'을 놓칠 수 없다는 마히토 엄마의 말을 곱씹고 있자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다보면 간헐적으로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나의 과거가 거지같았을 지언정 이 거지같음이 영원하지 않고, 뜻밖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 것이기에 한 번은 살아볼 만 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라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었다.
영화가 친절하지 않으면 보는 동안에는 당황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곱씹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정답을 찾으면 그걸로 영화 한 편 다 본 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가 정확하다 못해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영화들이 더 비호감을 느껴질 때가 있다. 이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관객에게 메시지를 정확하게 구현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여기저기 숨겨놓은 듯하다. 그리고 마무리조차 정확하게 짓지 않았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이긴 한데, 모든 해석의 자유를 관객에게 넘긴 것 같다. 혹자는 그걸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혹자는 어떻게든 의도를 찾아내고자 기를 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답을 찾아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
그 결론이 뭐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어떻게 보면 지독히도 예술가스러운 그의 기질이 느껴져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계속 타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영화로 돈을 버는 사람이지만 뚝심이 없는 것만큼 멋없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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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5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새로운 범죄 스릴러를 선사할 <리미트>의 개봉부터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멘틱 에러>의 극장판 개봉까지!
그럼 8월 다섯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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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영화
리미트
ⓒ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한국 | 87분
감독: 이승준
출연: 이정현, 문정희, 진서연 등
개봉: 2022.08.31
배급: TCO(주)더콘텐츠온,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줄거리
아동 연쇄 유괴사건 발생으로 수사를 위해 피해자 엄마 대역을 맡게 된 경찰 ‘소은’(이정현)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도중
‘소은’은 누군가로부터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범인은 대역이 아닌 ‘소은’과의 협상을 요구하는데…관전 포인트
충무로를 대표하는 세 배우 이정현, 문정희, 진서연 배우가 만나 선보일 압도적인 시너지가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리고 <기생충>의 박명훈 배우, <마약왕>의 최덕문 배우, <모가디슈>의 박경혜 배우가 출연하며 극의 다채로움과 풍성함을 더했다.
34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스파이>의 이승준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인만큼 기대가 큰 작품이다.
시맨틱 에러: 더 무비
ⓒ 네이버 영화
개요: 로맨스 | 한국 | 177분
감독: 김수정
출연: 박서함, 박재찬 등
개봉: 2022.08.31
배급: (주)왓챠
줄거리
컴공과 '아싸' 추상우의 완벽하게 짜인 일상에 에러처럼 나타난 안하무인 디자인과 '인싸' 장재영,
극과 극 청춘들의 캠퍼스 로맨스가 스크린으로 펼쳐진다!관전 포인트
처음으로 극장판을 선보였던 제 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이 되며,
<시맨틱 에러>의 인기를 입증했다. 극장판에는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 추가되어 더욱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썬다운
ⓒ 네이버 영화
개요: 미스터리 | 멕시코 | 82분
감독: 미셸 프랑코
출연: 팀 로스, 샤를로뜨 갱스부르 등
개봉: 2022.08.31
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줄거리
부유한 영국인 닐(팀 로스)은 여동생 앨리스(샤를로트 갱스부르) 가족과 멕시코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어머니 사망 소식을 듣는다.
닐은 여권을 잃어버렸다며 가족들을 먼저 영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유유히 어느 해변으로 들어가 일광욕을 즐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그의 일탈은 예상치 못한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데…관전 포인트
올해 초 봉준호 감독이 2021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선정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썬다운>.
그 뿐만 아니라 202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작으로 선정되며 전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노스맨
ⓒ IMDB
개요: 드라마 | 미국 | 137분
감독: 로버트 에거스
출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안야 테일러 조이 등
개봉: 2022.08.31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10세기 아이슬란드, 숙부를 향한 '암레트' 왕자의 복수극을 그린 영화
관전 포인트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영화 최초로 한국에 개봉하는 영화인 <노스맨>.
미국의 유명 평론 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토마토 신선도 지수 89%로 높은 비율을 유지하고,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안야 테일러 조이, 니콜 키드먼, 윌럼 대포 배우 등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며 기대를 높이고 있다.
OTT 공개 예정작
코다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1분
감독: 션 헤이더
출연: 에밀리아 존스, 퍼디아 월시-필로 등
공개: 2022.09.01
스트리밍: 넷플릭스
줄거리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관전 포인트
오스카에서 3관왕을 했을 뿐더러 이외 유수 영화제의 135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58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라라랜드> 음악 감독이 작업했으며, <싱 스트리트>의 주연 퍼디아 월시-필로가 출연해 개봉 전부터
뮤지컬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파 앤드 어웨이
ⓒ IMDB
개요: 드라마 | 미국 | 140분
감독: 론 하워드
출연: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등
공개: 2022.09.01
스트리밍: 넷플릭스
줄거리
19세기 아일랜드의 두 남녀가 미국으로 건너온다. 각자 떠나온 이유는 달랐지만
낯선 땅의 여정을 함께하는 두 사람.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견디는 가운데 어느새 사랑을 발견한다.
관전 포인트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으며,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배우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론 하워드 감독의 역동적인 연출과 광활한 스케일로 눈을 즐겁게 만드는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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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익명의 목격자 되기
감독] The Myanmar Film Collective 미얀마 영화 집단
프로그램 노트] 2021년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이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문자 그대로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 또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안전과 자유를 찾아 반강제적으로 집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시민들이 무려 20만 명에 달한다. <미얀마 다이어리>는 정부의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는 행동들을 작은 카메라로 담은 작품이다. 공권력의 무자비한 인권 침해, 거리로 나선 용감한 시민들의 모습 등 카메라가 기록한 내용만큼이나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끝까지 익명으로 남아야 했던 감독과 스탭들의 존재로서,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기 이름조차 밝힐 수 없는 이들의 상황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미얀마 다이어리>의 엔딩크레딧이 다시 만들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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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벽에 균열이 있어서, 그 틈에 대고 바깥을 향해 연신 진실한 이야기를 속삭이던 여인이 있었다. 그 속삭임이 온 나라에 퍼져 마침내 백성들이 힘을 모았고, 억압된 나라가 해방을 맞았다는 미얀마의 옛이야기가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어린 자식을 무릎에 앉히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희망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지 깊이 각인해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김소연, <시옷의 세계>에서 발췌)
2012년에 나온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을 2022년에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다. 책이 출간되던 즈음 아웅 산 수 치는 가택 연금에서 벗어나 국회 보궐선거에 당선되고, 강산이 두 번쯤 바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2년 지금, 군부는 쿠데타 이후로 그의 구금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그에게 형량을 추가하고 있다.
처음에는 미얀마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긴장이 되었다. 몇 년 전 홍콩에서 있었던 일처럼, 사람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끌려가는 것이 두려웠다. 안전모를 쓰고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의 용기를 카메라 너머로 보면서, 안전한 관객석에 앉아서도 조마조마한 불안을 가득 느꼈다. 왜 그들의 모습은 늘 닮아있을까. 안전모와 마스크 뒤에 가려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남은 핏자국, 그를 둘러싼 꽃 몇 송이도 달라지지 않는다. 분명 1980년의 광주를 비롯한 언젠가의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양이었을 것이다.
카메라, 무기가 되다
얼굴과 이름을 가린 거리 위의 시민들처럼, 영화인들 또한 익명성 안에서 작업을 했다. 이 영화는 쿠데타 이후 영화인들이 목도하고 사유한 것들의 조각 모음이다. 핸드폰으로 찍은 급박한 순간의 풋티지 영상부터, 짧은 이야기, 은유적인 장면까지 다양하게 들어 있다. 각자 다른 상황에서 다른 색채로 담긴 여러 사람의 작업물이지만, 동일한 제작 의도가 모든 영상을 뚜렷하게 관통하고 있다. 이들은 미얀마의 상황을 유혈 사태나 내전으로 부르기보다 혁명과 투쟁으로 부르고자 하고, 이 영상을 찍을 때보다도 더욱 어려워진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이 점차 닿지 않는) 상황에 국제적인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고자 한다.
중간중간 은유적으로 극화된 장면들이 있기는 하나, 이것이 다큐멘터리임을 생각할수록 정신이 아득해진다. 영상 속 시민들은 거리에서 누군가 총에 맞는 순간을 목격하거나, 자신을 붙잡으러 온 경찰이 총을 쏘는 소리를 듣거나, 가족을 붙잡으러 온 경찰을 맞닥뜨린다. 어린아이조차 분명하게 알고 있다. 체포의 사유도 밝히지 않고, 영장을 제시하지도 않으며, 미란다의 원칙을 말해주는 법도 없는 이 경찰들이 온 이상 가족을 다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에 이들은 말하고 외치고 기록한다. 아이들은 엉엉 울면서도 엄마를 끌고 가지 말라고 또박또박 말하고, 총소리를 듣는 시민은 내 발로 나갈 테니까 제발 쏘지 말라고, 지금 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다고 외치고, 눈물을 참는 딸들이 아버지의 체포 사유를 밝히라고 요청하면서도 핸드폰 카메라를 꼭 쥐고 있다.
영상 속 군경들이 촬영을 꺼리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카메라는 무기가 되었다. 돌과 총에 맞서는 무기가. 귀신을 쫓는다는 관습의 발현이자 시위의 상징과도 같았던 냄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시위의 도구가 되었다. 경고 알림음인 동시에, 총소리에 맞서는 소리다.
너희는 모두 박제되었다
카메라를 쥔 이들은 여전히 익명성 안에 있지만, 카메라에 담긴 이들은 모두 이렇게 영구히 박제되었다. 무장 군경이 아무리 철모를 눌러쓰고 촬영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더라도, 사복으로 자기를 감추고 쇠막대로 시위대를 마구 때려도, 순간들은 모두 카메라로 영구히 남아 이렇게 멀리 다른 나라 극장에서까지 상영된다.
그러나 카메라가 무기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목격자의 존재가 보장될 때다. 카메라로 담은 결과물을 보는 이들의 눈이 있을 때. 그들의 눈이 눈총으로 기능할 수 있을 때. 여기서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이 영상물이 관객의 망막에 맺히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상 속 너희는 모두 박제되었으며 이 기록물은 언젠가 역사가 될 것이다, 생각하며 목격하는 자들의 존재가 카메라를 무기로 만든다.
이를 알기에 미얀마 영화 집단은 엔딩 크레딧 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톺아보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시민들의 이름과 함께 제작자의 이름도 익명성 안에 담아 결을 같이 했다. 그 점이 마음 한 구석을 착잡하게 하면서도, 관객 각자의 존재를 호명하는 듯한 울림을 주었다. 이 영상에 박제된 모든 것들을 함께 목격한 사람들. 그렇게 시민과 제작자, 관객까지 모두 '익명의 목격자'라는 카테고리로 하나로 묶인다. 만석에 가까운 관객석의 존재가 위로가 되었다.
위험해지는 희망
더 이상 '왜'를 묻거나 대의를 외치기에는 너무 잔혹한 폭력에 감싸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희망과 절망이 랜턴처럼 손쉽게 따각따각 켜지고 꺼지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어서 영화 속에는 다양한 희망과 절망의 은유가 등장한다. 빛과 벽 사이 그림자로 새를 날려 보기도 하고, 차마 새기지 못한 나비 무늬 문신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반지 낀 두 사람의 손만으로 관계와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냄비를 두드리고 치마를 걸어놓던 초기에 비하면, 시민들의 저항은 확실히 '위험'해졌다. 이들은 더 이상 시위로만 맞설 수 없어 정글에 들어가 총탄을 쏘는 훈련을 하기도 하고, 망명하기도 하고, 그 모든 순간이 이 영화에도 담겨 있다.
시민이 무기를 들게 한 것은, '위험'한 존재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적으로 돌리는 건 얼마나 미련한 행위이며, 그 결과는 얼마나 처절한가. 누군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고 피를 흘리고 끌려가고, 무너지는 삶의 자리들을 염려하고 갈등을 빚는 것. 누구도 서로의 머릿속을 지배할 수 없는, 단지 영향만 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하기에는 너무 너절한 행위가 아닌가?
70분의 짧은 영상물 속에서도 시시각각 변해온, 그리고 지금은 더 나빠졌다는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뿐이다. 이들의 같이 있음. 누군가의 부재(不在)에서 맡아지는 서늘한 폭력의 냄새에 맞서, 나란히 함께 존재하는 것.
지금 여기, 우리가 하필 같이 있을 때, 우리가 같이 있는 이유가 만들어진다. 이유는 변한다. 세밀해지고 증식된다. 절망과 두려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밥처럼 마주앉아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사이로 희망이 끼어들어 이유를 완성한다. 희망을 싣고 달리기 때문에 희망버스가 아니었다. 달리다 보면 희망이 실리기 때문에 희망버스였다. (김소연, <시옷의 세계>에서 발췌)
전혀 다른 상황에서 나온 문장이다.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움직임이었으며, 김소연 시인의 글 또한 해당 주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가 닿았다. 인간의 희망과 절망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순간, 상황은 매우 다를 수 있어도 그 상황에 맞서는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 결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랜턴처럼 손쉽게 끄고 켤 수 없는 희망과 절망 앞에서, 이유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마음도 뭉그러지는 앞에서, 하필 같이 앉아버린 관객석에서 빌어 본다. 익명 안에 가려진 모두의 안전과 무운을. 언젠가 다시 들려올 소식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미얀마 다이어리> 상영 일정표]
10월 08일 11:30 CGV센텀시티 7관
10월 11일 18:30 CGV센텀시티 1관
10월 12일 10:30 영화의전당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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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칸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휩쓸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기생충>의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로 경력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새 드라마 <노 웨이 아웃>에서 하차, 이어 다른 영화들의 개봉이 늦춰지면서 연예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예매 30만명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예매 관객수 30만명을 넘기면서 박스오피스 1위를 예약했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의 이야기를 그리며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에 간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마히토는 왜가리와 함께 이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바비>, 11월 1일 아이맥스 재개봉
올해 글로벌 최고 흥행작 <바비>가 오는 11월 1일 아이맥스 재개봉을 확정했습니다.
2023년 글로벌 최고 흥행작 등극, 여성 감독 단독 연출 작품 중 최초로 10억 달러 흥행 수익 돌파 등 영화
<바비>는 수많은 기록을 세우며 영화 역사를 뒤바꾼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이선균 <기생충> <잠> 승승장구 중 빛바랜 커리어
배우 이선균이 23일 마약 투약 혐의로 결국 형사입건되었습니다. 경력 최절정기에 스캔들에 휩싸인 그는
경찰이 이선균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고, 마약 사건에 강남 유흥업소 실장 여성이 연루되어 있어
연예계에서는 유아인보다 이선균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정재·이순재·조인성, '제13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수상
스테이지28에서 열린 올해 시상식에서 이정재가 <제13회 아름다운예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은 매년 영화 및 연극분야의 한해를 마감하면서 뛰어난 활동을 한 대표적인 예술인을 두고 5개 부문 수상자를 선정, 총 1억 원의 시상금과 상패를 수여합니다.
日 로맨스 대표 이와이 슌지 감독 7년만에 서울 온다
일본 로맨스 영화 대가 이와이 슌지 감독이 새 영화 <키리에의 노래>로 한국을 찾는다고 합니다.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 키리에의 친구 잇코, 사라진 연인을 찾는 남자 나츠히코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음악으로 엮어가는 작품으로 감독은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단단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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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 봤었어도 재밌는 폐쇄 산장 스릴러물
난 오늘도 혼자 카페에 왔다. 이게 불만이란 건 아니다. 바로 옆자리에 여자분 둘이 앉아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에어팟을 끼고 있어서 뭐라고 들리지는 않는다. 오. 한 분은 그냥 반팔을 입었다. 벌써 반팔을 입나? 싶다가도 4월 말의 제주는 또 반팔을 입어야 시원하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옆옆자리에도 여자분 둘이 앉았다. 바로 옆자리의 여자분들과는 다르게 큰 목소리가 에어팟을 뚫고 들어온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까르르 웃고 있다. 빤히 쳐다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볼 필요는 없을 테니 그냥 내 모니터에만 집중했다.
모니터에 집중하니 왠지 생각 안 나는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아무 말 대잔치로 내용을 줄줄줄 쓸 수 있을 것 같다. 별다른 것 없이 힙한 카페에서 친구들과 대화하는 사람들만 봤는데 갑자기 할 말이 생긴다. 그러니까, 왜 영화를 보기 시작했더라?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이 인간적으로 할 이야기 정도는 있어야지. 2022년의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이놈은 뭐하는 놈일까'싶었을 때, 난 사람들과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래서 실없는 이야기만 하곤 했다. 그래서 영화 한창 좋아할 때 그냥 사람들이랑 다양한 대화를 해보고 싶어 덕질(?)을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 본 <박하사탕>이나 <문라이트> 같은 영화들이 가벼운 작품이 아니기도 하고 그때 썼던 글도 그런 느낌들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지금의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원래 사람 살면서 가볍게 재미있는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부담 없고 뒷맛도 깔끔하다. 또 그런 이유로 내가 그냥 순수 재미로 가득한 영화들에 어느 정도 호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이거야 말로 오히려 영화 보는 이유지! 재밌으면 좋은 영화다!
도망치듯 빠져나와
주인공 다비는 마약중독자다. 치료 센터에서 마약중독 해소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다. 다비는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그렇게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느 날 가족에게 전화가 온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전화였다.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센터. 어찌어찌 전화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통해 가족과 연락하고 이내 집으로 갈 채비를 마친다. 차를 타서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역시 삶은 원하는 걸 한 번에 가져다주지 않는다. 한 번에 쭉쭉 향하면 좋았을 걸 밖에는 폭설이 내렸다. 어쩔 수 없이 어느 산장에 도착하게 된다. 산장에는 중년의 남, 녀 둘과 어쩐지 주위 산만해 보이는 남자 하나, 또 건장한 남자가 있다. 다들 목적지가 있지만 날씨가 이런 탓에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산장 속 일행들은 게임을 하기로 한다. 카드 게임이었다. 그런데, 그냥 모르고 지나치면 좋았을 사실을 알아버렸다. 산장 밖에 덩그러니 주차돼있는 차를 지켜보니 웬 아이가 납치되어 있었다. 아이는 어떤 병의 영향으로 긴 시간 동안 약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된다. 밖에는 폭설이 몰아치고 무기도 없으며 경찰도 오기 어려운 이 상태. 주인공 다비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산장에서 온갖 노력을 기한다. 아이를 구하고 산장에서 탈출하는 것이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밥 같은 서스펜스
1) 폐쇄된 공간 2) 날씨 안 좋음 3) 통신까지 안됨 4) 뭔가 불안해 보이는 인물. 이 네 가지가 이 극에 설정된 배경이다. 이런 영화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올드>도 살짝 비슷한 느낌이고 <23 아이덴티티> 역시 그랬다. 이런 긴장감 사실 익숙하다. 특히 눈 오는 산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사골보다 더 상위 개념을 갖고 와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긴장감은 좋았다. 이 이유로 흑막의 정체를 들고 싶다. 왠지 다른 스릴러물과는 다른 템포였다. '범인이 누구냐?'를 통해 주는 영화적 재미를 포기하고 후반부의 빠른 템포를 선택했는데 선택지를 잘 고른 느낌이다. 공간적 배경이 많이 익숙함에도, 또 이런 장르영화가 가져다주는 비꼼과 조소가 식상함에도 극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갈등 구조를 다른 템포로 비틀었기 때문이었다.
또 인물 설정도 괜찮았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구석이 있던 것도 맞지만 절묘하게 클리셰를 비틀었다. 이 역시 흑막의 정체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무슨 코멘트를 하면 그냥 대놓고 결과를 말해주는 셈이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극을 보다 보면 '어 좀 의외다' 싶은 부분이 있다. 이 외에도 인물의 처지 변화도 신선했다.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미국 독립영화가 이런 느낌일까
저번 주에 <태어나길 잘했어>를 극장에서 보고 왔다. 우리나라 독립영화를 보다 보면 새로운 배우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나름 한국영화 팬이라고 생각했는데 홍상표 배우 빼고는 다 초면인 분들이었다. 뭐 이건 <꿈의 제인>을 보고 구교환, 이주영, 이민지 배우를 처음 알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 역시 좀 생소한 배우들이 나왔다. 이런 신선함은 영화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가끔 할리우드에도 나오는 배우들이 나오는 것 같다는 식상함을 느끼곤 한다. 황정민. 정우성, 이정재, 이병헌, 최민식, 송강호 배우 연기 잘하는 거 아는데 너무 자주 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맥락이 해외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정신병 걸린 천재 베네딕트 컴버배치, 능력 있는 섹시가이 다니엘 크레이그, 기상천외한 세상 속에서도 꿋꿋한 에밀리 블런트, 속에 쌓인 거 많은 제시 플레먼스, 시간 여행하는 레이철 맥아담스, 말 많은 라이언 레이놀즈까지 할리우드도 은근 섭외 클리셰 있다. 뭐 이 배우들이 그만큼 스타성이 있으니까 중용받는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인물만 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곤 한다. 이 영화는 신선한 얼굴을 보여주며 보다 더 다른 방식의 이야기 전개에 힘을 부여한다.
OTT의 장점이 이런 거지 뭐
<오징어 게임>이 인기를 끌었을 때가 생각난다. 난 솔직히 그게 그렇게 인기를 끌 거라고 생각 못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각본의 구멍이 좀 많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청 대박이 터졌다. 이 덕에 배우들이 엄청나게 유명세를 탔다. 특히 새벽 역을 맡았던 정호연 배우는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에 캐스팅됐다고 한다. 원래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가 그렇게 많지 않았음에도 완전 대박이 난 것이다. 난 이런 게 넷플릭스의 순기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각 나라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무난하게 재미있는 작품도 수익내기가 쉬워지는 느낌? 만약 넷플릭스 배급이 아니라 JTBC에서 방영됐다면 이만큼 국제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그냥 우리나라 드라마 1로 끝나지 않았을까?
<시>나 <밀양>, <기생충>과 <마더>같이 예술적으로도 탁월한 영화가 그냥 인기 많은 작품보다 해외에서 잘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 그렇게 불합리한 추론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신과 함께> 같은 경우 외국 관객들이 이해 아예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반면에 <마더> 같은 경우 어머니의 모성애라는 소재와 서스펜스를 전개하는 방식은 나라 구분 없이 탁월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을 수도 있다. 이는 곧 우리가 다른 나라의 영화를 볼 때 예술성이 기가 막히게 탁월하지 않은 것들을 보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번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타미 페이의 눈>도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 아닌가? 어쩌면 우리나라 관객들은 미국인들에 비해 모순적인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입된 작품만 보기에는 선택지가 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 격차(?)가 OTT가 등장하니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듯하다. 영화 그냥 재밌으니까 보는 거다. 인문학적 소양이나 사람의 깊이가 필요한 영화들도 분명히 의미는 있지만 어떤 이들은 그냥 뇌 비우고 시간 죽이고 싶어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 디즈니 플러스에 이런 미국 독립영화가 들어오니 우리나라 스릴러물을 보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더 생겼으니 이는 분명히 이 플랫폼이 갖는 이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수입사에 기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디즈니 플러스 홍보팀 일 진짜 못한다. <출구는 없다> 뿐만 아니라 <조조 래빗>같이 좋은 영화 많은데 이걸 유저들이 일일이 다 찾아서 봐야 한다는 게 참..;
스릴러물의 제1덕목은 뭐다?
너지? 4885. <추격자>는 탄탄한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영화다. 영화 초반부부터 지영민이 나쁜 놈인 거 다 알고 시작하는데도 두 시간 동안 눈을 뗼 수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스릴러물과는 다른 차이점이 보이긴 해도 영화 자체적인 구실을 나름 다 하는 셈이다. 이 영화가 <추격자> 만큼의 창의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그냥 재미있다. 긴장감이 넘친다. 후반부 폭주하는 전개가 좋다. 뭐 그럼 된 거 아니겠어?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고, 장르의 값을 한다! 가끔은 어떤 영화의 해설보다 그냥 재미있는 영상물이 당길 때가 있기 마련이다. <문나이트> 한번 보기에 돈이 아까운 분들에게 이 영화 추천드린다. 주말에 연인, 친구들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플러스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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